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있었다. 바로 이때, 내 옆에 앉은 이해월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뻗어 술잔을 빼앗아서 갔고 나를 슬쩍 어깨로 누르며 말했다.“한 대표님, 최근 몸이 안 좋으시다면서요. 제가 대신 마실게요!”그리고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사람들을 향해 술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여러분, 제가 먼저 대표님을 대신하여 한잔 마시겠습니다. 저희 신흥건재를 찾아주셔서, 대표님을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그녀는 바로 술을 목구멍에 들이부었다.이윽고 눈앞으로 또다시 아까 그 손이 지나가고 전지훈 앞으로 내밀어졌다. 이해월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전 대표님, 신 대표님의 말씀이 옳았네요. 이 한 잔은 특히 제가 한 대표님에게 공경의 의미로 대신 마셔드리겠습니다! 오늘 한 대표님을 알게 되어서 정말 기뻐요. 전 앞으로 신흥의 한 대표님의 비서로서 전 대표님과 자주 만나 뵙게 되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한 대표님께서 그간 몸이 안 좋으셨다는 걸 여러분도 알고 계실 겁니다. 입원도 몇 번이나 하셨고 의사 선생님은 한 대표님께 금주를 권하셨죠. 그러니 전 오늘 한 대표님 대신, 한 대표님의 몫까지 제가 마실 생각입니다. 그러니 살살 부탁드립니다. 오늘 제가 전 대표님과 함께 술을 마셔드리죠!”이해월의 말발이 이렇게 대단한 줄은 몰랐다. 나는 흡족한 얼굴로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고 누구나 이해월의 말 속에서 신호연이 추악하다는 의미를 들어낼 수 있었다.전지훈 또한 이해월이 나 대신 신호연을 저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것이라 생각했다.그는 그윽하고 꿀이 떨어지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불퉁한 듯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그래도 분위기를 띄워주려 했다.“그래요! 아주 좋군요! 자신의 회사 대표를 위해 대신 마시다니, 정말 좋은 비서네요! 지아 씨, 이번만큼은 봐 드리죠! 하하!”전지훈은 나를 빤히 보다가 이해월과 술잔을 부딪치고는 바로 고개를 젖혀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이치대로라면 좋은 성과를 얻은 후 발을 빼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틀어 그 사람들을 보았다.신호연은 어느새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한지아, 건방지게 굴지 말고 당장 돌아와. 지금 네가 그럴 처지가 된다고 생각해?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정말로 자기 자신이 어느 부잣집 딸내미라도 된다고 생각해서 첫날부터 이러는 거냐? 예전의 너라면 저 문턱도 못 넘어왔어, 알기나 해? 술 접대에 위출혈이 올 때까지 마셨으면서 지금은 왜 내숭인데? 정말로 네가 순결한 여자라도 된 것 같아? 술 접대하라는 게 그렇게 어려워?!”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저게 지금 사람이 할 소리야?'이해월은 잔뜩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내 앞에 막아섰다.“신 대표님,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죠? 정도껏 하셔야죠!”“넌 저리 꺼져!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 아니니까!”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해월을 노려보다가 이내 옆으로 확 밀어버렸다. 이해월은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신호연은 단번에 내 손목을 낚아챘다.“건방지게 굴지 말고 앉아!”있는 힘껏 팔을 빼내려고 애를 쓰며 증오 가득한 눈길로 신호연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이거 놔!”소리를 들은 양대수가 얼른 달려왔다.“아이고, 한 대표님! 그러지 마시고 딱 한 잔만이라도 마셔요! 이런 사소한 일로 일을 크게 만들 이유는 없잖아요.”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딱 한 잔이라고요? 저도 인내심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에요. 전 계약 하나를 위해 자기 몸까지 파는 사람이 아니라고요.”“한 대표님!”같은 자리에 있던 어느 직원이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제가 알기로는 이미 이혼까지 했다면서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으니까 굳이 우리 앞에서 고귀한 척, 순결한 척 굴지 않으셔도 돼요.”나는 그 직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내 몸은 아까보다 더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었다.“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 봐요. 제가 결혼을 했든, 이혼했
나는 일단 먼저 이해월을 데려다주고는 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운전했지만, 여전히 어딘가 마음에 걸렸다.신호연을 떠올리기만 하면 나는 치가 떨려왔다. 그는 번마다 나의 한계를 도전하고 있었고 직접 그에게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그 남자는 대체 누구일까? 게다가 그 남자는 내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어. 난 그 남자를 아예 모르는데 말이야. 그 사람은 대체 어떻게 마침 그곳에 도착하여 나를 도와준 걸까?'이 생각들이 말해주는 답은 오직 하나였다. 그건 바로 누군가가 그에게 시켜 들어온 것이었다.나의 머릿속엔 저절로 배현우가 떠올랐고 다른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바로 핸들을 꺾어 빠르게 취빈루로 돌아왔다. 차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세워두었지만 차 안에서는 입구 쪽을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시동을 끈 채 차 안에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대략 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예상대로 누군가의 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곁에는 그의 팔에 팔짱을 낀 채 애교를 가득 부리는 이세림을 발견할 수 있었다.두 사람은 곁에는 키가 큰 중년의 여자가 있었다. 그 중년 여자의 옷차림을 보아 기세가 남달랐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다.핸들을 잡고 있던 내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 중년 여자가 아마 바로 배현우의 고모이자 천우 그룹의 전 대표이사일 것이었다. 그녀는 역시 서울로 올라온 것이었다.배현우와 이세림의 사이도 아주 더 가까워 보였고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이세림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확실히 이세림이 나한테 경고할 자격이 있어 보였다.‘그럼 나는 대체 뭐지?'순간 이세림이 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우리 결혼은 우리 가문 사이에서도 이젠 비밀이 아니에요.”그러나 난 아직도 비밀이 되어야 했다. 아니, 어쩌면 비밀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나는 차 안에서 세 사람이 같은 차에 올
머릿속이 순간 멍해진 나는 바로 이해월을 향해 말했다.“그럼 어서 들어오시라고 해요!”만약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 어젯밤 일로 찾아온 것이었다.난 그저 자리에 앉아 내 할 일을 했다.이해월이 나간 뒤 바로 누군가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고개를 든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뿜어내는 남자가 이해월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이건 내가 이청원을 처음 만나게 된 날이었고 이해월이 미리 나에게로 와 알려주지 않았다면 난 정말로 눈앞에 있는 남자가 이청원임을 몰라봤을 것이다.그는 아주 건장해 보였고 깔끔한 정장 차림에 나이도 30대 후반으로 보였다. 비록 외모가 특출나게 잘생긴 건 아니지만 지적임이 물씬 풍겼고 행동엔 우아함이 깃들어 있어 더욱 어딘가 고귀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을 보니 확실히 교활해 보였고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을 주었다.싫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는 좋은 느낌도 아니었다. 이 느낌은 어쩌면 배현우를 만난 후로 알게 된 기분이었다.형원 그룹을 처음 듣게 되었을 땐 천우 그룹과 라이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배현우 덕에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형원 그룹을 다소 배척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어젯밤에 그런 일까지 있었고 그에게 그런 무례한 부하직원까지 있으니 그를 좋게 볼 리가 없었다.이해월은 급히 나를 그에게 소개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의 손은 아주 두꺼웠다.“한 대표님, 만나서 반갑습니다!”이청원은 젠틀한 모습을 보이며 그녀와 잡았던 손을 내려놓았다.나도 예의상 인사치레를 했다.“네, 반갑습니다. 얼른 앉으세요!”그는 말을 빙빙 돌리지 않았고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전 어젯밤 일로 사과하려고 한 대표님을 찾아온 겁니다!”나는 멈칫했다. 그리곤 그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지나간 일이니 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대표님께서 직접 우리 신흥으로 찾아와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한 대표님 너무 겸손하시네요. 어제 그 일은 전혀 사소한 일이 아
역시 내 예상은 벗어나지 않았다. 제일 먼저 신흥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운 것은 바로 신호연이었다. 그는 회사로 들어올 때부터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마치 이성을 잃은 한 마리의 사자 같았다.보아하니 정말로 이청원이 그의 주주 자격을 박탈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신호연이 나를 찢어 죽일 듯한 모습으로 들어올 리가 없었다.나는 한때는 부부였던 그와 이런 사이가 될 줄은 몰랐다.그는 손가락으로 나를 짚으며 큰 소리로 욕하기 시작했다.“넌 태어날 때부터 불길한 년이었어! 한지아, 이렇게 나를 괴롭혀야 속이 시원하겠어?”신호연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건 나 또한 처음이었다. 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매섭고 싸늘해진 눈빛으로 나를 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정말로 나를 찢어 죽여야 분이 풀릴 듯해 보였다.그의 지금 모습은 흡사 광견병에 걸린 사람 같았고 치료제가 있어도 무용지물일 것 같았다.이해월이 내 앞에 척 나섰고 큰 소리로 사무실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나를 지키라고 했다. 그러자 채형건은 바로 빌딩 보안 요원을 불러왔다.나는 이해원을 옆으로 살짝 밀면서 신호연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신호연, 내가 너랑 이혼을 결심한 건 말이야. 더는 너랑 아무것도 얽히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거야. 하지만 넌 번마다 내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했지. 어젯밤도 네가 그런 짓을 하는 걸 보고 난 네가 정말 짐승보다 더 못한 새끼라는 걸 알게 되었어. 그런데 무슨 낯짝으로 여길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거지?”“천박한 년이... 죽고 싶어 환장했어?!”신호연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네 추악한 짓에 신도 더는 못 봐줄 지경이던 거겠지! 나도 네가 돌을 들어 제 발을 깰 줄은 몰랐거든. 차라리 조용히 돌아가서 네가 뭘 잘못했는지 반성이라도 하는 게 어때?”“한지아! 이 불길한 년! 너랑 결혼하고 나서 불길한 일만 잔뜩 일어났어!”신호연은 이를 갈며 언성을 높였다.“네가 내 도움으로 성공할 때는 왜 불길한 년이라고 말하
신호연이 진정된 듯한 모습에 사람들은 저마다 손을 뻗어 어지럽혀진 바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이해월도 나를 데려다주고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그러다 갑자기 신호연이 다시 쳐들어왔다.“한지아, 너 대체 어젯밤 그 진 선생인가 뭔가 하는 사람과 무슨 사이냐? 왜 나랑 같이 있을 땐 그런 사람을 나한테 언질도 안 해준 건데? 대체 나한테 얼마나 더 숨기고 있는 거야! 한 지아,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데?”나는 사무칠 책상 뒤에 서서 두 팔로 책상을 지탱하며 그를 빤히 보았다. 그의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의 말은 마치 내가 숨기고 있던 것을 그에게 전부 바쳐야 했다는 거로 들리게 했다.난 어쩐지 그의 사고 회로가 정상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네가 모르는 건 아직도 많고도 많아!”“한지아,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그의 어투가 많이 누그러졌다.“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야?”이때 나의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나한테 연락한 사람은 바로 배현우였다.나는 감정을 정리하고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어디에요?”배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무실이요!”나는 간략하게 대답했다.“그럼 나 기다려요!”말을 마친 그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난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나는 의자에 앉아 신호연을 보았다.“네 궁금증을 풀어줄 시간이 없어. 그러니까 알아서 사리고 있어!”“해월 씨! 손님 나가요!”나는 이해월을 불렀다.오늘 난 장영식에게 한 수 배웠다. 굳이 신호연과 싸울 필요 없이 냉정하게 신호연을 무력하게 만들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야말로 상책이었다.“한지아, 네가 감히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해?!”그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고 싸울 기세를 보이었다.“내가 너에 대해 못 알아볼 것 같아?”나는 애초에 신호연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행패로 이미 난 머리가 지끈거렸기 때문이다.“신 대표님, 얼른 가십시오!”이해월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부름에 따라 젊은 남자가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꼼꼼하고 똑똑하게 생겼고 심지어 외모마저 아주 잘생겨 전혀 마케팅 부서 주임으로 보이지 않았고 마치 직업 모델 같은 모습이었다.“이름은 이동철이에요!”배현우는 그저 이름만 내게 알려주었다.“얘가 지아 씨 모든 요구를 만족시켜 줄 거예요. 물론, 제가 말한 그 요구는 업무상의 요구를 말하는 거예요. 지아 씨는 제 여자니까요.”순간 내 얼굴이 확 달아오르게 되었다.‘뭐... 라고? 이 사람은 항상 내 앞에서 낯부끄러운 말만 하더라.'나는 작게 중얼거렸다.“현우 씨 여자 아니거든요!”이동철은 머리를 긁적이며 헤실 웃었다.“한 대표님!”나는 이동철을 보며 물었다.“만약 제가 특이한 어려운 자료를 부탁해도 전부 찾을 수 있어요?”이동철은 배현우를 힐끔 보다가 대답했다.“물론이죠! 대표님께서 시키신 일이라면 가능합니다! 협력 건도요!”‘대박!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닌가? 하지만 맘에 들어!'배현우도 그런 나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이동철을 향해 말했다.“내일부터 출근하면 될 거야. 한 대표님 말 잘 들으면 돼. 오늘은 이만 퇴근해.”“아! 잠깐만요! 물어볼 것이 하나 있어요!”이동철이 마음에 들었기에 상당히 관심이 갔다.“꺼져!”배현우는 이동철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시선을 깐 채 나를 보았다.“지금부터 지아 씨 시간은 오로지 나만 쓸 수 있어요!”그런 배현우의 말에 이동철을 빠르게 나가버렸고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아니, 뭐 하는 거예요? 저 궁금한 게 있었단 말이에요!”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자꾸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돼요?”그는 나를 보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역시 난 어디를 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네요.”그 말에 난 순간 욱하는 감정이 밀려왔다.“현우 씨가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인 게 아니라 바빠서 제가 환영할 시간도 내줄 수 없는 거겠죠.”나는 그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질투 섞인 어투로 말을 꺼냈다.“
함께 차에 올라탄 뒤 그는 바로 연락해 저녁을 준비하라고 했다. 가는 길 내내 내 가슴은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를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그는 나를 끌어안았다.“얼른 집에다 연락해요. 오늘 안 들어간다고요!”흡사 명령 같은 말을 내게 했다.그 순간 나는 정말로 반항할 힘이 나지 않았고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눈앞에 있는 남자의 품에 안겨 계속 행복감을 느끼고 싶었다.항상 몸에서든 마음에서든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나였지만 그의 품에 안겨있으니 그간의 모든 고민과 외로움, 그리고 불안감이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리조트로 돌아오고 그곳의 공기를 마시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고 정말로 이곳이 내 집이라도 된 것처럼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다.나는 여전히 머릿속에 그가 아까 했던 “집으로 갈까요, 아니면 여기 계속 있을 건가요?”를 되뇌고 있었다. 이곳이 정말로 그와 나의 집인 걸까?식사를 마친 후 그는 바로 나를 품에 안고 키스했다. 그 순간 오래 기다려 온 이 순간에 울컥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순간마다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고 지금, 이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난 그의 얼굴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꿈일까 봐. 눈을 감으니 머릿속이 하얘졌다.“왜 나를 보지 않는 거예요?”나는 하는 수 없이 눈을 뜨게 되었고 그의 그윽하고 애틋한 두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조각 같은 그의 미모에 꿀 떨어지는 듯한 그의 눈빛을 보니 나는 마치 그의 달콤한 눈빛에 같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더욱 꽉 끌어안고 나직하게 말했다.“지아 씨, 보고 싶었어요. 매일매일!”그 순간, 그의 말에 전에도 느껴 본 적이 없는 아주 큰 위안을 받게 된 것 같았고 그가 정말로 나를 좋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지는 아직 잘 몰랐다.그가 순간마다 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니. 난 심지어 그가 얼마나 날 사랑하고 있는지조차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난 그의 품속에 안긴 채 물었다.“일은 잘돼 가고 있어요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