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신은 유진우가 우연히 말한 속담이 우연하게 정답과 일치했던 것이라 여겼다.또는 상대방이 이미 관련 문제를 본 적이 있어 빨리 답한 것일 수도 있다며 말이다.“진우 씨, 다음 문제는 전적으로 진우 씨에게 달려 있습니다. 일이 성사되면 반드시 크게 보답하겠습니다!”유강청이 유진우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유명의 님의 체면을 봐서라도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유진우는 하품을 연발했다.구세당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런 일에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유성신, 너희 중에 이런 유능한 사람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군.”은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하지만 기뻐하긴 아직 일러. 여전히 우리가 앞서고 있고 앞으로의 일곱 문제야말로 승부를 가를 핵심이니까.”“흥! 덤벼봐!”유성신은 고개를 들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진 매니저님, 문제를 내주세요!”은도가 재촉했다.그러자 진동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자에서 네 번째 카드를 꺼내 읽었다.“네 번째 문제입니다. 사소한 죄도 반복해서 저지르면 버릇이 되어 더 큰 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뜻을 지닌 속담은 무엇일까요?”말이 끝나자마자 유진우가 차분히 말했다.“‘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입니다.”“축하합니다. 정답을 맞추셨습니다.”진동명은 바로 결과를 발표했다.“응?”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막 문제가 나왔는데 아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누군가가 답을 맞췄다고? 농담이겠지?이렇게 빠를 수가 있나?’“잠깐! 왜 정답이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인가요? 설명 좀 해주세요.”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했다.“‘작은 잘못이 결국 큰 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작은 도둑질이 습관이 되면 결국 큰 도둑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유진우가 간단하게 설명했다.“아, 그렇구나. 들어보니 꽤 간단하네. 그래서 이렇게 빨리 답할 수 있었던 거구나.”사람들은 문득 깨달았다.“진 매니저님, 계속 문제를 내주세요!”은도는 이 상황이 조금 불만스러웠다.“다섯 번째 문제입니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은 유진우의 빠른 답변에 충격을 받았다.너무 빨랐다. 너무 빨라서 반응할 수 없을 정도였다.사람들의 뇌는 멈춰버렸고 경쟁할 마음을 완전히 잃었다.원래는 각자 경쟁해야 할 자리였지만 완전히 유진우 한 사람의 무대가 되어버렸다.심지어 문제를 내는 진동명조차 마지막 문제를 낼 때는 땀을 뻘뻘 흘렸다.이 문제들은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것이며 각양각색이었다. 설령 이 분야를 연구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답하기는 어려웠다.제왕빌딩의 보안성이 높지 않았다면 진동명은 유진우가 정답을 미리 알고 전부 외운 것이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마지막 문제입니다. 속담 맞추기가 아닌 번외 문제에요.”진동명은 침을 삼키며 카드를 보고 문제를 읽었다.“붉은, 노란, 파란, 하얀 색이 변하며 봉황 같기도 하고 용 같기도 하며 천 리를 오가도 멈추지 않으며 한 줄기 바람이 불면 깨끗이 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요?”“구름입니다.”유진우가 다시 한번 답을 내놓았다.“모두... 정답입니다!”진동명은 힘겹게 몇 마디를 뱉어냈다.그는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괴물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뭐야! 전부 맞췄다고? 이 사람 치트키 쓰는 거 아냐?”“이렇게 잘하면 내가 너무 멍청해 보이잖아!”“맙소사! 저 사람 제왕빌딩에서 고용한 사기꾼 아닐까?”“...”잠깐의 침묵 후, 현장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비록 속담 맞추기였지만 유진우의 실력은 너무나도 눈부셨기에 사람들의 주목을 완전히 끌었다.그래서 애초에 철저히 준비를 한 사람들은 웃음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모두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문제는 그들은 참여감조차 느낄 수 없었다.“세상에! 한 번에 일곱 문제를 다 맞추다니... 유진우 이 사람 정말 대단하네!”“아니야! 잘못 말했어. 열 문제 전부 맞췄다고!”구세당의 제자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유진우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어떻게... 어떻게 가능하지? 전부 맞췄다고?
“유진우입니다.”“유진우 씨, 축하드립니다. 이번 대회의 우승을 차지하셨습니다.”진동명은 두 손으로 귀중한 미인도를 담은 상자를 들고 유진우 앞에 공손히 걸어와 웃으며 말했다.“이 값진 미인도를 제왕빌딩을 대표하여 제가 유진우 씨에게 드리겠습니다.”“제가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먼저 상자를 받아들고 열어본 유강청이 눈빛을 반짝였다.“정말 멋진 보물이군!”확인이 끝난 후, 유강청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이 보물은 어쨌든 유진우가 이겨 가진 것이었기에 몇 마디 형식적인 말을 하지 않고 그냥 가져가면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최고의 방법은 유진우가 자발적으로 양보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보물을 얻는 동시에 명성도 얻게 될 것이다.‘완벽한 계획이야!’“진우 씨, 이 미인도는 내가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던 것이지만 결국 진우 씨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니 내가 빼앗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유강청은 아쉬운 듯이 상자를 내밀며 말했다. 그러나 상자를 반쯤 내밀다가 갑자기 멈췄다.“물론 진우 씨가 별로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대신 보관해 줄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아, 고맙습니다.”유진우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상자를 받아들었다.‘뭐지?’유강청은 멍해졌다.‘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생각했던 전형적인 수순이 아니잖아! 보통은 몇 번 사양하고 예의를 차리지 않나? 어떻게 바로 받아들이는 거지? 내가 표현을 제대로 못 했나?’“이봐요! 유진우 씨! 그게 무슨 뜻이죠? 이 미인도를 혼자 독차지하려는 건가요?”유성신이 이 모습을 보고 불만을 터뜨렸다.“독차지?”그러자 유진우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옆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진 매니저님, 오늘 대회의 규칙이 문제를 가장 많이 맞힌 사람이 이 미인도를 가지는 거 맞죠?”“네, 맞습니다.”진동명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제가 문제를 가장 많이 맞혔으니 이 미인도는 제 것이 맞나요?”“네, 그렇습니다.”유진우가 다시 묻자 진동명도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너... 너...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유성신은 화가 나서 마치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펄쩍 뛰었다.“내가 틀린 말 했나? 이 잘생긴 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너는 모든 걸 잃고 패배했을 거야. 근데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정말 눈치가 없네.”은도는 팔짱을 끼고 입을 삐죽이더니 유진우에게 윙크를 날리며 말했다.“여기 미남분, 오...”그녀는 일부러‘오'하는 말끝을 길게 끌며 약간의 장난기가 섞인 음색으로 말했다.“좋아! 너희 둘이 한 패였구나!”유성신은 좌우를 살펴보며 마치 큰 깨달음을 얻은 듯 말했다.“그러니까 너희가 계속 눈짓을 주고받았던 거였군. 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어!”“바보 같은 소리!”은도는 눈을 굴리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대체 머리에 뭐가 든 거야? 말도 생각 없이 하고 정말 한심하네...’“그만해, 성신아. 미인도는 유진우 씨가 이겨서 가진 것이니 우리가 뺏을 수는 없어. 어떻게 처리하든 그건 진우 씨의 자유야.”유강청은 유성신의 어깨를 두드렸다.그의 표정은 변함없었지만 눈빛은 싸늘해졌다.‘이 녀석, 정말 눈치가 없군. 저 자식이 미인도를 양보했다면 내가 은혜를 입은 것이 되었겠지만 지금은 독차지하려고 하니... 약간의 수를 쓸 수밖에.’“흥! 두고 봐, 오늘 일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유성신은 두 사람을 매섭게 쏘아보며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떠나갔다.“진우 씨, 쟤는 원래 버릇이 없으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내일 다시 이야기합시다.”유공권은 이렇게 인사한 후, 자신의 손녀를 따라갔다. 혹시 무슨 짓을 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 말이다.“그럼 천천히 즐기세요. 저는 급한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유강청도 억지로 웃으며 인사를 한 후, 돌아섰다.이 광경을 본 구세당의 제자들도 일제히 일어나 흩어졌다.유진우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유성신이든 유강청이든 둘 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전자는 무모하고 고집스러웠고 후자는 속셈이 있는 사람이었다.그리고 미인도는
은도는 마침내 본론으로 들어갔다.“보아하니 당신은 재능 있는 사람 같아요. 우리 은씨 가문의 문객이 되어 보는 게 어때요? 우리 은씨 가문이 보호해 주면 남쪽 구역에서는 송씨 가문과 왕씨 가문을 제외하고는 어느 세력도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저를 영입하려는 이유가 혹시 이 미인도를 노린 건가요?”유진우가 시험하듯 물었다.“미인도?”그러자 은도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물론 귀한 물건이긴 하지만 저는 돈이 제일 많아서 저한테는 별로 가치가 없어요.”“그렇다면 왜 저를 도와주시려는 건가요?”유진우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전 돈이 많지만 사람이 부족하거든요.”은도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유진우의 가슴을 살짝 어루만지며 말했다.“겉으로 보기에는 마른 것 같지만 생각보다 단단하네요.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요. 혹시 저의 108번째 남자친구가 될 생각 없어요?”“뭐라고요?”유진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두 걸음 물러났다.‘미인도를 노리고 있는 줄 알았더니 내 몸을 탐내고 있던 거였어? 이것 참 난감하네. 게다가 뭐? 108번째 남자친구? 이건 또 무슨 농담 같은 소리지?’“제가 무섭나요?”은도는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농담한 거예요. 108명까지는 아니에요. 하지만 그만큼 진짜 있었더라도 당신은 내 새로운 애인이 될 거예요.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말을 마치고 은도가 다시 손을 대려 했으나 유진우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자중하세요.”“우리 모두 성인이잖아요. 너무 본능을 억제하지 마세요. 인생은 즐길 때 즐겨야죠.”은도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많이 취한 것 같으니 인제 그만 돌아가서 쉬세요.”유진우는 냉담하게 말했다.“이게 무슨 반응이죠?”은도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조금 원망스러워하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내가 예쁘지 않나요? 내 몸매가 별로인가요? 정말로 나에게 아무런 욕망도 안 느껴지나요?”“예쁘고 몸매도 좋지만 난 당신에게 관심이 없어
제왕빌딩을 나서자마자 유진우는 곧바로 몇몇 불온한 시선을 느꼈다.좌우를 살펴보니 적어도 두 개의 세력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은도가 말한 것이 맞았다. 미인도는 보물이긴 하지만 많은 문제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너무 똑똑해도 화를 입는다’는 말이 있듯이 보통사람이 만약 이런 보물을 가졌더라면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하지만 다행히 유진우는 보통사람이 아니었다.“내 물건을 노리다니 과연 그럴 능력이 있는지 어디 한번 봐야겠군.”유진우는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자연스럽게 한적한 골목으로 걸어갔다.그러자 두 개의 세력은 좌우로 나뉘어 조용히 따라갔다.약 10분 정도 걷다가 유진우는 미인도를 들고 인적이 드문 낡은 골목으로 들어갔다.“좋은 기회다! 빨리 따라가!”곧 십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칼을 들고 유진우를 따라 골목으로 뛰어들었다.그러나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멍해졌다.그들은 그곳이 막다른 골목임을 알았고 방금 들어간 유진우는 신기하게도 사라지고 없었다.“무슨 일이야? 그 녀석 어디 갔어?”“이상하군, 분명히 들어오는 걸 봤는데... 왜 갑자기 없어졌지?”“젠장! 귀신이라도 본 건가?”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정상적인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사라질 수 있어?’“나를 찾고 있나?”차가운 목소리가 갑자기 뒤에서 들려왔다.모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유진우는 어느새 골목 입구에 서 있었다.“당... 당신 분명 앞에 있었잖아? 어떻게 뒤로 갔지?”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놀라며 물었다.어느새 시각은 밤이 되어 달빛이 물처럼 흐르고 있었다.유진우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반쪽 얼굴을 어둠 속에 감추고 있었다. 그의 온몸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와 이미 기괴한 분위기를 더 음산하게 만들었다.“참 오래도 따라오더군... 도대체 무엇을 원해?”유진우는 냉담하게 물었다.“역시 눈치챘군. 꽤나 대단한데.”앞장서던 검은 옷의 남자가 두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애송이, 쓸데
이로 보아 배후의 지시자는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거나 큰 세력이 없는 자였다.얼마 뒤 유진우가 옷을 털고 상자를 챙기려던 참에 갑자기 몇 대의 검은색 승합차가 골목 입구에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자 강인한 체구를 가진 여러 명의 사내들이 무리 지어 내려왔다.이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고 유진우를 포위해 도망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비켜!”이때 온몸이 근육질인 남자가 시가를 물고 거만하게 걸어왔다.남자의 얼굴에는 칼자국이 있었는지라 그 모양새가 매우 사나웠다.“너구나?”눈을 가늘게 뜨던 유진우는 한 번에 그 남자를 알아보았다. 바로 낮에 구세당에서 소란을 피웠던 장용이었다.“애송이! 우리 또 만났군!”배를 내민 장용은 시가를 돌리며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어깨에는 비단 코트를 걸친 채 거들먹거렸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지?”유진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귀가 먹었냐? 애송이라고 불렀잖아!”장용은 눈을 크게 뜨며 사납게 말했다.그렇게 3분이 흐른 후.“형... 형님, 말로 해결하죠. 얼굴만은 때리지 말아 주세요.”장용은 코피를 흘리며 땅에 엎드려 있었고 이전의 오만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게다가 그의 주변에는 이미 여러 명의 사내들이 쓰러져 있었다.이번에 확실히 하려고 그는 20~30명을 데리고 왔지만 3분도 안 되어 모두 쓰러지고 말았다.심지어 그는 유진우의 움직임조차 보지 못했다.눈앞이 잠시 어지러웠고 그 후에는 부하들이 도미노처럼 차례로 쓰러졌다.분명히 그는 강적을 만난 것이었다.“장용, 솔직히 말해서 난 이전의 네 그 오만한 모습이 더 좋았어.”유진우는 그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형... 형님, 농담 마세요.”장용은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방금은 제가 눈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많은 실례를 범했네요. 부디 형님께서 넓은 아량으로 저를 용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절대 무턱대고 나대지 않겠습니다!”“몇 마디로 빠져나가려 한다고? 그게 가능할 것 같나?”
제왕빌딩, 2층 창가의 자리에서 은도는 와인잔을 흔들며 창밖의 고요한 밤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달빛과 별들이 비치며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아... 아가씨..."이때, 정장을 입은 경호원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방금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가씨께서 주시하라고 하신 목표가 사라졌습니다.”“사라졌다고?”은도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무슨 뜻이지?”“그 사람 실력이 뛰어납니다. 방금 맨손으로 수십 명을 쓰러뜨리고 나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경호원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오? 그렇다면 꽤 실력 있는 사람이군.”은도는 미소를 지으며 눈빛을 반짝였다.“그저 잘생긴 줄만 알았는데 진짜 실력이 있는 모양이군. 사람을 보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해. 정당한 사람이라면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하고.”“네!”명령을 받은 경호원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이렇게 흥미로운 사람은 오랜만이야.”은도는 미소를 지으며 와인잔을 들어 단숨에 한 잔을 비웠다.정말이지 자신이 큰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유진우는 호텔에서 나와 구세당으로 향했다.어젯밤 추적자들을 따돌린 후, 그는 구세당 근처의 호텔에서 묵었다.이번 연경에 온 첫 번째 목적은 사철수를 치료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과거의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었다.그리고 그의 현재 실력과 천영 구슬의 도움으로 이제 진실을 파헤칠 자격이 충분해졌다.5분 후, 유진우는 구세당에 도착했다.오늘도 구세당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붐비고 있었다. 이곳에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는데 다들 시장에 있는 것처럼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유진우는 이미 유공권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2층 문은 이미 열려 있었고 유공권은 거실에서 오랫동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유진우 씨, 오셨군요? 앉으세요.”유공권은 한 손으로 손짓하며 차 한 잔을 따랐다.“어젯밤 일은 정말
한바탕 공격이 지나간 후 연무장에는 제갈영군 혼자만 남았다.“실력이 점점 더 형편없어지는구나. 앞으로 더 열심히 훈련하도록 해. 알았어?”제갈영군이 호위병들에게 호통쳤다.“네.”호위병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됐어. 모두 나가 봐.”제갈영군은 손을 휘둘러 호위병을 전부 내보낸 다음 돌아서서 유천우 일행을 쳐다보았다.“제후님의 창술은 정말 신이 내린 창술입니다. 서경 전체를 통틀어 적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정말 존경합니다.”유천우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아무 일 없이 여기까지 올 리는 없을 테고. 무슨 일로 이 먼 곳까지 왔지?”제갈영군은 수건을 들고 땀을 닦기 시작했다.“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실례도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유천우가 두 손을 맞잡고 예를 표했다.“네 아버지 때문에 왔지?”제갈영군은 마치 예상한 듯 전혀 놀라지 않았다.“제후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유천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서경왕이 암살당한 게 얼마나 큰일인데 내가 모를 수가 있겠어?”제갈영군은 차를 마시면서 혼자 자리에 앉았다.“그럼 북쪽 4대 제후가 반란을 일으킨 것도 알고 계십니까?”유천우가 다시 물었다.“소문은 들었어.”제갈영군이 고개를 끄덕였다.“제후님은 충의로운 분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부디 위기에 처한 서경왕부를 도와주십시오.”유천우는 두 손을 맞잡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만약 네 아버지가 왔다면 난 당연히 도왔을 거야. 왜냐하면 난 그분을 존경하거든. 근데 넌... 아직 자격이 부족해.”제갈영군은 찻잔을 들어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내뱉는 말도 매정하기 그지없었다.유천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곧바로 평정을 되찾았다.그는 제갈영군이 오만하고 변덕이 심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저택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난처함을 겪을 준비를 마쳤다.“제후님, 아버지와 비교하면 전 정말 보잘것없고 제후님께 뭔가를 요구할 자격도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유천우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하지만 전 유씨 가문 사람이
다음 날 오전, 남운.유진우와 유천우는 밤을 새워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목적지인 남운에 도착했다.남운은 무릉 제후 제갈영군이 지키고 있었고 남쪽 4대 제후 중에서도 병력이 가장 많으며 경제력이 가장 강한 도시였다.하지만 제갈영군은 성격이 괴팍하고 변덕이 심해서 화를 내면 유만수의 체면조차 봐주지 않았다. 하여 유천우는 제갈영군을 설득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형, 무릉 제후 저택에 도착했어요.”차가 멈춘 후 유천우와 유진우 일행이 잇달아 차에서 내렸다.“벌써 둘째 날이야. 네가 제후 저택을 다니고 있다는 소식이 곧 알려질 테니 서둘러야 해.”유진우가 당부했다.“알고 있어요.”유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제갈영군은 다루기 힘든 사람이지만 또 함부로 배신하는 소인배는 아니에요. 충분한 대가를 제시하고 감정으로 호소하면 설득할 수 있을 거예요.”“그럼 좋고.”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들어가자.”유천우는 옷을 정돈하고 얼굴을 매만져 정신을 차린 후 발걸음을 옮겨 저택 호위병에게 신분을 밝혔다.전과 마찬가지로 일행은 순조롭게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하지만 이번에 만난 장소는 저택의 거실이 아니라 제갈영군의 개인 연무장이었다.모두가 알다시피 제갈영군은 무술광이었다. 평소 직접 군대를 이끌고 훈련을 했기 때문에 그가 이끄는 장병들 모두 용맹하고 뛰어났다.“도련님, 제후님 지금 안에서 훈련 중이십니다. 들어가 보십시오.”호위병은 그들 일행을 연무장 문 앞까지 안내한 후 가버렸다.안으로 들어가 보니 연무장 가운데서 건장한 체격에 온몸이 근육질인 중년 남자가 수십 명의 정예 호위병과 함께 훈련하고 있었다.중년 남자는 창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양손으로 창을 휘두르자 창이 용이나 뱀처럼 움직였는데 민첩할 뿐만 아니라 파워도 넘쳤다.주변에 칼과 방패를 든 수십 명의 정예 호위병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났고 공격을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이들은 제후 저택의 정예병으로서 혼자서 백 명을 거뜬히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을 지녔다
“여봐라. 가서 펜과 종이를 가져와.”주한휘는 바로 부하에게 펜과 종이를 가져오라고 하고는 혼약을 맺을 준비를 했다.이런 기회는 좀처럼 얻기 힘든 좋은 기회였다. 딸이 서경왕부에 시집간다면 미래의 왕비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의 외손자가 차기 서경왕이 될 가능성이 있다.이 내기는 어떻게 계산해도 이익밖에 없었다.“도련님, 잠깐만요. 인생의 중대사인데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죠.”유진우가 귀띔했다.“뭐?”주한휘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불만을 드러냈다.‘호위병 주제에 어디서 지적질이야? 버르장머리 없이. 만약 내 부하였더라면 진작 매를 들었어.’“설득할 필요 없어. 난 이미 결정했어.”아직 유진우의 정체를 들켜선 안 되기에 유천우도 호위병을 대하듯 했다. 유천우는 유진우를 돌아보면서 웃었다.“제후님의 따님은 얼굴도 예쁘고 현명해서 그런 여자와 결혼하는 건 내 복이야. 복이 스스로 굴러들어왔는데 거절할 이유가 있겠어?”“역시 넌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주한휘는 기회를 놓칠세라 바로 추켜세웠다.“도련님...”유진우가 뭐라 얘기하려던 그때 주한휘가 호통쳤다.“건방진 놈! 감히 주인의 결정에 끼어들어? 버르장머리 없이.”유진우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분노를 터트리려 하자 유천우가 말렸다.“됐어. 난 이미 결정했으니까 더는 뭐라 하지 마.”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혼약서에 사인하고 지장을 찍었다.유진우는 마음 아픈 나머지 한숨을 내쉬었다.‘내 동생 많이 컸구나. 이젠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대국을 생각하고.’이 점은 유진우마저도 따라갈 수 없었다.“제후님, 혼약도 정해졌으니 부디 약속을 지키시길 바랍니다.”유천우가 두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걱정하지 마. 앞으로 우린 한 가족이야. 서경왕부에 무슨 어려움이 있든 발 벗고 도와줄게.”주한휘가 가슴을 툭툭 치면서 장담했다.“감사합니다, 제후님. 전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유천우는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인사했다.“내가 문 앞까지 배웅해줄게.”
유천우의 말은 강력한 힘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만약 서경이 무너진다면 8대 제후, 각 지역의 고위급 관료, 수천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 모두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다들 서경에 뿌리 박고 사는 사람들이라 애국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천우야,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난 소심하고 겁도 많아서 항상 앞뒤를 생각하거든. 만약 반란을 진압하다가 군대를 다 잃으면 어떡해?”주한휘는 여전히 망설였다.“제후님, 혹시 손해를 보게 된다면 서경왕부에서 두 배로 갚아드리겠습니다.”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주한휘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건 실질적인 이득을 원한다는 뜻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어쨌거나 전 재산을 걸어야 하는 작전이기에 혹시라도 실패하면 큰 손실은 면할 수 없으니까.그의 행동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천우야, 내가 널 믿지 못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은 말로만 해선 안 돼.”주한휘가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원하는 게 있으시면 무엇이든지 얘기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면 최대한 다 들어드리겠습니다.”유천우가 큰소리치며 장담했다. 이 정도면 성의를 충분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했다.“알았어. 천우 네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마음이 놓이네.”주한휘가 웃으면서 말했다.“사실 내가 원하는 건 돈이나 보물이 아니야.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게 내 딸인데 올해 25살이 됐는데도 어울리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어. 만약 천우 너 같은 남자한테 시집간다면 참 좋을 텐데.”“저요?”유천우는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래.”주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딸 해린이 절세미녀까진 아니더라도 그래도 얼굴도 나름 예쁘고 재능도 뛰어나. 만약 해린이를 아내로 들인다면 내조도 엄청 잘하는 현모양처가 될 거야.”현재 그에게는 돈과 인맥 모두 충분했다. 유일하게 부족한 게 바로 하늘보다 높은 권력이었다.서경왕이 죽은 지금 유천우가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만약 딸이 유천우와 결혼한다면 나중에 서경의 왕비가 될 것이고 주한휘의 신
유천우의 계획은 간단했다. 먼저 예의를 갖춰서 설득하다가 안 되면 무력을 사용하여 제압하는 것이었다.만약 반란을 일으킨 4대 제후가 서경왕부에 굴복한다면 서경왕부는 과거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권력도 그대로 유지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는다면 무력으로 진압하는 수밖에 없었다.그때가 되면 서경왕부는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나머지 4대 제후와 서경의 많은 세력과 손을 잡고 반역자들을 몰살할 것이다.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속전속결로 끝내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유천우의 말을 들은 장범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오늘날의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다 네 아버지 덕이야. 반란을 진압하는 건 물론이고 목숨까지 바치라고 해도 기꺼이 바칠 수 있어.”“감사합니다. 제후님의 도움이 있다면 이번 어려움을 꼭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유천우가 말했다.“이건 내 제후령이야. 제후령만 있으면 가진의 병사를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어.”장범규는 갑자기 병부를 꺼내 유천우에게 건넸다. 백 마디 말보다 행동 하나로 보여주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이건...”되레 유천우가 망설였다. 장범규가 이토록 통쾌하게 병부를 내놓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행동은 그의 충성심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사양하지 마. 비상시국이잖아. 이 제후령이 있으면 움직이기 훨씬 편할 거야.”장범규는 병부를 유천우의 손에 쥐여주었다.“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제후님!”유천우는 두 손을 맞잡고 인사를 올리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이번 어려움을 극복한 후에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됐어.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시간도 없는데 얼른 가봐.”장범규가 손을 흔들었다.“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유천우는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린 다음 일행과 함께 저택을 나섰다.오늘 밤 첫 번째 목적지는 예상외로 순조로웠다. 30분도 채 안 되어 평양 제후 장범규의 지지를 얻었고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제후령마저 받았다.만약 이 속도대로 진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
가진은 서경의 변방 도시이자 평양 제후 장범규의 영역이었다.무장 출신인 장범규는 서경왕 유만수와 함께 수년간 전장을 누볐고 세운 공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나중에 평양 제후가 된 후 서경의 변방을 지켰다.수년 동안 장범규는 성실하게 직무에 임해왔다.그때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갑자기 평양 제후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유천우 등 몇 명이 나란히 내렸다.“형, 여기가 바로 평양 제후 장범규네 저택이에요.”유천우가 간단하게 소개했다.“장범규는 그래도 충성스럽고 용맹한 사람이에요. 가진을 수년 동안 관리하면서 직무와 책임을 다했거든요.”“밖에 누구야?”저택 입구를 지키던 호위병 두 명이 수상한 움직임을 알아채고 큰소리로 호통쳤다.유천우는 그들에게 다가가 신분패를 보여주면서 덤덤하게 말했다.“서경왕의 둘째 아들 유천우다.”“도련님?”두 호위병은 유천우의 신분패를 보자마자 겁에 질린 나머지 바로 무릎을 꿇었다.“예의 차릴 필요 없으니까 일어나.”유천우가 신분패를 거두어들였다.“지금 아주 급한 일이 있어서 평양 제후님을 뵈러 왔어. 들어가서 보고 좀 올려줄래?”“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당장 가서 제후님께 말씀드릴게요.”그중 한 호위병이 대답하고는 서둘러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잠시 후 화려한 옷차림에 배가 불룩하게 나온 중년 남자가 부하들과 함께 부랴부랴 나왔다. 그 사람이 바로 평양 제후 장범규였다.“안녕하세요, 제후님.”유천우가 먼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서경왕의 둘째 아들이긴 해도 눈앞의 장범규는 제후이기에 신분이 그보다 훨씬 높았다.장범규가 직접 마중을 나온 것만 해도 충분히 체면을 세워준 일이었다.“천우야, 이 늦은 밤에 무슨 일로 왔어?”장범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제후님, 서경왕부에 변고가 생겨서 제후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변고가 생겼다고? 무슨 일인데?”장범규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유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자,
“네 말은 누군가 4대 제후가 동시에 반란을 일으키게 조종하고 있단 말이야?”이의진이 얼굴을 찌푸렸다.“맞아요.”유천우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지금 서경에서 4대 제후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죠.”“유태범!”이의진은 깊게 고민하지도 않고 말했다.“작은아버지는 야심이 크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에요. 4대 제후의 손을 빌려서 우리가 병부를 내놓게 압박하고 있는 거예요.”유천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분석했다.“만약 우리가 따르지 않는다면 4대 제후는 반란을 일으켜 우리가 군대를 동원하게 압박한 다음 유태범이 중간에서 방해하면서 우리한테 불리하게 할 겁니다. 우리가 반란을 진압하는 데 실패하면 서경왕부의 위엄이 크게 손상될 거예요. 그러다가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해질 때 구세주처럼 나타나서 백성들을 구하고 4대 제후를 제압할 계획인 거죠. 그때가 되면 유태범은 만인의 지지를 받아 새로운 왕이 될 겁니다.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듯이 유태범이 아버지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되면 새로운 서경왕이 되겠죠. 아주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웠네요.”유천우의 표정이 눈에 띄게 심각해졌다. 유태범이 꾸민 건 음모가 아니라 공공연한 모의였다. 하지만 상대가 나쁜 짓을 꾸미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해결하기 어려웠다. 이게 바로 공공연한 모의의 무서운 점이다.“그렇다면 유태범이 진작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네.”이의진이 얼굴을 찌푸렸다.“지금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거야. 군대를 동원할 수도 없고 설득도 불가능하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해?”“나머지 4대 제후와 아버지의 옛 부하들과 손을 잡아야만 유태범과 겨룰 수 있을 겁니다.”유천우가 대답했다.“일리 있어.”이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나머지 4대 제후를 모셔오도록 할게. 같이 모여서 상의하는 게 좋겠어.”“어머니, 제가 직접 갈게요. 그래야 성의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죠.”유천우가 직접 나섰다. 나머지 4대 제후
“형, 난 진짜 안 돼요.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은 형밖에 없어요.”유천우의 얼굴에 조급한 기색이 드러났다.“됐어. 왕위 얘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 안팎으로 불안이 끊이지 않아. 일단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야.”유진우가 화제를 돌렸다.“형이 나서서 이끌어준다면 내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난 지금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어.”그러자 유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유태범 일당이 아직 내가 서경으로 돌아온 걸 모르고 있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어. 내가 돌아온 걸 몰라야 유태범이 무슨 꿍꿍이라도 꾸민다면 제때 해결할 수 있지. 그리고 호룡각의 잔당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어. 기회를 봐서 싹 다 일망타진할 거야.”“그런 거였군요.”유천우는 그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알겠어요. 그럼 서경왕부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일은 나한테 맡기고 형은 보이지 않는 음모들을 해결해주세요.”“그래. 그렇게 하자.”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아 참. 그리고 이거.”유천우는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금색 영패 하나를 꺼내 유진우에게 건넸다.“이건 내 군령이에요. 이것만 있으면 내 결사대원 800명을 동원할 수 있고 필요한 순간에 꽤 도움이 될 겁니다.”그의 결사대원 800명은 모두 엄선해서 뽑은 고수들이었다.유천우가 태어난 순간부터 이의진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몰래 그들을 훈련시키면서 힘을 비축했다.20년이 지난 지금 결사대원 800명은 무서울 정도로 성장했다.“알았어. 영패는 일단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돌려줄게.”유진우도 거절하진 않았다.지금 이청성의 도움을 받고 있긴 했지만 호룡각의 잔당들에 비하면 아직 역부족이었다. 이젠 유천우의 결사대원 800명이 더해졌으니 싸울 힘이 생겼다.“천우야!”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조금 전 나갔던 이의진이 다시 다급하게 빈소로 들어왔다. 유진우는 재빨리 가면을 쓰고 근위병인 척 옆에 섰다.유천우와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었던 건 형제끼리의 믿음 때문이
“형?”유천우는 인피 가면을 벗은 남자를 보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이내 기쁨에 겨워했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서경왕부에 위장 잠입한 유장혁이었다.“많이 컸구나, 천우야. 이젠 혼자서도 일을 척척 해내고.”유진우는 배다른 동생 유천우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사실 조금 전 유천우와 이의진의 얘기를 전부 다 들었다. 유천우가 자신을 믿어준 것에 대해 무척이나 고마웠다. 물론 이의진이 걱정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지금까지 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형제끼리 물고 뜯고 부자끼리 서로 죽이는 걸 수두룩하게 봐왔다. 자기 아들을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형, 서경에는 언제 왔어요?”유천우가 물었다.“이틀 정도 됐어.”유진우가 대답했다.“아버지 돌아가신 거 알았어요?”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유진우는 빈소의 영정사진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부자는 1년 전 강능에서 만났다. 그런데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다시 만났을 때 유진우는 빈소에 서 있었고 유만수는 관 속에 누워있었다.‘이건 뭐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유진우는 관 앞으로 걸어가 반쯤 열린 관뚜껑 사이로 그 안에 누워있는 유만수를 보았다. 얼굴이 평온한 걸 보니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았다.하지만 어찌 된 건지 그렇게 미워했던 유만수의 얼굴을 본 순간 슬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내가 만약 서경에 빨리 돌아왔더라면, 빨리 만났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왜?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유진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시울이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형, 사실 최근 2년 사이 아버지 건강이 점점 나빠져서 특효약으로 연명하셨어요. 의사는 아버지가 천인오쇠라고 하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어요. 천천히 쇠약해져서 죽는 것보다 이 결과가 아버지한테는 오히려 해방 같은 거라고 볼 수 있어요.”유천우가 울먹거리며 말했다.“범인은 잡았어?”유진우가 돌아서서 물었다.“홍복홍이 지금 조사하고 있어요.”유천우가 대답했다.“서경왕부에 숨은 스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