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는 예전의 그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고 차갑게 말했다.“이청아 씨, 내가 고집부리는 게 아니라 당신이 너무 자만하는 거예요. 왜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나는 왜 이 사람들을 노엽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아직도 변명할 거예요?”이청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방금 내가 다 물어봤어요. 분명 당신들이 잘못한 거잖아요. 누가 뒤를 봐준다고 해서 연경에서 제멋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여긴 강자들이 숨어 있는 곳이니 당신 같은 사람이 날뛸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요!”“됐어요. 나도 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마음대로 생각하세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말다툼할 생각이 없었다.기억을 잃기 전에도 이랬고, 기억을 잃은 후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니,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유진우 씨! 이게 무슨 태도예요? 내가 이렇게 좋은 말로 타일렀는데도 듣지 않고, 정말 큰일이 닥쳐야 후회할 거예요?”이청아는 훈계하는 말투로 말했다.그녀는 이미 충분히 친절했고, 여러 기회를 주며 눈앞의 사람이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길 바랐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효과는 미미했다.“은아야, 해독하고 그들을 보내. 우리 일에 방해되지 않게.”유진우는 짜증이 나서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청아만 만나면 그는 항상 짜증이 났다. 두 사람은 정말로 궁합이 안 맞는 것일까?“알았어요. 놀 만큼 놀았으니, 오늘은 일단 너희들을 용서해 주겠어.”황은아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 순간 연기가 문한성의 콧속으로 들어갔다.방금 전까지 고통스럽게 신음하던 문한성은 금세 편안해졌다.그러나 지금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온몸은 흠뻑 젖었으며,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나와 더 이상 예전의 품격 있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이런 젠장! 너희가 감히 내게 독을 먹이다니! 너희들...”문한성은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참지 못해 당장이라도 위협적인 말을 하려 했
“진우 씨, 우리 큰일 난 것 같은데요.”사람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은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봉씨 가문과 안씨 가문은 그나마 지태 도련님이 뒤를 봐주고 있어서 어떻게 해볼 수 있지만 문왕부는 쉽게 넘어가려 하지 않을 거예요. 이청아든 문한성이든 우리가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요.”사실, 그녀는 이청아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청아는 평판이 좋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어서 이번 일은 문제 삼지 않을 것 같았다.다만 문한성은 달랐다. 그는 상업계에서 악명이 높았고, 앙심을 품으면 끝까지 복수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권력과 세력을 가진 소인배와 엮이는 건 분명 큰 문제가 될 것이었다.“은도 씨, 걱정하지 마세요. 문제를 일으킨 건 우리니까, 그들이 문제로 삼더라도 회사에는 피해가 없을 거예요.”유진우가 말했다.“진우 씨, 난 회사가 걱정돼서 그런 게 아니에요. 내 뜻은 일단 밖으로 피신해서, 화를 피하는 게 좋겠다는 거예요.”은도가 설득했다.“잠깐 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도망은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어요. 그리고 나도 그들의 보복 따위 두렵지 않아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들이 여기서 멈춘다면 문제없겠지만, 끝까지 싸우려고 하면 그때는 후회하게 될 거예요.”“맞아요!”황은아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신나게 말했다.“그들이 함부로 굴면, 내가 전부 독살해 버릴 거예요!”“아, 그건...”그 말에 은도는 얼굴이 굳어졌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이 계집애는 정말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문왕부 사람들에게도 독을 쓸 생각을 한다니.정말 미친 짓을 한다면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은아야, 네 독은 앞으로 신중하게 써야 해.”이때, 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난 네 결정을 막을 생각은 없지만, 네가 본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구나.”그에게는 제자가 황은아 하나뿐이었기에, 그녀가 살인마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저도 다 알아요.”황은아는 유진우의 팔짱을
띠리링...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유진우가 전화를 받으니, 용수현의 전화였다.“도련님, 저 지금 은 씨 제약 앞에 있어요. 중요한 일을 보고드릴 게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용수현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알았어요. 바로 나갈게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은도 씨, 은아를 데리고 구경 좀 시켜주세요. 전 급한 일이 있어서 금방 나갔다 올게요.”유진우는 짧게 인사를 하고는 회사를 빠르게 나섰다.그는 용수현에게 두 가지 일을 부탁했다. 하나는 병을 치료할 영약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0년 전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었다.그 중 어느 것 하나라도 그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회사 밖으로 나가자, 유진우는 평범한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맞은편 거리에 멀리 서 있는 걸 봤다.차창이 내리더니 용수현이 반쯤 얼굴을 내밀며 유진우에게 손을 흔들었다.유진우는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차에 올라탔다.차창이 올라가고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가주님, 이렇게 급하게 만나자고 한 건 어떤 소식 때문인가요?”유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도련님, 빙심연과 금수옥의 행방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손에 넣는 데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듯합니다.”용수현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그래요?”유진우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의아해했다.“가주님의 인맥으로도 그 두 가지 영약을 못 구한다는 말씀이세요?”“일반 권세가 손에 있다면야, 도련님께 걱정 끼칠 필요 없이 당연히 가져다드렸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가지 영약이 있는 곳은 제가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용수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가주님께서도 이렇게 꺼리시는 거죠?”유진우는 더욱 궁금해졌다.“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금수옥은 지금 문왕부에 있는데 문제는 문관옥의 소지품이라는 겁니다. 그 보물은 수련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서 문관옥은 늘 신중하게 간직하고 있고, 아
10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유씨 가문의 지원이 없었다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유진우라도 성장은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문관옥과 같은 이들은 최상의 자원과 지원을 받으며 다양한 특훈과 연마 과정을 거쳤다.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유진우를 앞서 나갔다.이런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졌다.지금의 유진우는 천재라 불릴 수 있지만, 문관옥에 비해 여전히 부족했다.그 10년을 허비한 것은 너무나도 큰 손실이었던 것이다.“가주님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겠어요. 하지만 난 문관옥과 싸우려는 게 아니에요. 난 그가 가진 금수옥을 원할 뿐이지.”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도련님, 금수옥은 문관옥이 가장 아끼는 보물이니 그의 손에서 얻으려고 하면, 아마 어려울 겁니다.”용수현은 고개를 저었다.그는 문관옥의 의중을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돌아온 답은 한마디였다.“꺼져!”“얻어낼 수 없다면, 훔치면 돼요.”유진우는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네?”용수현은 놀라며 되물었다.“도련님, 농담하시는 거죠? 문관옥의 실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데, 누가 그에게서 물건을 훔칠 수 있겠어요?”“그건 가주님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가주님은 문왕부의 지도를 구해주시면 돼요.내가 기회를 보고 훔칠 테니까.”유진우가 답했다.“도련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만약 잡히면 정체가 드러날 텐데, 그땐 수많은 사람들이 도련님을 죽이려고 할 거예요.”용수현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서경 왕부는 권세가 하늘을 찔렀고 그 공적은 어마어마해서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큰 위협이었다.그리고 서경왕부의 세자인 유진우는 당연히 그들의 눈엣가시였다.십 년 전의 혼란이 그 증거였다.과장이 아니라, 유진우의 정체가 드러나면 위험이 가중되고 암살 시도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없어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설령 정체가 드러난다 해도, 절대로 용씨 가문을 연루시키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세
“가주님이 이렇게 신중하시니, 관직에서 성공할 수밖에요.”유진우가 웃으며 가볍게 농담했다.“도련님, 절 놀리지는 마십시오. 저는 목숨이 간들간들, 언제든 생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답니다.”용수현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만약 외부에 그가 서경 왕부를 돕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가벼운 처벌로는 해임, 심하면 가문이 몰락할 것이다.어떤 결말이든, 용수현에게는 죽음이나 다름없었다.조정에서 오랫동안 몸을 담으며 적도 많이 만들었기에 권력을 잃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몰락시키려 할 것이 분명했다.“가주님, 이번 일이 잘되면 내가 용씨 가문에 큰 빚을 진 셈으로 할 테니, 앞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내가 전적으로 도와드릴게요.”유진우가 약속했다.“정말 감사합니다, 도련님!”용수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속으로는 이제야 조금 득을 본 기분이었다.만약 서경 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위기가 닥쳐도 한 가지 대비책은 마련된 것이다.“가주님, 문왕부의 지도에 관해서는 서둘러주세요. 시간이 얼마 없거든요.”유진우가 말했다.“도련님, 오늘 해지기 전에 반드시 보내드리겠습니다.”용수현이 확언했다.“참. 문관옥은 지금 연경에 있나요?”유진우가 다시 물었다.“며칠 후면 문 어르신의 생신이라 돌아올 겁니다.”용수현이 대답했다.“알겠어요. 문관옥에 대한 세부 자료가 필요해요. 그의 취향, 개인 습관, 특별한 능력 등을 전부 파악해 주세요.”유진우가 말했다.“문제없습니다.”용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일단 이 정도로 하죠. 필요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유진우는 손을 들어 운전사에게 차를 세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길가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은 씨 제약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유진우는 낯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잠시 후, 전화가 연결되었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시죠?”“유장혁입니다.”유진우가 대답했다.“아, 당신이군요.”여성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전에 부규환이 당신이 살아있다고 했을 때 좀 믿
물론, 안전을 위해 이 일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시간이 훌쩍 지나 삼일이 지났다.이 삼 일 동안, 은 씨 제약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매일 약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들었다.전에는 몇몇 사람들이 은 씨 제약을 비웃으며 문왕부의 미움을 샀으니 분명 큰 화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삼일이 지나도 문왕부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모든 것이 조용했다.은 씨 제약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운영되며, 매일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특히, 구세당은 이미 재건이 완료되어 이제는 내부 인테리어 작업만 남았다.유진우는 돈만 내면 되었고, 모든 일은 전문 팀이 처리해 주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또한, 궁에서 그분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유진우는 빙심연을 순조롭게 얻었고 과정에서는 아무런 사고도 없었다.이제 남은 것은 금수옥이었다.이에 대한 계획도 유진우는 이미 세워두었고 준비도 마쳤다.사흘 후, 연경 내성, 문왕부.아침 일찍부터 문왕부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즐거운 분위기였고 북과 징 소리와 함께 사자춤, 용춤이 어우러져 매우 시끌벅적했다.많은 고관대작들이 일찍부터 방문했다.오늘은 문 어르신의 쉰 번째 생일이었다.삼대 이성왕 중 한 명인 문설봉 문 어르신은 조정을 뒤흔들 정도의 권력을 가진 서경 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명성은 널리 퍼져 있었다.그는 서른다섯 살에 왕이 되었고 서른여섯 살에 군직에서 물러났다.그리고 평생 선행을 즐기고 베풀기를 좋아하여 좋은 인연을 많이 맺었으며, 학교를 세우고 고아를 입양하여, 평생 모은 재산을 모두 선행에 썼다.연경성 전체를 둘러봐도, 적이든 친구든 상관없이, 문 어르신의 이름을 언급하면 모두 진심으로 존경했다.그는 대의에 헌신한 의협자였다.문 어르신은 평생 의협 정신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보여주었다.유일한 아쉬운 점은, 그는 많은 형제자매가 있지만 자식이 없는 외로운 인생이라는 것이었다.지금까지 그는 고독한 삶을 살았다.이런 아쉬움 때문인지, 문 어르신은 많은 양자와 양녀를 입양
“은아야, 문왕부에는 고수들이 많고, 곧 많은 중요한 인물들이 올 거야.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조심해.”유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당부했다.두 사람은 모두 변장해서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문왕부에는 기인이나 고수들이 많았기에, 정체가 들통나면 큰일이었다. 특히 황은아는 주술교의 성녀였기에, 조정의 신하들과 정파 인사들에게는 마녀로 여겨져, 제거 대상이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 저도 어린애가 아니니 분별력이 있어요. 절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황은아는 눈을 굴리며 부유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다..“안심은 개뿔!”유진우는 조금 안타까운 마음에 황인인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이럴 줄 알았다면 데려오지 않았을 텐데. 이 돈에 환장한 녀석은 누구를 봐도 마치 걸어 다니는 돈나무를 보는 것 같다.“아저씨! 저기 봐요! 정말 시끌벅적해요!”이때 황은아가 뭔가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유진우가 소리에 반응해 보니 전투복을 입은 정예 경호대가 우르르 들어오는 모습이었다.선두에 서 있는 사람은 삼십 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다.남자는 날카로운 눈썹과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으며, 표정은 차가워 살벌하고 강한 기세를 발산하고 있었다.특히 금테가 둘린 장군복은 더욱 위엄과 기개를 더했다.그가 지나가자, 사람들은 저절로 길을 비켜주고 모두 몸을 숙여 인사하며 경외심을 보였다.“저 사람 누구야? 문왕부에 군대를 이끌고 들어오다니? 정말 대담하네!”“이봐, 너 연경에 처음 왔어? 어떻게 유명한 옥면 군신을 몰라?”“뭐? 저분이 옥면 군신 문관옥이야? 어쩐지 위풍당당하다 했어!”“...”사람들은 귓속말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문관옥을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적었다.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동관을 지키며 보냈고, 명절이나 되어야 연경에 의부를 보러 왔기 때문이다.오늘은 문 어르신의 생신 잔치라, 양자인 그가 당연히 빠질 수 없다.“옷을 갈아입고 올 테니
그가 말할 때, 그의 신변 경호대는 유진우와 황은아를 에워쌌다.그들을 노려보는 눈빛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옥면 군신께 인사 올립니다.”유진우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저는 진우섭이고 이건 제 여동생 진은아입니다.”“어디서 본 것 같은데, 우리 예전에 만난 적 있나요?”문관옥이 물었다.그의 눈빛은 마치 칼처럼 날카롭게 유진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그를 철저히 파악하려는 듯했다.“작년에 군신께서 승리하고 돌아오셨을 때 문 어르신께서 큰 잔치를 여셨는데, 저는 그 자리에 참석해 군신의 위풍을 목격했습니다. 군신께서 저를 기억하신다니, 정말 영광입니다!”유진우는 겸손한 표정을 지었다.이 말은 반은 진실이었고 반은 거짓이었다.사실 작년에 문관옥은 실제로 큰 승리를 거두고 연회를 열었으며,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물론 유진우는 참석할 시간이 없었고, 이 모든 것은 용수현이 제공한 관련 정보였다.만일을 대비해 그는 미리 잘 외워두었고, 지금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었다.“그래요?”문관옥이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여전히 유진우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잠시 후에야 시선을 거두었다.“내가 사람을 잘못 안 것 같네요.”말을 마친 후 그는 사람들을 데리고 전혀 주저 없이 돌아섰다.“아저씨, 이 사람은 만만치 않네요.”황은아는 문관옥의 뒷모습을 보며 좀 더 진지해졌다.이렇게 멀리서도, 악의적인 눈빛을 느낄 수 있다니, 그 감지 능력은 확실히 무서웠다.만약 암살자가 습격을 시도한다면, 미처 손도 쓰기 전에 미리 반격당할 것이다.“용국 군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은 평범한 자가 아니지. 그만한 실력이 없다면 어떻게 전쟁터를 종횡무진했겠어?”유진우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문관옥은 다섯 명의 군신 중에서 가장 강력한 실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그러니 직접 싸워보기 전에는 그도 상대방의 진짜 실력을 예측할 수 없다.전에 용수현이 말했듯이 십 년이 지난 지금 문관옥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다.반면에 그는 서경 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수련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