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는 제발 똑똑하게 살아.”유진우는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홍진호를 마치 쓰레기 버리듯 옆으로 휙 던져버렸다.“쿵!”굉음과 함께 홍진호의 무거운 몸이 도윤진 일행의 발밑에 떨어졌다.사람들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홍진호는 죽어서도 유진우가 대체 무슨 배짱으로 자신을 죽였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으악...”발밑에 축 늘어진 시체를 보며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얼이 빠져 우두커니 서 있을 뿐 한참이 지나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두려움이라곤 모르던 재벌 집 도련님이 그냥 이렇게 죽었다고? 말도 안 돼!’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방 전체가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다.“유진우 씨, 당신 미쳤어요? 감히... 홍진호를 죽여요?”도윤진이 충격의 도가니에 빠진 얼굴로 말했다. 유진우가 홍진호를 죽인 건 거지가 왕을 죽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다.“당신 이제 정말 끝났어요! 진호 형님을 죽였으니 앞으로 세상 어디에도 발붙일 자리가 없을 겁니다. 홍씨 가문의 보복을 끊임없이 당할 거라고요.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 가족, 친구 모두 홍씨 가문의 보복 대상이 되어서 남은 인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갈 거예요.”최우영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포효했다.“미쳤어, 미쳤어! 저 자식 미쳤어!”“홍씨 가문은 무사 가문이고 세력은 남성 전체에 퍼져있어. 게다가 제자도 수없이 많은데 그런 홍씨 가문을 건드렸으니 수많은 고수와 적이 된 거나 마찬가지야!”“제 주제도 모르는 놈이 감히 진호 도련님을 죽여? 이젠 그 누가 와도 널 구하지 못해!”현장이 초토화가 돼버렸다. 유진우가 겁도 없이 진짜로 홍진호를 죽일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가?“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아. 홍진호가 날 죽이려 했는데도 살려두라고?”싸늘하기 그지없는 표정과 달리 그의 말투는 무척이나 덤덤했다.“미쳤어, 정말 미쳤어. 당신 꼭 후회할 거예요!”도윤진이 노발대발했다. 그
조아영을 집에 바래다준 후 유진우는 평안 의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대문을 열자마자 눈앞의 광경에 그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약품이고 약상자고 전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그때 이청아가 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조급한 얼굴로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구릿대... 구릿대 어디 있어?”그녀는 손에 약 처방을 들고 여기저기 뒤지다가 결국 약장의 맨 꼭대기에서 구릿대를 보관하고 있는 약상자를 발견했다. 하지만 너무 높아 의자를 딛고 올라서는 수밖에 없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유진우가 무뚝뚝하게 물었다.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이청아는 그만 의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머리가 땅에 거의 닿을 무렵, 유진우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고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유진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잡아준 후 바로 내려놓았다.“왔어?”이청아의 눈빛이 잠깐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감추었다.“이 늦은 밤에 어디 갔었어? 전화는 왜 또 계속 안 받아?”“일이 있어서 나갔다 오느라 휴대 전화 확인 못 했어. 여긴 무슨 일로 왔어?”유진우가 덤덤하게 물었다. 이청아의 거만하고 도도한 성격에 절대 먼저 그를 찾아올 리가 없는데.“우연히 지나가다가 할아버지가 문 앞에 쓰러진 걸 발견하고 부축해서 안으로 들어왔어.”이청아가 설명했다.“쓰러져? 대체 무슨 일이야?”유진우의 낯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할아버지가 도둑들이랑 싸우다가 심하게 다쳤어. 얼른 안으로 들어가 봐.”이청아의 재촉에 유진우는 아무 말 없이 곧장 안으로 뛰쳐들어갔다.아니나 다를까 주정뱅이 영감이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침대 밑의 대야에는 피가 가득했다. 그에게 다가가 맥을 짚어보던 유진우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주정뱅이 영감에게서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나타나는 징후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쇠약해지는 속도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청운 리조트.“아빠, 제발 진우 오빠 좀 도와주세요. 안 그러면 진우 오빠 죽어요!”남궁은설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애걸복걸했다.“흥! 지금 유진우 때문에 아빠한테 이렇게 사정하는 거야? 유진우가 홍진호를 죽인 건 아주 극악무도한 짓이야. 철민이가 강능의 엘리트들을 전부 불러 모았어. 오늘 누구도 유진우를 구하지 못해!”남궁보성이 으름장을 놓았다.“아빠, 진우 오빠가 절 여러 번이나 살려줬잖아요. 제 얼굴을 봐서라도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남궁은설이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리조트로 돌아온 후로 그녀는 계속 무릎을 꿇은 채 아버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왜냐하면 미쳐 날뛰는 홍철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버지밖에 없으니까.“하도 걔가 널 살려준 적이 있어서 그나마 죽이지 않은 거야!”남궁보성의 낯빛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아빠, 진우 오빠 목숨만 살려준다면 앞으로 아빠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을게요.”남궁은설이 이마를 땅에 조아리며 애걸했다. 잠시 후 이마에 피가 흥건했다.“못난 녀석! 정말 사리 분별도 할 줄 모르는구나!”남궁보성이 책상을 탁 치며 일어났다.“아무런 상관도 없는 녀석 때문에 지금 나더러 홍씨 가문이랑 등을 돌리라고? 정녕 뭐가 더 중요한지 몰라서 이래?”“전 그딴 거 몰라요. 전 단지 진우 오빠가 절 살려줬으니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남궁은설이 눈물범벅인 채로 말했다.“너 너... 이렇게나 어리석은 녀석이었어?”남궁보성은 도무지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윤진아, 당장 저 녀석을 끌고 가서 방에 가둬. 절대 리조트를 한 발자국도 나가게 해선 안 돼!”“알겠습니다!”도윤진은 하는 수 없이 남궁은설을 강제로 끌고 갔다.“언니, 제발 언니라도 나 좀 도와주면 안 돼요?”어찌나 심하게 울었는지 눈이 다 빨갛게 충혈되었고 한껏 풀은 죽은 모습이었다.“이 바보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 때문에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도윤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사랑에 눈뜨기 시작한 남궁은설이 유진우를
“저 자식이 진짜 왔네?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용기는 가상하지만 어리석기 짝이 없는 놈이야!”한바탕 소란이 일면서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네가 바로 유진우야?”홍철민이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분노를 터뜨렸다.“그래, 나다.”유진우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내 아들 홍진호, 네가 죽였어?”홍철민의 눈빛이 날카롭기 그지없었고 그를 흉악스럽게 쳐다보았다.“그래.”유진우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무릎 꿇어!”홍철민이 호통쳤다.“나더러 무릎을 꿇으라고? 넌 그럴만한 자격 없어.”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너한테 기회를 한번 줄게. 지금이라도 평안 의원 사람들을 풀어주고 영감님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그의 말에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대박! 저 자식 미친 거 아니야? 죽음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저렇게 나대?”“진호 도련님을 죽인 것도 모자라 회장님더러 사과하라니, 정말 미쳐 날뛰는 놈이야!”“무식하면 겁도 없다고 저 자식 아직 자기가 누굴 건드렸는지도 몰라.”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이 자식아,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기나 해?”홍철민의 낯빛이 말이 아니게 어두워졌다.“지금 독 안에 든 쥐는 너야! 너무 처참한 꼴로 죽기 싫으면 당장 현주과를 내놓고 무릎 꿇고 빌어. 안 그러면 뼈도 못 추리게 될 거야!”“현주과는 없고 목숨은 있는데. 어디 재간 있으면 한번 빼앗아보든지.”유진우가 그에게 도발했다.“그래, 아주 좋아! 나한테 함부로 덤벼들었으니 제대로 상대해주지! 여봐라, 당장 저놈의 손발을 잘라버려! 내 원한이라도 풀게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홍철민의 명령에 몇몇 무사들은 앞다투어 공을 세우려고 냅다 유진우에게 달려들었다.“쾅!”유진우가 땅을 힘차게 밟자 바닥이 갈라지면서 돌이 마구 튕겼다. 수많은 돌이 마치 총알처럼 무사들의 몸에 그대로 꽂혔다. 무사들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된 채 고통에 몸부림쳤다.“전부 다 같이 덤벼!”홍철민이
10분 후, 무관 전체에 온통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찼다.인파 속에 우뚝 서 있는 유진우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처럼 기세가 드높았고 위풍당당했다.몇몇 젊은 남녀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유진우가 이토록 실력이 막강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그는 혼자의 힘으로 홍씨 무관을 무너뜨렸다.이들은 전부 혼자서 열 명 정도는 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엘리트들이다. 그런데 단 몇 분 만에 전부 맥없이 쓰러졌다.어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X발! 저 자식 왜 저렇게 강해? 미친 건가?”“세상에나.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야?”최우영 일행도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특히 몇몇 여자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입을 움켜쥐었다.혼자서 저 많은 사람들을 전부 쓰러 눕히다니,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홍씨 무관도 뭐 그저 그렇네.”유진우는 꼿꼿하게 서서 홍철민을 빤히 쳐다보았다.“너 이 자식 실력 좀 있구나? 전에는 내가 너무 얕봤네.”홍철민이 외투를 벗자 탄탄한 근육과 허리춤에 찬 장검이 모습을 드러냈다.“하지만 여기까지야. 오늘 내가 직접 네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그러더니 장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주변에 차가운 빛이 한순간에 퍼져나갔다.“회장님이 움직이셨어. 저 자식 오늘 죽었다!”그 광경에 최우영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저 아직 회장님의 실력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회장님 실력이 얼마나 강하신가요?”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물었다.“언더 랭킹이라고 들어봤어?”“당연히 들어봤죠. 언더 랭킹은 무술 실력을 평가하는 랭킹이잖아요. 용국에 무사가 수천만 명이 있지만 언더 랭킹에 든 사람은 백 명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 모두 최고의 고수들이고요!”“알면 됐어. 사실 회장님이 바로 언더 랭킹 10위 안에 드신 강자야!”최우영이 우쭐거리며 고개를 쳐들었다.“네? 언더 랭킹 10위요?”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다들 홍철민
“퍽!”마지막 따귀까지 맞았을 때 홍철민의 얼굴은 이미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코와 입이 삐뚤어졌고 이도 거의 다 빠진 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그는 맥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유진우가 이 정도로 강한 실력을 지녔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기본적인 반격조차 하지 못했고 저항할 틈도 없이 계속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했다.이 정도 실력이라면 언더 랭킹 3위 안에 든 실력자가 와도 이길 수 있을지 미지수다.“내...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회장님이 졌어? 그것도 엄청 처참하게?”“저 자식... 대체 정체가 뭐야?”잠시 후, 쥐 죽은 듯이 고요하던 무관이 드디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들의 질문에 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사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까.이 싸움에서 홍철민이 졌다. 그것도 압도적으로.언더 랭킹 10위도, 레인보우 스킬도, 최강 필살기도 이 순간만큼은 그저 우스갯거리에 불과했다.유진우의 실력은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막강했다. 단지 따귀 한방으로 홍철민의 기를 확 꺾어놓았다.“너... 너 대체 누구야!”홍철민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두려움에 떨며 물었다.이 작은 강능에 어찌 이런 강자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나이도 엄청 젊다. 이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살 수 있냐는 거야.”그를 내려다보는 유진우의 눈빛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그 소리에 홍철민은 움찔하는가 싶더니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네가 실력이 있다는 건 인정해. 심지어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나다고도 할 수 있어. 하지만 문제는 넌 혼자고 내 뒤에는 홍씨 가문이 있다는 거야. 홍씨 가문의 제자들이 수천만에 달할 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 널리 분포되어있어. 네가 열 명, 백 명은 상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수천만 명을 상대할 수 있겠어? 오늘 날 죽이면 홍씨 가문 전체 공공의 적이 될 거야. 그때가 되면 넌 수많은
“으악...”사람 머리가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무관 안에 잠깐의 고요함이 흐르는가 싶더니 이내 비명과 소란으로 발칵 뒤집혔다.홍철민이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칼로 자기 목을 베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절대 불가능했다.“당신... 대체 회장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최우영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알고 싶어요? 그럼 직접 가서 물어봐요.”유진우는 충격에 빠진 그들을 뒤로한 채 무관을 나섰다. 그런데 그가 나가자마자 중무장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현장을 물샐틈없이 포위했고 연루된 자들 전부 잡아들였다.앞으로 어떻게 처리할지는 유진우가 걱정할 바가 아니다. 조무진의 힘으로 이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테니까....그 시각 청운 리조트.“뭐? 유진우가 안 죽었다고?”소식을 들은 남궁보성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말도 안 돼. 철민이 그래도 언더 랭킹 10위 안에 드는 고수이고 홍씨 가문의 엘리트까지 전부 불러서 손쉽게 이기는 게 정상인데.”“무관 쪽에서 다른 소식이 전해진 게 없어서 구체적인 상황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저 유진우가 무사하게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식밖에 없어요.”“이상하네... 철민이 지금 어디 있어? 전화해서 물어봐봐.”남궁보성이 생각이 잠긴 얼굴로 말했다.“그게... 회장님이 사라지셨어요. 연락도 안 되고요. 지금 군대들이 무관을 지키고 있어서 아무도 못 들어가요.”“군대들이 지키고 있다고? 어떻게 된 거야?”“그건 아직 모르겠어요.”“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당장 사람을 보내서 알아봐.”남궁보성이 분부했다.“네!”경호원은 대답을 마치고 바로 나갔다.그런데 그때 밖에서 광풍이 불어오더니 군용 헬기 한 대가 드넓은 광장에 서서히 착륙했다. 헬기 문이 열리자 백발이 성성하고 체구가 우람한 노인이 몇몇 부하와 함께 드높은 기세로 걸어왔다.노인의 사각형 얼굴에 구레나룻 수염이 덥수룩했고 온몸에 어마어마한 기운을 내
유진우가 다시 평안 의원에 도착했을 때 물건이 잔뜩 깨져 아수라장이 됐던 바닥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의원 전체가 환골탈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많이 피곤했는지 이청아는 책상에 엎드려 곤히 자고 있었다.그녀의 수척해진 얼굴을 내려다보는 유진우의 눈빛이 어딘가 복잡해 보였다. 어쨌거나 그녀가 주정뱅이 영감의 목숨을 살려줬으니 고마운 건 사실이었다.그는 외투를 벗어 이청아에게 덮어주었다.“어?”이청아가 움찔하면서 눈을 번쩍 떴다.“왔어? 다친 데는 없고?”“난 괜찮아. 오늘 고생 많았어.”유진우가 고마움에 인사를 전했다.“고생은 무슨. 할아버지가 다치셨는데 돌봐드리는 건 당연한 거지.”이청아가 입술을 씰룩거렸다.“밤새 힘들었겠는데 배 안 고파?”“조금.”“자주 먹던 비빔 국수 한 그릇 말아줄까?”“응, 그래 주면 고맙고.”“잠깐만 기다려.”유진우는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결혼 생활 3년 동안 매번 이청아가 밤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와 배가 고프다고 할 때면 야식을 만들어줬었다. 특히 그가 만들어준 비빔 국수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고 사이도 점점 서먹서먹해졌다. 그러다가 결국 이혼 도장을 찍고 말았다.“비빔 국수 다 됐어.”15분 후, 유진우는 빛깔 고운 비빔 국수 한 그릇을 내왔다.“너무 맛있게 생겼어.”이청아는 젓가락을 들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는 게 눈 감추듯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깔끔하게 먹어 치웠다.“너무 맛있어. 요리 솜씨가 더 는 것 같아.”이청아가 오랜만에 웃어 보였다.“오랜만에 먹어봐서 그럴 거야.”유진우가 무뚝뚝하게 말했다.“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네.”이청아의 두 눈에 그늘이 살짝 드리워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 지났다. 전에 있었던 많은 일이 이젠 습관이 돼버렸다. 추울 땐 누군가 옷을 챙겨줬고, 배가 고플 땐 밥을 차려줬고, 감기에 걸려 열이 날 땐 옆에서 챙겨줬었다. 몸에
툭!손이현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마치 공처럼 몇 바퀴 굴러다니더니 마침 몇몇 금도문 제자들의 발밑에서 멈추었다.이 상황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멍하니 서 있었다.손이현은 죽기 전까지도 자신이 미쳐 날뛰는 바람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 있던 유진우에게 목이 잘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손이현은 도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총잡이 원호를 사부로 모시고 있었으며 배경이 좋아 앞길도 창창하였고 죽음의 사막으로 온 이유는 보물을 찾아 내공을 높여 온 천하에 이름을 날리려는 목적이었다.자신은 분명 주인공이 될 운명이었고 여태까지 운수가 좋았으며 이번에도 제일 먼저 보물을 찾아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고 작은 마을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이 끊어질 줄이야.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어!손이현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고 그의 휘황찬란한 인생은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고 또 뜻밖의 인연이 끊기지 않아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았다.사부님 원호의 말대로라면 그의 무도 재능은 미래의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온 천하가 존경하는 최고의 강자로 되였을 것이다.그렇게 아름다운 꿈이었고 그리워했던 일이었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되어 버렸다.‘알고 보니 나는 주역이 아니었고 천명이 아니었으며 결국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후회의 외침 속에서 손이현의 의식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이게 뭐야?”땅에 떨어진 손이현의 머리를 마주한 몇몇 금도문의 제자들은 너무 놀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바로 전에 그들이 가까스로 위험에서 구해낸 손이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가 분리된 상태로 눈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어떻게 된 거지?몇몇 사람이 경악하며 뒤를 돌아보니 유진우의 손에 든
“너... 이놈!”손이현이 막 맞서려고 할 때 앞에서 갑자기 짐승 같은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눈여겨보니 바람은 이미 사납게 덮쳐오고 있었고 손발을 함께 사용하여 빠르게 달리며 매번 땅을 디딜 때마다 손톱이 땅에 맞닿으며 몇 줄의 깊은 흔적까지 남겼고 그 날카로운 정도가 강철 칼날에 불과했다.“거기 누구 없어? 빨리 날 구해줘! 이 괴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손이현은 안색이 크게 어두워지며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야, 이 제기랄. 빨리 손을 쓰지 않고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손이현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흉악한 얼굴로 유진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유진우는 꿈쩍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진우 씨, 지금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요. 손이현이 죽으면 안 돼요.”옆에 있던 서지석이 급해하며 말했다.“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유진우는 여전히 움직이지도 않았다.“됐어요, 됐어요. 보아하니 제가 손을 쓸 수밖에 없겠네요.”유진우가 너무 고집을 부리자 서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칼을 뽑아 들고 직접 손이현을 구하러 나섰다.하지만 실력이 자신보다 더 막강한 손이현도 바람을 굴복시킬 힘이 없는데 자신이 대신하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팍!바람은 피비린내에 이끌려 다시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죽이지 마, 날 죽이지 마.”손이현은 너무 놀라 바짓가랑이는 이미 다 젖어 있었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버젓한 도명창마저 놀라 바지에 오줌을 쌀 지경이라니.“망할 놈, 그렇게 날뛰더니!”손이현이 갈기갈기 찢겨 부스러기가 될 뻔할 때 서지석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주며 바람과 혈투를 시작했다.바람의 신체가 더 크게 강화되어 그 상태에서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서지석은 더는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바람은 이미 공격에 아무런 준비가 없이 이성을 잃었고 진기도 사용할 줄 몰랐기에 서지석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서지석은 민첩한 몸놀림과 함께 손에 쥔 보검으로 바람을 간신히 견제했다.그
“으르렁!”바람은 깊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왜곡된 얼굴, 송곳니로 가득한 입, 그리고 사나운 표정은 마치 악마의 형상처럼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그와 눈이 마주친 손이현은 놀란 나머지 온몸을 움찔했다.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버렸다.“야! 저기 누구! 어딜 가는 거야! 제발 나 좀 구해줘!”유진우가 등을 돌리고 가는 모습에 손이현은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져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바람의 광기를 직접 목격한 손이현은 싸움의 의지를 잃었다. 그의 눈에 비친 바람의 존재는 이제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콧대가 높으시잖아요? 내가 못된 마음을 품었다고 했죠? 그럼 저도 이제는 신경 끌 게요.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유진우는 차갑게 말했다.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에게 더 이상 신경 쓸 가치를 느끼지 않았다. 손이현이 죽든 말든 그것은 유진우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멈춰! 당장 멈춰! 내가 명령한다! 이 미친놈을 빨리 쫓아내!”손이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소리쳤다.하지만 유진우는 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난 도명창 손이현이야! 내 사부님은 서남 지방 5대 강자 중 하나인 원호야! 오늘 네가 내 목숨을 구하지 않으면 사부님은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손이현은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협박이라도 할 셈이었다.서남 지방에서 원호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다들 숨을 죽이기 마련이었다.“뭐? 원호? 그 사람은 서남 지방에서 실력이 상위 3위 안에 드는 존재잖아!”“손이현의 스승이 원호라니! 그가 왜 그렇게 유명했는지 이제 알겠네.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겠지.”“원호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기를 아끼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하다고 들었어. 만약 손이현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속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원호의 명성은 사막의 교룡보다도 더 위세를
“응?”손이현이 뒤를 돌아보자 한 줄기 차가운 빛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속도는 엄청나게 빨랐고 그와 함께 피의 비린내가 짙게 맴돌았다.공격을 가한 자는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나무에 박혀 몸을 움찔거리던 바람은 결국 두 손으로 창대를 붙잡고 비틀어 간신히 반 미터 정도 앞으로 몸을 끌어당겼다.그는 손이현에게 다가가며 그 날카로운 손톱을 펼쳐 내리치려 했다.그의 손톱은 마치 날 선 강철처럼 그 자체로도 무지하게 치명적이었다.“고작 이런 기술로 나를 공격하겠다고?”손이현은 갑작스레 다가오는 공격에 콧방귀를 끼며 팔을 휘둘렀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렸다.손이현의 진기가 바람의 손톱에 의해 가볍게 찢어졌다. 손목마저 그대로 잘려 나가서 뜨거운 피가 튀며 바닥에 떨어졌다.현장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다.“아악!”손이현은 떨어진 손목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가 곧이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바람의 손톱이 이렇게 날카롭고 강력할 줄을 말이다.한순간에 자신의 진기를 뚫고 손목을 자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내 손! 내 손!”손이현은 잘린 손을 붙잡고 고통과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다.그는 바람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졌다. 바람은 그의 손목을 마치 두부를 베어내듯 손쉽게 잘라버렸다.갑작스레 다가온 공격에 손이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으르렁!”바람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톱을 휘둘러 창대를 부러뜨리고 속박에서 벗어났다.그리고 다시 포효하며 손이현을 향해 달려들었다.“안 돼... 가까이 오지 마!”손이현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바람의 손톱에 이미 트라우마가 생긴 듯했다.잘린 손목은 아픈 데다 창은 나무에 고정되어 있어 바람을 제대로 막아낼 수도 없었다.그는 그저 극심한 통증 속에서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바람을 죽여버려야 했다.바람은 폭주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너무 공포 그 자체였다.
바람은 그로 인해 계속 후퇴하며 포효했다.그는 이미 폭주한 상태였고 진기라는 보호막조차 거두어낸 채 오직 육체만으로 모든 것을 견디고 있었다.그리하여 손이현의 날카로운 창끝이 바람을 찔러대며 그의 온몸을 갈기갈기 베어가자 그의 피는 마치 폭포처럼 쏟아졌다.모두가 바람이 이번엔 쓰러질 거라 생각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바람은 고통을 모르는 듯 자신에게 난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또다시 미친 듯이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가장 두려운 점은 그의 상처가 눈에 띄게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그의 회복력은 그 자체로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놀라웠다.“흥! 죽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하는군! 한 방에 너를 끝장내겠다!”바람이 다시 달려들었으나 손이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긴 창을 한 손에 쥐고 떨자 은색 빛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주위를 밝게 밝혔다.“이 창이 세상을 놀라게 하리!”손이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창을 뒤로 당기곤 그것을 무자비하게 앞으로 내질렀다.윙!웅장한 소리가 들렸다.그 순간, 창끝에서 은빛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지며 마치 하늘을 가르는 용처럼 바람을 향해 돌진했다.그의 일격은 너무나 빠르고 강력하여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와, 정말 멋진 창법이야! 기세가 정말 무서워!”“이게 바로 도명창의 실력인가? 역시 대단해!”“이 창 한 방이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바람은 이제 끝장났다고 봐야지!”사람들은 손이현이 내뿜은 은빛용을 바라보며 놀라움과 경외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그들은 손이현의 이름을 익히 들어왔지만 그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이번에야 비로소 도명창 손이현의 위력을 깊이 체감하게 된 것이다.“으르렁!”손정의 공격을 마주한 바람은 여전히 피하지 않고 그대로 정면으로 돌진했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려 퍼지며 손이현의 은빛 창이 바람의 배를 뚫고 들어갔다.창끝이 그의 배를 관통하고 몸을 뚫고 지나가며 온몸을 꿰뚫었다.하지만 기이하게도 창끝에 묻은 피는
“큰일이에요! 금실망이 곧 터질 거 같아요!”그때, 누군가가 외쳤다.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실망에 갇힌 바람은 거대한 존재로 변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그의 온몸은 검은 문양에 휩싸이게 되었다.그의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치솟았고 손톱은 뾰족하게 변했다. 그의 눈은 붉은빛에서 칠흑처럼 깊고 검은색으로 변했으며 입에서는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그르렁! 으르렁! 크아악!”바람의 포효는 점점 더 커져갔고 그 표정 또한 야수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졌다.그의 등은 천천히 부풀어 올랐으며 팽팽하게 펴진 금실망을 한 줄, 한 줄씩 찢어 나갔다.“으르렁!”바람은 또 한 번 포효했다.그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금실망을 움켜잡고 힘껏 찢었다.“쾅!”튼튼한 금실망이 그대로 두 동강 나며, 거대한 틈이 벌어졌다.금실망을 잡고 있던 청년들은 그 힘에 순간적으로 밀려나며 바닥에 쓰러졌다.“큰일 났다! 이 미친놈이 나왔어!”“빨리! 빨리 그를 막을 방법을 찾아!”그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급한 대로 줄을 꺼내 바람을 다시 묶으려 했다.“으르렁!”바람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그의 근육질 몸체를 한 번 더 흔들어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그러자 거대한 밧줄들이 순식간에 부러지며 바람을 막을 힘이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막을 수 없어! 모두 도망쳐!”마을의 청년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두려움에 빠진 채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바람이 방금 전 마을 사람들을 처참히 무찌르던 그 장면이 눈앞에 떠올라 다시 그에게 다가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이 괴물 같은 존재를 상대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쓸모없는 놈들! 내가 나서마!”그때 갑자기 청색 의복을 입은 한 남자가 군중 속에서 솟구쳐 나와 바람 앞을 가로막았다.긴 창을 든 그 남자는 바람 앞에 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내뿜는 기세는 마치 고요한 폭풍처럼 강렬했다.“봐! 손이현이야!”“손이현? 서남 지역에서 명성을 떨친 도명창 아니야?”
5분 뒤, 진이수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청성에게 상황을 보고했다.“청성 씨, 청성 씨 말이 맞았어요. 우리 사람들 대부분이 중독되었는데 청성 씨가 해독단을 준 덕분에 다행히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네요.”“죽은 사람은 없죠?”이청성이 걱정스레 물었다.“몇몇은 중상을 입고 움직일 수 없게 되었어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요.”진이수가 대답했다.“그럼 다행이네요.”이청성은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그녀의 눈빛에는 서늘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그녀는 먼저 사람들 건드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하기만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이렇게 비열하고 음흉한 방식으로 사람을 죽이려는 자는 절대 가만두면 안 될 것이다.“진 대장님, 몇 명을 골라 보내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건지 철저히 조사해 주시길 바랍니다. 들려오는 소식이 있다면 바로 저에게 알려주세요.”이청성이 지시를 내렸다.“알겠습니다.”진이수는 대답하며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그가 이끄는 블랙스콜피온 탐험대의 팀원들도 중독되었고 모두가 배후의 자들을 향한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큰일 났습니다! 이장님 쪽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이청성의 집사 왕 아저씨가 급한 걸음으로 들어왔다.“문제? 무슨 일이야?”“아까 이장님께서 낙타를 수령하고 잔금을 치르러 오라 연락하셨는데 제가 그 자리에 도착하고 보니 이장님 집이 완전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수없이 많았고 그 오행문의 바람이라는 자가 갑자기 미쳐버린 듯 보이는 사람마다 죽이고 있더라고요. 너무 사나워서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었어요.”그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쩌다 그렇게 된 거지? 바람 씨는 거의 다 낫지 않았던가?”이청성은 당황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이미 마을 내 여러 세력들에게 이 사건이 알려진 상황입니다.”왕 아저씨가 답했다.“가서 한번 확인해 보자.”얼마간 침묵하던 이청성은 단호하게 사람
“고객님... 고객님...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 손 좀 풀어주세요, 숨이 막혀요.”두 발이 땅에서 떨어진 중년 여성은 얼굴을 붉힌 채 몸을 필사적으로 뒤틀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유진우 손안의 그녀는 마치 날개를 잡힌 연약한 잠자리처럼 언제 죽을지 모를 상태였다.“진우 씨, 이게 대체 뭐 하는 거예요?”서지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해했다.무고한 사람에게 이렇게 행동하는 건 정의로운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됐다.“유진우 씨! 미쳤어요? 좋은 마음으로 촛불을 가져다줬는데 왜 그런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거예요? 그게 사람이 할 짓이에요?”그 모습을 본 진이수는 즉시 성난 목소리로 비난했다.반면 조이준은 여유롭게 술을 마시며 마치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있었다.이청성은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그녀는 유진우가 이렇게 행동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이 사람은 문제가 있어. 우리를 해치려는 거야.”유진우는 중년 여성을 노려보았다. 손을 놓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객님, 저... 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분명 오해하신 거예요.”중년 여성은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었다. 목소리는 갈라졌고 연약하고 무력해 보였다.“진우 씨, 그녀가 우리를 해치려 한다고요? 무슨 증거가 있어요?” 서지석이 물었다.“그래요! 시골 여자가 무슨 나쁜 마음을 먹겠어요? 그냥 일부러 시비 거는 거 아니에요?” 진이수가 말했다.그는 진작에 유진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이번 기회를 빌려 그를 꾸짖으려 했다.“이 여자가 켜준 촛불엔 독이 있어요. 삼 분 이상 향을 맡으면 어지럽고 오 분이 넘어가면 숨이 멎을 거예요. 그런데도 나쁜 마음이 없다고요?”유진우는 고개를 돌려 진이수를 노려보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중년 여성의 동공이 움찔하며 작아졌고 얼굴엔 공포가 스쳤다.“허튼소리!”진이수는 전혀 믿지 않으며 계속해서 소리쳤다.“촛불 두 개일 뿐인데, 무슨 독이 있다고 그래요? 그냥 의심이 많
어둠은 빠르게 내려앉았다.사막의 마을에는 각 세력들이 모여들었다. 명문 정파도 있었고 사도들도 있으며,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든 무도 마스터도 있었고 악명 높은 빌런들도 있었다.그야말로 혼잡하기 그지없었다.각기 다른 신분과 입장을 가진 이들이지만, 그들 모두의 공통된 목표는 단 하나였다. 바로 오아시스의 보물을 찾는 것.그렇게 마을이 사람들로 가득 차자 마찰과 다툼이 피어나기 시작했다.사도 악당들은 몰래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고 강제로 사람들을 협박했다. 반면, 정파의 인물들은 ‘악을 처단한다’는 명분 아래 이 상황을 경쟁자를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밤이 깊어지면서 마을 안에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기운이 서서히 퍼져갔다.보물을 찾기도 전에 이미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다.그 시각 마을 입구 근처의 한 여관에서 유진우, 이청성, 서지석 그리고 진이수는 바람이 그린 지도를 함께 살펴보고 있었다.지도는 대충 그려져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었다.가장 큰 이유는 이 지도는 바람이 기억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많았기 때문이다.“이 지도 대체 뭐예요? 전혀 못 알아보겠어요!”서지석은 머리를 쥐어 뜯으며 말했다.“머리 쓰는 일은 내 담당이 아니야. 난 그냥 싸우기만 해.”조이준은 한쪽에 앉아 술을 홀짝이며 대답했다.그는 번거로운 일은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만약 이 지도가 사막 마을을 시작점으로 한다면 오아시스를 찾는 데 적어도 하루는 걸릴 거예요. 그 과정에서 두 군데의 위험 지대를 지나쳐야 해요.”이청성은 대충 그려진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여기, 유독 모래가 많은 지역이 있어요. 지나갈 때 조심해야 해요. 그곳에 빠지면 금방 숨을 쉴 수 없게 될 거예요. 그리고 여기는 더 고된 환경이에요. 땅의 온도가 70도 이상 올라갈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모래폭풍을 만날 수도 있지요.”“정말이에요? 이 지도를 알아볼 수 있어요?”서지석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