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진의 눈빛이 복잡해졌다가 이내 어두워졌다."율아...""말해줘요."온지유는 그의 소매를 꽉 붙잡으며 불안하게 물었다."내 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거예요? 나민우는 약을 구하러 간 거예요?""율아..."인명진의 목소리는 점점 자신 없어졌다.그는 숨기고 싶었다. 온지유가 나아질 때까지는 말하지 않으려 했다.온지유가 아무 걱정 없이 지냈으면 했건만 결국 알아채고 말았다.온지유는 그의 태도에서 답을 얻은 듯 보였다.그녀는 인명진의 소매를 놓았다.눈가가 붉어지고 입술 끝에 쓴웃음이 피었다."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거구나. 항상 힘이 없었고. 몸에 문제가 생긴 거였어. 그래서 인명진 씨가 내 곁에 있었던 거고, 그래서..."혼잣말을 하는 온지유의 목소리가 떨렸다."그래서 이현 씨도 날 버린 거구나. 내 몸에 문제가 생긴 게 진짜 이유였어.""그런 말 하지 마요."인명진의 눈에는 죄책감이 스쳐 지나갔다. 손을 들어 온지유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손을 멈추고 다시 내렸다."지유 씨는 괜찮아질 거예요. 내가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죽는다고요?"온지유는 인명진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렇게 심각한 거예요? 난 어떻게 되는 거에요? 솔직히 말해줘요."인명진은 손을 뒤로 숨기며 말했다."아직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요. 병이 본격적으로 발작하기 전에 반드시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예요."온지유는 다시 물었다."최악의 상황이 오면 죽게 되는 거예요?"인명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제가 죽게 두지 않을 거예요."그의 가장 확고한 대답이었다.그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온지유는 죽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온지유는 미소를 지었다."절 위로하려고 거짓말 하지 마요. 왜 여태 말하지 않은 거예요?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거예요? 진작에 말했으면 민우를 막았을 텐데.""지유 씨는 막을 수 없어요. 민우 씨도 지유 씨가 살아남기를 바랐으니까."인명진이 말했다.온지유는 답답했다."왜 이렇게까지 해
인명진의 시선도 함께 문 쪽으로 향했다.그는 천천히 다가가 문을 열었다.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홍혜주였다.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괜찮아?”그리고 방 안에 온지유가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홍혜주는 잠시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지유는 홍혜주를 보고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방금 전에 자신이 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홍혜주가 나타났으니, 그전까지 느꼈던 연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이제 남은 건 분노와 억울함뿐이었다.“당신이었군요.”온지유가 다가가며 말했다.홍혜주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랜만이네요.”온지유는 물었다.“당신이 바로 내 몸에 독을 주입한 거죠?”홍혜주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고 다시 침묵을 선택했다.홍혜주에게도 이 일은 매우 복잡했다.인명진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속의 갈등은 사라질 수 없었다.온지유는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고 느꼈다.“왜 이런 짓을 한 거예요? 나를 죽이고 싶었다면 차라리 절벽에서 확 밀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더 깔끔했잖아요. 내게 살 희망을 줘버려서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버렸잖아요!”온지유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율아, 너무 흥분하지 마.”인명진은 그녀의 감정이 격해지자 서둘러 달래려고 했다.온지유는 그와 홍혜주 사이를 오가며 시선을 돌렸다.홍혜주가 입을 열었다.“그 약이 독이라는 걸 몰랐어요. 그건 흉터남이 준비한 거예요. 난 단지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에요.”“임무 수행?”온지유는 비웃으며 말했다.“정말 가볍게 들리네요.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거죠? 저랑 당신 사이에는 원한도 없잖아요.”홍혜주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서로 입장이 다를 뿐이었다.“나도 어쩔 수 없었어요.”홍혜주는 겨우 입을 떼며 말했다.“우리 모두 어쩔 수 없었어요.
인명진의 회색빛 눈동자가 홍혜주를 응시했다. 그녀의 눈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인명진은 홍혜주의 손을 떼며 말했다."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홍혜주는 눈을 붉히며 히스테릭하게 외쳤다."정말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미친 거야?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남았는데. 왜 고작 한 사람을 위해 죽으려고 해. 나도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해왔는데. 흉터남 앞에서 너 대신 얼마나 많은 상처를 감당했는지 알아? 넌 날 위해서라도 참아야 해. 난 네 파트너야. 날 버리면 안 돼!"인명진은 힘없이 손을 내리며 담담하게 말했다."난 한 번도 그렇게 해달라고 한 적 없어. 이건 내 문제야.""인명진!"홍혜주는 그의 손을 다시 잡아끌며 소리쳤다."너 정말 살고 싶지 않은 거야?"인명진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미 말했잖아. 이제와서 죽는 게 뭐가 무섭다고 그래."홍혜주는 그의 손을 놓고 몇 걸음 물러서며 실망스럽게 말했다."네가 이렇게 미쳐 있을 줄 알았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온지유를 죽여야 했어!"그 말에 인명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차갑게 말했다."아직도 그런 말이 나와?"홍혜주는 비통하게 웃었다."너도 알잖아. 난 너밖에 없어. 겨우 하나 남은 동료인데 넌 지금 날 떠나려고 해. 난 당장 가서 그 여자를 죽일 거야!"홍혜주는 문 쪽으로 향했다.그러나, 한 손이 그녀의 목을 단단히 감싸 쥐었다.홍혜주는 질식할 것처럼 숨이 막혀 눈을 크게 뜨고 살기 가득한 인명진의 눈을 바라보았다."네가 감히?"온지유를 위해서라면 그는 자신의 목숨조차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깨달았다.홍혜주는 웃고 싶었다.그녀는 인명진 마음속의 자신의 자리를 너무 과대평가했다.홍혜주는 다시 버려진 것 같았다.그녀는 이런 기분을 싫어했다. 견딜 수 없었다.살아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차라리 인명진의 손에 죽는 것이 혼자 외롭게 남겨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너무 춥고, 외로웠다.홍혜주가 저항하지 않자 인명진은 그녀의 목
"헛소리하지 마."홍혜주의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흘렀지만 더 이상 인명진을 위한 눈물이 아니었다.이번에는 그녀 자신을 위한 눈물이었다."정말이야."홍혜주는 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나에겐 가족도 친구도 없잖아. 죽으면 쓰레기처럼 버려질 거야."인명진은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야."홍혜주는 눈을 감았다. 마음속 깊은 슬픔을 떨쳐낼 수 없었다.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달랐다.다른 아이들은 부모가 있었지만 그녀는 없었다.그녀에게는 오직 살인뿐이었다.사람들은 말했다. 친부모가 150만 원에 그녀를 팔아넘겼다고.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그녀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였다.부모는 아들을 원했고, 딸은 원하지 않았기에 아무런 주저 없이 그녀를 팔아넘긴 것이다.기억을 되찾은 이후엔 훈련과 살인, 그리고 도둑질밖에 배운 것이 없었다.그녀의 어린 시절은 매질과 냉혈한으로만 가득 찬 시간이었다.팔려 온 이후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권리는 없었다.그녀는 살인 기계로 전락했다.이런 걸 알면서도 그 수렁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뛰어들지 않으면 죽을 테니까.그녀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렇다면 범죄 조직에 팔려 가 어둠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는 않았을 테니까.그녀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그녀의 인생은 그렇게 허락되지 않았다.홍혜주는 자신이 한 번이라도 온전하게 자신의 삶을 산 적이 있는지 생각했다.아마도 아니었다.그저 살아남기 위해 애써 왔을 뿐이다.흉터남이 말했듯이 그녀의 목숨은 싸구려였다.부모도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그녀를 사랑해 주겠는가?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인명진만이 유일하게 그녀가 살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다.때때로 홍혜주는 인명진이 부러웠다.그는 자신의 개성도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녀
온통 가식밖에 오가지 않는 접대 자리에서 온지유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소식을 들은 여이현은 바로 손에 든 술잔을 내려놓았다."그래."전화를 끊고 여이현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노숭아는 한창 유명한 감독과 제작자를 만나고 있었다. 모두 그녀가 앞으로 성공의 정점에 오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당연히 노승아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머무르게 해야 했다.이에 여이현이 이미 자리를 떠난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채 마시지 않은 술잔 하나만 남아 있었다.노승아는 마음이 흔들렸지만 중요한 인물들 앞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쿵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폭우가 올 징조였다.곧이어 한 방울의 비가 땅에 떨어졌다.두 방울세 방울...비는 점점 더 거세졌다.여이현이 도착했을 때 온지유는 마치 혼이 나간 듯 허무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여이현은 차에서 내려 비가 오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빠르게 온지유에게로 다가갔다.여이현은 그녀를 확 잡아채며 소리쳤다."여기서 뭐 하고 있어? 비 오는 거 안 보여? 미친 거 아니야?"온지유는 뒤돌아 여이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입고 있는 정장과 꼼꼼하게 정돈된 모습은 마치 중요한 자리에서 막 나온 사람처럼 보였다.온지유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대표님, 오늘도 중요한 자리에 참석하셨나 보네요. 멋지네요!"여이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온지유의 비꼬는 듯한 미소를 보았다.온지유는 그 말만 남기고 다시 고개를 돌려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여이현은 다시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따라 와!"온지유는 그의 손을 힘껏 뿌리치며 말했다."맞아요. 저 정말 미쳤어요.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요!""제발 그만해!"여이현이 무겁게 말했다.온지유는 그를 바라보며 더 씁쓸하게 웃었다."소란도 안 피웠고 말도 고분고분 잘 들었어요. 그래도 난 그저 숨겨진 아내였잖아요. 제게 주어진 건 그것뿐이었잖아요. 하지만 보세요. 결
여이현의 품에 안긴 순간 온지유는 눈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놔요!"온지유는 그를 밀쳐내며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당신의 동정 따위 필요 없어요.""지유야..."여이현은 다른 방법도 없이 그저 온지유의 이름을 불렀다.온지유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계속해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불쌍한 눈으로 날 보지 마세요. 이혼 후의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사람들 모두 데리고 돌아가세요.""내가 널 어떻게 모른 척해."여이현은 앞으로 한발 다가가며 말했다."이 일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오지 마요! 그만하라고!"온지유는 절규하며 소리쳤다."난 당신을 증오해요. 모든 걸 숨기고 날 아무것도 모르게 만들어서 애꿎은 나민우가 위험을 감수하게 했잖아요! 내겐 민우를 막을 기회도 없었어요. 만약 나민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난 평생 당신을 저주할 거야!"여이현의 표정은 복잡해졌다. 그는 물었다."나민우 때문이야? 그래서 나에게 이렇게 화가 난 거야?"온지유는 단호히 말했다."당신이 나민우보다 나은 게 뭐가 있어요? 민우는 나를 위해 목숨을 걸었어요. 당신은요? 내가 가장 힘들 때 날 버리고 다른 사람을 선택했잖아요!""넌 날 그렇게 보고 있었구나."여이현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다.온지유는 입술을 비꼬며 차갑게 말했다."그럼 더 어떻게 봐주는 게 좋겠어요? 돌아 가 노승아랑 잘 지내세요. 내 앞에서 당신은 절대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으니.""여이현 씨, 우리 사이에 기회는 없어요!"온지유는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 여이현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마지막으로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났다.온지유는 그대로 여이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여이현은 마치 땅에 뿌리가 박힌 듯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그의 머릿속에는 온지유의 말들이 메아리쳤고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가슴을 찔렀다.온지유의 말 속에는 온통 나민우가 있었다. 나민우가 위험을 무릅쓰고 해독제를 구하러 떠난 순간부터 그녀의 마음은 점점 나민
노승아를 견제하는 동시에 해독제를 찾아야 했다."하지만 사모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민우만 위험을 감수한 건 아니잖아요. 분명히 대장님도..."용경호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여태 여이현이 한 일들을 온지유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답답한 상황이었다.이 이야기가 나오자 여이현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다."나도 나민우가 그 사실을 알게 될 줄은 몰랐어."더군다나 그가 혼자서 그렇게 위험한 곳으로 갈 줄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성재민이 말했다."지금은 사모님께도 위로가 필요할 겁니다."여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못 봤어? 날 증오한다잖아. 다시 찾아가도 더 불편하게 할 뿐이야."여이현은 젖어버린 외투를 벗고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용경호와 성재민은 그의 뒤를 따르며 그가 느끼는 슬픔과 무력함을 함께 느꼈다.오랜 시간 그와 함께 일했지만 이렇게 낙담한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아무리 강한 남자라도 감정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현실 속 문제를 해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여이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온지유가 그를 원망하고 싫어해도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먼저 해독제를 찾아야 한다!밖에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노승아가 그녀의 BMW를 몰고 안으로 들어왔다.파티가 끝나자마자 노승아는 서둘러 이곳으로 달려왔다.하이힐을 신은 노승아는 안으로 들어섰고 마침 그들이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온몸이 젖은 상태인 걸 보았다.노승아의 얼굴에 즉시 걱정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왜 이 정도로 비를 맞은 거예요? 옷도 안 갈아입고, 다들 뭐 하고 있는 거예요?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요."노승아는 여이현에게 다가와 걱정하며 말을 건넸다.용경호와 성재민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여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승아를 바라보았다. 노승아가 수건을 건네며 닦아주려 하자 여이현은 그녀의 손을 잡고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했다."언제 해독제를 구할 수 있지?"다시
여이현이 말했다."온지유는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그렇게 말하는 걸 보아하니 드디어 두 사람의 감정에 금이 간 걸까?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한 번 금이 가면 복구하기 어려운 법이다.노승아는 마음속으로 약간의 기쁨을 느끼며 말했다."이현 오빠, 나는 언제나 오빠를 필요로 해요. 절대 버리지 않을 거예요. 믿어줘요. 오빠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뿐이에요. 지유 언니가 정말로 사랑했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그렇게 말하며 노승아는 여이현의 품에 기대어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자신이 중독된 것을 알게 된 온지유는 먼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그러나 의사는 그녀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이 독은 병원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일까?온지유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순간에 너무 많은 문제가 그녀 앞에 놓였다.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자신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아이가 태어난 후에 자신이 죽으면 또 어떻게 될까?어쨌든 아이에게 무언가를 남겨줘야 할 텐데.사실 그녀도 죽음이 두려웠다.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해를 입었다는 생각에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도 있었다.그렇게 생각 하면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온지유는 다만 아이가 엄마 없는 세상에 남겨질까 봐 걱정이었다.그녀는 배를 어루만지며 힘든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아기를 지워야 할까?이대로 태어나 고생하는 게 너무 불쌍한 일은 아닐까?자라나서 엄마를 원망하지 않을까? 낳아놓고도 한 번도 엄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을 말이다.생각에 잠긴 온지유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가슴 속이 아려왔다.그녀는 괴로웠다.살면서 이렇게까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온지유는 수술실로 향했다.그 공간에 들어서자 주변은 차갑고 음산했다. 온지유는 이곳에서 어떤 온기도 느낄 수 없었다.갑자기, 그녀의 뱃속에서 무언가 움직였다.그 순간 온지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작은 생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