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도 뚫지 못한다고? 저 자식은 쇠로 만들어졌나?’“흥! 서호는 톱클래스 내공을 지닌 무사야. 고작 그런 장난감 같은 칼로 털끝 하나라도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이서우가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구겨진 체면을 되살리려고 할머니가 고수 두 명을 데려왔다. 유진우의 실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오늘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꺼져!”서호는 손을 뻗어 장경화의 따귀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오금란이 오만한 기세로 걸어오더니 지팡이로 장경화의 얼굴을 쿡쿡 찌르며 내려다보았다.“기회 한번 줄게. 지금 당장 이청아랑 유진우를 내 앞에 데려와. 안 그러면 네 아들 다리를 분질러버릴 거야!”“사모님, 제발 살려주세요. 지금 당장 전화할게요!”당황한 장경화는 바로 휴대 전화를 꺼내 딸에게 전화를 걸어 꼭 유진우와 함께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일부러 숨겼다. 혹시라도 유진우가 상황을 알면 안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사모님, 곧 온다고 하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장경화는 억지로 미소를 쥐어짰다.“딱 15분 줄게. 1분 늦을 때마다 네 아들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버릴 테니까 빨리 오는 게 좋을 거야!”오금란이 큰소리로 호통쳤다.“네?”장경화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1분에 손가락 하나씩 자른다면 10분이면 두 손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이현은 울 수도 없는 이 상황이 어이없기만 했다.‘X발, 나한테 왜 이래?’“덜컥!”사람들이 조용하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누군가 별장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이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살기등등하게 걸어왔다.“강 대표님?”맨 앞에 선 사람을 본 순간 장경화와 이현은 얼이 빠진 채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밤중에 강능의 최고 재벌인 강천호가 직접 발걸음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당신들은 누구야?”오금란이 싸늘한 말투로 물었다.“이 두 사람의 목숨은 내 것이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다 꺼져!”강천호가 장경화와 이현을 가리켰다.“흥! 청아가
“탕!”강천호가 방아쇠를 당기자 총알이 오금란을 향해 날아갔다.그 순간 우람한 체격의 서호가 갑자기 그녀 앞에 나타나더니 두 팔을 X자로 올리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아주 단단하고 무거운 쇠고리가 툭 끊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졌다.“쨍그랑!”불빛이 번쩍이더니 쇠고리에 부딪힌 총알이 순식간에 튕겨 나갔다.서호는 마치 작은 산처럼 제자리에 선 채 씩 웃고 있었다. 강천호를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톱클래스 내공 실력에 다다르면 일반 권총 따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대가 총을 쏘기 전에 더 빨리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빠른 속도로 피하거나 무기로 총알을 막을 수도 있었다. 그저 뒤에서 기습하는 것만 아니면 털끝 하나도 건드리기 어려웠다. 이것이 바로 무사의 대단한 점이다!“막... 막았어?”장경화 등 몇몇은 다시 한번 충격에 빠졌다. 과일칼을 무시하는 건 그렇다 쳐도 총알까지 막다니,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흥, 총이면 다인 줄 알아? 우물 안의 개구리 같으니라고!”놀라움도 잠시 오금란은 바로 침착함을 되찾았다. 소룡과 서호가 지키고 있는데 누가 그녀를 다치게 할 수 있겠는가?“감히 우리 할머니한테 총을 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서호야, 당장 가서 죽여버려!”이서우가 바로 명을 내렸다.“알겠습니다!”서호는 섬뜩한 웃음을 짓고는 바닥이 깨질 정도로 발로 힘껏 밟아 뛰어올랐다. 그는 마치 화살처럼 강천호를 향해 달려 나갔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그래봤자 잔재주에 불과해!”그때 강천호의 뒤에 있던 모자를 쓴 키 작은 남자가 갑자기 몸을 움직이더니 망설임 없이 서호와 맞섰다.“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키 작은 남자는 서호의 주먹을 한 손으로 잡았다. 어마어마한 폭발력에 바닥마저 갈라지고 말았다.“응?”순간 움찔한 서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주먹을 당해낼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강 사장님, 이 사람은 오늘 우리의 타깃이 아닌 것 같은데요?”키 작은 남자는 한 손으로 바
키 작은 남자는 잇몸까지 드러내고 웃으면서 서호의 시체를 벽에 확 던져버렸다. 벽이 그의 피로 물들었다.“서호!”소룡은 남동생의 시체를 부여잡고 목청이 터지도록 울부짖었다.“감히 내 동생을 죽여?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야!”그러더니 마치 미쳐 날뛰는 사자처럼 키 작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키 작은 남자는 하찮다는 듯 피식 웃더니 소룡의 가슴팍을 냅다 걷어찼다.“쿵!”소룡은 트럭에 부딪힌 것처럼 그대로 튕겨 나가 바닥에 세게 떨어졌는데 피를 끊임없이 토했고 흉골도 움푹 패어 들어갔다.“뭐야?”그 광경에 이씨 가문 사람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얼어붙었다. 소룡의 실력이 서호보다도 훨씬 강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일격조차 당해내지 못했다.저 남자의 정체가 대체 뭘까?“너... 너 대체 누구야?”소룡이 가슴을 움켜쥐고 피를 토하며 물었다. 단 일격에 그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건 상대가 본투비 레벨 고수라는 걸 증명하기에 충분했다.“블랙 랭킹 골든 킬러 사림강이다!”섬뜩하게 웃는 키 작은 남자는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블랙 랭킹 골든 킬러?”그의 말에 소룡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비록 사림강은 알지 못했지만 블랙 랭킹 골든 킬러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블랙 랭킹에는 고수가 구름처럼 많았고 계속 배출하고 있었다. 브론즈 킬러 혼자서도 웬만한 고수들을 다 처리할 수 있었으니 실버 킬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그리고 골든 킬러는 블랙 랭킹에서 그야말로 일류였다. 그 수는 극히 적었고 골든 킬러마다 필살기 하나씩 갖고 있었다.그런 골든 킬러를 움직이려면 수조 원에 달하는 돈이 없으면 아예 불가능했다.오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몇몇을 혼내주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블랙 랭킹 골든 킬러를 만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젠장, 똥 밟았네, 정말!’“이봐 늙은 할망구, 당신 차례야.”그때 강천호가 또다시 총을 들었다.“얼른 할머니를 지켜!”화들짝 놀란 이서우가 재빨리 고함을 질렀다.“
“뭐라고요?”이청아가 눈살을 찌푸렸다.“못 알아들었어? 그럼 다시 한번 말할게.”강천호의 미소가 점점 굳어졌다.“할망구와 유진우 둘 중에 한 사람만 살 수 있어. 그러니까 누굴 죽일지 네가 결정해.”“이청아, 유진우를 선택하지 않고 뭐 해? 이건 네가 속죄할 수 있는 기회야!”이서우가 목청 높이 소리를 질렀다.“그래! 오늘 내 목숨을 살려준다면 너의 죄를 용서하고 높은 자리에 앉게 해줄게!”오금란도 그녀에게 약속했다. 이젠 오금란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냐하면 강천호가 그야말로 극악무도하고 말이 통하지 않을뿐더러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언제든지 죽이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아직 더 살고 싶은 그녀는 이곳에서 죽을 수가 없었다.“강천호 씨, 우린 당신이랑 아무 원한도 없는데 왜 우리한테 이러는 겁니까?”이청아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물었다.“아무런 원한도 없다고?”강천호가 큰소리로 건방지게 웃었다.“이청아, 네 옆에 있는 사람한테 우리 사이에 원한이 있는지 없는지 한번 물어봐봐.”아들과 딸이 살해당했고 강씨 가문도 몰살되었다. 이런 피맺힌 깊은 원한이 있는데도 원한이 없다고?“강천호 씨, 원한에는 상대가 있고 빚에는 빚쟁이가 있다고 했어요. 일이 있으면 날 찾으면 될 것을,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흥. 널 죽이려 했다면 진작 죽였어. 하지만 너무 쉽게 죽일 수는 없지. 네 가족과 친구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똑똑히 보게 할 거야. 분노, 절망, 후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느껴봐. 죽지 못해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줄게!”섬뜩하게 웃는 강천호는 그야말로 미치광이 그 자체였다. 아들과 딸이 죽은 후로 그는 더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당신이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유진우의 눈빛은 여전히 평온했다.“오늘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왔어. 너 하나 죽이려고 전 재산까지 쏟아부으면서 블랙 랭킹 3대 골든 킬러를 데려왔어. 너한테 아무리 조력자가 많아도 이들만 있으면
‘일반인 하나를 상대하는데 이렇게까지 시끄럽게 할 필요 있나?’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저 자식 유진우의 원수였어? 정말 다행이야.”이서우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상황이라면 양측은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나 할 필요가 없었다.“흥, 역시 악인은 더 악한 악인이 나서서 처리해야 해. 유진우, 네가 오늘 어떻게 죽는지 똑똑히 지켜볼 거야!”오금란이 깨 고소해하며 싸늘하게 웃었다.그녀도 블랙 랭킹에 관해 들은 바가 있었고 블랙 랭킹 골든 킬러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돌팔이 의사가 그런 존재를 상대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나 하나 죽이려고 전 재산까지 걸었어요?”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유진우의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라곤 없었다.“복수만 할 수 있다면 가산을 탕진해도 괜찮아.”강천호가 흉악스럽게 웃었다.“그런데 이걸 어쩌나? 오늘 실망할 것 같은데요? 이 사람들로는 날 죽이지 못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죽이지 못한다고? 네 놈이 죽을 때가 됐는데도 큰소리를 치는구나.”그의 말에 사림강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너 같은 애송이는 블랙 랭킹 골든 킬러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도 모르지? 너 하나 죽이는 것쯤은 개미 새끼 한 마리 밟아 죽이는 것보다 더 쉬워.”“그래?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든지.”유진우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좋아! 오늘 진짜 실력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지.”사림강은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는 마치 총알처럼 휙 뛰어올랐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유진우 앞으로 다가가 그의 가슴팍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유진우는 피하지 않고 주먹을 뻗었다. 그러자 사림강의 주먹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쾅!”폭발음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에너지가 폭발했고 광풍이 휘몰아쳤다.두 주먹이 부딪치는 동시에 사림강의 주먹은 그 자리에서 터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팔뚝 뼈는 어깨를 관통한 채 꽈배기 모양으로 꼬여졌다.“으악!”사림강은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날아가 벽에
이씨 가문 사람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3대 킬러와 무표정의 유진우를 번갈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유진우가 이 정도로 강한 실력을 지녔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단 일격에 블랙 랭킹 3대 골든 킬러를 전부 쓰러뜨리다니...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쓸모없는 놈의 실력이 이토록 강할 거라고는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저 쓸모없는 놈이 언제 저렇게 강해졌어?”이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그가 알고 있는 유진우는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기생오라비였고 무술을 조금 안다고 해도 그저 겉으로만 그럴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엘리트 킬러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그런데 오늘 유진우의 움직임은 그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그의 전 매형이 무도 고수라는 걸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세상에나! 저 사람 유진우 맞아?”장경화도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블랙 랭킹 골든 킬러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소룡과 서호의 실력은 잘 알고 있었다.약육강식의 논리대로라면 유진우의 무술 실력이 사림강보다 강했고 또 소룡과 서호보다도 훨씬 강했다. 다시 말해 완전히 같은 레벨이 아니었다.“젠장! 저 데릴사위가 저렇게나 강했어?”이서우는 혹시나 잘못 본 건 아닌지 눈을 비비적거렸다.블랙 랭킹 3대 골든 킬러가 이리 쉽게 죽다니... 유진우가 강한 것일까, 아니면 킬러들이 그저 텅 빈 이름뿐인 것일까?“너 이 자식 아주 끈질기구나! 빨리 방법을 생각해서 처리해야겠어!”잠깐의 놀라움 후, 오금란은 또다시 몰래 꿍꿍이를 꾸미기 시작했다.무력으로 한다면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기에 지금으로선 세력으로 압박을 가하는 수밖에 없었다.상대의 무술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이씨 가문 전체와 맞서 싸우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청아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익숙한 얼굴을 보며 경악을 감추지 못할 뿐이었다.결혼 생활 3년 동안 그녀는 유진우가 이런 실력을 지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지금
“지금 당장 무릎 꿇어!”강천호가 매섭게 호통쳤다.“싫다면요?”실눈을 뜬 유진우는 겁먹은 기색이라곤 없었다.“싫다고? 그럼 먼저 이 할망구부터 죽여야지!”강천호는 오금란을 앞으로 잡아끌더니 총을 그녀의 관자놀이에 겨누었다. 유진우의 실력을 알고 있어 방패막이로 삼을 생각이었다.“강천호 씨, 경고하는데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분은 셋째 할머니야!”유진우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셋째 할머니? 하하... 이 할망구를 꽤 신경 쓰나 봐?”강천호가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대로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내 말대로 해!”“유진우, 가만히 서서 뭐 해? 당장 무릎 꿇어!”이서우가 미친 듯이 다그치기 시작했다.“짐승 같은 놈아, 당장 무릎 꿇어! 날 죽일 셈이야?”오금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할머니, 제가 곧 구해드릴 테니까 조급해하지 말아요.”유진우는 일부러 화난 척했다.“강천호 씨, 복수하려거든 나한테 해요. 할머니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무서운 법을 모르는구나!”화가 난 강천호는 오금란의 무릎에 총을 쐈다.“으악!”오금란이 처참한 비명을 질렀고 얼굴도 잔뜩 일그러졌다.“감히 총을 쏴? 할머니를 풀어주지 않으면...”유진우는 계속하여 협박했다. 상대가 총까지 쏜 마당에 예의고 뭐고 차릴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천호는 또다시 오금란의 다른 한쪽 무릎에 총을 쏘며 으름장을 놓았다.“꿇어!”“이 짐승보다 못한 놈아, 당장 꿇어! 안 그러면 절대 용서치 않아!”오금란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처참하게 울부짖었다. 극심한 고통을 견디기 너무도 힘들었다.“강천호, 적당히 해. 만약 셋째 할머니를 죽인다면 아무도 당신을 구하지 못할 거야.”유진우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이 할망구를 이토록 신경 쓰다니... 그럼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어떤 건지 제대로 느끼게 해줄게.”강천호는 피식 웃으면서 총을 오금란의 관자놀이
“으악...”이서우의 몸이 경직되면서 목소리도 더는 나오지 않았다.검은 총구와 강천호의 흉악스러운 얼굴을 번갈아 보던 그녀의 의식이 점점 흐릿해지다가 결국 쿵 하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죽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역력했고 눈도 제대로 감지 못했다.모든 상황이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졌다. 아마 이서우마저도 이런 방식으로 생을 마감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죽... 죽었어?”이서우와 오금란의 시체를 보며 장경화 등 몇몇은 겁에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평소 안하무인인 데다가 오만하기 짝이 없던 그녀들이 이렇게 갑자기 죽다니...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유진우는 무뚝뚝하고 싸늘하게 시체를 내려다보았다.악인은 그보다 더 악한 악인에게 당한다고 했다. 이서우와 오금란은 기고만장하고 남을 업신여겼으며 가르침을 받아도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되레 복수할 생각뿐이었다.이처럼 남에게 해가 되는 인간은 죽어도 슬퍼할 필요가 없다.그는 자애로운 사람이 아니다.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귀찮은 일을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가 있겠는가?“하하... 어때? 화가 나서 미치겠고 고통스러워 죽을 것 같지? 날 막 죽이고 싶은 충동이 생겨?”강천호가 음침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솔직하게 얘기할게. 이제 시작일 뿐이야. 내 손에 인질이 몇이나 있으니까 너랑 천천히 놀아줄게!”그러더니 이현 옆으로 다가가 총구를 그의 머리에 겨누었다.“다음은 네 처남이다. 무릎을 꿇을지 말지는 네 선택에 달려있어.”“강 대표님, 이 일은 저랑 상관없는 일입니다. 제발 총 쏘지 말아 주세요.”“네, 강 대표님. 저희는 강 대표님한테 잘못한 게 없어요. 죽이려면 유진우만 죽이고 제 아들은 제발 놔주세요!”장경화가 손발이 닳도록 빌었다.“유진우는 당신네 이씨 가문의 사위잖아. 한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온 가족이 벌을 받아야지. 아무도 도망 못 가. 물론 당신 아들이 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유진우한테 달렸어.”강천호가 조롱 섞인 웃음을 지었
“사철수 씨,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사진이라도 찍어줘요? 빨리 보물 지도를 찾아내세요.”불만으로 꼴 독 찼던 유태범은 못마땅한 얼굴로 사철수에게 화풀이했다.“알겠어요. 서두를게요.”유태범의 말에 사철수는 즉시 합금으로 되어 있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채원진의 부러진 손을 들어 중간 부분에 있는 감응 위치를 살짝 눌렀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대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자, 금속으로 만든 금고가 드러났다.금고는 약 33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운데에는 골드바가 사람의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골드바 외에도 그 주변에는 다양하면서도 진기한 보물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고 귀중한 물건들이었다.“이곳은 채원진의 개인 금고예요. 채원진은 마음에 드는 모든 물건을 전부 이곳에 수집했어요.”사철수가 설명했다.“보물들이 어마어마하네요.”유천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가면 성을 하나 사고도 남겠네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룡각의 다른 세 보물 창고에 비하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새 발의 피죠.”사철수가 설명했다.“정말이에요?”유천우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당신 말대로라면 호룡각의 보물을 전부 모으면 산더미가 되겠는데요?”“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아왔으니, 산더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사철수는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빨리 모든 보물을 긁어모으고 싶네요.”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보물 지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유태범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어요.”사철수는 맨 안쪽 선반으로 가서 위에 놓여있는 정교한 박달나무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우에게 건넸다.유진우가 열어보니 안에는 양피지 3장이 들어있었다. 모든 양피지에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도 중앙에는 보물 창고의 위치가 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보물 지도가 진짜라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보물 지도는 어디 있나요?”유진우가 추궁했다.“채원진의 지하 밀실에 있어요.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모시지요.”사철수가 말했다.“지하 밀실?”유천우는 실눈을 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죠? 나중에 나를 악랄하다고 탓하기 싫으면 그런 생각은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밀실 같은 건물에는 함정과 암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천우는 사철수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저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사철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앞서서 안내하세요.”유진우가 두 근위병에게 눈치를 주자 근위병 두 명이 와서 사철수를 일으켜 세웠다.“잠깐만요. 밀실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려면 채원진의 손이 필요해요.”사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건 쉽죠.”유천우는 즉시 칼을 빼 들어 채원진의 오른손을 잘라 사철수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선물이에요.”사철수는 징그러웠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채원진의 손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유진우와 몇몇 사람은 사철수를 따라 기지로 들어갔고 마침내 지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사철수는 문을 열고 벽 쪽으로 다가간 다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그림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나의 버튼이 있었다.사철수가 손을 내밀어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갑자기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사철수가 유진우를 포함한 몇 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뒤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반 시간 남짓 지나자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몇 명 사람들의 눈에는 넓고 호화로운 지하 밀실이 들어왔다.말이 밀실이지 사실 호화 저택에 가까웠다.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생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많은 물과 식량도 수집되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혼자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핵 방지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
“채원진, 나라와 백성을 해친 네 죄가 극악무도하니 인제 그만 포기하고 꼼짝 말거라. 반항한다면 사살할 것이다.”이청성은 손에 황권을 상징하는 금색 영패를 쥔 채 차가우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청성이 이번에 유진우를 따라 서경에 온 이유는 바로 호룡각에 남아있는 잔당을 대처하기 위해서였고 여러 가지 경우를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병력을 이동하라는 칙령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이성민이 직접 내린 거였고 그 덕분에 20만 명의 백호군을 움직여 이번 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이청성을 본 채원진은 절망하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그의 입과 코에서는 검붉은 피가 더욱 많이 흘러내렸다.“채원진, 넌 이제 끝났어. 판을 뒤집을 가능성은 절대 없으니 그만 포기해. 오늘이 지나면 호룡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어둠 속에 숨어 살던 추악한 놈들은 자기가 했던 행동에 책임지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유진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야! 난 아직 패한 거 아니야! 절대 그럴 수 없어!”채원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내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이제 겨우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너희 같은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 때문에 무너질 거 같아?”오랜 세월을 참고 견뎌 호룡각의 각주가 된 채원진은 이제 곧 막강한 권세를 누릴 줄 알았는데, 겨우 며칠도 안 돼 큰 타격을 입고 궁지까지 내몰리고 말았다.채원진은 단념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어린 녀석들을 감당하지 못해 실패하고 죽는다는 게 달통 되지 않았다.“채원진, 아직도 모르겠어?”조무진은 담담하게 말했다.“용맥이 잘려서 사라질 때부터 호룡각 말살은 시작된 거야. 그때 너희들은 이미 대세와 기운을 잃었어. 만약 너희들이 어둠 속에 숨어서 연명한다면 몇 년 더 살 수는 있겠지만 그런 탐욕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니까 서경왕부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 결정을 내리는 순간부터 넌 이미
“무슨 헛소리야! 호룡각의 사람이 아니면, 서경왕부의 사람이라도 된다는 거야?”채원진은 눈이 시뻘게져 소리쳤다.“맞아. 내 사람들이야.”유진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네가 부대를 이끌고 우리를 매복시키려 할 때 내 병마들은 그 허점을 틈타 이미 너의 기지를 점령했어. 그러니까 이제 이곳은 내 소유야.”“유장혁! 그런 헛소리를 내가 믿을 거 같아?”채원진은 험악한 얼굴로 소리쳤다.“아무리 내가 많은 정예병들을 데리고 나갔다고 하지만, 기지 내에 적어도 3만 명의 병마가 있었고 각종 방어 조치까지 더해져 10만 명 이상의 병력이 없다면 감히 공격도 못해. 서경의 흑용군은 모두 내 감시하에 있었는데 만약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했다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잖아.”“누가 그래? 내가 흑용군을 호출했다고?”유진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생각하는 걸 나라고 생각 못 할 것 같아? 너의 잔당들을 토벌하기 위해 이번에 특별히 지원군들을 불렀지.”어젯밤, 유천우한테 최대한 빠른 속도로 서신을 전하게 한 이유가 바로 구원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구원병이 제때 도착해 유진우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될 수 있었다.“지원병? 무슨 지원병?”채원진은 왠지 불안한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서경과 가장 가까운 부대는 서남 지역에 있는 백호군이고, 백호군의 사령관은 전쟁의 신 조무진이야. 그런데 공교롭게도 조무진은 나와 아주 친한 사이라 도움을 좀 받았지.”유진우의 담담한 대답에 채원진은 못 믿겠다는 듯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백호군? 조무진? 그럴 리가 없어. 헛소리 하지 마!”“못 믿겠으면 뒤돌아봐.”유진우는 설명 대신 채원진의 뒤를 보며 턱을 치켜들었다.뭔가를 느낀 듯한 채원진이 뒤를 돌아보니 성벽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은색 갑옷을 입은 준수한 외모의 한 젊은 남자가 정예 장병들과 함께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젊은 남자는 다름 아닌 전쟁의 신 조무진이었다.“채원진, 어때? 이제 현실이 좀 받아들여져
“거의 거의 다 왔어. 곧 도착이야.”채원진은 정혈을 끌어 연소시키며 겨우 도망쳤다. 도중에 끊임없이 피를 토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한바탕 전력 질주 끝에 드디어 채원진의 눈에는 기지 앞의 높은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성벽만 넘으면 그는 안전할 수 있었다.채원진은 기지 안에 많은 영단 묘약이 있으니, 그의 독을 치료할 약이 기필코 있을 거로 생각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성문을 열어라! 어서 빨리 성문을 열어!”성벽 지하까지 돌진한 채원진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비틀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얼굴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여전히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슝 슝 슝.채원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벽 위에서 갑자기 팔뚝 굵기의 쇠뇌가 몇 대 발사되었는데 10만여 근의 힘을 숨기고 있는 쇠뇌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놀란 채원진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팡 팡 팡.몇 대의 쇠뇌는 채원진의 눈앞에 떨어지며 엄청난 위력과 함께 뒤쪽 끝을 조금 남긴 채 반이 넘게 땅바닥 깊이 박혀 들어가며 굉음을 냈다.“야! 너희들 미쳤어? 나 호룡각의 객주야! 눈 똑바로 뜨고 잘 봐!”채원진이 성벽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오히려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무기를 들어 채원진에게 겨누었다.각종 중화력 무기도 가동되었고 수많은 포구와 총구가 동시에 성벽 아래에 있는 채원진을 겨누었다.누군가의 명령이 내려지기만 하면 채원진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었다.“눈은 멋으로 붙이고 다니는 거야? 나도 못 알아봐? 당장 성문을 열어! 안 그러면 전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화가 치밀어 오른 채원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집 문 앞에서 막힐 줄이야.‘이 녀석들, 도대체 무슨 수작인 거야?’채원진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원진, 너한테 남은 건 죽음뿐이야.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 고통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