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의원.유진우는 애꾸눈 노인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이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유진우 씨! 이 대표님이 위험해요! 얼른 와서 도와주세요!”장 비서는 입을 열자마자 도움을 청했다. “위험이라니 무슨 일이야.”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다 당신 때문이에요! 이 대표님이 유진우 씨가 걱정된다고 조훈 어르신과 대화하러 들어갔다가 지금까지 안 나오고 있어요. 위험이 있는 게 분명해요!”장 비서의 말투가 급박했다. “장난쳐? 내 일이라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거기 가서 뭐 하는 거야!”유진우의 낯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당신 도대체 양심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이 대표님은 당신을 구하기 위해서 그런 거라고요!”장 비서는 울분에 차서 소리 질렀다. “어디 있는데.”“대박 그룹이요.”“금방 갈게.”다른 말도 없이 통화를 끊은 유진우는 그대로 대박 그룹을 향해 갔다. ...한편, 대박 그룹.이청아는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있었다. 아까 마신 술의 취기가 확 올라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문제는 들어올 때 가방과 핸드폰을 다 뺏겨버려서 구조 전화를 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어떡하지?’그녀가 대책을 세우고 있을 때 사무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가운을 입은 조훈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옷은 아직도 안 벗은 거야? 굳이 내가 나서야겠어?”조훈의 시선이 이청아를 한번 훑었다. 지금의 이청아는 마치 잘 익은 복숭아와도 같았다. 온몸에서 매혹적인 향기가 나는 듯했다. 얼른 한 입 베어 물어 맛보고 싶었다. “조훈 어르신, 제발 고정하세요. 반 시간 안에 나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도록 사람을 심어놓았습니다. 지금 경찰이 오고 있을 겁니다.”이청아가 경고했다. “뭐? 네까짓 게 나를 겁박해?”조훈은 차갑게 웃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으냐. 한 가지 알려 주자면 경찰서에도 내 사람이 가
“그렇게 멀뚱히 서서 뭐 해, 얼른 사람을 놓아줘라!”안병서가 또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조훈은 눈가가 파르르 떨리며 낯빛이 흙빛이 되었다. 좋은 말로 사람을 놓아줘라고 했다면 못 이기는 척 들어줄 거였다. 하지만 안병서가 들어서자마자 성을 내며 조훈의 뺨까지 갈겼으니 이제 사람을 놓아준다면 조훈에게는 망신이었다. “안 회장님, 이 자식이 제 아들을 망쳤습니다. 게다가 제 구역에 마음대로 들어왔는데 제가 이 자식을 놓아주면 제 체면은 뭐가 됩니까.”조훈이 애써 감정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네 아들은 얻어맞아도 싼 놈이다!”안병서는 웃음을 작게 흘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네가 오늘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면 네 대박 그룹이 허공에서 증발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야.”“ 회장님, 비록 회장님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게도 배후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쇼!”조훈이 용기 내 소리 냈다. “강천호를 말하는 거냐?”안병서는 그저 시들하게 웃었다. “오늘 강천호가 여기 있다고 해도 넌 사람을 놓아줘야 한다, 알아들어?”그 말에 조훈의 낯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두 낯선 이를 위해 강천호의 체면도 세워 주지 않는다니. “네, 알겠습니다! 오늘 일은 제가 하나도 빠짐없이 천호 어르신께 고해드리죠.”조훈은 억지스럽게 웃었다. 강천호는 세 큰 손 중의 한 사람으로 안병서보다 한 수 위였다. 그런 강천호의 체면도 봐주지 않는다니, 이후의 일이 어려워질 것이다. “잔말 말고, 얼른 사람을 놓아줘라!”안병서는 더는 시간을 지체하기 싫었는지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그대로 조훈의 머리를 겨눴다. “얼른!”안병서의 총을 보며 조훈은 턱에 힘을 꽉 주고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홧김에 자기의 목숨으로 도박하고 싶지 않았다. “조훈, 오늘은 그저 경고일 뿐이다. 이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강천수도 널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그 한마디만 남겨두고, 안병서는 유진우와 이청아를 데리고 떠나갔다. 200여 명의 남자들은 그대로 굳어
“알겠어요! 의성 도련님이 도와주신 게 분명해요!”장 비서는 생각이 났다는 듯 얘기했다. ‘제가 경찰에 신고한 후 의성 도련님께도 연락을 드렸거든요! 분명 의성 도련님이 안 회장님께 연락한 거예요!”“양의성 씨가?”이청아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믿지 못하겠다는 어투로 물었다. “틀림없어요. 나서서 우리를 도와주고 안 회장님을 연락할 만한 사람은 의성 도련님뿐이에요.”장 비서는 자기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하나 분석했다. “그러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고...”이청아도 장 비서의 얘기에 동의했다.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을 사이 붉은색의 페라리가 도로 옆에 주차했다. 차 문이 열리더니 멋지게 차려입은 양의성이 걸어왔다. “청아 씨, 괜찮으세요? 전화 받자마자 달려왔어요!” 양의성은 이청아를 엄청나게 관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의성 도련님,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의성 도련님이 아니었다면 이 대표님이 위험해졌을 거예요.”장 비서가 먼저 감사 인사를 올렸다. “도와주다니?”양의성은 순간 무슨 뜻인지 반응을 하지 못했다. “방금 안 회장님이 다녀가셨어요. 친히 오셔서 이 대표님을 구해주셨는걸요.”장 비서가 환히 웃었다. “어?”양의성은 더욱 알 수 없었다. “의성 도련님이 이토록 인맥이 넓은 줄 생각도 못 했어요! 안 회장님도 친히 모실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양의성은 입 주변의 근육이 파르르 떨리고 표정이 굳어버렸다. 안 회장이 어떤 사람인데. 양의성이 어찌 그를 모실 수 있으랴. 도움을 청하기는커녕 얼굴을 보기도 쉽지 않은 분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대로 맞춰주기로 했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으니까. “흠흠, 저기... 나도 그저 시도만 해본 건데 안 회장님이 이토록 신경 써주실 줄은 몰랐네.”그 말을 들은 유진우는 그만 소리 내 웃을 뻔했다. 뻔뻔한 것도 유분수지. 들킬까봐 걱정은 되지 않나 봐? “유진우 씨, 뭐가
“그래서, 할 말은 그게 끝이야?”이청아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선 채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처음 보는 유진우의 차가운 표정이 낯설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몰려왔다. “그래, 끝이다.” 유진우는 이청아를 전혀 개의치 않고 얘기했다. “똑똑히 기억해. 내 일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마. 내가 죽든 살든 이제 너랑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알겠어?”당당한 유진우의 말에 이청아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자신의 배려가 바꿔온 것이 감사와 보답이 아닌 훈계와 원망이라니. 언제부터 두 사람 사이가 이토록 나빠졌던 것일까. “당신이 그러고도 인간이에요?!”옆의 장 비서가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 대표님이 도와주려고 했더니만 이게 무슨 태도입니까! 양심은 개나 줘버렸어요?”“그럼 무슨 태도로 대해야 하는데. 혼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호랑이 굴에 걸어 들어가는 사람을 용감하다고 해줘야 하나?”유진우가 차갑게 대꾸했다. “저런 배은망덕한...!”장 비서는 화가 치밀어 올라 말문이 막혀버렸다. “됐어, 그만둬.”“오늘부터 더 이상 네 일에 참견하지 않을 거야. 네가 죽든지 말든지 나랑은 아무 관계 없으니까!”이청아는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렸다.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녀는 뒤돌아 떠나갔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항상 강인했던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신! 오늘 일 똑똑히 기억해요!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지 우리를 찾지 말아요!”장 비서는 분에 차서 유진우를 노려보다가 다급히 이청아의 뒤를 따랐다. “머저리 같은 자식.”양의성은 입을 삐죽거리다가 자연스레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이청아와 유진우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지금 이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바보같으니라고...”멀어지는 이청아의 뒷모습을 보며 유진우는 복잡한 감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 이청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는 이청아와 싸워 그녀가 직접 떠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유진우가 제때 나서지
빌딩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걸음마다, 층마다 유진우는 난폭하게 사람을 해치웠다. 그 과정에 유진우의 적수가 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나한테 복수할 거라면서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 어떡하나.”유진우는 천천히 다가가며 조훈의 숨통을 조여갔다. “제기랄! 다가오지 마! 다가오면 쏜다!”조훈은 갑자기 서랍에서 총 한 자루를 꺼냈다. 하지만 그가 제대로 조준하기도 전에 유진우가 그의 앞으로 뛰어올라 총구를 잡았다. 그리고 총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철컥.”금속 마찰음이 들렸다. 놀란 조훈은 겨우 시선을 돌려 자신의 총구가 부서진 것을 확인했다. 총을 부수다니!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총을 찰흙 다루듯 마음대로 갖고 논단 말인가! “저, 저기... 그 전의 일은 모두 오해였어. 지금 여기서 떠난다면 앞으로 너를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하지.”조훈은 놀란 나머지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백기를 들었다. 이미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은 듯한 괴물과 싸우기에는 승산이 없을 게 뻔했다. 어쩐지 안병서 같은 인물도 유진우 앞에서 존중을 표하더니만. “네가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해도 오늘 난 너를 꼭 건드릴 거다.”유진우는 그렇게 얘기하면서 조훈의 어깨를 잡아 힘껏 아래로 잡아당겼다. 툭 소리와 함께 조훈의 어깨가 그대로 빠져버렸다. “으악!”조훈은 참을 수없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감히 내 여자한테 손을 대?”그렇게 얘기하는 유진우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저 또 한 번 손을 뻗어 조훈의 남은 팔 하나를 더 부러뜨렸을 뿐. 조훈은 너무도 괴로운 나머지 얼굴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흘렀고 표정은 뒤틀려져 있었다. 방에 남은 몇 사람도 두려움에 벌벌 떨며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제기랄! 너 내 배후가 누군지 알아?!”“무려 강천호 어르신이다! 강능 3대 큰 손 중의 일인자!”“네가 오늘 날 죽인다면 강천호 어르신이 널 가만두지 않으실 거다!”구석에 몰린 쥐는 되려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곧 죽을 처지
“저 자식이 제 아버지입니다.”짧은 한마디가 유진우를 잠깐 굳어버리게 했다. 그저 친척이라고만 생각했지 이토록 가까운 혈연관계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조훈의 아들은 조천룡이라고 들었는데 너는...?”유진우가 떠보면서 물었다. “저는 조민이라고 합니다. 조훈의 사생아입니다.”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설명했다. “조훈이 제 어머니를 강제로 취하고 추문을 피하고자 제 신분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의아들이라는 명분만 주었죠.”“그래서 조훈이 미웠다?”유진우는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당연합니다!”조민은 턱에 힘을 꽉 주고 분노에 차서 얘기했다. “조훈은 저와 어머니를 버렸을 뿐만 아니라 저희가 가난할 때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저 조천룡을 보좌하는 장기 말로 저를 불러들인 것입니다. 조천룡의 시종 짓이나 하는 것,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조훈의 모든 것을 빼앗을 겁니다!”“좋아.”유진우는 만족스러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야망이 있다니 내가 도와주지. 내 말만 잘 들으면 조훈의 모든 것을 네 손에 쥐어 주고 나아가서는 너를 강능의 왕으로 만들어 주마.”“감사합니다, 선생님!”조민은 너무도 기쁜 나머지 바닥에 꿇어앉아 유진우에게 절을 세 번이나 했다. 조민은 머리가 빨리 굴러가는 사람이었기에 유진우가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차렸다. 혼자만의 힘으로 대박 그룹 전체를 해치워 버린 실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할지는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을 따른다면 앞날이 꽃길일 것이 분명했다. “나는 유 선생이라고 부르면 된다. 이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내게 연락해. 너한테 다른 요구는 없고 충심만 있으면 된다.”유진우가 조민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 “죽을 때까지 유 선생님을 모시겠습니다!”조민은 고개를 숙이며 충심을 표했다. “이 일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지?”유진우는 한 번 더 물었다. “당연하죠! 오늘 일은 유 선생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저 혼자 한 일입니다!”조민은 재빨리
남자가 한눈에 반할 만큼 예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 녀석은 어제 봤음에도 불구하고 까먹어 버리다니. 그녀의 존재감이 부족했던 것일까? “어...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어디서 만났었나요?”“어제! 병원에서! 당신이 제 할아버지를 치료했어요! 기억 안 나요?!”여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얘기했다. “아, 생각났습니다. 조선미 씨의 동생이시죠? 이름이... 조나연이었던가?”유진우는 기억을 되짚으며 얘기했다. “조나연이라니? 내 이름은 조아영이에요! 조아영!”여자는 금세 성질이 터져버렸다. 콱 액셀을 밟아 이 사람을 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이런 충격은 처음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못살게 굴다니!“죄송합니다, 조아영 씨. 무슨 일로 절 찾으셨나요?”유진우가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당연히 일이 있으니까 찾아왔죠! 제가 한가한 사람처럼 보여요?”조아영은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며 얘기했다. “얼른 차에 타요. 언니가 이상한 병에 걸린 것 같아서 당신을 데려가려는 거니까요.”“네? 선미 아가씨한테 무슨 일이라도?”유진우가 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요? 의사인 당신이 알아봐야지. 얼른 타요!”조아영은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유진우는 하는 수없이 그저 람보르기니에 올라탈 뿐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수많은 행인의 질투의 시선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대략 30분 정도 운전하여 천향원이라는 고급스러운 별장 앞에 도착했다. 별장의 입구에는 24시간 대기하는 경호원이 있었다. “따라와요!”차에서 내린 조아영은 빠른 속도로 유진우를 데리고 한 침실로 들어섰다. 그 시각, 침실의 화장실.정장을 입은 조선미가 얼음으로 가득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고 시선은 초점이 없이 몽롱했으며 계속해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유혹적인 자태로 숨을 크게 쉬니 욕조의 물에 작은 파도가 일었다. “선미 아가씨, 무슨 일입니까?”유진우가 나서서 확
“죄송해요, 실수입니다.”유진우는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조선미를 밀어냈다. 하지만 둘 사이의 어색한 기류를 숨길 수는 없었다. 방금의 실수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유진우가 반응할 사이도 없었다. “아니에요, 제 실수입니다. 아마도 약효가 너무 과한 것 같네요. 제가 제어하지 못했습니다.”조선미가 부끄러워하면서 얘기했다. 그러고는 한 쪽에 있는 조아영을 쏘아보았다. ‘모처럼 하늘이 주신 솔로 탈출할 기회인데, 왜 이리도 눈치가 없는지.’‘그냥 나가면 될 것이지 굳이 여기서 소리까지 지르며 방해를 왜 해!’‘한 달 치 용돈을 깎아버릴 테다!’“조아영 씨, 일단 언니분을 침대까지 모셔다드리세요.”유진우가 부탁했다. “흥, 당연히 내가 부축해야지, 아니면 유진우 씨가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요?”조아영은 인상을 팍 쓰더니 낯빛이 어두운 조선미를 부축하여 침대에 눕혔다. “선미 아가씨, 일단 옷을 벗으시고 돌아누워 주세요.” 유진우가 또 얘기했다. “옷을 벗어요? 뭐라는 거야! 이 변태! 이젠 숨길 생각도 없는 거예요?!”그 말에 조아영이 펄쩍 뛰며 반대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은침을 사용해서 몸 안의 독소를 빼내야 해서 그러는 거니까. 아니면 더 괴로울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정신을 잃을지도 몰라요.”유진우가 급히 변명했다. “진짜예요? 날 놀리는 거 아니죠?”조아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제가 사람 목숨으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걸로 왜 거짓말을 합니까.”유진우는 이제 변명할 힘도 없어서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럼 알겠어요. 한 번은 믿어볼게요. 대신 돌아서 서주세요. 절대로 돌아보면 안 돼요!”조아영이 경고했다. “알겠습니다.”유진우는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섰다. “언니, 일단 속옷은 입어. 저 자식 좋은 꼴 나는 못 봐.”“하하... 참 배려심 깊은 동생이네... 우리 동생.”조선미는 힘들어서 겨우 입술 사이로 말을 뱉어냈다. “당연하지! 자, 내가 도와줄게.”조아영은 득의양양하게 웃으
“거의 거의 다 왔어. 곧 도착이야.”채원진은 정혈을 끌어 연소시키며 겨우 도망쳤다. 도중에 끊임없이 피를 토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한바탕 전력 질주 끝에 드디어 채원진의 눈에는 기지 앞의 높은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성벽만 넘으면 그는 안전할 수 있었다.채원진은 기지 안에 많은 영단 묘약이 있으니, 그의 독을 치료할 약이 기필코 있을 거로 생각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성문을 열어라! 어서 빨리 성문을 열어!”성벽 지하까지 돌진한 채원진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비틀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얼굴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여전히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슝 슝 슝.채원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벽 위에서 갑자기 팔뚝 굵기의 쇠뇌가 몇 대 발사되었는데 10만여 근의 힘을 숨기고 있는 쇠뇌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놀란 채원진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팡 팡 팡.몇 대의 쇠뇌는 채원진의 눈앞에 떨어지며 엄청난 위력과 함께 뒤쪽 끝을 조금 남긴 채 반이 넘게 땅바닥 깊이 박혀 들어가며 굉음을 냈다.“야! 너희들 미쳤어? 나 호룡각의 객주야! 눈 똑바로 뜨고 잘 봐!”채원진이 성벽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오히려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무기를 들어 채원진에게 겨누었다.각종 중화력 무기도 가동되었고 수많은 포구와 총구가 동시에 성벽 아래에 있는 채원진을 겨누었다.누군가의 명령이 내려지기만 하면 채원진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었다.“눈은 멋으로 붙이고 다니는 거야? 나도 못 알아봐? 당장 성문을 열어! 안 그러면 전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화가 치밀어 오른 채원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집 문 앞에서 막힐 줄이야.‘이 녀석들, 도대체 무슨 수작인 거야?’채원진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원진, 너한테 남은 건 죽음뿐이야.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 고통 없이
10대 독극물 중 하나인 멸신독은 랜드 신선의 세상에서 막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다시 말해, 용호산의 장선기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멸신독의 침식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언제 죽느냐에 달렸을 뿐, 채원진의 죽음은 정해진 거였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대처해야지 궁지에 몰렸다고 고양이를 무는 쥐가 되어서는 안 된다.“각주님.”채원진이 습격을 당하자, 후방에서 지켜보던 마스트 경지의 장로 세 명이 갑자기 안색이 하얗게 질린채 망설일 새도 없이 즉시 나서서 도울 준비를 했다.“꺼져!”채원진이 소리를 지르며 눈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전부 쓰러뜨릴 기세로 손에 있던 용담적염창을 휘두르자, 세 명의 호룡각 장로들이 그 자리에서 튕겨 나가 피를 토하며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유태범한테 배신당해 이성을 잃은 채원진은 광기에 빠진 사람처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적이라고 생각하고 전부 죽일 기세였다.“너희들 전부 죽여버릴 거야!”채원진이 연속으로 용담적염창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총검이 천지를 뒤덮으며 백 미터 이내가 완전히 죽음의 늪으로 변해 산 것 죽은 것 할 거 없이 전부 가루가 되었다.“쿨럭.”한바탕 광기를 뿜어내던 채원진은 또 한 번 검붉은 피를 토해냈고 온몸에 맥이 빠져 휘청거렸다.그제야 분노로 이글거리던 눈빛이 차츰 사그라지며 광기 어린 공격도 멈추었다. “빌어먹을 놈들아, 언젠가 내가 너희들을 산산조각 낼 테니 각오들 하거라.”독설을 내뱉은 채원진은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한줄기의 잔영으로 변한 채 급하게 기지 쪽으로 도망쳤다.지금 채원진은 독에 중독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까 가슴팍이 유진우의 검에 찔려 몸이 매우 쇠약한 상태였다.만약 이 상태로 계속 싸웠다가는 여기서 죽을 수도 있었던 터라 채원진은 어쩔 수 없이 기지로 돌아가 해독을 시켜줄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채원진은 자신의 기지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아무리 유진우의 사람들이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자신의 성벽을 뚫지는 못할 거로 생각했
암기 형태로 발사되는 멸신독의 유효 사거리는 3미터였다.3미터 안에서는 기습공격으로 명중시킬 수 있었다.유태범이 암기를 꺼내 채원진의 등 뒤에서 기습공격을 가했을 때, 독침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쉽게 그의 몸에 꽂혀 들어갔다.“후... 드디어 끝났네.”유태범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마치 중요한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런 유태범과는 반대로 채원진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그는 놀란 듯한 눈빛으로 유태범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대체 왜입니까?”채원진은 눈을 크게 뜨며 얼굴에 드러난 충격과 당혹감, 불신과 깊은 의문을 숨기지 못했다.채원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유태범은 분명 서경 왕부와 절연한 사람이었고, 호룡각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밝은 미래만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날 배신해?’“정말 죄송합니다, 각주님. 저도 유씨 가문 사람으로서 유씨 가문이 멸망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유태범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게다가 장혁이는 제 친조카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인데, 제가 제 조카를 왜 배신합니까?”“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연극이었다는 거냐고요? 배신이고 흔적이고 뭐고 다 거짓말이었다는 거예요?”채원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각주님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신뢰를 못 얻었다면 지금 이런 상황도 없었을 겁니다.”유태범이 당당하게 말했다.“각주님, 각주님은 참 똑똑하고 조심스러우셨죠. 그런 각주님을 죽이기 위해선 철저한 계획을 짰어야 했습니다. 과정이 조금 번거롭긴 했지만,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당신... 당신들...”채원진은 분노에 치를 떨며 이를 악물었다. 순간적으로 혈압이 오른 탓에 그의 목에는 핏줄까지 튀어나와 있었다.급격한 혈액순환을 틈타 몸속으로 침투한 멸신독은 더욱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채원진의 입에서 검붉은 색의 피가 나왔다.그 순간,
그 금강은 홍복홍과 함께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채원진에게 엄청난 압박을 가했다.거대한 금강 앞에 채원진의 모습은 마치 개미와도 같았다. 금강이 채원진을 가볍게 한 번만 눌러도 순식간에 짓뭉개질 것처럼 보였다.“칠살!”홍복홍의 공격과 동시에 유진우도 함께 움직였다.그는 분노에 찬 눈을 크게 뜬 채, 온몸의 진기를 창궁검에 모으더니 바닥에 발을 힘껏 내디뎠다.“슉!”유진우와 검은 또다시 한 몸이 되어 검은빛으로 변하더니 채원진의 심장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호연정기!”필사적으로 달려드는 홍복홍과 유진우를 바라보던 채원진 역시 자신의 절대적인 방어 기술을 사용했다.채원진이 몸을 몇 번 흔들더니 거대한 하얀 기운이 주위에 원형의 보호막이 생겼다.보호막 위에는 복잡하게 생긴 룬 문자가 수도 없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고,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그 보호막은 신비로우면서도 기괴해 보였다.“쿵!”엄청난 굉음과 함께 홍복홍의 금강반야장이 정확히 보호막 위를 때렸다.보호막이 한 번 흔들리더니 물결 같은 진동을 일으키며 룬 문자에서 강렬한 빛이 순간적으로 번쩍였다.“쿵!”굉음이 또 한 번 울렸다.유진우의 치명적인 검이 보호막 위에 깊게 박혔다.홍복홍과 마찬가지로 창궁검도 채원진의 보호막을 뚫지 못하고 겉에 거센 파문만 일으켰다.홍복홍의 금강반야장은 계속해서 보호막에 압박을 가하고 있었고, 유진우의 창궁검 역시 필사적으로 보호막을 뚫고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각각 한 구역씩 맡아 계속해서 강력한 공격을 이어갔다.이건 두 사람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이었다. 만약 채원진의 보호막을 깨지 못하고 그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쿠구궁!”유진우와 홍복홍의 몸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폭발하기 시작했다.그 순간, 두 사람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들의 모든 힘을 쥐어짜내 채원진의 보호막 위로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어대고 있었다.“찌직... 찌지 직...”유진우와 홍복홍의 필사
“기습이야?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까?”채원진은 큰소리로 외치며 양손으로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긴 창에서는 붉은 열기가 터져 나오며 유진우와 하늘에서 내려오던 그림자를 향해 날아갔다.“펑! 펑!”두 번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유진우는 창에 밀려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고, 하늘에서 내려오던 그림자는 채원진의 공격에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더니 점차 금빛의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금빛의 그림자에 숨어 있던 홍복홍은 그 충격에 높이 튕겨 올라갔고, 바닥에 떨어진 후에도 수십 미터 정도 뒤로 밀려갔다.반면, 채원진은 겨우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는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기습을 당한 상황에서도 1대 2로 싸워가면서 여전히 우위를 점하는 것에서 여전히 그의 강력한 실력을 알 수 있었다.유진우와 홍복홍은 모두 대 마스터 급 강자들로서 이 세상의 정상에 있는 인물들이었다.그럼에도 채원진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이 두 사람을 상대해주고 있었다.“경천 랭킹 5위라더니, 역시 이름값 하네.”홍복홍과 유진우는 나란히 서서 채원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그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채원진의 실력은 생각보다 더 강했고 서경 전역을 샅샅이 뒤져도 그의 상대는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인도 홍복홍?”채원진이 미간을 좁히더니 입가에 냉소를 띠며 말했다.“언젠가 너랑 제대로 붙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기회가 안 됐거든. 어쩌면 오늘이 기회일지도 모르겠네. 일단 유진우부터 처리하면 바로 상대해줄게. 그럼 왕부는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겠지? 그럼 난 그걸 노려서 서경을 장악할 거야.”“그래? 네가 그 정도 수준일지 한 번 봐야겠네.”홍복홍은 차갑게 코웃음을 흘리며 은침을 꺼내 뒤통수에 찔러넣었다.유진우가 했던 것처럼 그 역시 유씨 가문의 비법으로 잠재력을 이끌어낸 죽음의 한판 승부를 걸기로 했다.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기기란 불가능했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기 살기로 싸워야 했다.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이 골칫덩어리를 해결해
“인정할 수밖에 없네. 너 좀 치는구나?”채원진은 한 손에 창을 든 채 당당하게 말했다.“이 세상에 솔로 스모크를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몇 없거든. 네가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니, 어쩌면 몇 년 뒤엔 날 이길지도 모르겠네.”방금 채원진의 공격은 적어도 절반의 체력으로 만들어낸 기술이었다.유장혁은 그런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고도 몸만 조금 밀렸을 뿐이니 그것만으로도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낼 수 있었다.그에게 5년이나 10년 정도의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채원진을 넘어설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까지는 실력 차이가 많이 났다.“경천 랭킹 5위라고 하길래 얼마나 강한 상대일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네.”유진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며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뭐라고?”채원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이 애송이 자식이 감히 날 무시해?’“못 들었어? 다시 얘기해줄까?”유진우는 조금 전보다 목소리를 더 높여 또박또박 얘기했다.“네 기술 말이야, 정말 쓰레기라고. 내 예상보다 훨씬 나약해!”“이 자식이 진짜, 너 정말 죽고 싶구나?”그 말에 채원진은 버튼이라도 눌린 듯 진심 어린 분노를 표출했다.긴 창이 부르르 떨리더니 그의 온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폭발하듯 솟아났다. 채원진은 발끝으로 땅을 가볍게 박차며 이내 붉은 그림자로 변해 유진우에게 돌진했다.지금 그의 레벨로는 아무도 감히 채원진을 무시할 수 없었다.감히 채원진을 무시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짓과 다름없었다.“장하낙일!”거리를 반쯤 좁혀온 채원진이 창을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18개의 창날이 순식간에 폭발하듯 나타나 유진우의 주위를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마침내 18가지의 창날이 무지갯빛 광선으로 모여 유진우를 향해 돌진했다.그 무지갯빛 광선이 지나가는 곳마다 공기가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땅은 깊게 파헤쳐졌다.유진우는 말로 채원진을 살살 긁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채원진의 강력한 일
“내 실력이 백준 아저씨보다 떨어진다고 해도, 너 상대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어.”유진우가 말했다.“날 상대하겠다고? 네까짓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채원진이 가볍게 비웃었다.채원진이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유장혁은 이제 막 대 마스터에 올라선 수준이었고 다른 뾰족한 수가 있다고 해도 그의 최선은 중기 대 마스터 수준이었다.그 반면에 채원진은 대원만에 가까웠다.두 사람의 차이는 두 단계 정도였지만 그 두 단계는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심연과도 같은 차이를 보여주었다.유장혁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런 차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해봐야 아는 거잖아?”유진우는 손가락 끝으로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등 뒤에서 푸른 창궁검이 빠져나와 가볍게 그의 손에 내려앉았다.“좋아! 그렇게나 자신 있다고 하니, 나한테 직접 덤빌 기회는 주도록 하지.”채원진이 손을 휘두르자 빨간 불길을 머금은 창이 허공에 나타났다.그 창은 다름 아닌 이원무의 유품이자 신병 랭킹에서 3위를 차지한 용담적염창이었다.“너희는 절대 끼어들지 마. 오늘만큼은 내 실력으로 저 녀석의 콧대를 제대로 납작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창을 휘두르는 채원진의 몸에서는 엄청난 기세가 느껴졌다.그의 몸에서 나온 붉은 빛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구름 위에서 천둥이 치고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수백 미터 내에 있던 모든 생명체들이 고개를 숙이며 몸을 낮추었다.보이지 않는 기세가 천지의 이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응?”채원진의 몸에서 나오는 엄청난 기운을 느낀 유진우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지기 시작하더니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유진우는 이때까지 무도계에서 줄곧 순조롭게 나아가며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나보지 못했다.그랬던 그가 처음으로 채원진에게서 전에 없던 압박감을 느꼈다.오늘 이 싸움이 고전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유장혁! 어서 덤벼, 네가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보고 싶네!”채원진이 한 손을 내밀더니 이내 도발
왕부의 병력은 모두 정예병들이었고, 호룡각은 수적으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두 쪽이 치열하게 싸울수록 상황은 더욱더 참혹해져만 갔다.왕부 쪽에서는 유천우가 이끌고 있었고 호룡각 쪽은 사철수가 이끌고 있었다.유진우와 채원진은 서로를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었지만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두 병력이 격렬한 혼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유진우도 포메이션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안개 포메이션과 팔괘양의진이 두 포메이션은 모두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해대는 포메이션이었기 때문이었다.주변에 설치해두었던 폭탄들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정말 궁지에 몰려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게 아닌 이상, 자폭할 생각은 없었다.“천우야! 계획이 틀어졌어. 얼른 사람들 데리고 빠져나가!”잠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유진우가 과감히 명령을 내렸다.왕부의 정예병들도 절대 밀리는 쪽이 아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얻는 이득은 별로 없어 보였다.왕부의 병사 한 명이 세 명에서 다섯 명까지 상대해본다고 해도 이길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았다.호룡각의 병력은 왕부의 열 배에 달했고 이대로 계속해서 시간만 끌었다가는 체력만 고갈되어 전멸하고 말 것이다.아직 정예병들의 체력이 충분할 때 빠져나가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어찌 됐든 정예병들이 이런 곳에서 헛되이 희생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대형으로 서도록! 다 같이 여길 빠져나가는 거다!”명령을 받은 유천우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곧바로 부하들을 지휘해 대형을 만들고 상대적으로 병력이 약해 보이는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고수들로 이루어진 왕부 정예병들의 실력은 호룡각 병력보다 훨씬 뛰어났고 훈련도 잘됐던 덕에 팀워크까지 좋았다.그들은 아주 신속하게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포위를 뚫고 빠져나갔다.호룡각의 포위망은 순식간에 뚫려버렸다.“얼른 뒤를 쫓아! 절대 놓쳐서는 안 돼!”유태범은 마음이 급해진 건지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쫓아가!”사철수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곧바로 엄청난 병력을 이
“아직 확신할 수는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두 가지야. 첫 번째는 유태범이 호룡각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한 거야. 그리고 채원진은 유태범을 시험해볼 생각으로 이런 부대를 보낸 거고.”“그럼 두 번째는요?”유천우가 계속해서 물었다.“두 번째는 유태범이 배신했다는 건데, 이건 분명 호룡각이 파놓은 함정일 거야. 대타들만 보내서 우릴 유인해놓고 한 번에 죽이려는 거겠지.”유진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만약 전자라면 유태범만 위험에 빠지고 말겠지만 후자라면 우리 모두가 함정에 빠진 거나 다름없어.”“다들 똑바로 들어! 언제든 방어할 수 있도록 준비해!”유천우는 유진우의 말에 곧바로 몸을 돌려 명령을 내렸고 그와 동시에 왕부의 정예병들은 즉시 흩어져 경계태세를 갖추었다.“하하하... 지금 방어 해봤자 이미 늦었어.”갑자기 하늘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엄청난 병력이 사방에서 몰려왔다.눈에 보이는 곳마다 수천, 수만의 병사들이 빽빽하게 몰려 있었다.유진우가 데리고 온 정예병은 천 명가량이었지만 호룡각에서 파견된 인력은 열 배가 넘어 보였다.사방에서 몰려온 병력을 보아하니 갑자기 등장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큰일이에요! 아무래도 저희가 당한 것 같습니다!”유천우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곧장 친위대를 지휘해 방어 포메이션을 구축했다.그들은 자신들이 호룡각을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호랑이가 집 앞까지 찾아온 격이나 다름없었다.“포위해!”수천 명이 넘는 호룡각의 병력은 곧바로 왕부의 정예병들을 완전히 포위했다.왕부와 호룡각 모두 정예병 중의 엘리트만 선별해서 출동시켰다.다만 호룡각 쪽이 수적으로 훨씬 우세할 뿐이었다.“이런 망할! 유태범 이 개자식이 감히 배신을 해!”유천우는 분노에 가득 찬 채 이를 악물었다.그들의 이번 작전은 호룡각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적은 병력의 최정예병들만 데려왔다.하지만 유태범이 감히 왕부를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