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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작가: 류한나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그날 이후, 백지희의 그림 전시에서도 한정민이 나타났다. 그는 그녀의 그림도 비싼 값에 사는 등 여러 행동을 보였다.

상대가 분명히 거절했음에도 이렇게까지 한다면 이건 집착이었다.

온지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띠링, 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의 핸드폰에서만 문자가 온 것이 아닌지 백지희도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고 있었다. 대학 동기 단톡방에 도세원이 소식을 올린 것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 조교였던 박민재가 단풍 별장에서 아들 백일잔치를 열 거야. 그래서 그 김에 동창회도 할까 하는 데 참석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참석해줬으면 좋겠어.]

“좀 어이가 없네. 박민재 아들 백일잔치 소식을 왜 박민재가 직접 알리지 않고 도세원이 대신 나서서 말해주는데?”

문자를 읽던 백지희가 바로 투덜댔다.

이때, 대학 동기 단톡방에 있던 사람들이 잇달아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고 도세원이 답장했다.

[박민재는 지금 병원에 있어서 핸드폰 볼 여유가 없어. 난 박민재 대신 백일잔치 소식을 알리고 너희들을 초대하는 것뿐이야. 얘들아, 너희들 얼굴 보면서 할 말이 있어. 그러니까 될수록 다들 참석해 줬으면 좋겠어.]

온지유는 입술을 틀어 물었다.

“지난번에 내가 병원에 가서 검진받을 때 우연히 도세원과 마주쳤었어. 걔가 그러는데, 박민재 아들이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대.”

사실 도세원의 목적은 박민재를 도와 병원비를 조금이라도 마련해 주려는 것이었다.

온지유의 말을 들은 백지희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이제 막 백일 지난 아이가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으니 병원비도 만만치 않게 들 것이다.

그녀는 갑자기 온지유에게 기대었다.

“지유야, 넌 아무 생각도 하지 마. 제때 검진받고 의사가 주의하라거나 먹지 말라는 음식은 먹지 마, 알았지? 그리고 힘든 일도 하지 말고 앞으로 유독성이 있는 물건도 만지지 마. 혹시 갈 데가 없으면 그냥 우리 집에서 지내. 넌 임산부라서 뭐든 조심해야 한단 말이야.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 분윳값도 내가 전부 낼 거야!”

그녀는 요즘 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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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지유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래도 소용없을 거야. 나랑 이현 씨 사이엔 아무런 감정이 없거든. 네가 노승아 씨를 처리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나타났을 거야.”백지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럼 나도 할 말이 없지.”도우미 아주머니의 요리가 전부 완성되었다.온지유는 별로 많이 먹지 않았지만, 자꾸만 졸음이 밀려왔다.다음 날 아침.온지유와 백지희는 갤러리로 갔다.백지희는 조금 유명세가 있는 화가였던 터라 조금 변장을 하여 왔지만 그래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갤러리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백지희는 온지유의 팔을 놓아주는 수밖에 없었다.“지유야, 너 먼저 돌아가.”말을 마친 뒤 백지희는 다른 곳으로 갔다.백지희가 없으니 혼자가 된 그녀는 너무도 무료했다. 그러나 입구에서 여이현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시선이 마주친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다만 온지유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이현을 지나치려 했다. 그러자 여이현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온지유, 벌써 연기 시작한 거야?”“아니요. 전 그냥 이젠 회사도 그만두었으니 이현 씨 곁에 있기엔 부적절한 것 같아서 그냥 가려던 참이었어요.”온지유는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여이현이 나직하게 말했다.“난 널 찾아온 거야. 나랑 함께 가. 네가 처리해줘야 할 서류가 있으니까.”온지유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여이현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그는 자신이 이렇게 하면 온지유가 따라오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거절하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온지유는 확실히 그의 생각대로 따라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의문을 제기했다.“대표님, 그 서류들은 이채현 씨가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이채현을 멋대로 내 비서로 뽑은 것도 모자라 지금 내 사생활에도 간섭하게 하려는 거야?”여이현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가 내뱉은 말에서는 싸늘함이 느껴졌다. 심지어 그녀는 여이현의 찌푸려진 미간과 서슬 퍼런 눈빛도 상상이 되었다.온지유는 입술을 틀어 물며 답했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281화

    그녀의 모습에 여이현은 미간을 찌푸렸다.“병원에 가본다고 하지 않았어?”“네. 약 먹고 있어요.”온지유는 등골이 싸늘해지는 느낌에 침을 꼴깍 삼켰다.눈치 빠른 여이현이 발견하기라도 할까 봐 눈을 마주칠 수조차 없었다.여이연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병원에 가보겠다고 한지도 벌써 두 날이 지났어. 어떤 약을 받았는지 보여줘 봐. 석훈이한테 물어보게. 별 효과 없으면 석훈이한테 괜찮은 약을 부탁해야지.”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칼슘과 엽산이었다.의사인 지석훈에게 보여주면 바로 들킬지도 몰랐다.온지유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이현 씨도 두 날밖에 안 지났다고 했잖아요. 약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더 지나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저번에 저한테 위약을 주셨잖아요.”여이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온지유는 얼른 커피를 그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이번엔 시럽을 안 넣었어요. 맘에 들지 모르겠네요. 저는 방 좀 정리하고 있을게요.”“응.”여이현도 더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온지유가 급히 자리를 피하는 모습을 보고 의심이 들었다.온지유가 타온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온지유는 여이현이 뭐라도 발견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다 어제저녁 백지희 찾으러 간다고 엽산을 까먹고 안 먹은 것이 떠올랐다.딸깍.이제 막 엽산을 먹으려던 순간, 방문이 열렸다.이 소리에 온지유는 그만 손에 쥐고 있던 약병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이어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왔다.여이현의 눈빛은 예리하기만 했다.“약 줘봐.”원래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몰래 약 먹고 있을 줄 몰랐다.당황한 온지유는 여이현이 시키는 대로 약을 건넸다.흰색 알약과 기다란 약 두 가지였다.그냥 봐서는 몰랐기 때문에 설명서를 볼 수밖에 없었다.온지유가 이미 바꿔놓았기 때문에 설명서에는 비타민 A라고 적혀 있었다.“그냥 비타민인데 왜 그렇게 놀라?”여이현은 약병을 쥔 채 예리한 눈빛으로 온지유를 쳐다보았다.온지유가 입술을 깨물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불쑥 들어오면 당연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282화

    온지유는 멈칫하고 말았다.여이현이 지금까지 이렇게 다정하게 대한 적 없었기 때문이다.합의서에 3년이 적혀 있지 않았다면, 노승아가 없었다면 이런 행동 때문에 다시 그의 옆에 남고 싶은 충동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온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석훈 씨가 사람 안 잡아먹는 거 알아요. 그런데 정말 괜찮다니까요? 이현 씨, 왜 제 말을 못 믿어요? 제가 어디 아파 보여요? 아님, 제가 임신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온지유가 먼저 입 밖에 꺼냈다.여이현이 물어볼 때마다 부정했던 그녀였다.하지만 이번에 먼저 언급한 것은 여이현이 이 생각을 포기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여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다 며칠 전과는 달리 얼굴색도 안 좋아지고 살도 빠진 것을 발견했다.“이따 도우미 아줌마한테 기력 회복할 수 있는 음식 좀 준비하라고 할게. 며칠 동안은 일단 여기서 지내.”여이현이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온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샤워를 마친 온지유는 밝은 계열의 옷 대신 넓은 체크무늬 원피스 잠옷을 입었다.침대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이현도 그녀의 옆에 누웠다.온지유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안고만 있을게. 가까이 와봐.”어둠 속에서 여이현의 목소리는 더욱 묵직하게 들렸다.하지만 남자의 말은 믿으면 안 되었다.온지유는 그의 손이 배에 닿을까 봐 움직이지도 않았다.“됐어요. 내일이면 예약하러 갈 건데요, 뭐. 오늘만 지나면 내일부터 각방 쓰는 거예요. 저는 이현 씨가 참지 못하고 저를 임신시킬까 봐 두려워요.”여이현은 전처럼 막무가내는 아니었다.“어차피 이혼 숙려기간인데 임신하면 그냥 낳으면 되지.”온지유는 얼어붙고 말았다.‘이혼하기 싫은 건가? 나랑 애까지 낳고 싶은 건가?’노승아만 없었다면 이 말을 믿었겠지만 결국 거절했다.“저는 이현 씨랑 애 낳고 싶지 않아요. 이현 씨, 그냥 이대로 헤어져요. 어차피 각자 원하는 거 있어서 한 계약 결혼이잖아요. 아직 젊을 때 각자 살고 싶은 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283화

    온지유는 야채수프도 끓이고 계란후라이도 준비했다.그리고서 도우미 아줌마와 함께 음식을 식탁으로 옮겼다.여이현도 2층에서 내려왔다.“얼른 와서 아침 먹어요.”이때 마침 햇살이 온지유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여이현은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에 잠깐이나마 행복했다.하지만 이것도 잠시, 아침 식사 이후 예약하러 동사무소로 가야 했다.여이현은 별로 아침 생각이 없었지만 안 먹을 수가 없었다.온지유의 음식솜씨가 워낙 좋아 맛이 괜찮았다.아침 식사 후, 이 둘은 함께 밖으로 향했다.여이현은 직접 운전하기로 했다. 온지유는 처음 혼인 신고했던 그날처럼 조수석에 앉았다.그날은 오늘처럼 날씨가 좋지 않았다.동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결혼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이혼하려면 줄 서야 했다.반 시간 뒤, 그제야 이들의 순서가 돌아왔다.직원은 날짜를 확인하고, 혼인신고서를 보더니 중재에 나섰다.“이제 결혼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왜 이혼하려고 하는 거죠? 혹시 외도 사실이 있었나요?”두 사람은 말이 없었고, 여이현의 표정은 유난히 어두웠다.온지유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 때, 직원이 먼저 물었다.“아이는 있나요? 재산은요? 어떻게 합의하신 거예요?”온지유가 말했다.“외도는 없었고요. 아이도, 재산도 없어요. 그저 단순히 감정이 식어서 이혼하려고 합니다. 이혼숙려기간은 언제쯤이면 끝날까요?”“두 달 뒤요.”온지유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왜 두 달이죠? 이혼숙려기간은 한 달이 아닌가요?”두 달 뒤면 배가 많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빨리 끝내고 싶었다.그때 가서 배불뚝이인 상태에서 여이현은 절대 이혼하지 않으려고 할 수 있었다.직원이 힐끔 보더니 말했다.“지금 예약이 꽉 차있는 관계로 제일 빨라야 두 달 뒤입니다. 이혼 분쟁도 없는데 법원까지 가봤자 해결해 주지 않을 거예요. 차라리 이혼 안 하는 거 어떠세요?”‘법원까지 가봤자 해결해 주지 않을 거라고?’온지유는 머리가 어지러웠다.‘이혼하기 이렇게도 어려워?’온지유는 짜증이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284화

    온지유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네. 기뻐요.”일부러 반대로 말했다.여이현은 그녀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괜찮은 방법이라 하면 변호사를 찾는 거?”온지유는 부정하지도 않고 잠깐의 침묵 끝에 말했다.“대표님, 이제 각자 갈 길 가시죠.”온지유는 변호사 찾으러 가야 했다.여이현은 그런 그녀를 순순히 보낼 수는 없었다.“회사에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그래요.”온지유는 더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회사에 도착한 이들은 각자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이채현은 온지유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저는 온 비서님이 안 오는 줄 알았어요.”뒤돌아보니 깔끔하게 정장을 입고 있는 이채현이었다.여이현의 마음에 든 이채현을 직접 뽑은 것도 인수인계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정상이었다.하지만 정작 들으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왠지 모르게 빨리 회사를 그만두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온지유가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아니에요.”이채현은 온지유한테 찰싹 붙으면서 말했다.“온 비서님, 언제 그만두는데요?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온지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여이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채현 씨랑 상관없는 일인 것 같은데요?”이채현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분명 여이현이 대표님 사무실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물어봤는데 결국 그의 귀에 들어갈 줄 몰랐다.이채현은 여이현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하지만 또 설명을 안 할 수 없었다.“대표님, 별다른 뜻이 없었어요.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그녀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여이현은 그녀의 설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오늘부로 해고에요.”이채현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그저 온지유한테서 인수·인계받고 싶어서 물어봤는데 여이현의 심기를 건드릴 줄 몰랐다.이채현은 온지유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온지유는 침묵을 지켰다.여이현이 결정한 일은 아무도 설득할 수 없었다.하지만 마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285화

    여이현은 고개도 쳐들지 않았다.“호텔에 가서 금강 그룹 책임자를 픽업해. 점심 식사 장소랑 저녁 식사 장소도 알아보고.”“네.”여이현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온지유는 호텔 주소를 받고 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문을 열려던 순간, 누군가 팔목을 덥석 잡아 깜짝 놀랐다.뒤이어 이채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온 비서님은 저를 직접 뽑아주신 분이시잖아요. 제가 어떤 성격인지 모르세요?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물어본 거잖아요. 정말 진심으로 배우고 싶었다고요. 대표님한테 다시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이채현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주차장에서 기다리면서 온지유든, 배진호든, 여이현이든, 아무나 지나가는 대로 비굴하게 사정해 보기로 했다.하지만 온지유는 동정심 따윈 없었다.“대표님 성격 아시잖아요. 대표님께서 다시 돌아오라고 하시겠어요?”온지유는 이채현 하나 때문에 여이현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마음 약한 사람이라고 놀림당하고 싶지도 않았다.여이현의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그의 용서를 받을 수 없었다.아, 노승아라면 다를 수도 있었다.조금의 희망을 품고 있던 이채현은 온지유의 말을 듣고 그제야 포기하기로 했다.“제가 그런 질문하는 게 뭐가 잘못됐어요? 제가 입사한 날부터 저한테 정확히 말씀해 주셨잖아요. 인수·인계받으려면 언제 그만두시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온 비서님이 적어주신 노트로는 모르겠어서 그래요. 온 비서님, 설마 제가 자리를 뺏었다고 갑자기 그만두기 싫어진 건 아니죠?”“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온지유는 이채현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인제 와서 보니...이채현이 이렇게 본모습을 드러낼 줄 몰랐다.온지유는 더는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이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대표님이에요. 대표님께서 누구를 남기고 싶으면 남기는 것이고, 누구를 쫓아내고 싶으면 쫓아내는 거예요. 아무도 간섭할 수 없어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떻게 하면 더욱 괜찮은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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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하임은 바로 등을 돌렸다.온지유는 이쪽 상황을 사실대로 여이현에게 알렸다.“저희 쪽에서 자꾸 책임자를 바꿔서 대표님께서 직접 오시라는데요?”온지유는 중점만 말했다.만약 여이현이 이번 비즈니스를 잡고 싶다면 직접 와야 했고 별로 잡고 싶지 않다면 모른 척하면 되었다.온지유는 이 틈을 타 변호사를 알아보러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여이현이 바로 이렇게 말할 줄 몰랐다.“그냥 돌아와.”엄숙한 말투를 봐서는 전혀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다.“네.”온지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다시 사무실로 돌아갔을 때, 여이현은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온지유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다른 거 해야 할 거 있을까요?”여이현이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바람에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하지만 말은 또박또박 잘 들렸다.“왜 상대방이 보자마자 그런 요구를 한 건데?”의심하는 말투에 온지유가 냉랭하게 대답했다.“저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의심된다면 직접 상대방에게 물어보시든가요.”온지유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사실 속상했다.그래도 몇 년 동안 함께한 정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여이현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담배만 피울 뿐이다.온지유는 계속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담배 연기는 산모한테도, 태아한테도 해로웠다.“대표님, 별다른 일이 없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온지유가 뒤돌아 나가려고 하자 여이현이 말했다.“새로 뽑는 비서 내 마음에 들어야 해.”“네.”온지유는 이 말에 동의했다.하지만 이력서를 아무리 보여줘도 여이현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온지유가 질문했다.“제가 비즈니스를 망쳤다고 생각하시면 대표님은요?”전에 여이현은 그만두겠으면 괜찮은 사람을 뽑아놓고 가라고 했다. 그런데 어렵게 이채현을 들였더니 꺼지라고 할 줄이야.이력서를 아무리 보여줘봤자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일부러 가지 못하게 핑계를 대는 줄 알았다.이력서를 제출한 사람들이 전부 명문대 출신이어도 말이다.여이현이 차갑게 말했다.“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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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끔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물었다.“여사님, 동사무소에 가서 이미 예약하셨으면 기다리시면 되잖아요. 상대 배우자가 이혼할 의향이 없으시면 절차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온지유가 진지하게 말했다.“저는 최대한 빨리 이혼하고 싶은데 얼마를 드리면 가능할까요?”2개월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온지유는 마음이 급했다.변호사가 온지유의 반응을 보더니 말했다.“한쪽만 급해하시는 걸 보니 상대방은 이혼을 원하지 않는가 봐요. 아니면 외도라도 하셨나요?”온지유가 부정했다.“저는 외도한 적 없습니다. 처음부터 계약 결혼이었고 상대방은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억지로 결혼 사실을 숨기는 것도 힘들고 아무런 감정 없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도 지겹네요. 아이도 없고 재산분할도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저 최대한 빨리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결혼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말에 변호사는 그제야 관심을 가졌다.재벌가만이 이런 행동을 하기 때문에 어쩌면 큰돈을 뜯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먼저 저희 비서님이랑 이혼 소송서류를 작성하도록 할게요.”“네.”온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몇 분도 안 지나 온지유는 이혼 소송서류를 들고 다시 찾아왔다.“나 변호사님.”비서님한테서 변호사 성씨가 나 씨라는 것을 들었다.나 변호사는 이혼소송 서류에 적혀 있는 피고인 여이현의 이름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아무리 봐도 상대는 여이현이 맞았다. 온지유가 말했던 결혼 계약서도 그가 직접 여이현에게 작성해 준 것이다.그가 말이 없자 온지유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이혼소송 서류에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요?”“아니요. 일단 돌아가 주시면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그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온지유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감사합니다. 나 변호사님.”온지유가 떠나고, 나도현은 바로 여이현에게 전화했다.여이현이 전화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 전화기 너머에서 여이현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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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무열은 김혜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걱정 끼쳐서 미안해.”“무열 씨, 제발 꼭 좋아져야 해요. 이렇게 날 떠나면 안 돼요. 우리... 우리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다 아쉬움으로 남았잖아요.”김혜연은 신무열을 꼭 끌어안으며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간절히 말했다.그녀는 정말로 두려웠다.만약 신무열의 마음속에 모든 분야에 출중한 완벽한 존재가 있었다면 그녀는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아린의 경우는 달랐다. 모든 조건을 떼어 놓고 보면 말이다.김혜연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졌지만 선택을 하지 않은 건 그녀 자신이었다.김혜연은 신무열의 남은 생이 죄책감 속에서 허비되지 않기를 바랐다.신무열은 김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네가 하려는 말 다 알아. 걱정하지 마. 나도 최선을 다해 이전의 일들에서 벗어나려고 할게.”김혜연은 그런 문제들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신무열은 그녀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이때, 인명진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신무열의 약물 의존은 법로가 책임지고 있었고, 인명진은 그의 심리 치료를 맡게 되었다.신무열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아린이 자신의 품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마음의 상처를 도저히 치유할 수 없었다.인명진은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그는 최면을 통해 신무열의 내면을 하나씩 풀어가며 그의 마음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신무열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누구도 죽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저 때문에 죽어가요. 죽음이 이렇게도 불공평하고 아무 소리도 없이 다가온다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신무열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나왔다.인명진은 낮은 목소리로 그를 위로했다.“모든 일에는 아쉬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무열 씨는 최선을 다했고 아린을 방치한 것도 아니었잖아요. 현실은 잔혹해요. 무열 씨에게는 방법이 없었고, 아린에게는 죽음이 오히려 해방이었을지도 모르죠.”“노예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은 수천, 수만 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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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무열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통스럽게 절규했다.그의 이런 모습을 본 온지유는 가슴이 찢어졌다. 매일 곁에서 지켜보는 김혜연에게는 더 큰 고통이었다.온지유는 신무열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오빠, 그건 오빠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아요...”하지만 신무열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힘겹게 말했다.“아니, 내 잘못이야. 만약 내가 더 잘했다면 아린은 희생하지 않았을 거야. 죽음을 많이 봐왔지만 이번처럼 고통스러운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지유야, 너도 알잖아? 난 아린이 눈앞에서 죽는 걸 직접 봤어...”그의 목소리는 쉰 듯한 낮은 톤으로 하나하나 쏟아져 나왔고, 온지유는 처음으로 신무열이 이렇게 절망하는 모습을 보게됐다.도와주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그녀는 무력감을 느꼈다.신무열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스스로를 해칠까 두려웠던 온지유는 급히 법로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법로는 실험실 사람들과 함께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신무열의 상태를 본 법로는 마음이 아팠다.신무열은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다!상태를 점검한 법로는 신무열이 몰래 페노바르비탈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더욱 심각한 것은, 이 약물은 한때 법로거 개량했던 중독성을 유발하는 형태였다는 점이었다.신무열의 방금 전 감정 폭발은 약을 제때 복용하지 못해 나타난 금단 증상이었다.법로는 즉시 실험실의 약물 사용 규정을 엄격히 강화했다.앞으로는 모든 약물 사용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령했다.또한, 신무열이 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철저히 관리했다.신무열은 Y국의 수령으로, 많은 이들이 그를 끌어내리고 새 인물을 세우고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만약 그의 약물 복용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반드시 정치적으로 이용될 것이 분명했다.김혜연은 신무열의 곁을 지키고 싶었지만 법로가 이를 막아섰다.“신무열이 자리를 비우는 건 공적인 이유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네가 자리를 비우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61화

    케빈은 단 한 가지 뜻만을 품고 있었다.반드시 Y국을, 그리고 신무열을 지키겠다는 결심이었다.신무열과 이 나라는 그의 누나 아린이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케빈이 떠나는 날 온지유가 그를 배웅하러 나왔다.케빈은 돈도, 지위도, 그 외의 물질적인 것들은 모두 원하지 않았다.온지유가 케빈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직접 구해 온 평안을 비는 부적뿐이었다.“케빈, 국경은 힘든 곳이야. 건강히 지내야 해. 네 누나는 떠났지만 우리는 언제까지나 네 가족이야. 언제든 돌아와도 돼.”온지유의 말에 케빈은 미소를 지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누나가 죽은 이상 이곳에는 더 이상 자신의 집은 없었다.온지유가 그렇게 말해줬지만 그들에게도 자신들만의 삶이 있었다.케빈은 이제 네다섯 살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케빈이 떠난 뒤 아린에 관한 일은 잘 마무리되었다.하지만 온지유는 신무열의 정신 상태를 걱정해 한동안 Y국에 머물렀다.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졌다.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고 표정은 지쳐 보였으며 전혀 활기가 없었다.온지유는 더 이상 그를 방치할 수 없었다.“이렇게 지내는 건 정말 위험해 보여요. 밤마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거죠? 도저히 안 되겠으면 내가 명진 씨에게 연락해서 좀 봐달라 할게요.”신무열의 성격상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문제를 말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인명진이라면 다를 것이다. 같은 또래라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었다.“아무것도...”신무열은 온지유에게 솔직히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그의 말을 김혜연이 끊어버렸다.“어떻게 아무 일도 없겠어요! 밤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계속 아린을 되뇌고 있잖아요! 무열 씨, 지금 당신은 아직도 아린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잖아요!”신무열은 전쟁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김혜연도 아린이 신무열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60화

    케빈은 여전히 고집스러운 태도로 소리쳤다.“제 생각은 달라요! 당신들은 신분 문제 때문에 제 누나를 구하려 하지 않은 거예요!”법로는 조용히 말했다.“미안하다. 과거에 내가 너무 집착했었지.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자 하는 욕망,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했던 욕심... 하지만 결국 그것들은 내가 만든 환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네 누나의 죽음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하지만 Y국의 발전은 멈출 수 없다. 네가 원한다면 그들을 너에게 넘겨주게 할 것이다. 또 너에게 필요한 보상도 줄 거고 내가 방금 한 약속들도 모두 지킬 테다.”법로는 한숨을 쉬며 케빈 쪽으로 걸어갔다.그는 이미 결심했다. 만약 케빈이 자신에게 손을 올리거나 목숨을 원한다면 그는 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는 저항하지 않을 것이고 온지유와 신무열에게도 케빈을 막지 말라고 당부할 생각이었다.비록 법로는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온지유와 신무열은 이미 그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케빈! 네 누나를 죽게 한 건 우리가 아니야! 너희는 Y국의 국민이잖아. 네 누나가 무열 씨에게 사랑이 없었다 해도 애국심은 분명히 있었을 거야. 안그래?”온지유의 말은 케빈의 마음을 찔렀다. 그는 과거 자신과 아린이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아린은 신무열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품고 있었고, 신무열과 관련된 모든 소식을 모았다.신문에서 오려낸 사진들, 비디오에서 캡처한 화면, 심지어 직접 인쇄한 이미지까지.케빈은 그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누나와 선생님의 신분 차이가 이렇게 큰데 집착하는 이유가 뭐야? 설마 나중에는 선생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하는 건 아니지?”그는 자신의 말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아린이 그때 했던 대답이 선명하게 기억났다.“내가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선생님은 이 나라를 이끄는 사람이셔. 만약 내가 선생님을 위해 죽는다면 그건 모두를 위한 죽음이고 정말 영광스러운 일일 거야.”온지유가 같은 이야기를 꺼내고 나서야 케빈은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59화

    케빈은 고통 속에서 절규했다.노예 수용소에는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결국 그들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Y국에는 그렇게 많은 약초가 있는데 그의 누나 하나 살리지 못했다는 말인가?결국 케빈은 그의 누나가 신무열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녀가 신무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려워해서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케빈은 가슴을 움켜쥐며 외쳤다.“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고, 그렇게 많은 실험을 해왔잖아요. 그런데 왜 제 누나만큼은 구하지 않으려 한 거죠?”이성을 잃은 케빈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를 상황에 신무열은 법로 앞에 서서 그를 막아섰다.그의 목소리는 처연했다.“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네 누나를 살리지 못한 건 내 무능함의 결과다. 복수를 원한다면 내 목숨을 가져가.”신무열의 눈빛은 확고했다.“안 돼요! 당신은 지금 Y국의 수령이에요. 꼭 누군가 죽어야 분이 풀리겠다면 차라리 제 목숨을 가져가세요!”김혜연은 신무열을 사랑했다. 그녀는 신무열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었다.그녀는 즉시 두 팔을 벌려 신무열을 막아섰다.그들은 이제 막 신혼이었다. 결혼식에는 다른 목적이 있었고, 신혼 첫날밤도 여러 사정으로 아쉬웠다.이제 둘 중 하나라도 죽는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처참한 비극으로 끝날 것이다.이때 법로가 앞으로 나섰다.“내가 네 누나를 구하지 못한 게 문제다. 나를 죽여라.”그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신무열은 법로가 가장 신뢰하는 후계자였고 Y국의 미래는 모두가 인정할 만큼 밝았다.신무열이 죽는다면 이는 나라의 큰 손실이 될 것이다.법로는 자신이 죽더라도 신무열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삶을 이어가야 한다.신무열과 김혜연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잘못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며 법로는 그 모든 책임을 자신이 감당하겠다고 했다.케빈은 자신의 누나가 죽은 것에 대한 슬픔과 분노로 마음의 균형을 잃었다.그가 정말로 법로나 신무열을 죽이기라도 한다면 나라 전체의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58화

    이것은 신무열이 해줄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동시에 가장 무력한 축복이었다.처음엔 아린의 독을 법로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법로에게는 아무런 방법도 없었고 결국 그는 아린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신무열은 아린의 곁에서 밤을 지새우고 마지막엔 직접 그녀를 안치했다.김혜연은 그를 찾지 않았다.그녀는 신무열이 지금 힘들어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충분히 이해하며 기다릴 수 있었다.삶은 원래 아쉬움이 남는 법이었다.돌아온 신무열을 김혜연은 꼭 끌어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의 침묵은 가벼운 몇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었다.“샤워하고 푹 자요. 살아 있는 우리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Y국의 사람들은 아직 우릴 필요로 하니까요.”김혜연은 신무열의 내조자로서 Y국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도울 각오를 하고 있었다.신무열은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목이 막혀오고 가슴은 무거운 돌을 얹은 것처럼 답답했다.심혜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린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자신의 목숨을 바쳐 당신에게 해를 끼치려던 사람들을 막아줬잖아요.”만약 아린이 자신의 목숨을 아끼는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그들과 협력해 신무열을 해쳤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아린은 그러지 않았다.그녀 덕분에 신무열은 위협의 존재를 미리 알아차리고 그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무열 씨, 우리 앞으로 매년 아린 산소에 찾아가고 가족도 잘 보살펴줘요.”“그래.”“신혼 첫날 밤인데... 미안해.”천천히 입을 연 신무열의 목소리는 몹시 가라앉아 있었다.아린은 진심으로 그를 위해 생명을 바쳤지만 김혜연 역시 진심으로 그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심지어 결혼식과 신혼 첫날밤에도 그는 다른 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김혜연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이해해요. 모든 걸 알고 있는 제가 어떻게 무열 씨를 원망할 수 있겠어요? 이번 결혼식은 원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 것이잖아요. 난 전혀 신경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57화

    “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큰 부담을 가지지 마요.”온지유는 김혜연을 다독이며 말했다.김혜연은 곧 마음속 불안했던 감정을 털어내고 안정을 되찾았다.그들의 결혼식은 화려하게 열렸고 신무열은 이 기회를 이용해 아린에게 독을 투입한 범인들을 찾아냈다.그는 그들에게 조건을 내걸었다.“목숨은 살려줄 테니 해독제를 내놔.”결혼식은 일부러 범인들에게 자신이 행복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한 연출이었다.그들은 허상에 속아 방심해 결국 덫에 걸려들었다.“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곁에 있는 법로조차도 해독제를 못 개발했나봐? 그런데 우리에게 있을 리가 없잖아.”만약 해독제가 있었다면 법로는 이미 아린을 살렸을 것이다.지금 아린은 며칠밖에 못 살아갈 상태였다.그들은 아린을 이용해 정보를 얻은 후 그녀를 제거하려고 했지만 아린은 신무열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했다.심지어 그녀는 죽음을 선택하더라도 신무열을 해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더군다나 신무열이 자신의 결혼식을 덫으로 사용해 이들을 잡아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신무열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다.“해독제가 없다면 너희도 죽어야지.”그는 총알을 장전하고 무기를 아린에게 건넸다. 직접 복수하는 것만큼 후련한 건 없다.하지만 아린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이들을 처치한다고 해도 자신의 삶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신무열이 직접 건네준 무기였기에 아린은 그의 뜻을 따랐다.‘탕! 탕! 탕!’눈앞의 사람들은 총소리와 함께 차례로 쓰러졌다.그러나 아린은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뒤로 쓰러졌다.신무열 재빨리 그녀를 부축했다.그 순간 아린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고, 눈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신무열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외쳤다.“누구 없어! 빨리 이쪽으로 와!”아린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요, 신무열 선생님.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버티려고 했는데 자신을 과대평가했나 봐요... 기대 같은 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아린은 애초에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56화

    법로의 표정은 여전히 엄숙했다.온지유는 이런 소식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금 이 상황에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지금은 침묵이 가장 좋은 답변일지도 모른다.신무열 또한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아린에게 꼭 살리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신무열은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힌 채 아린이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미안해. 한 몸 바쳐 중요한 정보를 전해준 네 목숨을 결국 지킬 수 없었어.”아린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몸속의 독으로 인해 얼굴은 이미 다 망가졌지만, 신무열이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렇게 대단한 정보도 아니에요. 제가 말하지 않아도 결국 무열 씨는 모든 걸 알게 됐을 거예요.”그녀는 자처해서 한 것이었고 이 일로 인해 신무열이 어떤 마음의 짐도 가지지 않길 바랐다.신무열은 보이지 않는 손에 심장이 쥐어 짜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자신을 위해 한 몸 바쳐 싸운 아린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에 목이 막혔다. 따로 방법이 없다면 이대로 그녀가 죽어 가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신무열은 그녀가 어떤 후회도 남기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결심했다.신무열은 아린에게 약속했다.“내 무능함 때문에 네 독을 풀어주지 못했지만 걱정하지 마. 나는 절대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놈들한테 건 현상금도 아직 유효해. 정 안 된다면... 내가 반드시 복수해 줄게.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나에게 말해줘.”신무열의 눈빛은 확고했다.아린이 어떤 소원이든 말하든 그는 반드시 그것을 이뤄줄 생각이었다.아린은 신무열이 김혜연과 결혼할 것을 알고 있었다.그랬기에 두 사람을 곤란하게 하거나 결혼 전에 그의 마음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아린은 끝까지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신무열 선생님, 제가 당신에게 이 정보를 전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당신이 저를 살리려 노력해 주고 제 곁에 있어 준 것만으로도 충분해요.”“혜연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55화

    온지유는 참지 못하고 농담을 던졌다.“결혼 후엔 아이도 빨리 낳아야겠네요.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나도 좀 같이 놀아줘야죠.”“넌 이제 Y국에 있지도 않고 아버지도 같이 경성에 갔잖아. 차라리 Y국으로 와. 내가 널 고용할게.”신무열은 단숨에 말을 이어갔다.사실 거리가 그들 사이의 큰 걸림돌이었다. 온지유가 경성에 남기로 한 건 그녀의 선택이지만 신무열은 그녀가 Y국에 머물러 주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Y국은 그들의 뿌리와 영혼이 있는 곳이며 오빠로서 여동생에게 여러모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온지유도 신무열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이현이 경성에 있고 양부모도 그곳에 있는 온지유에게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게다가 온지유는 Y국을 관리하는 일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온지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형수가 아이를 낳게 되면 내가 와서 돌봐줄게요.”두 사람에겐 어머니가 없었고 신무열의 능력으로 아이가 태어날 때 산후조리사는 고용할 수 있다 해도 가족의 보살핌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김혜연은 온지유가 ‘형수’라 부르는 말에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신무열이 자신을 인정해 주고 신무열 곁의 모든 사람이 그녀를 받아들여 주고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웠다.신무열은 아린의 문제에 대해 법로에게 말할 필요가 있었다.“아버지, 제 친구가 노석명이 개발한 독약의 개량품에 감염되었습니다. 직접 한 번 살펴봐 주실 수 있을까요?”법로는 노석명의 이름을 듣고는 눈빛이 어두워졌다.“노석명의 독약이라니? 그놈은 이미 처형되어 사람의 형체조차 잃고 혀마저 잘려 매일 돼지처럼 살고 있다. 노석명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이냐?”혹은, 눈치도 없는 누군가가 아직도 노석명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는 것일지도 몰랐다.한편, 온지유는 ‘아린’이라는 이름을 듣자 과거 Y국 북부에서 처음 신무열을 만났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내가 아는 그 아린 맞아요?”“그래.”신무열은 숨기지 않았다.당시 전쟁 중에 아린은 온지유에게 식사를 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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