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풍우 산장 회의실.유진우는 찻주전자를 들고 두 잔을 따른 후 한 잔은 장 어르신에게, 그리고 나머지 한 잔은 그가 마셨다.“어떻게 됐어요? 도전장 보냈어요?”유진우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먼저 물었다.“네, 보냈어요.”장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무도 연맹 쪽 반응이 어떻던가요?”유진우가 캐물었다.“송만규가 아직 폐관 수련 중이랍니다. 하지만 무도 연맹 사람들이 도전장을 받고 나서는 아주 펄쩍 뛰면서 곧 송만규한테 전해줄 거라고 했어요.”장 어르신은 잔에 담긴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좋아요.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이거예요.”유진우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송재림의 죽음으로 무도 연맹이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이 기회를 빌려 다시 한번 폭탄을 날렸다. 어쨌거나 유진우와 송만규는 언젠가는 죽음의 결투를 펼쳐야 하니까.“보스, 이번 도전은 너무 충동적이지 않나요?”장 어르신이 걱정스럽게 말했다.“송만규는 5대 마스터 중 리더이고 강남 무도 연맹의 일인자라서 실력이 엄청나요. 대 마스터 레벨 이하라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정말 꿈쩍도 하지 않는 큰 산 같은 존재라고요.”장 어르신은 최대한 완곡하게 돌려서 말했다.송만규가 강남에서 무적의 존재인 건 사실이었다. 유진우가 실력이 강하고 자양지존을 죽이긴 했지만 송만규와 비교하면 그래도 실력 차이가 꽤 컸다.만약 5년 혹은 10년 더 수련한다면 유진우의 천부적인 재능으로 송만규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었다.장 어르신은 유진우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좀 참았다가 나중에 복수하면 되질 않는가? 대체 왜 이리 급하게...“내가 송만규한테 질 것 같아요?”유진우는 찻잔을 들고 차향을 맡았다.“승산이 너무 낮아요.”장 어르신도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보스는 인제 고작 20대지만 송만규는 50이 넘었어요. 보스보다 30년 가까이 더 수련했잖아요. 실력과 기초, 그리고 경험까지 모두 앞서는데 지금
...이튿날 아침.무도 연맹 본부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제 유진우가 송만규에게 도전장을 보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무림 전체가 뒤흔들렸다.여러 파벌과 많은 무사들이 이 결투를 보려고 몰려들었다.유진우가 소년 마스터라는 소문은 이미 강남 무도 연맹 전체에 널리 알려졌다. 무도 대회에서 보여준 모습, 자양지존을 죽이던 모습, 그리고 블랙 숲에서의 놀라운 모습은 이미 전설로 남아 널리 퍼졌다.수많은 젊은 무사들이 유진우를 롤모델로 삼고 따라잡아야 하는 목표로 삼았다.물론 송만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강남 무도 연맹의 맹주이자 무도계의 일인자인 그는 무도 연맹을 쥐고 흔드는 최강자였다. 많은 수식어 중에서 하나만 골라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수식어였다.소년 마스터와 무도 연맹 맹주 두 강자의 대결은 당연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그 시각 무도 연맹 대문 앞에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볐다.강남의 크고 작은 파벌들이 거의 다 왔다. 천학문, 청양종, 진혼파, 대비사, 질풍당, 성라문 등등 전부 다 왔다. 그중 어떤 파벌들은 블랙 숲 사건 때문에 유진우에 대한 원망이 꽤 깊었다.이번에 결투를 보러온 건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돈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어쨌거나 유진우가 송만규에게 도전장을 내민 건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태양이 솟아오르기 시작하자 무도 연맹의 대문도 드디어 열렸다. 각 파벌이 속속들이 입장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무장 안을 가득 메웠다. 작은 파벌이나 나중에 온 사람들은 서서 관전하는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질서를 유지하고 누군가 소란을 피우는 걸 방지하기 위하여 무도 연맹에서는 집법팀까지 출동시켰다.“이봐, 무슨 뜻이야? 왜 못 들어가는 건데?”그때 무도 연맹 대문 앞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집법팀이 몇몇 젊은 남녀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연무장은 이미 꽉 차서 더는 아무도 못 들어가니까 다시 돌아가.”집법팀 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내쫓았다.“못 들어간다고? 그럼
짝!찰진 따귀 소리와 함께 도영민은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졌다.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 일어나지도 못했다.“야! 사람 왜 때려? 막무가내가 따로 없네!”양갈래 머리 소녀가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무도 연맹 사람들이 걸핏하면 사람을 때릴 정도로 막무가내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막무가내? 막무가내인 건 너희들이지.”집법팀 팀장이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너희 같은 삼류 파벌들이 무슨 자격으로 무도 연맹에 들어가 관전해? 제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저리 썩 꺼져. 안 그러면 내 눈에 띌 때마다 확 때릴 거니까.”“지금 세력을 믿고 남을 업신여긴다 이거지? 신고할 거야!”양갈래 머리 소녀가 분노를 터트렸다.“신고?”집법팀 팀장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이년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그러더니 갑자기 칼을 뽑아 들고 양갈래 머리 소녀를 향해 내리치려 했다. 화들짝 놀란 소녀가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그런데 칼이 거의 소녀에게 닿을 무렵 커다란 손이 나타나더니 집법팀 팀장의 팔을 확 잡았다. 날카로운 칼날이 허공에 멈춘 채 꿈쩍도 하질 않았다.나선 사람은 잘생긴 얼굴에 옷차림이 평범한 한 청년 남자였다. 그리고 남자 뒤에는 심하게 야윈 노인 한 명이 있었다.“넌 뭐야? 감히 날 막아?”집법팀 팀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어떻게 걸핏하면 사람을 때리고 죽여? 무도 연맹 사람은 다 이렇게 무지막지해?”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무도 연맹은 늘 이래왔어. 불만 있어?”집법팀 팀장이 흉악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인마, 경고하는데 오지랖 넓게 끼어들지 마. 안 그러면 너도 가만 안 둬.”“무도 연맹 참 대단하네. 난폭하고 약자도 괴롭히고. 그 좋던 무도 연맹이 너희들 때문에 개판이 됐어.”유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꺼져! 안 그러면 내 손에 죽는 수가 있어.”집법팀 팀장의 인내심이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어리석은 것.”유진우는 손가락을 내밀어 집법팀 팀장의 가슴팍을 살짝 튕겼다.쾅!
그때 양갈래 머리 소녀가 유진우와 장 어르신 앞으로 다가와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인사했다.“경월궁의 제자 임다해라고 합니다. 두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난 유진우, 이분은 장 어르신이에요.”유진우가 간단하게 소개했다.“유진우 선배님, 장 어르신.”임다해는 다시 한번 깍듯하게 인사했다.“X발, 날 때렸어? 죽여버릴 거야.”조금 전 따귀를 맞은 도영민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집법팀 팀장 앞으로 달려가더니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면서 분노를 터트렸다.다짜고짜 한 대 얻어맞아서 죽이고 싶은 심정마저 들었다.“됐어요, 그만 해요, 선배. 더 때렸다간 죽겠어요.”상황이 심상치 않자 임다해가 재빨리 나서서 말렸다.“흥, 이런 놈은 맞아 죽어도 싸. 빌어먹을 놈!”도영민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발길질을 두 번 더 하고 나서야 만족스럽게 돌아섰다.“선배님, 어르신, 저희 큰 선배 도영민입니다.”임다해가 재빨리 소개했다.“반갑습니다.”유진우가 고개를 까딱였다.“흥! 방금 쓸데없이 끼어든 게 당신들이야?”도영민의 말투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네?”유진우는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의아해했다.‘이 자식 약 잘못 먹었나?’“선배, 지금 이게 무슨 태도예요? 방금은 이분들이 우릴 도와주셨어요.”임다해가 재빨리 설명했다.“도와줬다고? 저 사람들 도움이 필요해? 저 사람들이 나서지 않아도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어.”도영민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겨우 자신을 내세울 기회가 생겼는데 남에게 뺏겼으니 당연히 언짢았다.“혼자서 해결할 수 있었다면 따귀 한 방에 그렇게 꼬꾸라지진 않았겠지.”장 어르신이 불쑥 한마디 했다.“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도영민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아까 저놈이 기습하지 않았더라면 날 다치게 했을 것 같아? 솔직하게 말할게. 만약 제대로 붙는다면 당신들 다 덤벼도 내 상대가 아니야.”“맞아! 우리 큰 선배는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나고 실력도 강해. 혼자서 백 명쯤 해
“됐어요, 선배. 그만 해요!”장 어르신의 한계가 거의 다다를 무렵 임다해가 나서서 말렸다.“어쨌거나 두 분은 우릴 도와줬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너무했어요.”조금 전 유진우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임다해는 이미 황천길로 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도영민이 예의 없게 함부로 구는 바람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다해야, 그게 아니라 이 자식들이 지금 우리 경월궁을 깔보잖아. 경월궁의 필살기를 보여줘야만 더는 업신여기지 않지.”도영민이 또박또박 말했다.“보여주긴 뭘 보여줘요? 이건 그냥 도발이잖아요! 계속 이러면 화낼 거예요!”임다해가 눈살을 찌푸렸다.“알았어,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가만히 있을 테니까 화내지 마.”도영민은 임다해에게 잘 보이려는 듯 웃음을 잃지 않았다.“선배님, 어르신,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선배가 좀 충동적이었어요. 부디 너그러이 봐주세요.”임다해는 돌아서서 유진우와 장 어르신에게 허리 굽혀 사과했다.“됐어. 이 아가씨를 봐서 더는 뭐라 하지 않을게.”장 어르신은 결국 참아냈다.“흥! 잘난 척하긴.”도영민이 입을 삐죽거렸다. 만약 진짜로 싸운다면 주먹 두어 방에 상대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선배님, 어르신, 안으로 들어가시죠.”임다해가 한 손으로 안내했다.“들어가시죠.”유진우는 별다른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그들 일행은 무도 연맹으로 들어온 후 곧장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 시각 연무장 안은 사람들로 붐볐고 여러 파벌이 한 데 모여있었다. 물론 맨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무림에서 이름 있는 자들이었다.경월궁 사람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들의 신분에 이런 성대한 결투를 본 적이 없었다. 자리한 사람들 중에는 평소 그들이 우러러보던 거물들이 매우 많았다.“어머, 저 사람은 질풍당의 박충재 아니야? 발기술이 신의 경지에 이르러서 눈을 밟아도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 정도래. 정말 강남 무림의 젊은 세대 중에서 최고 고수야.”“박충재뿐만이 아니라 성라문의 서도훈
그 말이 떨어지자 주변의 무사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어디서 튀어나온 X신이야? 감히 소년 마스터랑 비교해?’소년 마스터는 자양지존을 죽이고 무도 연맹 맹주에게 도전장을 내민 최고의 강자였다. 명문 파벌의 천재 수석마저 함부로 나대지 못하는데 이름도 없는 놈이 큰소리를 치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선배, 말조심해요!”임다해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소년 마스터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무도 천재예요. 우리 같은 사람이 함부로 비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요.”소년 마스터는 20대에 무도 마스터가 되었지만 그들은 아직 본투비 레벨에도 다다르지 못했다. 양측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그들이 평생 노력한다고 해도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다해야, 상대를 과대평가하고 우릴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 난 나중에 마스터가 될 사람이야. 소년 마스터와 비교하면 아무 차이 없어.”도영민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맞아! 선배가 제대로 수련한다면 언젠가는 마스터를 돌파할 수 있어.”경월궁의 몇몇 제자들은 도영민의 편을 들었다.“젊은 사람이 이렇게 자기 주제를 몰라서야, 원. 고작 후천무사인 주제에 마스터가 되겠다고?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네.”장 어르신이 불쑥 한마디 했다.수십 년간 수련한 그도 지금은 반보 마스터였고 아직 마스터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천부적인 재능도 없고 실력도 없는 놈이 마스터가 되는 걸 식은 죽 먹기라 했고 심지어 유진우와도 비교했다. 정말 무지몽매하기 짝이 없었다.“흥,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영감이 내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리가 있겠어?”도영민은 고개를 쳐들고 또박또박 말했다.“내가 큰소리치는 게 아니라 나한테 5년만 주면 무조건 마스터 경지로 돌파할 수 있어.”“5년?”장 어르신이 코웃음을 쳤다.“50년 줘도 절대 불가능하니까 꿈 깨!”“어쭈? 영감탱이가 날 무시한다 이거야? 나랑 붙어볼래?”두 눈을 부릅뜬 도영민은 당장이
“뭐? 진당의 수석 제자 태소원?”그 소리에 주변이 떠들썩해졌다.현무문은 강남에서 손꼽히는 명문 파벌이었고 진당의 수석 제자인 태소원은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실력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고 검법도 아주 뛰어났다. 또래 중에서는 그야말로 최고였다.“듣건대 태소원은 엄청 매정해서 사람을 죽일 때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대. 저 자식들 큰일 났다.”“쌤통이야. 삼류 파벌 제자 주제에 소년 마스터와 비교하다니. 정말 무지몽매하단 말이지.”“...”사람들은 구경거리를 기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무도계에서는 주먹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고 실력이 강한 사람의 말을 들어야 했다.“소원 선배님이시군요. 존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임다해는 두 주먹을 가슴 앞에 맞잡고 인사를 건네면서 조금 전의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태소원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도영민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너 방금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나고 실력도 강하다고 했지? 어디 한번 보자, 어느 정도인지.”그러더니 장검을 뽑은 다음 칼집을 도영민의 발밑에 던졌다.무도계에서 이 행동은 도전을 뜻했다. 만약 도전장을 받는다면 제대로 한판 붙어야 했고 받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명성이 바닥날 것이다.“선배님, 저희 큰 선배가 방금 농담한 거니까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상황이 심상치 않자 임다해가 웃으면서 수습하려 했다.“오늘은 마스터들의 결투를 보러 온 거잖아요. 우리끼리 싸워서야 하겠어요? 부디 넓은 마음으로 봐주세요.”“흥! 소년 마스터는 내 롤모델이란 말이야. 네까짓 게 뭔데 그런 큰소리를 쳐?”태소원이 냉랭하게 말했다.“지금 두 가지 선택을 줄게. 무릎 꿇고 사과하거나 도전을 받고 두 다리가 부러지거나!”“태소원! 적당히 나대!”참다못한 도영민이 폭발했다.“현무문 믿고 이렇게 까부는 거잖아. 네가 그렇게 대단해? 일대일로 붙는다면 널 이길 수 있을지도 몰라.”“선배,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그의 말에 임
속도도 매우 빠르면서 정확하기까지 했다.“최운장!”도영민에게 가까이 다가간 태소원은 손바닥을 펼쳐 그의 복부를 내리치려 했다.“흥, 이깟 잔기술!”도영민이 코웃음을 치며 주먹을 뻗으려던 그 순간 태소원의 손바닥이 그의 가슴팍을 가격했다.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도영민은 마치 자동차에 치인 것처럼 수 미터 날아갔다. 날아가면서 피까지 토한 바람에 시뻘건 안개가 생겼다. 바닥에 떨어진 후에도 이삼 미터 정도 밀려나서야 겨우 멈췄다.“선배!”그 광경을 목격한 경월궁 제자들이 경악한 얼굴로 재빨리 달려갔다. 늘 자랑스럽게 여겼던 큰 선배가 일격도 버티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한 방에 날아갔어? 너무 약한 거 아니야?’“붙기 전에는 그렇게 자신만만하면서 온갖 허세를 다 부리더니. 고작 이 정도였어?”“실력이 형편없구나. 일격도 버티지 못하면서 태소원한테 덤볐어? 정말 주제도 모르는 놈이야.”“이래서 작은 파벌이라 하나 봐. 현무문 같은 거물이랑 아예 비교도 안 되잖아. 정말 압도적이었어.”중상을 입고 피를 토하는 도영민을 보며 사람들은 경멸 섞인 표정을 지었다.‘태소원의 일격도 당해내지 못하면서 소년 마스터를 넘어서겠다고? 제정신이야?’“쓸모없는 놈!”태소원이 냉랭하게 말했다.“너 같은 놈은 소년 마스터의 시중 들 자격도 없어. 대체 무슨 용기로 그런 큰소리친 거야?”“너...”그녀의 말에 비틀거리면서 겨우 일어선 도영민이 또다시 시뻘건 피를 토하면서 털썩 주저앉았다.“앞으로 밖에서는 말조심 좀 해. 다시 한번 소년 마스터를 모욕했다간 절대 가만 안 둬!”태소원은 옷소매를 휘날리며 돌아섰다. 그녀가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터주었다.“감히 날 모욕해? 죽여버릴 거야!”도영민은 이를 꽉 깨물더니 갑자기 옆 사람들을 밀쳐내고는 미친 산짐승처럼 태소원을 향해 돌격했다.“죽어!”그녀에게로 가까이 다가간 도영민은 펄쩍 뛰어오른 후 태소원의 등을 주먹으로 내리치려 했다.“조심해요!”인파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한참 동안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무엇보다 이제 겨우 내우외환을 해결했는데, 유만수가 자리를 넘겨준다고 하니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여보,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요?”옆에 있던 이의진이 권유했다.“그러니까요. 위왕 님, 아직 몸도 정정하시고 지금은 백세시대인데 어찌 이렇게 일찍 자리를 넘겨줄 생각을 하십니까?”장범규는 정직하고 솔직하게 물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묻고 싶었지만, 감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만약 누군가 나서서 유만수를 설득한다면 새로운 위왕 님의 미움을 살 수도 있으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조용하게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여러분,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마침 여러분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후사를 미리 안배하는 것도 제 소원을 이루는 셈입니다.”유만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여보...”이의진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재하며 말했다.“그만. 난 이미 결정했으니 더 이상 설득할 필요 없어.”유만수는 다시 모든 사람을 향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여러분, 저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선정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손에 미래 서경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저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누가 미래의 서경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그건...”유만수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당황했다. 형세를 보아하니 유만수는 내부 투표를 통해 지지자가 많은 사람한테 서경을 맡길 생각인 것 같았다.그러니 문제는 유진우를 선택할 것인가 유천우를 선택한 것인가였다.재능과 능력 면에서 보면 당연히 유진우가 한 수 위이지만 집안 내력과 배후 세력으로 판단하면 유천우가 한 수 위였다.유천우는 최근 몇 년 동안 전쟁에서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미래가 기대된다는
보물 지도를 나눈 뒤 유진우는 사람을 안배해 호룡각의 기지를 다시 한번 정리했다. 이곳은 위치가 은밀하여 수비는 쉬우나 공격하기는 아주 어려웠고 또한 두 나라의 국경 지대에 놓여있었다.그러니 이곳을 군사 요새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만약 앞으로 서방 제국과 충돌이 생긴다면 이곳이 중요 군사 지점이 될 것이고 여기서 출병한다면 반드시 예상치 못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겠지만 미리 준비해 둔다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해당 건을 해결한 뒤 유진우는 사람들을 데리고 서경왕부로 돌아갔다.이번에 유진우가 서경의 복병을 해결하고 대승을 거두었기에 유만수는 서경의 왕으로서 특별히 부내에서 연회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이번 사건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초청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한동안 왕부 안팎은 매우 시끌벅적했다.유만수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한테 매우 기쁜 소식이었고 호룡각을 멸한 건 더욱 기쁜 일이니 축하할 이유가 충분했다.밤이 되자 왕부 안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서경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각 고급 장교, 각 고위 간부, 그리고 각 방면의 거물들이 모두 왕부에 모여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여러분, 후배인 제가 먼저 몇 마디 하겠습니다.”연회에서 유천우는 먼저 일어나 손에 잔을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이번에 왕부가 위기를 맞았었지만, 여러분은 떠나지 않고 앞다투어 왕부의 근심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 제가 먼저 여러분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말을 마친 유천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도련님이 너무 겸손하네. 우리는 서경의 신하로서 당연히 왕부와 함께해야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별거 아니야.”평양 제후 장범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맞는 말이야. 오랜 시간을 위왕 님과 함께 보냈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늘 같이했으니, 왕부가 곤경에 처했다면 당연히 전폭적으로 도와야지. 나라를 위해서
“맞아요. 길이라는 건 한번 잘못 들어서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죠. 사철수의 모든 행동은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가 없어요. 누구처럼 죄를 공으로 대처할 기회조차 없죠.”유천우는 유태범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유태범이 셋째 삼촌이 아니고 아버지의 인자함이 없었다면, 그뿐만 아니라 형제의 상잔을 원하지 않았고 손실이 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역모는 열 번 죽어도 모자란 죄였다.“흠 흠.”유천우의 눈빛에 유태범은 괜히 마음에 찔려 화제를 돌렸다.“장혁아, 세 개의 보물 창고를 모두 합치면 가치가 엄청날 텐데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당연히 전부 서경으로 가져가야죠. 설마 그 잡놈들한테 남겨두기라도 하겠다는 거예요?”유천우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세 개의 보물 창고를 우리가 전부 독차지할 수는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우리만의 힘으로 호룡각을 멸망시킨 건 아니잖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야. 그러니 보물 창고도 공평하게 함께 나눠야지.”“공평하게 나눈다고? 장혁아, 장난이지?”유태범은 어리둥절해서 격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방금 사철수의 말을 들었잖아. 호룡각의 보물 창고는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것들이고 그 수가 엄청날 텐데, 그걸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눈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이번에 호룡각을 소탕하는 데 유태범은 뛰어난 공을 세웠으니, 나중에 또 다른 표창을 받을 수도 있었다.다시 말해, 서경왕부가 더 많은 보물을 얻어야만 유태범의 이익도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보물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보물도 좋지만, 도의도 지켜야죠. 사람들이 멀리서 우리를 도와주러 왔는데, 우리가 보물을 독차지한다면 그건 배은망덕한 사람이죠.”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그렇지만 굳이 똑같이 나눌 필요는 없잖아. 적당하게 성의를 보여주면 되는 거지.”유태범이 말했다.“저는 이미 마음먹었어요. 제 결정이 불만스럽다면 유만수에게 일러바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사철수 씨,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사진이라도 찍어줘요? 빨리 보물 지도를 찾아내세요.”불만으로 꼴 독 찼던 유태범은 못마땅한 얼굴로 사철수에게 화풀이했다.“알겠어요. 서두를게요.”유태범의 말에 사철수는 즉시 합금으로 되어 있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채원진의 부러진 손을 들어 중간 부분에 있는 감응 위치를 살짝 눌렀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대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자, 금속으로 만든 금고가 드러났다.금고는 약 33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운데에는 골드바가 사람의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골드바 외에도 그 주변에는 다양하면서도 진기한 보물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고 귀중한 물건들이었다.“이곳은 채원진의 개인 금고예요. 채원진은 마음에 드는 모든 물건을 전부 이곳에 수집했어요.”사철수가 설명했다.“보물들이 어마어마하네요.”유천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가면 성을 하나 사고도 남겠네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룡각의 다른 세 보물 창고에 비하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새 발의 피죠.”사철수가 설명했다.“정말이에요?”유천우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당신 말대로라면 호룡각의 보물을 전부 모으면 산더미가 되겠는데요?”“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아왔으니, 산더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사철수는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빨리 모든 보물을 긁어모으고 싶네요.”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보물 지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유태범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어요.”사철수는 맨 안쪽 선반으로 가서 위에 놓여있는 정교한 박달나무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우에게 건넸다.유진우가 열어보니 안에는 양피지 3장이 들어있었다. 모든 양피지에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도 중앙에는 보물 창고의 위치가 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보물 지도가 진짜라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보물 지도는 어디 있나요?”유진우가 추궁했다.“채원진의 지하 밀실에 있어요.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모시지요.”사철수가 말했다.“지하 밀실?”유천우는 실눈을 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죠? 나중에 나를 악랄하다고 탓하기 싫으면 그런 생각은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밀실 같은 건물에는 함정과 암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천우는 사철수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저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사철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앞서서 안내하세요.”유진우가 두 근위병에게 눈치를 주자 근위병 두 명이 와서 사철수를 일으켜 세웠다.“잠깐만요. 밀실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려면 채원진의 손이 필요해요.”사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건 쉽죠.”유천우는 즉시 칼을 빼 들어 채원진의 오른손을 잘라 사철수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선물이에요.”사철수는 징그러웠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채원진의 손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유진우와 몇몇 사람은 사철수를 따라 기지로 들어갔고 마침내 지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사철수는 문을 열고 벽 쪽으로 다가간 다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그림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나의 버튼이 있었다.사철수가 손을 내밀어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갑자기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사철수가 유진우를 포함한 몇 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뒤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반 시간 남짓 지나자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몇 명 사람들의 눈에는 넓고 호화로운 지하 밀실이 들어왔다.말이 밀실이지 사실 호화 저택에 가까웠다.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생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많은 물과 식량도 수집되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혼자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핵 방지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