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지유는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이미 노승아에게 사람을 붙였었기에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노승아는 절대 자신의 청각에 문제 생기게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분명 누군가 뒤에서 노승아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노승아가 이런 곳에 왔다는 것부터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이곳에서 단서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따라왔다.문을 열자 거대한 형체가 보였다.“당신이군요!”인명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온지유는 눈앞에 있는 남자의 차림새를 보았다. 누가 봐도 의사 같았기에 모든 것이 들어맞았다. 시선을 돌려 그의 등 뒤를 두리번거리며 노승아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노승아를 미행하던 사람이 노승아가 이곳에 들어온 뒤로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의사예요?”온지유가 묻자 인명진이 답했다.“네.”그녀는 떠보듯 물었다.“제 친구가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던데 혹시...”“노승아 씨요?”그의 말에 온지유는 바로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딱히 뭘 숨기고 있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러면서 그녀가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고 있다.온지유가 입을 열었다.“맞아요, 제 친구가 여기로 들어온 거 맞죠?”“전 그쪽이 원하는 대답을 해드릴 수 있어요.”인명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듣고 싶으면 들어오세요.”그는 문을 열곤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온지유는 뜸을 들이다가 먼저 성큼성큼 들어가는 남자의 모습에 용기를 내어 따라갔다.아주 큰 집이었다.이 한층 전부 남자의 집으로 보였다.주방, 안방, 서재 등 방으로 나누어져 있어야 할 구역들이 전부 한 공간에 있었다.이런 구조는 처음 보았다.공간이 아주 크면서 전부 방으로 나누지 않았다니. 그녀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에 침대, 메스, 그리고 의약용품이 있었다.남자는 의사일 거라는 그녀의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다.“앉아요.”인명진의 발걸음에는 소리가 없었다. 갑자기 들려온 그
인명진은 입꼬리를 올린 채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눈가에 있는 점이 더 돋보였다.“그쪽이 알고 싶어 한 거잖아요. 전 그냥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죠.”온지유는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넓은 공간을 아무리 두리번거리며 노승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도 뜸을 들이며 물었다.“제가 그 말을 어떻게 믿죠?”“그쪽을 속여서 저한테 뭐 좋은 점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겠어요.”인명진은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저한테 노승아 씨가 저에게서 진료를 받은 기록이 있는데 못 믿겠으면 직접 봐도 돼요.”온지유는 진료 기록을 가져와 보았다.역시나 노승아가 인명진을 찾아온 것이 맞았다.의사가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눈앞에 있는 남자가 치료해낸 것을 보아 의술 실력이 여간 좋은 것이 아닌 것 같았다.노승아의 귀를 먹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니.모든 것이 들어맞았다.“진실을 알게 되었는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바로 이때, 인명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고개를 들어 그를 본 그녀의 눈빛이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눈앞에 있는 남자가 누군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의 영역에 들어왔으니 목숨을 잃을 가능성도 있었다.그럼에도 그녀는 용기를 내어 남자를 따라 들어왔다.책상 위에 있는 메스를 발견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정말로 그에게 죽임을 당할 것 같아 바로 입을 열었다.“저한테 이 진료 기록을 넘겨주신다면 노승아 씨를 도와준 대가로 받은 이득의 두 배로 드릴게요. 절대 손해 보진 않을 텐데, 굳이 손에 피 묻힐 필요가 있을까요? 일단 대화로 협상을 해보자고요. 전 제 목숨을 아끼거든요. 그러니 지금 하는 생각은 잠시 멈추고 저한테 협상할 기회를 주세요.”인명진은 의자에 손을 올리며 몸을 구부렸다. 그의 입에선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사람이라면 신용을 지켜야죠.”온지유는 긴장해졌다. 길고 큰 그의 손을 빤히 보았다. 행여나 갑자기 메스를
“나야!”여이현은 그녀의 손목을 확 잡았다.고개를 든 그녀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여이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현 씨가 왜 여기에 있어요?”여이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건 내가 할 말이야.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온지유는 방금 손에 넣은 진료 기록을 절대 그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알게 되면 증거를 없애버릴 수 있으니까.“아는 친구 만나러 왔어요.”“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여이현이 반박했다.“아니면요? 제가 여기에 왜 있었겠어요.”“너 방금 4층으로 들어갔잖아.”여이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낯선 사람 집안까지 들어가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몰라서 그래?”온지유가 말했다.“멀쩡히 나왔으면 됐잖아요!”경계심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모습에 여이현은 미간을 찌푸렸다.“온지유, 만약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다면 넌 목숨을 잃게 되었을 수도 있었어. 대체 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거야!”온지유는 여이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현 씨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설마 나랑 같은 목적인 건가?'확신이 서지 않았던 온지유는 그가 자신과 목적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이미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던 그녀는 이내 잠정을 다스리고 말했다.“알았어요. 다음부턴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을게요.”여이현의 표정이 그제야 풀어졌다.“가자, 데려다줄게.”그가 여기에 나타난 이유도 노승아를 미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다만 온지유가 그보다 한발 빠르게 도착했다. 그녀를 발견한 여이현은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노승아의 상황은 아주 복잡했다. 노승아가 그 사건과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 몰랐다.그랬기에 그는 행여나 일을 망치게 될까 봐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시계를 보던 그는 온지유가 20분 후에도 나오지 않으면 바로 쳐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행여나 그녀가 위험한 상황에 닥쳤을까 봐 말이다.다소 의외였던 것은 온지유는 들어간 지 몇 분 만에 다시 나왔
“하, 이현이는 당신 아들이 아니에요?”여진숙이 말했다.그러자 여재호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너랑 결혼한 것도 미치게 싫은데, 내 아들로 받아들일 것 같아?”여진숙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당신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내가 왜 당신이랑 결혼했는지, 정말 후회되네요.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애초에 당신 같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예요!”여재호는 아주 냉랭하게 말했다.“애초에 네가 더러운 수단을 쓴 게 아니었다면, 내가 너랑 결혼했겠어?”여진숙은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고 눈가가 촉촉해졌다.“그래요. 다 내가 더러운 수단을 써서, 억지로 나랑 결혼하게 해서, 그래서 지금 나한테 복수하는 거예요?”여재호는 매일 귀가하지 않을뿐더러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그녀와 결혼한 뒤 여재호는 그녀를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 단 한 번도 없었다.이건 과부와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복수하고 싶다는 생각 해본 적 없어.”여재호는 쌀쌀맞은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애초에 넌 내 안중에도 없었으니까.”여진숙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대체 그에게 뭘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까?언젠가 여재호가 자신을 뒤돌아 봐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아니었다.그녀는 그저 그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도 이젠 다 큰 어른이 되었으니 그녀도 더는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러나 여재호는 여전히 그녀에게 상처만 주었다.여재호는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기 싫었다. 매번 집에 돌아오면 바쁘게 움직이며 챙길 것만 챙겨서 나갔고 가족에게 한 번도 관심을 준 적 없었다.그의 마음은 이미 꽁꽁 얼어붙은 상태였기 때문이다.여진숙과 결혼한 뒤로 그는 없는 사람처럼 지냈다.여호산이 세상을 뜬 뒤로 그의 발길이 더 뜸해져 돌아오지 않았다.여재호는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지나쳐갔다. 그녀가 얼마나 속상한지, 얼마나 자신을 원망하고 있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여전히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가버렸다. 그런 그가 그녀를 사랑할 리가 있겠는가.다만 마침 내려온 노승아가
그 순간 여진숙은 자신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누구도 그녀의 곁에 있으려 하지 않았다....온지유는 병원으로 돌아왔다.여희영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많이 힘들었던 탓인지 그녀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고모님.”온지유가 뭔가를 양손 가득 들고 들어왔다.여희영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온지유를 맞이했다.“지유구나.”“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온지유가 물었다.“혹시 어디 불편한 곳이 있으면 저한테 말해주세요.”여희영은 온지유 뒤에 있던 여이현을 보더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그냥 아파야 할 곳만 아플 뿐이야. 참을 만해. 걱정하지 마, 이틀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이현아.”여희영은 시선을 돌려 여이현을 보았다. 묘원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여전히 신경 쓰고 있었다.“미안해. 난 그냥 충동적으로 한 말이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줘.”그녀는 비록 여이현에게 화가 나 있었지만 그래도 그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고 생각했다.여이현에겐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기도 했으니까.여이현은 여희영을 빤히 보다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고모도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여희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너한테는 그냥 상처가 아니지. 어릴 때부터 그런 가정에서 살았으니 나랑 네 할아버지 외엔 누구도 너한테 관심도 주지 않았고 신경 써주지 않았지. 게다가 부모와 떨어져 살았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 난 그냥 네가 안타까웠어. 만약 우리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넌 분명 잘살고 있었을 텐데...”“지금도 잘살고 있어요.”여이현이 말했다.“전 제가 힘들게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고모, 몸조리에 신경 써 주세요.”“알았어. 금방 나을 거야.”여희영은 온지유와 여이현의 손을 겹쳐 잡았다.“지금 내 가장 큰 소원은 너희 둘이 다시 잘 되는 거야. 아기도 잘 키우고 지유도 잘 챙겨주고.”그녀는 시
“이현 씨 집 안에서 나올 때 가지고 나오지 않았으니 제 것이 아니죠.”여이현은 입술을 짓이겼다. 눈빛이 험악해지고 두 손은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가자.”나민우가 온지유에게 말했다.온지유는 나민우와 함께 떠났다.여이현은 두 사람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빤히 보았다. 다가가서 붙잡지는 않았지만, 눈빛이 아주 서늘했다.지하 주차장으로 온 온지유는 나민우에게 말했다.“노승아가 왜 갑자기 청력을 잃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았어. 지금 연락해야 할 것 같아.”인터넷엔 여전히 뜨거운 논쟁이 펼쳐지고 있었다.그녀는 얼른 이 관심이 사라지기 전에 사실을 밝혀야 했다. 그래야 여희영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으니까.나민우는 바로 시동을 걸었다.“방송국으로 갈 거야?”“응, 방송국에 들러야겠어.”나민우는 바로 온지유를 태우고 방송국으로 갔다.그녀는 최근 휴가를 냈다.원래 채미소는 여이현의 단독 인터뷰를 따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의 뉴스까지 망쳐버린 것도 모자라 방송국에서 난동을 피웠으니 편집장의 귀에도 고스란히 들어갔다.편집장은 채미소를 따로 불러 혼냈다.그렇게 채미소는 스스로 편집장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버렸다.보육원은 이미 어느 한 인기 예능에 정식으로 방영하게 되었다.채미소의 방해로 방송국 직원들은 야근을 강행하는 수밖에 없었다.노승아의 인터뷰는 채미소에게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현재 노승아의 인터뷰를 따낸 사람은 채미소가 유일했고 인터뷰 내용도 KTBC에서 제일 먼저 단독으로 공개하게 되었다.그 덕에 채미소의 이미지는 얼마간 회복되었다.온지유가 돌아왔을 때 채미소는 마침 외출하려던 참이었다.남자와 함께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본 채미소는 입꼬리를 올리며 다가가 물었다.“지유 씨, 왔어요? 어머, 오늘은 다른 남자를 데리고 왔네요.”온지유는 채미소를 보며 전혀 기가 죽지 않는 모습으로 말했다.“다시 살아난 거예요?”채미소가 말했다.“한 곳에서 넘어졌다고 해서 다른 곳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기삿거리
공아영은 온지유를 보니 위로가 되었다.온지유는 얼른 그녀를 달랬다. 등을 토닥이며 공아영의 컴퓨터 모니터에 빼곡한 글씨를 보았다.“괜찮아요, 울지 말아요. 이번만 참아요. 채미소 씨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테니까요.”공아영은 훌쩍이며 물었다.“마지막이라니요? 전 제가 채미소한테 화라도 내면서 달려들었으면 좋겠네요!”그녀는 채미소에게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채미소는 무슨 일만 생기면 항상 그녀를 괴롭혀 왔다.“그래서 온 거예요.”공아영은 바로 울음을 그쳤다.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지유 씨가 절 구해주러 올 줄 알았어요. 얼른 말해줘요, 제가 지금 당장 할게요!”온지유는 자리에 앉아 공아영과 함께 노승아의 일을 까발릴 준비를 했다.한편, 채미소는 차를 몰고 노승아의 거처로 왔다.노승아는 이미 집으로 돌아온 상태였다.수려원에 그녀가 있는 한 여이현이 집으로 돌아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더는 그를 기다릴 수 없었다.여이현이 아직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어떻게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원하는 것은 연예계에서의 그녀의 지위였다.만약 어느 날 완전히 혼자가 된다면 배우로 승승장구하면서 잘 살 수 있기를 바랐다.다른 사람에게 기대를 품으면 안 된다. 기대를 품은 만큼 실망이 더 커지는 법이니까.어쨌든 그녀의 곁엔 사람이 부족했다. 그리고 김예진은 마침 그녀에게 충성을 바칠 사람이었으니 당연히 김예진을 잃어서는 안 된다.김예진은 노승아가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온 줄 알며 불쌍히 여기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그녀만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김예진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였다.그래서 더욱 그녀를 위해 발을 벗고 나섰다.채미소가 초인종을 눌렀을 때 노승아는 화장을 하고 있었다. 최대한 초췌해 보이는 얼굴로 인터뷰할 생각이었다.김예진이 문을 열어주었을 때 노승아의 초췌 메이크업은 끝난 상태였다.“노승아 씨.”채미소는 노승아의 집으로 오기 전에 선물을 샀다. 김예진에게 준비한 선
노승아는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뭐라고? 그럴 리가!”“진짜예요. 정말로 다들 전화 와서 욕하고 있어요!”김예진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귀가 따가울 정도로 듣기 거북한 욕이었어요. 전 도무지 대처할 수가 없어서 끊어버린 거니까 언니도 전화 받지 말아요.”노승아가 듣게 된다면 분명히 충격받을 것이었다.노승아는 한동안 넋을 잃었다.“누군가 내 진료 기록을 공개했다고. 절대 그럴 리가 없어!”그녀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을 열었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기 위해서.그녀의 진료 기록이 공개되면 여론이 뒤집히게 된다. 그렇다면 유일한 가능성은...‘절대 그럴 리가 없어.'그녀는 믿지 않았다.그러나 핸드폰을 확인하자마자 여기저기서 그녀를 욕하고 있었다.여우라는 둥, 지금도 연기하고 있는 것이라는 둥, 남에게 누명을 씌우는 나쁜 사람이라는 둥 말이다.심지어 누군가는 그녀가 영화 몇 편 찍었다고 카메라 밖에서도 연기하며 산다고 했다.앞뒤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며 뻔뻔한 악녀라고 하기도 했다.노승아는 연예계에 오랫동안 발을 들이면서 가수 시절에도 악플을 받아본 적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그때의 그녀는 인기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인기를 얻기 위해 돈을 들여 일부러 기사도 쓰고 홍보도 했지만,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배우의 길은 비록 넓으나 그녀에게 부정적인 영향도 주었다.댓글을 쭉 내려보니 전부 그녀를 향한 악플이었다.[귀가 안 들리는 것도 자작극이라고? 하, 그럼 전에 우리가 불쌍하게 여긴 건 뭐가 돼? 네티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승아는 무슨 짓이든 다 하는 사람이었네. 일반인마저 끌어들여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다니, 이것보다 악랄한 사람 존재하기나 해?]또 어떤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에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대체 이런 짓을 한 이유가 뭘까?][뭐겠어요. 당연히 인기 때문이겠죠. 관심받기 위해서 불쌍한 척 연기하고, 여론을 몰고, 일반인까지 끌어들이다니. 쯧, 그러다 천벌 받으면 어쩌려고?][와,
문지원은 더 이상 이런 문제로 머리를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어디로 찾아갈지도 모르는 마당에 지금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그래서 결국 병원으로 향했다.“지금 날 보러 온 이유가 그거야?”여울은 이쑤시개에 꽂은 사과 조각을 입에 물며 투덜거렸다.“언니 진짜 답답하다니까.”문지원은 사과를 깎던 손을 멈췄다.“지금이라도 최주하 다시 불러줄까?”“아니야, 미안. 내가 답답하지. 내가.”여울은 급히 말을 바꿨다.평소였다면 문지원이 이 상황을 놓치지 않고 여울을 놀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서로 입장 차이가 없으니 누가 누구를 탓할 상황이 아니었다.“그럼 언니 계속 모르는 척만 할 거야?”여울이 다시 묻자 문지원은 침묵했다.모르는 척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지석훈에게 직접 따지기도 애매했다.“당연히 직접 물어봐야지!”여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문지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물어보지 않으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내가 볼 때 지석훈 씨는 양다리 걸칠 사람 같진 않아. 분명히 뭔가 오해가 있을 거야.”문지원이 조금 흔들리는 듯하자 여울이 급히 덧붙였다.“게다가 언니가 전에 말했잖아. 석훈 씨가 언니랑 강윤슬 문제에 직접 개입한 적 있다고. 그럼 이미 강윤슬과 언니 사이에서 언니를 택한 거 아냐? 그러니 뭐가 겁날 게 있어?”여울의 말이 문지원의 머릿속을 환하게 밝혀주었다.문지원은 들고 있던 사과칼을 내려놓고 바로 옆에 둔 가방을 집어 들더니 벌떡 일어나 병실 문을 향했다.“어디 가? 날 줄 사과 아직 채 못 깎았잖아!”여울이 외쳤지만 문지원은 이미 병실을 나섰고 그녀는 들뜬 기분으로 병원을 나와 지석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어느새 거리는 어두워졌고 도로 위엔 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가운데 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었다.지석훈의 목소리는 여전히
“뭘 보고 있었어?”문지원은 살짝 긴장해 하며 미소를 지었다.“그냥 회사 문서들을 봤어요.”“늦었는데 일 그만해.”지석훈은 전혀 의심하는 기색이 없었다.문지원은 안도하고 더 이상 몰래 훔쳐보는 것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워낙 예민한 성격의 지석훈이기에 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너무 난감했을 것이다.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을 굳이 건드리고 싶어 한다.깊은 밤, 문지원은 지석훈이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테이블에 손을 올려 살금살금 이동했는데 끝내 그녀가 눈독을 들였던 휴대폰에 손이 닿았다.그런데 마침 그 찰나에 지석훈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고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왜 잠이 안 와? 설마 하고 싶어?”순간 문지원은 몸이 경직되었다.만약 지석훈이 지금 정신을 차렸다면 분명 그녀가 뭘 하려고 했는지 알아챘을 것인데 다행히 그건 아니어서 문지원은 간신히 안도하며 뻗었던 손을 거두고 가만히 있지 않는 지석훈의 손을 밀어내면서 거절 의사를 전했다.“안 돼요. 내일 회사에 나가봐야 해요.”지석훈은 곧바로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녀의 이마에 뽀뽀하고 말했다.“그럼 빨리 자. 안 그러면 나 더 참을 수 없어.”문지원은 서둘러 눈을 감았는데 마음속에 일이 있으니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역시나 그녀는 결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긴 채로 집을 나가게 되었다.다행히 나가기 전에 파운데이션으로 가려서 아무도 그녀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대표님께서 확인하셔야 하는 서류들입니다.”“알았어요. 거기 두세요.”문지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비서가 나가려고 할 때 문지원이 그녀를 부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화진 그룹에서는 오늘도 아무 소식 없어요?”비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걸 본 문지원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나가보라고 했다.문지원은 본인이 너무 예민한 거라고 생각했다.강윤슬이 직접 지석훈과 끝났다고 했기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의사가 수술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문지원이 잽싸게 다가가서 물었다.“제 친구의 상태는 지금 어떤가요?”의사가 마스크를 벗고 말했다.“환자는 간이 칼에 찔려서 내출혈이 있었습니다만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서 생명의 위험은 없습니다. 이제 잘 휴식을 취하면서 회복하시면 됩니다.”문지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옆에 있던 최주하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미간은 조금 전보다 펴진 것 같았다.여울은 마취가 덜 풀려 계속 혼수 상태였고 문지원은 병실에 들어가서 보다가 다시 나왔다.그때 최주하가 부하에게 지시하고 있었다.“합의는 없다고 하고 변호사를 찾아서 살인 미수로 신고해.”부하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살인 미수는 너무 무겁지 않을까요?”“그 정도가 뭐가 무거워?”최주하가 코웃음을 지었다.여울이를 다치게 했는데 살려 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라는 눈치였다.문지원이 병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얘기하던 최주하가 고개를 돌렸는데 그의 얼굴에는 차가운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다만 두 사람은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최주하는 먼저 말을 건네지 않았다.“최 대표님.”문지원이 앞으로 다가가며 최주하를 불렀다.부하를 보내고 최주하가 말했다.“무슨 일이죠?”“최 대표님 때문에 다친 건데 들어가서 보지 않을 거예요?”최주하의 태도에 문지원은 화를 억지로 참고 물었다.여울이와 최주하의 일은 우연히 조금 들었는데 문지원은 최주하가 사람도 아닌 것 같았다.게다가 지금의 최주하를 봤을 때 더욱더 못마땅했다.여울이가 최주하 때문에 다쳐서 꼼짝 못 하고 누워있는데 병실에 들어가려 하질 않으니 말이다.최주하가 이마를 찌푸린 채 병실 쪽을 보는 모습을 보며 문지원이 또 말했다.“최 대표님, 잘 생각하고 선택하세요. 오늘 들어가지 않을 거면 앞으로도 절대 들어가지 마시고 다시는 여울이를 만나지도 말아요.”최주하는 문지원이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워낙 사람들에게 해명하지 않는 성격이라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문지원의
문지원과 여울은 쇼핑몰에 가서 구경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못 만났고, 또 모처럼 나왔으니 그렇게 빨리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다만 누구도 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저 사람 강도에요. 잡아줘요.”갑자기 한 남자가 달려오자, 문지원은 잽싸게 피했는데 여울은 피하지 못하고 칼을 든 남자에게 인질로 잡혔다.강도는 과일칼을 여울의 목에 들이대고 외쳤다.“아무도 다가오지 마!”문지원이 경찰에 신고하려는 것을 보고 강도가 또 외쳤다.“경찰에 신고하면 이 여자를 죽여버릴 거야.”“알았어요. 신고하지 않을게요.”문지원은 강도가 정말로 여울을 죽이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내려놓고 손을 들었다.“흥분하지 말아요. 사람을 죽이면 당신은 살인자가 되는 거예요.”문지원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강도는 더 이상 흥분하지 않았는데, 인질은 결코 풀어주지 않았다.쇼핑몰의 보안 인원들이 순식간에 강도 주변을 둘러쌌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봉변을 당할까 봐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그 때문에 쇼핑몰 1층은 순식간에 그들 외 텅 비었다.강도는 여울을 인질로 잡고 모두를 후퇴시켰다.같은 시각 쇼핑몰 2층에서.“왜 이렇게 시끄러워?”최주하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1층을 내려다보았는데 그 순간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여울이다!최주하가 어찌나 빨리 1층으로 움직였는지 그의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천천히 가세요.”여울이도 가까이에 있는 과일칼을 보더니 두려움에 떨었다.강도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모두 뒤로 물러서!”여울은 눈을 감고 지금 죽고 싶지 않으니 누구든 자기를 구해달라고 빌었다.어쩌면 그녀의 기도가 정말로 효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그때 강도 손에 있던 칼이 걷어차였고 여울이는 누군가에 의해 구원이 되었다.이 변화는 주변에 있던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여울은 순간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을 받으면서 눈을 깜빡였는데 아주 익숙한 품에 안기게 되었다.“최 대표님?”여울은 도저히 믿을 수
문이 쿵 하고 닫히고 문지원과 지석훈은 현관에서부터 거실 소파까지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소파에 쓰러질 때 문지원이 머리를 부딪힐까 봐 지석훈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받쳐주었는데 키스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서로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잠깐만요.”문지원이 말했다.지석훈이 멈추려 하지 않자, 그녀는 아예 손으로 밀어내며 말했다.“내려가서 사와요.”지석훈은 붉게 달아오른 문지원의 얼굴을 보며 무언가 떠올리더니 고의로 안 간다고 했다.“안 써도 돼.”그는 문지원의 귓불을 깨물었고 숨소리도 점점 더 거칠어졌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한번 건드리면 멈출 수가 없었다.하지만 문지원은 확고했다.“안 돼요. 사 와요.”지석훈은 하는 수 없이 일어나서 문지원의 입술에 입 맞추고 옷을 입었다.“알았어. 기다려.”아파트 입구에 바로 편의점이 있기에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지석훈은 얼마나 급했는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에 핑크색 물건을 들고 들어왔다.그동안 그의 욕망은 추호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활활 타올랐다.지석훈은 뒤에서 문지원을 껴안으며 속삭였다.“당신이 뜯어줘.”문지원의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직접 해요.”“해줘.”문지원은 하는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비닐 포장을 뜯었다.지석훈은 그녀를 들어 올렸고 문지원은 그가 리드하는 대로 움직였다.일이 끝난 다음에도 지석훈은 부족했던지 문지원의 쇄골에 키스하더니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왜 갑자기 이렇게 열정적이야?”“싫어요? 그럼, 다음부터 조심할게요.”“아니, 너무 좋아. 다음에도 계속해.”지석훈은 그녀의 얼굴을 돌려 키스하며 말했다.두 사람은 그 뒤로도 이러한 관계를 서로 묵인했다.문지원은 가끔은 자기 집에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지석훈의 집에서 지냈고 시간이 지나면서 지석훈의 집에는 그녀의 물건들이 화장품부터 시작해서 일상용품, 그리고 여성용품들까지 추가되었다.그들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금방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지석훈이 말했다.“그 사람을 괴롭히지 마.”지석훈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강윤슬도 잘 알고 있다.강윤슬의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이 떨릴 정도의 차가움에 소름이 끼쳤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숨기며 말했다.“석훈아, 오랜만에 연락해서 한다는 말이 그거야?”“선배, 너무 심했어. 나는 혁수가 아니라서 선배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어. 그러니까 나한테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혁수한테 신경 써.”“혁수는 이제 아이까지 있어. 그리고 나한테 이제 관심이 없어.”지석훈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나도 선배에게 관심이 없어.”강윤슬은 한 사람의 말에 이토록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강윤슬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지석훈은 또 말했다.“선배가 나를 받아준 적이 없으니 우리 사이에 끝나고 말고 할 건 없잖아. 그리고 우리 사이 일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강윤슬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석훈아, 너한테 문지원 씨가 다른 사람이야?”지석훈은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강윤슬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액자를 바라보았는데 사진에는 지석훈이 젊은 시절의 최고의 미소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를 향했던 지석훈의 최고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모두 사라져서 안타까울 뿐이었다.그리고 지금 강윤슬은 똑같은 눈빛으로 문지원을 바라보고 있다.문지원은 강윤슬의 눈빛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불편했다.“윤슬 씨,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거죠?”두 사람은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강윤슬은 길거리에 오고 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문지원을 향해 물었다.“석훈이한테서 저에 대해 들은 적 있어요?”“조금요.”강윤슬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렇겠죠. 석훈이랑 나 워낙 아무런 관계가 아니니까요. 다만 예전에는 내가 석훈이를 쳐다보지 않았다가 나중에는 후회했죠. 시작한 적도 없는 관계이니... 그냥 방금 한 얘기는 잊어버려요.”문지원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강윤슬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문지원은 어른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지석훈은 그녀가 반쯤 울리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나한테도 속일 생각하고 있어?”문지원은 뭐라고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지석훈은 그녀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은 듯 다른 말로 그녀를 앉혀 식사 하게 하였다.마침, 문지원은 급하게 회사에서 나와서 아직 먹지 않았다.오늘뿐만 아니라, 요 며칠 동안 주주들과 상의 하느라 바빠서 그녀는 종종 하루에 두 번, 심지어 하루에 한 번 밥을 먹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초췌하여 지 씨 아버지께서 한눈에 알아차리지 않았을 것이다.지석훈은 병원 식당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가져왔다.병원의 식당은 바깥 식당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영양 균형이 잘 잡혀 있다. 그는 마치 진작에 그녀와 함께 식사하기로 계획한 것처럼 미리 두 개를 준비하였다.조용히 도시락을 먹으며 문지원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여 지석훈이 입을 열었을 때도 반응하지 못하였다.“요즘 뜻대로 안 돼?”“조금.”문지원은 무의식으로 대답하고 살짝 굳었는데 지석훈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지 의사 선생님, 계세요?”밖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곧 수술이 있기에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네, 알겠어요.”지석훈이 대꾸하자 곧 밖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떠났다.문지원은 이제야 그녀가 바빠서 몸을 뺄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선츠도 비슷하고, 심지어 지나쳐도 모자랄 정도였다는것을 깨달았다. 의사는 워낙 바쁜 직업이라.그런데 그는 이렇게 바쁜데도 시간을 내서 문지원을 위로하려고 하다니... 문지원은 갑자기 양심이 은근히 아파 났다.지석훈은 한쪽에 걸려 있는 흰 가운 외투를 입고 문지원을 쳐다보았다.“난 먼저 일하러 갈게 넌 여기 있을래 아니면 먼저 돌아갈래? 먼저 돌아가면 저녁에 널 찾으러 갈게.”문지원은 도시락을 다 먹고 내려놓았다. “먼저 돌아가 있을게요.”지석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돌아간 후 지석훈이 그녀를
그 남자는 분명히 강윤슬한테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니 문지원은 돌아가서 주의하기로 결정했다.“화닝 빌딩의 프로젝트에 대해 귀 그룹의 요구 사항을 문정 그룹에서 보았어요. 우리 그룹에서는 두 가지 사항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째, 우리는 보수와 지불이 불균형하다고 생각해요. 귀사는 모든 재료를 최고 수준으로 배분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익은 10% 미만만 이에요.”“둘째, 우리는 자체 인력이 있으며, 채용 측면에서 귀 그룹에서는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요.”이것이 바로 문지원이 오늘에 온 목적이었다.문지원은 성격이 매우 좋은 사람이기에 일반적으로 갑방이 제시한 조건이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 그녀는 그 조건들을 진지하게 경청하지만 이번에 강윤슬은 너무 심했다.심지어 강윤슬 자신조차도, 한 짓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갑방이 협력 파트너에게 이래라저래라 심지어 무슨 사람을 쓰는지까지 상관 한다니 한 일이 너무 심했다. 그리고 10%도 안 되는 이윤을 양보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계약서에서 말하는 ‘두 그룹이 함께 이기자'는 말장난을 하는 것은 문자께임으로 사람을 놀리는 거짓말인 것같앗다.강윤슬은 그녀가 왜 왔는지 진작 알고 있기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너무하다고?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고객이 신이라는 말은 누구나 다 알아.”“고객이 이렇다 하지만 갑방이 프로젝트를 당신들에게 맡기고 당신들도 받아들였는데 지금 할 수 없다고 하면 계약을 위반한 것이야. 계약을 위반하면 두 배의 계약금을 물어내야 하는데, 이 돈을 문정 그룹에서 감당할 수 있어?”그 전에 문지원은 강윤슬에 대해 악감정이 없었다.비록 그녀와 지석훈은 알려지지 않은 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문지원은 정말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상대방의 악의를 느낄 수 있지만, 왜 사람들은 모두 근거 없는 악의를 가지고있는지 몰랐다.문지원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강윤슬 씨, 저에게 불만이 있으면 저에게 말해주세요. 그러나 협력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았
문지원은 강윤슬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반드시 가야 했다.한바탕 망설인 후, 그녀는 빠르게 결정 하였다. 가야 할 바엔 가자, 무슨 칼산 불바다도 아니고...강윤슬이 근무하는 회사는 규모가 상당했고, 국내에서 10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다. 큰 회사답게 프런트 데스크 직원도 교육이 잘 되어 있다.“문 대표님, 강윤슬 대표님이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프런트 데스크에서 엘리베이터로 안내하였다. “이쪽으로 오세요.”문지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있는 강윤슬의 사무실에 도착했다.문지원은 강윤슬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그녀의 비서가 말했다.“대표님이 회의하느라 바쁘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문지원은 이 말투가 아주 익숙하였다. 그녀는 강윤슬이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가 소심인 배 한 것이 아니라 전화는 부재중이고,직접 왔는데 바쁘다고 하니, 일부러 그녀를 피하는 것 같았다.문지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협력을 위해 특별히 진심으로 여러분을 찾아왔는데 만약 여러분이 문 씨와 협력할 마음이 없다면, 직접 말하면 될 테니 저를 원숭이로 놀릴 필요는 없어요.”“그럴 리가요.”비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 하였다.아마도 그들은 생김새가 온화하고 사람들에게도 대부분 선의를 가진 문지원이 이렇게 기세등등한 면이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뭐라고 하든 간에 문지원은 이미 결정하였다. “5분, 5분만 더 기다릴게요.”“5분후에 오지 안으면 합작이 무산된 걸로 칠 것이에요.”협력은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의 체면을 땅에 떨어뜨리는것은 안 되였다. 적어도 문지원은 그런 천덕꾸러기가 아니었다.그녀는 강윤슬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지만 언젠간 알게 될 것이니 급하지 않았다.5분이 지나자, 문지원은 떠날 준비를 했다.강윤슬은 하이힐에 리듬을 타며 느릿느릿 걸어왔다.“일이 좀 있어서 늦었어. 죄송하네.”그녀는 손을 내밀고 입가에 선의의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빛으로 문지원을 응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