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주는 피를 토해내며 흉터남의 바지를 잡았다.“해독제...”흉터남은 눈살을 찌푸리며 입꼬리를 올렸다.“해독제는 애초에 없었어. 넌 그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먹고살려고 그래? 말 한마디에 바로 속네.”홍혜주는 놀란 표정으로 힘겹게 말했다.“해독제... 없...”“KA48는 해독제가 없어!”흉터남은 피식 웃으며 홍혜주의 목을 잡았다.“저승에 가서 애들한테 안부 전해줘.”그는 홍혜주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홍혜주는 아직도 그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상태였다.“저를... 속인 거예요?”홍혜주의 눈에는 빛이 없었다. 그녀는 흉터남의 손에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가 빠르게 칼을 뽑아내 그의 눈을 향해 찔렀다.흉터남은 빠르게 피했다. 그래도 얼굴에 상처가 남았다.홍혜주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다리가 골절했는데도 꿋꿋이 일어날 정도의 한이었다.“이것도 거짓말이면, 설마 제 부모가 저를 팔았다는 것도 거짓말이에요?”“그렇게 많은 애들이 있는데, 네 부모가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아?”“역시... 거짓말이었어... 저를 도구 취급하고, 제 인생을 망쳤어요! 당신은 죽어도 싸요!”홍혜주는 총을 꺼냈다.탕! 탕!두 발의 총성이 들렸다.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던 온지유도 들었다. 그녀는 몸이 굳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슬픈 기분이 들었다. 눈물은 저도 모르게 주르륵 흘러내렸다. 모든 것이 꿈처럼 현실감이 떨어졌다.이때 그녀를 가리고 있던 문이 열렸다. 빛이 들어와서 그녀의 몸에 떨어졌다. 빛이 이토록 눈부시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사람 있습니다! 여기 사람 있습니다!”특전사가 외쳤다.온지유는 울면서 손을 뻗었다. 삶의 희망을 향해 뻗은 손이었다. 손이 잡힌 순간 그녀는 드디어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사... 살았다...”부축받고 일어난 그녀는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얼어붙은 그녀는 창백한 안색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혜주...”‘혜주 씨가 기다리라고 했는데? 왜 안 돌아오지?’걱정되었던
홍혜주는 손가락을 까딱하더니 힘겹게 눈을 떴다. 온지유를 인식한 그녀는 손을 뻗어 붙잡으려고 했다. 온지유도 느끼고 허리를 숙였다.“혜주 씨!”“추워... 나 추워요...”“안아줄게요. 그럼 안 춥죠? 이쪽으로 기대요.”홍혜주는 무기력하게 말했다.“저 이제 죽는 거죠? 미안해요. 도움이 하나도 못 됐어요. 약도 못 찾고... 저... 콜록콜록...”“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요. 구급차가 오고 있어요. 제가 계속 곁에 있을게요. 곧 따듯해질 거예요.”홍혜주의 시선은 이미 흩어졌다. 그녀는 허약하게 말했다.“저 때문에 슬퍼하지 않아도 돼요. 저희 어차피 모르는 사이였잖아요. 명진이 아니었으면...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이대로 죽어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아요. 이제야 좀 쉴 수 있는 느낌이랄까.”홍혜주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했다. 그녀의 인생에 행복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도 없이 혼자서 그 힘들 세월을 견뎌내는 게 쉽지 않았다. 인생도 참 재미없게 느껴졌다.“앞으로는 달라질 거예요.”온지유는 어떻게든 그녀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나쁜 사람들이 전부 잡혔어요! 여기도 이제 탈탈 털릴 거예요! 혜주 씨는 자유예요! 이제는 예쁘게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요! 우리 같이 해봐요! 포기가 웬 말이에요!”온지유는 거의 소리 지르다시피 말했다. 그녀는 홍혜주가 희망을 잃은 채 죽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살아만 있다면 기회가 있었다.이런 그녀를 바라보며 홍혜주는 미소를 지었다.“제가 할 수 있을까요?”“네! 제가 장담해요!”온지유는 그녀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혜주 씨도 사랑받으면서 살 수 있어요. 혜주 씨가 좋아하는 예쁜 것도 실컷 해요. 그리고 혜주 씨한테는 친구도 가족도 생길 거예요. 이제는 혼자가 아니에요. 봐요, 저도 있잖아요.”이 말을 들은 홍혜주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항상 바라던 생활이었다.외롭지 않은, 어둠에 가려져 있지 않은 생활... 그녀는 평범한 사람처럼 평범하게 사는
온지유는 지금의 감정을 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는 힘든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녀의 아픈 과거 정도는 보잘것없어질 정도로 말이다.적어도 그녀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홍혜주가 그리는 사랑을 받아본 적도 있다. 그런 생각에 그녀는 가슴이 너무 아렸다.온지유도 구급차에 살려갔다. 홍혜주와 다른 차였다. 나쁜 사람들은 벌써 제압됐는지 더 이상의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구급차 창문을 통해 경찰차를 볼 수 있었다. 현장도 청소하는 사람이 있었다.흉터남은 당연히 체포되었다. 그는 머리에 검은색 천을 뒤집어쓰고 손에는 수갑이 씌어 있었다. 몸 곳곳에 상처가 있었던 그는 절뚝거리며 걸었다.뒤이어 용경호와 성재민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어디에도 여이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온지유는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언제나 두 사람과 붙어 있던 여이현이 왜 사라졌는지를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한창 노승아와 함께 있을 때이니 떨어져 있을 만도 했다.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 와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도 참 답답했다.모두가 여이현을 감싸고 도는 곳이니 그는 무사할 것이다. 그를 걱정할 바에는 자신을 걱정해야 한다고, 온지유는 생각했다.다행히 홍혜주가 도와준 덕분에 그녀는 별로 다치지 않았다. 몇 곳 쓸리고 까진 게 전부였다.그러나 사건이 꽤 심각했는지 현장에는 구급차가 아주 많았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라면 전부 구급차에 실려 갔다.그녀가 탄 구급차에는 군인 한 명도 있었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그는 많아서 18살 정도 되어 보였다. 어린 나이에 왼쪽 눈을 다친 그는 지금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간호사가 아무리 지혈해도 소용없었다.정신은 멀쩡했던 그는 아픈데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침대 끝을 하도 꽉 잡아서 이불이 구멍 날 정도였다.이런 장면에 온지유는 심장이 떨렸다. 이 세상에 이런 곳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다.대신 다쳐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녀가 그동안 안전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군인들은 언제나 최
군인들은 쫓아오려고 했지만 자동차의 속도를 따라올 수 없었다.노승아는 자꾸만 백미러로 여이현을 관찰했다. 그의 움직임이 점점 적어져서 마음이 급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될까 봐서 말이다.“버텨요, 이현 오빠! 꼭 버텨내야 해요! 우리 곧 도착해요.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독제를 얻을 테니까, 오빠는 버텨주기만 해요!”노승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정신이 희미한 상황에서도 여이현이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그녀는 무조건 해독제를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여이현이 조금만 버텨주면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차는 거칠게 운전해서 숲에서 시내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또 교외의 폐공장에서 급정거했다.텅 빈 CCTV 화면에 예고 없이 들어선 차는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노승아는 차에서 내리며 외쳤다.“아버지, 저예요! 살려주세요!”그녀는 뒷좌석에서 여이현을 끌어내렸다. 폐공장에서는 벌써 누군가 달려 나오고 있었다. 노석명과 같은 편에 있는 사람들이었다.노석명은 CCTV 화면을 보고서도 놀라지 않았다. 노승아와 여이현이라는 것을 예상했던 것이다.이번 작전은 여이현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여이현이 진짜 흉터남을 제거해 줄지 궁금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여이현을 믿어도 되는지 의심했다.비록 얘기를 많이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노승아가 이것저것 알려줬다. 이번 작전이 처음으로 여이현과 직접적으로 연락하는 것이었다.여이현은 점점 그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노승아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했다.“뭐해요? 빨리 와서 부축하지 않고!”노승아는 급한 마음에 언성을 높였다.노석명도 밖으로 걸어갔다. 노승아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보고는 태연한 말투로 말했다.“별일 없으면 찾아 오지 말라고 했잖아. 쟤는 왜 또 데려와?”“아버지, 이현 오빠 좀 살려주세요. 오빠가 저를 구해주려고 대신 약에 중독됐어요. 다 저 때문이에요. 이제는 제발 이현 오빠를 믿어줘요. 오빠는 저를 위해 목숨까지 내던졌다고요. 오빠가 죽으면 저는 평생 제정
실험실에는 다양한 약과 도구가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약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이곳은 노석명이 만든 실험실의 일부에 불과했다. 이곳에는 독약도 있고 해독약도 있었다. 이름 없이 숫자만 적혀 있는 약이라 전문가만 알아볼 수 있었다.실험실에는 10 여명의 연구원이 있었다.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채 일하는 중이었다.여이현은 정신을 잃은 채 소파에 놓였다....병원에 간 온지유는 정밀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홍혜주가 지켜준 덕분이었다.그녀는 혼자 수술받고 있을 홍혜주가 너무 걱정되었다. 홍혜주는 외로운 걸 싫어했다. 수술은 잘 받고 있을지 너무 다급하고 불안했다.홍혜주가 혼자라고 생각하는 게 싫었던 그녀는 수술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홍혜주가 눈을 뜨자마자 곁에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봤으면 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 지지 않을까?수술은 장장 3시간이나 계속되었다.잠시 후 홍혜주가 마취 상태로 수술실에서 나왔다. 그녀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온지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수술은 성공적입니다. 총탄을 전부 빼냈어요. 이제 경과만 지켜보면 됩니다.”“감사합니다, 선생님.”홍혜주가 나오자 경찰들이 몰려왔다. 그들이 용경호를 대두로 홍혜주의 병실에 깔리는 것을 보고 온지유가 물었다.“왜 경비가 이렇게 많아요?”“조직과 연관이 있는 범인이니까요. 도망치지 않게 잘 감시해야죠.”온지유는 긴장하기 시작했다.“강요로 한 일도 범죄가 되나요?”“그건 판사님이 판단할 일입니다.”온지유는 걱정되는 마음에 한 마디 더 물었다.“혹시... 사형에 처할 수도 있나요?”“저는 잘 모릅니다. 주범이 맞는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지겠죠.”“언니는 원해서 한 일이 아니에요.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 많아요.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여자애 혼자 어떻게 하겠어요.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하는 곳이었어요. 언니는 그냥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거예요.”용경호는
온지유의 질문에 용경호는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아닙니다, 사모님.”생각 끝에 그는 계속 감추기를 선택했다. 여이현도 그걸 원할 것이다.“소대장님은 현장에 남아서 지휘할 일이 많아요. 증거 수집도 해야 해서 밖에서 안 보였을 거예요.”“노승아 씨는요?”“그건 저도 잘 몰라요.”용경호는 철저히 대답을 회피했다. 그래서 온지유도 계속해서 물을 수 없었다.“제가 혜주 씨 곁에 있는 건 괜찮죠?”“아... 그게...”“안 돼요?”“됩니다.”용경호는 잠깐 난감해하다가 허락했다.“하지만 허락 없이 드나들 수는 없습니다. 이동할 때마다 검사가 있을 겁니다. 사모님이라고 해도 규정은 지켜야 하니까요.”군인들은 항상 이렇게 딱딱했다. 그러나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던 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그 정도는 감수할게요.”온지유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용경호는 밖에서 지키고 있었다.여이현의 소식을 마냥 기다리기만 해야 했던 용경호도 일 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보는 눈이 있기에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온지유는 침대 가에 앉아 창백한 안색의 홍혜주를 바라봤다. 생기를 잃은 그녀는 빨간 머리카락마저 칙칙하게 보였다.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면봉에 물을 묻혀 닦아주고 나서야 약간 윤기가 돌았다.주변이 잠시 조용해지자 그녀는 납치당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차 안에는 장다희도 함께 있었다. 그녀는 무사한지 문뜩 걱정되기 시작했다.그녀는 밖으로 나가 용경호에게 상황을 물었다.“장다희 씨는 다쳐서 입원했어요. 참, 이건 사모님이 떨어뜨린 핸드폰이에요.”용경호는 그날 차에 있었던 핸드폰을 건넸다.“안에서 심심하실 텐데 핸드폰이라도 가지고 계세요.”온지유는 핸드폰을 받아서 들었다. 다행히 고장 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그날은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차창은 깨졌지, 길은 막혔지, 사람들은 다쳤지... 전쟁터 못지않은 상황이었다.기억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던 온지유는 용경호에게 말했다.“그러고
온지유는 침대에 누워 있는 홍혜주를 바라봤다. 어쩌면 홍혜주는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그녀는 일단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서 인터넷을 관찰했다. 도로 한복판에 폭탄이 설치된 일은 역시 토론되고 있었다.사람들은 대개 두려움에 떠는 태도였다. 경찰 측은 테러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세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안정희에게 물어보니, 더 큰 혼란을 빚어내지 않기 위해 결과가 나온 다음에 보도할 예정이라고 했다. 조직을 완전히 파헤친 다음 보도할 생각인 것 같았다.그렇다는 건 현재는 보인 건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이현 씨도 아직 현장에 있으려나?’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으로서는 흑막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그녀는 창밖을 바라봤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조금 전 봤던 핏빛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곧 밥때가 되었다. 온지유가 걱정됐던 용경호는 직접 도시락을 가져왔다.“사모님, 얼른 식사하세요.”용경호는 음식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뚜껑까지 열어줬다. 젓가락까지 준비되어 있어서 온지유는 가서 먹기만 하면 되었다.그러나 온지유는 밥 먹을 생각 없이 질문을 던졌다.“경호 씨는 이상하지 않아요?”“네?”한순간 용경호는 음식이 이상하다는 줄 알았다.“저는 이현 씨랑 이혼했어요. 근데 왜 계속 사모님이라고 불러요? 혹시 제가 이현 씨랑 다시 만날 거로 생각하는 거예요? 왜 그런 생각을 했죠? 혹시 이현 씨가 무슨 말을 해줬던가요?”온지유는 예리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납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분명히 다 잡혔어요. 그런데도 작전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죠. 이현 씨는 대체 무슨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거예요?”질문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용경호는 무엇부터 대답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사... 아니, 온지유 씨. 도시락 여기 있어요. 천천히 드세요.”용경호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온지유의 질문에 응하는 것이 전쟁보다 어렵게
“마취가 풀려서 아플 거예요. 이틀 정도 참으면 괜찮아진다고 했어요.”홍혜주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괜찮아요. 이 정도 고통쯤이야... 지유 씨 다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온지유는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앞으로도 자주 볼 거예요. 혜주 씨 소원도 전부 이뤄질 수 있어요.”홍혜주는 머리를 끄덕였다.사실 그녀는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온지유가 그녀를 걱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물 마시고 싶어요.”온지유는 후다닥 물을 따라줬다. 홍혜주는 빠르게 물 한 잔 비웠다. 그러자 말하기 훨씬 편해졌다.“조금 더 쉴래요?”“아뇨. 잠들기에는 시간이 아까워요. 이 순간을 조금 더 즐길래요. 병실에서 꼼짝 못 한다고 해도, 일반인이 된 느낌을 누리는 건 흔치 않잖아요.”흉터남만 사라지면 그녀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죽었다가 살아나니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밖에 누군가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궁금한 듯 물었다.“밖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예요? 왜 여기 있는 거예요?”“군인들이요. 신경 쓰지 말고 몸 회복하는 데만 집중해요.”홍혜주는 곧장 알아차렸다.“이해해요. 어찌 됐든 저도 그쪽 사람이니까 감시를 해야겠죠.”온지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기분이 다운될까 봐서 말이다.그러나 그녀의 걱정과 반대로 홍혜주는 웃으면서 말했다.“어리벙벙하게 생긴 게 좀 귀엽네요.”온지유는 홍혜주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보고 있던 사람은 용경호였다. 그는 꼼짝하지 않고 동상처럼 서 있었다.“저 사람은 용경호라고 해요. 이현 씨 쪽 사람이에요.”“아하. 여이현 씨가 저렇게 어리숙한 사람도 거둘 줄은 몰랐네요.”온지유는 피식 웃었다. 홍혜주의 눈에는 용경호가 꽤 웃기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녀만 즐겁다면 뭐가 됐든 상관없지만 말이다.그러나 온지유는 아직 물어볼 일이 있었다.“혜주 씨, 혹시 노승아 씨 아버지에 대해 아는 거 있어요?”용경호가 말해주지 않는 걸 어쩌면 홍혜주는 알지도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고 착하게 자란 윤별은 초등학교에 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으며 여이현도 매우 기뻐했다.하지만 윤별은 항상 외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고 심지어 작은 빨간 꽃을 만들어 외할아버지가 있던 방에 붙여놨다.온지유는 윤별의 행동을 눈치채고 바로 다가가서 위로해 주며 말했다.“별아, 너무 슬퍼하지 마. 외할아버지는 지금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셔서 우리를 보고 계실 꺼야. 그리고 내년이면 외숙모 집에서 별이 남동생과 여동생도 태어날 거야.”“그런데요 엄마, 외할아버지께서 제가 1학년이 되어 글자를 배우면 공부를 가르쳐 주신다고 약속했어요. 그리고 외할아버지께서 또...”윤별은 말하다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전에 윤별이가 브람을 따라갔을 때 브람은 매우 엄하게 대했지만, 온경준이 경성에 데려다 키우는 동안은 윤별에게 끝없는 사랑을 주면서 모든 것을 만족시켜 주었다.그리고 윤별의 몸이 허약하니 온경준은 옆에서 정성껏 보살펴 주었고 쓴 약도 잘 먹게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달래여 먹이면서 많은 추억을 쌓아 주었다.그때 윤별은 온경준에게 물었었다.“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온경준의 집은 Y 국이었고 윤별의 말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해 주었다.“별이랑 엄마가 어디에 있으면 할아버지 집은 거기에 있는 거야. 할아버지는 예전에 많은 잘못을 했고 그렇게 되어 너희 엄마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었어. 이제 겨우 같이 살게 되였는데 할아버지가 어찌 Y 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겠어? 게다가 이쪽에 오래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온경준은 그때 윤별이랑 함께 많은 수공예도 했고 병아리도 기르고 꽃을 심고 풀도 심었지만, 지금은 반 친구들 외에 하민 동생이 놀러 오고 평소에 윤별은 항상 혼자였다.온지유는 윤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외할아버지는 그저 우리보다 먼저 다른 세계로 가신 거야.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사명이라는 걸 가지고 와. 그리하여 사람은 언젠가 죽을 것이고 앞으로 때가
여이현이 추천해 주겠다는 의사는 인명진이었다.인명진의 능력은 상당히 좋았다.당시 그와 지석훈이 하민에게 수술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하민은 지금처럼 이렇게 빨리 낫지 않았을 것이다.“난 병이 없거든.”나도현이 자신의 심병을 인정하지 않자 여이현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지난 4년 동안 치료해 온 걸 아니까 너의 이런 심리는 이해는 할 수 있어. 근데 넌 배 비서가 말했듯이 양시은 씨의 우수함을 부정하면 안 돼. 그녀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도 있을 텐데 네 옆에만 가둬 두고 있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게다가 네가 뭐 사랑을 강제로 시키는 대표도 아니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 사소한 일로 다투지 마.”나도현은 여이현의 말을 다 알아들었지만 자신의 답답하고 복잡한 이 심정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그는 양시은이 모두에게 존중받는 것도 원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앞에서만 이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마시다 보니 나도현은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양시은은 오늘 저녁에야 출장에서 돌아왔고 여이현이 만취한 나도현을 데려온 것을 보고 그녀는 갑자기 마음이 아팠다.“여이현 씨, 저의 남편 데려다줘서 고마워요.”“별말씀을요. 둘이 잘 소통해 봐요.”여이현의 한마디에 양시은은 바로 눈치채고 나도현이 열일곱 살 난 아이 같아 유치하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양시은은 도우미를 불러 나도현을 위층으로 옮기고 침대에 눕혀 신발을 벗기고 넥타이를 풀어줬다.금방 출장 다녀온 탓에 힘들었지만 인내성 있게 나도현을 돌보았고 혹시라도 토할까봐 곁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그런데 뜻밖에도 나도현은 갑자기 양시은을 품에 안더니 그녀에게 입을 맞추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양시은, 나 정말 널 너무 사랑해. 그래서 또 잃을까 봐 두려워.”“너의 마음을 나도 다 알고 있어.”“니가 너무 우수해서 다른 사람들이 눈여겨볼까 봐 겁이 나, 그리고...”양시은은 그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바보야, 너는 내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남자이고
‘말로는 못 하지만 행동으로는 가능한 거니까, 진짜 임신 되였다면 양시은이 지우지는 않을 거잖아?’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던 나도현은 진짜 행동으로 옮기려 했지만, 뜻밖에도 양시은이 출장을 가게 되어 그는 매우 우울했고 회사에서도 정신을 다른 곳에만 두고 있었다.차준기는 하루 종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나도현이 걱정되어 물었다.“대표님, 안되면 제가 부인님한테 연락해 회사로 나오시라고 할까요?”차준기는 양시은이 비서직을 그만두고 본인의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부터 매일 혼이 나간 사람처럼 지내는 나도현을 보고 분명 그녀를 그리워하는 행동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출장 갔는데 어떻게 불러.”나도현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니면 대표님이 갑자기 어디 아프시다고 할까요?”차준기의 건의는 좋은 방법이 맞지만 문제는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가 자주 아프다고 밖에 소문이라도 나면 안 좋을 것 같았고 게다가 나진 그룹에는 나도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됐어, 그 방법은 안 통해.”“그럼...”차준기가 머리를 짜내면서 나도현을 위해 방법을 찾고 있었지만 나도현 본인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짜증 내며 말했다.“됐어, 이제 나가봐. 내가 혼자서 생각해 볼게.”하지만 나도현 혼자서는 절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그때 갑자기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각난 나도현은 여이현과 당시 온지유는 매일 함께 있었으니 그는 틀림없이 많은 방법을 가르쳐줄 거라 믿고 즉시 전화를 걸어 팀을 만들려고 했다.그들 팀은 합치면 제갈량을 능가할 정도였다.지석훈과 최주하는 일이 있다고 하면서 지금까지도 일을 처리 못 하여 오지 않았고 여이현과 그의 비서 배진호만 왔다.그들은 나도현의 우거지상을 보자 배진호가 먼저 조롱하면서 입을 열었다.“나 대표님께서 지금 무슨 걱정이 있으시겠습니까. 들어보니 양시은 씨도 이제 자신의 노력으로 사업을 더욱 잘하고 계신다던데 더 이상 바랄 것이 있나요?”나도현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말해줘 봐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그 뒤로 양시은의 노력과 함께 그녀는 점점 더 바빠졌고 아침 일찍 나가면 저녁 늦게까지 일하다 보니 결국 나도현과의 시간이 자주 어긋나 한집에 있으면서도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다.헤어져 있었던 시간이 있다 보니 나도현은 양시은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각별히 신경 쓰고 소중히 여겼다.하여 양시은의 바쁜 일상을 나도현은 원치 않았고 그녀를 가로막으며 물었다.“양시은, 난 그래도 전에 집, 회사, 가족 모두 잘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넌 나랑 아들만 집에 두고 일만 하네? 이젠 우리도 널 만나려면 예약하고 만나야 하는 거 아니야?”양시은은 나도현이 이런 말까지 할 줄은 몰라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난 단지 최근에 좀 바빴을 뿐이야. 이 시기가 지나면 매일 너랑 함께 있을 수 있는거잖아.”양시은은 나도현의 발걸음을 맞추려고 재빨리 걸었다.이렇게 해야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엔 항상 나도현에게 의지만 했던 양시은이 아닌 어깨를 나란히 걷고 있는 부인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나도현은 불만 있는 어조로 말했다.“한번 이런 일이 생기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겠지. 내가 일을 못 해본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거야?”나도현의 말에 양시은은 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나도현, 내가 언제 얼렁뚱땅 넘어갔다고 그래? 전에는 나보고 열심히 일하라고 해놓고 지금은 내가 바빠지니 또 그게 싫은 거야? 마음이 바뀐 거야?”나도현은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양시은은 그의 침묵이 바로 인정이라고 생각되었다.이 순간, 나도현은 어머니가 그들에게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우라던 말이 머리를 스쳐지나가자 바로 양시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양시은, 한 나이라도 젊을 때 우리 아이 몇 명 더 낳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바쁘게 나도현은 바로 양시은의 허리를 껴안고 그녀를 들어 올려 안았다.양시은은 나도현의 품에서 허우적대며 말했다.“나도현, 너 미친 거 아니야? 너 저번에 나한테 아이는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협박으로 인해 현장에는 의견이 있어도 감히 먼저 나서서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이 연회를 빌어 나도현은 양시은이 자신의 아내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뜻밖에도 그와 여이현의 스캔들로 마무리가 되dj 여이현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이현아, 미안해. 사람들이 우리 사이를 이 정도로 생각할 거라 생각 못 했어.”“괜찮아. 전에도 이런 일들이 많았잖아. 이런 사소한 일로 내가 화를 내면 나중에 더 큰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할 거야. 그냥 잘 지내면 돼, 그럼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지 않을 거야.”여이현은 그 사람들을 무대 위에 세워놓고 위협하고 당사자들한테 사과하게 할뿐더러 다른 계획까지 세우고 나성원을 시켜 사적으로 헛소문을 퍼뜨렸던 사람들을 다시 찾게 했다.연회가 끝나고 여이현이랑 함께 나온 온지유는 그를 조롱하며 말했다.“너랑 나도현 사이에 부적절한 스캔들은 한두 번이 아니잖아? 그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이젠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있는 사람들인데 너희 둘을 그렇게 생각하다니.”“여론을 만드는 사람들 따로 있나 봐. 이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어. 남들은 몰라도 넌 잘 알잖아.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지 여자를 좋아하는지, 너의 발언권이 제일 효력 있는 거 아니야?”여이현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온지유는 그런 여이현의 뜻을 알아채고 즉시 여이현을 노려보며 말했다.“나이가 몇인데 유치하게 아직도 그런 말이 나와?”여이현은 웃으며 말했다.“내 아내하고 말하는데 또 뭐가 어때서? 근데 나 지금 급하게 할 일이 생겼어, 우리 빨리 집에 가야 돼.”“갑자기 무슨 급한 일인데?”온지유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나도현이 애가 한 명이라 지금 둘째도 계획하고 있을 거란 말이야. 그럼 나도 빨리 움직여 걔보다 앞서야지, 안 그래?”여이현은 온지유의 귀에 대고 속삭여 말했다.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여이현의 가슴을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전에 누가 나한테 다시는
양시은은 그런 나도현을 꼭 안아주며 말했다.“나도 알아, 너의 마음도 다 이해해. 이젠 내가 옆에 있잖아.”“그래, 영원히 내 옆에 있어 줘.”나도현은 중얼거리며 반복해 말했다.4년 동안의 헤어짐은 항상 나도현을 불안에 떨게 했고 매일 먼저 눈을 뜨면 양시은이 곁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나도현은 시도 때도 없이 항상 양시은을 곁에 두고 싶었고 그녀가 더 우수해지기를 원했으며 물론 어머니가 말씀하신 네 명의 아이까지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다.그 뒤로 나도현은 여이현의 명성을 빌어 연회를 열었고 경성의 부권 사람들이 다 오게끔 하여 자신에게 양시은 같은 훌륭한 아내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했다.연회를 여는 일에는 아무런 막힘이 없었고 친구로서 여이현도 당연히 참석했지만, 나도현은 그날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의혹만 받았다.“변호사 직업을 버리고 대표 자리를 차지하더니, 이제 그것도 모자라 가업을 논하고 있어요? 근데 옆에 있는 아내라는 분은 비서 아니에요?”“다들 잊었어요? 여대표님의 아내도 비서였었잖아요.”“저 두 사람 진짜 사랑하는 사이 맞아요?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결혼하고 이건 그냥 여대표님의 사랑 이야기를 전부 복사하는 거 아니에요?”“그러니까요. 나도현은 모든 걸 여이현을 따라 하는 듯해요. 이렇게 여이현의 관심을 끌려는 거잖아요. 너무 무서운 사람이네요.”한가하게 앉아 헛소문을 토론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던 나도현은 어이가 없어 한마디 하려 했지만 한발 빠른 여이현이 먼저 나서며 나성원을 불러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들을 전부 끄집어 데려오라고 하고 그들을 앞에 세우고 말했다.“당신들 잘 들어요. 저랑 나도현은 형제 같은 친구이고 우리의 감정 경력을 보면 당신들은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전혀 다르거든요. 저는 처음에 온지유가 저 사람인 줄 모르고 만났고 그 뒤로 오 년 동안 헤어졌지만, 지금은 다시 만나 애도 낳고 살고 있어요. 하지만 나도현은 완전 어머님의
임다혜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몰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나 대표님이라면... 나도현의 아버지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나도현?’나도현이 임다혜를 약혼녀로 받아들이기 싫어 그녀에게 손을 쓴 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일일 텐데 이렇게 쉽게 풀어주는 것이 이해가 안 된 임다혜는 확인하고 싶어서 되물었다.“어느 나 대표님을 말씀하시는 거죠?”눈앞의 남자는 그녀의 물음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당신이 건드린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서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틀림없이 나도현일 거로 생각한 임다혜는 그가 왜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그를 찾아갔다.그때 나도현과 양시은은 서로 웃고 떠들며 사랑을 나누고 있었고 멀리서 다가오는 임다혜를 보자 양시은이 먼저 앞에 나섰다.변화된 양시은의 모습을 본 임다혜는 이제 겨우 얼마나 지났다고 사람이 이 정도로 개변되였을가라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당신이 나도현 씨한테 절 풀어주라고 한 거예요?”임다혜는 나도현이 어떤 원한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갚는 사람이고 이미 결정한 일이면 쉽게 사람을 풀어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 틀림없이 양시은의 뜻일 거로 생각했다.“저랑 나도현은 지금 너무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임다혜 씨를 풀어주지 않으면 그냥 행인일 뿐인 사람을 우리가 여전히 신경 쓰고 있다는 것밖에 안 되기에 그렇게 한 거예요.”갑자기 훅 들어온 행인이란 단어가 임다혜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임다혜는 그렇게 오랫동안 나도현을 쫓아다니면서 사랑했지만, 나도현은 한 번도 그녀를 돌아본 적 없었고 이제 와보니 결국 혼자 마음고생한 것이었다.“이런 말을 해주셔서 고마워요. 양시은 씨,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임다혜는 목이 메여 말도 잘하지 못했다.양시은이 아니었으면 임다혜는 아직도 갇혀 있었을 것이니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었다.“당신 가족도 더 이상 피해 볼 일 없을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는 자신의 사업을 잘 이어가
대신 일을 해줄 사람이 넘쳐나는데 뭐하러 본인이 고생하냐는 식으로 말하는 박은희에 나도현은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어머니, 시은이 몸 상태도 고려해주셔야죠. 시은이가 최근 4년간 하민이를 위해서 밤낮없이 일만 해온 거 어머니도 잘 아시잖아요. 저랑 같이 살게 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또 덜컥 아이를 가져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도 여자니까 임신과 출산의 고생을 누구보다도 잘 아실 거 아니에요.”나도현의 그 한마디에 박은희도 할 말이 없었다.나도현은 박은희가 조금 망설이는 것 같아 냉큼 말을 이어갔다.“만약 하민이가 혼자라서 외롭다고 하면 당연히 둘째든 셋째든 낳을 테니까 그 점은 시름 놓으세요. 하지만 시은이와 저의 계획을 물으신다면 그건 그냥 순리에 맡기고 싶어요.”“알겠어, 그럼 너희 뜻대로 해.”박은희는 나도현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더 밀어붙였다간 양시은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일까 봐 더 말하지 않기로 했다.그제야 박은희는 은근히 걱정됐다.“내가 이렇게 급해 했다고 시은이가 또 오해하진 않겠지?”“그럴리가요. 시은이는 어머니 마음을 이해할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나도현이 박은희의 어깨를 토닥이며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을 때 양시은이 박은희를 향해 걸어왔다.양시은이 자신에게 미소를 짓는 것을 보자 박은희는 그제야 무겁게 가라앉았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박은희는 나도현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넌 시은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바람을 좀 쐬고 들어와. 회사 일은 절대 걱정하지 말고 둘만의 시간을 좀 보내. 네가 그랬잖니, 그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고. 그러니까 이제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현재를 즐겨.”“알겠어요.”나도현은 대답과 함께 양시은에게 다가갔고 둘은 알게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함께 올라갔다.양시은이 단미주와 합작한 프로젝트로 인해 업계의 많은 사람은 양시은을 다시 볼 것이다.양시은은 그 결과에 대해
하민은 박은희와 함께 지낸 지 3년이나 되었고 이 집에서 제일 친한 사람이었다.하지만 하민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했다.그래서 양시은과 나도현은 퇴근하는 대로 집으로 돌아와 하민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가끔 학부모의 참여가 필요한 활동은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하지만 너희들도 보다시피 하민이도 나를 잘 따르고 나도 시연이 널 도와서 아이를 잘 돌봐주잖니. 지금 너랑 도현이도 시간이 있고 하민이도 학교에 다니니까 내가 돌봐줄 수 있을 때 딱 둘만 더 낳는 건 어떠니? 그럼 우리 집안도 더 복작거리고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양시은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나도현이 말을 가로챘다.“싫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저랑 시은이는 아직은 하민이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아이 일은 나중에 더 말하는 거로 해요.”나도현은 하민이 한 명에게도 제대로 된 사랑을 못 주고 있는데 둘째까지 낳아버리면 하민이가 원래도 부족했던 사랑을 나눠줘야 할 것처럼 느낄까 봐 걱정됐다.“왜? 너희 둘 중에 누가 아프기라도 한 거야?”박은희는 말은 그렇게 해도 눈길은 이미 나도현에게 향해있었다.양시은은 이미 하민이를 낳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박은희의 시선을 느낀 나도현은 어쩔 수 없이 말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맞아요, 제 몸에 문제가 생겼어요. 최근 4년간 병원에 다니고 있었고 일도 바빠서 제 정자 생존율이 엄청나게 낮아졌어요.”그 말을 들은 박은희가 침착할 리 없었다.박은희는 당장 나용민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당신이 기를 쓰고 도현이에게 회사를 물려주려고 부담을 주니까 도현이 몸이 망가졌잖아요. 지금 당장 회사 업무를 이어받아서 책임지고 도현이 좀 푹 쉬게 해줘요. 국가 정책도 개방된 마당에 애가 하나밖에 없는 게 말이 돼요?”박은희에게는 나도현이 유일했다. 애당초 박은희는 나도현이 양시은과 사귈까 봐 온갖 방법을 다 대며 노력을 했지만 결국 나도현은 그런 박은희의 노력을 무시하듯 박은희의 뜻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