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우리 사모님을 때려? 무례한 놈!”오금란이 맞는 것을 본 몇 명의 부하들이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들었다.유진우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부하들의 뺨을 몇 대씩 쳤다.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어떤 사람은 입과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어떤 사람은 이가 날아갔다.눈 깜짝할 사이에 방금 폭력을 행사하던 몇 명은 모두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유진우! 너 감히 우릴 때려? 죽고 싶은 거구나!”이서우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는데 얼굴에는 경멸과 분노가 가득했다.그녀는 이씨 가문의 딸이고 할머니가 이씨 가문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일인자였기에 무서운 게 없었다.“아예 폐인으로 만들어 줄 게.”말하고 나서 유진우는 이서우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이서우는 비참한 비명을 지르며 대포알처럼 날아가더니 벽에 세게 부딪히며 피를 토했다.“이 개자식아! 넌 이제 죽었어! 네 가족 모두 죽여 버릴 거야! 감히 이씨 가문을 건드려?”오금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악랄하게 소리를 질렀다.지금까지 살면서 아무도 감히 그녀에게 손을 대지 못했는데 유진우한테 당하고 나니 분노가 치밀었다.“목숨을 내놓으라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유진우가 손을 들어서 또 한 번 뺨을 때리자 오금란의 코는 비뚤어지고 틀니는 날아갔다.순간 오금란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거품을 토했다.“진우 씨! 그만해!”상황이 안 좋아지자, 이청아가 소리쳤다.그녀는 유진우가 계속 충동적으로 행동하다가 실수로 셋째 할머니를 죽일까 봐 두려웠다.“괜찮아?”유진우는 화를 억누르고 서둘러 이청아를 일으켜 세웠다.“피부에 살짝 상처가 났을 뿐이야, 별거 아니야.”이청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얼굴이 퉁퉁 부었는데 별거 아니라고?”유진우는 얼굴을 찡그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이청아의 상처를 보면 볼수록 화가 치밀었다.분노에 찬 그는 이서우의 얼굴을 두 번 더 짓밟았다.순간 조금이나마 예뻤던 이서우의 얼굴은 순식간에 흉측하고 비참하게 변했다.‘음, 이제야 화가
“바람둥이요?”유진우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이건 뭐지? 약만 바른 것뿐인데 왜 바람둥이가 된 거지?“선미 씨, 오해하지 말아요. 진우 씨는 그냥 저한테 약을 발라준 것뿐이에요.”질투에 찬 조선미의 표정을 본 이청아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말했다.“못 믿으시면 할 수 없고요.”그렇게 말한 뒤 그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차분하게 옷을 입었다.“흠! 약을 바른다고요? 저도 발라줘요!”조선미는 유진우 옆에 엉덩이를 대고 앉더니 옷을 벗기 시작했다.“선미 씨, 뭐 하는 거예요?”유진우는 깜짝 놀라 재빨리 손을 뻗어 막으려 했다.“왜요? 청아 씨는 되고, 저는 안 돼요?”조선미는 약간 불쾌한 듯 얼굴을 붉혔다.“다친 것도 아닌데 무슨 약을 발라요?”유진우는 울고 싶었다.‘대 가문의 아가씨가 왜 이렇게 어린애 같지?’“누가 내가 안 다쳤다고 그래요? 내 마음은 이미 구멍이 숭숭 뚫렸어요. 내가 받은 상처는 이청아 씨보다 훨씬 더 심각한데, 믿지 못하겠으면 만져 봐요!”조선미는 당당하게 말했다.“진우 씨, 등이 아직도 좀 아픈 것 같아. 약을 더 발라줘.”이청아도 다시 옷을 벗기 시작했다.두 사람을 보는 유진우는 머리가 아팠다. 정말로 두 사람은 마주치면 안 되는 것 같았다.매번 두 사람 사이에서 유진우는 너무 힘들다.“윤아야, 네가 와서 해, 나는 요리하러 갈게!”임윤아를 바라보던 유진우는 눈을 번쩍 뜨더니 서둘러 채소를 들고 순식간에 부엌으로 달려갔다.도망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흠!”두 여자는 그제야 서로를 노려보며 옷을 입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어느덧 풍성한 점심이 식탁에 올랐다.요리 네 가지와 국물이 있었다.“진우 씨, 삼겹살 먹어요. 요즘 야위었어요.”조선미는 미소를 지으며 살이 통통하게 오른 수육 한 조각을 집어 유진우의 그릇에 담았다.“고마워요.”유진우는 거절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얼굴에 미소를 띠며 서둘러 입에 넣었다.“삼겹살이 뭐가 맛있어? 닭 다리 먹어봐, 진우 씨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고를 수 없어요, 저마다 맛도 다르고,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맛도 조금씩 다르잖아요.”유진우는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흠! 말재주가 좋은데!”이청아는 더 이상 유진우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어쨌든 삼겹살을 더 좋아해야 해요!”조선미는 안 그러면 죽는다는 표정으로 강요했다.유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숨죽이고 있었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등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진우 씨, 잠깐만 나와 봐요. 할 얘기가 있어요.”떨리는 마음으로 식사를 마친 유진우는 곧바로 조선미에게 불려 나갔다.이청아는 무심하게 산책하는 척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사람이 속삭이는 내용을 엿듣고 있었다.조선미는 그녀의 꼼수를 금방 눈치채고는 유진우를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차 문이 닫히자 두 사람은 바깥세상과 단절되었다.“선미 씨, 할 얘기가 뭐예요?”유진우는 궁금했다.“저 당분간 강능을 떠나야 할 것 같아요.”조선미가 말했다.“강능을 떠난다고요? 어디로 가는데요?”유진우는 깜짝 놀랐다.“고향으로 가요.”조선미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고향 집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 빨리 해결해야 해서요.”“무슨 일인데요? 도와줄까요?”유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조선미가 이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라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괜찮아요.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조선미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유진우의 실력이 엄청나게 강력하기는 하지만, 선우 가문과 맞서기에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3대 절대 세력 중 하나인 선우 가문은 군사, 정계, 재계 모든 영역에 넓게 퍼져 있었다.남성 모든 지역에서 선우 가문은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었기에 그녀는 유진우를 거기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선미 씨, 일이 있으면 혼자 버티려고 하지 말고 곧바로 나한테 알려줘요.”유진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잘 해결될 거예요.”조선미는 미소
어둠이 내린 뒤, 이씨 별장 내에서.“펑!”큰 소리와 함께 갑자기 방문이 활짝 열렸다.오금란이 이씨 가문의 경호원들과 같이 기세등등해서 나타났다.그중에서도 키가 2미터에 육박하는 건장한 두 남자가 가장 눈에 띄었다.두 사람은 외모가 비슷했고, 온몸의 근육은 우뚝 서있는 바위 같았고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두 개의 큰 산처럼 사람들을 위협했다.“이청아! 당장 나와!”문에 들어서자마자 오금란이 소리를 쳤다.낮에 맞아서 생긴 멍과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은 흉측했다.“어머, 셋째 사모님 아니십니까? 여긴 웬일이세요?”장경화는 부엌에서 달려 나오면서 경호원들을 대동한 태세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이청아와 유진우는 어디 있어?”오금란은 이를 갈며 물었다.“두 사람은 아침에 나갔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저도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요.”장경화가 대답했다.“모를 리가요? 일부러 숨겨 주는 거 아니에요?”사람들 속에서 얼굴에 붕대를 감은 한 여자가 나왔다.“실례합니다만, 누구세요?”장경화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저 서우에요!”붕대를 감은 여자가 말했다.“서우였구나. 얼굴은 왜 이래?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장경화는 깜짝 놀랐다.얼굴 전체가 붕대로 감겨 있어서 조금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어쩌다가 이렇게 됐냐고요? 이청아와 유진우가 한 거예요.”이서우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분노했다.다른 능력 하나도 없이 얼굴로 먹고 살았는데 이렇게 망가졌으니 어찌 화를 참을 수 있겠는가?“뭐라고? 그들이 너를 때렸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장경화는 조금도 믿기지 않았다.“그 둘은 나만 때린 게 아니라 할머니까지 다치게 했어요. 이청아와 유진우한테 오늘 가법을 집행하러 왔어요.”이서우가 소리를 질렀다.“장경화! 빨리 이청아와 유진우를 내놔! 그렇지 않으면 자네도 무사하지 못할 거니까!”오금란은 조바심이 났다.“저는 정말로 두 사람 어디 갔는지 몰라요.”장경화는 긴장 된 얼굴로 말했다.“더구나 제 딸은 천성이 순수해서 남을
‘칼도 뚫지 못한다고? 저 자식은 쇠로 만들어졌나?’“흥! 서호는 톱클래스 내공을 지닌 무사야. 고작 그런 장난감 같은 칼로 털끝 하나라도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이서우가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구겨진 체면을 되살리려고 할머니가 고수 두 명을 데려왔다. 유진우의 실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오늘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꺼져!”서호는 손을 뻗어 장경화의 따귀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오금란이 오만한 기세로 걸어오더니 지팡이로 장경화의 얼굴을 쿡쿡 찌르며 내려다보았다.“기회 한번 줄게. 지금 당장 이청아랑 유진우를 내 앞에 데려와. 안 그러면 네 아들 다리를 분질러버릴 거야!”“사모님, 제발 살려주세요. 지금 당장 전화할게요!”당황한 장경화는 바로 휴대 전화를 꺼내 딸에게 전화를 걸어 꼭 유진우와 함께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일부러 숨겼다. 혹시라도 유진우가 상황을 알면 안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사모님, 곧 온다고 하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장경화는 억지로 미소를 쥐어짰다.“딱 15분 줄게. 1분 늦을 때마다 네 아들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버릴 테니까 빨리 오는 게 좋을 거야!”오금란이 큰소리로 호통쳤다.“네?”장경화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1분에 손가락 하나씩 자른다면 10분이면 두 손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이현은 울 수도 없는 이 상황이 어이없기만 했다.‘X발, 나한테 왜 이래?’“덜컥!”사람들이 조용하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누군가 별장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이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살기등등하게 걸어왔다.“강 대표님?”맨 앞에 선 사람을 본 순간 장경화와 이현은 얼이 빠진 채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밤중에 강능의 최고 재벌인 강천호가 직접 발걸음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당신들은 누구야?”오금란이 싸늘한 말투로 물었다.“이 두 사람의 목숨은 내 것이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다 꺼져!”강천호가 장경화와 이현을 가리켰다.“흥! 청아가
“탕!”강천호가 방아쇠를 당기자 총알이 오금란을 향해 날아갔다.그 순간 우람한 체격의 서호가 갑자기 그녀 앞에 나타나더니 두 팔을 X자로 올리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아주 단단하고 무거운 쇠고리가 툭 끊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졌다.“쨍그랑!”불빛이 번쩍이더니 쇠고리에 부딪힌 총알이 순식간에 튕겨 나갔다.서호는 마치 작은 산처럼 제자리에 선 채 씩 웃고 있었다. 강천호를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톱클래스 내공 실력에 다다르면 일반 권총 따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대가 총을 쏘기 전에 더 빨리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빠른 속도로 피하거나 무기로 총알을 막을 수도 있었다. 그저 뒤에서 기습하는 것만 아니면 털끝 하나도 건드리기 어려웠다. 이것이 바로 무사의 대단한 점이다!“막... 막았어?”장경화 등 몇몇은 다시 한번 충격에 빠졌다. 과일칼을 무시하는 건 그렇다 쳐도 총알까지 막다니,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흥, 총이면 다인 줄 알아? 우물 안의 개구리 같으니라고!”놀라움도 잠시 오금란은 바로 침착함을 되찾았다. 소룡과 서호가 지키고 있는데 누가 그녀를 다치게 할 수 있겠는가?“감히 우리 할머니한테 총을 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서호야, 당장 가서 죽여버려!”이서우가 바로 명을 내렸다.“알겠습니다!”서호는 섬뜩한 웃음을 짓고는 바닥이 깨질 정도로 발로 힘껏 밟아 뛰어올랐다. 그는 마치 화살처럼 강천호를 향해 달려 나갔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그래봤자 잔재주에 불과해!”그때 강천호의 뒤에 있던 모자를 쓴 키 작은 남자가 갑자기 몸을 움직이더니 망설임 없이 서호와 맞섰다.“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키 작은 남자는 서호의 주먹을 한 손으로 잡았다. 어마어마한 폭발력에 바닥마저 갈라지고 말았다.“응?”순간 움찔한 서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주먹을 당해낼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강 사장님, 이 사람은 오늘 우리의 타깃이 아닌 것 같은데요?”키 작은 남자는 한 손으로 바
키 작은 남자는 잇몸까지 드러내고 웃으면서 서호의 시체를 벽에 확 던져버렸다. 벽이 그의 피로 물들었다.“서호!”소룡은 남동생의 시체를 부여잡고 목청이 터지도록 울부짖었다.“감히 내 동생을 죽여?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야!”그러더니 마치 미쳐 날뛰는 사자처럼 키 작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키 작은 남자는 하찮다는 듯 피식 웃더니 소룡의 가슴팍을 냅다 걷어찼다.“쿵!”소룡은 트럭에 부딪힌 것처럼 그대로 튕겨 나가 바닥에 세게 떨어졌는데 피를 끊임없이 토했고 흉골도 움푹 패어 들어갔다.“뭐야?”그 광경에 이씨 가문 사람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얼어붙었다. 소룡의 실력이 서호보다도 훨씬 강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일격조차 당해내지 못했다.저 남자의 정체가 대체 뭘까?“너... 너 대체 누구야?”소룡이 가슴을 움켜쥐고 피를 토하며 물었다. 단 일격에 그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건 상대가 본투비 레벨 고수라는 걸 증명하기에 충분했다.“블랙 랭킹 골든 킬러 사림강이다!”섬뜩하게 웃는 키 작은 남자는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블랙 랭킹 골든 킬러?”그의 말에 소룡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비록 사림강은 알지 못했지만 블랙 랭킹 골든 킬러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블랙 랭킹에는 고수가 구름처럼 많았고 계속 배출하고 있었다. 브론즈 킬러 혼자서도 웬만한 고수들을 다 처리할 수 있었으니 실버 킬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그리고 골든 킬러는 블랙 랭킹에서 그야말로 일류였다. 그 수는 극히 적었고 골든 킬러마다 필살기 하나씩 갖고 있었다.그런 골든 킬러를 움직이려면 수조 원에 달하는 돈이 없으면 아예 불가능했다.오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몇몇을 혼내주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블랙 랭킹 골든 킬러를 만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젠장, 똥 밟았네, 정말!’“이봐 늙은 할망구, 당신 차례야.”그때 강천호가 또다시 총을 들었다.“얼른 할머니를 지켜!”화들짝 놀란 이서우가 재빨리 고함을 질렀다.“
“뭐라고요?”이청아가 눈살을 찌푸렸다.“못 알아들었어? 그럼 다시 한번 말할게.”강천호의 미소가 점점 굳어졌다.“할망구와 유진우 둘 중에 한 사람만 살 수 있어. 그러니까 누굴 죽일지 네가 결정해.”“이청아, 유진우를 선택하지 않고 뭐 해? 이건 네가 속죄할 수 있는 기회야!”이서우가 목청 높이 소리를 질렀다.“그래! 오늘 내 목숨을 살려준다면 너의 죄를 용서하고 높은 자리에 앉게 해줄게!”오금란도 그녀에게 약속했다. 이젠 오금란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냐하면 강천호가 그야말로 극악무도하고 말이 통하지 않을뿐더러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언제든지 죽이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아직 더 살고 싶은 그녀는 이곳에서 죽을 수가 없었다.“강천호 씨, 우린 당신이랑 아무 원한도 없는데 왜 우리한테 이러는 겁니까?”이청아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물었다.“아무런 원한도 없다고?”강천호가 큰소리로 건방지게 웃었다.“이청아, 네 옆에 있는 사람한테 우리 사이에 원한이 있는지 없는지 한번 물어봐봐.”아들과 딸이 살해당했고 강씨 가문도 몰살되었다. 이런 피맺힌 깊은 원한이 있는데도 원한이 없다고?“강천호 씨, 원한에는 상대가 있고 빚에는 빚쟁이가 있다고 했어요. 일이 있으면 날 찾으면 될 것을,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흥. 널 죽이려 했다면 진작 죽였어. 하지만 너무 쉽게 죽일 수는 없지. 네 가족과 친구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똑똑히 보게 할 거야. 분노, 절망, 후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느껴봐. 죽지 못해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줄게!”섬뜩하게 웃는 강천호는 그야말로 미치광이 그 자체였다. 아들과 딸이 죽은 후로 그는 더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당신이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유진우의 눈빛은 여전히 평온했다.“오늘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왔어. 너 하나 죽이려고 전 재산까지 쏟아부으면서 블랙 랭킹 3대 골든 킬러를 데려왔어. 너한테 아무리 조력자가 많아도 이들만 있으면
“사철수 씨,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사진이라도 찍어줘요? 빨리 보물 지도를 찾아내세요.”불만으로 꼴 독 찼던 유태범은 못마땅한 얼굴로 사철수에게 화풀이했다.“알겠어요. 서두를게요.”유태범의 말에 사철수는 즉시 합금으로 되어 있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채원진의 부러진 손을 들어 중간 부분에 있는 감응 위치를 살짝 눌렀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대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자, 금속으로 만든 금고가 드러났다.금고는 약 33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운데에는 골드바가 사람의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골드바 외에도 그 주변에는 다양하면서도 진기한 보물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고 귀중한 물건들이었다.“이곳은 채원진의 개인 금고예요. 채원진은 마음에 드는 모든 물건을 전부 이곳에 수집했어요.”사철수가 설명했다.“보물들이 어마어마하네요.”유천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가면 성을 하나 사고도 남겠네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룡각의 다른 세 보물 창고에 비하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새 발의 피죠.”사철수가 설명했다.“정말이에요?”유천우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당신 말대로라면 호룡각의 보물을 전부 모으면 산더미가 되겠는데요?”“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아왔으니, 산더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사철수는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빨리 모든 보물을 긁어모으고 싶네요.”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보물 지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유태범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어요.”사철수는 맨 안쪽 선반으로 가서 위에 놓여있는 정교한 박달나무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우에게 건넸다.유진우가 열어보니 안에는 양피지 3장이 들어있었다. 모든 양피지에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도 중앙에는 보물 창고의 위치가 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보물 지도가 진짜라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보물 지도는 어디 있나요?”유진우가 추궁했다.“채원진의 지하 밀실에 있어요.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모시지요.”사철수가 말했다.“지하 밀실?”유천우는 실눈을 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죠? 나중에 나를 악랄하다고 탓하기 싫으면 그런 생각은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밀실 같은 건물에는 함정과 암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천우는 사철수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저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사철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앞서서 안내하세요.”유진우가 두 근위병에게 눈치를 주자 근위병 두 명이 와서 사철수를 일으켜 세웠다.“잠깐만요. 밀실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려면 채원진의 손이 필요해요.”사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건 쉽죠.”유천우는 즉시 칼을 빼 들어 채원진의 오른손을 잘라 사철수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선물이에요.”사철수는 징그러웠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채원진의 손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유진우와 몇몇 사람은 사철수를 따라 기지로 들어갔고 마침내 지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사철수는 문을 열고 벽 쪽으로 다가간 다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그림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나의 버튼이 있었다.사철수가 손을 내밀어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갑자기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사철수가 유진우를 포함한 몇 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뒤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반 시간 남짓 지나자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몇 명 사람들의 눈에는 넓고 호화로운 지하 밀실이 들어왔다.말이 밀실이지 사실 호화 저택에 가까웠다.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생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많은 물과 식량도 수집되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혼자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핵 방지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
“채원진, 나라와 백성을 해친 네 죄가 극악무도하니 인제 그만 포기하고 꼼짝 말거라. 반항한다면 사살할 것이다.”이청성은 손에 황권을 상징하는 금색 영패를 쥔 채 차가우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청성이 이번에 유진우를 따라 서경에 온 이유는 바로 호룡각에 남아있는 잔당을 대처하기 위해서였고 여러 가지 경우를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병력을 이동하라는 칙령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이성민이 직접 내린 거였고 그 덕분에 20만 명의 백호군을 움직여 이번 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이청성을 본 채원진은 절망하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그의 입과 코에서는 검붉은 피가 더욱 많이 흘러내렸다.“채원진, 넌 이제 끝났어. 판을 뒤집을 가능성은 절대 없으니 그만 포기해. 오늘이 지나면 호룡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어둠 속에 숨어 살던 추악한 놈들은 자기가 했던 행동에 책임지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유진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야! 난 아직 패한 거 아니야! 절대 그럴 수 없어!”채원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내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이제 겨우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너희 같은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 때문에 무너질 거 같아?”오랜 세월을 참고 견뎌 호룡각의 각주가 된 채원진은 이제 곧 막강한 권세를 누릴 줄 알았는데, 겨우 며칠도 안 돼 큰 타격을 입고 궁지까지 내몰리고 말았다.채원진은 단념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어린 녀석들을 감당하지 못해 실패하고 죽는다는 게 달통 되지 않았다.“채원진, 아직도 모르겠어?”조무진은 담담하게 말했다.“용맥이 잘려서 사라질 때부터 호룡각 말살은 시작된 거야. 그때 너희들은 이미 대세와 기운을 잃었어. 만약 너희들이 어둠 속에 숨어서 연명한다면 몇 년 더 살 수는 있겠지만 그런 탐욕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니까 서경왕부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 결정을 내리는 순간부터 넌 이미
“무슨 헛소리야! 호룡각의 사람이 아니면, 서경왕부의 사람이라도 된다는 거야?”채원진은 눈이 시뻘게져 소리쳤다.“맞아. 내 사람들이야.”유진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네가 부대를 이끌고 우리를 매복시키려 할 때 내 병마들은 그 허점을 틈타 이미 너의 기지를 점령했어. 그러니까 이제 이곳은 내 소유야.”“유장혁! 그런 헛소리를 내가 믿을 거 같아?”채원진은 험악한 얼굴로 소리쳤다.“아무리 내가 많은 정예병들을 데리고 나갔다고 하지만, 기지 내에 적어도 3만 명의 병마가 있었고 각종 방어 조치까지 더해져 10만 명 이상의 병력이 없다면 감히 공격도 못해. 서경의 흑용군은 모두 내 감시하에 있었는데 만약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했다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잖아.”“누가 그래? 내가 흑용군을 호출했다고?”유진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생각하는 걸 나라고 생각 못 할 것 같아? 너의 잔당들을 토벌하기 위해 이번에 특별히 지원군들을 불렀지.”어젯밤, 유천우한테 최대한 빠른 속도로 서신을 전하게 한 이유가 바로 구원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구원병이 제때 도착해 유진우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될 수 있었다.“지원병? 무슨 지원병?”채원진은 왠지 불안한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서경과 가장 가까운 부대는 서남 지역에 있는 백호군이고, 백호군의 사령관은 전쟁의 신 조무진이야. 그런데 공교롭게도 조무진은 나와 아주 친한 사이라 도움을 좀 받았지.”유진우의 담담한 대답에 채원진은 못 믿겠다는 듯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백호군? 조무진? 그럴 리가 없어. 헛소리 하지 마!”“못 믿겠으면 뒤돌아봐.”유진우는 설명 대신 채원진의 뒤를 보며 턱을 치켜들었다.뭔가를 느낀 듯한 채원진이 뒤를 돌아보니 성벽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은색 갑옷을 입은 준수한 외모의 한 젊은 남자가 정예 장병들과 함께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젊은 남자는 다름 아닌 전쟁의 신 조무진이었다.“채원진, 어때? 이제 현실이 좀 받아들여져
“거의 거의 다 왔어. 곧 도착이야.”채원진은 정혈을 끌어 연소시키며 겨우 도망쳤다. 도중에 끊임없이 피를 토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한바탕 전력 질주 끝에 드디어 채원진의 눈에는 기지 앞의 높은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성벽만 넘으면 그는 안전할 수 있었다.채원진은 기지 안에 많은 영단 묘약이 있으니, 그의 독을 치료할 약이 기필코 있을 거로 생각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성문을 열어라! 어서 빨리 성문을 열어!”성벽 지하까지 돌진한 채원진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비틀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얼굴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여전히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슝 슝 슝.채원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벽 위에서 갑자기 팔뚝 굵기의 쇠뇌가 몇 대 발사되었는데 10만여 근의 힘을 숨기고 있는 쇠뇌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놀란 채원진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팡 팡 팡.몇 대의 쇠뇌는 채원진의 눈앞에 떨어지며 엄청난 위력과 함께 뒤쪽 끝을 조금 남긴 채 반이 넘게 땅바닥 깊이 박혀 들어가며 굉음을 냈다.“야! 너희들 미쳤어? 나 호룡각의 객주야! 눈 똑바로 뜨고 잘 봐!”채원진이 성벽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오히려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무기를 들어 채원진에게 겨누었다.각종 중화력 무기도 가동되었고 수많은 포구와 총구가 동시에 성벽 아래에 있는 채원진을 겨누었다.누군가의 명령이 내려지기만 하면 채원진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었다.“눈은 멋으로 붙이고 다니는 거야? 나도 못 알아봐? 당장 성문을 열어! 안 그러면 전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화가 치밀어 오른 채원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집 문 앞에서 막힐 줄이야.‘이 녀석들, 도대체 무슨 수작인 거야?’채원진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원진, 너한테 남은 건 죽음뿐이야.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 고통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