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죽이겠다고?”송재림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듯 크게 웃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도 마치 바보를 쳐다보듯 마음껏 조롱했다.“저 자식 미친 거 아니야? 감히 송재림 씨한테 저딴 식으로 말해? 죽음이 두렵지도 않은가 봐.”유혜지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흥!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송재림 씨한테 도발해? 아주 명을 재촉하는구나.”나승엽이 싸늘하게 웃었다.송재림이 누구인가? 천하회의 엘리트이자 송만규 맹주에게 직접 전수받은 사람이었다. 이런 거물이 기생오라비 하나 죽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송재림 씨는 혼자서도 거뜬히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그런 사람을 어떻게 막아? 유진우 저 자식은 기회가 있을 때 도망가지 않고 되레 죽음을 자초하네.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어.”단소홍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마치 죽은 사람을 보듯 했다.“흥, 주먹 좀 쓸 줄 안다고 저렇게 건방을 떨어? 저런 놈은 죽어도 싸!”장경화는 팔짱을 낀 채 고소해했다.“젊은 사람이 제 주제도 모르고 날뛰네. 이따가 얻어터지고 나면 상대의 실력을 알겠지.”장홍매도 나서서 유진우를 비웃었다.조금 전 송재림의 대대적인 학살을 아무도 당해내지 못한 걸 그들은 똑똑히 목격했다. 하여 유진우가 덤비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송재림! 저 자식이 널 업신여기는데 가만히 있을 거야? 그냥 죽여버려!”뒤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선우장훈의 눈빛이 매우 살벌했다. 조금 전 유진우에게 걷어차여 아직도 피를 토하고 있었다. 마음속의 원한이 그야말로 극에 달했다.“인마,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알기나 해?”크게 웃던 송재림의 표정이 갑자기 서늘해졌다.“난 천하회 제자야. 저 영감마저도 내 상대가 아닌데 네가 뭔데 끼어들어?”“난 아무것도 아니지만 널 죽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야.”유진우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날 죽이겠다고? 흥, 너 아주 눈에 뵈는 게 없구나.”송재림이 실눈을 뜨고 말했다.“못
“X발, 저 기생오라비가 이렇게나 강했어? 송재림 씨마저 상대가 아니야?”나승엽은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천하회의 제자가 이름도 없는 놈한테 졌다는 게 말이 돼?”유혜지는 어안이 벙벙했다.“쓸모없는 놈! 보기에는 강한 것 같더니 어쩜 저것도 못 버티냐.”장경화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유진우 저 자식 비열한 수단을 쓴 건 아니겠죠?”단소홍은 의심에 찬 눈빛으로 장홍매와 눈빛을 주고받았다.조금 전 송재림은 그야말로 기세가 넘쳤고 아무도 당해내지 못했다. 유진우가 무조건 참패를 당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런 결과일 줄은 전혀 몰랐다.유진우가 강한 걸까? 아니면 송재림이 겉만 번지르르할 뿐일까?“어때? 인제 항복해?”유진우는 한쪽 다리로 송재림의 어깨를 짓밟은 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너... 너 대체 누구야?”송재림이 이를 꽉 깨물고 일어서려 애를 썼지만 유진우의 무게가 천근처럼 느껴져 꿈쩍도 할 수가 없어 결국 얌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내가 누군지 상관하지 말고 항복하는지만 대답해.”유진우가 한쪽 다리에 힘을 점점 가하자 뚜두둑 소리가 들려오더니 무릎과 닿은 바닥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피범벅인 무릎이 차마 눈 뜨고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지고 말았다.“항복하긴 개뿔!”송재림이 성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내가 누군지 알아?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뼈도 못 추리는 수가 있어.”“그래?”유진우가 싸늘하게 웃더니 갑자기 발에 힘을 가했다.쿵!송재림의 무릎이 더 밑으로 내려갔고 고개도 들지 못했다. 머리에는 땀이 흥건했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으며 피도 계속 토해냈다.“멈춰!”그때 보다 못한 나승엽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이 자식아, 경고하는데 송재림 씨를 당장 풀어줘. 안 그러면 큰 화를 입게 될 거야!”“그래! 송재림 씨는 천하회 제자야. 함부로 했다간 천하회의 적이 된다고.”유혜지도 나서서 아우성쳤다.“천하회?”그 소리에 유진우는 눈썹을
“으악...”송재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죽는 순간까지도 유진우가 진짜로 자신을 죽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도발하는 게 아닌데... 하지만 인제 와서 후회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의 동공이 점점 풀리면서 의식을 잃어갔다. 유진우는 마치 죽은 개를 버리듯 송재림의 시신을 휙 던져버렸다.쿵!시신이 벽에 부딪힌 다음에 바닥에 떨어졌는데 주변에 흙먼지가 가득 날렸다.그 순간 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충격의 도가니에 빠진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송재림이 자신의 신분을 밝혔는데도 유진우에게 죽임을 당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송재림은 천하회의 제자이자 무도 연맹 맹주 송만규의 조카이다. 그런 사람을 어찌 감히 죽인단 말인가?“죽... 죽었어? 저 자식이 송재림을 죽였어?”넋이 나간 선우장훈은 눈앞의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송재림의 신분이 그와 거의 비슷했고 심지어 앞날은 그보다도 더 창창했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송재림을 죽였다. 죽고 싶어서 안달 난 건가?“미쳤어, 미쳤어. 저 자식 완전히 미쳤어.”“송재림을 죽이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구나.”“저 자식 천하회뿐만이 아니라 송 맹주님까지 건드렸어. 앞으로 어딜 가든 도망 신세가 되겠네.”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 사람들은 미친놈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유진우를 보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송재림을 죽이고 천하회와 송만규를 건드린단 말인가?“유진우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어떻게 저렇게 다짜고짜 사람을 죽일 수가 있어?”단소홍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정말 미친놈이구나. 다행인 건 얼마 못 살고 곧 죽을 거야.”장경화가 싸늘하게 웃었다. 송재림이 죽든 말든 그녀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송재림을 죽였다는 건 제 무덤을 스스로 판 격이기에 언젠가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그 광경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다.유
강린파 제자들은 두말없이 바로 달려들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송재림이 죽자 선우 가문의 부하들은 아예 강린파의 상대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제압당하고 말았다.“인마, 너 인제 죽었어. 송재림을 죽이고 우리 선우 가문 사람을 때렸으니 앞으로 넌 두 가문의 공공의 적이야. 강남 전체에 네가 있을 자리가 없을 거라고!”선우장훈은 조급한 나머지 일그러진 얼굴로 미친 듯이 포효했다.“뭐야?”유진우의 시선이 선우장훈에게 향하더니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널 깜빡할 뻔했네. 방금 뭐라고 했어?”“오... 오지 마!”유진우가 다가오자 선우장훈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경고하는데 우리 형이 호풍장군 선우희재야. 내 뒤에는 선우 가문이 있다고.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죽음뿐이야.”“그래?”유진우는 갑자기 손을 뻗어 선우장훈의 머리를 덥석 잡더니 쿵 하고 벽에 냅다 던졌다. 그 순간 벽이 움푹 패어 들어가고 말았다.선우장훈은 머리가 빙빙 돌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시뻘건 피가 뒤통수에서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오늘 널 죽이진 않을 거야. 가서 선우희재한테 전해. 앞으로 이런 수작 부리지 말라고. 또다시 조씨 가문을 건드린다면 내가 선우 가문 싹 다 뒤집어엎을 거야. 당장 꺼져!”유진우는 선우장훈의 머리를 잡고 냅다 던졌다. 선우장훈의 몸은 마치 공처럼 수 미터 튕겨 나갔다가 창문을 뚫고 천향루 밖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곧이어 그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전해졌다.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나승엽과 유혜지는 더는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바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얼른 형님을 병원에 데려가!”천향루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그래도 중상을 입은 선우장훈을 잊지 않고 차에 태운 후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유진우 씨, 지금 큰 사고 친 거 알아요?”이청아가 불쑥 입을 열었다.“송재림을 죽이고 무도 연맹을 건드린 것도 모자라 이젠 선우 가문까지 건드렸어요. 정말 죽는 게 두렵지도 않아요?”“서로 갈등이 생긴 순간부터 원한은 이미 생겼어요
어느덧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그 시각 강남 무도 연맹 본부.한 무리의 무도 연맹 임원들이 송재림의 시체를 둘러싸고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1시간 전, 송재림의 시신을 마주했을 때 무도 연맹 전체가 발칵 뒤집혔었다. 많은 핵심 인원들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한자리에 모여들었다.송재림은 천하회의 제자이자 송만규 맹주의 친조카였다. 천부적인 재능, 실력, 신분, 지위 모두 무도 연맹에서 손꼽히는 존재였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송만규의 후계자가 송재림이라고 생각했다.조금만 더 지나 송만규가 맹주 자리에서 내려오면 송재림이 무도 연맹의 새로운 맹주가 될 텐데...그런데 이렇게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난 인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 무도 연맹이 뒤흔들릴 만도 했다.“재림아, 재림이 어디 있어?”그때 우람한 체격에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한 중년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사람들은 알아서 길을 터주었고 조금이라도 행동이 느리면 그냥 걷어차 버렸다.이 사람이 바로 송재림의 아버지 송천수였다.송천수는 인파 속을 헤집고 송재림의 시신 앞으로 달려왔다.시신을 뒤덮고 있던 흰 천을 들친 순간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재림아!”잠깐 넋을 놓았던 송천수는 갑자기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울부짖기 시작했다.아들을 겨우 훌륭하게 키워냈는데 아직 이름을 알리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송천수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한바탕 울부짖던 송천수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흉악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누구야? 대체 누가 내 아들을 죽였어? 간덩이가 부은 놈 누구야?”“무도 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유진우가 죽인 것 같습니다.”한 집사가 보고를 올렸다.“유진우!”송천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분노를 터트렸다.“여봐라. 당장 유진우를 잡아들여! 내 두 손으로 직접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야!”“잠깐만요!”화들짝 놀란 집사가 재빨리 말했다.“진정하세요, 장로님. 유진우 배경이 만만치 않아요
“짐승만도 못한 놈이 내 아들을 죽였어? 무도 연맹을 아예 안중에 두지 않는구나!”송천수의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당장 송 맹주한테 알려서 재림이 복수를 해달라고 해!”“장로님, 맹주님 지금 폐관 수련 중이십니다. 아무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명까지 내리셨어요.”집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폐관 수련하면 뭐? 친조카가 살해당했는데 가만히 있어선 안 되지.”송천수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집사는 여전히 보고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쓸모없는 것 같으니라고! 그깟 배짱도 없어? 내가 직접 가겠다!”송천수는 집사를 확 밀어내고 노기등등한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그런데 문 앞으로 나가자마자 한 무도 연맹 부하가 갑자기 뛰어 들어왔다. 너무 빨리 달려온 탓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송천수와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X발, 눈 어디 두고 다녀? 확 죽여버린다?”송천수는 아직도 풀지 못한 화가 가득했다.“죄송합니다, 장로님. 장로님이 나오시는 걸 못 봤어요.”혼비백산한 무도 연맹 부하는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X발, 눈 똑바로 뜨고 다녀!”송천수는 그냥 지나가려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손에 든 거 뭐야?”“도... 도전장입니다.”무도 연맹 부하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건넸다.“강린파 보스 유진우가 보낸 도전장입니다. 내일 무도 연맹 본부에서 맹주님께 공개적으로 도전하겠대요.”“뭐? 무도 연맹 맹주한테 도전장을?”그 소리에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송만규가 무도 연맹 맹주 자리에 앉은 후로 그에게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송만규는 5대 마스터 중 실력이 가장 강한 리더이고 강남의 무도 1인자라 불리는 걸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이런 절대적인 강자에게 도전장을 내밀 자격이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누가 그런 배짱이 있겠는가?어쨌거나 이런 결투는 승부를 가려야 할 뿐만 아니라 자칫하다간 목숨도 잃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시각 풍우 산장 회의실.유진우는 찻주전자를 들고 두 잔을 따른 후 한 잔은 장 어르신에게, 그리고 나머지 한 잔은 그가 마셨다.“어떻게 됐어요? 도전장 보냈어요?”유진우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먼저 물었다.“네, 보냈어요.”장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무도 연맹 쪽 반응이 어떻던가요?”유진우가 캐물었다.“송만규가 아직 폐관 수련 중이랍니다. 하지만 무도 연맹 사람들이 도전장을 받고 나서는 아주 펄쩍 뛰면서 곧 송만규한테 전해줄 거라고 했어요.”장 어르신은 잔에 담긴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좋아요.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이거예요.”유진우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송재림의 죽음으로 무도 연맹이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이 기회를 빌려 다시 한번 폭탄을 날렸다. 어쨌거나 유진우와 송만규는 언젠가는 죽음의 결투를 펼쳐야 하니까.“보스, 이번 도전은 너무 충동적이지 않나요?”장 어르신이 걱정스럽게 말했다.“송만규는 5대 마스터 중 리더이고 강남 무도 연맹의 일인자라서 실력이 엄청나요. 대 마스터 레벨 이하라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정말 꿈쩍도 하지 않는 큰 산 같은 존재라고요.”장 어르신은 최대한 완곡하게 돌려서 말했다.송만규가 강남에서 무적의 존재인 건 사실이었다. 유진우가 실력이 강하고 자양지존을 죽이긴 했지만 송만규와 비교하면 그래도 실력 차이가 꽤 컸다.만약 5년 혹은 10년 더 수련한다면 유진우의 천부적인 재능으로 송만규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었다.장 어르신은 유진우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좀 참았다가 나중에 복수하면 되질 않는가? 대체 왜 이리 급하게...“내가 송만규한테 질 것 같아요?”유진우는 찻잔을 들고 차향을 맡았다.“승산이 너무 낮아요.”장 어르신도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보스는 인제 고작 20대지만 송만규는 50이 넘었어요. 보스보다 30년 가까이 더 수련했잖아요. 실력과 기초, 그리고 경험까지 모두 앞서는데 지금
...이튿날 아침.무도 연맹 본부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제 유진우가 송만규에게 도전장을 보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무림 전체가 뒤흔들렸다.여러 파벌과 많은 무사들이 이 결투를 보려고 몰려들었다.유진우가 소년 마스터라는 소문은 이미 강남 무도 연맹 전체에 널리 알려졌다. 무도 대회에서 보여준 모습, 자양지존을 죽이던 모습, 그리고 블랙 숲에서의 놀라운 모습은 이미 전설로 남아 널리 퍼졌다.수많은 젊은 무사들이 유진우를 롤모델로 삼고 따라잡아야 하는 목표로 삼았다.물론 송만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강남 무도 연맹의 맹주이자 무도계의 일인자인 그는 무도 연맹을 쥐고 흔드는 최강자였다. 많은 수식어 중에서 하나만 골라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수식어였다.소년 마스터와 무도 연맹 맹주 두 강자의 대결은 당연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그 시각 무도 연맹 대문 앞에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볐다.강남의 크고 작은 파벌들이 거의 다 왔다. 천학문, 청양종, 진혼파, 대비사, 질풍당, 성라문 등등 전부 다 왔다. 그중 어떤 파벌들은 블랙 숲 사건 때문에 유진우에 대한 원망이 꽤 깊었다.이번에 결투를 보러온 건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돈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어쨌거나 유진우가 송만규에게 도전장을 내민 건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태양이 솟아오르기 시작하자 무도 연맹의 대문도 드디어 열렸다. 각 파벌이 속속들이 입장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무장 안을 가득 메웠다. 작은 파벌이나 나중에 온 사람들은 서서 관전하는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질서를 유지하고 누군가 소란을 피우는 걸 방지하기 위하여 무도 연맹에서는 집법팀까지 출동시켰다.“이봐, 무슨 뜻이야? 왜 못 들어가는 건데?”그때 무도 연맹 대문 앞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집법팀이 몇몇 젊은 남녀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연무장은 이미 꽉 차서 더는 아무도 못 들어가니까 다시 돌아가.”집법팀 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내쫓았다.“못 들어간다고? 그럼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