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서야 선우영채는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고이 앞에 놓여 있는 물건을 제대로 보지 않고 산 것은 본인이었으므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물론 선우 가문의 권력을 이용해 반품하고 환불할 수도 있었으나 선우영채는 자신의 체면을 중히 여겼으므로 그럴 수도 없었다.그녀는 자신의 체면을 위해 결국 이를 악물고 넘어가려 했다.“선우 아가씨, 보아하니 당신이 거액을 들여 산 물건도 그다지 진귀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이때 손기태가 옆에서 한술 더 떠 불 난 집에 부채질하였다.“그 말은 맞지 않습니다. 비록 연도가 좀 부족하다지만 이 청련은 이미 진귀하고 일품이라 할 수 있어요.” 긴 셔츠 남자가 분위기를 풀어나가려 했다.“들었죠? 조금 모자라도 일품이라잖아요!” 그제야 선우영채의 안색이 조금 누그러졌다.“그럼 900년의 청련은 도대체 가치가 얼마나 됩니까?” 유진우가 웃으며 물었다.“그게...”남자가 난처한 표정으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다가 말했다. “약효와 연도로 따졌을 때 아마 600, 800억의 가치는 되겠죠?”“뭐요? 고작 가치가 600억?”말을 들은 선우영채가 하마터면 펄쩍 뛸 뻔했다.그녀가 청련을 산 가격은 6,000억이었는데.산 가격에 비해 10배나 눅은 셈이다. 밑져도 아주 크게 밑졌다.“허허... 선우 아가씨는 돈도 많고 기백이 넘치시는데. 이까짓 푼돈이 무엇이 그리 손해겠습니까.” 손기태가 농담하며 웃었다.“...”선우영채의 몸이 화를 못 이겨 부들부들 떨렸다. 안색은 흐려져 보기 흉했다.한참을 다른 사람을 엿 먹이느라 애썼는데 오히려 엿 먹은 쪽은 본인이었다.“손 회장님. 결국 오십보백보 아닙니까. 선우 아가씨도 밑진 것은 맞지만, 회장님도 이득을 보진 못하지 않았습니까.” 긴 셔츠 남자가 선우영채를 도와 말했다.“맞아요!!”선우영채의 눈빛이 확 밝아졌다. 그녀가 유진우의 품에 있는 보석을 가리키며 말했다.“비록 제 보물이 연도가 안 찼다 해도 적어도 당신들 그 루비보
“그래! 당신 같은 사람들만바보 같이 4,000억을 써서 이런 보석을 사지.”“이런 걸 바로 무식하게 돈만 많다고 하는 거야.”주위의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지적하기 시작했다.그들이 보기에 유진우는 당연히 자존심만 내세우는 멍청이였으니까.여지없이 패배하고 본전도 잃어놓고서 허풍을 떠는 사람이었으니까.“들었어요? 모두 당신을 멍청이라 생각하네요. 저 포함해서.” 선우영채가 비열하게 웃어 보였다.“그렇습니까?”유진우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모두 모르는 것 같군요. 이것은 보통의 루비가 아니라 루비보다 훨씬 희귀한 혈정석이라는 겁니다.”“혈정석은 또 뭐예요? 난 들어본 적도 없어요!” 선우영채가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괜찮습니다. 제가 알려드리죠.”유진우가 말하면서 루비의 위쪽을 손으로 강하게 내리쳤다.'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루비에 순식간에 몇 갈래의 균열이 생겼다.균열이 빠르게 퍼지고 눈 깜짝할 사이에 깨져버려 땅에 루비 조각이 흩뿌려졌다.이 장면을 본 사람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미쳤어. 이 자는 미친 거야!”“아무리 손해를 보았다 해도 화를 못 참고 보석을 깨뜨리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선우 아가씨의 말이 맞나 봐, 이 사람은 멍청이야.”유진우의 행위에 사람들은 경악하고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더 많은 것은 욕설과 질책이었다.‘어찌 되었든 진귀한 물건인데 이렇게 쓸 수도 없게 망가뜨리다니, 정말 어리석구나!’선우영채가 멍하니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덩달아 크게 웃었다.“당신 뇌가 어떻게 된 거예요? 4,000억을 들여 산 보석을 깨뜨리다니. 당신처럼 멍청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그녀의 웃음소리가 점점 작아지다 마침내 뚝 끊어졌다.보석이 깨지고 안에서 뜻밖에도 붉은빛이 도는 꽃 한 송이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이 핏빛 꽃은 투명하고 보송보송하며 마치 하늘이 내린 꽃처럼 조금의 흠도 잡아낼 수 없는 아름다운 꽃이었다.눈여겨보면 마치 붉은 액체가 천천히 감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
“왜? 왜?!”선우영채는 후회막급이었다.루비가 이토록 엄청난 가치가 있을 줄 알았더라면 절대 팔지 않았을 것이다.이제 희귀한 보물 혈정화를 시골 촌놈한테 두 손으로 받친 꼴이 되었다.“오늘 정말 운이 좋네!”유진우는 혈정화를 들고 입가의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그는 루비를 본 순간부터 그 안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혈정화는 일반 꽃이 아닌 희귀한 보물로 보통 혈정석 안에만 존재하는데 오늘 경매한 루비가 곧바로 그 희귀한 혈정석이었다.900 년 된 청련은 잃어서 유감이었지만 오늘 혈정화를 얻게 된 것은 하늘의 축복이었다.따라서 오늘 경매장에 온 것은 헛된 일이 아니었다.“선우영채 씨, 이것이 4,000억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유진우의 시선이 갑자기 선우영채를 향하더니 웃으며 물었다.“우리 둘 중 누가 진짜 바보일까요?”“당신...”선우영채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조금 전에 얼마나 기세등등했다면, 지금은 그만큼 수치스러웠다.그녀는 6,000억으로 불량품을 샀지만, 상대는 4,000억으로 아주 귀한 보물을 얻었으니 말이다.그 격차는 정말 어마어마했다.“선우영채 씨, 보물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또 봐요.”유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잠깐!”선우영채가 갑자기 소리쳤다.“내가 언제 가도 된다고 했어요?”“왜요? 저녁까지 사주시게요?”유진우가 빙그레 웃었다.“헛소리 그만하고 혈정화는 내가 가져갈 거니까 얼마면 돼요?”선우영채가 말했다. 혈정화는 천 년 백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기에 오늘 놓치고 싶지 않았다.“아쉽겠지만, 이건 안 팔아요.”유진우는 단호했다.“안 판다고요?”선우영채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건 내가 원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당신은 오늘 꼭 팔아야 해요.”“그래요? 언제부터 이 세상에 그런 규정이 있었나요?”유진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규정은 내가 정해요!”선우영채는 유진우를 노려보며 말했다.“손해 보게 안 할게요. 당신이 아까 20억으로
다음 날, 강능.고급 차들이 위풍당당하게 천향원으로 들어갔다.지나가는 곳마다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다.진서현은 조씨 가문 일행과 함께 일찌감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가 천천히 멈추자 화려하고 거만한 차림새의 선우영채가 먼저 내렸다.“영채야, 왔어? 안으로 들어가자!”진서현은 미소를 지으며 매우 따뜻한 태도로 말했다.선우영채는 선우희재의 친동생이고 또 선우 가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아줌마, 오랜만이에요.”선우영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선미 언니는요? 어디 갔어요?”“씻고 있어. 금방 나올 거야.”진서현이 웃으며 말했다.“영채가 온다고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는데 이리 와서 봐봐.”그때 옆에 있던 조준서가 두 손으로 달걀 크기의 사파이어를 건네주었다.선우영채는 외모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집안 배경도 든든하여 조준서가 원하는 상대였다. 때문에 그녀한테 잘 보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는 여자라면 보석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사파이어를 준비했다.“고마워요.”선우영채는 보석을 힐끗 쳐다보더니 직접 받지 않고 하녀한테 받으라고 했다.“이건...”선우영채가 관심 없는 태도를 보이자, 조준서는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이 사파이어는 그가 선우영채한테 잘 보이려고 수억을 주고 단씨 여자한테서 산 것이었다. 그런데 선우영채가 이런 식으로 반응하자 화가 났다.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 비싼 것을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다.“영채야, 간식도 준비되어 있으니 들어가자.”진서현은 선우영채 일행을 별장 안으로 안내했다.모두가 자리에 앉자, 진서현이 물었다.“영채야, 강능에는 무슨 일로 왔어?”“아줌마, 오늘은 오빠의 혼사 때문에 왔어요.”선우영채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또다시 입을 열었다.“우리 두 가문의 약속에 따르면 20일 이후에 조씨 가문과 선우 가문은 혼사를 치러야 하는데 잘 준비되고 있는 거죠?”“걱정하지 마. 며칠 후에 조씨 가문의 송년회가 있는데 그때
조선미의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그녀가 그런 말을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선미야,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잠 덜 깼어?”진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 유감스럽지만 저와 선우희재 씨는 어울리지 않아요.”조선미가 담담하게 말했다.“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선우영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파혼할 거야!”조선미가 단호하게 말했다.“파혼?”선우영채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언니! 미쳤어? 감히 우리 선우 가문을 상대로 파혼하겠다고?”“선미야,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진서현이 서둘러 경고했다.선우 가문은 3대 가문 중 하나로서 인맥이든 세력이든 모두 조씨 가문을 쉽게 짓밟을 수 있는 존재였다.특별히 선우희재와 같은 천재가 선우 가문에 있음으로 가문의 위상은 더욱 치솟았으며 이미 3대 가문 중에서도 선두의 기세를 타고 있었다.얼마나 많은 귀족들이 선우 가문과 혼약을 맺으려고 하는데? 지금 파혼하겠다고?선우 가문을 뭐로 보는 건가?“파혼은 미안해! 사과할게! 만약 선우 가문의 체면 때문이라면 선우 가문에서 먼저 파혼 제의를 해도 돼. 어찌 됐든 난 선우희재 씨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조선미는 자신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다.“언니! 이건 언니가 하겠다면 하고, 안 하겠다고 하면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번 혼인은 두 가문에서 결정한 것이기에 언니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없어!”선우영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다른 건 가문의 의견을 따를 수 있지만 결혼은 절대 안 돼!"조선미가 냉정하게 말했다.“흠!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야? 오빠의 눈에 들었다는 건 언니의 영광이야! 따라서 파혼 얘기도 우리 오빠만 할 수 있는 거야!”선우영채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그럼, 오빠한테 연락해서 파혼하라고 얘기해줘.”“말도 안 돼, 그건 어림도 없는 거야!”선우영채는 단칼에 거절했다.“우리 오빠가 얻고자 하는 건, 누구도 못 말려. 언니가 동의하
“선미야! 약 잘못 먹었어? 누가 파혼을 허락했어?!”선우영채가 나가자마자 진서현은 더 이상 참지 않고 화를 냈다.가문의 명예와 성쇠가 걸린 문제였기에 딸이 변덕 부리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선미야, 선우희재와 결혼하는 건 너의 복이야. 그런데 지금 파혼이라니? 제정신이야?”조준서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딸을 보았다.'선우희재가 누구인가? 용국의 기둥이자 남성 최고의 천재이며 서른도 안 되는 나이에 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호풍장군이 아닌가!'얼마나 많은 가문에서 그를 사윗감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는지 모른다.그런데 지금 조선미는 그 행운을 차버리겠다고 하다니? 이해가 안 됐다.“내 결혼은 내가 결정해. 난 선우희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어.”조선미는 담담하게 말했다.과거 같으면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이 결혼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선우희재는 솔직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집안, 배경, 능력, 미래까지 완벽한 남자라고 할 수 있다.상대방과 결혼하는 것은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제 유진우뿐이었기에 다른 남자는 용납할 수 없었다.“지금 좋아하지 않아도 천천히 좋아하게 될 거야. 어찌 됐든 넌 무조건 이 결혼 해야 해.”진서현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그래야만 너도 행복할 수 있고, 우리 가문도 무사할 수 있어. 만약 네가 파혼하면 조씨 가문 전체가 위기에 처할 거야!”“그래 선미야, 블랙지존이 있다는 걸 기억해. 선우 가문이 없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우리 가문에 칼을 휘두를 거야.”조준서는 심각하게 경고했다.“블랙지존의 문제는 내가 해결할 거야.”조선미는 미간을 찌푸렸다.“해결한다고? 어떻게 해결할 건데?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조씨 가문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 나가고 있어. 아버지랑 큰아버지가 고수들을 많이 고용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잖아. 그런 블랙지존을 네가 무슨 능력으로 해결해?”진서현이 물었다.“시간만 주시면 꼭
어느 강변 별장 앞에 벤츠 한 대가 천천히 멈췄다.“청아 씨, 혼자 들어가는 게 좋겠어. 어제 셋째 할머니한테 찻잔을 엎어서 나를 보면 기분이 안 좋을 거야.”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그래 알았어. 여기서 기다려, 금방 갔다 올게.”이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별장으로 들어갔다.같은 시각, 별장 안에서.오금란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고, 이서우가 옆에서 어깨를 주물러주고 있었다.“사모님, 이청아 씨가 뵙고 싶어 합니다.”이때 한 나이가 많은 하인이 다가와 정중하게 보고했다.“왜 또 왔지? 혹시 빌러 온 거 아닐까요? 능력이 없으니, 할머니께서 한 번만 봐달라고요.”이서우가 말했다.“들어오라고 해.”오금란은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무심하게 말했다.“네.”곧이어 그녀는 이청아를 데리고 들어왔다.“무슨 일이니?”오금란은 눈꺼풀을 치켜들었다.“할머니,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거 완성했어요. 여기 2,000억짜리 수표입니다. 확인하세요.”이청아는 준비해 온 수표를 건네며 말했다.“2,000억 수표라고? 장난하는 거지?”이서우는 수표를 집어 들고 보더니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진... 진짜로 2,000억이라니?”“어디 보자.”수표를 받아 든 오금란도 수표를 살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하루 사이에 어딜 가서 이 많은 돈을 구한 거야?”오금란은 오래전에 사람을 시켜 이청아를 철저하게 조사했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이청아는 절대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10억이라는 투자를 받을 수 없었다.따라서 오금란은 이 돈에 분명 수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어디에서 구했는지는 할머니한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저의 인맥이니까요.”이청아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흠! 우리 이씨 가문은 정당하고 떳떳한 가문이야. 출처가 확실하지 않으면 인정 못 해!”오금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이걸 훔친 건지, 뺏은 건지 누가 알아? 오늘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못해!”이서우도 동참했다.“굳이 알고 싶어
“할머니, 공정하셔야죠. 이건 일부러 괴롭히는 거잖아요!”이청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겨우 얻어온 2,000억의 투자금을 이런 식으로 가로채다니 참을 수가 없었다.“닥쳐! 어떻게 버릇없이 우리 할머니한테 그런 식으로 말을 해?”이서우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빚이 있으면 갚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유진우가 할머니를 때렸으면 대가를 치러야지!”“됐고, 이제 2,000억을 더 가져오면 회장 자리는 네 거야. 못하겠으면 지금 있는 자리에서 당장 내려와.”오금란은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그의 표정은 마치 너는 나를 어쩌지 못한다고 하는 것 같았다.“아직도 거기 서서 뭐 해? 당장 꺼져!”이서우가 재촉했다.“할머니가 이토록 공정하지 않으시면 저는 족장님한테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그분한테 직접 오셔서 지금 상황을 정리해달라고 해야겠어요!”이청아는 그렇게 말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잠깐만!”순간 오금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네가 감히 나를 협박해? 이봐라, 이 년의 뺨을 쳐라!”“네!”이서우가 잽싸게 달려가 이청아의 뺨을 두 대 때렸다.붉게 물든 다섯 손가락 자국 두 개가 선명하게 보였다.이청아는 충격과 분노에 얼굴을 가렸다.“왜? 억울해? 두 대 더 때려!”오금란이 고함을 질렀다.“알았어요!”이서우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이청아의 뺨을 두 대 더 때렸다.그녀는 오래전부터 이청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시골 촌년이 왜 이렇게 예뻐?’이청아는 입술을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만은 오금란을 똑바로 응시했다.“아직도 납득이 안 돼? 더 때려! 세게!”이청아의 도발적인 눈빛에 오금란은 화가 치솟았다.이씨 가문에서 감히 그녀에게 반항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쳐!”이서우가 명령하자, 이청아를 향한 폭력이 시작되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청아의 얼굴에는 온통 상처뿐이었다.“이년아! 감히 우리 할머니를 도발해? 오늘 혼나봐야 정신 차리지!”이서우는 때리는 동안 끊임없이 내면의 질투심을 표출하며 소
“사철수 씨,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사진이라도 찍어줘요? 빨리 보물 지도를 찾아내세요.”불만으로 꼴 독 찼던 유태범은 못마땅한 얼굴로 사철수에게 화풀이했다.“알겠어요. 서두를게요.”유태범의 말에 사철수는 즉시 합금으로 되어 있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채원진의 부러진 손을 들어 중간 부분에 있는 감응 위치를 살짝 눌렀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대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자, 금속으로 만든 금고가 드러났다.금고는 약 33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운데에는 골드바가 사람의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골드바 외에도 그 주변에는 다양하면서도 진기한 보물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고 귀중한 물건들이었다.“이곳은 채원진의 개인 금고예요. 채원진은 마음에 드는 모든 물건을 전부 이곳에 수집했어요.”사철수가 설명했다.“보물들이 어마어마하네요.”유천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가면 성을 하나 사고도 남겠네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룡각의 다른 세 보물 창고에 비하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새 발의 피죠.”사철수가 설명했다.“정말이에요?”유천우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당신 말대로라면 호룡각의 보물을 전부 모으면 산더미가 되겠는데요?”“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아왔으니, 산더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사철수는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빨리 모든 보물을 긁어모으고 싶네요.”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보물 지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유태범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어요.”사철수는 맨 안쪽 선반으로 가서 위에 놓여있는 정교한 박달나무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우에게 건넸다.유진우가 열어보니 안에는 양피지 3장이 들어있었다. 모든 양피지에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도 중앙에는 보물 창고의 위치가 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보물 지도가 진짜라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보물 지도는 어디 있나요?”유진우가 추궁했다.“채원진의 지하 밀실에 있어요.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모시지요.”사철수가 말했다.“지하 밀실?”유천우는 실눈을 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죠? 나중에 나를 악랄하다고 탓하기 싫으면 그런 생각은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밀실 같은 건물에는 함정과 암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천우는 사철수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저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사철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앞서서 안내하세요.”유진우가 두 근위병에게 눈치를 주자 근위병 두 명이 와서 사철수를 일으켜 세웠다.“잠깐만요. 밀실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려면 채원진의 손이 필요해요.”사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건 쉽죠.”유천우는 즉시 칼을 빼 들어 채원진의 오른손을 잘라 사철수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선물이에요.”사철수는 징그러웠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채원진의 손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유진우와 몇몇 사람은 사철수를 따라 기지로 들어갔고 마침내 지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사철수는 문을 열고 벽 쪽으로 다가간 다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그림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나의 버튼이 있었다.사철수가 손을 내밀어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갑자기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사철수가 유진우를 포함한 몇 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뒤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반 시간 남짓 지나자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몇 명 사람들의 눈에는 넓고 호화로운 지하 밀실이 들어왔다.말이 밀실이지 사실 호화 저택에 가까웠다.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생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많은 물과 식량도 수집되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혼자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핵 방지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
“채원진, 나라와 백성을 해친 네 죄가 극악무도하니 인제 그만 포기하고 꼼짝 말거라. 반항한다면 사살할 것이다.”이청성은 손에 황권을 상징하는 금색 영패를 쥔 채 차가우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청성이 이번에 유진우를 따라 서경에 온 이유는 바로 호룡각에 남아있는 잔당을 대처하기 위해서였고 여러 가지 경우를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병력을 이동하라는 칙령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이성민이 직접 내린 거였고 그 덕분에 20만 명의 백호군을 움직여 이번 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이청성을 본 채원진은 절망하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그의 입과 코에서는 검붉은 피가 더욱 많이 흘러내렸다.“채원진, 넌 이제 끝났어. 판을 뒤집을 가능성은 절대 없으니 그만 포기해. 오늘이 지나면 호룡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어둠 속에 숨어 살던 추악한 놈들은 자기가 했던 행동에 책임지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유진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야! 난 아직 패한 거 아니야! 절대 그럴 수 없어!”채원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내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이제 겨우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너희 같은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 때문에 무너질 거 같아?”오랜 세월을 참고 견뎌 호룡각의 각주가 된 채원진은 이제 곧 막강한 권세를 누릴 줄 알았는데, 겨우 며칠도 안 돼 큰 타격을 입고 궁지까지 내몰리고 말았다.채원진은 단념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어린 녀석들을 감당하지 못해 실패하고 죽는다는 게 달통 되지 않았다.“채원진, 아직도 모르겠어?”조무진은 담담하게 말했다.“용맥이 잘려서 사라질 때부터 호룡각 말살은 시작된 거야. 그때 너희들은 이미 대세와 기운을 잃었어. 만약 너희들이 어둠 속에 숨어서 연명한다면 몇 년 더 살 수는 있겠지만 그런 탐욕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니까 서경왕부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 결정을 내리는 순간부터 넌 이미
“무슨 헛소리야! 호룡각의 사람이 아니면, 서경왕부의 사람이라도 된다는 거야?”채원진은 눈이 시뻘게져 소리쳤다.“맞아. 내 사람들이야.”유진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네가 부대를 이끌고 우리를 매복시키려 할 때 내 병마들은 그 허점을 틈타 이미 너의 기지를 점령했어. 그러니까 이제 이곳은 내 소유야.”“유장혁! 그런 헛소리를 내가 믿을 거 같아?”채원진은 험악한 얼굴로 소리쳤다.“아무리 내가 많은 정예병들을 데리고 나갔다고 하지만, 기지 내에 적어도 3만 명의 병마가 있었고 각종 방어 조치까지 더해져 10만 명 이상의 병력이 없다면 감히 공격도 못해. 서경의 흑용군은 모두 내 감시하에 있었는데 만약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했다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잖아.”“누가 그래? 내가 흑용군을 호출했다고?”유진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생각하는 걸 나라고 생각 못 할 것 같아? 너의 잔당들을 토벌하기 위해 이번에 특별히 지원군들을 불렀지.”어젯밤, 유천우한테 최대한 빠른 속도로 서신을 전하게 한 이유가 바로 구원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구원병이 제때 도착해 유진우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될 수 있었다.“지원병? 무슨 지원병?”채원진은 왠지 불안한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서경과 가장 가까운 부대는 서남 지역에 있는 백호군이고, 백호군의 사령관은 전쟁의 신 조무진이야. 그런데 공교롭게도 조무진은 나와 아주 친한 사이라 도움을 좀 받았지.”유진우의 담담한 대답에 채원진은 못 믿겠다는 듯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백호군? 조무진? 그럴 리가 없어. 헛소리 하지 마!”“못 믿겠으면 뒤돌아봐.”유진우는 설명 대신 채원진의 뒤를 보며 턱을 치켜들었다.뭔가를 느낀 듯한 채원진이 뒤를 돌아보니 성벽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은색 갑옷을 입은 준수한 외모의 한 젊은 남자가 정예 장병들과 함께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젊은 남자는 다름 아닌 전쟁의 신 조무진이었다.“채원진, 어때? 이제 현실이 좀 받아들여져
“거의 거의 다 왔어. 곧 도착이야.”채원진은 정혈을 끌어 연소시키며 겨우 도망쳤다. 도중에 끊임없이 피를 토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한바탕 전력 질주 끝에 드디어 채원진의 눈에는 기지 앞의 높은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성벽만 넘으면 그는 안전할 수 있었다.채원진은 기지 안에 많은 영단 묘약이 있으니, 그의 독을 치료할 약이 기필코 있을 거로 생각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성문을 열어라! 어서 빨리 성문을 열어!”성벽 지하까지 돌진한 채원진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비틀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얼굴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여전히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슝 슝 슝.채원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벽 위에서 갑자기 팔뚝 굵기의 쇠뇌가 몇 대 발사되었는데 10만여 근의 힘을 숨기고 있는 쇠뇌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놀란 채원진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팡 팡 팡.몇 대의 쇠뇌는 채원진의 눈앞에 떨어지며 엄청난 위력과 함께 뒤쪽 끝을 조금 남긴 채 반이 넘게 땅바닥 깊이 박혀 들어가며 굉음을 냈다.“야! 너희들 미쳤어? 나 호룡각의 객주야! 눈 똑바로 뜨고 잘 봐!”채원진이 성벽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오히려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무기를 들어 채원진에게 겨누었다.각종 중화력 무기도 가동되었고 수많은 포구와 총구가 동시에 성벽 아래에 있는 채원진을 겨누었다.누군가의 명령이 내려지기만 하면 채원진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었다.“눈은 멋으로 붙이고 다니는 거야? 나도 못 알아봐? 당장 성문을 열어! 안 그러면 전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화가 치밀어 오른 채원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집 문 앞에서 막힐 줄이야.‘이 녀석들, 도대체 무슨 수작인 거야?’채원진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원진, 너한테 남은 건 죽음뿐이야.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 고통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