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우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자료를 뒤지며 ‘네로’ 라는 조직에 대해 알아내려고 했다.그들과 어떻게 접촉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기회를 잡아 해독제를 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나민우는 밤새 자료를 찾았다.네로는 매우 신비롭고 철저했다. 그들은 감시를 피하고자 주로 근처 다른 국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당시 잡힌 사람 중 일부는 심지어 언어도 통하지 않았다.보아하니 이 나라 사람도 아닌 듯했다.그때, 문이 열리고 나민우의 어머니 최정숙이 들어왔다."민우야, 뭐 하고 있어? 방은 왜 이렇게 어지러운 거야?""자료를 찾고 있어요.""어떤 자료길래? 밤샌 건 아니지?"최정숙이 부드럽게 말했다."너 요즘 일 때문에 바쁘잖니. 제대로 쉬지도 않고 어떻게 버틴다고 그래. 신영이도 곧 올 텐데 일단 그만하고 좀 쉬어."그녀는 나민우를 소파에 눕히려 했다.지친 아들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엄마, 전 괜찮아요."나민우는 최정숙의 손길을 거절하며 말했다."아직 더 찾아봐야 해요."최정숙은 그가 보고 있는 자료들을 보고 말했다."어머나 이게 다 뭐야? 일하는 줄 알았더니 범죄 조직에 대한 자료네. 경찰이라도 할 생각이야?""누군가의 생명이 걸린 일이에요.""난 내 아들의 목숨이 더 중요해."최정숙은 단호하게 말했다."무슨 이유든 먼저 네 몸을 돌봐야지. 요즘 너 많이 수척해졌잖니!"나민우는 뭔가 떠오른 듯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전에 신영이가 어디 쪽 출신이라고 하셨죠?"나민우가 송신영에게 관심을 보이자 최정숙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이제야 신영이가 신경 쓰이는 거야? 신영이 아버지가 Y국 사람이셔. 혼혈이라서 아주 예쁘잖니. 너랑도 잘 어울려!"나민우는 다시 자료를 보며 무엇인가 일치하는 점을 발견했다.Y국 사람은 약을 제조하고 독을 만드는 데 능숙했다.혹시 관련이 있을까?"신영이는 언제 와요?"나민우가 계속해서 물었다."곧 올 거야. 이미 연락했거든. 내가 끓인 죽이 먹고 싶다더라."최정숙은 아들이
송신영은 나민우가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들어 본 적은 있는데. 왜 그래?"나민우는 계속해서 물었다."Y국 사람들이 만든 독에는 해독제가 있어?"송신영은 그가 계속 이상한 질문을 하자 의아해하면서도 차분하게 대답했다."미안, 잘 모르겠어. 아빠가 Y국 사람인 건 맞지만 난 그쪽에 대해 잘 몰라. 꽤 무서운 곳이라고는 들었어. 아직 귀족과 평민으로 사람들을 구분한다더라고."송신영은 신문에 나온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이런 사람들은 우리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피부는 검은색이잖아. 이 사람들은 지위가 아주 낮아. 우리 아빠는 귀족이어서 외국에서도 생활할 수 있지만."나민우는 이 나라에 대해 잘 몰랐다.가난하고 낙후하며 지금도 왕정을 보유하고 있었다.그곳에 가본 적은 더욱 없었고 그들의 문명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나민우는 결심을 했다.직접 그곳에 가서 방법을 찾아내겠다는 생각이었다.송신영은 경고했다."거기는 위험한 곳이야. 사람들 교육 수준도 낮고. 많은 외국인이 호기심에 여행을 갔다가 실종됐어. 잡아먹혀도 모를 거야. 절대 가면 안 돼. 너무 위험해!"보통은 다들 선진국에 여행을 간다. 하지만 나민우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자 송신영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나민우는 가야 했다.Y국과 네로 조직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Y국 사람들은 약을 짓는 데 능숙했다.그것이 그가 해독제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나민우는 인명진에게도 의견을 구했다.그가 자신보다 더 많은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인명진은 그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단지 국경 근처에서 지낸 적이 있을 뿐이었다.그러나 인명진은 나민우에게 Y국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국경을 벗어나면 미지의 세계가 될 것이다.문명화된 국가에서는 모든 것이 이성적으로 해결될 수 있지만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얼마나 두려운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여이현은 깨어난 후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이렇게 심한 두통은 처음이었다
여이현은 이마를 짚었다. 통증 때문에 그들의 말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어젯밤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꿈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만약 온지유가 정말 다녀갔다면 적어도 그녀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하지만 더 이상 이런 모습으로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나가 있어."여이현이 말했다."네!"두 사람은 서둘러 방을 나갔다.그러나 나간 지 10분도 되지 않아 용경호가 문 앞에서 보고했다."대장님, 노승아 아가씨가 오셨습니다!"여이현은 간단히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었다.그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래도 여이현은 불쾌한 기분을 억누르고 말했다."아래층에서 기다리라 해."노승아의 기분은 꽤 좋아 보였다.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의 역을 따냈기 때문이다.무려 여주인공 역할이었다.그녀에게는 큰 기회였다.이 드라마가 성공하면 노승아는 연예계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그런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 여이현을 찾아온 것이었다.20분 뒤, 노승아는 여이현이 계단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그녀는 즉시 달려가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오빠!"그러나 여이현의 시선은 그녀에게 머물지 않았다."무슨 일이야?"그의 냉담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승아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여이현이 자신을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나 무려 ‘요골’ 의 여주인공 자리를 따냈어요!"노승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무 대단하지 않아요? 이 드라마로 반드시 대성할 거예요. 그럼 나도 당당히 오빠 곁에 서 있을 수 있을 거예요. 이현 오빠,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다 오빠랑 함께하기 위해서라고요!"노승아는 자신이 이 모든 일을 여이현을 위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그러나 여이현은 무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되든 나와는 상관없어."노승아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그렇게 말하면 어떡해요. 전부 다 오빠를 위해서 한 건데!"여이현은 노승아를 바라봤다.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노승아는 온지유가 어떻게 망신을 당하는지 지켜볼 생각이었다.기자 일이나 잘하고 있어야 할 온지유가 갑자기 드라마에 투자하다니. 처참히 망하고 빈털터리가 될 게 뻔했다.이것이 바로 최근의 노승아가 가장 기대하는 순간이었다.여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 속에는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이 있었다.문 앞에 주차된 차 안에 둘은 나란히 앉았다.노승아가 기대 오기도 전에 여이현이 입을 열었다."이미 소식도 다 퍼뜨렸는데 결혼은 언제 할 거야? 그리고 해독제는 언제 줄 수 있지?"노승아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너무 서두르지 마요. 요즘엔 드라마 촬영 때문에 시간이 없거든요. 게다가 온지유는 당장 죽진 않을 거예요. 나도 죽게 놔두지 않을 거고. 고통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인명진이 곁에 있으니 크게 아프지는 않겠죠. 건강하게 살아남을 거라 약속할게요."여이현은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그 말대로 이루어지길 바래야지."노승아는 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온지유의 목숨을 걸고 있는 것 같겠지만 사실 난 이현 오빠를 걸고 있는 거예요. 내가 신뢰를 깨트리면 나 자신을 불구덩이에 던지는 것과 같잖아요. 그렇게 바보이지는 않아요. 나는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될 거예요. 그걸 이뤄줄 수 사람은 오빠뿐이고요."노승아는 머리를 여이현의 어깨에 기대며 함께하는 이 순간을 즐겼다.이런 순간을 얼마나 바라 왔던가.오랜 시간 끝에 마침내 이루어졌다.결국 원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해야 얻을 수 있는 법이다.촬영장에 도착하고 노승아는 차에서 내렸다."지유 씨 빨리요! 이러다 늦겠어요!"온지유는 공아영과 함께 차를 타고 왔다. 속도가 느린 데다 교통 체증까지 겹쳐 이미 5분이나 지각했다."알고 있어요!"온지유는 큰 가방을 메고 공아영의 뒤를 따랐다.마침 그들은 여이현과 노승아와 같은 시간에 도착했다.온지유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편안한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에는 검은색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최근 그녀
"저희 쪽은 인원수도 많고, 배틀 씬도 있어서 완전히 통제하긴 힘들어요! 미안해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공중에서 소란스럽게 날아다니고 있었다."이미 저희 구역으로 들어왔잖아요!"공아영은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이쪽은 현대 배경을 촬영하는 곳이에요. 공중에서 사람이 날아다니는 게 말이 돼요? 그쪽 카메라맨은 겹치는 게 신경도 안 쓰인대요?""저흰 저희 구역 안에서 잘 촬영하고 있어요. 부딪힌 건 당신들이 이쪽 구역에 들어와서인 건 아니고요?"하늘에서 날아다니던 배우가 대꾸했다.“뭐라고요!"공아영은 상대방이 일부러 그런 것임을 눈치 채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상대 배우는 비웃으며 한 번 쓱 쳐다보고는 낮게 중얼거렸다."뭘 찍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그쪽이 투자한 돈은 우리 쪽 예산의 일부에도 못 미치잖아요. 뭐 그렇게 큰소리를 치고 있는지. 촬영장을 자기 집 안방으로 착각한 건 아니죠?""당신!"공아영은 너무 화가 나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지선율은 공아영을 말리며 상대 배우에게 경고했다."예산이 적고, 인기도 없을지 몰라도 저흰 촬영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어요. 존중해 주세요!"하지만 상대 배우는 끝까지 비웃으며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너무 화 나요. 이건 저희를 괴롭히고 있는 거잖아요!"공아영이 말했다.지선율은 차분하게 말했다."아영 씨, 이런 일은 자주 있어요. 조금만 참으세요. 이번 장면만 촬영 끝내면 여기서 더 이상 감정 소모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 모두 열심히 해봐요!"유명한 감독이 아닌 그들은 이런 대우를 받아도 그저 참아야 했다.하지만 촬영 도중에도 상대 배우는 계속 와이어에 매달려 방해를 해 촬영은 계속해서 실패했다.벌써 열 번 넘게 컷을 내렸다.온지유는 상대 배우가 일부러 방해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옆에 있던 배우에게 말했다."테니스를 치는 장면이 있었죠? 우리 먼저 그 장면부터 찍어요."배우는 곧바로 그 뜻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공아영의 말은 노승아의 귀까지 들어갔다.물론 노승아는 그 말이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노승아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온지유에게 지고 싶지 않아 비로 촬영팀 사람들에게 말했다."저와 대표님이 여러분께 추가로 음식을 대접할게요.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시키세요. 제가 살게요!""와, 이런 데서 상상 밖의 대접을 받네요!"촬영팀 사람들은 당연히 기뻐했다."감사합니다 승아 씨, 대표님! 역시 여 대표님의 부인이 되실 분답게 아주 통이 크시네요!"그 말에 노승아의 허영심은 충분히 채워졌다.노승아는 만족스러웠다.그리고 대표의 부인이라는 타이틀을 더욱 확실히 다지기 위해 모두에게 말했다."여러분 모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배불리 먹어야 힘이 나죠. 저와 대표님의 바람은 그저 드라마가 대박 나는 것뿐이에요!""대박 나자!"모두가 잔을 들어 올렸다.노승아의 비서는 바쁘게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체크하고 있었다.공아영은 노승아가 여이현의 부인 행세를 하는 모습을 보며 코웃음 쳤다.아직 되지도 않은 일로 이미 으스대고 있는 것이 가식적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온지유가 왜 여이현과 이혼했는지. 그리고 여이현은 왜 노승아와 함께하고 있는지.모두 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공아영은 온지유를 대신해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온지유와의 결혼은 공식적으로 알리지도 않았었는데 노승아와는 공개적으로 사귀고 있다니.온지유의 감정을 완전히 짓밟는 것 아닌가?생각할수록 공아영은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여이현에 대한 호감도 떨어졌다.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쪽의 상황을 의식하고 있었다.노승아와 여이현이 함께 다정하게 있는 모습은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사랑스러운 커플로 비쳤다.온지유는 손의 힘을 풀며 패배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나민우에게 말했다."이거 너무 맛있다. 빨리 먹어봐."온지유는 한 조각의 간식을 집어 나민우의 입가로 가져갔다.나민우는 한
"제가 한 말이 어때서요?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온지유는 노승아에게 말했다."단순히 긁힌 것뿐인데 아무것도 아닌 게 맞죠."노승아는 대답했다."그래도 난 마음이 아픈걸요."그녀는 구급상자를 꺼내서 여이현의 상처를 치료해 주려고 했다.그러나 여이현은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필요 없어."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며칠이면 나을 거야.""안 돼요."노승아는 고집을 부리며 말했다."그래도 처치는 해야죠. 내 말 들어요. 상처가 감염되면 어떡해요."온지유는 계속해서 말했다."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지 그래요.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니까요. 이러다 밤에 잠을 못 잘지도 모르잖아요."여이현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이 모든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온지유는 더 이상 그들과 엮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공아영은 노승아의 행동이 가식적이라고 자주 불평했다. 온지유에게도 여러 번 노승아의 가식적인 모습을 얘기 해주곤 했다.온지유는 그녀의 가식적이고 연약한 모습이 사람들에게 잘 먹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런 모습 덕분에 결국 노승아는 다시 여이현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온지유는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씻고 나왔다.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으나 문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막고 있었다.온지유가 반응할 새도 없이, 상대방은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다시 잠갔다.온지유는 여이현의 모습을 보고 놀란 듯 말했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여자 화장실이에요 여기!"그러나 여이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화장실 문을 잠갔다.온지유는 여이현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는 다시 조용해졌다.잠시 후, 여이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내 집에 왔었지?"온지유는 눈을 내리며 대답했다."그렇다면 뭘 어쩔 건데요?"여이현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그날 밤 혹시 내가 무슨 말을 했었나?"그날 밤의 대화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온지유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술 취한 사람의 말은 믿을 게 안되죠.""더 할 말 없으면 나갈게요."온지유는 밖으로
나민우는 미소를 지으며 온지유를 바라보았다."일종의 신념 같은 거겠지.""안 가면 안 돼?"온지유는 나민우를 걱정했다.나민우는 말했다."무슨 일이 있든 꼭 가야 해. 걱정하지 마. 나도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람인데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거야."그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분명 위험이 따르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굳이 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걸까.온지유는 그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한 번 안아 봐도 될까?"나민우가 말했다."한동안 보지 못할 거 같아서."온지유는 왜 못 하겠냐는 듯 두 팔을 벌렸다.나민우는 신사적인 태도로 온지유의 등을 살짝 안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온지유가 말했다."위험하다니까 걱정 되잖아.""그렇게 말해주는걸로 충분해."나민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에겐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그들은 한참을 안고 있다가 마침내 떨어졌다.나민우는 예전처럼 온지유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온지유는 이번 작별로 평생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민우야!"나민우가 떠나기 전에 온지유는 그를 불렀다.나민우는 차창을 내리고 온지유를 바라보았다."빨리 돌아와야 해."온지유가 당부했다.나민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온지유의 시야 속에서 사라졌다.온지유는 마음속에서 불안감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한참 동안 밖에 머물다가 온지유는 천천히 몸을 돌려 들어갔다.며칠 동안 온지유는 촬영에만 집중했다.작은 규모의 드라마는 큰 인기를 끌지 않았고 대중적인 노선도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루머나 소문도 거의 없었다.반면 노승아의 드라마는 상황이 달랐다.원작의 인기와 여이현과의 연애 소문 덕분에 매일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점점 그들 사이의 팬덤도 형성되었고 여이현이 다른 여자에게 청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빠르게 잊혀졌다.인터넷의 정보는 빠르게 갱신되었고, 사람들은 점
하지만 감동보다는 오히려 속이 울렁거렸다.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에 문지원은 당장 얼굴이 일그러지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지석훈도 뒤따라 들어오며 물었다.“속이 안 좋아?”“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요즘 세 끼 식사도 꽤 규칙적으로 하고 날것 이거나 차갑거나 매운 음식도 먹지 않았는데...”문지원은 배를 움켜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지석훈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한 듯 방으로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가져왔다.문지원은 놀라며 물었다.“언제 산 거예요?”지석훈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문지원은 아무 말이 없었다.5분 후, 그녀는 복잡한 얼굴로 다시 나왔다. 한 손은 여전히 배 위에 올려져 있었고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정말 임신한 것이다!그녀와 지석훈이 결혼한 지 겨우 3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이렇게 빨리 임신하다니.지석훈은 오히려 태연해 보였다. 하지만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를 보면 그 역시 겉모습처럼 평온하지 않고 흥분을 억누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정말 임신한 거예요?”문지원은 아직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번 달 초에 생리가 끝났기 때문이다.“아마 생리가 끝난 후 며칠 사이일 거야.”지석훈의 목소리는 문지원에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니 그녀의 귀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결국, 그녀는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임신 테스트기는 가끔 틀릴 수도 있으니 이런 일은 직접 검사를 받아보고 확인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녀는 손에 든 검사지를 보고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의사는 마침 지석훈과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축하합니다, 지 원장님. 부인께서 임신 2주 차입니다.”“감사합니다.”지석훈은 침착하게 그녀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병원 진료실을 막 나오자마자 지석훈은 문지원을 품에 안았다.“너무 좋아. 우리 아이가 생겼어.”문지원은 남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을 보며 멍하
물론 손에 있는 일을 무턱대고 모두 남에게 맡기는 것은 너무 과한 부담을 주는 일이다.문지원은 비서를 사무실로 불렀다.“올해 25살이죠?”비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나이는 모두가 다 아는데 문지원 회장이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혹시 소개팅을 시켜주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비서는 고마웠지만 거절하며 말했다.“문 사장님, 저는 아직 젊어서 당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전 당신더러 결혼하라고 하는게 아니에요.”문지원은 펜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그냥 평소에 잡다한 일들을 맡기고 싶어서요.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은 평소에 굳이 내게 제출하지 않아도 돼요.”비서는 그 뜻을 이해했다.이건 곧 그녀에게 승진과 급여 인상을 주려는 것이다. 문지원이 그녀의 의견을 확인한 후 급여를 조금 올려줬고 비서에게 몇 명의 적합한 인재를 추가로 모집해서 예비 인력으로 두라고 지시했다.“평소에 내가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때마다 보고하면 돼요.”비서는 한숨을 쉬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녀 혼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일정이 정리되자 문지원은 업무에서 상당 부분 해방되었다.예전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되어도 일이 끝나지 않고 긴급 통지가 오면 또 회의를 위해 야근을 해야 했다.이제는 오후 4시 반쯤이면 일을 마치고 퇴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비서가 몇 명을 더 찾아서 양성해 두었기에 업무가 적절히 분배되어 모두 바빠 죽을 정도가 아니라 적당히 딱 맞는 분량을 처리할 수 있었다.그 덕에 문지원은 지석훈과 함께 결혼 후의 삶을 더욱 즐길 수 있게 되었다.지석훈도 이에 매우 만족해했다.“널 주려고 선물을 챙겨왔어. 들어가서 한번 봐.”그가 집 문 앞에 다가서더니 걸음을 멈췄다.문지원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안은 어두컴컴했다.“뭐 숨겨놨어요? 아직 불도 켜지 않았네요, 수상하게.”탁! 하며 불이 켜지자 거실의 모든
문지원은 이 주제가 다소 위험하다고 느꼈다. 비록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배석훈이 결혼한 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돼지고기를 먹어보지 않았다고 해도 돼지가 뛰어다니 것을 본 적은 있을 것이다. 문지원은 그러면서도 반쯤 빚어놓은 만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이에 지석훈의 어머니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너희들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아이를 가져야지. 평소에 좀 더 노력해야 한단다.”문지원은 잔소리를 듣고 나서 나오니 기운이 다 빠져있었다.시어머니는 문지원에게 정말 잘해주었다. 거의 마음을 쏟아붓는 수준이었다. 비록 문지원의 집안 사정이 좋은 것을 알면서도 혼수 때 오랜 세월 모은 돈으로 집 한 채를 사서 선물해 주었다. 사실 지석훈도 자기 집이 있었지만, 시어머니는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다. “너희 집도 너희의 것이지만, 이건 내가 어른으로서 선물하는 거란다.”게다가 그 집에는 문지원의 이름도 함께 올려져 있었다.그래서 시어머니의 출산 독촉에도 문지원은 어쩔 수 없이 버텨야만 했다. 다행히도 시어머니는 어린 이들에게 엄격하게 구는 편은 아니었다. 만두를 빚을 때 한 번 그런 말을 했고 또 떠나면서도 지석훈을 불러 몇 마디 잔소리했다. 문지원은 그 모자간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돌아가는 길에 문지원은 약간 궁금해져 지석훈에게 물었다.“나갈 때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셨어요?”“정말 알고 싶어?”“네.”그러자 지석훈은 문지원의 머리를 숙이게 한 후 그녀의 흩어진 머리칼을 살며시 넘겨주며 귀 옆에서 낮게 속삭였다.“우리 아이를 빨리 낳으라고 하셨어.”남자의 낮고 진한 목소리는 얼굴을 붉히고 심장을 뛰게 만드는 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해 문지원의 귀가 금세 붉어지고 말았다.저녁이 되자 지석훈은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문지원의 머리를 받치고 이마를 맞대며 낮은 숨소리를 내쉬었다. 문지원은 마치 파도 속에 잠긴 것
그 눈빛 속에서 조용히 터져 나오는 그 소유욕. 마치 옛 시대의 군벌과 그의 부인 같았다. 그리고 사진작가는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운 없는 사람이 되어 몰래 촬영을 하고 있었다. 사진작가는 자신의 상상에 자극받아 목소리가 떨렸다.“지석훈 씨,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봐주세요.”지석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진작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진작가는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그 후에도 그들은 여러 세트의 사진을 찍었고 찍은 사진들은 모두 문지원에게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문지원은 모든 사진에 다 만족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민국 시대 주제의 사진이었다.“대략 며칠 안에 나오나요?” 그녀가 물었다.사진작가는 답했다.“빠르면 이삼 일정도 걸릴 겁니다. 그때 완성된 사진들을 택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인 부탁이 하나 있는데 혹시 두 분께서 응해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바로 아까 찍은 사진 중 몇 장이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어서 사진관 벽에 걸어두고 싶습니다.”문지원은 사진관에 들어올 때 봤던 사진 벽이 생각났다.“그 벽에 걸어두시겠다는 건가요?”“네.”사진작가는 그 벽은 사진관의 특별한 기념 및 홍보 방법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잘 나온 사진들은 사진 주인에게 동의를 구한 뒤 동의하면 벽에 전시한다고 한다..문지원은 옆에 있던 지석훈을 바라봤다. “저는 괜찮은데, 당신은요?” 지석훈도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마음대로 하도록 해.”며칠 후 문지원은 사진작가가 보내온 사진을 받아 소중히 간직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그 사진관 벽에 전시된 사진들이 곧 사람들의 눈에 띄어 사진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간 것이다.잘생긴 남성과 아름다운 여인의 조합과 최상의 촬영 기술 덕분에 순식간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네티즌들은 저마다 아아 소리를 냈고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마치 옛 시대의 군벌 부인 같다.”“완전 대박이다.”“3분 안에 그들의 모든 정보를 알고 싶다.” 하지만 이 모
문지원은 약간 마음이 움직였다.하지만 웨딩 촬영은 이미 여러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섬에서 몇 세트 찍었고 그 후 결혼식 현장에서 또 몇 세트 찍어 셀 수 없을 정도였다.게다가 이번 촬영은 개인 예약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사진관이 꽤 유명하다고 들었다.물론 사진관 이름에 걸맞게 예약은 거의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이 정도면 지석훈이 얼마나 큰 노력을 들여 예약을 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웨딩사진만 찍는 데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하지만 문지원 역시 이런 곳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기에 무엇을 찍어야 할지 몰랐다.“한번 보세요. 이건 저희가 예전부터 선보였던 스타일들이에요.”사진작가는 친절하게 앨범 한 권을 꺼내 보였다.앨범에는 이전 고객들이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담겨 있었는데 정말 다양한 스타일이 있었고 모두 아름다웠다.이 사진관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정말 최고였다.문지원은 그중에서도 민국 시대 주제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이렇게 찍을 수 있을까요?”사진작가는 그녀가 가리키는 사진을 한 번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됩니다. 먼저 메이크업하고 옷을 갈아입으세요. 직원들이 촬영 스튜디오를 설치할게요.”옷은 사진관에서 준비한 것으로 하고 지석훈의 요구에 따라 전부 새 옷이었다.사실 문지원은 소품용 옷을 입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쨌든 한 번 입었다가 나중에 벗으면 되는 거고 몸에 달라붙지 않아서 안에 옷을 받쳐 입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지석훈은 직업병이 발동했고 그런 건 용납할 수 없었다.결국, 문지원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급히 새 옷을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원래 걸리던 시간에서 15분이 더 추가되었고 메이크업 등 기타 과정도 진행해야 했다.문지원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이미 2시간이 지난 후였다.그러나 결과는 확실했다.곧은 치파오가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쌌고 문지원은 옷자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 마치 지난 옛 시대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결혼 후 문지원은 휴가를 내서 신혼여행을 갈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요즘 지석훈이 거의 계속 병원에 머무르며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을 떠올리며 본의 아니게 한숨이 나왔다. 비록 이미 익숙해졌긴 했지만 실망을 감추기는 어려웠다.비서도 그녀에게 물었다.“문 사장님, 신혼여행 가고 싶지 않으세요? 제 동창 중 한 명이 며칠 전에 결혼했는데 요즘 여기저기서 신혼여행 정보를 알아보며 준비 중이에요. 신혼여행이 없는 결혼은 반은 실패한 거랑 마찬가지라고 하더라고요.”그 말을 들은 문지원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제대로 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비서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했다.“그렇지 않으면... 문 사장님, 지 의사님이 일하시는 곳에 한 번 가보시는 건 어떠세요?”그녀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어쨌든 문지원은 요즘 정신이 산만하여 업무에 집중할 기색도 없었다.문지원은 비서의 시선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요 며칠 동안 집에 돌아와도 지석훈을 보지 못해 한참 혼란스러워했던 자신을 깨달으며 약간 부끄러워졌다.“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기획서 한 부 복사해 가져다주세요.”점심 무렵, 문지원은 막 일을 끝내고 밥 먹으러 가려던 찰나, 핸드폰에 지석훈의 메시지가 떴다. 같이 밥을 먹자는 메시지에 문지원은 미소를 지었다. 멀리서 이 장면을 본 직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웃음을 터뜨렸다.문지원은 재빨리 열쇠를 챙기고 회사를 떠났다. 지석훈은 그녀를 새로 오픈한 가게로 데려갔다.식사를 마친 후 문지원은 지석훈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다가 물었다.“병원에 다시 돌아갈 거예요?”“응?”지석훈은 눈썹을 치켜들며 고의적으로 물었다. “내가 돌아가길 바라는 거야?”그 말을 들은 문지원은 순간 당황했다. 사실 그녀는 지석훈이 자신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길 바랐는데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임에도 불구하고 각자 업무에만 매달려 밤에야 겨우 함께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그녀는 그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지석훈은
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지석훈은 항상 선을 지켰지만 오늘 밤엔 조금 달랐다. 그는 그녀를 침실에서 욕실로 다시 침대로 옮겨가며 몸 곳곳에 뜨거운 입맞춤을 했다.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문지원은 여전히 몸속 깊이 스며든 감각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그리고 그녀는 예상대로 휴가를 냈고 이틀이 지나서야 회사에 다시 나왔다.회사 사람들은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문지원이 출근하자 하나같이 말했다.“문 사장님, 결혼 축하드려요.’문지원은 무려 사흘이나 결근했지만 다들 그 사흘 동안 무얼 했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짐작이 갔다.분명 부부 생활이 아주 좋았겠지, 아니었으면 일까지 내팽개치고 안 나왔을 리가 없다.문지원은 직원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얼굴을 들 수도 없어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지난번에 당한 적이 있었던 터라 문지원은 이제 출근 전에 거울 앞에서 꼼꼼히 점검했다.몸에 키스 자국이 드러나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회사를 향했다.그렇지 않았다면 그 흔적들을 들켰을 경우 정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문지원이 예상치 못했던 건 며칠 지나지 않아 결혼을 축하하는 선물이 회사로 배달됐다는 것이다.문지원은 처음에 여울이 보낸 거라고 생각했지만, 물어보니 아니었다.택배 상자의 외관을 살펴봐도 발신자가 적혀 있지 않아 더욱 수상했다.“이거 가져온 사람이 누가 보낸 건지 말했어요?”문지원이 로비 직원에게 물었다.로비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두고 바로 가버렸어요.”문지원은 뭔가 직감적으로 찜찜한 마음이 들어 그 택배를 챙겼고 사무실에 들어와서야 상자를 열었다.그 안에는 브로치 하나와 축하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문지원은 축하 카드를 집어 들어보니 카드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결혼 축하해요.”글씨체는 아주 정갈하고 예뻐 여성의 필체 같았다.그녀는 곧바로 짐작이 갔다.문지원은 그 브로치를 지석훈에게 보여주자 그는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아무 말 없이 브로치
여울은 아직 최주하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최주하도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문지원이 알기로 여울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고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몰랐다.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 일에 깊이 관여하는 것도 괜히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게다가 얼마 전 지석훈이 슬쩍 귀띔하듯 말했다.“며칠 전에 여울 씨가 병원에 재검진받으러 왔는데 주하가 데리고 왔었어.”그 말을 듣고 문지원은 혀를 끌끌 찼다.평소에 말도 없고 조용하던 여울이 은근히 비밀 많은 타입이었던 모양이었다.그렇게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어느덧 다음 달 중순이 되었다.지석훈은 아예 와인 농장을 통째로 빌려 며칠에 걸쳐 그곳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놓았다.결혼식을 올릴 장소는 바로 거기였다.그 와인 농장은 웬만한 호텔 못지않게 컸고 내부에는 수년간 숙성된 고급 와인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고 결혼식 날 손님들이 오면 바로 꺼내어 대접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들은 결혼 소식을 널리 알리진 않았다.이건 문지원이 원한 방식이었다.그녀는 온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는 그런 결혼식보다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만 초대해서 조용히 축하받는 걸 선호했다.행복은 굳이 남들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까.그런데 결혼식이 한창일 때 지석훈이 무대 위에서 다시 한번 프러포즈했다.해변에서 했던 프러포즈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진중한 분위기였다.“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지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서... 예전엔 내가 사랑인 줄도 모르고 놓쳐버렸던 순간이 많아. 이제는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앞으로 남은 인생... 너랑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그의 말이 끝나자 하객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문지원은 무대 위에서 입을 손으로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식이 끝날 무렵, 문지원은 멀리서 검은색 카이엔 SUV가 그녀의 친구 여울을 데리러 오는 걸 보았다.차창이 천천히 내려가자 예상대로 그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최주하였다
문지원은 문득 자신이 계획에 철저히 걸려들었다는 생각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처음부터 계획한 거죠?”“응.”지석훈은 미소 지으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사실, 그는 그녀를 향한 마음을 오래전부터 숨겨온 것이었다....해변에서의 프러포즈 이후 문지원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손가락에 반짝이는 반지가 생겼다는 점이었다.이 반지는 지석훈이 특별히 맞춤 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우연히 그의 휴대폰을 보다가 두 달 전에 이미 주문이 들어가 있었다는 구매 기록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접한 지석훈의 부모님은 곧바로 혼인신고부터 하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지원은 우연히 지석훈의 어머니가 그를 붙잡고 타이르는 말을 듣게 되었다.“네 아빠랑 난 애초에 너한테 기대도 안 했어. 하루가 멀다고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니 너 같은 애한테 누가 시집오겠나 싶었거든. 그런데 다행히 네가 능력 있어서 지원이 같은 좋은 아이를 데려왔으니 얼른 확실히 붙잡아야지. 빨리 혼인신고부터 해. 나중에 그 아이가 너 버리고 떠나버리면 그땐 어디 가서 울어도 소용없어!”문지원은 그 대화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그런데 신기한 건 지석훈이 워낙 점잖고 진지한 사람이어서 집안 분위기도 매우 조용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퇴직해 한가로운 성격으로 매일 독서나 산책을 즐기는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는 커리어 우먼이었고 호탕한 성격으로 남편에게 엄격하면서도 친화력이 강한 사람이었다.두 분 모두 차분한 듯하면서도 내면에 장난기를 숨기고 있는 아들을 낳을 것 같진 않았는데 이게 바로 유전자의 신비인가 싶었다.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그녀를 좋아해 주는 모습에 문지원도 안심했다. 확실히 시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한편 문지원의 아버지는 지석훈과 따로 대화를 나눈 이후부터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몰라도 그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