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손이 여이현에게 닿기도 전에, 옆에 있던 용경호가 그 손을 막아내고 손목을 꺾었다.남자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아악, 아파, 아프다고...!”용경호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 누군가가 그들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면 누구보다도 먼저 감지하고 상대에게 행동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대장님, 괜찮으세요?”용경호가 물었다.“괜찮아.”그들은 용경호가 입고 있는 군복과 그의 비범한 몸놀림을 보고 바로 여이현을 매우 공손하게 대했다.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이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았다.두 사람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급히 사과했다.“죄송합니다, 형님.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건데!”“아내를 사랑하면 돈을 번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형님, 용서해 주세요. 우리가 뭘 몰라서 그랬습니다!”여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이미 덜덜 떨기 시작했다.누군가를 잘못 건드려서 밥줄을 잃는다면 돈을 벌기는커녕 굶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일 것이다.여이현도 이제는 성격이 아주 좋아져서 그들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다.단지 용경호에게 손을 놓으라고 하고 빵을 사러 가는 것으로 충분했다.그들은 손이 거의 탈구될 뻔했다.용경호가 그들을 놓아주자, 둘은 여이현이 줄을 서서 빵을 사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리고 온지유의 존재도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다.하지만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여이현이 떠난 후, 둘은 조용히 속삭였다.“돈 많은 사람이 왜 이런 곳에 와서 빵을 사지? 비현실적이네.”“내게 그런 돈이 있다면 절대 여자한테 쓰지 않을 거야.”“돈이 많으면 여자가 수도 없이 많아지는데 굳이 한 사람에게 쓸 필요가 어디 있어!”옆에 서 있던 여학생이 두 남자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참을 수 없어 말했다.“그래서 당신들이 평생 큰돈을 벌지 못하는 거예요!”그 말에 둘은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온지유는 여이현이 다가오자, 빵을 받아서 들었다.“아까 무슨 일 있었어요? 거의 싸울 뻔한
"아..."온지유는 그 소녀를 불러 세우고 싶었지만, 순간 하얗고 통통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뒤로 물러섰다.온지유는 비둘기의 부리에 걸린 반지 같은 물체를 보았다.온지유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비둘기가 물고 있던 물건은 여이현의 손으로 들어갔다.온지유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제야 그녀는 여이현의 손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햇빛 아래에서 다이아몬드가 반짝이며 그녀의 눈을 찌를 듯이 빛나고 있었다.온지유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았지만, 여이현은 그 반지를 그녀의 약지에 끼워주었다.짝짝짝--갑자기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온지유가 고개를 돌리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부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자 온지유는 갑자기 긴장하며 당황했다."이... 이게 무슨 일이에요?""정말 로맨틱하네요. 여기서 청혼하다니, 이렇게 많은 장미꽃과 헬리콥터까지, 너무 멋져요!""공주와 왕자의 이야기 같아.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서프라이즈를 해준다면 상대가 못생겼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걸. 하물며 이렇게 잘생긴 남자라니!""사람과 사람은 다르네. 언제쯤 나도 이렇게 사랑해 줄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서야 온지유는 이게 청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리고 주인공이 자신이라니?온지유는 놀라움에 빠졌다. 둘은 장미꽃 바다에 둘러싸여 있었고 은은한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여이현은 사랑이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나와 결혼해 줄래?"여이현이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온지유는 당황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전 이미 결혼했잖아요? 벌써 이렇게 오래됐는데 이제 와서 이러는 거예요?"여이현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나와 결혼한 지 3년이 됐는데 너에게 제대로 청혼조차 하지 않았어. 미안해."온지유는 약지에 끼워진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며, 그가 한 말을 듣고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마음이 아프기
“하고 싶은 말이 뭐야?”여이현이 되물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온지유가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설사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고 해도 말이다.“그런데 왜 이러는 거예요? 걔한테 프러포즈하고, 선물도 주고! 난 안중에도 없어요?”노승아는 분노가 치밀어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녀는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이 받아야 할 걸 온지유가 받았다는 것을 말이다.여이현과 결혼할 사람은 그녀다. 성대한 프러포즈의 주인공이 돼야 했을 사람도 그녀다. 그러나 현실 속 눈앞에 펼쳐진 건 서로 마주 본 채 세상 다 가진 미소를 지은 여이현과 온지유였다.그토록 행복해 보이는 여이현은 처음이었다. 전에는 항상 온지유를 뒷전에 놓았던 그 여이현이 말이다. 한 번도 결혼 생활을 즐겨본 적 없는 그가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있었다.그는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진심 어린 미소가 나오게 된 것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그는 어두운 안색으로 핸드폰을 꽉 잡은 채 말했다.“너한테 약속한 것도 어기지 않을 거야.”노승아는 눈물을 머금은 채 말했다.“난 오빠랑 결혼식을 올릴 거야. 걔랑 한 것보다 백배 천배 화려해야 해! 세상 사람 전부 다 알게 할 거야!”“알았어.”여이현은 주저 없이 허락했다.“해독제만 준다면 뭐든 들어줄게.”여이현이 노승아에게 원하는 것은 해독제, 그거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해독제를 받아서 온지유를 살려주고 싶었다.그러나 그의 말을 듣고도 노승아는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여이현이 온지유를 위해 이런 것까지 허락한다는 게 기가 찼다.“좋아요!”노승아는 눈물을 닦으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러고는 거짓말로 마무리했다.“이번에는 용서해 줄게요. 같이 살날이 별로 없으니까 잘해주는 거잖아요. 언젠가 끝날 계약 결혼이에요. 난 그딴 거 신경 쓰지 않아요. 앞으로 나한테 더 잘해줘야 한다는 것만 기억해요.”결혼식도 아닌 프러포즈일 뿐이다.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노승아는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앞으로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온지유
노승아는 여이현을 속이는 동시에 자신도 속이고 있었다. 그녀도 순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순수하지 못한 현실에서는 자신까지 속일 수밖에 없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이현은 잘 속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노승아가 온지유에게 독을 먹인 순간, 순수함과는 거리가 먼 더러운 속내가 완전히 드러나고 말았다.여이현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건 위험에 빠진 온지유 뿐이 아니었다. 남들은 몰랐던 노승아의 실체도 있었다.“나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예전 같으면 믿었겠지만 이제는 아니야. 넌 너 자신을 위해 그런 거잖아. 한패라는 걸 들키기 싫었던 거잖아. 아니야?”이 말을 들은 노승아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아무 말도 못 했다.‘오빠가 어떻게 안 거지?’그녀는 불안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물론 인정은 할 수 없었다. 그녀도 더러운 짓거리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다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다. 그녀의 위치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노승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황함 속에서도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그녀는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몰라요? 나라고 그런 짓을 하고 싶어서 한 줄 알아요? 오빠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죠. 여진숙, 그 여자라 날 버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난 오빠 대신 고생하고 있는 거예요. 오빠가 살았어야 하는 인생을 사는 거라고요! 고고한 척하지 말아요. 난 오빠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노승아에게는 원하는 것을 선택할 권력이 없었다.그녀는 원래 여승아로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녀를 버렸다.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녀는 수도 없이 했다. 원래도 축복이 아닌 원한을 품고 태어난 아이가 아니던가?이건 여이현도 잘 알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았다.“날 미워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난 너한테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어.”여이현의
“누구랑 그렇게 오래 통화했어요?”온지유는 한 쪽에서 여이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통화가 겨우 끝난 다음에는 궁금한 듯 물었다.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여이현은 그녀의 손을 잡고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회사 일로 미팅할 게 있어서 그래. 오래 기다렸지?”온지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이현 씨가 자꾸 미간을 찌푸리길래 안 좋은 일이 있나 해서 물어봤어요.”그녀는 아주 세심한 사람이다. 관찰력도 뛰어났다. 여이현은 그녀의 남편이니 사소한 반응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오늘 같은 날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기분 좋을 거야.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날이니까.”그는 온지유의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온지유는 그의 목에 손을 두르며 말했다.“아직 더 좋은 일이 남아 있어요.”“무슨 일인데?”여이현은 그녀의 허리를 잡으며 이마를 콩 맞췄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발그레한 얼굴로 주저했다.주저하는 한편 행복하기도 했다. 아이를 지금껏 지킨 것이 아주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저희 이제 아이 가질 때도 됐잖아요. 고모도 기대하고 있고... 그래서...”“소대장님!”용경호가 부랴부랴 달려와서 온지유의 말을 끊었다.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여이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저희 교외에서...”말을 하다 말고 온지유를 발견한 그는 흠칫 얼어붙더니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 심상치 않은 일임을 느낀 여이현이 입을 열었다.“나가서 얘기해.”여이현은 온지유를 풀어주며 말했다.“나 잠깐 나갔다 올게.”“네, 저희는 이따가 다시 얘기해요.”여이현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나서 용경호와 함께 나갔다. 그녀는 여이현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여이현에게 무거운 사명이 있다는 것은 잘 알았다. 그런데도 걱정이 앞섰다. 그가 위험에 빠질까 봐서 말이다.용경호가 나타나고 나서 여이현은 하루도 호락호락하게 보낸 적 없는 것 같았다. 지금의 그는 여진그
“아무튼 요즘 신경 좀 써요. 제가 언니 곁에서 챙겨줄게요. 할아버지한테 허락받고 짐까지 가져왔어요.”마침 강윤희의 짐이 차에서 내려지고 있었다.“좋아요. 이현 씨한테 맛있는 걸 해달라고 할게요.”“정말요?”강윤희는 기분 좋은 얼굴로 말했다.“괜찮네요. 자잘한 일은 오빠한테 맡겨요. 언니는 가만히 누리기만 하면 돼요.”온지유는 별장에 돌아왔다. 정말 오래간만에 돌아온 것이었다.먹깨비 강윤희는 별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간식을 한가득 주문했다. 정말 당분간 떠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간식도 흔쾌히 공유해 준다고 했다.두 사람은 함께 TV를 봤다. 교외에서 내장이 전부 사라진 시신을 발견했다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강윤희는 놀란 듯 창백한 안색으로 말했다.“요즘 미친 사람 정말 많네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 내장까지 털어가는 건 너무했잖아요.”온지유는 용경호가 하다 만 말을 떠올렸다.‘교외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혹시 이현 씨도 저곳에 갔나?’시신은 여성의 것이었다. 뉴스를 보다 보니, 강윤희뿐만 아니라 온지유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는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용경호 씨한테서 무슨 얘기 못 들었어요?”온지유의 질문에 강윤희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뇨. 그런 얘기는 절대 제 앞에서 하지 않아요.”강윤희는 군인 집안 출신이었다. 그러나 줄곧 위험과는 거리가 먼 백지장 같은 생활을 해왔다. 그래서 온지유도 계속 묻지 않았다.묻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되는 마음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장이 전부 사라진 시신이라니 말이다. 범인은 희대의 사이코가 틀림없었다.온지유는 마음이 점점 차가워졌다. 심장도 찌릿찌릿 아픈 것 같았다.“언니, 왜 그래요?”강윤희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어디 아파요?”“아니에요. 저 잠깐 쉬고 올게요.”“제가 데려다줄게요.”강윤희는 후다닥 간식을 내려놓고 온지유와 함께 나섰다.그렇게 침실에 들어간 온지유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여이현이 돌아오기를, 여이현이 전화 오기를 기다리면서 말
온지유는 어두운 안색으로 핸드폰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침대에 누워서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오늘 오후 뭐 하러 갔을까? 노승아한테 갔을까, 아니면 시신을 살펴보러 갔을까?’온지유는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 여이현을 믿기로 했다.3년, 그들이 결혼한 세월만 해도 장장 3년이다. 그러나 여이현이 이토록 잘해준 것은 처음이었다. 그 마음이 선명히 느껴질 정도였다.온지유는 여이현의 눈빛에 담긴 사랑이 보였다. 그는 평생 그녀를 사랑하겠다고, 평생 그녀와 함께 살겠다고 했다.갑작스러운 변화에 약간 의아한 것도 사실이다. 어쩐지 숨겨진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온지유가 생각에 잠긴 새로 여이현이 씻고 나왔다. 그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온지유가 잠들었는지 확인하려는 듯 시선을 보냈다.온지유는 머리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수건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걸어갔다.“왜 아직도 안 잤어?”“이현 씨 기다리고 있었어요.”여이현이 침대에 걸터앉자, 온지유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머리를 기댔다. 여이현은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왜?”온지유는 통화기록에 관한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여이현은 하루 종일 저기압이었기 때문이다.노승아와 통화했을 때도 표정이 아주 어두웠다. 안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은 정도였다. 그래서 그녀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그냥요. 이제 같이 자요.”여이현은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 멍때리고 나서야 온지유에게 말했다.“나 내일 늦게 돌아올 거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눈을 감았던 온지유는 다시 뜨면서 대답했다.“알았어요.”여이현은 몸을 돌려 그녀의 허리를 감싸더니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온지유 머릿속의 의문은 그의 품에 안긴 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다.어찌 됐든 두 사람은 부부였다.온지유는 그의 손을 잡아서 배에 댔다.“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 같이 이겨내요. 절대 혼자 견디려고 하지 말아요.”그녀의 체온을 느끼며,
“그 인간은 신경 쓰지 말고 저희끼리 놀아요. 오늘 쇼핑하러 가는 건 어때요? 제가 가방 사 줄게요! 평소에도 쓸 수 있는 그런 캐주얼한 거로!”강윤희와 친해질 대로 친해진 온지유는 인사치레 말을 하지 않았다.“오늘 왜 이렇게 통이 커요?”“남도 아닌 지유 씨잖아요. 지유 씨한테 잘해줘야 이현 오빠가 눈치 주지 않아요.”강윤희는 여이현의 차가운 얼굴이 너무 싫었다.“옷 갈아입고 올게요.”온지유도 마침 쇼핑 가고 싶었던 참이다. 배가 점점 불러오니 유아용품을 사고 싶었던 것이다.두 사람은 기사와 경호원을 대동하고 함께 나섰다. 방송국 쪽은 미리 못 간다고 사정을 얘기했다.그녀가 없더라도 공아영이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장다희도 퇴원했다고 한다. 진송이는 주연 자리를 잃었고, 다시 돌아온 제안을 장다희는 거절했다고 한다. 지금은 다른 배우를 찾는 중이다.백화점에 도착한 온지유와 강윤희는 명품관에 갔다. 옷, 가방, 신발... 어느 브랜드에나 사람이 많았다. 일반인이라면 줄 서서 기다려야겠지만, VIP 강윤희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강윤희는 최근 돈을 더 주면서도 사기 어렵기로 유명한 브랜드의 가방을 온지유에게 들려주면서 말했다.“이거 지유 씨한테 어울려요. 가벼워서 무리도 안 갈 것 같아요.”“괜찮네요. 근데 저는 맞은켠 브랜드가 더 좋아요.”“지유 씨도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었어요? 일찍 말하지! 빨리 가봐요!”온지유는 장난으로 물었다.“제가 윤희 씨 용돈을 전부 써버리면 어떡하려고요?”“지유 씨만 좋다면 뭐든 사줄게요. 가방 10개라도 사줄 수 있어요!”“저 그냥 윤희 씨한테 시집갈 걸 그랬어요.”강윤희는 진지하게 하는 말이었다. 그녀는 온지유의 웃는 얼굴을 본 다음에야 농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저는 진지하다고요! 놀리지 마요.”“아니에요. 윤희 씨도 마음에 드는 거 있나 봐봐요.”온지유의 말 한마디에 금세 기분이 좋아진 강윤희는 그녀와 팔짱을 끼며 말했다.“좋아요!”두 사람은 한 브랜드에서 몇 개 사고 다른
“아니에요. 저는 그냥... 그냥 적응이 안 된 것뿐이에요.”여희영은 어디에라도 숨고 싶었다. 광고부 직원인 그녀는 이태훈과 나눌 만한 얘기가 없었고 여이현이 왜 자신한테 이 일을 시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후 그룹과 어떤 광고 협력이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불안한 마음으로 회의실에 들어갔을 때, 여이현이 회사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희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여희영 씨, 아니... 여 본부장님, 차 한잔하실래요?”이태훈은 여희영이 여이현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이태훈이 무엇을 원하는지 여이현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도 자신의 의도를 숨길 필요 없었다.차 한 잔 마시자 이태훈은 술을 마신 듯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는 여이현이 이런 방법을 쓸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차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이태훈 씨, 무슨 프로젝트를 논의하시려고 오신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여희영은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만약 자신이 맡은 업무가 아니면 핑계를 대고 거절할 생각이었다.이태훈은 일어나서 물 한 잔을 마셨지만 어지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는 화가 나서 실눈을 뜬 채로 몇 걸음 걸어가 여희영 앞에 섰다.“여희영 씨, 지금 뭐 하려는 겁니까? 제가 여진 그룹을 너무 높게 평가한 건가요?”“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여희영은 이태훈의 경멸스러운 말투를 듣고 그를 밀쳐내며 한쪽으로 물러섰다.“이태훈 씨, 계속 사적인 얘기를 하실 거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는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차에 약을 탄다는 건 저한테 뭐라도 해보겠다는 거 아닌가요?”이태훈은 비웃으며 두 걸음 다가가 그녀를 벽에 밀어붙였다. 그리고는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그런데 만약 저랑 희영 씨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면 저야 너무 좋죠. 하지만 그 대신 앞으로 희영 씨와 여진 그룹에 대한 생각이 바뀔 것 같네요.”그 말을 들은 여희영은
집에 돌아온 뒤, 온지유는 여이현과 간단히 통화하고 변호사를 시켜 박민정에게 연락을 보냈다.이 일은 이렇게 그녀의 손에서 완벽하게 끝을 맺었다.일을 끝낸 뒤에 온지유는 아이 방을 찾아가 애가 한창 꿈나라 여행 중인 걸 확인한 뒤 내려와서 저녁준비를 했다.방문이 닫히자마자 자고있던 별이가 침대에서 일어나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속삭였다.“외할아버지, 아까 말한 거 할아버지는 다 들으셨어요?”“그럼, 다 들었지. 누가 너희를 괴롭힌다며?”“그래요,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꼭 우리를 도와주셔야 해요. 누구도 우리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요, 우리 엄마가 괴롭힘당하면 외할아버지가 괴롭힘 당하는 거랑 같아요.”법로가 입을 열기도 전에 별이가 말을 이었다.“외할아버지 돈 많아요? 엄청 엄청 아주 많이 있어요? 저 먼저 빌려줄 수 없어요?”“이 할아버지는 돈 좀 있으니 별이는 걱정하지 마. 돈 문제든 아니든 이 할아버지가 꼭 너를 도와주마. 넌 기다리고 있거라, 다 이 할아버지가 알아서 할 터이니”법로는 즉시 사람을 경성으로 보냈다.별이의 말이 맞았다. 온지유를 건드리는 건 그를 건드리는 거와 다름없었다.전화를 끊고 법로는 온지유에게 전화하려 했으나 별이의 당부가 생각나 결국 비밀을 지켜주기로 했다.그는 홀연 일어나 결국 비밀리에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경성으로 가는 사람에게 시켜 어둠 속에서 일을 해결하기로 결저했다.한편 여진그룹 쪽, 여이현은 금방 장 사장을 접대해 보낸 뒤 건물 최고층에서 그가 떠나는걸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비서에게 지시했다.“이태훈에게 연락해. 장 사장이 우리를 찾아 협조하겠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줘.”네 하고 나간 비서가 몇 분 후 돌아와 보고했다.“대표님, 이태훈 씨 지금 오고 있답니다. 그리고 여희영 씨께서 회사에 계시는지 궁금해하십니다.”“알려줘, 고모님께서 지금 회사에 있다고. 그리고 고모님께 연락 넣어서 지금 당장 회사로 오라고 해. 내가 급한 일로 부른다고 하면 될 거야.”일을 간단히 처리한 후, 여이현
장 사장은 온지유의 눈길에 잔뜩 겁을 먹었다. 오랫동안의 판매 경험 덕분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겁을 먹고 줄행랑을 놓았을 것이 분명하다.한참 넋 놓고 있던 장 사장은 웃는 얼굴로 여이현에게 다가가서 물었다.“대표님, 정말 부탁합니다. 저도 방법이 없어서 그래요.”“예전에 이씨 그룹과 일을 함께하지 않으셨나요? 왜 지금은 하지 않으시죠?”여이현은 돌려 물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대답을 기다렸다.장 사장은 안색이 많이 굳어지더니 오랜 고민 끝에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입을 열었다.정상적인 관계라면 이리도 입을 열기 힘들 리가 없었기에 여이현은 무언가 눈치를 채고 눈빛으로 온지유에게 조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이때 온지유의 핸드폰이 울렸다. 별이 선생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실례합니다. 밖에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온지유는 회의실을 떠나서 전화를 받고 물었다.“선생님, 저는 별이 엄만데요. 무슨 일이죠?”“별이 어머니, 학교에 한 번 와보셔야 될 거 같아요. 별이가 같은 반 친구와 싸워서 애가 다쳤어요. 지금 애 부모님께서 꼭 별이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하세요.”‘별이가 어떻게 애들이랑 싸울 수 있을까? 개학한 지 얼마 안 되는데. 아직 서먹서먹할 텐데 무슨 일로 싸웠지? ”온지유가 급히 학교에 도착하자 사무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과 필요 없어요! 배상해요. 배상!”들어 본 적 없는 낯선 목소리라 누군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온지유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만약 저희 별이 잘못이라면 얼마든지 배상해드릴게요. 하지만 별이 잘못이 없다면 저희는 배상할 생각 없어요.” “그쪽이 누군데요?”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은 기세등등하여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있었다.이 틈을 타 온지유는 그 여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붉은색 원피스에 흰 진주 목걸이, 펜던트 귀걸이 그리고 다이아몬드반지 부잣집 집안임이 분명했다.“성함이 어떻게 되시죠?”온지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대방의
여희영은 원망의 눈길로 여이현을 바라보았다.온지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희영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줬다.“죄송해요. 이현 씨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어젯밤에 잘 못 잤죠? 돌아가서 푹 휴식하세요. 제가 점심을 맛있게 차려드릴게요.”“그래도 네가 젤 좋아.”여희영은 온지유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들뜬 마음으로 올라갔다.온지유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는 여이현이 꼭 무슨 꿍꿍이가 있는 상인 같아 보였다.그녀는 여이현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껴안고 온몸을 기댔다.“대표님, 무슨 좋은 일이 있어요?”사랑하는 이가 품속에 있는데 남자로서 참을 수 없었던 여이현은 그녀를 꼭 껴안고 진한 키스를 했다.“말해, 도대체 무슨 일인데?” 키스할 때마다 산소 부족이 오는 온지유는 성난 말투로 물었다.여이현이 그녀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어제 고모를 구해준 사람은 이태훈이야.”이태훈? 온지유는 한참을 생각해서야 이태훈이 이씨 가문 도련님이라는 것이 생각났다.‘갠 좀 곤란한 성격인데. 이게 좋은 일이랑 뭔 상관이지?’온지유는 여이현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의 미소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고모님 젊은이들에게 인기 많네요? 근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죠?”최승현 하나로도 벅찬데 이씨가문까지 더해진다면 여이현과 온지유가 나선다고 해도 방법이 없다. 이씨 가문 지금의 지위로 그런 더러운 수단을 써서 돈을 끌어모을 리는 없었기 때문에 여이현은 이태훈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가령 진짜 음모가 있다면 여진그룹을 해치워버리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여이현은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닐 거야. 그냥 우연이야. 두 사람의 인연이라고 해야 적합하나?”“인연인지 아닌지 좀 있다가 알게 될 거잖아. 얼른 옷이나 바꿔. 오늘 만날분은 예전에 이씨 가문과 일을 같이 해봤던 분이야. 그분에게서 정보를 깨여낼 수도 있겠다.”여이현은 그 말을 듣고서야 이번 미팅이 생각나 고개를 끄덕이며 온지유에게 칭찬의 키스를 했다
이태훈은 집사로부터 아침밥을 받아쥐더니 하나하나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집사는 이태훈의 이런 세심한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도련님, 제가 할게요.”집사는 여희영이 진짜 이태훈의 여자친군지 아니면 그냥 소개팅을 피하려고 찾아온 가짜인지 떠보기 시작했다.이태훈은 그런 집사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에 한껏 굳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왜요? 제가 제 여자친구를 돌봐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에요? 제가 몇 년 동안 집을 떠나있으니 규칙을 다 잊으셨나 보네요.”“아닙니다. 전 다만 도련님을 위해서 일을 해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도련님이 혼자 하실 수 있다니 저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이태훈은 집사를 향해 손짓하고 침대 옆에 앉아 여희영에게 죽을 먹여줬다.“조심해요. 죽이 뜨거워요. 이 죽은 몸이 좋은 죽이에요. 더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제가 다 가져다드릴게요.”“알겠어요. 그럼 약속한 거예요. 두말하기 없기인 거 아시죠?”‘어차피 연기하는데 더 실감이 나게 하면 좋지.’여희영은 애교 넘치는 눈빛으로 이태훈을 바라보았다. 이 장면을 목격한 집사는 이씨 가문 전체에 이 사실을 알렸다.집사가 떠난 한참 뒤에도 이태훈은 여전히 여희영에게 아침을 먹여주고 있었다. 여희영은 그의 손길을 뒤로 피했다.그녀의 거부에 이태훈은 동작을 멈추고 웃음기 찬 얼굴로 아침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그럼 혼자 드세요. 아 맞다. 제 이름은 이태훈이고 경성 이씨 가문 넷째예요. 들어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아요. 신분은 어르신들이 주신 거니 자랑할 바는 아니죠.”“그러면 뭐가 자랑거리라고 생각해요?”여희영은 당연히 이씨 가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씨 가문은 후배들에게 아주 엄격하다고 많이 들어봤지만 직접 만나볼 기회는 없었다.이태훈이 처음 만나는 이씨 가문 사람이라 그녀는 호기심이 찬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해낸 사업이야말로 진정한 자랑거리죠. 진정한 사나이가 되려면 가문의 힘을 빌면 안 되죠.”말을 하던 이태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근데 이씨 가문 도련님이 경성으로 돌아왔을 줄이야.”남자가 돌아설 때 여이현은 그가 이씨 가문 도련님 이태훈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이태훈은 자유롭기를 좋아하고 규정에 구속되지 않으며 어렸을 때부터 세계 일주를 다닌 유명한 사람이었다.벌써 이렇게 컸을 줄이야.이씨 가문은 후배들의 교육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가문이라 유용한 인재가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품은 꼭 합격 되어야 했다.여이현은 그런 이태훈이 여희영에게 해코지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고 설마 진짜 일이 벌어졌다면 이씨 가문 이태훈과 여희영이 혼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일 것이다. 그는 여씨 가문과 연을 이을 생각을 하며 가볍게 웃었다.“하지만 대표님, 저놈들이 술잔에 탄 약이 효과가 강하다고 소문난 약이에요. 정말 괜찮을까요?”부하의 말에 여이현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정말 무슨 일이 발생하게 될 게 아닌가 생각했다.병원 안, 이태훈이 응급실 문어구에서 기다리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전화 너머에서 무슨 얘길 했는지 이태훈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그 말인즉 할머니께서 꼭 저에게 소개팅을 시켜주시겠다 하셨다고요? 하지만 전 다른 사람에게 정해지는 운명이 싫어요. 좀 도와주세요. 이번 일만 해결해 준다면 제가 호텔 본부장 자리를 내줄게요. 금방 개업한 그 호텔 있잖아요. 매출이 아주 좋대요.”상대방이 뭐라 했는지 이태훈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대답했다.“저에게 방법이 있었으면 지금 이러고 있겠어요?”이때 응급실 문이 열리고 의사 선생님들이 밖으로 나왔다. 이태훈은 전화를 끊고 급히 다가가서 물었다.“의사 선생님, 어떻게 됐어요?”“약 때문인 거 같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악효과가 좀 강해서 이미 주사를 놓았으니 좀 기다려 보시면 될 거에요. 내일 아침까지 이상이 없으시다면 퇴원해도 좋습니다. 여전히 불편하시다면 약을 더 주사해야 합니다.”이태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의사 선생님이 떠난 뒤 병실로 들어갔다.
술을 마신 여희영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주량으로 이 정도 술을 마시고 취할 리가 없을 텐데 술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 눈앞이 희미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최승현이 술잔에 약을 탓 것이 틀림없다.여희영은 아무 생각 없이 이현에게 물었다.“이현 씨, 오늘 차 갖고 오셨나요? 제가 갑자기 몸이 좀 불편해서 절 데려다주실 수 있나요?”이현은 최승현과 아이컨택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었다.“당연하죠. 전 술을 마시지 않았잖아요.”그리고 여희영을 부축하여 연회장을 떠났다. 그는 여희영이 경계심을 늦춘 틈을 타서 최승현에게 은밀히 눈치를 줬다. 눈치를 받은 최승현은 다른 출구로 떠나 미리 차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여희영은 이현 자동차 조수석이 앉아있는 최승현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최승현 씨가 왜 이곳에 있죠?”“아, 최승현 씨는 제 친구예요. 저와 함께 왔으니 같이 떠나는 거예요. 여희영 씨 걱정하지 마세요. 먼저 여희영 씨를 데려다주고 최승현 씨를 데려다줄 거에요.”남자의 말에 여희영은 무언가 깨달은 듯 남자가 부축하고 있는 손을 뿌리치고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 두 사람은 공범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에 같은 차를 타고 가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여희영은 신속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을 찾아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최승현이 그녀의 의도를 눈치채고 낮은 목소리로 이현에게 말했다.“얼른 안으로 끌어오지 않고 뭐해?”그 말을 들은 이현이 여희영을 잡으러 다가오자 여희영은 큰소리로 외치며 도움을 청했다.“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이때 호텔 안으로부터 구석에 남아있던 남자가 뛰쳐나왔는데 누군가 그보다 더 빨랐다.그 남자는 호텔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나와 이현을 제압하고 여희영을 등 뒤에 감춰 보호했다.최승현은 차에서 내려 차가운 눈길로 갑자기 뛰쳐나온 남자를 보며 말했다.“사람을 도와주기 전에 그쪽이 그만한 실력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해요.”말을 마
“괜찮아요. 기사 아저씨께서 한 번만 내면 된다고 하셨잖아요. 제 것만 낸 거로 하면 되죠. 돌려 주지 않으셔도 돼요.”최승현은 택시비를 내고 차에서 내려 여희영에게 차 문을 열어줬다.차에서 내리자마자 이 장면을 목격한 온지유는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가서 여희영을 몸 뒤로 숨겼다.“두 사람이 왜 같은 차에서 내려요?”온지유는 질투 난 듯 잔뜩 뾰로통한 얼굴로 최승현을 바라보았다. 여희영은 마음속으로 그녀의 연기에 감탄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최승현은 낮은 소리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그쪽을 온지유 씨라고 부를까요? 아니면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그 말에 두 사람은 조각상처럼 굳어졌다. 최승현은 진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척했다.여희영은 그런 최승현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무시하고 온지유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여희영 씨, 전 여희영 씨를 진심으로 좋아해요. 여희영 씨가 저에게 못되게 굴더라도 저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여희영 씨를 제 여자로 만들 거에요!”고래고래 소리치는 최승현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이리로 주의를 기울이며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여희영은 최승현이 큰소리를 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온지유와 함께 여이현을 찾으러 올라갔다.연회가 열리는 곳은 교외에 있는 바캉스 호텔이었다. 주최 측에서는 호텔 전부를 연회장소로 정해서 사람들이 마음껏 즐기도록 만들었다.홀로 연회장에 들어선 여희영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각양각색의 남녀들이 모여있는 연화장은 마치 소개팅을 하는 것 같았다.이때 그녀 눈이 들어온 간판이 그 추측을 실증해줬다. 그제야 여이현이 왜 온지유를 참가 못 하게 막으려 했는지 깨달았다.“아가씨, 저와 함께 춤을 추실 수 있나요?”어떤 남자가 다가오더니 젠틀하게 초대를 보내왔다.여희영은 기분전환을 하려고 연회에 참가했기 때문에 소개팅할 마음이 없었다.여희영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누군가는 일부러 연회에 참가했다.“이분은 여희영 씨라고 여진그룹 여
“어머, 네가 마음 많이 썼네. 나도 깜박하고 있었는데. 맞아. 예전에는 파리에서 생활하고 싶었지 하지만 지금은 너도 알다시피...”여진숙이 더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모두 원인을 알고 있었다.이때 온지유가 여진숙에게 선물 상자를 가져다주며 말했다.“이 얘긴 그만하는 게 어때요? 자 이건 저희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한번 열어보세요. 맘에 드시는지.”여진숙이 상자를 열자 그 속에는 열쇠와 부동산 계약서가 들어 있었다. 부동산 계약서에 쓰여있는 파리 주소를 보자 여진숙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온지유가 여진숙의 모습을 보고 다가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해줬다.“사람이 필요하시다면 어머님께서 직접 고르시고 말씀하세요. 의료팀도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이현 씨가 모두 준비해뒀어요.”여희영은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는 이번 가정모임에서 여진숙이 수작을 부릴 것 같아서 여이현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다.파리에서 자리 잡고 살 기회를 얻은 여진숙은 그 자리에서 여씨 가문을 여이현에게 전부 넘겨주고 모든 재산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지금부터 여진숙은 남은 세월을 편안히 누리고 재단의 일에 손을 뗄 것이다.세 사람이 모임 장소에서 나오자 여희영은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인제야 비로소 여진 그룹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이현아, 정말 대단해.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여진숙이 파리에 가고 싶어 한다는 거 말이야.”그녀는 여이현이 그처럼 세심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온지유도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여이현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여이현은 차에 시동을 걸고 어느 정도 주행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서찬이 찾아갔을 때부터 눈치챘어요. 그래서 제가 사람을 불러 간병인을 매수했죠. 서찬이 떠나자마자 간병인 쪽에서 정보를 입수했어요.”‘그렇구나.’두 사람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