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우리 사모님을 때려? 무례한 놈!”오금란이 맞는 것을 본 몇 명의 부하들이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들었다.유진우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부하들의 뺨을 몇 대씩 쳤다.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어떤 사람은 입과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어떤 사람은 이가 날아갔다.눈 깜짝할 사이에 방금 폭력을 행사하던 몇 명은 모두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유진우! 너 감히 우릴 때려? 죽고 싶은 거구나!”이서우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는데 얼굴에는 경멸과 분노가 가득했다.그녀는 이씨 가문의 딸이고 할머니가 이씨 가문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일인자였기에 무서운 게 없었다.“아예 폐인으로 만들어 줄 게.”말하고 나서 유진우는 이서우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이서우는 비참한 비명을 지르며 대포알처럼 날아가더니 벽에 세게 부딪히며 피를 토했다.“이 개자식아! 넌 이제 죽었어! 네 가족 모두 죽여 버릴 거야! 감히 이씨 가문을 건드려?”오금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악랄하게 소리를 질렀다.지금까지 살면서 아무도 감히 그녀에게 손을 대지 못했는데 유진우한테 당하고 나니 분노가 치밀었다.“목숨을 내놓으라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유진우가 손을 들어서 또 한 번 뺨을 때리자 오금란의 코는 비뚤어지고 틀니는 날아갔다.순간 오금란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거품을 토했다.“진우 씨! 그만해!”상황이 안 좋아지자, 이청아가 소리쳤다.그녀는 유진우가 계속 충동적으로 행동하다가 실수로 셋째 할머니를 죽일까 봐 두려웠다.“괜찮아?”유진우는 화를 억누르고 서둘러 이청아를 일으켜 세웠다.“피부에 살짝 상처가 났을 뿐이야, 별거 아니야.”이청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얼굴이 퉁퉁 부었는데 별거 아니라고?”유진우는 얼굴을 찡그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이청아의 상처를 보면 볼수록 화가 치밀었다.분노에 찬 그는 이서우의 얼굴을 두 번 더 짓밟았다.순간 조금이나마 예뻤던 이서우의 얼굴은 순식간에 흉측하고 비참하게 변했다.‘음, 이제야 화가
“바람둥이요?”유진우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이건 뭐지? 약만 바른 것뿐인데 왜 바람둥이가 된 거지?“선미 씨, 오해하지 말아요. 진우 씨는 그냥 저한테 약을 발라준 것뿐이에요.”질투에 찬 조선미의 표정을 본 이청아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말했다.“못 믿으시면 할 수 없고요.”그렇게 말한 뒤 그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차분하게 옷을 입었다.“흠! 약을 바른다고요? 저도 발라줘요!”조선미는 유진우 옆에 엉덩이를 대고 앉더니 옷을 벗기 시작했다.“선미 씨, 뭐 하는 거예요?”유진우는 깜짝 놀라 재빨리 손을 뻗어 막으려 했다.“왜요? 청아 씨는 되고, 저는 안 돼요?”조선미는 약간 불쾌한 듯 얼굴을 붉혔다.“다친 것도 아닌데 무슨 약을 발라요?”유진우는 울고 싶었다.‘대 가문의 아가씨가 왜 이렇게 어린애 같지?’“누가 내가 안 다쳤다고 그래요? 내 마음은 이미 구멍이 숭숭 뚫렸어요. 내가 받은 상처는 이청아 씨보다 훨씬 더 심각한데, 믿지 못하겠으면 만져 봐요!”조선미는 당당하게 말했다.“진우 씨, 등이 아직도 좀 아픈 것 같아. 약을 더 발라줘.”이청아도 다시 옷을 벗기 시작했다.두 사람을 보는 유진우는 머리가 아팠다. 정말로 두 사람은 마주치면 안 되는 것 같았다.매번 두 사람 사이에서 유진우는 너무 힘들다.“윤아야, 네가 와서 해, 나는 요리하러 갈게!”임윤아를 바라보던 유진우는 눈을 번쩍 뜨더니 서둘러 채소를 들고 순식간에 부엌으로 달려갔다.도망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흠!”두 여자는 그제야 서로를 노려보며 옷을 입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어느덧 풍성한 점심이 식탁에 올랐다.요리 네 가지와 국물이 있었다.“진우 씨, 삼겹살 먹어요. 요즘 야위었어요.”조선미는 미소를 지으며 살이 통통하게 오른 수육 한 조각을 집어 유진우의 그릇에 담았다.“고마워요.”유진우는 거절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얼굴에 미소를 띠며 서둘러 입에 넣었다.“삼겹살이 뭐가 맛있어? 닭 다리 먹어봐, 진우 씨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고를 수 없어요, 저마다 맛도 다르고,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맛도 조금씩 다르잖아요.”유진우는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흠! 말재주가 좋은데!”이청아는 더 이상 유진우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어쨌든 삼겹살을 더 좋아해야 해요!”조선미는 안 그러면 죽는다는 표정으로 강요했다.유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숨죽이고 있었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등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진우 씨, 잠깐만 나와 봐요. 할 얘기가 있어요.”떨리는 마음으로 식사를 마친 유진우는 곧바로 조선미에게 불려 나갔다.이청아는 무심하게 산책하는 척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사람이 속삭이는 내용을 엿듣고 있었다.조선미는 그녀의 꼼수를 금방 눈치채고는 유진우를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차 문이 닫히자 두 사람은 바깥세상과 단절되었다.“선미 씨, 할 얘기가 뭐예요?”유진우는 궁금했다.“저 당분간 강능을 떠나야 할 것 같아요.”조선미가 말했다.“강능을 떠난다고요? 어디로 가는데요?”유진우는 깜짝 놀랐다.“고향으로 가요.”조선미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고향 집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 빨리 해결해야 해서요.”“무슨 일인데요? 도와줄까요?”유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조선미가 이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라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괜찮아요.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조선미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유진우의 실력이 엄청나게 강력하기는 하지만, 선우 가문과 맞서기에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3대 절대 세력 중 하나인 선우 가문은 군사, 정계, 재계 모든 영역에 넓게 퍼져 있었다.남성 모든 지역에서 선우 가문은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었기에 그녀는 유진우를 거기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선미 씨, 일이 있으면 혼자 버티려고 하지 말고 곧바로 나한테 알려줘요.”유진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잘 해결될 거예요.”조선미는 미소
어둠이 내린 뒤, 이씨 별장 내에서.“펑!”큰 소리와 함께 갑자기 방문이 활짝 열렸다.오금란이 이씨 가문의 경호원들과 같이 기세등등해서 나타났다.그중에서도 키가 2미터에 육박하는 건장한 두 남자가 가장 눈에 띄었다.두 사람은 외모가 비슷했고, 온몸의 근육은 우뚝 서있는 바위 같았고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두 개의 큰 산처럼 사람들을 위협했다.“이청아! 당장 나와!”문에 들어서자마자 오금란이 소리를 쳤다.낮에 맞아서 생긴 멍과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은 흉측했다.“어머, 셋째 사모님 아니십니까? 여긴 웬일이세요?”장경화는 부엌에서 달려 나오면서 경호원들을 대동한 태세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이청아와 유진우는 어디 있어?”오금란은 이를 갈며 물었다.“두 사람은 아침에 나갔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저도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요.”장경화가 대답했다.“모를 리가요? 일부러 숨겨 주는 거 아니에요?”사람들 속에서 얼굴에 붕대를 감은 한 여자가 나왔다.“실례합니다만, 누구세요?”장경화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저 서우에요!”붕대를 감은 여자가 말했다.“서우였구나. 얼굴은 왜 이래?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장경화는 깜짝 놀랐다.얼굴 전체가 붕대로 감겨 있어서 조금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어쩌다가 이렇게 됐냐고요? 이청아와 유진우가 한 거예요.”이서우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분노했다.다른 능력 하나도 없이 얼굴로 먹고 살았는데 이렇게 망가졌으니 어찌 화를 참을 수 있겠는가?“뭐라고? 그들이 너를 때렸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장경화는 조금도 믿기지 않았다.“그 둘은 나만 때린 게 아니라 할머니까지 다치게 했어요. 이청아와 유진우한테 오늘 가법을 집행하러 왔어요.”이서우가 소리를 질렀다.“장경화! 빨리 이청아와 유진우를 내놔! 그렇지 않으면 자네도 무사하지 못할 거니까!”오금란은 조바심이 났다.“저는 정말로 두 사람 어디 갔는지 몰라요.”장경화는 긴장 된 얼굴로 말했다.“더구나 제 딸은 천성이 순수해서 남을
‘칼도 뚫지 못한다고? 저 자식은 쇠로 만들어졌나?’“흥! 서호는 톱클래스 내공을 지닌 무사야. 고작 그런 장난감 같은 칼로 털끝 하나라도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이서우가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구겨진 체면을 되살리려고 할머니가 고수 두 명을 데려왔다. 유진우의 실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오늘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꺼져!”서호는 손을 뻗어 장경화의 따귀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오금란이 오만한 기세로 걸어오더니 지팡이로 장경화의 얼굴을 쿡쿡 찌르며 내려다보았다.“기회 한번 줄게. 지금 당장 이청아랑 유진우를 내 앞에 데려와. 안 그러면 네 아들 다리를 분질러버릴 거야!”“사모님, 제발 살려주세요. 지금 당장 전화할게요!”당황한 장경화는 바로 휴대 전화를 꺼내 딸에게 전화를 걸어 꼭 유진우와 함께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일부러 숨겼다. 혹시라도 유진우가 상황을 알면 안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사모님, 곧 온다고 하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장경화는 억지로 미소를 쥐어짰다.“딱 15분 줄게. 1분 늦을 때마다 네 아들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버릴 테니까 빨리 오는 게 좋을 거야!”오금란이 큰소리로 호통쳤다.“네?”장경화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1분에 손가락 하나씩 자른다면 10분이면 두 손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이현은 울 수도 없는 이 상황이 어이없기만 했다.‘X발, 나한테 왜 이래?’“덜컥!”사람들이 조용하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누군가 별장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이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살기등등하게 걸어왔다.“강 대표님?”맨 앞에 선 사람을 본 순간 장경화와 이현은 얼이 빠진 채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밤중에 강능의 최고 재벌인 강천호가 직접 발걸음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당신들은 누구야?”오금란이 싸늘한 말투로 물었다.“이 두 사람의 목숨은 내 것이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다 꺼져!”강천호가 장경화와 이현을 가리켰다.“흥! 청아가
“탕!”강천호가 방아쇠를 당기자 총알이 오금란을 향해 날아갔다.그 순간 우람한 체격의 서호가 갑자기 그녀 앞에 나타나더니 두 팔을 X자로 올리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아주 단단하고 무거운 쇠고리가 툭 끊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졌다.“쨍그랑!”불빛이 번쩍이더니 쇠고리에 부딪힌 총알이 순식간에 튕겨 나갔다.서호는 마치 작은 산처럼 제자리에 선 채 씩 웃고 있었다. 강천호를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톱클래스 내공 실력에 다다르면 일반 권총 따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대가 총을 쏘기 전에 더 빨리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빠른 속도로 피하거나 무기로 총알을 막을 수도 있었다. 그저 뒤에서 기습하는 것만 아니면 털끝 하나도 건드리기 어려웠다. 이것이 바로 무사의 대단한 점이다!“막... 막았어?”장경화 등 몇몇은 다시 한번 충격에 빠졌다. 과일칼을 무시하는 건 그렇다 쳐도 총알까지 막다니,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흥, 총이면 다인 줄 알아? 우물 안의 개구리 같으니라고!”놀라움도 잠시 오금란은 바로 침착함을 되찾았다. 소룡과 서호가 지키고 있는데 누가 그녀를 다치게 할 수 있겠는가?“감히 우리 할머니한테 총을 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서호야, 당장 가서 죽여버려!”이서우가 바로 명을 내렸다.“알겠습니다!”서호는 섬뜩한 웃음을 짓고는 바닥이 깨질 정도로 발로 힘껏 밟아 뛰어올랐다. 그는 마치 화살처럼 강천호를 향해 달려 나갔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그래봤자 잔재주에 불과해!”그때 강천호의 뒤에 있던 모자를 쓴 키 작은 남자가 갑자기 몸을 움직이더니 망설임 없이 서호와 맞섰다.“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키 작은 남자는 서호의 주먹을 한 손으로 잡았다. 어마어마한 폭발력에 바닥마저 갈라지고 말았다.“응?”순간 움찔한 서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주먹을 당해낼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강 사장님, 이 사람은 오늘 우리의 타깃이 아닌 것 같은데요?”키 작은 남자는 한 손으로 바
키 작은 남자는 잇몸까지 드러내고 웃으면서 서호의 시체를 벽에 확 던져버렸다. 벽이 그의 피로 물들었다.“서호!”소룡은 남동생의 시체를 부여잡고 목청이 터지도록 울부짖었다.“감히 내 동생을 죽여?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야!”그러더니 마치 미쳐 날뛰는 사자처럼 키 작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키 작은 남자는 하찮다는 듯 피식 웃더니 소룡의 가슴팍을 냅다 걷어찼다.“쿵!”소룡은 트럭에 부딪힌 것처럼 그대로 튕겨 나가 바닥에 세게 떨어졌는데 피를 끊임없이 토했고 흉골도 움푹 패어 들어갔다.“뭐야?”그 광경에 이씨 가문 사람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얼어붙었다. 소룡의 실력이 서호보다도 훨씬 강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일격조차 당해내지 못했다.저 남자의 정체가 대체 뭘까?“너... 너 대체 누구야?”소룡이 가슴을 움켜쥐고 피를 토하며 물었다. 단 일격에 그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건 상대가 본투비 레벨 고수라는 걸 증명하기에 충분했다.“블랙 랭킹 골든 킬러 사림강이다!”섬뜩하게 웃는 키 작은 남자는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블랙 랭킹 골든 킬러?”그의 말에 소룡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비록 사림강은 알지 못했지만 블랙 랭킹 골든 킬러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블랙 랭킹에는 고수가 구름처럼 많았고 계속 배출하고 있었다. 브론즈 킬러 혼자서도 웬만한 고수들을 다 처리할 수 있었으니 실버 킬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그리고 골든 킬러는 블랙 랭킹에서 그야말로 일류였다. 그 수는 극히 적었고 골든 킬러마다 필살기 하나씩 갖고 있었다.그런 골든 킬러를 움직이려면 수조 원에 달하는 돈이 없으면 아예 불가능했다.오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몇몇을 혼내주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블랙 랭킹 골든 킬러를 만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젠장, 똥 밟았네, 정말!’“이봐 늙은 할망구, 당신 차례야.”그때 강천호가 또다시 총을 들었다.“얼른 할머니를 지켜!”화들짝 놀란 이서우가 재빨리 고함을 질렀다.“
“뭐라고요?”이청아가 눈살을 찌푸렸다.“못 알아들었어? 그럼 다시 한번 말할게.”강천호의 미소가 점점 굳어졌다.“할망구와 유진우 둘 중에 한 사람만 살 수 있어. 그러니까 누굴 죽일지 네가 결정해.”“이청아, 유진우를 선택하지 않고 뭐 해? 이건 네가 속죄할 수 있는 기회야!”이서우가 목청 높이 소리를 질렀다.“그래! 오늘 내 목숨을 살려준다면 너의 죄를 용서하고 높은 자리에 앉게 해줄게!”오금란도 그녀에게 약속했다. 이젠 오금란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냐하면 강천호가 그야말로 극악무도하고 말이 통하지 않을뿐더러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언제든지 죽이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아직 더 살고 싶은 그녀는 이곳에서 죽을 수가 없었다.“강천호 씨, 우린 당신이랑 아무 원한도 없는데 왜 우리한테 이러는 겁니까?”이청아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물었다.“아무런 원한도 없다고?”강천호가 큰소리로 건방지게 웃었다.“이청아, 네 옆에 있는 사람한테 우리 사이에 원한이 있는지 없는지 한번 물어봐봐.”아들과 딸이 살해당했고 강씨 가문도 몰살되었다. 이런 피맺힌 깊은 원한이 있는데도 원한이 없다고?“강천호 씨, 원한에는 상대가 있고 빚에는 빚쟁이가 있다고 했어요. 일이 있으면 날 찾으면 될 것을,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흥. 널 죽이려 했다면 진작 죽였어. 하지만 너무 쉽게 죽일 수는 없지. 네 가족과 친구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똑똑히 보게 할 거야. 분노, 절망, 후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느껴봐. 죽지 못해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줄게!”섬뜩하게 웃는 강천호는 그야말로 미치광이 그 자체였다. 아들과 딸이 죽은 후로 그는 더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당신이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유진우의 눈빛은 여전히 평온했다.“오늘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왔어. 너 하나 죽이려고 전 재산까지 쏟아부으면서 블랙 랭킹 3대 골든 킬러를 데려왔어. 너한테 아무리 조력자가 많아도 이들만 있으면
그래야만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라도 지킬 수 있다.지금 왕위를 이어받을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은 표기 대장군 유태범밖에 없었다.첫째로 유태범은 유씨 가문 사람이라 왕족에 속했기에 명분이 정당했다. 둘째로 표기 대장군으로서 서경의 절반에 달하는 군대를 거느리고 있어 권력이 하늘을 찔렀다. 셋째로 유태범은 오랜 시간 동안 힘을 키워왔다. 인맥, 위신, 공로 모두 왕위에 오르기에 충분했다.현재 유태범이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적지 않은 관원들은 애도를 표한 후 바로 대장군 저택으로 가서 유태범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었다.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히 서경왕부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의진은 그들을 제압할 힘이 없었다.“어머니, 벌써 종일 여기 계셨어요. 들어가서 쉬세요. 이러다가 몸이 상하실까 걱정됩니다.”수심과 피곤이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을 본 유천우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내가 어찌 편히 쉴 수 있겠어.”이의진이 고개를 내저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더 조심해야죠. 서경왕부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왕비인 어머니가 버티셔야 합니다. 절대 쓰러져선 안 돼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이의진은 뭐라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유천우가 가로챘다.“어머니, 이번에는 제 말을 들어주세요. 먼저 들어가서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아버지 곁을 지켜도 괜찮아요.”이의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천우는 도우미 두 명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너희 둘, 어머니를 방으로 모시고 잘 보살펴드려.”“알겠습니다.”두 도우미는 대답한 후 이의진을 부축했다. 무릎을 하도 오랜 시간 꿇고 있어 다리가 저린 나머지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천우야, 너도 몸 잘 챙겨. 절대 방심해선 안 돼.”이의진이 당부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유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나가는 걸 본 후에야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다들 돌아가. 여긴 나 혼자 지키면
그 시각 서경왕부 문 앞.유태범 등 3인은 한 무리의 근위병들을 이끌고 서둘러 걸어 나왔다.서경왕부를 떠난 후 조군영이 참다못해 물었다.“대장군님, 이의진 모자가 주제도 모르고 저렇게 날뛰는데 계속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합니까?”“당연히 내버려 둘 순 없지. 하지만 너무 대놓고 움직여서도 안 돼. 흑용군의 대부분 고급 장교들이 서경왕부에 충성해서 정말 싸우기라도 한다면 우리한테 좋을 게 없어.”유태범이 실눈을 뜨고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조군영이 또 물었다.“대놓고 움직일 수 없다면 몰래 압력을 가해야지.”유태범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서경에 내란이 일어서 서경왕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진정한 리더가 누구인지 알게 될 거야.”“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이간질시킬게요. 백성들의 원한이 커져서 서경왕부도 감당이 안 될 때 대장군님이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겁니다. 그때가 되면 서경의 백성들은 대장군님께 고마워할 것이고 새로운 서경왕으로 모시겠죠.”눈치가 참 빠른 조군영이었다.“맞아. 아주 영특하구나, 너. 나중에 내가 서경왕 자리에 앉으면 표기 대장군 자리는 네 것이 될 거야.”유태범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대장군님.”조군영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얼른 움직여. 빠를수록 좋아. 절대 그 어떤 흔적도 남겨선 안 된다는 거 명심해.”유태범이 신신당부했다.“알겠습니다. 제가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조군영은 인사를 올린 후 자리를 떠났다.“대장군님, 일반적인 내란이라면 서경왕부의 뿌리를 흔드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반드시 강력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고원이 귀띔했다.“그건 나도 알고 있어.”유태범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동안 난 내 사람을 몰래 키워왔어. 8대 제후 중에 절반이 내 사람이야. 내 명령 한마디면 주저하지 않고 날 도와줄 거야.”“진작 준비하고 계셨군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고원이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서경왕이 되면 절대 섭섭지 않게 해줄게.”
“유태범은 오랫동안 야심을 숨겨왔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이 기회에 무조건 권력을 빼앗으려고 할 겁니다. 이 일 아직 끝나려면 멀었어요.”유천우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맞아. 대놓고 움직이진 못해도 뒤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할 거야. 앞으로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해.”이의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위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절대 함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형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유천우가 한탄하듯 말했다.“천우야, 네 능력도 네 형 못지않아. 네 형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이의진이 그를 격려했다.“어머니, 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어요. 형님에 비하면 한참 부족합니다.”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이의진이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 장례식이 끝난 후에 폐하께 말씀드려서 너한테 왕위를 물려주게 할 거야. 앞으로 서경왕은 너고 그 중책을 맡아야 해.”“어머니, 왕위는 형 거예요. 전 그 자리를 물려받을 생각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서경왕은 형만이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고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천우야, 다른 일은 남한테 양보해도 이건 절대 안 돼!”이의진이 어두운 목소리로 호통쳤다.“그 자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꿈에 그리는 자리인지 알아? 놓치면 평생을 후회할 거라고!”“전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저한테 있어서 권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아버지처럼 매일 애쓰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왕이 되면 좋을 게 뭐가 있다고. 걱정거리만 태산일 텐데. 그럴 바엔 맨날 먹고 놀면서 편히 살겠어. 그게 더 좋은 거 아닌가?’“이 녀석아, 일이 네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전에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건 다 네 아버지가 있어서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금 아무 권력도 손에 쥐지 않는다면 나중에 아주 처참한 결말을 맞이할 거란
“유장혁?”그 소리에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때 유씨 가문의 천재는 이름을 널리 떨쳤었다. 그런데 10년 전 자금성의 난이 터진 후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고 현재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런 그의 이름을 갑자기 들으니 놀랄 만도 했다.“도련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세자 전하의 생사도 불투명한 데다가 어디 있는지도 아무도 몰라요. 그런 분한테 서경왕의 자리를 맡긴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 아닌가요?”조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두 손까지 펼쳐 보였다.“그러게요, 도련님. 제발 현실을 잘 알고 말씀하세요. 세자 전하께 기댈 바엔 차라리 대장군님께 기대는 게 더 낫죠.”고원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유천우가 자기 자신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실종된 지 10년이나 된 사람을 얘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얘기는 없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형도 꼭 돌아올 겁니다. 그때 가서 형이 왕위를 이어받아도 문제없죠.”유천우가 싸늘하게 말했다.“도련님, 제가 하는 말이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 세자 전하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면 어떡해요? 서경왕의 자리를 계속 비워둘 작정인가요?”조군영이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형님 죽지 않았고 멀쩡하게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조 장군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유천우가 말했다.“살아있다면 지금 어디 계시는 거죠? 왜 나타나지 않는 겁니까?”조군영은 일부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형님한테 소식을 전했으니 꼭 올 겁니다.”유천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설마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니죠?”조군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위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퍼지면 서경 전체가 크게 흔들릴 거예요.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고요. 지금 당장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도 나서서 유천우를 설득했다.“형한테 자리를 물려주는 건 아버지의 유언이에요. 지금 명령을 거역하겠단 겁니까?”
사람들이 뒤돌아보니 거친 삼베옷을 입고 상복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차가운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남자는 위엄이 넘쳤고 온몸에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전장을 누빈 조군영과 고원마저도 그를 보자마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표정이 진지해졌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유만수의 작은 아들 유천우였다.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유천우는 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하여 예전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도 많이 저질렀었고 서경의 사고뭉치라 불리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2년 동안 유천우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더는 빈둥빈둥 놀지 않고 군에 들어가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처음에 사람들은 유천우가 군대에서 3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도련님이 군대의 혹독한 훈련을 버틴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그런데 뜻밖에도 유천우는 군대에서 자리를 잡았고 공까지 세웠다.짧은 2년 사이에 병사에서 흑용군의 부장으로 성장했다. 든든한 배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놀라운 성과였다.사람들은 그제야 유천우가 응석받이로 자란 도련님이 아니라 군사 천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천우야, 드디어 온 거야?”아들을 보자마자 이의진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겨우 가라앉았던 슬픔이 다시 저도 모르게 밀려왔다.“어머니, 소식 다 들었어요. 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유천우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군영과 고원에게 시선을 옮겼다.“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렇게 몰아붙이는 겁니까?”“그게...”조군영은 고원의 눈치를 슬쩍 봤다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도련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도 대국을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현재 서경왕부에 리더가 없어서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많은 문제가 생길 거예요.”“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은 충성을 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대국?”유천우는 코웃음을 치고는 더는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
“서경 대원수의 직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부 투표를 거칠 뿐만 아니라 폐하께 보고하여 최종적으로는 폐하의 결정을 받아야 해요.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어요.” 이의진의 눈빛이 경계로 가득했다.유태범이 왔을 때 그녀는 처음에는 형제 간의 정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군영과 고원의 몇 마디 말에 그녀는 갑자기 깨달았다.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유태범은 흑용군에서 유만수 다음가는 위망을 가지고 있었다.표기대장군으로서 그는 많은 심복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반의 병권도 장악하고 있었다.왕이 세상을 떠난 후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유태범이 분명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유태범이 지금 이미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다는 점이다.왕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권력을 탈취하려 하다니, 그녀는 그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지어 유만수의 죽음이 이 자들과 호룡각 잔당들이 암묵적으로 결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만약 유태범이 병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할 것이다.“마마, 급할 때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찌 폐하의 결정을 기다릴 시간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빨리 국면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조군영이 계속해서 말했다.“맞습니다!”고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장수가 밖에 있으면 군령도 받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폐하는 상황을 전혀 모르니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그래야만 소인배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폐하에게 보고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내부 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승복할 수 있어요.” 이의진이 다시 말했다.“투표라니요? 이게 투표할 일입니까? 전 서경을 둘러봐도 대장군님보다 원수 자리에 더 적합한 분이 누가 있습니까?” 조군영이 말했다.“그렇습니다, 왕비마마! 공적으로 보나, 위망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무공으로 보나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고원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며 바로 땅에 무릎을 꿇고 세 번 크게 머리를 조아렸다.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비록 똑같이 연기였지만 조군영보다는 훨씬 진실되어 보였다.“표기대장군 도착하셨습니다!”이때 문밖에서 우렁찬 외침이 울렸다.곧이어 금빛 갑옷을 입고 기상이 비범한 중년 남자가 급하게 걸어 들어왔다.이 사람이 바로 일품 표기대장군 유태범이었다!유태범은 표기대장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만수의 사촌 동생이기도 했다.유태범은 어릴 때부터 문무를 겸비하고 천부적 재능이 있어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났다.만약 유만수가 없었다면 분명 유씨 가문의 가장 빛나는 천재였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만수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웅 앞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대장군께 인사드립니다!”유태범을 보자 조군영과 고원은 즉시 가식적인 표정을 거두고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그들 둘은 모두 유태범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진정한 측근 장수들이었다.마치 유만수와 석태혁의 관계처럼 영광도 함께 하고 손실도 함께했다.“형님!”유태범은 두 심복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영당에 들어서자마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무릎을 꿇었다.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입술은 떨리며 얼굴에는 비통함과 분노의 빛이 어려 있었다.“어찌 이럴 수가? 우리 형님이 어찌 돌아가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가 한 짓입니까?!”유태범이 붉은 눈으로 연달아 분노의 외침을 터뜨렸다.“호룡각의 잔당들입니다. 그들이 자객을 부내에 잠입시켜 어젯밤 어르신을 암살했습니다.” 이의진의 얼굴이 흐리멍덩했다.“호룡각?”유태범이 이를 갈며 분노에 차 있다가 즉시 고함쳤다. “누구 없느냐! 즉시 군대를 집결시켜 전 성을 수색하라. 반드시 범인을 체포해야 한다!”“잠깐만요!”이의진이 갑자기 나서서 제지했다.“태범 씨, 매우 비통한 것을 알지만 지금은 아직 일을 크게 만들 수 없습니다.”“형님이 이미 돌아가셨는데 무
이 말이 나오자 조군영과 고원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두 사람이 오늘 온 것은 본래 기세를 과시하려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이의진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보일 줄은 몰랐다.입을 열자마자 반역이라는 죄명을 들이대다니.이런 죄가 뒤집어씌워진다면 그들은 아마 왕부의 대문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마마, 농담 마십시오. 반역은 사형감입니다. 저희가 아무리 대범하다 해도 그런 일은 감히 못 하지요!” 고원이 연달아 해명했다.“맞습니다. 저희는 왕께 항상 충성을 다해왔는데 어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조군영도 따라서 부인했다.비록 두 사람 모두 그런 야심이 조금은 있었지만 명백히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적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반역할 생각이 없다면 어째서 갑옷을 입고 부내에 들어오시는 것입니까? 규칙도 모르십니까?” 이의진이 조금도 봐주지 않고 꾸짖었다.그저 이품 장군일 뿐인데 군권이 조금 있다고 감히 왕부 안에서 눈깔을 찌푸리고 있다니.유만수가 살아있을 때 이 둘은 감히 이러지 못했다.“아이고! 제 정신 좀 보세요, 왕부의 규칙을 잊었네요. 마마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군영이 헛웃음을 지었다.이어서 갑옷을 벗고 차고 있던 칼을 내려 왕부의 경비에게 건넸다.“저희가 급히 오느라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행동이었으니 개의치마시지요.” 고원이 웃으며 말했고 즉시 갑옷과 칼을 벗었다.이 광경을 보고 이의진의 안색이 비로소 조금 누그러졌지만 어조는 여전히 차가웠다.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왕께서 자객의 습격을 받아 위험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저희 둘이 특별히 문안드리러 왔습니다.”고원이 가식적으로 말했다.“소식통이 꽤나 빠르군요.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의진이 차갑게 말했다.“늦었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두 사람이 의아한 척했다.이의진은 설명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몸을 돌려 영당으로 향했다.왕부 밖은 비록 동정이 없었지만 왕부 안에는 이미 흰 만장이 가득
“알겠습니다. 제가 경비병 신분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변장을 하셔야 합니다.” 손도운이 결국 타협했다.비록 위험이 있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정오 무렵, 서경 왕부 안.비록 유만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봉쇄되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관리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어떤 이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조문을 왔고 또 어떤 이들은 다른 목적을 품고 있었다.“보국대장군 도착!”“운미대장군 도착!”왕부 문 앞에서 두 번의 외침이 들렸다.곧이어 갑옷을 입은 체격이 우람한 중년 남자 둘이 각각 친병들을 대동하고 걸어 들어왔다.이 친병들은 모두 허리에 장도를 차고 있었고 보기에도 험상궂었다.온 이들은 바로 이품 관직인 보국대장군 조군영과 운미대장군 고원이었다.“두 분, 왕부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반드시 갑옷과 무기를 해제하셔야 합니다.”한 왕부 친위가 조군영과 고원을 막아서며 동시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흥! 난 밖에 나올 때 갑옷을 벗지 않아. 꺼져!” 조군영이 노하여 꾸짖었다.“조 장군, 이건 왕부의 규칙입니다. 따라주시기 바랍니다.”왕부 친위가 말했다.“규칙? 나한테 감히 규칙을 운운한 건가?”조군영이 왕부 친위의 얼굴을 때리며 소리쳤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규칙을 들먹이며 나를 압박하느냐? 죽고 싶나?”“조 장군, 소인도 명령을 받들어 행하는 것뿐입니다.” 왕부 친위는 동요하지 않았다.“헛소리 작작 하고 비켜. 그렇지 않으면 네 목을 벨 것이다!”조군영이 갑자기 칼을 뽑아 왕부 친위의 목에 겨누었고 그의 모습은 매우 포악하고 극도로 횡포했다.“제 머리를 베신다 해도 규칙은 지켜야 합니다.” 왕부 친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이 개자식! 관짝을 보기 전에는 정신을 못 차리겠구나!”조군영은 마침내 화를 내며 칼을 거세게 들어 왕부 친위의 팔을 향해 내리쳤다.“멈추세요!”이때 한 소리의 여성의 호통이 울렸다.삼베 흰옷을 입은 이의진이 석태혁 일행을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