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진 소리와 함께 뚱보의 얼굴이 변형되었고 우람한 체구가 순식간에 수 미터 날아가 쇠창살 문에 부딪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코와 입이 비뚤어지면서 얼굴 전체가 변형되었고 이도 잔뜩 빠진 게 모양새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망했어!”죽은 개처럼 바닥에 엎드린 화려한 복장의 뚱보를 본 사람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뚱보가 딱히 재주는 없어도 교도소 소장의 처남인 건 사실이었다. 그를 때렸다는 건 교도소 소장을 건드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고통 없이 죽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바람이었다.“젊은이, 방금 아주 큰 사고를 쳤어.”여윈 노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너... 야 이 미친놈아! 우린 악당파야, 광인파가 아니라!”대머리 남자는 울먹이며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기세였다.“망했어, 망했어. 관리인을 때렸으니 이젠 우리도 따라서 재수 없겠네.”뭇사람들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냥 평범한 신입이 들어온 줄 알았는데 불길한 놈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감방에 들어오자마자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사람을 건드렸으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저지른 일은 저 혼자 책임집니다.”뚱보를 처리한 후 유진우는 손을 툭툭 털고 다시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젊은이, 오늘 이 죄는 아마 책임지지 못할걸?”여윈 노인이 고개를 내저었다.“블랙 프리즌의 교도소 소장이 누군지 알아? 무도 마스터 경지의 고수이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미쳐 날뛰는 사람이야. 그때 난 그 사람에게 잡혀서 여기 블랙 프리즌에 들어왔고 7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어. 마지막에는 내 견갑골까지 봉인하면서 그동안의 수련을 봉인해버렸어. 그 바람에 난 지금도 매일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이건 직접 겪어보지 못하면 영원히 몰라. 그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그 사람 손에 잡히면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아. 만약 여기가 지옥이라면 그 사람이 바로 가장 흉악하고 잔인한 염라대왕이야.”그의 말에 주변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등
조씨 별장의 어느 한 서재.“아빠, 정말로 윤지 언니를 선우희재에게 시집보내려고요?”조선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얼마 전에 갑자기 들은 소식인데 조씨 가문에서 선우 가문과의 결혼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번 혼인의 대상이 조윤지와 선우희재로 바뀌었다.“블랙지존이 죽었어도 선우 가문은 여전히 큰 골칫거리야. 이번에 선우 가문에서 또 정략결혼을 제안했고 게다가 상대로 윤지를 선택해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어.”조군수가 고개를 내저었다.“큰아버지는 뭐라 안 하시던가요? 자기 딸이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걸 보고만 있겠대요?”조선미가 캐물었다.“문제가 바로 그거야.”조군수가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네 큰아버지와 사촌 언니는 정략결혼을 아주 통쾌하게 동의했어. 게다가 조씨 가문의 어른들까지 지지해서 난 간섭할 수가 없었어.”“네? 동의했다고요?”조선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선우 가문에서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걸 모른대요?”“나도 이해득실을 분석해줬지만 그 사람들의 결정을 바꾸지 못했어. 계속 말렸다간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만들 수 있어.”조군수도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정략결혼 얘기를 들었을 때 조군수는 당연히 강하게 반대했었다. 하지만 조군해와 조윤지는 그의 충고를 듣지 않았고 가족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크게 떠벌리곤 했다. 결국 양측은 얼굴을 붉힌 채로 헤어졌다.“흥. 윤지 언니는 정말 돈에 눈이 멀었어요.”조선미가 싸늘하게 말했다.“선우희재와 결혼하면 장군 부인이 되어 벼락출세할 거라고 생각하나 봐요? 순진하긴.”“됐어. 이미 결정 난 일을 뭐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우린 그냥 미리 준비나 해야지.”조군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 두 부녀가 선우 가문에게 이용당하지만 않길 바랄 뿐이에요.”조선미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선우희재가 한발 물러서서 먼저 정략결혼을 제안했다는 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보이는 창은 피하기 쉽지만 몰래 쏘는 화살은 막기
“하용만의 부관? 그자가 왜?”로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옥졸이 고개를 숙였다.“됐어. 그냥 들어오라고 해.”로스가 들여보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알겠습니다.”옥졸은 대답을 마친 후 바로 나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 옷차림의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소장님을 뵙습니다.”회색 옷차림의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다.눈앞의 이 사람은 일반 교도소의 소장이 아니다. 권력이 어마어마할 뿐만 아니라 인맥도 넓어서 총독마저 그의 눈치를 봐야 한다.“무슨 일로 날 찾아왔어요?”로스가 다리를 꼬고 물었다.“소장님, 전 총독님의 명을 받고 한 사람을 데리러 왔습니다.”회색 옷차림의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사람을 데리러 왔다고요? 그게 누군데요?”로스가 되물었다.“유진우라는 젊은이입니다.”회색 옷차림의 남자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유진우?”로스가 실눈을 뜨고 말했다.“미안하지만 그 사람은 풀어줄 수 없어요. 블랙 프리즌은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는 곳이고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철칙이에요.”“소장님, 어떻게 좀 봐주면 안 될까요? 그 사람만 풀어준다면 총독님께서 크게 사례하실 겁니다.”회색 옷차림의 남자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나라에는 국법이 있고 가정에는 가법이 있어요. 내가 총독님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게 아니라 블랙 프리즌의 규정을 어길 수 없어서 그래요. 돌아가서 총독님께 죄송하다고 전해요. 마음속으로는 도와주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로스가 덤덤하게 말했다.“소장님,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게 규정이에요. 산 사람은 계속 살아야죠...”회색 옷차림의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로스가 가로챘다.“뭐죠? 지금 나더러 고의로 법을 어기라는 겁니까? 이 사실이 연경에 퍼지기라도 한다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그건...”회색 옷차림의 남자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서울에서는 총독의 권력을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더할 나위 없이 높은 자리에 있지만 연경의 형부
“으악...”벽에 걸려있는 로스를 보며 회색 옷차림의 남자와 옥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블랙 프리즌의 소장이자 무도 마스터 경지의 강자가 누군가에게 따귀를 맞아 튕겨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벽에 박힌 바람에 꼼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실로 충격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다.놀란 그들이 고개를 돌리자 눈에 들어온 건 아리따운 얼굴의 여자였다. 은색의 단발머리에 빨간 무사 도복 차림이었고 등 뒤의 삼척 청봉검이 진동하고 있었다. 늠름하고 위풍당당한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여자 무신 같았다.특히 상대를 안중에 두지 않는 그녀의 눈빛이 어찌나 차갑고 날카로운지 감히 쳐다볼 수도 없었다.“무엄하다! 감히 날 때려? 내가 누군지 알아?”정신을 차린 로스는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성을 냈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적이 없었고 여자에게 얻어맞은 적은 더더욱 없었다.“유진우를 풀어줘.”조홍연이 싸늘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네가 풀어주라면 풀어줘야 해? 네가 뭔데? 잘 들어...”슉!로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홍연이 손을 들어 영패 하나를 던지자 쿵 하고 벽에 꽂혀버렸다.“뭐야?”고개를 돌리던 로스의 낯빛이 확 굳어졌다. 왜냐하면 그 금색의 영패가 범표사의 장군 영패였기 때문이다.범표사의 장군이라면 명성이 자자한 홍연 전쟁 여제가 아닌가?어쩐지 엄청나게 강하다 했더니, 눈앞의 이분이 바로 조씨 가문의 쌍둥이 중 하나이자 공도 많이 세우고 천하를 압도할 만한 실력을 지닌 최강 전쟁 여제 조홍연이었다.“장... 장군님, 장군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로스는 침을 꿀꺽 삼키고 억지 미소를 쥐어짰다.“당장 그 사람을 풀어줘.”조홍연은 쓸데없는 말 없이 용건만 말했다.“장군님, 그건... 규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로스가 울상을 지었다.쨍!그녀는 삼척 청봉검을 휘둘러 날카로운 칼날을 로스의 목에 겨누었다.“한 번 더 말해봐.”조홍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꿀꺽!로스는 하려던 말을 다시 꿀꺽 삼켰다.조홍연은 사
한참 동안 고민하던 대머리 남자가 불쑥 한마디 했다.“허튼소리 하지 마. 밖에 넘어야 할 관문이 가득하고 고수도 수두룩해. 우리 같은 사람은 날개가 있어도 도망치지 못해.”여윈 노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동안의 수련을 대부분 잃은 지금은 물론이고 최정상일 때도 탈옥은 불가능했다.“어르신, 어차피 죽을 거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대머리 남자가 이를 꽉 깨물었다.“제가 생각해봤는데 관리인을 인질로 삼으면 살 희망이 조금은 있어요.”“맞아요, 맞아요. 인질이 우리 손에 있다면 도망칠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뭇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만약 일반 옥졸이라면 당연히 안 되지만 이 관리인은 교도소 소장의 처남이라 꽤 쓸모가 있을 것이다. 관리인은 그들의 가장 큰 희망이었다.“지금까지 블랙 프리즌에서 탈옥한 사람은 한 명도 없어. 탈옥하다가 실패하면 그 결과가 어떨지 너희들도 잘 알 거야. 그러니 그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아.”여윈 노인이 고개를 내저었다.“그럼 어떡해요? 이대로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나요?”대머리 남자가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우린 그래도 아직 돌이킬 여지가 있는데 이 젊은이는 목숨이나 부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벽에 기대어있는 유진우를 쳐다보는 여윈 노인의 두 눈에 동정이 어렸다.“저 미친놈은 들어오자마자 큰 사고를 치고도 저렇게 침착하다니,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군요.”대머리 남자는 감탄하는 동시에 단검 하나를 꺼내 유진우의 발 옆에 휙 던졌다.“이봐, 너의 용기는 인정이야. 이 단검은 너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해두지.”“고맙지만 전 필요 없어요.”유진우가 고개를 저었다.“챙겨둬. 곧 쓸 일이 생길 테니까.”대머리 남자가 진지하게 말했다.“이따가 살지 못할 것 같으면 이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러면 적어도 육체적인 고통은 덜 받을 거야.”유진우는 어이가 없었다. 호신용으로 사용하라고 주는 줄 알았더니 사실은 자결용이었다. 이보다 더 친절한 사람은 없을
쿵!로스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순간 사람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자리에 굳어버렸다.화려한 복장의 뚱보, 여윈 노인, 대머리 남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수감자들 모두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하나같이 입을 쩍 벌렸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거 정말이야? 눈앞의 이분은 블랙 프리즌의 소장인데?’엄청난 실력을 지닌 무도 마스터이자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지게 하고 수감자들의 생사를 손에 쥐고 흔드는 무서운 존재이다. 이 블랙 프리즌에서 소장이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누구든지 그를 보면 허리 굽혀 깍듯하게 인사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도 높은 자리에 있고 안하무인인 신이 한낱 수감자에게 무릎을 꿇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매... 매형, 왜 무릎을 꿇어요? 얼른 일어나요...”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화려한 복장의 뚱보는 재빨리 로스 앞으로 다가가 부축하려 했다.“저리 썩 꺼져!”로스는 뚱보의 따귀를 후려갈기며 호통쳤다.“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네?”바닥에 주저앉은 뚱보의 표정이 잿빛이 되었다.‘뭐야? 설마 내가 엄청난 거물이라도 건드린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매형이 갑자기 가차 없이 선을 그을 리가 없는데?’“로스? 블랙 프리즌의 소장이라고요?”갑작스러운 상황에 유진우도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내가 당신을 알아요?”“어르신은 절 모르시지만 전 오래전부터 어르신의 존함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일은 오해로 인해 비롯된 것이니 부디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고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로스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두려움에 벌벌 떨었고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했다.유씨 가문의 천재가 블랙 프리즌에 갇혔다는 소문이 위왕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위왕의 성격에 절대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난 어르신이 아니에요. 사람 잘못 봤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 상대가 유씨 가문의 권력을 두려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네네, 제가 실수했습니다. 어르신이 아니라 도련님
“당연히 문제없죠. 도련님의 친구분들이라면 분명 정의가 넘치고 의로운 일을 하시는 분들이겠죠.”로스는 한마디 아첨한 후 손을 흔들었다.“풀어줘!”철컹! 철컹!잠겨있던 쇠사슬이 하나둘 전부 풀렸다. 사람들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여생을 블랙 프리즌에서 보낼 줄 알았는데 오늘 다시 바깥의 해를 볼 수 있다니, 정말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고맙습니다, 소장님.”여윈 노인 일행은 다시 무릎을 꿇었다.“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 감사 인사는 도련님께 해.”로스는 참으로 눈치가 빨랐다.“고맙습니다, 도련님.”사람들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눈에 비친 유진우는 그야말로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어쨌거나 나도 악당파의 일원인데 당신들이 이곳에서 고생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죠. 함께 나갑시다.”유진우는 씩 웃어 보이고는 감옥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비록 함께 지낸 시간이 길지 않지만 본성이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고 죽여야 할 사람을 죽였다는 걸 유진우는 알고 있었다. 하여 직접 나서서 그들을 구한 것이었다.블랙 프리즌의 감옥은 지하에 있었다. 유진우가 로스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에 도착했을 때 마침 해가 저물고 있었다.하늘 끝 붉은 석양이 천천히 지고 있었다. 유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심호흡을 한 후 철문을 나섰다.그런데 그가 몇 걸음 옮기자마자 누군가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은발과 빨간 무사 도복 차림에 삼척 청봉검을 메고 있었고 얼굴은 차가우면서도 미인의 기개가 넘쳤다.유진우는 순간 멍해졌고 예전의 기억들이 순식간에 뇌리를 스쳤다.“저 여자분은 누구셔? 참 예쁘게도 생겼네.”“목소리 낮춰. 어깨의 배지를 보니까 장군이야.”“아니야, 장군이 아니라 전쟁 여제 배지야.”“뭐? 전쟁 여제라고? 우리 용국에 저런 분이 계셨어?”“세상에나! 설마 저분이 바로 명성이 자자한 홍연 전쟁 여제란 말이야?”그 소리에 현장이 순식간에
조홍연과 유진우의 스스럼없는 모습에 사람들은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방금 출소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조홍연의 부장인 공요와 유란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지금까지 그들이 봐왔던 전쟁 여제는 사람을 죽일 때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 인정사정없는 사람이었다. 누구를 만나든 차갑고 도도한 표정이었고 화를 내면 더욱 무서웠다.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그녀의 앞길을 막는 자는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이치대로라면 남자가 그녀 몸에 손만 대도 손발이 부러질 텐데 유진우가 머리를 만지는데도 화내기는커녕 되레 활짝 웃고 있었다.이 광경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전쟁 여제에게 이런 다정한 면이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정말로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지고 우러러볼 수조차 없던 전쟁 여제란 말인가?“장혁 오빠, 그동안 잘 지냈어요?”그의 익숙한 얼굴을 보고 있는 조홍연은 마음이 복잡미묘했다.한때 이름을 떨치고 천하를 압도했던 천재의 날카로움은 10년 못 본 사이 전부 다 사라졌다. 소년의 건방짐과 날카롭던 눈빛, 그리고 남다른 분위기도 사라졌고 그 대신 눈에 띄게 점잖아졌다.하지만 어떻게 변해도 그는 여전히 유장혁 오빠였고 그녀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난 잘 지내고 있어. 맨날 자유롭게 다니니까 너무 좋아. 받는 스트레스도 없고 싸울 일도 없고.”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어릴 적 코를 흘리며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애가 10년 사이 어엿한 여인이 되었고 용국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전쟁 여제가 되었다.“장혁 오빠, 그동안 왜 한 번도 연락 안 했어요? 조무진도 오빠의 소식을 알고 있던데 나만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에요?”조홍연이 원망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아닌데? 무진이더러 너에게 연락하라고 했었어. 설마 걔가 여태껏 말 안 했던 거야?”유진우는 놀란 척했다. 그의 말에 조홍연의 표정이 급변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살기가 순식간에 뿜어져 나왔다. 등에 메고 있던 삼척 청봉검마저도 윙윙거리며 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