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님이 정말 레시피를 원하는 것 같으니까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몇 가지는 빼고 스무 가지로 할게요. 어때요?”유진우는 마음 아픈 척했다.“스무 가지도 안 돼.”송충이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그럼 몇 가지 줄 수 있는데요?”유진우가 한발 물러섰다.“한 가지.”송충이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웠다.“영약 한 가지만 줄 수 있어.”“한 가지요?”그러자 유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집사님, 지금 장난해요? 흥정을 이렇게 하는 게 어디 있어요?”“옥로고 레시피는 상등품 영약 가치 정도야. 이게 내 마지노선이라고.”송충은 인내심이 슬슬 바닥나기 시작했다. 만약 유진우가 돈을 요구했더라면 들어줬겠지만 터무니없는 걸 요구했다. 이건 그를 호구로 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집사님이 관심 없다면 됐어요. 다른 사람은 아마 관심 있을 겁니다.”더는 쓸데없는 얘기를 섞고 싶지 않았던 유진우는 처방을 챙기고 일어서려 했다.“잠깐!”송충이 상을 탁 치면서 일어나 호통쳤다.“인마, 내가 가라고 했어?”“왜요? 나랑 차라도 마시게요?”유진우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마시긴 개뿔!”쨍그랑!분노한 송충이 찻잔을 바닥에 냅다 던졌다.그 순간 일이층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 차를 마시는 척하던 그들은 테이블 밑에서 무기를 꺼내 유진우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유진우는 그들에게 포위되었는데 족히 오륙십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물 샐 틈 없이 포위했다.“인마!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고 날 뭐로 보는 건데?”송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디어 가식을 벗어던지고 흉악스럽게 말했다.“지금 너한텐 두 가지 선택이 있어. 고분고분 옥로고 레시피를 내놓든지, 아니면 얻어맞고 레시피를 내놓든지 하나 선택해.”“집사님, 아무리 거래가 성립되지 않았어도 인간의 도리는 저버리지 말았어야죠. 이렇게 대놓고 빼앗는 건 강도랑 다를 게 뭐예요?”유진우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레
“명의님, 어때요? 많이 놀랐어요?”안세리가 웃으며 말했다.“아까 길에서 낯이 익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명의님일 줄은 몰랐어요. 지난번에 하도 급하게 헤어져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밥 한 끼는 대접해야겠어요.”“이럴 필요 없어요. 별것도 아닌데요, 뭐.”유진우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세리 씨, 이놈이랑... 아는 사이예요?”송충이 떠보듯 물었다.짝!안세리가 또 따귀를 날리면서 욕설을 퍼부었다.“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이분은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야. 내 은인한테 손을 대? 널 확 죽여버리는 수가 있어.”“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요?”그녀의 말에 송충은 겁에 질린 나머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다리에도 힘이 풀렸다.유진우가 기껏해야 의술이나 조금 알고 싸움이나 할 줄 아는 무명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뒤에 안씨 가문의 딸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정말 너무나도 큰 실수였다.“멍하니 서서 뭐 해? 얼른 명의님께 사과드려. 안 그러면 가만 안 둬!”안세리가 두 눈을 부릅떴다.털썩!송충도 망설이지 않고 유진우 앞에 무릎을 꿇고 웃으며 말했다.“죄... 죄송합니다. 아까는 제가 잠깐 정신이 어떻게 됐나 봐요. 부디 넓은 아량으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됐어, 됐어. 애들 데리고 얼른 꺼져.”안세리는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네, 네. 지금 당장 꺼지겠습니다.”송충은 굽신거리면서 황급히 도망쳤다.“잠깐, 거기 서!”복도 입구까지 나왔는데 안세리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가서 송영명한테 전해. 내가 언젠가는 후회하게 만들겠다고.”송충은 여전히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한 후 한 무리 사람들을 데리고 부랴부랴 도망쳤다.두 가문 모두 재벌이었지만 안씨 가문의 세력은 송씨 가문보다 훨씬 강했다. 송씨 가문 도련님마저 안세리를 보면 예의를 갖춰야 하는데 집사는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명의님, 괜찮아요? 다친 데 없어요?”안세리는 고개를 돌려 다시 환하게 웃었다.“세리 씨가
“아가씨,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안중기가 쪼르르 달려와 웃으며 물었다.“우리 집에 용혈삼이라는 약이 있어?”안세리가 말했다.“있습니다. 지금 보물 창고에 있어요.”안중기가 솔직하게 말했다.“다행이네. 지금 당장 가져와.”안세리가 분부했다.“아가씨, 용혈삼으로 뭐 하시려고요?”안중기가 떠보듯 물었다.“그걸 내가 안 집사한테 말해야 해? 당연히 필요하니까 가져오라고 하지.”안세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 사실 용혈삼은 어르신이 아끼시는 보물이라 어르신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안중기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일단 가져와. 내가 나중에 할아버지한테 얘기할 테니까.”안세리가 말했다.“그건... 좀 어렵습니다, 아가씨.”안중기가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이봐! 이젠 내 말도 귓등으로 듣겠다는 거야?”안세리가 두 눈을 부릅떴다.“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올 것이지, 뭔 쓸데없는 말이 그렇게 많아? 얼른 가!”그러고는 안중기의 엉덩이를 발로 차버렸다.“그럼 잠깐만 기다리세요.”달리 방법이 없었던 안중기는 용혈삼을 가지러 갔다.“명의님, 잠깐 앉아 차를 마시면서 기다려요. 곧 가져올 겁니다.”안세리는 웃으면서 유진우를 정자로 안내하고는 차와 디저트를 대접했다.약 10분 후, 안중기가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 옆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30대 정도의 여자였는데 빨간 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몸매도 글래머한 게 아주 매력적이었다. 윤기 나고 반짝이는 검은 긴 머리를 뒤로 젖히니 더욱 귀티가 흘러넘쳤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얗고 긴 다리가 보일 듯 말 듯했다. 나이는 조금 있어도 우아한 멋은 여전했다.“세리야.”여자의 도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디저트를 먹고 있던 안세리는 갑자기 움찔하더니 제 발 저린 듯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엄마... 여긴 어쩐 일이에요?”“내가 안 오면 집을 다 발칵 뒤집어놓을 셈이었어?”송자현이 덤덤하게 말했다.“그럴 리가요. 난
안중기가 가져온 건 용혈삼이 아니라 금괴였다.햇빛 아래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금괴는 보기에는 돈보다 더 좋아 보였다.“진우 씨, 이건 우리 안씨 가문의 마음이고 세리를 구해준 값이야.”송자현은 금괴를 가리키면서 덤덤하게 말했다.“엄마, 지금 이게 무슨 뜻이에요?”안세리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불만을 드러냈다.“우리 안씨 가문은 절대 남한테 신세 지지 않아. 진우 씨가 널 살려줬으니 당연히 거금으로 은혜를 갚아야지.”송자현의 표정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어머님, 전 돈 때문에 사람을 구한 게 아닙니다.”유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왜? 적어서 싫어?”송자현은 두말없이 바로 손을 들고 분부했다.“안 집사, 가서 하나 더 가져와.”“네.”안중기는 대답을 마친 후 다시 나가려 했다.“엄마!”참다못한 안세리가 결국 폭발했다.“뭐든지 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명의님은 사람 목숨을 구하는 영약인 용혈삼이 필요하지, 이깟 금괴가 아니라고요.”“용혈삼?”송자현이 무표정으로 말했다.“할아버지의 수집품인 거 몰라?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보물이라고.”“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이긴. 그래봤자 그냥 영약이잖아요.”안세리가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그리고 명의님은 내 목숨을 구해줬어요. 엄마 눈엔 내 목숨이 용혈삼보다도 귀하지 않다는 거예요?”“네 목숨이 귀하긴 하지만 용혈삼으로 바꿔도 아깝지 않을 정도는 아니야.”송자현이 차분하게 말했다.“의사가 사람을 구하는 건 다 돈 때문이야. 진우 씨가 네 목숨 구해줬고 돈을 주는 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딱 거기까지야. 아무리 널 살려줬다고 해도 우리한테 귀한 물건까지 줄 수는 없어. 장사는 장사고 사사로운 감정을 섞어선 안 된다고. 알아?”“엄마, 어쩜 이렇게 매정할 수 있어요?”안세리는 화가 끓어올랐다. 어머니가 그녀의 목숨을 장사라고 생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어머님 말씀이 일리가 있어요.”그때 유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근데 저
“빙심연과 금수옥입니다.”유진우가 약재 이름을 말했다. 안씨 가문의 세력이 송씨 가문보다 훨씬 강하기에 그들이 나선다면 그 두 영약을 구할 가능성도 있었다.“진우 씨, 요구가 너무 높은 거 아니야? 그 두 가지 영약 모두 값어치가 어마어마한 영약이야. 고작 레시피 하나로 세 가지 영약을 바꾸겠다고? 욕심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송자현은 눈살을 찌푸리고 불만을 드러냈다.“어머님, 다른 건 몰라도 옥로고 레시피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요. 안씨 가문에 세 가지 영약의 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줄 겁니다.”유진우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래?”송자현은 유진우에게서 뭔가라도 알아내려는 듯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두 눈을 전혀 피하지 않았고 켕기는 것도 없어 보였으며 오직 진실뿐이었다. 적어도 유진우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증명되었다.“알았어. 그럼 한 번만 믿어볼게.”몇 초 고민하던 송자현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옥로고 레시피를 남기고 용혈삼은 가져가도록 해. 나머지 두 가지 최상품 영약은 지금 당장 줄 수 없으니까 시간을 좀 줘. 찾으면 보내줄게. 어때?”“좋습니다. 약속 꼭 지키시죠.”유진우는 흔쾌히 그녀와 약속했다.“안 집사, 가서 용혈삼 가져와. 그리고 종이와 펜도 가져오고.”송자현이 분부했다.“알겠습니다.”안중기는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안중기가 옥 상자 하나를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그는 옥 상자를 정자의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다음 종이와 펜을 꺼내 옆에 놓았다.유진우는 앞으로 다가가 옥 상자를 열어보았다. 안에 핏빛의 인삼이 들어있었다.손바닥 정도의 인삼이었는데 무척이나 싱싱했고 뿌리털은 머리카락처럼 촘촘했다. 숨을 살짝만 쉬어도 독특한 향이 났다.“역시 좋은 보물이군요.”유진우의 두 눈이 반짝였다. 용혈삼 안에 영기가 아주 풍부하게 숨겨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용혈삼은 여기 있으니까 레시피를 써봐.”송자현의 귀띔에 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망
“미안해요, 명의님.”안씨 저택 대문, 안세리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용혈삼을 원래 명의님한테 그냥 주려고 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나타난 바람에 다 망쳐버렸어요.”“자책하지 말아요. 세리 씨 도움이 없었더라면 용혈삼을 구하지도 못했고 게다가 어머님과 거래도 하지 못했는걸요? 저한테는 가장 좋은 결과예요.”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버려진 레시피로 최상품 영약 세 가지를 바꿨기에 절대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정말 그렇게 생각해요?”안세리의 두 눈이 반짝였다.“그럼요.”유진우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하하, 역시 명의님은 제 스타일이에요. 명의님과 꼭 친구 해야겠어요.”안세리가 덧니를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아직 식사 안 했죠? 맛있는 식당 아는데 가요. 같이 먹으러 가요.”그러고는 유진우를 차에 태웠다.“주인님, 주인님, 전화 왔습니다...”그때 휴대전화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안세리가 전화를 받자마자 누군가의 어두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조사하라고 했던 거 결과 나왔어요. 송씨 가문 도련님 며칠 전에 어떤 여자 연예인과 호텔에 간 거 맞더라고요. CCTV 확인해 보니까 두 사람 스킨십도 아주 서슴없이 하는 게 그런 관계가 맞는 것 같아요.”“나쁜 X끼!”그 소리를 들은 안세리가 노발대발하면서 하마터면 휴대전화까지 박살 낼 뻔했다. 예쁘장한 얼굴에 분노만 가득했다.“나쁜 놈, 입으로는 고치겠다고 하더니 그 여우 년을 또 만나? 날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네? 이번에 절대 가만 안 둬!”그러고는 숨기고 있던 칼을 꺼냈다. 칼자루를 벗기자 날카롭고 반짝이는 칼날이 드러났다.“송영명 그 자식 지금 어디 있어?”안세리가 휴대전화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 순간 얌전하던 소녀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무서운 호랑이로 변해버렸다.“아가씨, 도련님 지금 황성 클럽에서 친구들 만나고 있어요.”상대가 말했다.“기사님, 지금 당장 황성 클럽으로 가주세요.”안세리는 전화를 끊고 소리를 질렀다.운전기사는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송영명 같은 바람둥이는 절대 버릇을 고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안세리가 일찍 발견하여 결혼까지 가지 않았지, 안 그러면 후회해도 늦었다.“당연히 버려야죠. 근데 화가 난단 말이에요!”안세리는 입술을 꽉 깨물고 씩씩거렸다.“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후회하게 만들 거고 날 잃은 게 평생의 가장 큰 손해라는 걸 똑똑히 알게 할 거예요.”“계획이 있어요?”유진우가 물었다.“밖에서 다른 여자 만나니까 전 다른 남자 만나서 차버릴 거예요!”안세리는 코를 훌쩍이면서 유진우를 빤히 쳐다보았다.“명의님, 앞으로 명의님은 제 남자 친구예요. 그 사람 앞에서 주도권을 가져올 겁니다.”“네?”유진우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세리 씨,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죠? 우리가 안 지 얼마나 됐다고요.”“금방 알았는데 뭐요? 제가 명의님이랑 어울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안세리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세리 씨, 난 약혼녀가 있어요.”유진우는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눈앞의 안세리가 송영명에게 복수하기 위해 홧김에 이런 소리를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약혼녀가 있으면 뭐요? 아직 결혼 안 했잖아요.”안세리는 유진우의 손을 잡고 억지를 부렸다.“몰라요. 아무튼 명의님은 거절하지 못해요. 적어도 오늘은 그 자식 화를 돋우게 저랑 연기라도 해요.”“도와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미리 말하는데 연기일 뿐이니 절대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요.”유진우는 살짝 골치가 아팠다.“알았어요.”그러자 안세리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벌써 송영명이 약이 바싹 오른 모습이 기대되었다....그 시각 황성 클럽 VIP 룸.한 무리의 젊은 남녀들이 한자리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리더는 당연히 송씨 가문 도련님 송영명이었다.송영명은 훤칠한 키에 얼굴도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패션 감각도 뛰어났고 헤어스타일도 깔끔했다.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남자답고 품위가 넘쳤다. 그의 옆에 섹시한 몸매에 얼굴이 예쁜 여자
문이 열린 순간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더니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렸다.유행에 어울리는 옷차림에 예쁘장한 얼굴의 안세리가 싸늘한 표정으로 들어왔고 그녀 뒤로 유진우가 성큼성큼 들어왔다.“세리야.”“세리 씨.”그녀를 본 사람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특히 송영명은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빨간 스커트를 입은 여자의 허리춤을 안고 있던 손을 재빠르게 뺐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억지 미소를 쥐어짰다.“세리야, 여긴 어쩐 일로 왔어?”“왜? 너도 오는데 난 오면 안 돼?”안세리는 빨간 스커트 여자를 먼저 힐끗거린 후 송영명을 빤히 쳐다봤다. 오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마쳤지만 두 연놈이 딱 붙어있는 모습을 보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당연히 와도 되지. 근데 오기 전에 미리 말했더라면 내가 준비라도 했을 거 아니야.”송영명이 웃으며 말했다.“귀찮게 준비는 무슨. 그냥 뭐 하나 보러 왔어.”안세리는 긴장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있는 빨간 스커트 여자를 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이분은 누구셔? 처음 보는 분인 것 같은데?”“아, 이 사람? 곽훈이 새로 만난 여자 친구야.”송영명은 말하면서 곽훈에게 눈치를 주었다. 곽훈은 잠깐 멈칫했다가 그의 뜻을 바로 알아듣고 웃으면서 상황을 수습했다.“맞아요, 형수님. 제가 소개할게요. 여긴 제 여자 친구 소가희예요. 연예계에서 일하고 있어요.”“안녕하세요.”소가희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씨 가문 아가씨의 성격이 사납기로 유명했다. 이런 거물을 건드렸다간 그녀에게도 좋을 게 없었다.“곽훈 씨 여자 친구인데 왜 네 옆에 앉아있는 건데?”안세리가 물었다.“가희 씨 팬이라서 영화에 관한 거 물어보려고 그랬지. 한창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네가 마침 들어온 거야.”송영명은 웃으면서 해명하다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세리야, 설마 나 의심하는 거야?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데 나 진짜 개과천선했어. 다시는 너한테 미안한 짓 안 해.”“네가 뭘 하든 나랑 상관없어. 난 그저 분위기나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