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주님이 이렇게 신중하시니, 관직에서 성공할 수밖에요.”유진우가 웃으며 가볍게 농담했다.“도련님, 절 놀리지는 마십시오. 저는 목숨이 간들간들, 언제든 생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답니다.”용수현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만약 외부에 그가 서경 왕부를 돕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가벼운 처벌로는 해임, 심하면 가문이 몰락할 것이다.어떤 결말이든, 용수현에게는 죽음이나 다름없었다.조정에서 오랫동안 몸을 담으며 적도 많이 만들었기에 권력을 잃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몰락시키려 할 것이 분명했다.“가주님, 이번 일이 잘되면 내가 용씨 가문에 큰 빚을 진 셈으로 할 테니, 앞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내가 전적으로 도와드릴게요.”유진우가 약속했다.“정말 감사합니다, 도련님!”용수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속으로는 이제야 조금 득을 본 기분이었다.만약 서경 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위기가 닥쳐도 한 가지 대비책은 마련된 것이다.“가주님, 문왕부의 지도에 관해서는 서둘러주세요. 시간이 얼마 없거든요.”유진우가 말했다.“도련님, 오늘 해지기 전에 반드시 보내드리겠습니다.”용수현이 확언했다.“참. 문관옥은 지금 연경에 있나요?”유진우가 다시 물었다.“며칠 후면 문 어르신의 생신이라 돌아올 겁니다.”용수현이 대답했다.“알겠어요. 문관옥에 대한 세부 자료가 필요해요. 그의 취향, 개인 습관, 특별한 능력 등을 전부 파악해 주세요.”유진우가 말했다.“문제없습니다.”용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일단 이 정도로 하죠. 필요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유진우는 손을 들어 운전사에게 차를 세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길가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은 씨 제약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유진우는 낯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잠시 후, 전화가 연결되었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시죠?”“유장혁입니다.”유진우가 대답했다.“아, 당신이군요.”여성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전에 부규환이 당신이 살아있다고 했을 때 좀 믿
물론, 안전을 위해 이 일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시간이 훌쩍 지나 삼일이 지났다.이 삼 일 동안, 은 씨 제약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매일 약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들었다.전에는 몇몇 사람들이 은 씨 제약을 비웃으며 문왕부의 미움을 샀으니 분명 큰 화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삼일이 지나도 문왕부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모든 것이 조용했다.은 씨 제약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운영되며, 매일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특히, 구세당은 이미 재건이 완료되어 이제는 내부 인테리어 작업만 남았다.유진우는 돈만 내면 되었고, 모든 일은 전문 팀이 처리해 주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또한, 궁에서 그분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유진우는 빙심연을 순조롭게 얻었고 과정에서는 아무런 사고도 없었다.이제 남은 것은 금수옥이었다.이에 대한 계획도 유진우는 이미 세워두었고 준비도 마쳤다.사흘 후, 연경 내성, 문왕부.아침 일찍부터 문왕부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즐거운 분위기였고 북과 징 소리와 함께 사자춤, 용춤이 어우러져 매우 시끌벅적했다.많은 고관대작들이 일찍부터 방문했다.오늘은 문 어르신의 쉰 번째 생일이었다.삼대 이성왕 중 한 명인 문설봉 문 어르신은 조정을 뒤흔들 정도의 권력을 가진 서경 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명성은 널리 퍼져 있었다.그는 서른다섯 살에 왕이 되었고 서른여섯 살에 군직에서 물러났다.그리고 평생 선행을 즐기고 베풀기를 좋아하여 좋은 인연을 많이 맺었으며, 학교를 세우고 고아를 입양하여, 평생 모은 재산을 모두 선행에 썼다.연경성 전체를 둘러봐도, 적이든 친구든 상관없이, 문 어르신의 이름을 언급하면 모두 진심으로 존경했다.그는 대의에 헌신한 의협자였다.문 어르신은 평생 의협 정신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보여주었다.유일한 아쉬운 점은, 그는 많은 형제자매가 있지만 자식이 없는 외로운 인생이라는 것이었다.지금까지 그는 고독한 삶을 살았다.이런 아쉬움 때문인지, 문 어르신은 많은 양자와 양녀를 입양
“은아야, 문왕부에는 고수들이 많고, 곧 많은 중요한 인물들이 올 거야.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조심해.”유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당부했다.두 사람은 모두 변장해서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문왕부에는 기인이나 고수들이 많았기에, 정체가 들통나면 큰일이었다. 특히 황은아는 주술교의 성녀였기에, 조정의 신하들과 정파 인사들에게는 마녀로 여겨져, 제거 대상이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 저도 어린애가 아니니 분별력이 있어요. 절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황은아는 눈을 굴리며 부유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다..“안심은 개뿔!”유진우는 조금 안타까운 마음에 황인인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이럴 줄 알았다면 데려오지 않았을 텐데. 이 돈에 환장한 녀석은 누구를 봐도 마치 걸어 다니는 돈나무를 보는 것 같다.“아저씨! 저기 봐요! 정말 시끌벅적해요!”이때 황은아가 뭔가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유진우가 소리에 반응해 보니 전투복을 입은 정예 경호대가 우르르 들어오는 모습이었다.선두에 서 있는 사람은 삼십 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다.남자는 날카로운 눈썹과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으며, 표정은 차가워 살벌하고 강한 기세를 발산하고 있었다.특히 금테가 둘린 장군복은 더욱 위엄과 기개를 더했다.그가 지나가자, 사람들은 저절로 길을 비켜주고 모두 몸을 숙여 인사하며 경외심을 보였다.“저 사람 누구야? 문왕부에 군대를 이끌고 들어오다니? 정말 대담하네!”“이봐, 너 연경에 처음 왔어? 어떻게 유명한 옥면 군신을 몰라?”“뭐? 저분이 옥면 군신 문관옥이야? 어쩐지 위풍당당하다 했어!”“...”사람들은 귓속말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문관옥을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적었다.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동관을 지키며 보냈고, 명절이나 되어야 연경에 의부를 보러 왔기 때문이다.오늘은 문 어르신의 생신 잔치라, 양자인 그가 당연히 빠질 수 없다.“옷을 갈아입고 올 테니
그가 말할 때, 그의 신변 경호대는 유진우와 황은아를 에워쌌다.그들을 노려보는 눈빛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옥면 군신께 인사 올립니다.”유진우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저는 진우섭이고 이건 제 여동생 진은아입니다.”“어디서 본 것 같은데, 우리 예전에 만난 적 있나요?”문관옥이 물었다.그의 눈빛은 마치 칼처럼 날카롭게 유진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그를 철저히 파악하려는 듯했다.“작년에 군신께서 승리하고 돌아오셨을 때 문 어르신께서 큰 잔치를 여셨는데, 저는 그 자리에 참석해 군신의 위풍을 목격했습니다. 군신께서 저를 기억하신다니, 정말 영광입니다!”유진우는 겸손한 표정을 지었다.이 말은 반은 진실이었고 반은 거짓이었다.사실 작년에 문관옥은 실제로 큰 승리를 거두고 연회를 열었으며,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물론 유진우는 참석할 시간이 없었고, 이 모든 것은 용수현이 제공한 관련 정보였다.만일을 대비해 그는 미리 잘 외워두었고, 지금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었다.“그래요?”문관옥이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여전히 유진우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잠시 후에야 시선을 거두었다.“내가 사람을 잘못 안 것 같네요.”말을 마친 후 그는 사람들을 데리고 전혀 주저 없이 돌아섰다.“아저씨, 이 사람은 만만치 않네요.”황은아는 문관옥의 뒷모습을 보며 좀 더 진지해졌다.이렇게 멀리서도, 악의적인 눈빛을 느낄 수 있다니, 그 감지 능력은 확실히 무서웠다.만약 암살자가 습격을 시도한다면, 미처 손도 쓰기 전에 미리 반격당할 것이다.“용국 군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은 평범한 자가 아니지. 그만한 실력이 없다면 어떻게 전쟁터를 종횡무진했겠어?”유진우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문관옥은 다섯 명의 군신 중에서 가장 강력한 실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그러니 직접 싸워보기 전에는 그도 상대방의 진짜 실력을 예측할 수 없다.전에 용수현이 말했듯이 십 년이 지난 지금 문관옥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다.반면에 그는 서경 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수련
유진우는 예전의 그 혐오스러운 얼굴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문왕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특별히 변장해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하지만 이런 식으로 장경화 일행과 만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정말 재수 없었다.다행히도, 그들은 유진우를 알아보지 못했고, 유진우는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서, 먼저 사과했다.“죄송합니다, 방금 제가 주의하지 않아서 부딪혔는데 다치지 않으셨나요?”“쳇! 넌 눈이 멀었냐!”장경화는 엉덩이를 툭툭 치며 일어서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너, 내가 누구인지 알아? 감히 나를 들이받다니, 너 정말 죽고 싶어?”지금 그녀의 신분은 예전과 다르니, 누구든지 그녀를 건드리면 큰일이었다.“저기요! 방금은 당신이 길을 잘못 보고 부딪힌 거잖아요! 당신이 부딪혔으면서 왜 우리한테 화내요? 정말 너무 뻔뻔해요!”황은아가 코웃음을 쳤다.“야! 넌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장경화가 눈을 부라리며, 더욱 오만하게 말했다.“너희들, 당장 사과하고 내 정신적 피해 보상해! 안 그러면 너희들 가만두지 않을 거야!”“허허... 겁주는 거예요? 우리가 사과하고 배상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요?”황은아가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조그만 년이! 감히 내 앞에서 말대꾸해? 그 결과가 뭔지 알아?”장경화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너희들, 조용히 사과하고 보상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곧 큰 화가 닥칠 테니까.”이때 옆에 있던 단소홍이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여기는 문왕부로 그녀들의 구역이었으니 오는 사람이 누구든 그녀들의 명령을 고분고분 따라야 했다.“죄송합니다, 방금 저의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니 부디 용서해 주세요. 제가 보상해 드릴게요.”유진우는 겸손하게 말했다. 평소였다면, 그는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늘은 중요한 일이 우선이었다. 그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고 단지 이 성가신 여자를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너 혼자 사과한다고 끝날 일이
그런데 눈앞의 이 여자는 전혀 사정을 안 보고 일을 크게 만들고 있었다.이렇게까지 나오니 그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좋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겠다 이거지!”“호위! 빨리 와!”“이 두 사람이 문왕부에서 난동을 부리고 나에게 손까지 댔어. 당장 붙잡아!”장경화는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 앞에 있던 호위들이 즉시 모여들었다.이청아는 현재 문왕부에서 총애를 받는 인물이었기에 그녀의 어머니 장경화는 상빈으로 모셔져, 지위가 높고, 감히 그녀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멈춰요!”양측이 막 손을 대려는 순간, 이청아가 갑자기 들어와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에요? 왜 싸우려는 거죠?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세요?!”“딸, 너 마침 잘 왔다!”장경화는 이청아를 보자 곧바로 고자질을 시작했다.“이 두 녀석이 방금 고의로 시비를 걸고 나를 때리기까지 했어. 이건 문왕부를 완전히 무시하는 거잖아. 너 얼른 이 사람들 잡아가. 문 어르신 생신 잔치에 방해되지 않게.”사실을 왜곡하는데 그녀는 전문가였다.“당신들은 누구죠? 감히 문왕부에서 소란을 피우다니요?”이청아는 언짢은 기색으로 유진우와 황은아를 바라보았다.“이청아 씨, 우리가 난동을 부린 게 아니라 당신 어머니가 억지를 부리시는 겁니다.”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우리는 원래 문 어르신의 생신을 축하하러 온 건데 막 들어서자마자 당신 어머니와 부딪혔어요. 사모님께서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고, 우리는 이미 사과했으며 보상할 의향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우리더러 무릎을 꿇으라고 하고 스스로 뺨을 때리라고 하잖아요. 이건 정말 너무 하셨어요.”“어? 그런 일이 있었어요?”이청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어머니를 돌아봤다.“딸, 저 사람 말을 믿지 마. 그는 분명 일부러 나를 부딪치고 시비를 건 거야. 저 사람 꼴 좀 봐. 분명히 좋은 사람이 아니야!”장경화는 계속해서 횡포를 부렸다.문왕부가 뒤를 봐주고 있으니, 그녀는 검은 것도 흰 것으로 말
장경화를 진정시킨 뒤, 이청아는 유진우와 황은아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두 분,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놀라셨다면 사과드릴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살짝 몸을 숙여 예의를 표시했다.이 광경을 본 주변의 손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을 표했다.문 어르신의 의녀로서, 지위가 문관옥 다음인 인물이 자신의 체면을 내려놓고, 대중 앞에서 사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이렇게 대의를 생각하는 태도는 문 어르신의 안목이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이청아 씨, 너무 겸손하십니다. 저희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평화롭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죠.”유진우는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말했다.“과연 이해심이 깊으신 분이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이청아가 정중하게 물었다.“진우섭이라고 합니다. 이건 제 동생 진은아입니다.”유진우가 소개했다.“진우섭 씨, 진은아 씨. 반가워요.”이청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두 분은 손님이시니 자리에 앉으세요.”그녀는 말하며 손짓으로 직원들을 불러 유진우와 황은아에게 앞쪽 자리를 마련해주었다.“감사합니다.”유진우는 사양하지 않고 황은아를 데리고 앞쪽 자리에 앉았다.비록 방금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지만, 다행히도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아 계획에 큰 영향은 없을 것 같았다.“딸, 저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잘해주는 거야? 차라리 쫓아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별로 대단한 사람 같지 않잖아.”“흥!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어요?”이청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방금 만약 문제가 커졌다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 알아요? 만약 이 일이 퍼지면, 사람들은 우리 문왕부가 갑질한다고 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십여 년 동안 쌓아온 명성이 다 더럽혀질 수도 있다고요!”“그렇게 심각할 리가 있겠어? 그냥 버릇없는 두 녀석을 가르쳐준 것뿐인데 문 어르신의 명성과 무슨 관계가 있어?”장경화는 이청아가 좀 과장하는 것 같다고
그는 말하면서 이리저리 손을 흔들어 보였는데 거만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저 사람이 전설 속의 문 어르신이라고요? 생각보다 좀 다르네요.”앞에 있는 친절한 뚱보 아저씨를 보며, 황은아는 다소 의아해했다.그녀 상상 속의 왕이라면 패기 있고 위엄이 넘치며, 한 번 보기만 해도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은 존재여야 했다.하지만 문설봉의 모습과 분위기는 그녀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다.“상대방이 왕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유진우가 웃으며 물었다.“네.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문관옥과 비교하면 너무 차이가 나요.”황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은아야, 그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문관옥은 지금은 대단하지만, 결국 보면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업적을 쌓은 거야. 시작부터 높으니까, 한결 더 쉬웠던 거지. 반면, 문 어르신은 맨손으로 시작해서, 자신의 힘으로 제후에 봉해지고 왕에 봉해졌어. 이런 인물이야말로 진정한 영웅호걸이 아니겠어?”오늘날, 문관옥의 화려함은 대부분 문설봉의 인맥과 자원 덕분이었다.그러니 두 사람은 완전히 비교할 수 없었다.“좀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황은아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이른바 이미지라는 것도 문 어르신 정도의 수준에 이르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거야.”유진우가 감탄하며 말했다.“사실, 명예나 돈, 권력 같은 건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아.”“돈도 중요하지 않다면, 그럼 뭐가 중요해요?”황은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들은 지금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만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유진우가 말했다.“아~ 이해했어요. 어쩐지 문 어르신이 그렇게 많은 의붓자식을 입양했다 했더니, 그게 이유였군요.”황은아는 깨달았다.“그렇다고 할 수 있지.”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근데 아저씨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걸 아세요?”황은아가 호기심을 보였다.“나? 그냥 짐작한 거야.”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했다.어떤 사람들은
“이것들이 죽으려고.”몰려드는 무장병사들을 보며 유천우는 순식간에 분노를 터트렸다.그는 더 이상 자비를 베풀지 않고 칼을 들고 인파 속으로 돌진했다.지금의 그는 이미 무도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랐고 게다가 수년간 전장을 누빈 덕에 쌓은 전투 경험 또한 풍부했다.혼자서 적진을 누비는데도 아무도 막지 못할 정도로 용맹했다.“도련님을 지키고 놈들을 죽여라!”이의진이 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 있던 유만군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전부 죽여버려.”석태혁이 장검을 휘두르며 백여 명의 유만군을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했다.유만군의 수는 적었지만 모두 엄청난 실력을 지닌 고수였고 게다가 훈련도 잘되어 있었다.무도 마스터인 석태혁의 지휘 아래 그들은 파죽지세로 적진을 휘저으며 나아갔다.백여 명의 부대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수만 명에 달하는 대군의 심장을 찔러 가차 없이 죽여버렸다.혹시라도 암살당할까 봐 4대 제후는 친위대의 보호 아래 즉시 전장에서 멀리 도망쳤다.“왕부 안에 저런 정예 부대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가차 없이 적을 베어버리는 유만군을 보며 진승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다행히 백여 명밖에 안 되는군요. 수가 적어서 망정이지, 안 그러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노정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추측건대 저들이 바로 유만군일 겁니다. 유만수가 흑용군의 정예 병력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들을 뽑아 만든 부대인데 전부 뛰어난 실력을 지녔습니다.”강윤기가 말했다.“그렇군요. 어쩐지 엄청 대단하더라니.”하원휘가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숫자가 적어서 우리한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해요. 지금은 용맹해 보이지만 체력이 고갈되면 목숨을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진승민이 말을 이었다.“혹시 무슨 변수가 생기진 않겠죠?”노정한이 갑자기 물었다.“무슨 변수요? 왕부가 포위된 이상 함락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왕성 밖에도 우리 대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면 즉시 알아차릴 수 있어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걸 본 이의진은 반가워하다가 이내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왜냐하면 아들이 갈 때와 마찬가지로 몇 명만 왔을 뿐 군대는 한 명도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혹시 실패했어?”마음이 무거워진 이의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들의 유일한 희망이 바로 남쪽 4대 제후를 설득하여 북쪽 4대 제후와 맞서는 것인데 지금 상황을 봐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듯했다.“간덩이가 부은 것들! 감히 왕부로 쳐들어와? 모두 죽고 싶어?”유천우가 호통쳤다.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마치 천둥처럼 현장 전체가 크게 울렸다.4대 제후의 수만 병사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도련님께서 돌아오셨군요.”진승민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희 4대 제후는 왕부 안에 진범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위왕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부득이하게 들어가서 수색해야 하니 길을 비켜주십시오.”“수색은 무슨 수색.”유천우가 냉담하게 외쳤다.“왕부가 어떤 곳인데 함부로 수색하겠다고 난리야? 저리 썩 꺼지지 못해?”“도련님, 저희는 진심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움직이는데 이렇게 계속해서 방해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진승민이 태연하게 물었다.“흥. 내 앞에서 가식 떨지 마! 너희들의 속셈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없어.”유천우가 차갑게 말했다.“도련님,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진승민이 말했다.“진승민, 한 번만 기회를 줄게. 만약 지금이라도 떠난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너희들은 여전히 서경 제후이고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유천우는 말하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하지만 만약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반역을 하려 한다면 내가 장담하는데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도련님, 저희는 대국을 생각해서 이러는 것이니 부디 길을 비켜주십시오.”진승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나머지 세 사람 역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그들은 물러설 이유가
“그럼 왕부에 들어가기 전에 나부터 죽이고 가!”이의진은 검을 든 채 꼿꼿이 서서 강력한 기세로 홀로 대문을 지켰다.그녀의 무공은 그리 강하지 않았고 고작 선천 무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뿜어내는 기세는 무도 마스터보다 훨씬 강했다.일반 병사들은 물론이고 진승민조차도 압도되어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다른 세 제후에게 눈짓을 보낼 뿐이었다.위협은 위협이고 압박은 압박이지만 적어도 명분은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의 조롱을 받고 만민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살인범을 추적한다는 명분으로 왕부를 포위했다. 비록 행동이 과격하긴 하지만 나중에 슬픔에 북받쳐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다.하지만 압박 과정에서 왕비를 죽인다면 아무리 변명하고 이유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그뿐만 아니라 서경 각지의 세력들이 동요할 것이고 심지어 연경에서도 군사를 보내 진압할 것이다.어찌 됐든 이의진은 서경 왕비이자 용국의 공주이기도 하니까.그런 신분을 가진 그녀 앞에서 그들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간단히 말해 왕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일 수 있어도 이의진만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되었다. 하여 이의진이 함께 죽자는 듯한 태도를 보인 순간 오히려 그들이 당황했던 것이었다.“세 분,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요?”진승민은 옆에 선 세 제후를 보며 낮게 물었다.“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이유가 없죠.”노정한이 차갑게 말했다.“맞습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가면 성공인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강윤기가 맞장구를 쳤다.“물론 압니다. 제 말은 왕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겁니다.”진승민이 낮게 말했다.“왕비의 목숨만 해치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하원휘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제후님 뜻은... 묶어놓자는 말입니까?”진승민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다른 방법이 있나요?”하원
무거운 왕부 대문이 쿵쾅거리면서 진동했다.매번 쿵쾅거릴 때마다 마치 거대한 망치가 심장을 강타하는 듯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문 열어.”이의진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대문을 열라고 명령했다.그녀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대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던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이런 상황에서는 대문을 굳게 닫고 방어에 힘써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알아서 문을 열어? 어떻게 된 거지? 혹시 다른 함정이라도 있나?’“진승민, 노정한, 강윤기, 하원휘. 나와!”이의진이 칼을 든 채 꼿꼿이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강렬한 기세에 문밖의 병사들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그녀가 부른 네 명은 북쪽 4대 제후이자 이번 반란의 주요 세력들이었다.“뭐야? 일을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숨으려고? 4대 제후라는 사람들이 모두 쥐새끼처럼 숨어다니는 졸개들이야?”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이의진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차고 힘찬지 왕부 안팎으로 울려 퍼졌다.잠시 후 왕부 앞에 있던 병사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넓은 길을 터주었다.곧이어 갑옷을 입고 망토를 걸친 각기 다른 모습의 중년 남자 네 명이 나란히 걸어왔다. 그들이 바로 북쪽 4대 제후였다.“진승민,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노정한,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강윤기,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하원휘,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네 사람은 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동시에 몸을 숙여 예를 올렸다.“흥, 너희들 눈에 내가 왕비로 보이긴 하느냐?”이의진이 싸늘하게 말했다.“왕비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루 왕비는 영원한 왕비십니다.”진승민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만약 너희들이 나를 왕비로 생각했다면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았겠지.”이의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왕비님, 오해하셨습니다. 저희는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니라 왕실을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진승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습니다.”옆에 있던 노정한
깊은 밤, 서경왕부 대문 앞.수많은 무장병사들이 거대한 왕부를 물샐틈없이 에워쌌다. 멀리서 바라보면 검은 무리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는데 그 수가 자그마치 수만 명에 달했다.이들은 단지 선봉 부대일 뿐이었고 사실 왕성 밖에는 북쪽 4대 제후의 군대와 유태범의 친위대까지 위장한 채 주둔하고 있었다.그 시각 왕부 안.이의진은 상복을 입은 채 차가운 표정으로 살기등등하게 대문 앞에 서 있었다.손에 날카로운 검을 들고 있었는데 온몸에서 풍기는 위엄과 살기는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왕부의 생사가 위기에 처하자 왕비인 이의진은 망설임 없이 맨 앞에 나섰다. 그녀의 뒤에는 석태혁과 갑옷을 입은 유만군이 서 있었다.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왕부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이었다.유만군의 뒤에는 왕부의 병사들과 식솔들이 서 있었다.병사들은 칼을 들었고 식솔들은 몽둥이를 들었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한 듯 굳건한 자세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그리고 뒤쪽 내원으로 들어가면 왕부의 노약자와 부녀자들이 상복을 입고 무기를 든 채 멀리 떨어진 대문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만약 유만군이 쓰러지고 병사들과 식솔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들 역시 망설임 없이 달려나가 왕부와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아빠... 엄마... 무서워요...”열 살 남짓한 한 소년이 두 손에 칼을 들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소년이 언제 이런 끔찍한 상황을 겪어봤겠는가.왕부가 포위당하고 밖에 수만 명의 대군이 매복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소년은 왕부의 운명이 다했고 오늘 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걸 직감했다.“쓸모없는 녀석.”한 중년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소년에게 호통쳤다.“우리 유씨 가문의 사나이는 전장을 누비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겁쟁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네가 오늘 한 발짝이라도 물러선다면 네놈을 먼저 베어버리는 수가 있어.”“아빠...”겁에 질린 소년은 덜덜 떨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울
“그건...”유진우는 망설이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세자 전하.”은성종이 갑자기 두 손을 맞잡고 예를 표하면서 말했다.“제가 재주는 부족하지만 세자 전하를 위해 가시밭길이라도 기꺼이 헤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만약 절 믿어주신다면 이 일은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제가 은밀히 충신들한테 연락하여 빠르게 힘을 모으겠습니다. 때가 되어 세자 전하께서 신호만 주신다면 반드시 성공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제후님은 역시 의로운 분이시네요. 정말 진심으로 존경합니다.”유천우가 진심으로 감탄했다.“그렇다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유진우도 두 손을 맞잡고 공손하게 인사했다.“세자 전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건 저의 영광입니다.”은성종이 말했다.“제후님, 큰일 났습니다.”그때 한 병사가 문을 벌컥 열고 뛰어 들어와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방금 들어온 소식인데 서경왕부가 대군에 포위당해서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합니다.”“뭐? 포위당했다고?”이 말을 들은 순간 유진우와 유천우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들이 떠난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변고가 닥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말해봐.”유천우가 다급하게 물었다. 병사는 은성종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북쪽의 4대 제후들이 정예 부대를 이끌고 어젯밤 몰래 왕성에 잠입했는데 왕성 호위대의 장교급 군관들이 모두 인질로 잡힌 바람에 군 전체가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 틈에 북쪽의 4대 제후들이 왕실을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왕부를 포위했어요. 겉으로는 간신배들을 처단하고 서경왕의 복수를 하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군사를 일으켜 권력을 빼앗으려는 겁니다.”쾅.유천우가 화를 내면서 상을 세게 내리쳤다. “이것들이 아주 제대로 미쳤구나. 감히 서경왕부를 포위해?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절대 이럴 수가 없어.”그는 설령 4대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기껏해야 성문 앞에 병력을 주둔시켜서 압박을 가하는 정도일 것이라고
“아직 절 기억해주고 계셔서 감사합니다. 저 아직 살아있습니다.”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성종의 과거사를 몰랐던 터라 갑자기 흥분한 모습을 보니 조금 의아했다.“살아있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은성종은 놀라면서도 기뻐했다.“벌써 10년이나 지났어요. 그사이 세자 전하께서 이렇게 성장하시다니...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그러네요. 10년 동안 많은 게 변했습니다.”유진우는 감탄하며 말했다.10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10년 후에는 아버지가 암살당했다. 10년 사이에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게 참으로 안타까웠다.“제후님, 아까 제 형을 보면 서경왕부를 전폭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지금 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약속을 어기진 않으실 거죠?”유천우가 떠보듯 물었다.“만약 세자 전하께서 왕위를 이어받으시겠다고 한다면 난 목숨을 걸고서라도 세자 전하가 왕의 자리에 앉도록 도와줄 거야.”은성종이 진지하게 말했다.조금 전까지 냉정하고 덤덤했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의 그는 투지가 넘쳤고 온몸에서 전에는 본 적 없는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습니다. 제후님은 역시 약속을 잘 지키시네요.”유천우는 웃어 보이고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역시 형이 나서야 했어.’그가 아무리 애를 써도 은성종을 설득하지 못했는데 유진우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모든 게 쉽게 해결되었다.비록 10년이 흘렀지만 유씨 가문 천재라는 명성은 여전히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고 만인의 존경을 받았다.“제후님, 제가 서경에 돌아온 사실을 아직 외부에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잡을 때까지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어요.”유진우가 당부했다.“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 입 밖에 꺼내지 않겠습니다.”은성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좋은 그는 당연히 유장혁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위왕이 호룡각의 잔당들에게 살해당했고 유태범은 왕위를 빼앗으려 혈안이 되어있었다. 정말 여러 가지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왕위를 이을 생각이 없다면서 왜 싸우려는 건데?”은성종이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전 서경왕이 될 자격이 부족하지만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유태범보다 더 어울려요.”유천우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그게 누군데?”은성종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제 형님 유장혁입니다.”유천우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유장혁?”은성종은 실눈을 뜨더니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세자 전하께서 서경왕이 되는 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실종된 지 10년이 넘었고 감감무소식이라는 거야.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왕위를 이을 수 있겠어?”“제 형님은 죽지 않았고 이미 서경에 돌아왔습니다. 서경왕의 자리에 앉을 사람은 형님밖에 없습니다.”유천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말로만 해서는 안 돼. 증거가 있어?”은성종이 물었다.만약 유장혁이 정말로 서경에 돌아왔다면 벌써 서경 전체에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하여 유천우가 단지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핑계를 대는 것이라 생각했다.“제후님, 증거를 드릴 수는 있는데 그 전에 물을 게 있어요. 만약 제 형님이 왕위를 물려받는다면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실 겁니까?”유천우가 되물었다.“그건...”은성종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유천우가 하도 자신감이 넘쳐서 오히려 확신이 없어졌다.“제후님, 서경에는 좋은 왕이 필요합니다. 제 형님보다 더 서경왕에 적합한 사람은 없어요. 제후님도 잘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유천우가 말했다.“그래. 만약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만난다면 널 도와줄게. 만나지 못하면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야 할 거야.”은성종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약속하는 겁니다.”유천우는 웃으면서 유진우를 돌아보았다.“형, 이젠 형이 나설 때가 됐어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 말 없이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 본모습을 드러냈다.“당신은...”은성종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믿을
은성종은 유천우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자신과 유천우에게 술 한 잔씩 따라 주었다. 그리고 잔을 가볍게 부딪친 후 술을 단숨에 마셨다.“좋은 술이군.”은성종은 혀를 차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유천우도 다그치진 않고 술을 다 마신 다음 은성종을 바라보며 말하기를 기다렸다.“유태범이 나한테 손을 잡자고 하더라고. 엄청난 이익을 약속했지만 모두 거절했어.”이 말을 들은 유천우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이어진 은성종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아직 너무 기뻐하진 마. 유태범의 제안을 거절하긴 했지만 너도 도울 생각은 없어.난 전쟁을 싫어해서 중립을 선택할 거야.”은성종이 솔직하게 말했다.“중립이라고요?”유천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바로 설득했다.“제후님, 서경의 일원으로서 서경이 무너지는 걸 그냥 보고만 계실 겁니까?”“난 능력이 부족해서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어.”은성종이 고개를 내저었다.“그리고 난 야심이 없어서 그저 편안하게 살고 싶어. 이런 권력 다툼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아. 내가 가진 작은 땅만 잘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은성종이 잠깐 멈칫하다가 또 말을 이었다.“솔직히 말해서 너랑 표기 대장군 모두 유씨 가문의 핏줄이라 누가 서경왕이 되든 나한테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 말이 반란이지, 그저 왕위 다툼일 뿐이야.”“그건...”유천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천우야, 난 성격이 솔직한 편이라 혹시 불쾌한 점이 있다면 부디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은성종이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제후님이 평화를 바라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 제후님도 무사하지 못해요.”유천우가 다시 설득했다.“태평은 변경의 작은 도시이고 가난하고 가진 게 없어서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여기까지 쳐들어올 일은 없어.”은성종이 담담하게 말했다.“게다가 이미 유태범과도 합의했어. 내가 싸움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태평에는 절대 쳐들어오지 않겠다고.”“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