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이현의 얼굴에 있던 차가운 웃음기마저 사라졌다.쿵!이채현은 다시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그녀의 모습은 다소 처참해 보였다. 너무도 아팠다.넘어진 순간 만화 속에 나온 것처럼 눈앞에 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그러나 이채현은 얼른 여이현에게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발목을 삐끗하는 바람에 넘어졌네요. 전... 전 정말로 멍청한 사람인가 봐요!”“그래요, 정말로 멍청한 사람이군요!”여이현은 애초에 이채현에게 관심이 없었다.“고작 그 하찮은 수작질로 날 유혹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거예요?”“!”여이현은 그녀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인정해서는 안 되었다.“대표님, 정말 오해세요. 전 방금 실수로 커피를 쏟은 거예요. 보세요, 제 신발도 싸구려라서 넘어지게 된 거예요.”이채현의 목소리는 다소 갈라져 있었고 조금 난처해 보이기도 했다.그녀의 신발 뒷굽은 확실히 떨어져 있었다.여이현은 굳이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다른 꿍꿍이가 없다면 다행이지만 이대로 넘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해요?”“죄송합니다, 대표님. 대표님의 인턴 비서로서 실수를 자주 하면 여진 그룹 이미지에 영향이 간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제 막 졸업하고 취직한지라 수중에 돈이 정말로 없거든요.”이채현은 점점 더 기세등등해졌다.여이현은 그런 이채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배 비서한테 가서 이번 달 월급 먼저 계산해 달라고 하세요.”“감사합니다, 대표님!”“이제 내 눈앞에서 사라져요!”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채현은 온지유가 뽑은 사람이니 일단 내버려 두기로 했다.게다가 이번 일로 그는 이채현이 더 날뛸 것으로 생각했다....백지희의 집.백지희가 앱으로 고용한 아주머니가 주소에 따라 그녀의 집으로 찾아왔다.아주머니는 음식을 만들고 있었고 온지유는 소파에 앉아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마침 흘러나온 뉴스는 제목과 내용이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다.온지유는 자료를 찾아본 뒤 뉴스에
그날 이후, 백지희의 그림 전시에서도 한정민이 나타났다. 그는 그녀의 그림도 비싼 값에 사는 등 여러 행동을 보였다.상대가 분명히 거절했음에도 이렇게까지 한다면 이건 집착이었다.온지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띠링, 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의 핸드폰에서만 문자가 온 것이 아닌지 백지희도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고 있었다. 대학 동기 단톡방에 도세원이 소식을 올린 것이다.[다음 주 월요일에 조교였던 박민재가 단풍 별장에서 아들 백일잔치를 열 거야. 그래서 그 김에 동창회도 할까 하는 데 참석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참석해줬으면 좋겠어.]“좀 어이가 없네. 박민재 아들 백일잔치 소식을 왜 박민재가 직접 알리지 않고 도세원이 대신 나서서 말해주는데?”문자를 읽던 백지희가 바로 투덜댔다.이때, 대학 동기 단톡방에 있던 사람들이 잇달아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고 도세원이 답장했다.[박민재는 지금 병원에 있어서 핸드폰 볼 여유가 없어. 난 박민재 대신 백일잔치 소식을 알리고 너희들을 초대하는 것뿐이야. 얘들아, 너희들 얼굴 보면서 할 말이 있어. 그러니까 될수록 다들 참석해 줬으면 좋겠어.]온지유는 입술을 틀어 물었다.“지난번에 내가 병원에 가서 검진받을 때 우연히 도세원과 마주쳤었어. 걔가 그러는데, 박민재 아들이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대.”사실 도세원의 목적은 박민재를 도와 병원비를 조금이라도 마련해 주려는 것이었다.온지유의 말을 들은 백지희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이제 막 백일 지난 아이가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으니 병원비도 만만치 않게 들 것이다.그녀는 갑자기 온지유에게 기대었다.“지유야, 넌 아무 생각도 하지 마. 제때 검진받고 의사가 주의하라거나 먹지 말라는 음식은 먹지 마, 알았지? 그리고 힘든 일도 하지 말고 앞으로 유독성이 있는 물건도 만지지 마. 혹시 갈 데가 없으면 그냥 우리 집에서 지내. 넌 임산부라서 뭐든 조심해야 한단 말이야.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 분윳값도 내가 전부 낼 거야!”그녀는 요즘 의료
온지유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래도 소용없을 거야. 나랑 이현 씨 사이엔 아무런 감정이 없거든. 네가 노승아 씨를 처리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나타났을 거야.”백지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럼 나도 할 말이 없지.”도우미 아주머니의 요리가 전부 완성되었다.온지유는 별로 많이 먹지 않았지만, 자꾸만 졸음이 밀려왔다.다음 날 아침.온지유와 백지희는 갤러리로 갔다.백지희는 조금 유명세가 있는 화가였던 터라 조금 변장을 하여 왔지만 그래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갤러리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백지희는 온지유의 팔을 놓아주는 수밖에 없었다.“지유야, 너 먼저 돌아가.”말을 마친 뒤 백지희는 다른 곳으로 갔다.백지희가 없으니 혼자가 된 그녀는 너무도 무료했다. 그러나 입구에서 여이현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시선이 마주친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다만 온지유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이현을 지나치려 했다. 그러자 여이현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온지유, 벌써 연기 시작한 거야?”“아니요. 전 그냥 이젠 회사도 그만두었으니 이현 씨 곁에 있기엔 부적절한 것 같아서 그냥 가려던 참이었어요.”온지유는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여이현이 나직하게 말했다.“난 널 찾아온 거야. 나랑 함께 가. 네가 처리해줘야 할 서류가 있으니까.”온지유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여이현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그는 자신이 이렇게 하면 온지유가 따라오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거절하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온지유는 확실히 그의 생각대로 따라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의문을 제기했다.“대표님, 그 서류들은 이채현 씨가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이채현을 멋대로 내 비서로 뽑은 것도 모자라 지금 내 사생활에도 간섭하게 하려는 거야?”여이현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가 내뱉은 말에서는 싸늘함이 느껴졌다. 심지어 그녀는 여이현의 찌푸려진 미간과 서슬 퍼런 눈빛도 상상이 되었다.온지유는 입술을 틀어 물며 답했다.“
그녀의 모습에 여이현은 미간을 찌푸렸다.“병원에 가본다고 하지 않았어?”“네. 약 먹고 있어요.”온지유는 등골이 싸늘해지는 느낌에 침을 꼴깍 삼켰다.눈치 빠른 여이현이 발견하기라도 할까 봐 눈을 마주칠 수조차 없었다.여이연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병원에 가보겠다고 한지도 벌써 두 날이 지났어. 어떤 약을 받았는지 보여줘 봐. 석훈이한테 물어보게. 별 효과 없으면 석훈이한테 괜찮은 약을 부탁해야지.”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칼슘과 엽산이었다.의사인 지석훈에게 보여주면 바로 들킬지도 몰랐다.온지유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이현 씨도 두 날밖에 안 지났다고 했잖아요. 약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더 지나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저번에 저한테 위약을 주셨잖아요.”여이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온지유는 얼른 커피를 그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이번엔 시럽을 안 넣었어요. 맘에 들지 모르겠네요. 저는 방 좀 정리하고 있을게요.”“응.”여이현도 더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온지유가 급히 자리를 피하는 모습을 보고 의심이 들었다.온지유가 타온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온지유는 여이현이 뭐라도 발견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다 어제저녁 백지희 찾으러 간다고 엽산을 까먹고 안 먹은 것이 떠올랐다.딸깍.이제 막 엽산을 먹으려던 순간, 방문이 열렸다.이 소리에 온지유는 그만 손에 쥐고 있던 약병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이어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왔다.여이현의 눈빛은 예리하기만 했다.“약 줘봐.”원래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몰래 약 먹고 있을 줄 몰랐다.당황한 온지유는 여이현이 시키는 대로 약을 건넸다.흰색 알약과 기다란 약 두 가지였다.그냥 봐서는 몰랐기 때문에 설명서를 볼 수밖에 없었다.온지유가 이미 바꿔놓았기 때문에 설명서에는 비타민 A라고 적혀 있었다.“그냥 비타민인데 왜 그렇게 놀라?”여이현은 약병을 쥔 채 예리한 눈빛으로 온지유를 쳐다보았다.온지유가 입술을 깨물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불쑥 들어오면 당연
온지유는 멈칫하고 말았다.여이현이 지금까지 이렇게 다정하게 대한 적 없었기 때문이다.합의서에 3년이 적혀 있지 않았다면, 노승아가 없었다면 이런 행동 때문에 다시 그의 옆에 남고 싶은 충동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온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석훈 씨가 사람 안 잡아먹는 거 알아요. 그런데 정말 괜찮다니까요? 이현 씨, 왜 제 말을 못 믿어요? 제가 어디 아파 보여요? 아님, 제가 임신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온지유가 먼저 입 밖에 꺼냈다.여이현이 물어볼 때마다 부정했던 그녀였다.하지만 이번에 먼저 언급한 것은 여이현이 이 생각을 포기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여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다 며칠 전과는 달리 얼굴색도 안 좋아지고 살도 빠진 것을 발견했다.“이따 도우미 아줌마한테 기력 회복할 수 있는 음식 좀 준비하라고 할게. 며칠 동안은 일단 여기서 지내.”여이현이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온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샤워를 마친 온지유는 밝은 계열의 옷 대신 넓은 체크무늬 원피스 잠옷을 입었다.침대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이현도 그녀의 옆에 누웠다.온지유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안고만 있을게. 가까이 와봐.”어둠 속에서 여이현의 목소리는 더욱 묵직하게 들렸다.하지만 남자의 말은 믿으면 안 되었다.온지유는 그의 손이 배에 닿을까 봐 움직이지도 않았다.“됐어요. 내일이면 예약하러 갈 건데요, 뭐. 오늘만 지나면 내일부터 각방 쓰는 거예요. 저는 이현 씨가 참지 못하고 저를 임신시킬까 봐 두려워요.”여이현은 전처럼 막무가내는 아니었다.“어차피 이혼 숙려기간인데 임신하면 그냥 낳으면 되지.”온지유는 얼어붙고 말았다.‘이혼하기 싫은 건가? 나랑 애까지 낳고 싶은 건가?’노승아만 없었다면 이 말을 믿었겠지만 결국 거절했다.“저는 이현 씨랑 애 낳고 싶지 않아요. 이현 씨, 그냥 이대로 헤어져요. 어차피 각자 원하는 거 있어서 한 계약 결혼이잖아요. 아직 젊을 때 각자 살고 싶은 대
온지유는 야채수프도 끓이고 계란후라이도 준비했다.그리고서 도우미 아줌마와 함께 음식을 식탁으로 옮겼다.여이현도 2층에서 내려왔다.“얼른 와서 아침 먹어요.”이때 마침 햇살이 온지유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여이현은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에 잠깐이나마 행복했다.하지만 이것도 잠시, 아침 식사 이후 예약하러 동사무소로 가야 했다.여이현은 별로 아침 생각이 없었지만 안 먹을 수가 없었다.온지유의 음식솜씨가 워낙 좋아 맛이 괜찮았다.아침 식사 후, 이 둘은 함께 밖으로 향했다.여이현은 직접 운전하기로 했다. 온지유는 처음 혼인 신고했던 그날처럼 조수석에 앉았다.그날은 오늘처럼 날씨가 좋지 않았다.동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결혼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이혼하려면 줄 서야 했다.반 시간 뒤, 그제야 이들의 순서가 돌아왔다.직원은 날짜를 확인하고, 혼인신고서를 보더니 중재에 나섰다.“이제 결혼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왜 이혼하려고 하는 거죠? 혹시 외도 사실이 있었나요?”두 사람은 말이 없었고, 여이현의 표정은 유난히 어두웠다.온지유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 때, 직원이 먼저 물었다.“아이는 있나요? 재산은요? 어떻게 합의하신 거예요?”온지유가 말했다.“외도는 없었고요. 아이도, 재산도 없어요. 그저 단순히 감정이 식어서 이혼하려고 합니다. 이혼숙려기간은 언제쯤이면 끝날까요?”“두 달 뒤요.”온지유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왜 두 달이죠? 이혼숙려기간은 한 달이 아닌가요?”두 달 뒤면 배가 많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빨리 끝내고 싶었다.그때 가서 배불뚝이인 상태에서 여이현은 절대 이혼하지 않으려고 할 수 있었다.직원이 힐끔 보더니 말했다.“지금 예약이 꽉 차있는 관계로 제일 빨라야 두 달 뒤입니다. 이혼 분쟁도 없는데 법원까지 가봤자 해결해 주지 않을 거예요. 차라리 이혼 안 하는 거 어떠세요?”‘법원까지 가봤자 해결해 주지 않을 거라고?’온지유는 머리가 어지러웠다.‘이혼하기 이렇게도 어려워?’온지유는 짜증이
온지유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네. 기뻐요.”일부러 반대로 말했다.여이현은 그녀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괜찮은 방법이라 하면 변호사를 찾는 거?”온지유는 부정하지도 않고 잠깐의 침묵 끝에 말했다.“대표님, 이제 각자 갈 길 가시죠.”온지유는 변호사 찾으러 가야 했다.여이현은 그런 그녀를 순순히 보낼 수는 없었다.“회사에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그래요.”온지유는 더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회사에 도착한 이들은 각자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이채현은 온지유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저는 온 비서님이 안 오는 줄 알았어요.”뒤돌아보니 깔끔하게 정장을 입고 있는 이채현이었다.여이현의 마음에 든 이채현을 직접 뽑은 것도 인수인계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정상이었다.하지만 정작 들으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왠지 모르게 빨리 회사를 그만두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온지유가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아니에요.”이채현은 온지유한테 찰싹 붙으면서 말했다.“온 비서님, 언제 그만두는데요?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온지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여이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채현 씨랑 상관없는 일인 것 같은데요?”이채현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분명 여이현이 대표님 사무실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물어봤는데 결국 그의 귀에 들어갈 줄 몰랐다.이채현은 여이현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하지만 또 설명을 안 할 수 없었다.“대표님, 별다른 뜻이 없었어요.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그녀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여이현은 그녀의 설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오늘부로 해고에요.”이채현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그저 온지유한테서 인수·인계받고 싶어서 물어봤는데 여이현의 심기를 건드릴 줄 몰랐다.이채현은 온지유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온지유는 침묵을 지켰다.여이현이 결정한 일은 아무도 설득할 수 없었다.하지만 마
여이현은 고개도 쳐들지 않았다.“호텔에 가서 금강 그룹 책임자를 픽업해. 점심 식사 장소랑 저녁 식사 장소도 알아보고.”“네.”여이현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온지유는 호텔 주소를 받고 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문을 열려던 순간, 누군가 팔목을 덥석 잡아 깜짝 놀랐다.뒤이어 이채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온 비서님은 저를 직접 뽑아주신 분이시잖아요. 제가 어떤 성격인지 모르세요?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물어본 거잖아요. 정말 진심으로 배우고 싶었다고요. 대표님한테 다시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이채현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주차장에서 기다리면서 온지유든, 배진호든, 여이현이든, 아무나 지나가는 대로 비굴하게 사정해 보기로 했다.하지만 온지유는 동정심 따윈 없었다.“대표님 성격 아시잖아요. 대표님께서 다시 돌아오라고 하시겠어요?”온지유는 이채현 하나 때문에 여이현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마음 약한 사람이라고 놀림당하고 싶지도 않았다.여이현의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그의 용서를 받을 수 없었다.아, 노승아라면 다를 수도 있었다.조금의 희망을 품고 있던 이채현은 온지유의 말을 듣고 그제야 포기하기로 했다.“제가 그런 질문하는 게 뭐가 잘못됐어요? 제가 입사한 날부터 저한테 정확히 말씀해 주셨잖아요. 인수·인계받으려면 언제 그만두시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온 비서님이 적어주신 노트로는 모르겠어서 그래요. 온 비서님, 설마 제가 자리를 뺏었다고 갑자기 그만두기 싫어진 건 아니죠?”“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온지유는 이채현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인제 와서 보니...이채현이 이렇게 본모습을 드러낼 줄 몰랐다.온지유는 더는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이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대표님이에요. 대표님께서 누구를 남기고 싶으면 남기는 것이고, 누구를 쫓아내고 싶으면 쫓아내는 거예요. 아무도 간섭할 수 없어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떻게 하면 더욱 괜찮은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