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야, 왜 데려왔어?”진서현은 얼굴을 찡그렸다.“여긴 내 집이에요. 내가 원하는 사람을 누구든 데려올 수 있어요.”조선미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그리고 수석 의사 자리의 담당자는 바로 유진우 씨에요.”“뭐?”그 말에 모든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선미야 너 농담하는 거지? 저 사람이 무슨 자격이 있어서 우리 조씨 가문의 수석 의사를 맡는다는 거야?”진서현은 다소 불쾌했다.“진우 씨는 의술도 뛰어나고 약학에도 능통하니 수석 의사를 맡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조선미가 강하게 말했다.“너 ...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진서현은 약간 흥분했다.“다들 그만해요. 싸우지 말고 할 말 있으면 앉아서 천천히 얘기해요.”조아영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유진우 씨, 제가 소개할게요. 이분은 우리 엄마예요. 전에 만나 뵀었죠. 그리고 이분은 저의 사촌 오빠 조준서에요.”“사모님 안녕하세요. 조준서 씨 안녕하세요.”유진우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네가 바로 선미를 귀찮게 하는 기생오라비야?”조준서는 유진우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경멸하는 눈길은 발밑의 개미를 보는 듯했다.유진우의 눈썹에 살짝 주름이 잡혔었지만 금세 평상심으로 돌아왔다.“대답 안 해? 왜 벙어리야?”조준서가 턱을 들어 올리며 명령했다.“조준서 씨,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못 알아들은 거야? 아니면 일부러 멍청한 척하는 거야?”조준서는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더니 또 말했다.“좋아, 그럼 질문을 바꾸지. 네가 라희 죽였어?”“제가 죽였어요, 그런데 ...”유진우가 해명하려는데 조준서가 큰 소리로 끼어들었다.“알았어. 인정했으니 됐군. 라희는 우리 조씨 가문의 핵심 인력이야, 이렇게 그냥 죽을 수는 없지.”조준서는 위패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계속했다.“당장 라희의 위패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해.”“응?”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는 그냥 경멸이었다면 지금은 노골적인 굴욕감을 주었다.“뭘 오해하신 것 같네요? 당신이
“응?”조선미의 갑작스러운 호통에 조준서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선미야, 너 기생오라비 때문에 나한테 소리 지르는 거야?”그가 유진우를 억압한 이유는 한편으로는 눈꼴사나워서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미의 태도를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유진우 씨는 나의 은인이야. 감히 건드리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명심해!”조선미는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준서가 사촌이 아니었다면 진작 귀뺨을 후려쳤을 것이다.“좋아 ... 아주 좋아!”조준서의 안색이 좀 흉해졌다.“라희 문제는 그렇다고 해. 수석 의사 자리는 자격 없어.”이건 권력을 뺏기 위한 첫 단추이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자격이 있고 없고는 내가 결정해.”조선미는 담담하게 말했다.“선미야, 네가 가진 모든 것은 가문에서 준거야. 만약 네가 공사 구분을 못하고 가문의 이익에 손해를 끼친다면 나도 본사에 보고할 수밖에 없어.”조준서가 협박을 했다.“그러든지 말든지.”조선미는 조준서의 협박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잠깐만!”이때 진서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백령환의 연구는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수석 의사 자리 역시 능력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유진우 씨는 아직 너무 젊어, 내가 생각해도 황 선생님이 적합한 것 같구나.”그도 역시 유진우가 조신 의약의 중요한 직책을 맡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유진우 씨는 의술이 뛰어나요 결코 황 선생님한테 뒤지지 않아요.”조선미가 반박했다.“좋아! 의술이 그렇게 뛰어나다면 황 선생님과 한 번 겨뤄보든지!”조준서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말했다.그 말에 조선미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순간 자신이 상대방의 덫에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떻게 겨뤄요?”이때 유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수석 의사 자리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조준서의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화가 나서 그를 좌절시키고 싶었다.“젊은이, 의술로 싸우는 건 너무 지루하니까, 독약 게임을 해보는 건 어떤가?”흰 눈썹
양측 합의 후 현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돌았다.유진우와 흰 눈썹 영감은 각각 하인한테 약초를 사 오게 했다.두 사람은 현장에서 독약을 만들어 복용하고 승부는 각자의 실력에 맡기기로 했다.“언니, 유진우 씨 괜찮겠어? 독살 당하면 어떡해?”조아영은 걱정이 되었다.“본인이 자신 있다고 하니 믿어보자.”조선미는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불안했다.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유진우한테 패배를 인정하게 하고 싶었다.“그렇긴 하지만 유진우 씨는 의학 전공이잖아. 독약 분야는 황 선생님한테 안될 텐데.”조아영은 고개를 저었다.전공 분야가 다른데 어떻게 아마추어가 프로와 비교할 수 있을까?두 자매의 걱정에 비해 메인 석에 있는 진서현은 담담했다.‘독술사와 독을 비기다니 진짜로 오만한 건지? 멍청한 건지?’물론 지금 이 상황이 그녀는 너무 재미있었다. 유진우가 진다면 그 결과는 불구 아니면 죽는 건데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딸의 결혼 땜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기생오라비 씨 그냥 빨리 패배를 인정하지? 독약이 만들어지면 후회할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조준서가 압박하기 시작했다.“솔직히 참 존경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남한테 맡기다니. 혹시 이런 생각은 해보셨나요? 황 선생님이 해독을 못하면 죽는 건 당신이라는 것을?”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헛소리하지 마. 황 선생님은 수년간 독술을 연구해왔어, 너한테 절대 질수 없어. 너 각오해야 할 거야.”조준서의 말에 유진우는 할 말 없다는 듯 웃기만 했다.잠시 후 약초 사러 나갔던 하인들이 연이어 돌아왔고 약초를 구한 흰 눈썹 영감은 곧바로 독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움직임이 너무 빨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셨다.반대로 유진우는 서두르지 않고 아주 여유롭게 움직였다.그 사이 흰 눈썹 영감의 독이 완성되었는데 검은색에 약간의 비린내가 났다.“저기 기생오라비 씨 독약이 완성됐는데 마실 용기 있나?”조준서는 약병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도발적인 눈빛을
“뭐? 똥?!”조준서는 바로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뱃속으로 넘어가서 아무리 토하려고 노력해도 뱉어낼 수 없었다.과거에 똥을 먹인다는 건 그냥 말에 불과했지만 이제 현실이 되였다.“유진우 씨가 오빠한테 똥을 먹이다니, 앞으로 어떻게 밥을 먹지?”조아영은 코를 막고 역겨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피했다.“조준서가 똥 먹은 건 쌤통이야.”조선미도 너무 재미있었다.“야! 너 일부러 나한테 장난친 거지?”조준서의 얼굴에는 침울함이 가득했고 사람을 잡아먹고 싶은 표정을 했다. 그도 그럴 듯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굴욕은 처음이었다.“독을 만드는 레시피는 당연히 내 마음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건 뭐든 넣을 수 있는 거죠.”유진우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좋아, 아주 좋아! 너 배짱이 있어! 조금 있다가 어디 두고 보자. 나한테 무릎을 꿇게 될 거야.”조준서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누가 누구에게 빌지 모르겠네요. 옆에 분한테 물어봐요. 내가 제조한 독을 해독할 수 있는지?”“황 선생님 빨리 해독해 주세요.”조준서는 흰 눈썹 영감을 재촉했다. 자신의 고귀한 몸이 손상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살펴볼게요.”흰 눈썹 영감은 우선 먹다 남은 독약을 집어 들고 먼저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고 다음으로 손가락에 묻혀 혀끝에 대고 핥았다.“얼마나 대단한 건가 했더니 칠충독이네요.”흰 눈썹 영감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는 듯이 웃었다.“칠충독? 그게 뭐죠?”조준서가 물었다.“칠충독은 일곱 종류의 독충을 가루로 만들어 섞어 만든 독약입니다.”흰 눈썹 영감은 계속해서 자신 있게 말했다.“생각이 맞는다면 이 일곱 가지 독충은 뱀, 전갈, 두꺼비, 지네, 거미, 독벌, 불개미입니다.”“정말요? 한번 맛만 보고 다 알아요?”조아영은 충격을 받았다. 레시피를 그렇게 명쾌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일반인은 아닐 것이었다.“독술사 맞네요. 실력도 대단하시네요.”유진우는 무심하게 웃었다. 상대의 능력을
“젊은이 무례하지 말게.”흰 눈썹 영감은 흥분하며 말했다.“지금 조준서 뿐만 아니라 자네도 독약을 먹었어. 만약 해독제가 없으면 자네도 내일을 넘기지 못할 거네.”“그래요? 그럼 누가 먼저 죽는지 보자고요.”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자네 ...”흰 눈썹 영감은 숨이 막혔다. 지금 상황을 봐서는 조준서가 먼저 죽을게 뻔했기 때문에 오늘 내기는 무승부로 하고 싶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동의를 하지 않는다.“유진우 빨리 해독제 내놔. 우리가 패배한 거로 해.”조준서는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지만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이를 갈며 말했다.“조준서 씨, 말로만 하는 것은 성의가 없잖아요.”유진우가 머리를 저었다.“유진우 너 이쯤에서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조준서는 화가 치밀었다.“잘못을 했으면 인정해야죠. 너무 성의가 없는데요?”“나더러 무릎 꿇으라고, 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조준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당연히 난 자격이 없겠죠. 그럼 이 독약은 알아서 해결해요.”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했다.“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조준서의 눈에서 맹렬한 빛이 번쩍였다.“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받은 만큼 돌려드리는 것뿐이에요.”유진우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됐어! 다들 그만해.”이때 진서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유진우 씨, 빨리 해독제 내놔요. 준서한테 무슨 일 생기면 당신 감당 못해요.”“사모님 사내대장부가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죠.”“뭐? 오늘 조씨 가문과 맞서겠다는 건가?”진서현의 예쁜 얼굴이 차가워졌다.유진우가 얘기하면 어려움을 알고 물러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분별이 안 될 줄은 몰랐었다.“쓸데없이 겁주지 마요!”조선미가 보다 못해 갑자기 말했다.“아까 조준서가 유진우 씨를 괴롭힐 때는 아무 말도 안 하시더니, 조준서가 당하니까 바로 나서시네요?”“준서는 너의 사촌 오빠야, 왜 남을 도와 얘기해?”진서현은 얼굴을 찡그렸다.“저는 도리가 있는 쪽 편이에요. 그리고 이건 조준서가 먼저
작고 하얀 병을 본 흰 눈썹 영감은 얼굴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 병은 신의 강보현의 명약이었다.‘이런 명약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지?’해독환은 아주 엄청 귀하고 값비싼 거였다. 가루 조금만이라도 천문학적인 가격에 팔리는 귀한 약이다.‘해독환이 있어서 자신감이 넘쳤던 거구나.’“흠!”조준서는 아무 말 없이 차와 함께 들이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칼로 찌르는 것 같던 복통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불과 몇 분 만에 통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시각 다시 살아난 느낌이었다.“유진우, 오늘의 치욕은 꼭 기억할 테니 앞으로 나한테 잡히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조선미, 백령환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게 좋을 거야. 본사에 보고 들어간 다음에 나를 원망하지 말고.”조준서는 악랄하게 두 마디 내뱉고는 허겁지겁 자리를 떴다.“젊은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흰 눈썹 영감도 한 마디 하고는 조준서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조준서가 어떤 인물인데, 이런 하찮은 의사한테 그냥 당하고 가만있을 인간이 아니다. 보복을 시작하면 끝장낼 것이다.“유진우 씨 사전 준비가 있으셨네요. 걱정했잖아요.”조아영은 놀랍고 기뻤다.“언니가 준 해독환 덕분이에요. 이거 아니었으면 이렇게 쉽게 이기지 못했을 거예요.”그렇다, 아주 조금 쉬웠을 뿐이다.“흠! 교묘한 수단으로 이기다니!”진서현은 다소 경멸하는 듯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뭔가 기술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강신의의 해독환 덕분이었다.“인정하시지 않아도 소용없어요. 어차피 진우 씨가 이겼으니까요.”진서현의 시큰둥해하는 말투에 조선미가 한마디 했다.“운 좋아서 이기면 뭐해. 황 선생님 없이 저 녀석 혼자서 백령환을 만들 수 있어?”진서현이 물었다.그렇다, 백령환은 조신 의약 오랜 시간의 심혈이고 또한 가문 발전의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진서현은 이 젊은 친구가 현재 조신 그룹의 국면을 만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왜 안 된다고 생각하세
“그런 거였군요. 선미 씨 말대로면 강천호와 선미 씨 중에서 누가 먼저 백령환을 개발하면 강능시장을 먼저 장악할 수 있겠네요?”조선미의 설명을 듣고 유진우는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연구원들과 관련 정보들을 모두 빼앗겨서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돼요. 쉽지 않을 거예요.”조선미는 한탄했다.“흠! 그 강천호 너무 비열해! 온갖 얄팍한 수작을 다 부리다니!”조아영은 분노했다.“백령환은 어떤 유형의 약이에요?”유진우가 다시 물었다.“백령환은 양생약인데 수명을 연장하고 얼굴을 아름답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고대 궁중 비법이래요. 다만 너무 오래 된 것이기에 비법의 절반이 훼손되어 가능한 연구를 하여 부족한 부분을 복구 시켜야 했어요.”조선미가 설명했다.“궁중 비법이라고요?”유진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약효를 들어보니 저도 비슷한 효과를 내를 비법이 하나 있어요.”“그래요? 무슨 약인데요?”조선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이 약은 비연단이라고 하는데 고서에서 관련 기록을 봤어요. 백령환과 마찬가지로 수명 연장과 얼굴을 아름답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어요. 백령환보다 못하진 않을 거예요.”유진우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가 읽은 고서들은 모두 오래전의 보물이기에 그 안에 기록된 것들은 분명 평범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흠! 큰 소리 하지 마요. 백령환은 궁궐의 비법인데 유진우 씨가 말하는 비연단은 대체 뭐예요. 들어본 적도 없는데!”조아영은 혀를 차며 믿지 않았다.“들어본 적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잖아요. 그리고 또 이외로 대박 나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유진우가 말했다.“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해보면 알겠지. 어떤 약초가 필요한가요? 바로 준비할게요.”조선미는 매우 시원시원하게 결정했다.지금 당장은 더 좋은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결사의 각오로 해볼 수밖에 없었다.“하영 씨 펜과 종이 가져다주세요.”유진우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저기요. 몇 번 말했어요, 내
“호호 ... 이모, 강씨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요. 뭔들 없겠어요. 제일 부족하지 않는 게 금은보화일 거예요. 때문에 선물을 독특한 걸로 해야 돼요. 영지는 얼굴을 아름답게 하는 효능이 있기에 여자라면 누구든 거부를 못하잖아요. 아마 강씨 아가씨도 마찬가지로 좋아할 거예요.”단소홍은 자신만만했다.“그렇긴 한데, 이 백 년 된 영지는 가격이 꽤나 비싸지 않아?”장경화가 물었다.“물론이죠! 워낙 귀한 거라 300만~500만 원 정도 할 거예요.”“어? 그렇게 비싸? 소홍아 너 그만한 돈 있어?”장경화가 가격에 놀라 하며 물었다.“저는 물론 없죠. 이모가 있잖아요. 저 먼저 빌려줘요. 나중에 꼭 갚을게요.”단소홍은 당연하다는 듯 장경화한테 말했고 그 말에 장경화는 잠시 얼어붙었다.이청아와 이현 두 사람 역시 얼굴을 찌푸렸다. 단소홍은 매번 올 때마다 돈이든 뭐든 뜯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새로 산 레이싱카를 이틀만 빌린다고 하더니 지금까지 돌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또 돈 몇 백만 원을 빌려달라고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것 역시 돌려받지 못할 것이다.“소홍아, 이모가 빌려주지 않는 게 아니고 이건 너무 많아.”단소홍의 말에 2초 정도 고민하더니 장경화는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모, 이모네는 회사 운영하시는데 이 정도도 안 돼요? 아니면 빌려주기 싫으신 건가요?”단소홍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안색이 다소 불쾌해 보였다.“빌려주기 싫은 게 아니고 이모 정말 그만한 돈이 없어.”장경화는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이모가 없으면 언니가 있을 거잖아요. 청성 그룹의 대표가 몇 백만 원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죠.”단소홍의 시선은 이청아에게로 향했고 그녀의 목소리 톤도 강해졌다.“지금 회사 유동 자금이 부족해서 한 푼이라도 아껴서 중요한 용도에 써야 해. 이처럼 거액의 선물을 사는 행위에 사용하는 건 안 돼.”이청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급한 일이면 아무 말 없이 돈을 빌려줬을 테지만 이런 상황은 도와줄 수가 없었다.“언니 너무
이 순간 유진우의 눈이 피를 뿜을 듯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살기가 솟구쳤다.비록 예전에 아버지와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차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는 그동안 품었던 그 작은 분노마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는 단지 호룡각의 일을 완전히 해결한 후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에 효도를 제대로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둘이 만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암살당해 돌아가셨다. 이 충격은 그에게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창공!” 유진우가 갑자기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손을 뻗어 창공보검을 불러들이고는 밖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는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호룡각의 잔당들을 모조리 섬멸해야만 했다!“전하! 제발 진정하십시오!” 유진우가 이성을 잃을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손도운이 급히 그를 막아서며 침착하게 조언했다. “호룡각은 준비를 하고 온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이렇게 무모하게 뛰쳐나가신다면 복수는커녕 오히려 자신까지 위험에 빠뜨리실 수 있습니다!”“비키세요!” 유진우의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창공검의 칼날을 손도운의 목에 바로 겨누었다. 예리한 기운이 피부를 스치며 상처를 내자 피가 천천히 배어 나왔다.“전하! 저를 죽이시더라도 전 전하를 막아야만 합니다. 제가 어찌 전하께서 죽으러 가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왕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전하께 더 이상의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손도운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유진우 앞을 가로막은 채 죽음도 불사하는 자세를 취했다.유진우는 이를 악물었고 그의 손에 든 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몇 초간의 대치 끝에 그는 깊은 숨을 내쉬고 마침내 검을 내렸다.손도운의 말이 맞았다. 그는 지금 냉정해져야만 했다. 유만수가 죽었으니 왕부가 분명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고 이때
다른 처녀들도 모두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진심 어린 간청을 했다.이 광경을 본 유진우는 넋이 나갔다.노란 옷 처녀의 말은 그의 귀를 때리는 듯했다.지옥 같은 일을 겪고도 이 아이들이 자신이 아닌 천하의 모든 약자들을 생각하다니... 상상도 못 했다.이런 원대한 뜻과 깨달음은 그조차도 이루지 못할 것이었다.이청성이 말했듯, 이들은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빛을 향하는 처녀들이었다.귀하고 감탄할 만한 일이었다.누가 여자가 남자만 못하다 했는가?진정한 대의 앞에서 이 여자들이야말로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었다.이런 의로운 용사들이 있는데 어찌 서경이 부흥하지 않을까? 어찌 천하가 평안하지 않을까?“오빠, 결정해요. 받아주지 않으면 저 애들은 살아갈 희망조차 잃을 거예요.” 이청성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어요?” 유진우가 엄숙하게 물었다.“절대 후회하지 않겠습니다!”모든 소녀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좋아요! 허락하죠!”유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부터 특별 훈련을 시작할 거예요. 견뎌낼 수 있다면 여러분들의 원대한 뜻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하지만 견디지 못한다면 편한 곳에서 평안히 살도록 해요.”“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노란 옷의 소녀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나머지 소녀들도 따라 외쳤다.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청성을 바라보았다. “당분간 네가 돌봐. 내일 저애들의 거처를 정하도록 해.”“알겠어요.”이청성이 살짝 미소 지으며 소녀들을 데리고 떠났다.일행이 막 나가자 손도운이 급하게 달려 들어왔다.그의 표정이 매우 당황스러워 보였고 큰일이라도 난 듯했다.“전하! 큰일 났습니다!”유진우를 보자마자 손도운은 ‘쿵’하고 무릎을 꿇고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왕부에 변고가 생겼습니다. 왕께서 자객의 암살로 돌아가셨습니다!”“뭐라고요?”이 말을 듣자 유진우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잠시 후 정신을 차린 유
“오빠, 급한 건 알지만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요.” 이청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아가씨들은 지금 오빠만 믿고 있고 목숨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어요. 받아들이면 좋은 점이 많을 거예요. 예를 들어, 오빠가 외로울 때...”“농담하지 말고 요점이나 말해요!” 유진우가 짜증스럽게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솔직히 말할게요.”이청성이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장혁 씨, 사실 이 처녀들은 보기 드문 인재예요. 제가 이미 선별했는데 모두 영리하고 의지가 강해요. 조금만 가르치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거예요.”“무슨 뜻이에요?” 유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밀사의 중요성은 잘 아실 거예요. 특히 여자 밀사는 어떤 면에서 타고난 장점이 있죠. 이 처녀들을 밀사로 키우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청성이 말했다.“말은 쉽지, 밀사 하나 키우는 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전 지금 제 몸 하나도 챙기기 힘든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어요?” 유진우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그는 이 처녀들이 평온하게 살기를 바랐지, 이용당하거나 장기말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밀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충성심인데 그들은 이미 그걸 가지고 있어요. 장혁 씨가 그들을 구해줬고 장혁 씨의 빛이 그들의 어두운 세상을 비춰줬죠. 저애들은 장혁 씨를 신처럼 여기고 있어요.”“시간과 노력은 걱정하지 마요. 장혁 씨가 직접 가르칠 필요 없이 좋은 스승만 찾아주면 돼요. 장혁 씨 곁의 손도운이라면 아주 적합할 것 같은데요.” 이청성이 살짝 미소 지었다.“그건 청성 씨 생각이고 저 애들한테는 물어봤어요?” 유진우가 물었다.“당연히 물어봤죠. 모두 하겠대요. 필요하다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요.” 이청성이 말했다.“불쌍한 사람들인데 그럴 필요까지야...” 유진우가 눈썹을 찌푸렸다.“장혁 씨, 어둠 속에 있어도 빛을 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요?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세요.” 이청성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발 저희를
“마마의 뜻은 내통자를 찾으라는 것입니까?”석태혁이 물었다.“아니요, 내통자와 범인 수사는 이미 홍 장군에게 맡겼습니다. 석 장군께선 더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이의진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경은 최근 몇 년간 불안정했어요. 전에는 어르신이 계셔서 소인배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했지만 이제 어르신께서 돌아가셨으니 서경이 혼란에 빠질 것이고 우리 왕부가 가장 먼저 모든 이의 표적이 될 겁니다.”“제가 유만군을 소집한 것은 왕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누구든 왕부를 해하려 한다면 즉시 처단하세요. 자비를 베풀 필요 없습니다!”“알겠습니다!” 석태혁이 대답했다.비상시기에는 비상조치가 필요했다. 왕이 돌아갔으니 왕부가 곧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할 것이다. 상황을 진압하지 못한다면 왕부가 위험할 뿐 아니라 서경이 사분오열되어 제후들이 각자의 영토를 차지하려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천하가 대란에 빠질 것이다!“석 장군, 장군께선 어르신의 심복이자 우리 왕부의 기둥입니다. 앞으로의 일은 모두 장군께 달렸습니다.” 이의진이 깊은 뜻을 담아 말했다.“소신, 충성을 다해 왕부를 지키겠습니다!” 석태혁의 표정이 결연했다.왕이 암살당한 것은 친위대장인 자신의 책임이었다. 왕부가 지금 사람이 필요한 때가 아니었다면 자결로 죄를 갚았을 것이다.“석 장군, 전 이미 소식을 봉쇄했습니다. 어르신의 서거를 아는 이가 많지 않아요. 조금 후 조문 오는 자들을 잘 살피세요. 대부분이 불순한 의도를 품고 올 테니 누구든 방자히 굴면 즉시 체포하세요!” 이의진이 다시 명령했다.“알겠습니다!” 석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왕의 죽음은 모두에게 숨길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흉심을 품은 자들은 이미 왕부에 첩자를 심어두었을 거고 왕의 서거를 알면 반드시 방문을 빌미로 허실을 탐색하거나 심지어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오늘부로 왕부는 평온할 수 없을 것같았다....서쪽에 있는 고풍스러운 저택에서.유진우가 막 기상하여 문을 열자 밖에 십여 명의 꽃다운 처녀들이
“어르신!”“깨어나세요! 제발 깨어나세요!”이의진은 숨이 끊어진 유만수를 보며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모든 일이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그가 자신의 품에서 이렇게 죽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소식을 듣고 모여든 왕부의 사람들도 이 광경을 보고 눈물을 쏟아냈다. 유만수는 왕부의 하늘이자 서경의 하늘이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하늘이 무너진 것과 다름없었다.시간이 흘러 날이 밝았다.서경 왕부 전체가 비통한 분위기에 잠겼고 전에 정무를 보던 대청은 이제 영당이 되어 사방에 흰 만장이 걸렸다. 정교하게 조각된 검은 관이 중앙에 놓였고, 그 안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유만수가 평온한 얼굴로 누워있었다.영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 꿇고 있었는데 대부분 왕부의 신임 장수들과 유씨 가문의 자제들로, 모두 상복을 입고 슬픔에 잠겨있었다. 이의진은 맨 앞에서 유만수의 영정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홍복홍이 들어와 영정 앞에 절을 올리고 이의진 앞으로 와서 깊이 절했다.“왕비마마, 왕의 장례는 분부대로 처리했습니다. 소식을 봉쇄하고 조용히 진행하여 민심이 동요치 않게 했습니다.”“범인은 잡았습니까?” 이의진이 눈물을 닦으며 살기를 뿜었다.남편이 눈앞에서 피살당했으니 그녀는 범인을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범인의 무공이 너무 높아 추적에 실패했습니다.”“호룡각 잔당의 소행이에요. 즉시 수사하세요. 범인을 반드시 잡아오되, 필요하다면 흑용군을 동원해도 좋습니다!”“네.” 홍복홍은 물러갔다.“천우는 언제 오나?” 이의진이 고개를 돌려 여자 호위병에게 물었다.“도련님께서 변방 훈련 중이라 전갈을 보냈으니 오후쯤 도착할 것 같습니다.”여자 호위병이 대답했다.“왕부 경계를 엄중히 하고 아무도 마음대로 나가지 못하게 해.”이의진이 또 명령을 내렸다.“네!” 호위병이 공손히 인사하고 물러났다.“어르신, 제가 반드시 원수를 갚겠습니다!” 이의진은 유만수의 영정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뒤 영당을 나와 곧장 후원으로 향했다.후원에
“물러가겠습니다.”이의진이 예를 갖추고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대청의 지붕이 무너져 내렸고 까만 인영 하나가 하늘에서 내리꽂혔다.검은 복면의 자객이었다.“조심하세요!”이의진이 순간 얼어붙었다가 외쳤다.“유만수! 죽어!”흑의인이 분노에 찬 고함과 함께 검을 내지르자 섬광이 스치더니 검은 유만수의 가슴을 관통했다.한 줄기 빛처럼 빠른 검세에 누구도 반응할 틈이 없었다.유만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가슴을 꿰뚫은 검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문간에 있었던 이의진도 충격에 빠져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왕부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어떻게 자객이 들어왔단 말인가?하필 홍복홍과 석태혁이 공무로 나간 때를 노린 것이, 마치 미리 계획된 듯했다.“유만수! 이것이 호룡각에 맞선 대가다!”흑의인이 거칠게 검을 뽑자 유만수의 가슴에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그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다 바닥에 주저앉았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사람 살려! 자객이야! 자객이 들었어!” 이의진이 소리쳤다.순식간에 서경 왕부 전체가 발칵 뒤집혔고 호위병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흑의인은 형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즉시 지붕으로 도약해 달아났고 왕부의 고수들은 연이어 공중으로 날아올라 최대한 빠르게 추격했다.“어르신! 어르신!”이의진이 급히 유만수 앞으로 달려갔는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유만수는 가슴에서 피가 멈추지 않았고 말을 하려다 격렬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어르신! 말씀하지 마세요! 괜찮으실 거예요! 꼭 괜찮으실 거예요!”이의진은 한 손으로 유만수의 상처를 누르며 다른 손으로 문 밖을 향해 외쳤다. “의원! 의원은요? 어서 와서 어르신을 살려주세요!”“의진아...” 유만수가 떨리는 손으로 이의진의 팔을 붙잡고 힘없이 말했다. “의진아... 나는 이제 끝에 다다랐어. 잘 들어... 내가 죽으면 서경이 크게 혼란스러워질 거야. 네가 왕비로서 사태를 안정시켜야 해. 내 신임하는 장수들이 널 도울
“맞아, 천우는 정말 훌륭한 아이지.”“흑용군에서도 손꼽히는 무력을 지녔고 내 젊은 시절보다도 강해. 군사적 능력도 아주 뛰어나고.”“장수들이 늘 천우의 공적을 보고하곤 했어. 그 녀석의 성장을 지켜봐 왔고 이런 아들을 둔 게 난 자랑스러워.” 유만수가 흐뭇하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이의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쁨이 스며들었다.왕이 바쁜 와중에도 자신의 아들을 이토록 신경 쓰고 있었다니.“의진아, 천우는 뛰어난 아이임이 분명해. 훌륭한 장군이 되어 서경을 위해 공을 세울 수 있겠지. 하지만 서경왕은... 아직은 될 수 없어.” 유만수의 말투가 갑자기 바뀌자 이의진은 당황하며 의아해했다.“시간이 있었다면 천우를 왕으로 키웠겠지만 이제는 그럴 여유가 없어.” 유만수가 고개를 저었다.“어르신...” 이의진이 말을 꺼내다 멈췄다.결과를 짐작했으나 입 밖으로 내기가 두려웠다.“장혁이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다.”유만수가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품이든, 무력이든, 책략이든, 군사적 재능이든, 장혁이가 최적임자야. 나보다도 더 적합하지.”“제가 알기로는 장혁이는 무림 세계를 좋아하고 조정 일에는 관심이 없는데요...” 이의진이 조심스레 말했다.“그렇지. 하지만 좋아하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야. 그게 책임이지.”유만수가 엄숙하게 말했다. “대의를 위해, 서경 백성을 위해, 천하를 위해 그 녀석이 이 짐을 져주리라 믿어.”“어르신께서는 왜 장혁이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으시나요?”“물론 강요하진 않을 거야. 천우에게도 마찬가지고. 둘 다 내 아들이니 공정하게 경쟁하게 할 테지만 장혁이가 최선의 선택임을 네가 알았으면 해.” 유만수가 깊은 뜻을 담아 말했다.“알겠어요.” 이의진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인정하기 싫었지만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유장혁이 유천우보다 뛰어나고 서경왕에 더 적합했다.하지만 그녀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어머니로서 아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길 바라는 것이 당연했다.그래서 이 왕위는 자신을 위
홍복홍이 대답하고 빠르게 떠났다. 도살자인 그는 서경이 태평해진 뒤로 오랫동안 살육을 하지 않았으나 오늘 안송진의 소행으로 어쩔 수 없이 다시 나서게 되었다. 이 어리석은 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안씨 가문 전체를 화염 속으로 밀어 넣었다.“소창명은 죽음으로 죄를 갚았으니 서민으로 강등하여 매장을 허락하라. 소씨 가문의 죄인들은 법대로 처리하되 무고한 이들은 살려주어라.” 유만수가 다시 명했다.석태혁이 소창명의 시신을 들고 떠나자 곧 대청에는 유만수와 이의진 둘만 남았다.“콜록콜록...”사람들이 떠나자 유만수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격렬한 기침을 시작했다. 순간, 그의 온몸이 휘청거렸다.“어르신! 괜찮으세요?”이의진이 놀라 급히 앞으로 나와 그를 부축했다.“괜찮아, 다 고질 병이야.”유만수는 고개를 저으며 손수건으로 입가의 피를 닦았다.“피를 토하시다니... 당장 의원을 부를게요!”이의진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하지만 떠나려는 그녀를 유만수가 붙잡았다. “놀랄 것 없다. 내 몸 상태는 내가 알아. 의원을 불러봤자 약이나 더 먹을 뿐, 소용없어.”“어르신...”이의진이 더 말하려 했으나 유만수가 끊었다. “됐다, 걱정 마. 당장 죽진 않을 테니 앉아서 나랑 얘기나 해.”이의진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의진아, 이 세월 너를 고생시켰구나. 연경에서 편히 살 수 있었는데 나를 따라 이 땅에 와서 매일 고생하니, 내가 참 미안해.”유만수가 부드럽게 말했다.“무슨 말씀이세요... 어르신은 세상의 영웅이시니 곁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해요.”이의진이 유만수의 손을 잡았다.“영웅은 무슨, 보시다시피 이제 늙은이일 뿐이지.”유만수가 자조적으로 웃었다.“아무리 변하셔도 제 마음속엔 여전히 비할 데 없는 분이세요!” 이의진이 진지하게 말했다.그녀는 소녀 시절부터 유만수를 우상으로 여겼고 심지어 뻔뻔스럽게 오빠에게 부탁해 혼인을 성사시켰다. 당시 유만수에게는 진소연이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
이제 안송진은 이성을 잃고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유만수를 도와 서경을 질서정연하게 다스린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다. 서경의 오늘날 발전은 자신의 공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그저 직위를 이용해 재미를 좀 봤을 뿐인데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권세가 있으면 마음껏 누려야 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면 관직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게다가 천한 백성 몇 명의 목숨이 순무직인 자신과 비교가 되나? 예로부터 권세가들 중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나? 그는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여겼고 오히려 유만수가 어리석다고만 생각했다.“안송진, 아직도 뉘우치지 못하는가?”유만수가 고개를 저으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네 자식의 흉행을 눈감아주고 백성의 목숨을 파리만도 못하게 여겼으며 천리에 어긋나는 짓을 수도 없이 저질렀어. 자네 행동이 예전의 살인강도와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저도 공을 세웠습니다! 서경의 이 번영을 이룩한 것도 저고, 모든 백성이 평안히 살 수 있게 한 것도 접니다. 하찮은 목숨 몇 개쯤 없앤 게 무슨 잘못이란 말입니까?” 안송진이 분노에 차 외쳤다.“안송진, 자네 공은 인정하네. 하지만 공이 과를 덮지는 못하지. 지네가 세운 공적이 악행을 저지를 구실이 될 순 없고 목숨을 보장받을 방패도 될 수 없어!”유만수가 호통쳤다. “우리가 관직에 있는 건 백성을 위해서지 백성을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만약 모든 이가 자네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서경은 조만간 멸망할 거야!”“안 대인, 잘못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합니다. 대인께서 법을 크게 어기셨으니 순순히 죄를 인정하세요!” 이의진이 차갑게 말했다.“인정할 수 없습니다! 절대 인정할 수 없어요!” 안송진이 붉은 눈으로 계속 고함쳤다. 죽음 앞에서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인정하지 않아도 소용없어. 이제 증거가 명백하니 아무리 발뺌해도 소용없을 거야.”유만수가 말하며 홍복홍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서경의 율법에 따르면 안송진의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