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의 신분을 알게 된 안도균은 온몸에 힘이 풀렸다.그는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두 눈에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본인은 이미 끝장났다는 걸 철저히 깨달았다.아무도 그를 구해줄 수 없고 또 감히 그럴 수도 없다.“이 녀석 끌어내.”안병서의 명령 하에 부하들이 안도균을 꽁꽁 묶어 차에 실었다.비록 진실을 알게 됐지만 안도균은 여전히 평생 블랙 프리즌에 갇혀 있어야 한다.그곳에서 나갈 방법은 단 하나, 죽은 뒤 사람들에게 들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뿐이다.“멈춰! 다들 뭐 하는 거야? 당장 안도균 씨를 내려놔!”이때 진경준이 두 명의 여자 호위를 데리고 기세등등하게 걸어 나왔다.실은 참견하고 싶지 않았지만 안도균의 실력이 너무 볼품없었다!싸움에서 졌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잡혀가기까지 하다니, 참다못한 진경준이 그제야 입을 열고 이 상황을 말렸다.안도균이 폐인인 건 맞지만 아직 조금이나마 이용 가치가 남아있다.우금환을 손에 넣기 전까지 안도균에게 일말의 사고도 일어나선 안 된다.“상관없는 사람은 참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안병서가 차갑게 경고장을 날렸다.“내가 한사코 참견하겠다면 어쩔 건데?!”진경준이 두 손을 옷 주머니에 넣고 거만을 떨며 앞으로 다가왔다.“넌 도균의 부하야?”유진우가 담담하게 물었다.“부하? 나 참... 걔가 내 따까리겠지!”진경준이 머리를 쳐들고 오만한 표정으로 답했다.“다만 개를 패더라도 주인이 누군지는 알아야지. 내 허락도 없이 누가 감히 안도균을 데려가래? 나 화내기 전에 얼른 안도균 풀어!”“내가 싫다면?”유진우가 되물었다.“싫어? 하하... 이 새끼가!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아냐고? 감히 나한테 이딴 식으로 말을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진경준이 능멸에 가까운 눈빛으로 말을 쏘아붙였다.“네가 누군지는 내 알 바 아니고, 관심도 없어. 안도균은 오늘 아무도 못 구해. 그러니까 너도 화를 자초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유진우가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이
그 시각, 이씨 일가의 별장 안에서.이청아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청아야! 너 드디어 왔구나. 엄마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누나! 괜찮아? 안에서 뭐 나쁜 짓 당하진 않았어?”장경화, 이현 일행이 그녀에게 안부를 물으며 잔뜩 흥분해 있었다.이청아가 서태영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알게 된 이후로 그들은 줄곧 두려워하며 딸아이가 걱정됐다. 이청아가 봉변이라도 당했을까 봐 마음을 졸였다.하여 갖은 인맥을 동원하고 돈도 가득 건넸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다들 불안하고 초조해할 때 뜻밖에도 이청아가 스스로 집에 돌아왔다.“엄마, 나 괜찮아요. 걱정 끼쳐드려서 미안해요.”이청아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녀는 오늘 많이 놀라긴 했지만 다행히 무사하게 집에 돌아왔다.“이게 다 그 재수탱이 유진우 때문이야! 걔만 아니면 너도 잡혀들어갈 일이 없잖아!”장경화가 원망을 늘려놓았다.“맞아! 비겁하고 파렴치한 자식, 부도덕한 일만 골라서 하지! 누나 앞으로 그 녀석 멀리해. 안 그러면 조만간 피해를 볼 거야!”이현도 한마디 덧붙였다.“사실 이번 일은 진우랑 상관없어. 누군가가 일부러 우릴 함정에 빠트렸어.”이청아가 해명했다.“왜 상관이 없어? 걔가 떳떳하면 어떻게 잡힐 리가 있겠어?”“맞아! 왜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유진우만 해쳐? 걔 성품이 비열하다는 걸 충분히 증명해주잖아!”두 모자는 연신 맞장구를 쳐댔다.이청아는 다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래도 호준이가 제일이라니까. 네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 사람을 찾아 나서며 도움을 청했어. 이런 남자야말로 백 년에 한 번 나타날까 하는 인물이야!”장경화가 불쑥 화제를 돌렸다.“맞아, 누나! 이번에 호준 형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누난 아마 나오지도 못했을 거야!”이현이 옆에서 부추겼다.“호준 선배가 도와줬다고? 확실해?”이청아는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 형이 아니면 또 누가 있어? 강씨 일가와 돈독한 사이라 강천호 씨한테
눈을 감고 입을 삐죽거리는 조선미의 매혹적인 모습을 보며 유진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입은 왜 그래요? 불편해요?”“그거 아니고요. 나한테 뽀뽀 하라고요.”조선미는 할 말을 잃었다.“네?”유진우의 눈꼬리가 씰룩거렸다.“그 ... 그래도 돼요?”“안 하면 말고요. 지금 아니면 다음 기회는 없어요.”조선미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어이구, 주는 기회도 놓쳐버리는 바보 멍청이야!”2층에서 훔쳐보던 애꾸눈 노인이 참다못해 한숨 쉬며 한마디 했다.“가만히 계셔.”유진우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려 조선미의 완벽한 얼굴과 앵두 같은 주홍빛 입술을 보는 순간 문득 자신이 무언가를 놓친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 이제 일 얘기해요.”조선미는 화제를 다른데 돌렸다.“최근에 우리 조신 의약의 핵심 인력들이 강천호한테 스카우트되여 지금 중요한 팀을 이끌어갈 리더가 부족해요. 진우 씨의 의술이 뛰어나니까 명예 수석 의사를 맡아줄 수 있을까요?”“그건... 제가 할 수 있을까요?”유진우는 난감했다. 환자 치료하고 사람을 살리는 건 자신 있지만 리더를 한다는 건 전혀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별로 할 거 없어요. 그냥 가끔씩 저를 도와서 진행 상황을 체크해 주면 돼요. 그래도 하기 싫으면 그냥 이름만 걸어놔요. 나중에 적합한 사람을 찾으면 바로 바꿔드릴게요.”유진우가 조금 망설이는 것을 본 조선미는 불쌍한 표정을 하며 말했다.“진우 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저는 조신 의약이 강천호한테 당하는 걸 지켜만 봐야 돼요.”그 말에 유진우는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았어요. 해볼게요.”“도와줄 줄 알았어요!”조선미는 눈썹을 치켜뜨고 웃으며 말했다.“가요. 집에 가서 천천히 얘기해요.”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녀는 유진우의 손을 잡고 바로 차에 탔다.30분 후, 천향원 내.조아영과 어머니 진서현은 한창 두 명의 손님과 얘기하고 있었다.한 명은 잘 차려입고 잘생
“선미야, 왜 데려왔어?”진서현은 얼굴을 찡그렸다.“여긴 내 집이에요. 내가 원하는 사람을 누구든 데려올 수 있어요.”조선미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그리고 수석 의사 자리의 담당자는 바로 유진우 씨에요.”“뭐?”그 말에 모든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선미야 너 농담하는 거지? 저 사람이 무슨 자격이 있어서 우리 조씨 가문의 수석 의사를 맡는다는 거야?”진서현은 다소 불쾌했다.“진우 씨는 의술도 뛰어나고 약학에도 능통하니 수석 의사를 맡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조선미가 강하게 말했다.“너 ...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진서현은 약간 흥분했다.“다들 그만해요. 싸우지 말고 할 말 있으면 앉아서 천천히 얘기해요.”조아영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유진우 씨, 제가 소개할게요. 이분은 우리 엄마예요. 전에 만나 뵀었죠. 그리고 이분은 저의 사촌 오빠 조준서에요.”“사모님 안녕하세요. 조준서 씨 안녕하세요.”유진우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네가 바로 선미를 귀찮게 하는 기생오라비야?”조준서는 유진우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경멸하는 눈길은 발밑의 개미를 보는 듯했다.유진우의 눈썹에 살짝 주름이 잡혔었지만 금세 평상심으로 돌아왔다.“대답 안 해? 왜 벙어리야?”조준서가 턱을 들어 올리며 명령했다.“조준서 씨,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못 알아들은 거야? 아니면 일부러 멍청한 척하는 거야?”조준서는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더니 또 말했다.“좋아, 그럼 질문을 바꾸지. 네가 라희 죽였어?”“제가 죽였어요, 그런데 ...”유진우가 해명하려는데 조준서가 큰 소리로 끼어들었다.“알았어. 인정했으니 됐군. 라희는 우리 조씨 가문의 핵심 인력이야, 이렇게 그냥 죽을 수는 없지.”조준서는 위패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계속했다.“당장 라희의 위패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해.”“응?”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는 그냥 경멸이었다면 지금은 노골적인 굴욕감을 주었다.“뭘 오해하신 것 같네요? 당신이
“응?”조선미의 갑작스러운 호통에 조준서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선미야, 너 기생오라비 때문에 나한테 소리 지르는 거야?”그가 유진우를 억압한 이유는 한편으로는 눈꼴사나워서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미의 태도를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유진우 씨는 나의 은인이야. 감히 건드리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명심해!”조선미는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준서가 사촌이 아니었다면 진작 귀뺨을 후려쳤을 것이다.“좋아 ... 아주 좋아!”조준서의 안색이 좀 흉해졌다.“라희 문제는 그렇다고 해. 수석 의사 자리는 자격 없어.”이건 권력을 뺏기 위한 첫 단추이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자격이 있고 없고는 내가 결정해.”조선미는 담담하게 말했다.“선미야, 네가 가진 모든 것은 가문에서 준거야. 만약 네가 공사 구분을 못하고 가문의 이익에 손해를 끼친다면 나도 본사에 보고할 수밖에 없어.”조준서가 협박을 했다.“그러든지 말든지.”조선미는 조준서의 협박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잠깐만!”이때 진서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백령환의 연구는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수석 의사 자리 역시 능력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유진우 씨는 아직 너무 젊어, 내가 생각해도 황 선생님이 적합한 것 같구나.”그도 역시 유진우가 조신 의약의 중요한 직책을 맡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유진우 씨는 의술이 뛰어나요 결코 황 선생님한테 뒤지지 않아요.”조선미가 반박했다.“좋아! 의술이 그렇게 뛰어나다면 황 선생님과 한 번 겨뤄보든지!”조준서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말했다.그 말에 조선미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순간 자신이 상대방의 덫에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떻게 겨뤄요?”이때 유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수석 의사 자리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조준서의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화가 나서 그를 좌절시키고 싶었다.“젊은이, 의술로 싸우는 건 너무 지루하니까, 독약 게임을 해보는 건 어떤가?”흰 눈썹
양측 합의 후 현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돌았다.유진우와 흰 눈썹 영감은 각각 하인한테 약초를 사 오게 했다.두 사람은 현장에서 독약을 만들어 복용하고 승부는 각자의 실력에 맡기기로 했다.“언니, 유진우 씨 괜찮겠어? 독살 당하면 어떡해?”조아영은 걱정이 되었다.“본인이 자신 있다고 하니 믿어보자.”조선미는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불안했다.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유진우한테 패배를 인정하게 하고 싶었다.“그렇긴 하지만 유진우 씨는 의학 전공이잖아. 독약 분야는 황 선생님한테 안될 텐데.”조아영은 고개를 저었다.전공 분야가 다른데 어떻게 아마추어가 프로와 비교할 수 있을까?두 자매의 걱정에 비해 메인 석에 있는 진서현은 담담했다.‘독술사와 독을 비기다니 진짜로 오만한 건지? 멍청한 건지?’물론 지금 이 상황이 그녀는 너무 재미있었다. 유진우가 진다면 그 결과는 불구 아니면 죽는 건데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딸의 결혼 땜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기생오라비 씨 그냥 빨리 패배를 인정하지? 독약이 만들어지면 후회할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조준서가 압박하기 시작했다.“솔직히 참 존경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남한테 맡기다니. 혹시 이런 생각은 해보셨나요? 황 선생님이 해독을 못하면 죽는 건 당신이라는 것을?”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헛소리하지 마. 황 선생님은 수년간 독술을 연구해왔어, 너한테 절대 질수 없어. 너 각오해야 할 거야.”조준서의 말에 유진우는 할 말 없다는 듯 웃기만 했다.잠시 후 약초 사러 나갔던 하인들이 연이어 돌아왔고 약초를 구한 흰 눈썹 영감은 곧바로 독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움직임이 너무 빨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셨다.반대로 유진우는 서두르지 않고 아주 여유롭게 움직였다.그 사이 흰 눈썹 영감의 독이 완성되었는데 검은색에 약간의 비린내가 났다.“저기 기생오라비 씨 독약이 완성됐는데 마실 용기 있나?”조준서는 약병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도발적인 눈빛을
“뭐? 똥?!”조준서는 바로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뱃속으로 넘어가서 아무리 토하려고 노력해도 뱉어낼 수 없었다.과거에 똥을 먹인다는 건 그냥 말에 불과했지만 이제 현실이 되였다.“유진우 씨가 오빠한테 똥을 먹이다니, 앞으로 어떻게 밥을 먹지?”조아영은 코를 막고 역겨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피했다.“조준서가 똥 먹은 건 쌤통이야.”조선미도 너무 재미있었다.“야! 너 일부러 나한테 장난친 거지?”조준서의 얼굴에는 침울함이 가득했고 사람을 잡아먹고 싶은 표정을 했다. 그도 그럴 듯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굴욕은 처음이었다.“독을 만드는 레시피는 당연히 내 마음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건 뭐든 넣을 수 있는 거죠.”유진우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좋아, 아주 좋아! 너 배짱이 있어! 조금 있다가 어디 두고 보자. 나한테 무릎을 꿇게 될 거야.”조준서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누가 누구에게 빌지 모르겠네요. 옆에 분한테 물어봐요. 내가 제조한 독을 해독할 수 있는지?”“황 선생님 빨리 해독해 주세요.”조준서는 흰 눈썹 영감을 재촉했다. 자신의 고귀한 몸이 손상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살펴볼게요.”흰 눈썹 영감은 우선 먹다 남은 독약을 집어 들고 먼저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고 다음으로 손가락에 묻혀 혀끝에 대고 핥았다.“얼마나 대단한 건가 했더니 칠충독이네요.”흰 눈썹 영감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는 듯이 웃었다.“칠충독? 그게 뭐죠?”조준서가 물었다.“칠충독은 일곱 종류의 독충을 가루로 만들어 섞어 만든 독약입니다.”흰 눈썹 영감은 계속해서 자신 있게 말했다.“생각이 맞는다면 이 일곱 가지 독충은 뱀, 전갈, 두꺼비, 지네, 거미, 독벌, 불개미입니다.”“정말요? 한번 맛만 보고 다 알아요?”조아영은 충격을 받았다. 레시피를 그렇게 명쾌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일반인은 아닐 것이었다.“독술사 맞네요. 실력도 대단하시네요.”유진우는 무심하게 웃었다. 상대의 능력을
“젊은이 무례하지 말게.”흰 눈썹 영감은 흥분하며 말했다.“지금 조준서 뿐만 아니라 자네도 독약을 먹었어. 만약 해독제가 없으면 자네도 내일을 넘기지 못할 거네.”“그래요? 그럼 누가 먼저 죽는지 보자고요.”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자네 ...”흰 눈썹 영감은 숨이 막혔다. 지금 상황을 봐서는 조준서가 먼저 죽을게 뻔했기 때문에 오늘 내기는 무승부로 하고 싶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동의를 하지 않는다.“유진우 빨리 해독제 내놔. 우리가 패배한 거로 해.”조준서는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지만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이를 갈며 말했다.“조준서 씨, 말로만 하는 것은 성의가 없잖아요.”유진우가 머리를 저었다.“유진우 너 이쯤에서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조준서는 화가 치밀었다.“잘못을 했으면 인정해야죠. 너무 성의가 없는데요?”“나더러 무릎 꿇으라고, 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조준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당연히 난 자격이 없겠죠. 그럼 이 독약은 알아서 해결해요.”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했다.“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조준서의 눈에서 맹렬한 빛이 번쩍였다.“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받은 만큼 돌려드리는 것뿐이에요.”유진우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됐어! 다들 그만해.”이때 진서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유진우 씨, 빨리 해독제 내놔요. 준서한테 무슨 일 생기면 당신 감당 못해요.”“사모님 사내대장부가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죠.”“뭐? 오늘 조씨 가문과 맞서겠다는 건가?”진서현의 예쁜 얼굴이 차가워졌다.유진우가 얘기하면 어려움을 알고 물러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분별이 안 될 줄은 몰랐었다.“쓸데없이 겁주지 마요!”조선미가 보다 못해 갑자기 말했다.“아까 조준서가 유진우 씨를 괴롭힐 때는 아무 말도 안 하시더니, 조준서가 당하니까 바로 나서시네요?”“준서는 너의 사촌 오빠야, 왜 남을 도와 얘기해?”진서현은 얼굴을 찡그렸다.“저는 도리가 있는 쪽 편이에요. 그리고 이건 조준서가 먼저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