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예쁘다! 너무 우아해!”“저런 미인은 어디서 온 거야? 왜 한 번도 못 봤지?”“이 정도 외모랑 기품이면, 분명 미인 중에서도 탑일걸?”이청아가 나타나자마자 사람들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남녀 할 것 없이 모두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연경은 인재가 많은 곳이라 아름다운 여인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절세미인은 정말 드물었다. 특히 차가운 듯한 고귀한 분위기는 마치 그림 속 선녀가 걸어 나온 것처럼 비현실적이었다.“언니!”그녀를 본 단소홍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가운 표정으로 서둘러 다가갔다.“너 보고 거래하러 오라고 했더니 거래는커녕 오히려 200억을 배상해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이청아가 차갑게 물었다.“그게...”단소홍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가 문왕부의 금령을 들고 와서 거들먹거리다가 당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청아 언니, 사실은요...”봉연주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과장해서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마친 후 그녀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청아 언니, 우리는 좋게 말했는데, 저쪽에서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 독을 쓰고 배상을 요구했어요.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그래? 누가 이렇게 대담해? 감히 대중 앞에서 독을 쓰다니?”이청아가 차갑게 물었다.“유진우와 저 여자요! 저 사람 둘이 짜고 쳤어요!”봉연주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어?”유진우의 얼굴을 본 이청아는 약간 놀라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유진우 씨? 왜 여기에 있어요?”이상하게도, 그녀는 유진우를 볼 때마다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곤 했다.“은 씨 제약에 내 지분이 있는데, 내가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누나, 저 녀석을 알아요?”그때, 옆에 있던 얼굴이 약간 까칠하게 생긴 젊은 남자가 갑자기 물었다.그의 이름은 문한성, 문 어르신의 양자 중 한 명이었다.상업에 능한 그는 음흉하고 교활한 성격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였다.
“그러니까 이청아 씨 말은, 그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건 괜찮고, 우리가 반격하는 건 안 된다는 거죠? 권력도, 힘도 없는 우리가 당신들 같은 권력자들 앞에서 괴롭힘당하고 모욕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자신을 지키는 건 죄라는 건가요?”유진우가 비아냥거렸다.비록 기억을 잃었지만, 눈앞의 이 여자는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언제나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판단만 옳다고 여겼다.“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이청아는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사람들이 오늘 온 이유는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어요. 당신이 은 씨 제약의 주주라면, 예의를 갖춰야지, 이렇게 협박하고 회유하는 건 아니잖아요?”“손님이라면 당연히 환영하지만, 적이면 우리도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죠.”유진우가 맞받아쳤다.“왜요?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아직도 반성할 생각이 없는 거예요?”이청아는 다시 한번 눈살을 찌푸렸다.“이청아 씨, 이건 오해예요.”그때 은도는 다가와 웃으며 상황을 수습하려고 말했다.“아까 단소홍 씨는 억지로 끼어들려고 하면서, 문왕부의 이름을 내세워서 우리에게 온갖 압박을 가했어요. 우리가 따르지 않자, 회사를 부수겠다고 위협해서, 유진우 씨가 순간 화가 나서 조금 과격하게 나간 거예요.”“그런 일이 있었어요?”이청아의 시선이 단소홍에게로 향했다.단소홍의 얼굴은 일그러졌지만, 곧 태연하게 변명했다.“언니! 그들 말을 믿지 마세요! 난 진심으로 사업을 논의하려고 왔는데 유진우가 사적인 감정으로 날 쫓아내려고 했어요. 그래서 화가 나서 좀 심한 말을 했을 뿐이에요. 다른 짓은 안 했어요.”“맞아요, 청아 언니. 내가 증인이에요. 다 유진우 잘못이에요!”봉연주는 즉시 목소리를 높이며 나섰다.“유진우 저 녀석은 정말 무례할 뿐만 아니라 폭력적이에요. 심각한 폭력 성향이 있는 것 같다니까요. 단소홍 씨 얼굴 좀 보세요. 맞아서 퉁퉁 부었잖아요!”“언니, 나 이렇게 모욕당한 적이 없어요. 꼭 제 편을 들어줘야 해요!”단소홍은 억울한 표정으로 울먹였다.이청아는 단소홍의
“유진우! 안 들려? 빨리 무릎 꿇고 사과해. 그리고 정신적 손해 배상금으로 600억을 물어내. 안 그러면 평생 감옥에 처박아 둘 테니까!”단소홍은 손을 허리로 얹고 위협적으로 말했다.이 순간 그녀는 이청아의 힘을 믿고 두려움이 없었다.그녀는 진짜 금수저는 아니지만, 이청아는 진짜 문 어르신의 양녀로 문왕부에서 가장 총애를 받는 존재였다.문 어르신의 손에 있는 사업 중 절반 이상은 이청아에게 맡겨져 있었다.그래서 지금의 이청아는 용국의 군주에 버금가는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어 누구든 그녀를 보면 예의를 갖춰야 했다.유진우 따위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이청아 앞에서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유진우! 청아 언니는 지금 문왕부의 유명 인사야. 너 스스로 잘 생각해 봐!”봉연주가 냉소하며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유진우가 잘못을 인정하면 그녀는 이 기회를 빌려 제대로 모욕해 줄 생각이었다.만약 상대방이 따르지 않는다면, 더 좋을 것이다.일단 이청아를 화나게 한다면, 그 끝은 죽음뿐일 테니까.심지어 이청아가 직접 손을 쓰지 않아도, 따로 대신 해줄 사람이 많았다.“유진우, 그렇게 오만하더니 이제 철벽에 부딪혔지? 조금 더 나대봐!”안세리가 사악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진우 씨, 그냥 사과하는 게 어때요? 그러지 않으면 우리 모두 큰일 날 텐데. 창피당하는 게 목숨 잃는 것보단 낫잖아요.”은도가 낮은 목소리로 조언했다.그녀는 이미 이청아와 문한성의 정체를 눈치챘다.이 두 사람은 모두 문왕부의 핵심 인물로 그들의 권력과 세력으로는 문왕부의 힘을 직접 동원할 수 있었다.특히 이청아는 문왕부의 절반 이상의 산업을 관장하고 있어, 문 어르신의 후계자처럼 보였다.그녀는 이런 권력자에게 감히 맞설 수가 없었다.“유진우 씨! 기회는 지금뿐이에요. 더는 고집부리지 말아요!”이청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독을 사용한 일은 해결하는 사람 나름이었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녀는 따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계속 고집을 부
꿀꺽.단소홍은 본능적으로 삼켜버렸다.정신을 차린 후, 그녀는 곧장 손가락으로 목구멍을 파고 약을 토해내려고 했다.하지만 몇 번 구역질했지만, 효과는 없었다.약은 입안에서 녹아 이미 몸속으로 스며들었던 것이다.순간 그녀의 얼굴이 급격히 변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너너... 방금 나한테 뭘 먹인 거야?”“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보약일 뿐이야.”황은아가 미소 지었다.“거짓말! 분명 독약이잖아!”단소홍은 당황했다.“어머, 알아차렸구나? 미안해.”황은아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너 이 못된 년! 빨리 해독제 줘!”단소홍이 소리쳤다.“너무 흥분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러면 기혈이 올라와서 죽는 속도가 빨라지니까. 아참, 이 약은 당장 발작하지 않지만, 천천히 고통을 주다가 내장이 썩으면서 죽을 거야.”황은아가 설명했다.“뭐?”이 말을 듣고, 단소홍은 무서워서 다리가 풀렸다.“언... 언니, 나를 구해줘요!”“못된 년! 너 정말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감히 문왕부 사람에게 독을 먹이다니? 죽으려고 환장한 거네!”문한성은 어두워진 얼굴로 갑자기 손을 뻗어 황은아의 목을 잡으려 했다.문왕부의 사람들은 대부분 무공을 익혔고, 수많은 양자, 양녀 중에서도 그의 무공 실력은 상위권에 속했다.“후--!”황은아는 피하지도 않고, 손을 펴서 가볍게 불었다.연한 흰색 연기가 한 줄기 뿜어져 나오며 흔적 없이 문한성을 감쌌다.“조심해요, 독이에요!”단소홍이 서둘러 소리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문한성은 공격이 너무 빨랐던 탓에 피할 겨를이 없어 호체 진기로 막아내려고 했다.그런데 하얀 연기는 이상하게도 그 진기를 뚫고 그의 입과 코로 스며들었다.“아-!”문한성은 비명과 함께 땅에 쓰러졌다.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입에서 피가 흘렀으며,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이렇게 흥분할 필요 있어? 우리 차분히 이야기해 보지 않을래?”황은아가 말했다.“너 이년! 감히 문왕부의 양자에게 독을 쓰다니! 넌 지금 스스로 무덤을
유진우는 예전의 그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고 차갑게 말했다.“이청아 씨, 내가 고집부리는 게 아니라 당신이 너무 자만하는 거예요. 왜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나는 왜 이 사람들을 노엽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아직도 변명할 거예요?”이청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방금 내가 다 물어봤어요. 분명 당신들이 잘못한 거잖아요. 누가 뒤를 봐준다고 해서 연경에서 제멋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여긴 강자들이 숨어 있는 곳이니 당신 같은 사람이 날뛸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요!”“됐어요. 나도 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마음대로 생각하세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말다툼할 생각이 없었다.기억을 잃기 전에도 이랬고, 기억을 잃은 후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니,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유진우 씨! 이게 무슨 태도예요? 내가 이렇게 좋은 말로 타일렀는데도 듣지 않고, 정말 큰일이 닥쳐야 후회할 거예요?”이청아는 훈계하는 말투로 말했다.그녀는 이미 충분히 친절했고, 여러 기회를 주며 눈앞의 사람이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길 바랐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효과는 미미했다.“은아야, 해독하고 그들을 보내. 우리 일에 방해되지 않게.”유진우는 짜증이 나서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청아만 만나면 그는 항상 짜증이 났다. 두 사람은 정말로 궁합이 안 맞는 것일까?“알았어요. 놀 만큼 놀았으니, 오늘은 일단 너희들을 용서해 주겠어.”황은아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 순간 연기가 문한성의 콧속으로 들어갔다.방금 전까지 고통스럽게 신음하던 문한성은 금세 편안해졌다.그러나 지금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온몸은 흠뻑 젖었으며,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나와 더 이상 예전의 품격 있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이런 젠장! 너희가 감히 내게 독을 먹이다니! 너희들...”문한성은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참지 못해 당장이라도 위협적인 말을 하려 했
“진우 씨, 우리 큰일 난 것 같은데요.”사람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은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봉씨 가문과 안씨 가문은 그나마 지태 도련님이 뒤를 봐주고 있어서 어떻게 해볼 수 있지만 문왕부는 쉽게 넘어가려 하지 않을 거예요. 이청아든 문한성이든 우리가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요.”사실, 그녀는 이청아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청아는 평판이 좋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어서 이번 일은 문제 삼지 않을 것 같았다.다만 문한성은 달랐다. 그는 상업계에서 악명이 높았고, 앙심을 품으면 끝까지 복수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권력과 세력을 가진 소인배와 엮이는 건 분명 큰 문제가 될 것이었다.“은도 씨, 걱정하지 마세요. 문제를 일으킨 건 우리니까, 그들이 문제로 삼더라도 회사에는 피해가 없을 거예요.”유진우가 말했다.“진우 씨, 난 회사가 걱정돼서 그런 게 아니에요. 내 뜻은 일단 밖으로 피신해서, 화를 피하는 게 좋겠다는 거예요.”은도가 설득했다.“잠깐 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도망은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어요. 그리고 나도 그들의 보복 따위 두렵지 않아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들이 여기서 멈춘다면 문제없겠지만, 끝까지 싸우려고 하면 그때는 후회하게 될 거예요.”“맞아요!”황은아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신나게 말했다.“그들이 함부로 굴면, 내가 전부 독살해 버릴 거예요!”“아, 그건...”그 말에 은도는 얼굴이 굳어졌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이 계집애는 정말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문왕부 사람들에게도 독을 쓸 생각을 한다니.정말 미친 짓을 한다면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은아야, 네 독은 앞으로 신중하게 써야 해.”이때, 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난 네 결정을 막을 생각은 없지만, 네가 본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구나.”그에게는 제자가 황은아 하나뿐이었기에, 그녀가 살인마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저도 다 알아요.”황은아는 유진우의 팔짱을
띠리링...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유진우가 전화를 받으니, 용수현의 전화였다.“도련님, 저 지금 은 씨 제약 앞에 있어요. 중요한 일을 보고드릴 게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용수현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알았어요. 바로 나갈게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은도 씨, 은아를 데리고 구경 좀 시켜주세요. 전 급한 일이 있어서 금방 나갔다 올게요.”유진우는 짧게 인사를 하고는 회사를 빠르게 나섰다.그는 용수현에게 두 가지 일을 부탁했다. 하나는 병을 치료할 영약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0년 전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었다.그 중 어느 것 하나라도 그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회사 밖으로 나가자, 유진우는 평범한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맞은편 거리에 멀리 서 있는 걸 봤다.차창이 내리더니 용수현이 반쯤 얼굴을 내밀며 유진우에게 손을 흔들었다.유진우는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차에 올라탔다.차창이 올라가고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가주님, 이렇게 급하게 만나자고 한 건 어떤 소식 때문인가요?”유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도련님, 빙심연과 금수옥의 행방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손에 넣는 데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듯합니다.”용수현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그래요?”유진우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의아해했다.“가주님의 인맥으로도 그 두 가지 영약을 못 구한다는 말씀이세요?”“일반 권세가 손에 있다면야, 도련님께 걱정 끼칠 필요 없이 당연히 가져다드렸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가지 영약이 있는 곳은 제가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용수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가주님께서도 이렇게 꺼리시는 거죠?”유진우는 더욱 궁금해졌다.“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금수옥은 지금 문왕부에 있는데 문제는 문관옥의 소지품이라는 겁니다. 그 보물은 수련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서 문관옥은 늘 신중하게 간직하고 있고, 아
10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유씨 가문의 지원이 없었다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유진우라도 성장은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문관옥과 같은 이들은 최상의 자원과 지원을 받으며 다양한 특훈과 연마 과정을 거쳤다.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유진우를 앞서 나갔다.이런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졌다.지금의 유진우는 천재라 불릴 수 있지만, 문관옥에 비해 여전히 부족했다.그 10년을 허비한 것은 너무나도 큰 손실이었던 것이다.“가주님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겠어요. 하지만 난 문관옥과 싸우려는 게 아니에요. 난 그가 가진 금수옥을 원할 뿐이지.”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도련님, 금수옥은 문관옥이 가장 아끼는 보물이니 그의 손에서 얻으려고 하면, 아마 어려울 겁니다.”용수현은 고개를 저었다.그는 문관옥의 의중을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돌아온 답은 한마디였다.“꺼져!”“얻어낼 수 없다면, 훔치면 돼요.”유진우는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네?”용수현은 놀라며 되물었다.“도련님, 농담하시는 거죠? 문관옥의 실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데, 누가 그에게서 물건을 훔칠 수 있겠어요?”“그건 가주님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가주님은 문왕부의 지도를 구해주시면 돼요.내가 기회를 보고 훔칠 테니까.”유진우가 답했다.“도련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만약 잡히면 정체가 드러날 텐데, 그땐 수많은 사람들이 도련님을 죽이려고 할 거예요.”용수현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서경 왕부는 권세가 하늘을 찔렀고 그 공적은 어마어마해서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큰 위협이었다.그리고 서경왕부의 세자인 유진우는 당연히 그들의 눈엣가시였다.십 년 전의 혼란이 그 증거였다.과장이 아니라, 유진우의 정체가 드러나면 위험이 가중되고 암살 시도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없어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설령 정체가 드러난다 해도, 절대로 용씨 가문을 연루시키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세
“이것들이 죽으려고.”몰려드는 무장병사들을 보며 유천우는 순식간에 분노를 터트렸다.그는 더 이상 자비를 베풀지 않고 칼을 들고 인파 속으로 돌진했다.지금의 그는 이미 무도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랐고 게다가 수년간 전장을 누빈 덕에 쌓은 전투 경험 또한 풍부했다.혼자서 적진을 누비는데도 아무도 막지 못할 정도로 용맹했다.“도련님을 지키고 놈들을 죽여라!”이의진이 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 있던 유만군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전부 죽여버려.”석태혁이 장검을 휘두르며 백여 명의 유만군을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했다.유만군의 수는 적었지만 모두 엄청난 실력을 지닌 고수였고 게다가 훈련도 잘되어 있었다.무도 마스터인 석태혁의 지휘 아래 그들은 파죽지세로 적진을 휘저으며 나아갔다.백여 명의 부대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수만 명에 달하는 대군의 심장을 찔러 가차 없이 죽여버렸다.혹시라도 암살당할까 봐 4대 제후는 친위대의 보호 아래 즉시 전장에서 멀리 도망쳤다.“왕부 안에 저런 정예 부대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가차 없이 적을 베어버리는 유만군을 보며 진승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다행히 백여 명밖에 안 되는군요. 수가 적어서 망정이지, 안 그러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노정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추측건대 저들이 바로 유만군일 겁니다. 유만수가 흑용군의 정예 병력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들을 뽑아 만든 부대인데 전부 뛰어난 실력을 지녔습니다.”강윤기가 말했다.“그렇군요. 어쩐지 엄청 대단하더라니.”하원휘가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숫자가 적어서 우리한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해요. 지금은 용맹해 보이지만 체력이 고갈되면 목숨을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진승민이 말을 이었다.“혹시 무슨 변수가 생기진 않겠죠?”노정한이 갑자기 물었다.“무슨 변수요? 왕부가 포위된 이상 함락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왕성 밖에도 우리 대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면 즉시 알아차릴 수 있어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걸 본 이의진은 반가워하다가 이내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왜냐하면 아들이 갈 때와 마찬가지로 몇 명만 왔을 뿐 군대는 한 명도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혹시 실패했어?”마음이 무거워진 이의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들의 유일한 희망이 바로 남쪽 4대 제후를 설득하여 북쪽 4대 제후와 맞서는 것인데 지금 상황을 봐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듯했다.“간덩이가 부은 것들! 감히 왕부로 쳐들어와? 모두 죽고 싶어?”유천우가 호통쳤다.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마치 천둥처럼 현장 전체가 크게 울렸다.4대 제후의 수만 병사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도련님께서 돌아오셨군요.”진승민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희 4대 제후는 왕부 안에 진범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위왕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부득이하게 들어가서 수색해야 하니 길을 비켜주십시오.”“수색은 무슨 수색.”유천우가 냉담하게 외쳤다.“왕부가 어떤 곳인데 함부로 수색하겠다고 난리야? 저리 썩 꺼지지 못해?”“도련님, 저희는 진심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움직이는데 이렇게 계속해서 방해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진승민이 태연하게 물었다.“흥. 내 앞에서 가식 떨지 마! 너희들의 속셈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없어.”유천우가 차갑게 말했다.“도련님,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진승민이 말했다.“진승민, 한 번만 기회를 줄게. 만약 지금이라도 떠난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너희들은 여전히 서경 제후이고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유천우는 말하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하지만 만약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반역을 하려 한다면 내가 장담하는데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도련님, 저희는 대국을 생각해서 이러는 것이니 부디 길을 비켜주십시오.”진승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나머지 세 사람 역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그들은 물러설 이유가
“그럼 왕부에 들어가기 전에 나부터 죽이고 가!”이의진은 검을 든 채 꼿꼿이 서서 강력한 기세로 홀로 대문을 지켰다.그녀의 무공은 그리 강하지 않았고 고작 선천 무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뿜어내는 기세는 무도 마스터보다 훨씬 강했다.일반 병사들은 물론이고 진승민조차도 압도되어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다른 세 제후에게 눈짓을 보낼 뿐이었다.위협은 위협이고 압박은 압박이지만 적어도 명분은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의 조롱을 받고 만민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살인범을 추적한다는 명분으로 왕부를 포위했다. 비록 행동이 과격하긴 하지만 나중에 슬픔에 북받쳐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다.하지만 압박 과정에서 왕비를 죽인다면 아무리 변명하고 이유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그뿐만 아니라 서경 각지의 세력들이 동요할 것이고 심지어 연경에서도 군사를 보내 진압할 것이다.어찌 됐든 이의진은 서경 왕비이자 용국의 공주이기도 하니까.그런 신분을 가진 그녀 앞에서 그들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간단히 말해 왕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일 수 있어도 이의진만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되었다. 하여 이의진이 함께 죽자는 듯한 태도를 보인 순간 오히려 그들이 당황했던 것이었다.“세 분,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요?”진승민은 옆에 선 세 제후를 보며 낮게 물었다.“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이유가 없죠.”노정한이 차갑게 말했다.“맞습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가면 성공인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강윤기가 맞장구를 쳤다.“물론 압니다. 제 말은 왕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겁니다.”진승민이 낮게 말했다.“왕비의 목숨만 해치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하원휘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제후님 뜻은... 묶어놓자는 말입니까?”진승민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다른 방법이 있나요?”하원
무거운 왕부 대문이 쿵쾅거리면서 진동했다.매번 쿵쾅거릴 때마다 마치 거대한 망치가 심장을 강타하는 듯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문 열어.”이의진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대문을 열라고 명령했다.그녀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대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던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이런 상황에서는 대문을 굳게 닫고 방어에 힘써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알아서 문을 열어? 어떻게 된 거지? 혹시 다른 함정이라도 있나?’“진승민, 노정한, 강윤기, 하원휘. 나와!”이의진이 칼을 든 채 꼿꼿이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강렬한 기세에 문밖의 병사들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그녀가 부른 네 명은 북쪽 4대 제후이자 이번 반란의 주요 세력들이었다.“뭐야? 일을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숨으려고? 4대 제후라는 사람들이 모두 쥐새끼처럼 숨어다니는 졸개들이야?”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이의진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차고 힘찬지 왕부 안팎으로 울려 퍼졌다.잠시 후 왕부 앞에 있던 병사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넓은 길을 터주었다.곧이어 갑옷을 입고 망토를 걸친 각기 다른 모습의 중년 남자 네 명이 나란히 걸어왔다. 그들이 바로 북쪽 4대 제후였다.“진승민,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노정한,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강윤기,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하원휘,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네 사람은 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동시에 몸을 숙여 예를 올렸다.“흥, 너희들 눈에 내가 왕비로 보이긴 하느냐?”이의진이 싸늘하게 말했다.“왕비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루 왕비는 영원한 왕비십니다.”진승민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만약 너희들이 나를 왕비로 생각했다면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았겠지.”이의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왕비님, 오해하셨습니다. 저희는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니라 왕실을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진승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습니다.”옆에 있던 노정한
깊은 밤, 서경왕부 대문 앞.수많은 무장병사들이 거대한 왕부를 물샐틈없이 에워쌌다. 멀리서 바라보면 검은 무리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는데 그 수가 자그마치 수만 명에 달했다.이들은 단지 선봉 부대일 뿐이었고 사실 왕성 밖에는 북쪽 4대 제후의 군대와 유태범의 친위대까지 위장한 채 주둔하고 있었다.그 시각 왕부 안.이의진은 상복을 입은 채 차가운 표정으로 살기등등하게 대문 앞에 서 있었다.손에 날카로운 검을 들고 있었는데 온몸에서 풍기는 위엄과 살기는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왕부의 생사가 위기에 처하자 왕비인 이의진은 망설임 없이 맨 앞에 나섰다. 그녀의 뒤에는 석태혁과 갑옷을 입은 유만군이 서 있었다.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왕부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이었다.유만군의 뒤에는 왕부의 병사들과 식솔들이 서 있었다.병사들은 칼을 들었고 식솔들은 몽둥이를 들었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한 듯 굳건한 자세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그리고 뒤쪽 내원으로 들어가면 왕부의 노약자와 부녀자들이 상복을 입고 무기를 든 채 멀리 떨어진 대문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만약 유만군이 쓰러지고 병사들과 식솔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들 역시 망설임 없이 달려나가 왕부와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아빠... 엄마... 무서워요...”열 살 남짓한 한 소년이 두 손에 칼을 들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소년이 언제 이런 끔찍한 상황을 겪어봤겠는가.왕부가 포위당하고 밖에 수만 명의 대군이 매복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소년은 왕부의 운명이 다했고 오늘 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걸 직감했다.“쓸모없는 녀석.”한 중년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소년에게 호통쳤다.“우리 유씨 가문의 사나이는 전장을 누비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겁쟁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네가 오늘 한 발짝이라도 물러선다면 네놈을 먼저 베어버리는 수가 있어.”“아빠...”겁에 질린 소년은 덜덜 떨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울
“그건...”유진우는 망설이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세자 전하.”은성종이 갑자기 두 손을 맞잡고 예를 표하면서 말했다.“제가 재주는 부족하지만 세자 전하를 위해 가시밭길이라도 기꺼이 헤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만약 절 믿어주신다면 이 일은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제가 은밀히 충신들한테 연락하여 빠르게 힘을 모으겠습니다. 때가 되어 세자 전하께서 신호만 주신다면 반드시 성공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제후님은 역시 의로운 분이시네요. 정말 진심으로 존경합니다.”유천우가 진심으로 감탄했다.“그렇다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유진우도 두 손을 맞잡고 공손하게 인사했다.“세자 전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건 저의 영광입니다.”은성종이 말했다.“제후님, 큰일 났습니다.”그때 한 병사가 문을 벌컥 열고 뛰어 들어와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방금 들어온 소식인데 서경왕부가 대군에 포위당해서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합니다.”“뭐? 포위당했다고?”이 말을 들은 순간 유진우와 유천우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들이 떠난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변고가 닥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말해봐.”유천우가 다급하게 물었다. 병사는 은성종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북쪽의 4대 제후들이 정예 부대를 이끌고 어젯밤 몰래 왕성에 잠입했는데 왕성 호위대의 장교급 군관들이 모두 인질로 잡힌 바람에 군 전체가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 틈에 북쪽의 4대 제후들이 왕실을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왕부를 포위했어요. 겉으로는 간신배들을 처단하고 서경왕의 복수를 하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군사를 일으켜 권력을 빼앗으려는 겁니다.”쾅.유천우가 화를 내면서 상을 세게 내리쳤다. “이것들이 아주 제대로 미쳤구나. 감히 서경왕부를 포위해?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절대 이럴 수가 없어.”그는 설령 4대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기껏해야 성문 앞에 병력을 주둔시켜서 압박을 가하는 정도일 것이라고
“아직 절 기억해주고 계셔서 감사합니다. 저 아직 살아있습니다.”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성종의 과거사를 몰랐던 터라 갑자기 흥분한 모습을 보니 조금 의아했다.“살아있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은성종은 놀라면서도 기뻐했다.“벌써 10년이나 지났어요. 그사이 세자 전하께서 이렇게 성장하시다니...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그러네요. 10년 동안 많은 게 변했습니다.”유진우는 감탄하며 말했다.10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10년 후에는 아버지가 암살당했다. 10년 사이에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게 참으로 안타까웠다.“제후님, 아까 제 형을 보면 서경왕부를 전폭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지금 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약속을 어기진 않으실 거죠?”유천우가 떠보듯 물었다.“만약 세자 전하께서 왕위를 이어받으시겠다고 한다면 난 목숨을 걸고서라도 세자 전하가 왕의 자리에 앉도록 도와줄 거야.”은성종이 진지하게 말했다.조금 전까지 냉정하고 덤덤했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의 그는 투지가 넘쳤고 온몸에서 전에는 본 적 없는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습니다. 제후님은 역시 약속을 잘 지키시네요.”유천우는 웃어 보이고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역시 형이 나서야 했어.’그가 아무리 애를 써도 은성종을 설득하지 못했는데 유진우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모든 게 쉽게 해결되었다.비록 10년이 흘렀지만 유씨 가문 천재라는 명성은 여전히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고 만인의 존경을 받았다.“제후님, 제가 서경에 돌아온 사실을 아직 외부에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잡을 때까지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어요.”유진우가 당부했다.“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 입 밖에 꺼내지 않겠습니다.”은성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좋은 그는 당연히 유장혁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위왕이 호룡각의 잔당들에게 살해당했고 유태범은 왕위를 빼앗으려 혈안이 되어있었다. 정말 여러 가지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왕위를 이을 생각이 없다면서 왜 싸우려는 건데?”은성종이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전 서경왕이 될 자격이 부족하지만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유태범보다 더 어울려요.”유천우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그게 누군데?”은성종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제 형님 유장혁입니다.”유천우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유장혁?”은성종은 실눈을 뜨더니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세자 전하께서 서경왕이 되는 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실종된 지 10년이 넘었고 감감무소식이라는 거야.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왕위를 이을 수 있겠어?”“제 형님은 죽지 않았고 이미 서경에 돌아왔습니다. 서경왕의 자리에 앉을 사람은 형님밖에 없습니다.”유천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말로만 해서는 안 돼. 증거가 있어?”은성종이 물었다.만약 유장혁이 정말로 서경에 돌아왔다면 벌써 서경 전체에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하여 유천우가 단지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핑계를 대는 것이라 생각했다.“제후님, 증거를 드릴 수는 있는데 그 전에 물을 게 있어요. 만약 제 형님이 왕위를 물려받는다면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실 겁니까?”유천우가 되물었다.“그건...”은성종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유천우가 하도 자신감이 넘쳐서 오히려 확신이 없어졌다.“제후님, 서경에는 좋은 왕이 필요합니다. 제 형님보다 더 서경왕에 적합한 사람은 없어요. 제후님도 잘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유천우가 말했다.“그래. 만약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만난다면 널 도와줄게. 만나지 못하면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야 할 거야.”은성종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약속하는 겁니다.”유천우는 웃으면서 유진우를 돌아보았다.“형, 이젠 형이 나설 때가 됐어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 말 없이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 본모습을 드러냈다.“당신은...”은성종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믿을
은성종은 유천우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자신과 유천우에게 술 한 잔씩 따라 주었다. 그리고 잔을 가볍게 부딪친 후 술을 단숨에 마셨다.“좋은 술이군.”은성종은 혀를 차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유천우도 다그치진 않고 술을 다 마신 다음 은성종을 바라보며 말하기를 기다렸다.“유태범이 나한테 손을 잡자고 하더라고. 엄청난 이익을 약속했지만 모두 거절했어.”이 말을 들은 유천우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이어진 은성종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아직 너무 기뻐하진 마. 유태범의 제안을 거절하긴 했지만 너도 도울 생각은 없어.난 전쟁을 싫어해서 중립을 선택할 거야.”은성종이 솔직하게 말했다.“중립이라고요?”유천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바로 설득했다.“제후님, 서경의 일원으로서 서경이 무너지는 걸 그냥 보고만 계실 겁니까?”“난 능력이 부족해서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어.”은성종이 고개를 내저었다.“그리고 난 야심이 없어서 그저 편안하게 살고 싶어. 이런 권력 다툼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아. 내가 가진 작은 땅만 잘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은성종이 잠깐 멈칫하다가 또 말을 이었다.“솔직히 말해서 너랑 표기 대장군 모두 유씨 가문의 핏줄이라 누가 서경왕이 되든 나한테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 말이 반란이지, 그저 왕위 다툼일 뿐이야.”“그건...”유천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천우야, 난 성격이 솔직한 편이라 혹시 불쾌한 점이 있다면 부디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은성종이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제후님이 평화를 바라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 제후님도 무사하지 못해요.”유천우가 다시 설득했다.“태평은 변경의 작은 도시이고 가난하고 가진 게 없어서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여기까지 쳐들어올 일은 없어.”은성종이 담담하게 말했다.“게다가 이미 유태범과도 합의했어. 내가 싸움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태평에는 절대 쳐들어오지 않겠다고.”“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