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후회하지 않아요.”온지유가 말했다.“그냥 저한테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거든요. 예전에는 그저 일개 비서였는데 지금은 통 크게 100억을 투자하고 나왔잖아요. 긴장이 풀려서 그래요.”장다희는 손을 들어 온지유의 어깨를 잡았다.“지유 씨는 지금 제 투자자가 된 거예요. 앞으로 지유 씨한테 의지하면서 살아야겠네요!”“그러지 말아요! 이제 시작이잖아요. 이 드라마가 끝나고 좋은 성과를 거두어야 우리 모두 편해질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김칫국만 시원하게 마신 것만 돼요. 우리에겐 실패란 없어야 해요!”장다희도 알고 있었다. 그녀도 온지유와 같이 도박을 하는 것이다.이번 일에 모든 승패가 달렸다.사실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왜 굳이 리스크가 큰 이 길을 걸으려 하는지. 분명 다른 편한 길도 있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온지유의 결심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았다.단호한 온지유의 모습에 그녀의 의지도 활활 타올랐고 최정상의 자리까지 올라가고 싶었다.그녀는 더는 엑스트라 장다희가 아니었다. 이제는 여주인공 장다희가 될 차례다.장다희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맞아요. 실패는 없어야 해요!”회사로 돌아오니 마침 퇴근 시간이었다.온지유는 다소 피곤했다.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그녀는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곤해졌다. 임신해서 그런 것일까?하지만 전에도 잘만 일하지 않았던가.온지유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드라마를 제작을 위해 준비할 것이 많았으니까.저녁까지 바쁘게 움직이던 온지유는 머리가 어질거렸다. 다만 그녀는 자신의 안색을 눈치채지 못했다.그저 피곤한 것이라 여기며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저녁이 되었건만 여전히 귀가하지 않은 온지유에 인명진은 그녀의 직장으로 찾아왔다. 온지유는 책상에 엎드리고 있었고 그녀의 주위로 컴퓨터와 원고가 있었다.창백한 그녀의 안색에 그는 고민하지도 않고 손목을 그어 핏방울을 그녀의 팔찌에 떨구어 넣었다.팔찌는 아주 신기했다. 그의 피를 흡수하면서
인명진은 과단성 있게 일하는 사람이었다.나민우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그가 한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를 믿을지 말지 생각하고 있었다.그래서 망설이고 있었다.두 사람이 몸싸움을 벌인 탓에 사무실은 난장판이 되었다.몸 상태가 한결 나아진 온지유는 눈을 뜨게 되었다. 두 사람이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습에 입을 열었다.“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예요?”인명진은 온지유의 앞으로 오며 다가오는 나민우를 막아섰다.그녀는 두 사람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나민우?”온지유는 얼핏 그의 모습을 목격하고 불렀다.그녀의 목소리에 인명진은 나민우를 놓아주었고 메스도 치워버렸다.나민우도 그녀가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 인명진이 그를 놓아주자마자 미소를 띠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지유야, 깼어?”온지유는 자리에 앉았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나민우는 선물을 그녀에게 건넸다.“출장 갔다가 금방 돌아왔거든. 집으로 찾아갔는데 없더라고. 회사에 있을 것 같아서 찾아왔지. 자, 이건 네 선물이야.”장미와 함께 포장된 샴페인과 수입 초콜릿이었다.“고마워.”온지유는 그가 건넨 선물을 받고 고개를 돌려 인명진을 보았다.“인명진 씨도 언제 왔어요? 두 사람 뭐 하고 있었던 거예요? 방금 보니까 싸우는 것 같던데...”나민우가 답했다.“서로 처음 봐서 그냥 좀 경계하면서 대화를 나눴을 뿐이야.”온지유는 고개를 돌려 인명진을 보았다. 인명진은 비록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낯을 가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여하간에 평소에 사람을 잘 만나지 않으니 말이다.“그럼 제가 소개해줄게요. 나민우는 제 오랜 동창이에요.”“민우야, 이분은 인명진 씨고 새로 사귄 친구야.”나민우는 고개를 돌려 다시 인명진을 보면서 친절한 모습으로 인사했다.“반가워요.”“네, 반갑습니다.”인명진도 그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했다.“방금은 죄송했습니다.”“괜찮아요.”나민우는 온지유에게 시선을 옮겼다. 오랜만에 만나
“그럼 어디에 있죠?”나민우가 계속 물었다.인명진은 망설이다가 결국 말해주었다.“네로라는 조직 알아요?”나민우의 표정이 굳어버렸다.“네로는 암흑 조직이 아니던가요? 예전에 이미 본거지를 쳐들어가 다 잡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아니요. 다 잡지 못했어요.”인명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저도 그 조직의 일원이거든요.”나민우는 생각에 잠겼다. 온지유가 납치당했던 일이 떠올라 고개를 들어 인명진을 보며 물었다.“지유가 설마 네로에게 찍힌 건가요?”인명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아닐 거예요.”“여이현과 노승아의 스캔들도 설마...”나민우는 순간 무서운 생각이 하나 들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았다.“노승아한테 해독제가 무조건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인명진이 말했다.“하지만 방법은 없죠. 노승아를 제외하고 해독제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나민우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두 사람 모두 온지유를 걱정하고 온지유를 위해 뭐든 시도하려고 했다.“이제야 알겠네요.”나민우는 더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이 일에 대해선 제가 방법을 생각해 볼 거예요.”인명진이 그에게 말했다.“각자의 능력이 닿는 대로 하죠.”이때 온지유가 가방을 들고 나왔다.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자 웃으며 물었다.“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었던 거예요?”두 사람은 온지유를 보았다.온지유는 심각해진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둘 다 표정이 왜 심각해요?”인명진은 바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저녁은 뭐 먹을래요?”온지유는 그를 빤히 보았다.“왠지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는 것 같네요. 얼굴에 혈색이 하나도 없잖아요. 안 되겠어요, 좋은 거 먹으러 가요. 오늘 저녁은 제가 살게요. 민우야, 너도 가자. 내가 살게!”나민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그래.”온지유는 통 크게 두 사람을 데리고 고급 레스토랑으로 왔다.“두 사람한테만 먼저 말해주는 건데, 전 지금 그냥 방송국 직원이
레스토랑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영문도 모른 채 요리를 즐기고 있던 온지유와 달리 나민우와 인명진은 상황을 빠르게 감지했다.“지유야, 불이 났나 봐. 여기서 빨리 나가야겠어.”나민우가 말했다.“뭐?”온지유는 놀라서 그들과 함께 급히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레스토랑은 1층이었기에 불이 나도 곧바로 뛰쳐나갈 수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레스토랑 안은 텅 비었다.손님들은 모두 밖에 서서 대체 어디에 불이 난 건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사장만이 아직 안에 남아 있었다.모두가 밖에서 한참 동안 기다려도 연기 한 줌 없는 데다 불이 난 것 같은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손님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정말 화재가 난 게 맞아?”“경보가 울렸으니, 분명 불이 난 거겠죠!”“봐요, 물도 뿌려지고 있어요!”레스토랑 안에 설치된 방화 시스템이 작동해서 물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여러 사람들이 수군대는 가운데 사장이 나와서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방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갑자기 경보가 울린 것 같습니다. 불편을 끼쳐 정말 죄송합니다!”그러고는 손님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잠시 후 여기 계시는 모두에게 서비스를 준비해 드릴 테니 이번 실수는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손님들은 허탈하게 웃으며 한숨을 돌렸다.“화재가 아니라니 다행이네. 그래도 안전이 제일 중요하지.”손님들은 큰 문제로 삼지 않았다.이윽고 대부분이 다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하지만 레스토랑 내부는 이미 전기가 나가서 어두워져 있었다.더 이상 편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온지유는 이 상황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왜 갑자기 방화 장치가 고장 난 걸까? 아무 일도 없는 데에 경보가 울리는 것도 이상한데. 더 나아가 스프링클러까지 작동하다니?그녀는 자신의 테이블 위 음식들이 전부 한강으로 변해버린 것을 보았다.“배 불렀어?”나민우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듯
“큰일 났다, 사모님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온지유가 그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본 두 사람은 곧바로 주방 안으로 몸을 피했다.“어떻게 된 겁니까?”옆에 있던 성재민이 물었다.“사모님께 들킨 것 아닙니까?”“말도 안 돼!”용경호는 즉시 부정했다.“특수 부대 출신인 우리가 들킬 리 없잖아.”“하지만 사모님은 분명히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성재민과 용경호는 몸을 낮추어 걸었다.“일단 숨자.”두 사람은 구석진 곳에 몸을 숨겼다.“절대 들키면 안 돼. 사모님이 가면 그때 나가자.”온지유는 그들의 방화 장치를 확인하러 갔다.장치에 구멍이 난 모습을 본 온지유는 깜짝 놀랐다.형태를 보아하니 누군가가 일부러 부순 게 분명했다.주인이 급히 설명했다.“아... 아마도 직원이 실수로 부딪혀서 경보가 울린 것 같습니다.”“무슨 직원이 그렇게 힘이 세요?”온지유가 물었다.“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나요?”주인은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아니요. 이번이 처음입니다.”온지유는 커다랗게 뚫린 구멍을 보고 곧바로 눈치를 챘다.“그 천하장사인 직원분도 참 운이 없었나 보네요. 부딪칠 곳도 많은데 하필이면 이 방화 장치에 부딪히고 말이에요”온지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수상한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이 사고 때문에 주방의 요리사들도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갔나?”테이블 밑에 숨은 둘은 장애물에 가려져 발만 보였다.주방에는 불도 꺼져 있어서 더욱이 잘 보이지 않았다.혹시나 몰라 둘은 사방을 찬찬히 둘러봤다.“아직 계실 것 같습니다.”성재민이 말했다.“서두르면 안 됩니다. 사모님이 돌아가신 걸 확실히 확인하고 나서 나가야 합니다.”“알고 있어.”용경호가 대답했다.그러나...용경호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어쩐지 엉덩이가 축축해진 것 같아 비위가 상해 말했다.“성재민 너 미쳤어? 지금 뭐 하는 거야?”성재민이 말했다.“미친 건 제가 아니라 전우님입니다!”용경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너 진짜
용경호는 성재민을 노려보며 말했다."친형제라 생각하고 그렇게 많이 챙겨 줬는데, 그런 날 배신 해?"성재민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저만 배신 했습니까!"용경호는 어쩔 수 없이 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사모님,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로 한 거예요.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다 제 잘못이에요."온지유는 냉정하게 말했다."전 아무리 봐도 일부러 그런 것 같은데요.""말도 안 됩니다.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용경호가 변명했다."저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군인입니다!"그러면서 자세를 바로 하고 경례까지 했다."그러면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거예요?"온지유는 굳은 얼굴로 물었다.용경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성재민을 끌어당기며 말했다."밥 먹으러요!"성재민도 바로 맞장구쳤다."맞습니다. 밥 먹으러 온 겁니다!"온지유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그렇게 크지도 않은 레스토랑인데 조금 전까지 두 분을 못 봤네요. 설마 식사 하다가 갑자기 주방으로 들어가서 남의 물건을 망가뜨리기까지 한 거예요?"온지유는 진지해졌다."지금 남의 장사에 피해를 주는 거잖아요."그 말에 둘은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이현 씨가 나를 따라다니라고 시킨 거예요?"온지유는 계속해서 물었다."그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대요?""그건..."두 사람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지금 어디에 있는데요?""대장님은 여기 없습니다."용경호가 대답했다."저희는 그저 부인을 보호하러 온 겁니다."온지유는 그 말에 어이가 없어 냉소했다"보호는 무슨, 말썽만 피우지 않으면 다행이지."두 사람은 다시 침묵했다."저랑 이현 씨는 이미 이혼한 사이예요. 제게 무슨 보호가 더 필요하다는 거예요?"온지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무슨 장난을 치는 건데요? 사람들한테 이혼한 전처까지 신경 써주는 성인군자라고 알리고 싶은 거래요? 현 부인도 허락한 거고?"온지유는 여이현이 곁에 없으니 말을 아끼지 않았다."당장 내 앞으로 데려오세요
2층으로 올라간 온지유는 방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여이현은 분명히 그 안에 있을 것이다.온지유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차가운 표정으로 문을 열어젖혔다."이현 씨, 비겁하게 굴지 말고 당당하게 나와서 이야기 해요!"온지유는 문 앞에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이현을 발견 했다.그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수많은 술병이 널려 있었다.손에는 아직 마시다 남은 술병이 들려 있었다.하루 종일 술을 마신 듯했다.온지유는 여이현을 어떻게 윽박지를지 이미 다 생각 해두고 있었다.오늘이야말로 차마 들을 수 없을 정도의 독설을 퍼부어 그의 자존심을 완전히 무너뜨릴 생각이었다.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술에 취해 비굴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그를 보고 온지유는 더 이상 독한 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여이현은 이미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온지유는 의아했다. 왜 이렇게까지 술을 마신 것일까?그는 노승아와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지 않았던가?그는 온지유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았던가?온지유는 처참히 농락당했고 여이현은 충분히 만족하였을 텐데.분명히 기뻐해야 할 텐데, 왜 그는 이토록 슬퍼 보이는 걸까?지금의 여이현은 온지유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그의 무력함, 좌절감, 그리고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온지유는 주먹을 꽉 쥐었다.복잡해진 마음에 그와 싸우려던 생각도 사라져 방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돌아서려는 순간 뒤에서 아주 미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유야..."쉰 목소리로 낮게 부르는 소리였다.온지유는 돌아서려는 마음이 없었다."지유야..."발걸음을 떼려 했지만 여이현은 계속해서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온지유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그를 돌아보았다.여이현은 옆으로 몸을 일으켜 눈을 반쯤 뜬 채 그녀를 보고 있었고, 그녀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고 있었다.온지유의 감정은 더욱 복잡해졌다.온지유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이건... 꿈일까?"여이현은 온지유가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모르지만 온지유의 마음에도 슬픔이 깃들었다.여이현은 그녀의 품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고요한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하지만 묻지 않아도 이미 답은 알 것 같았다.결국 온지유는 소리 없이 자리를 떠났다.이번에는 처음과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더욱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사모님."용경호가 문 앞에서 말없이 서 있는 온지유를 보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대장님이랑 싸우신 건 아니죠? 두 분 다 괜찮으시죠?"성재민은 용경호의 옷을 잡아당기며 말을 줄이라는 눈치를 주었다.표정을 보니 아마 화해는 하지 못하고 끝난 것 같았다.온지유는 고개를 들고 용경호를 한 번 바라본 후 말했다."이현 씨를 잘 부탁드려요."그렇게 말한 뒤 온지유는 대문을 나섰다.용경호는 함께할 수 없는 두 사람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운명의 장난이었다.아파트에 돌아오자, 인명진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어떻게 됐어요?"인명진이 물었다."별일 없었죠?"온지유는 인명진을 바라보며 물었다."이현 씨를 알고 계셨어요?"갑작스러운 질문에 인명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갑자기 그건 왜요?"온지유는 이어서 말했다."제가 기절했을 때 인명진 씨가 곁에 있던 게 우연은 아니겠죠? 이현 씨가 보낸 건 아니에요?"여이현의 이런 이상한 행동들을 온지유가 전혀 모를 리가 없었다.오늘만 봐도 온지유는 여이현이 뭔가 사정이 있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것을 알면서도 온지유는 화가 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여이현은 온지유와 함께 그 일을 짊어지지 않으려 했었고, 그런 그와 함께하는 것은 이미 의미가 없었다.온지유는 그에게 매달려 이혼을 막을 생각도 없었다.온지유가 필요할 때 인명진은 바로 나타났고, 이는 여이현의 지시가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인명진은 숨기지 않고 그저 웃으며 말했다."지유 씨는 못 속이겠네요."온지유는 말했다."그 사람 말은 듣지 마세요. 당신은 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