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 진우 씨, 여기 계셨군요."그때 유강청과 유성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흥! 또 공짜로 먹으려고 온 거군!”유성신은 입을 삐죽이며 그를 싫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어젯밤 일로 그녀는 여전히 유진우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고 특히 유진우와 은도가 공모한 장면이 그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진우 씨, 어젯밤에 강도를 당했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신가요?”유강청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유강청 씨. 그냥 한낱 도둑들이었을 뿐이라 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그때, 유진우가 갑자기 말을 돌리며 물었다.“그런데 유강청 씨는 어떻게 제가 강도를 당한 걸 알았나요?”“네?”유강청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으며 말했다.“아, 제 정보망이 좀 여러 쪽으로 발달하여 있어서요, 남쪽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제 귀에 들어오거든요.”“그렇군요.”그 말에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누가 미인도를 노렸나 했는데... 인제 보니 유강청일 가능성이 높겠군.’하지만 그는 굳이 이를 밝히지 않았다. 이런 가식적인 사람은 두고 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진우 씨, 보물이란 건 좋긴 하지만 때로는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진우 씨의 신분으로는 미인도를 감당하기 어려워요.”유강청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래요? 도련님의 말씀은 제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요?”유진우가 물었다.“간단합니다. 빨리 팔아버리세요. 그래야 큰 문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유강청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만약 저를 믿으신다면 저에게 미인도를 맡기세요. 제가 좋은 가격에 팔아드리겠습니다.”‘미인도를 손에 넣기만 하면 얼마에 팔든 내 마음대로니까. 이런 촌놈이 무슨 세상을 알겠어?’“경매요? 생각해보겠습니다.”유진우는 일부러 망설이는 척했다.“망설이지 마세요. 더 오래 가지고 있을수록 위험합니다. 전부 진우 씨를 위한 거예요!”유강청은 성급하게 말했다.이윽고 유진우가 막 말을 하려던 참에, 갑자기 핸드
한 시간 후, 용호다방.송충은 2층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다방 십여 개의 테이블에 손님이 앉아있었는데 평소 시끌벅적하던 분위기와 달리 오늘은 왠지 모르게 무거워 보였다. 손님들은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차를 마실 뿐 그 어떤 대화도 주고받지 않았다.“집사님, 그 자식 왔어요.”그때 뒤에 있던 장용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한 곳을 가리켰다.송충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유진우가 인파를 뚫고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어찌나 여유롭고 자신감이 넘치는지 전혀 부담이 없어 보였다.“흥! 혼자 왔어?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송충이 코웃음을 치더니 찻잔을 들고 단숨에 들이마셨다.쿵, 쿵, 쿵...곧이어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2층으로 올라온 유진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송충 일행을 보자마자 바로 테이블 앞에 털썩 앉았다.“집사님, 또 만났네요.”유진우는 웃으면서 자기 찻잔에 차를 따랐다.“진우 씨, 장용한테서 들었는데 나랑 사업 얘기 하고 싶다고 했다면서? 무슨 사업인데?”송충은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래도 태도는 봐줄 만 했다.송씨 가문의 집사가 되었다는 건 절대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어떤 일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굳이 싸울 필요는 없었다.“당연히 옥로고의 레시피에 관한 일이죠.”유진우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래?”송충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웃었다.“진우 씨 드디어 결정했구나. 그럼 말해봐, 얼마를 원하는지? 가격이 너무 터무니없는 정도만 아니면 최대한 맞춰줄게.”“돈은 필요 없고 처방대로 약만 구해주면 됩니다.”유진우는 처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송충에게 건넸다.전부 귀한 약재들이었는데 총 스무 가지가 넘었다. 그중에는 빙심연, 용혈삼, 그리고 금수옥이 적혀있었다. 여러 가지 종류를 적은 건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가리기 위해서였다.송씨 가문은 의약 명가였다.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녀 기초가 탄탄했고 인맥과 세력이 전국 각
“집사님이 정말 레시피를 원하는 것 같으니까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몇 가지는 빼고 스무 가지로 할게요. 어때요?”유진우는 마음 아픈 척했다.“스무 가지도 안 돼.”송충이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그럼 몇 가지 줄 수 있는데요?”유진우가 한발 물러섰다.“한 가지.”송충이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웠다.“영약 한 가지만 줄 수 있어.”“한 가지요?”그러자 유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집사님, 지금 장난해요? 흥정을 이렇게 하는 게 어디 있어요?”“옥로고 레시피는 상등품 영약 가치 정도야. 이게 내 마지노선이라고.”송충은 인내심이 슬슬 바닥나기 시작했다. 만약 유진우가 돈을 요구했더라면 들어줬겠지만 터무니없는 걸 요구했다. 이건 그를 호구로 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집사님이 관심 없다면 됐어요. 다른 사람은 아마 관심 있을 겁니다.”더는 쓸데없는 얘기를 섞고 싶지 않았던 유진우는 처방을 챙기고 일어서려 했다.“잠깐!”송충이 상을 탁 치면서 일어나 호통쳤다.“인마, 내가 가라고 했어?”“왜요? 나랑 차라도 마시게요?”유진우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마시긴 개뿔!”쨍그랑!분노한 송충이 찻잔을 바닥에 냅다 던졌다.그 순간 일이층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 차를 마시는 척하던 그들은 테이블 밑에서 무기를 꺼내 유진우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유진우는 그들에게 포위되었는데 족히 오륙십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물 샐 틈 없이 포위했다.“인마!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고 날 뭐로 보는 건데?”송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디어 가식을 벗어던지고 흉악스럽게 말했다.“지금 너한텐 두 가지 선택이 있어. 고분고분 옥로고 레시피를 내놓든지, 아니면 얻어맞고 레시피를 내놓든지 하나 선택해.”“집사님, 아무리 거래가 성립되지 않았어도 인간의 도리는 저버리지 말았어야죠. 이렇게 대놓고 빼앗는 건 강도랑 다를 게 뭐예요?”유진우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레
“명의님, 어때요? 많이 놀랐어요?”안세리가 웃으며 말했다.“아까 길에서 낯이 익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명의님일 줄은 몰랐어요. 지난번에 하도 급하게 헤어져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밥 한 끼는 대접해야겠어요.”“이럴 필요 없어요. 별것도 아닌데요, 뭐.”유진우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세리 씨, 이놈이랑... 아는 사이예요?”송충이 떠보듯 물었다.짝!안세리가 또 따귀를 날리면서 욕설을 퍼부었다.“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이분은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야. 내 은인한테 손을 대? 널 확 죽여버리는 수가 있어.”“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요?”그녀의 말에 송충은 겁에 질린 나머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다리에도 힘이 풀렸다.유진우가 기껏해야 의술이나 조금 알고 싸움이나 할 줄 아는 무명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뒤에 안씨 가문의 딸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정말 너무나도 큰 실수였다.“멍하니 서서 뭐 해? 얼른 명의님께 사과드려. 안 그러면 가만 안 둬!”안세리가 두 눈을 부릅떴다.털썩!송충도 망설이지 않고 유진우 앞에 무릎을 꿇고 웃으며 말했다.“죄... 죄송합니다. 아까는 제가 잠깐 정신이 어떻게 됐나 봐요. 부디 넓은 아량으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됐어, 됐어. 애들 데리고 얼른 꺼져.”안세리는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네, 네. 지금 당장 꺼지겠습니다.”송충은 굽신거리면서 황급히 도망쳤다.“잠깐, 거기 서!”복도 입구까지 나왔는데 안세리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가서 송영명한테 전해. 내가 언젠가는 후회하게 만들겠다고.”송충은 여전히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한 후 한 무리 사람들을 데리고 부랴부랴 도망쳤다.두 가문 모두 재벌이었지만 안씨 가문의 세력은 송씨 가문보다 훨씬 강했다. 송씨 가문 도련님마저 안세리를 보면 예의를 갖춰야 하는데 집사는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명의님, 괜찮아요? 다친 데 없어요?”안세리는 고개를 돌려 다시 환하게 웃었다.“세리 씨가
“아가씨,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안중기가 쪼르르 달려와 웃으며 물었다.“우리 집에 용혈삼이라는 약이 있어?”안세리가 말했다.“있습니다. 지금 보물 창고에 있어요.”안중기가 솔직하게 말했다.“다행이네. 지금 당장 가져와.”안세리가 분부했다.“아가씨, 용혈삼으로 뭐 하시려고요?”안중기가 떠보듯 물었다.“그걸 내가 안 집사한테 말해야 해? 당연히 필요하니까 가져오라고 하지.”안세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 사실 용혈삼은 어르신이 아끼시는 보물이라 어르신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안중기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일단 가져와. 내가 나중에 할아버지한테 얘기할 테니까.”안세리가 말했다.“그건... 좀 어렵습니다, 아가씨.”안중기가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이봐! 이젠 내 말도 귓등으로 듣겠다는 거야?”안세리가 두 눈을 부릅떴다.“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올 것이지, 뭔 쓸데없는 말이 그렇게 많아? 얼른 가!”그러고는 안중기의 엉덩이를 발로 차버렸다.“그럼 잠깐만 기다리세요.”달리 방법이 없었던 안중기는 용혈삼을 가지러 갔다.“명의님, 잠깐 앉아 차를 마시면서 기다려요. 곧 가져올 겁니다.”안세리는 웃으면서 유진우를 정자로 안내하고는 차와 디저트를 대접했다.약 10분 후, 안중기가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 옆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30대 정도의 여자였는데 빨간 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몸매도 글래머한 게 아주 매력적이었다. 윤기 나고 반짝이는 검은 긴 머리를 뒤로 젖히니 더욱 귀티가 흘러넘쳤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얗고 긴 다리가 보일 듯 말 듯했다. 나이는 조금 있어도 우아한 멋은 여전했다.“세리야.”여자의 도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디저트를 먹고 있던 안세리는 갑자기 움찔하더니 제 발 저린 듯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엄마... 여긴 어쩐 일이에요?”“내가 안 오면 집을 다 발칵 뒤집어놓을 셈이었어?”송자현이 덤덤하게 말했다.“그럴 리가요. 난
안중기가 가져온 건 용혈삼이 아니라 금괴였다.햇빛 아래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금괴는 보기에는 돈보다 더 좋아 보였다.“진우 씨, 이건 우리 안씨 가문의 마음이고 세리를 구해준 값이야.”송자현은 금괴를 가리키면서 덤덤하게 말했다.“엄마, 지금 이게 무슨 뜻이에요?”안세리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불만을 드러냈다.“우리 안씨 가문은 절대 남한테 신세 지지 않아. 진우 씨가 널 살려줬으니 당연히 거금으로 은혜를 갚아야지.”송자현의 표정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어머님, 전 돈 때문에 사람을 구한 게 아닙니다.”유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왜? 적어서 싫어?”송자현은 두말없이 바로 손을 들고 분부했다.“안 집사, 가서 하나 더 가져와.”“네.”안중기는 대답을 마친 후 다시 나가려 했다.“엄마!”참다못한 안세리가 결국 폭발했다.“뭐든지 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명의님은 사람 목숨을 구하는 영약인 용혈삼이 필요하지, 이깟 금괴가 아니라고요.”“용혈삼?”송자현이 무표정으로 말했다.“할아버지의 수집품인 거 몰라?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보물이라고.”“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이긴. 그래봤자 그냥 영약이잖아요.”안세리가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그리고 명의님은 내 목숨을 구해줬어요. 엄마 눈엔 내 목숨이 용혈삼보다도 귀하지 않다는 거예요?”“네 목숨이 귀하긴 하지만 용혈삼으로 바꿔도 아깝지 않을 정도는 아니야.”송자현이 차분하게 말했다.“의사가 사람을 구하는 건 다 돈 때문이야. 진우 씨가 네 목숨 구해줬고 돈을 주는 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딱 거기까지야. 아무리 널 살려줬다고 해도 우리한테 귀한 물건까지 줄 수는 없어. 장사는 장사고 사사로운 감정을 섞어선 안 된다고. 알아?”“엄마, 어쩜 이렇게 매정할 수 있어요?”안세리는 화가 끓어올랐다. 어머니가 그녀의 목숨을 장사라고 생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어머님 말씀이 일리가 있어요.”그때 유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근데 저
“빙심연과 금수옥입니다.”유진우가 약재 이름을 말했다. 안씨 가문의 세력이 송씨 가문보다 훨씬 강하기에 그들이 나선다면 그 두 영약을 구할 가능성도 있었다.“진우 씨, 요구가 너무 높은 거 아니야? 그 두 가지 영약 모두 값어치가 어마어마한 영약이야. 고작 레시피 하나로 세 가지 영약을 바꾸겠다고? 욕심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송자현은 눈살을 찌푸리고 불만을 드러냈다.“어머님, 다른 건 몰라도 옥로고 레시피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요. 안씨 가문에 세 가지 영약의 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줄 겁니다.”유진우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래?”송자현은 유진우에게서 뭔가라도 알아내려는 듯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두 눈을 전혀 피하지 않았고 켕기는 것도 없어 보였으며 오직 진실뿐이었다. 적어도 유진우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증명되었다.“알았어. 그럼 한 번만 믿어볼게.”몇 초 고민하던 송자현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옥로고 레시피를 남기고 용혈삼은 가져가도록 해. 나머지 두 가지 최상품 영약은 지금 당장 줄 수 없으니까 시간을 좀 줘. 찾으면 보내줄게. 어때?”“좋습니다. 약속 꼭 지키시죠.”유진우는 흔쾌히 그녀와 약속했다.“안 집사, 가서 용혈삼 가져와. 그리고 종이와 펜도 가져오고.”송자현이 분부했다.“알겠습니다.”안중기는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안중기가 옥 상자 하나를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그는 옥 상자를 정자의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다음 종이와 펜을 꺼내 옆에 놓았다.유진우는 앞으로 다가가 옥 상자를 열어보았다. 안에 핏빛의 인삼이 들어있었다.손바닥 정도의 인삼이었는데 무척이나 싱싱했고 뿌리털은 머리카락처럼 촘촘했다. 숨을 살짝만 쉬어도 독특한 향이 났다.“역시 좋은 보물이군요.”유진우의 두 눈이 반짝였다. 용혈삼 안에 영기가 아주 풍부하게 숨겨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용혈삼은 여기 있으니까 레시피를 써봐.”송자현의 귀띔에 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망
“미안해요, 명의님.”안씨 저택 대문, 안세리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용혈삼을 원래 명의님한테 그냥 주려고 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나타난 바람에 다 망쳐버렸어요.”“자책하지 말아요. 세리 씨 도움이 없었더라면 용혈삼을 구하지도 못했고 게다가 어머님과 거래도 하지 못했는걸요? 저한테는 가장 좋은 결과예요.”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버려진 레시피로 최상품 영약 세 가지를 바꿨기에 절대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정말 그렇게 생각해요?”안세리의 두 눈이 반짝였다.“그럼요.”유진우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하하, 역시 명의님은 제 스타일이에요. 명의님과 꼭 친구 해야겠어요.”안세리가 덧니를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아직 식사 안 했죠? 맛있는 식당 아는데 가요. 같이 먹으러 가요.”그러고는 유진우를 차에 태웠다.“주인님, 주인님, 전화 왔습니다...”그때 휴대전화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안세리가 전화를 받자마자 누군가의 어두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조사하라고 했던 거 결과 나왔어요. 송씨 가문 도련님 며칠 전에 어떤 여자 연예인과 호텔에 간 거 맞더라고요. CCTV 확인해 보니까 두 사람 스킨십도 아주 서슴없이 하는 게 그런 관계가 맞는 것 같아요.”“나쁜 X끼!”그 소리를 들은 안세리가 노발대발하면서 하마터면 휴대전화까지 박살 낼 뻔했다. 예쁘장한 얼굴에 분노만 가득했다.“나쁜 놈, 입으로는 고치겠다고 하더니 그 여우 년을 또 만나? 날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네? 이번에 절대 가만 안 둬!”그러고는 숨기고 있던 칼을 꺼냈다. 칼자루를 벗기자 날카롭고 반짝이는 칼날이 드러났다.“송영명 그 자식 지금 어디 있어?”안세리가 휴대전화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 순간 얌전하던 소녀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무서운 호랑이로 변해버렸다.“아가씨, 도련님 지금 황성 클럽에서 친구들 만나고 있어요.”상대가 말했다.“기사님, 지금 당장 황성 클럽으로 가주세요.”안세리는 전화를 끊고 소리를 질렀다.운전기사는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리고 제가 한 약속이니 제가 지켜야죠.”유진우가 꿀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는 보물 황옥주를 가지고 있어 용원의 기를 찾는 데 성공할 확률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야말로 해변에서 바늘 찾는 격이었다.“그래. 그럼, 네 말대로 용원의 기는 네가 찾아봐. 그런데 문제는 그걸 찾고 난 다음에는 뭐 할래?”유만수는 되물었다.“그건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해요. 아직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 안 해봤어요.”유진우는 고래를 저으며 말했다.“생각할 필요 없어. 내가 하라는 대로 해.”유만수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약속을 지킨 뒤 두말 말고 다시 돌아와서 왕위를 이어받아. 뒷걱정 없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놓을 테니까.”“말했잖아요. 저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아요.”유천우는 단번에 거절했다.“내 아들인 네가 왕위를 이어받지 않으면 누가 이어받아? 설마 정말 천우에게 이 중책을 맡길 생각이야?”유만수는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했다.“천우는 학문도 능하고 무술도 능한데 안 될 건 또 뭐예요?”유진우가 반박하며 물었다.“우수한 건 맞지만 천우는 대장군이 더 어울려. 서경의 왕은 아니야.”유만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서경이 세력이 크긴 하지만 내우외환이 끊지지 않고 있어.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많은 세력이 반드시 들고 일어날 거야. 그때가 되면 천우가 막아낼 수 있을 거 같아? 천우한테 왕위를 계승하는 건 그를 해치는 길이야.”“그럼, 저는 왜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예요?”유진우가 물었다.“너는 팔자가 굳세고 대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야. 이 세상에서 너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연경에 있는 분도 같은 생각이야. 네가 서경의 왕이 된다면 전체 국면을 안정시킬 수 있어. 나중에 서경에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너는 그만한 중책을 다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야.”유만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듣다 보니까 결국 저는 정세
유태범은 분한 마음에 울화통이 터졌지만 그렇다고 감히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유진우와 유천우가 거절하며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왕은 그 두 사람 중에서 나와야 한다는 걸 유태범도 잘 알고 있었다.조금이라도 허튼 생각을 한다면 그의 최후도 채원진과 똑같아질 것이 뻔했다.“그만! 그만! 이 녀석들이! 왕위를 계승하라는데 무슨 처벌을 받듯이 말하고 있어? 그게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야?”두 아들의 태도에 화가 난 유만수는 욕을 퍼부었다.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왕위를 값이 없이 여기며 서로 안 한다고 싸우는 두 아들 때문에 유만수는 너무 창피했다.“저는 정말 생각이 없어요. 천우한테 물려 주세요.”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저는 왕위를 감당할 재목이 아니에요. 무조건 형을 시키세요.”유천우는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둘 다 입 다물어!”유만수는 탁자를 세게 치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내가 결정해. 너희들이 제멋대로 이래라저래라할 일이 아니야! 그리고, 내가 몸만 괜찮았다면 너희들이 왕위를 이렇게 빨리 넘겨받을 수 있었을 거 같아?”유만수가 화를 내자 유천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절대 못 하겠다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자기 생각을 밝히고 있었고 유진우는 여전히 자신과 상관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유만수는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겨우 감정을 가라앉히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모두에게 말했다.“자식놈들이 모두에게 못 볼 꼴을 보여줬네요. 왕위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오늘에는 모두 즐겁게 먹고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냅시다.”“자자, 다들 마십시다.”장범규는 웃으면서 분위기를 풀었다. 그는 누가 왕위를 이어받든 상관없었다.결정은 순전히 유만수의 손에 달렸으니, 장범규는 누가 왕이 되었던 유만수의 결정을 따르고 지지할 생각이었다.방금까지 얼어있던 분위기는 금세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다만 아까와 달리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다.첫 번째 부류는 회음 제후 은성종을 필두로 유진우를
“뭐?”유진우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며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서경의 왕위는 수많은 사람이 바라지만 누구도 얻을 수 없는 자리였다.이렇게 존귀하고 최고의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자리를 서로 마다하는 유진우와 유천우 때문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예전에는 왕의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웠거늘, 유진우와 유천우는 완전히 반대였다.두 사람은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양보하며 왕위를 전혀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런 일은 처음이라 유진우를 지지하던 사람도 유천우를 지지하던 사람도 모두 입만 벌린 채 얼어있었다.당사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있는데 정작 두 형제는 서로 양보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었다.“형, 애초에 약속했잖아요. 형이 왕이 되고 내가 장군이 돼서 형을 보좌한다고. 왜 말을 바꿔요?”유천우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언제? 난 그런 약속 한 적 없어.”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게으르기도 하고 내 마음대로 하고 사는 것에 익숙해. 구속받는 것도 싫고 부담스러워서 싫어. 그리고 너를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아. 왕위는 네가 더 합당해.”“합당하기는 개뿔!”유천우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내 능력이 어느 정도 인지 내가 제일 잘 알아요. 애당초 나는 왕이 될 재목이 아니에요. 하지만 형은 다르죠. 형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우수하고 형이야말로 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계승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후계자예요.”“천우야, 함부로 너 자신을 낮추지 마. 네가 나보다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거야. 너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야.”유진우가 말했다.“난 몰라요! 아무튼 서경의 왕은 형이 하세요!”유천우는 화가 나서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익지 않은 참외를 억지로 비틀어 따봤자 그 참외는 달지 않아. 나는 큰 포부도 없고 남을 위하는 고상
유태범의 말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쳐다봤다. 지난날 표기대장군이었던 유태범은 인품 논란은 많았지만,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유태범은 여러 차례 치열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오늘 이 자리까지 오른 것이었다.그러니 유태범처럼 패기 있고 안목이 있는 사람조차 유진우가 왕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했다.조금 전에 그들은 유진우를 지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로 생각해 유천우를 지지했지만 지금 보니 그건 아니었다.먼저 전쟁의 신 조무진이 힘을 보탰고 이어서 표기대장군 유태범이 지지했으니, 이 두 사람의 선택은 많은 사람들의 결정을 바꾸기에 충분했다.“셋째야, 왜 장혁을 선택하겠다는 건지 자세히 말해봐.”유만수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제가 장혁을 선택한 이유는 조무진과 비슷합니다. 저는 한 사람의 재능과 능력을 더 중시합니다.”유태범은 진지하게 말했다.“이번에 호룡각을 어떻게 소탕했는지 모두 잘 알 거로 생각합니다. 전부 장혁이 작전을 짜고 계략을 펼쳤기에 교활하기 여지없던 채원진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호룡각의 숨겨진 보물까지 전부 찾아냈죠. 이건 그야말로 아주 큰 공이 아닙니까? 종합해 보면 장혁의 용기와 지략은 왕위를 계승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입니다. 천우는 대장군이 되기에는 손색이 없지만 왕의 자리에 오르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유태범의 말이 끝나자, 유만수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한휘는 흥분하며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허튼소리! 이번 호룡각을 소탕한 것은 유진우 한 사람만의 공이 아니잖아요. 유천우도 큰 공을 세웠습니다. 유천우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되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재능과 능력으로 따지면 유천우는 유진우보다 못 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젊고 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요.”“선평 제후,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러십니까? 저는 그냥 가족의 일원으로서 제 생각을 말했을 뿐이고 모든 권한은 저의 형님한테
“괜찮아. 오늘은 가족 연회야. 여기 있는 사람은 모두 식구와 마찬가지이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걱정 말고 해봐.”유만수가 웃으며 말했다.“위왕 님께서 물어보셨으니 그럼, 사양하지 않고 말씀 올리겠습니다.”조무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두 손을 맞잡아 가슴에 올려 예의를 갖추고 말했다.“제 의견은 지극히 제 개인 생각일 뿐이니, 혹시 의견이 달라도 저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말아주십시오.”“전쟁의 신께서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당신은 나라의 기둥과 마찬가지인 사람이니 보는 눈이 분명 다를 거로 생각합니다.”“전쟁의 신께서는 누구를 지지하는 겁니까? 어서 말해보세요.”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용국의 전쟁의 신이자 왕족 조씨 가문의 후계자인 조문진의 영향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모든 사람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여 있었다.“자, 그럼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조무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정중하게 말했다.“종합적인 능력과 현명함을 바탕으로 한다면 저는 유진우가 서경의 왕으로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진우에게는 많은 단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서경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어 서경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둘째는 토대가 없어 대중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왕 님께서 저 자리에 오르실 때도 똑같은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그 당시 많은 세력이 위왕 님께 좋지 않은 눈총을 보냈었지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위왕 님은 뛰어난 개인 능력으로 서경의 영토를 넓히며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여 지금의 지위와 영광을 얻었지요. 유진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개인 능력으로 보면 위왕 님보다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서경뿐만 아니라 용국 전체에서도 유진우 같은 사람은 더 없을 겁니다. 저는 유진우에게 조금만 시간을 준다면 그는 반드시 훌륭한 서경 왕이 되어 여러분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제 생각입니다. 여러분께서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마음껏 말씀하셔도 됩니다. 저는 여기까
은성종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똑똑한 사람이라면 유천우의 지지자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유천우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걸 잘 알 텐데, 서경의 인재로서 어린 제갈량이라고 불리는 은성종이 왜 반대로 유진우를 지지하는지 모두 의아해했다.“회음 제후,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주한휘가 반박했다.“유진우의 무도 재능은 서경 전체를 놓고 보면 확실히 따라올 사람이 없지만, 왕의 자리는 싸움을 잘한다고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유천우는 학문과 무예를 골고루 겸비한 데다 지지자까지 많으며 무엇보다 전쟁에서 몇 년 동안 연마하여 모든 면에서 매우 훌륭합니다. 만약 유천우가 왕이 된다면 서경은 분명 더욱 빛날 것입니다!”유천우는 황제의 조카이자 주한휘의 미래 사위이고 양측은 이미 혼약까지 맺은 사이였다.그러니 주한휘는 유천우가 왕의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자기 딸은 왕비가 되는 것이고 본인도 자연히 신분이 상승할 테니 무조건 유천우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저도 선평 제후의 견해에 동의합니다.”흑용군 주장 한 명이 말했다.“유진우가 우수하다는 건 물론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서경을 떠난 지 여러 해가 되었고 서경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유천우는 다르지요. 어릴 때부터 서경에서 자랐으니, 인맥도 넓고 군사 내막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천우가 왕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맞습니다. 유진우는 10년 동안 서경을 떠나 있었으니 그를 따르지 않을 자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유천우가 왕이 되는 것을 지지합니다.”이때 일부 군사의 고급 장교들이 모두 유천우를 지지하기 시작했다.유진우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서경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기에 그들한테 유진우는 서먹서먹했지만, 유천우는 달랐다.유천우가 예전에는 믿음직하지 못했던 건 맞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뛰어난 성과를 보였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유천우의 성격상 왕이
한참 동안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무엇보다 이제 겨우 내우외환을 해결했는데, 유만수가 자리를 넘겨준다고 하니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여보,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요?”옆에 있던 이의진이 권유했다.“그러니까요. 위왕 님, 아직 몸도 정정하시고 지금은 백세시대인데 어찌 이렇게 일찍 자리를 넘겨줄 생각을 하십니까?”장범규는 정직하고 솔직하게 물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묻고 싶었지만, 감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만약 누군가 나서서 유만수를 설득한다면 새로운 위왕 님의 미움을 살 수도 있으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조용하게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여러분,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마침 여러분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후사를 미리 안배하는 것도 제 소원을 이루는 셈입니다.”유만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여보...”이의진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재하며 말했다.“그만. 난 이미 결정했으니 더 이상 설득할 필요 없어.”유만수는 다시 모든 사람을 향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여러분, 저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선정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손에 미래 서경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저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누가 미래의 서경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그건...”유만수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당황했다. 형세를 보아하니 유만수는 내부 투표를 통해 지지자가 많은 사람한테 서경을 맡길 생각인 것 같았다.그러니 문제는 유진우를 선택할 것인가 유천우를 선택한 것인가였다.재능과 능력 면에서 보면 당연히 유진우가 한 수 위이지만 집안 내력과 배후 세력으로 판단하면 유천우가 한 수 위였다.유천우는 최근 몇 년 동안 전쟁에서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미래가 기대된다는
보물 지도를 나눈 뒤 유진우는 사람을 안배해 호룡각의 기지를 다시 한번 정리했다. 이곳은 위치가 은밀하여 수비는 쉬우나 공격하기는 아주 어려웠고 또한 두 나라의 국경 지대에 놓여있었다.그러니 이곳을 군사 요새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만약 앞으로 서방 제국과 충돌이 생긴다면 이곳이 중요 군사 지점이 될 것이고 여기서 출병한다면 반드시 예상치 못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겠지만 미리 준비해 둔다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해당 건을 해결한 뒤 유진우는 사람들을 데리고 서경왕부로 돌아갔다.이번에 유진우가 서경의 복병을 해결하고 대승을 거두었기에 유만수는 서경의 왕으로서 특별히 부내에서 연회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이번 사건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초청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한동안 왕부 안팎은 매우 시끌벅적했다.유만수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한테 매우 기쁜 소식이었고 호룡각을 멸한 건 더욱 기쁜 일이니 축하할 이유가 충분했다.밤이 되자 왕부 안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서경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각 고급 장교, 각 고위 간부, 그리고 각 방면의 거물들이 모두 왕부에 모여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여러분, 후배인 제가 먼저 몇 마디 하겠습니다.”연회에서 유천우는 먼저 일어나 손에 잔을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이번에 왕부가 위기를 맞았었지만, 여러분은 떠나지 않고 앞다투어 왕부의 근심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 제가 먼저 여러분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말을 마친 유천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도련님이 너무 겸손하네. 우리는 서경의 신하로서 당연히 왕부와 함께해야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별거 아니야.”평양 제후 장범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맞는 말이야. 오랜 시간을 위왕 님과 함께 보냈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늘 같이했으니, 왕부가 곤경에 처했다면 당연히 전폭적으로 도와야지. 나라를 위해서
“맞아요. 길이라는 건 한번 잘못 들어서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죠. 사철수의 모든 행동은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가 없어요. 누구처럼 죄를 공으로 대처할 기회조차 없죠.”유천우는 유태범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유태범이 셋째 삼촌이 아니고 아버지의 인자함이 없었다면, 그뿐만 아니라 형제의 상잔을 원하지 않았고 손실이 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역모는 열 번 죽어도 모자란 죄였다.“흠 흠.”유천우의 눈빛에 유태범은 괜히 마음에 찔려 화제를 돌렸다.“장혁아, 세 개의 보물 창고를 모두 합치면 가치가 엄청날 텐데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당연히 전부 서경으로 가져가야죠. 설마 그 잡놈들한테 남겨두기라도 하겠다는 거예요?”유천우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세 개의 보물 창고를 우리가 전부 독차지할 수는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우리만의 힘으로 호룡각을 멸망시킨 건 아니잖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야. 그러니 보물 창고도 공평하게 함께 나눠야지.”“공평하게 나눈다고? 장혁아, 장난이지?”유태범은 어리둥절해서 격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방금 사철수의 말을 들었잖아. 호룡각의 보물 창고는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것들이고 그 수가 엄청날 텐데, 그걸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눈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이번에 호룡각을 소탕하는 데 유태범은 뛰어난 공을 세웠으니, 나중에 또 다른 표창을 받을 수도 있었다.다시 말해, 서경왕부가 더 많은 보물을 얻어야만 유태범의 이익도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보물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보물도 좋지만, 도의도 지켜야죠. 사람들이 멀리서 우리를 도와주러 왔는데, 우리가 보물을 독차지한다면 그건 배은망덕한 사람이죠.”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그렇지만 굳이 똑같이 나눌 필요는 없잖아. 적당하게 성의를 보여주면 되는 거지.”유태범이 말했다.“저는 이미 마음먹었어요. 제 결정이 불만스럽다면 유만수에게 일러바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