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 말이 어때서요?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온지유는 노승아에게 말했다."단순히 긁힌 것뿐인데 아무것도 아닌 게 맞죠."노승아는 대답했다."그래도 난 마음이 아픈걸요."그녀는 구급상자를 꺼내서 여이현의 상처를 치료해 주려고 했다.그러나 여이현은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필요 없어."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며칠이면 나을 거야.""안 돼요."노승아는 고집을 부리며 말했다."그래도 처치는 해야죠. 내 말 들어요. 상처가 감염되면 어떡해요."온지유는 계속해서 말했다."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지 그래요.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니까요. 이러다 밤에 잠을 못 잘지도 모르잖아요."여이현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이 모든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온지유는 더 이상 그들과 엮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공아영은 노승아의 행동이 가식적이라고 자주 불평했다. 온지유에게도 여러 번 노승아의 가식적인 모습을 얘기 해주곤 했다.온지유는 그녀의 가식적이고 연약한 모습이 사람들에게 잘 먹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런 모습 덕분에 결국 노승아는 다시 여이현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온지유는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씻고 나왔다.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으나 문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막고 있었다.온지유가 반응할 새도 없이, 상대방은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다시 잠갔다.온지유는 여이현의 모습을 보고 놀란 듯 말했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여자 화장실이에요 여기!"그러나 여이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화장실 문을 잠갔다.온지유는 여이현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는 다시 조용해졌다.잠시 후, 여이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내 집에 왔었지?"온지유는 눈을 내리며 대답했다."그렇다면 뭘 어쩔 건데요?"여이현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그날 밤 혹시 내가 무슨 말을 했었나?"그날 밤의 대화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온지유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술 취한 사람의 말은 믿을 게 안되죠.""더 할 말 없으면 나갈게요."온지유는 밖으로
나민우는 미소를 지으며 온지유를 바라보았다."일종의 신념 같은 거겠지.""안 가면 안 돼?"온지유는 나민우를 걱정했다.나민우는 말했다."무슨 일이 있든 꼭 가야 해. 걱정하지 마. 나도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람인데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거야."그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분명 위험이 따르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굳이 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걸까.온지유는 그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한 번 안아 봐도 될까?"나민우가 말했다."한동안 보지 못할 거 같아서."온지유는 왜 못 하겠냐는 듯 두 팔을 벌렸다.나민우는 신사적인 태도로 온지유의 등을 살짝 안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온지유가 말했다."위험하다니까 걱정 되잖아.""그렇게 말해주는걸로 충분해."나민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에겐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그들은 한참을 안고 있다가 마침내 떨어졌다.나민우는 예전처럼 온지유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온지유는 이번 작별로 평생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민우야!"나민우가 떠나기 전에 온지유는 그를 불렀다.나민우는 차창을 내리고 온지유를 바라보았다."빨리 돌아와야 해."온지유가 당부했다.나민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온지유의 시야 속에서 사라졌다.온지유는 마음속에서 불안감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한참 동안 밖에 머물다가 온지유는 천천히 몸을 돌려 들어갔다.며칠 동안 온지유는 촬영에만 집중했다.작은 규모의 드라마는 큰 인기를 끌지 않았고 대중적인 노선도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루머나 소문도 거의 없었다.반면 노승아의 드라마는 상황이 달랐다.원작의 인기와 여이현과의 연애 소문 덕분에 매일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점점 그들 사이의 팬덤도 형성되었고 여이현이 다른 여자에게 청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빠르게 잊혀졌다.인터넷의 정보는 빠르게 갱신되었고, 사람들은 점
그 말은 온지유를 꽤 놀라게 했다."감독이라니요? 전 그런 거 전혀 몰라요!"온지유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그러나 지선율은 말했다."너무 겸손하신 거 아니에요? 매일 이렇게 분주하게 다니며 연기를 보고 조언도 해주고. 본인은 대충 아는 것 같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굉장히 통찰력 있어요. 타고난 재능일지도 몰라요.""과찬이세요."온지유는 지선율이 농담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처음에는 그저 이 드라마가 반드시 흥행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시작했다.장다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그 덕분에 자신도 이득을 볼 수 있길 바랐다.이때 옆에서 쉬고 있던 장다희가 물을 마시며 온지유에게 말했다."지유 씨가 이 드라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알아요. 결국 이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기회잖아요. 관심만 있다면 지선율 씨의 말을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지유 씨 커리어에도 중요한 부분이니까요."사실 지금의 온지유는 방황하는 단계에 있었다.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기자로서 일을 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세울 기회였고, 드라마에 투자하는 건 그저 우연한 계기였다.온지유는 모든 생각을 일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느샌가 열정은 잃어버린 것 같았다.온지유는 말했다."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그때 마침 외부에서 소란이 일어났다."내 아들을 대체 어디로 숨겼어요? 납치한 거 아니에요? 벌써 2주째 집에 안 들어왔어요!""여사님, 여기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보안 요원이 밖에서 막고 있었다."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건 뭔가 수상한 게 있어서죠! 민우 오빠가 여기서 사라졌다고요!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송신영이 소리쳤다.온지유는 밖에서 나민우의 이름이 들리자 즉시 상황을 깨달았다."들여보내세요."최정숙과 송신영이 나민우를 찾기 위해 다급하게 찾아온 것이었다.온지유는 말했다."민우 씨는 여기 없어요."최정숙은 온지유를 바라보
최정숙은 이 말을 듣고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아주머니!”송신영은 급히 최정숙을 부축했다.“Y국?”온지유가 물었다.“Y국은 대체 어디인데요?”송신영은 온지유를 짜증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사람을 죽이는 데에도 망설임이 없는 위험한 곳이요! 민우는 왜 갑자기 그런 곳에 가겠다고 한건지. 이상한 질문이나 하고. 설마 당신이 민우를 부추긴 거 아니에요?”온지유는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대체 무슨 이상한 질문을 했는데요?”송신영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나한테 Y국에 대해 묻고, 그곳에서 약을 만들고 독을 제조하는지를 물었어요. 나는 그저 다 말해줬죠.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아무 말도 안 했을 텐데! 정말 가버릴줄이야. 호기심 때문일 줄 알았는데. 왜 그런 위험한 곳에 가려고 한 거래요?”온지유의 마음이 가라앉았다.약을 만들고 독을 제조한다고?이게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온지유는 너무 긴장되어 어지러움을 느꼈다. 다행히 공아영이 그녀를 부축했다.이들은 분명히 온지유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최정숙은 울음을 터뜨렸다.“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 그 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난 어떻게 살라고!”“괜찮을 거예요, 아주머니. 아버지께서 찾으러 가실 거예요. 민우는 반드시 무사할 거예요.”송신영이 그녀를 달랬다.온지유는 최근 일어난 일들이 너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나민우 뿐만이 아니었다.밤이 되면 이상해지는 인명진과, 심지어 여이현도 전과 달랐다.“집에 좀 다녀와야겠어요.”온지유는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일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바랐다.“아영 씨, 저 좀 데려다줄래요?”공아영은 온지유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걱정하며 말했다.“당연하죠.”온지유는 서둘러 인명진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진실을 말해줄지도 모른다.“못 가요!”송신영은 온지유를 막아서며 말했다.“민우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당신이에요. 민우가 당신에게 출국한다고 말했다면 당연히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겠죠!”“몰라요.”
인명진의 눈빛이 복잡해졌다가 이내 어두워졌다."율아...""말해줘요."온지유는 그의 소매를 꽉 붙잡으며 불안하게 물었다."내 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거예요? 나민우는 약을 구하러 간 거예요?""율아..."인명진의 목소리는 점점 자신 없어졌다.그는 숨기고 싶었다. 온지유가 나아질 때까지는 말하지 않으려 했다.온지유가 아무 걱정 없이 지냈으면 했건만 결국 알아채고 말았다.온지유는 그의 태도에서 답을 얻은 듯 보였다.그녀는 인명진의 소매를 놓았다.눈가가 붉어지고 입술 끝에 쓴웃음이 피었다."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거구나. 항상 힘이 없었고. 몸에 문제가 생긴 거였어. 그래서 인명진 씨가 내 곁에 있었던 거고, 그래서..."혼잣말을 하는 온지유의 목소리가 떨렸다."그래서 이현 씨도 날 버린 거구나. 내 몸에 문제가 생긴 게 진짜 이유였어.""그런 말 하지 마요."인명진의 눈에는 죄책감이 스쳐 지나갔다. 손을 들어 온지유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손을 멈추고 다시 내렸다."지유 씨는 괜찮아질 거예요. 내가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죽는다고요?"온지유는 인명진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렇게 심각한 거예요? 난 어떻게 되는 거에요? 솔직히 말해줘요."인명진은 손을 뒤로 숨기며 말했다."아직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요. 병이 본격적으로 발작하기 전에 반드시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예요."온지유는 다시 물었다."최악의 상황이 오면 죽게 되는 거예요?"인명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제가 죽게 두지 않을 거예요."그의 가장 확고한 대답이었다.그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온지유는 죽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온지유는 미소를 지었다."절 위로하려고 거짓말 하지 마요. 왜 여태 말하지 않은 거예요?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거예요? 진작에 말했으면 민우를 막았을 텐데.""지유 씨는 막을 수 없어요. 민우 씨도 지유 씨가 살아남기를 바랐으니까."인명진이 말했다.온지유는 답답했다."왜 이렇게까지 해
인명진의 시선도 함께 문 쪽으로 향했다.그는 천천히 다가가 문을 열었다.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홍혜주였다.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괜찮아?”그리고 방 안에 온지유가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홍혜주는 잠시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지유는 홍혜주를 보고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방금 전에 자신이 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홍혜주가 나타났으니, 그전까지 느꼈던 연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이제 남은 건 분노와 억울함뿐이었다.“당신이었군요.”온지유가 다가가며 말했다.홍혜주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랜만이네요.”온지유는 물었다.“당신이 바로 내 몸에 독을 주입한 거죠?”홍혜주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고 다시 침묵을 선택했다.홍혜주에게도 이 일은 매우 복잡했다.인명진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속의 갈등은 사라질 수 없었다.온지유는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고 느꼈다.“왜 이런 짓을 한 거예요? 나를 죽이고 싶었다면 차라리 절벽에서 확 밀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더 깔끔했잖아요. 내게 살 희망을 줘버려서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버렸잖아요!”온지유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율아, 너무 흥분하지 마.”인명진은 그녀의 감정이 격해지자 서둘러 달래려고 했다.온지유는 그와 홍혜주 사이를 오가며 시선을 돌렸다.홍혜주가 입을 열었다.“그 약이 독이라는 걸 몰랐어요. 그건 흉터남이 준비한 거예요. 난 단지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에요.”“임무 수행?”온지유는 비웃으며 말했다.“정말 가볍게 들리네요.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거죠? 저랑 당신 사이에는 원한도 없잖아요.”홍혜주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서로 입장이 다를 뿐이었다.“나도 어쩔 수 없었어요.”홍혜주는 겨우 입을 떼며 말했다.“우리 모두 어쩔 수 없었어요.
인명진의 회색빛 눈동자가 홍혜주를 응시했다. 그녀의 눈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인명진은 홍혜주의 손을 떼며 말했다."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홍혜주는 눈을 붉히며 히스테릭하게 외쳤다."정말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미친 거야?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남았는데. 왜 고작 한 사람을 위해 죽으려고 해. 나도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해왔는데. 흉터남 앞에서 너 대신 얼마나 많은 상처를 감당했는지 알아? 넌 날 위해서라도 참아야 해. 난 네 파트너야. 날 버리면 안 돼!"인명진은 힘없이 손을 내리며 담담하게 말했다."난 한 번도 그렇게 해달라고 한 적 없어. 이건 내 문제야.""인명진!"홍혜주는 그의 손을 다시 잡아끌며 소리쳤다."너 정말 살고 싶지 않은 거야?"인명진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미 말했잖아. 이제와서 죽는 게 뭐가 무섭다고 그래."홍혜주는 그의 손을 놓고 몇 걸음 물러서며 실망스럽게 말했다."네가 이렇게 미쳐 있을 줄 알았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온지유를 죽여야 했어!"그 말에 인명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차갑게 말했다."아직도 그런 말이 나와?"홍혜주는 비통하게 웃었다."너도 알잖아. 난 너밖에 없어. 겨우 하나 남은 동료인데 넌 지금 날 떠나려고 해. 난 당장 가서 그 여자를 죽일 거야!"홍혜주는 문 쪽으로 향했다.그러나, 한 손이 그녀의 목을 단단히 감싸 쥐었다.홍혜주는 질식할 것처럼 숨이 막혀 눈을 크게 뜨고 살기 가득한 인명진의 눈을 바라보았다."네가 감히?"온지유를 위해서라면 그는 자신의 목숨조차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깨달았다.홍혜주는 웃고 싶었다.그녀는 인명진 마음속의 자신의 자리를 너무 과대평가했다.홍혜주는 다시 버려진 것 같았다.그녀는 이런 기분을 싫어했다. 견딜 수 없었다.살아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차라리 인명진의 손에 죽는 것이 혼자 외롭게 남겨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너무 춥고, 외로웠다.홍혜주가 저항하지 않자 인명진은 그녀의 목
"헛소리하지 마."홍혜주의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흘렀지만 더 이상 인명진을 위한 눈물이 아니었다.이번에는 그녀 자신을 위한 눈물이었다."정말이야."홍혜주는 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나에겐 가족도 친구도 없잖아. 죽으면 쓰레기처럼 버려질 거야."인명진은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야."홍혜주는 눈을 감았다. 마음속 깊은 슬픔을 떨쳐낼 수 없었다.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달랐다.다른 아이들은 부모가 있었지만 그녀는 없었다.그녀에게는 오직 살인뿐이었다.사람들은 말했다. 친부모가 150만 원에 그녀를 팔아넘겼다고.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그녀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였다.부모는 아들을 원했고, 딸은 원하지 않았기에 아무런 주저 없이 그녀를 팔아넘긴 것이다.기억을 되찾은 이후엔 훈련과 살인, 그리고 도둑질밖에 배운 것이 없었다.그녀의 어린 시절은 매질과 냉혈한으로만 가득 찬 시간이었다.팔려 온 이후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권리는 없었다.그녀는 살인 기계로 전락했다.이런 걸 알면서도 그 수렁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뛰어들지 않으면 죽을 테니까.그녀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렇다면 범죄 조직에 팔려 가 어둠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는 않았을 테니까.그녀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그녀의 인생은 그렇게 허락되지 않았다.홍혜주는 자신이 한 번이라도 온전하게 자신의 삶을 산 적이 있는지 생각했다.아마도 아니었다.그저 살아남기 위해 애써 왔을 뿐이다.흉터남이 말했듯이 그녀의 목숨은 싸구려였다.부모도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그녀를 사랑해 주겠는가?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인명진만이 유일하게 그녀가 살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다.때때로 홍혜주는 인명진이 부러웠다.그는 자신의 개성도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녀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고 착하게 자란 윤별은 초등학교에 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으며 여이현도 매우 기뻐했다.하지만 윤별은 항상 외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고 심지어 작은 빨간 꽃을 만들어 외할아버지가 있던 방에 붙여놨다.온지유는 윤별의 행동을 눈치채고 바로 다가가서 위로해 주며 말했다.“별아, 너무 슬퍼하지 마. 외할아버지는 지금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셔서 우리를 보고 계실 꺼야. 그리고 내년이면 외숙모 집에서 별이 남동생과 여동생도 태어날 거야.”“그런데요 엄마, 외할아버지께서 제가 1학년이 되어 글자를 배우면 공부를 가르쳐 주신다고 약속했어요. 그리고 외할아버지께서 또...”윤별은 말하다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전에 윤별이가 브람을 따라갔을 때 브람은 매우 엄하게 대했지만, 온경준이 경성에 데려다 키우는 동안은 윤별에게 끝없는 사랑을 주면서 모든 것을 만족시켜 주었다.그리고 윤별의 몸이 허약하니 온경준은 옆에서 정성껏 보살펴 주었고 쓴 약도 잘 먹게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달래여 먹이면서 많은 추억을 쌓아 주었다.그때 윤별은 온경준에게 물었었다.“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온경준의 집은 Y 국이었고 윤별의 말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해 주었다.“별이랑 엄마가 어디에 있으면 할아버지 집은 거기에 있는 거야. 할아버지는 예전에 많은 잘못을 했고 그렇게 되어 너희 엄마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었어. 이제 겨우 같이 살게 되였는데 할아버지가 어찌 Y 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겠어? 게다가 이쪽에 오래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온경준은 그때 윤별이랑 함께 많은 수공예도 했고 병아리도 기르고 꽃을 심고 풀도 심었지만, 지금은 반 친구들 외에 하민 동생이 놀러 오고 평소에 윤별은 항상 혼자였다.온지유는 윤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외할아버지는 그저 우리보다 먼저 다른 세계로 가신 거야.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사명이라는 걸 가지고 와. 그리하여 사람은 언젠가 죽을 것이고 앞으로 때가
여이현이 추천해 주겠다는 의사는 인명진이었다.인명진의 능력은 상당히 좋았다.당시 그와 지석훈이 하민에게 수술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하민은 지금처럼 이렇게 빨리 낫지 않았을 것이다.“난 병이 없거든.”나도현이 자신의 심병을 인정하지 않자 여이현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지난 4년 동안 치료해 온 걸 아니까 너의 이런 심리는 이해는 할 수 있어. 근데 넌 배 비서가 말했듯이 양시은 씨의 우수함을 부정하면 안 돼. 그녀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도 있을 텐데 네 옆에만 가둬 두고 있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게다가 네가 뭐 사랑을 강제로 시키는 대표도 아니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 사소한 일로 다투지 마.”나도현은 여이현의 말을 다 알아들었지만 자신의 답답하고 복잡한 이 심정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그는 양시은이 모두에게 존중받는 것도 원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앞에서만 이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마시다 보니 나도현은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양시은은 오늘 저녁에야 출장에서 돌아왔고 여이현이 만취한 나도현을 데려온 것을 보고 그녀는 갑자기 마음이 아팠다.“여이현 씨, 저의 남편 데려다줘서 고마워요.”“별말씀을요. 둘이 잘 소통해 봐요.”여이현의 한마디에 양시은은 바로 눈치채고 나도현이 열일곱 살 난 아이 같아 유치하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양시은은 도우미를 불러 나도현을 위층으로 옮기고 침대에 눕혀 신발을 벗기고 넥타이를 풀어줬다.금방 출장 다녀온 탓에 힘들었지만 인내성 있게 나도현을 돌보았고 혹시라도 토할까봐 곁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그런데 뜻밖에도 나도현은 갑자기 양시은을 품에 안더니 그녀에게 입을 맞추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양시은, 나 정말 널 너무 사랑해. 그래서 또 잃을까 봐 두려워.”“너의 마음을 나도 다 알고 있어.”“니가 너무 우수해서 다른 사람들이 눈여겨볼까 봐 겁이 나, 그리고...”양시은은 그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바보야, 너는 내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남자이고
‘말로는 못 하지만 행동으로는 가능한 거니까, 진짜 임신 되였다면 양시은이 지우지는 않을 거잖아?’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던 나도현은 진짜 행동으로 옮기려 했지만, 뜻밖에도 양시은이 출장을 가게 되어 그는 매우 우울했고 회사에서도 정신을 다른 곳에만 두고 있었다.차준기는 하루 종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나도현이 걱정되어 물었다.“대표님, 안되면 제가 부인님한테 연락해 회사로 나오시라고 할까요?”차준기는 양시은이 비서직을 그만두고 본인의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부터 매일 혼이 나간 사람처럼 지내는 나도현을 보고 분명 그녀를 그리워하는 행동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출장 갔는데 어떻게 불러.”나도현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니면 대표님이 갑자기 어디 아프시다고 할까요?”차준기의 건의는 좋은 방법이 맞지만 문제는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가 자주 아프다고 밖에 소문이라도 나면 안 좋을 것 같았고 게다가 나진 그룹에는 나도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됐어, 그 방법은 안 통해.”“그럼...”차준기가 머리를 짜내면서 나도현을 위해 방법을 찾고 있었지만 나도현 본인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짜증 내며 말했다.“됐어, 이제 나가봐. 내가 혼자서 생각해 볼게.”하지만 나도현 혼자서는 절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그때 갑자기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각난 나도현은 여이현과 당시 온지유는 매일 함께 있었으니 그는 틀림없이 많은 방법을 가르쳐줄 거라 믿고 즉시 전화를 걸어 팀을 만들려고 했다.그들 팀은 합치면 제갈량을 능가할 정도였다.지석훈과 최주하는 일이 있다고 하면서 지금까지도 일을 처리 못 하여 오지 않았고 여이현과 그의 비서 배진호만 왔다.그들은 나도현의 우거지상을 보자 배진호가 먼저 조롱하면서 입을 열었다.“나 대표님께서 지금 무슨 걱정이 있으시겠습니까. 들어보니 양시은 씨도 이제 자신의 노력으로 사업을 더욱 잘하고 계신다던데 더 이상 바랄 것이 있나요?”나도현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말해줘 봐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그 뒤로 양시은의 노력과 함께 그녀는 점점 더 바빠졌고 아침 일찍 나가면 저녁 늦게까지 일하다 보니 결국 나도현과의 시간이 자주 어긋나 한집에 있으면서도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다.헤어져 있었던 시간이 있다 보니 나도현은 양시은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각별히 신경 쓰고 소중히 여겼다.하여 양시은의 바쁜 일상을 나도현은 원치 않았고 그녀를 가로막으며 물었다.“양시은, 난 그래도 전에 집, 회사, 가족 모두 잘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넌 나랑 아들만 집에 두고 일만 하네? 이젠 우리도 널 만나려면 예약하고 만나야 하는 거 아니야?”양시은은 나도현이 이런 말까지 할 줄은 몰라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난 단지 최근에 좀 바빴을 뿐이야. 이 시기가 지나면 매일 너랑 함께 있을 수 있는거잖아.”양시은은 나도현의 발걸음을 맞추려고 재빨리 걸었다.이렇게 해야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엔 항상 나도현에게 의지만 했던 양시은이 아닌 어깨를 나란히 걷고 있는 부인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나도현은 불만 있는 어조로 말했다.“한번 이런 일이 생기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겠지. 내가 일을 못 해본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거야?”나도현의 말에 양시은은 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나도현, 내가 언제 얼렁뚱땅 넘어갔다고 그래? 전에는 나보고 열심히 일하라고 해놓고 지금은 내가 바빠지니 또 그게 싫은 거야? 마음이 바뀐 거야?”나도현은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양시은은 그의 침묵이 바로 인정이라고 생각되었다.이 순간, 나도현은 어머니가 그들에게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우라던 말이 머리를 스쳐지나가자 바로 양시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양시은, 한 나이라도 젊을 때 우리 아이 몇 명 더 낳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바쁘게 나도현은 바로 양시은의 허리를 껴안고 그녀를 들어 올려 안았다.양시은은 나도현의 품에서 허우적대며 말했다.“나도현, 너 미친 거 아니야? 너 저번에 나한테 아이는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협박으로 인해 현장에는 의견이 있어도 감히 먼저 나서서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이 연회를 빌어 나도현은 양시은이 자신의 아내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뜻밖에도 그와 여이현의 스캔들로 마무리가 되dj 여이현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이현아, 미안해. 사람들이 우리 사이를 이 정도로 생각할 거라 생각 못 했어.”“괜찮아. 전에도 이런 일들이 많았잖아. 이런 사소한 일로 내가 화를 내면 나중에 더 큰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할 거야. 그냥 잘 지내면 돼, 그럼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지 않을 거야.”여이현은 그 사람들을 무대 위에 세워놓고 위협하고 당사자들한테 사과하게 할뿐더러 다른 계획까지 세우고 나성원을 시켜 사적으로 헛소문을 퍼뜨렸던 사람들을 다시 찾게 했다.연회가 끝나고 여이현이랑 함께 나온 온지유는 그를 조롱하며 말했다.“너랑 나도현 사이에 부적절한 스캔들은 한두 번이 아니잖아? 그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이젠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있는 사람들인데 너희 둘을 그렇게 생각하다니.”“여론을 만드는 사람들 따로 있나 봐. 이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어. 남들은 몰라도 넌 잘 알잖아.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지 여자를 좋아하는지, 너의 발언권이 제일 효력 있는 거 아니야?”여이현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온지유는 그런 여이현의 뜻을 알아채고 즉시 여이현을 노려보며 말했다.“나이가 몇인데 유치하게 아직도 그런 말이 나와?”여이현은 웃으며 말했다.“내 아내하고 말하는데 또 뭐가 어때서? 근데 나 지금 급하게 할 일이 생겼어, 우리 빨리 집에 가야 돼.”“갑자기 무슨 급한 일인데?”온지유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나도현이 애가 한 명이라 지금 둘째도 계획하고 있을 거란 말이야. 그럼 나도 빨리 움직여 걔보다 앞서야지, 안 그래?”여이현은 온지유의 귀에 대고 속삭여 말했다.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여이현의 가슴을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전에 누가 나한테 다시는
양시은은 그런 나도현을 꼭 안아주며 말했다.“나도 알아, 너의 마음도 다 이해해. 이젠 내가 옆에 있잖아.”“그래, 영원히 내 옆에 있어 줘.”나도현은 중얼거리며 반복해 말했다.4년 동안의 헤어짐은 항상 나도현을 불안에 떨게 했고 매일 먼저 눈을 뜨면 양시은이 곁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나도현은 시도 때도 없이 항상 양시은을 곁에 두고 싶었고 그녀가 더 우수해지기를 원했으며 물론 어머니가 말씀하신 네 명의 아이까지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다.그 뒤로 나도현은 여이현의 명성을 빌어 연회를 열었고 경성의 부권 사람들이 다 오게끔 하여 자신에게 양시은 같은 훌륭한 아내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했다.연회를 여는 일에는 아무런 막힘이 없었고 친구로서 여이현도 당연히 참석했지만, 나도현은 그날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의혹만 받았다.“변호사 직업을 버리고 대표 자리를 차지하더니, 이제 그것도 모자라 가업을 논하고 있어요? 근데 옆에 있는 아내라는 분은 비서 아니에요?”“다들 잊었어요? 여대표님의 아내도 비서였었잖아요.”“저 두 사람 진짜 사랑하는 사이 맞아요?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결혼하고 이건 그냥 여대표님의 사랑 이야기를 전부 복사하는 거 아니에요?”“그러니까요. 나도현은 모든 걸 여이현을 따라 하는 듯해요. 이렇게 여이현의 관심을 끌려는 거잖아요. 너무 무서운 사람이네요.”한가하게 앉아 헛소문을 토론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던 나도현은 어이가 없어 한마디 하려 했지만 한발 빠른 여이현이 먼저 나서며 나성원을 불러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들을 전부 끄집어 데려오라고 하고 그들을 앞에 세우고 말했다.“당신들 잘 들어요. 저랑 나도현은 형제 같은 친구이고 우리의 감정 경력을 보면 당신들은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전혀 다르거든요. 저는 처음에 온지유가 저 사람인 줄 모르고 만났고 그 뒤로 오 년 동안 헤어졌지만, 지금은 다시 만나 애도 낳고 살고 있어요. 하지만 나도현은 완전 어머님의
임다혜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몰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나 대표님이라면... 나도현의 아버지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나도현?’나도현이 임다혜를 약혼녀로 받아들이기 싫어 그녀에게 손을 쓴 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일일 텐데 이렇게 쉽게 풀어주는 것이 이해가 안 된 임다혜는 확인하고 싶어서 되물었다.“어느 나 대표님을 말씀하시는 거죠?”눈앞의 남자는 그녀의 물음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당신이 건드린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서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틀림없이 나도현일 거로 생각한 임다혜는 그가 왜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그를 찾아갔다.그때 나도현과 양시은은 서로 웃고 떠들며 사랑을 나누고 있었고 멀리서 다가오는 임다혜를 보자 양시은이 먼저 앞에 나섰다.변화된 양시은의 모습을 본 임다혜는 이제 겨우 얼마나 지났다고 사람이 이 정도로 개변되였을가라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당신이 나도현 씨한테 절 풀어주라고 한 거예요?”임다혜는 나도현이 어떤 원한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갚는 사람이고 이미 결정한 일이면 쉽게 사람을 풀어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 틀림없이 양시은의 뜻일 거로 생각했다.“저랑 나도현은 지금 너무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임다혜 씨를 풀어주지 않으면 그냥 행인일 뿐인 사람을 우리가 여전히 신경 쓰고 있다는 것밖에 안 되기에 그렇게 한 거예요.”갑자기 훅 들어온 행인이란 단어가 임다혜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임다혜는 그렇게 오랫동안 나도현을 쫓아다니면서 사랑했지만, 나도현은 한 번도 그녀를 돌아본 적 없었고 이제 와보니 결국 혼자 마음고생한 것이었다.“이런 말을 해주셔서 고마워요. 양시은 씨,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임다혜는 목이 메여 말도 잘하지 못했다.양시은이 아니었으면 임다혜는 아직도 갇혀 있었을 것이니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었다.“당신 가족도 더 이상 피해 볼 일 없을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는 자신의 사업을 잘 이어가
대신 일을 해줄 사람이 넘쳐나는데 뭐하러 본인이 고생하냐는 식으로 말하는 박은희에 나도현은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어머니, 시은이 몸 상태도 고려해주셔야죠. 시은이가 최근 4년간 하민이를 위해서 밤낮없이 일만 해온 거 어머니도 잘 아시잖아요. 저랑 같이 살게 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또 덜컥 아이를 가져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도 여자니까 임신과 출산의 고생을 누구보다도 잘 아실 거 아니에요.”나도현의 그 한마디에 박은희도 할 말이 없었다.나도현은 박은희가 조금 망설이는 것 같아 냉큼 말을 이어갔다.“만약 하민이가 혼자라서 외롭다고 하면 당연히 둘째든 셋째든 낳을 테니까 그 점은 시름 놓으세요. 하지만 시은이와 저의 계획을 물으신다면 그건 그냥 순리에 맡기고 싶어요.”“알겠어, 그럼 너희 뜻대로 해.”박은희는 나도현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더 밀어붙였다간 양시은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일까 봐 더 말하지 않기로 했다.그제야 박은희는 은근히 걱정됐다.“내가 이렇게 급해 했다고 시은이가 또 오해하진 않겠지?”“그럴리가요. 시은이는 어머니 마음을 이해할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나도현이 박은희의 어깨를 토닥이며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을 때 양시은이 박은희를 향해 걸어왔다.양시은이 자신에게 미소를 짓는 것을 보자 박은희는 그제야 무겁게 가라앉았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박은희는 나도현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넌 시은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바람을 좀 쐬고 들어와. 회사 일은 절대 걱정하지 말고 둘만의 시간을 좀 보내. 네가 그랬잖니, 그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고. 그러니까 이제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현재를 즐겨.”“알겠어요.”나도현은 대답과 함께 양시은에게 다가갔고 둘은 알게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함께 올라갔다.양시은이 단미주와 합작한 프로젝트로 인해 업계의 많은 사람은 양시은을 다시 볼 것이다.양시은은 그 결과에 대해
하민은 박은희와 함께 지낸 지 3년이나 되었고 이 집에서 제일 친한 사람이었다.하지만 하민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했다.그래서 양시은과 나도현은 퇴근하는 대로 집으로 돌아와 하민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가끔 학부모의 참여가 필요한 활동은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하지만 너희들도 보다시피 하민이도 나를 잘 따르고 나도 시연이 널 도와서 아이를 잘 돌봐주잖니. 지금 너랑 도현이도 시간이 있고 하민이도 학교에 다니니까 내가 돌봐줄 수 있을 때 딱 둘만 더 낳는 건 어떠니? 그럼 우리 집안도 더 복작거리고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양시은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나도현이 말을 가로챘다.“싫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저랑 시은이는 아직은 하민이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아이 일은 나중에 더 말하는 거로 해요.”나도현은 하민이 한 명에게도 제대로 된 사랑을 못 주고 있는데 둘째까지 낳아버리면 하민이가 원래도 부족했던 사랑을 나눠줘야 할 것처럼 느낄까 봐 걱정됐다.“왜? 너희 둘 중에 누가 아프기라도 한 거야?”박은희는 말은 그렇게 해도 눈길은 이미 나도현에게 향해있었다.양시은은 이미 하민이를 낳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박은희의 시선을 느낀 나도현은 어쩔 수 없이 말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맞아요, 제 몸에 문제가 생겼어요. 최근 4년간 병원에 다니고 있었고 일도 바빠서 제 정자 생존율이 엄청나게 낮아졌어요.”그 말을 들은 박은희가 침착할 리 없었다.박은희는 당장 나용민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당신이 기를 쓰고 도현이에게 회사를 물려주려고 부담을 주니까 도현이 몸이 망가졌잖아요. 지금 당장 회사 업무를 이어받아서 책임지고 도현이 좀 푹 쉬게 해줘요. 국가 정책도 개방된 마당에 애가 하나밖에 없는 게 말이 돼요?”박은희에게는 나도현이 유일했다. 애당초 박은희는 나도현이 양시은과 사귈까 봐 온갖 방법을 다 대며 노력을 했지만 결국 나도현은 그런 박은희의 노력을 무시하듯 박은희의 뜻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