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홍아! 화내지 마, 화내지 마!”장경화는 급히 단소홍을 멈춰 세우고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 몇 백만 원 이모가 빌려줄게. 됐지? 다 가족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엄마! 버릇되게 왜 그래요?”이현이 얼굴을 찡그렸다.“조카라고는 소홍이 하나뿐인데 어려운 걸 알면서 어떻게 가만히 있겠니?”장경화가 정의롭게 말했다.“이건 소홍이를 도와주는 게 아니잖아요?”이현은 이해가 안 되고 기분이 상했다.“그만해! 너희들 돈을 안 쓰면 되잖아. 내 돈으로 줄 거야.”장경화는 이현을 힐끗 보며 말했다.“...”이현은 할 말을 잃었다.‘진짜 우리 어머니가 맞아? 아들보다 조카한테 더 잘하다니?’“이모밖에 없어요. 저를 사랑하는 건 이모뿐이에요.”단소홍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수법은 매번마다 효과가 있었다.“그럼 당연하지. 이모가 너 아니면 누구를 사랑하겠니. 들어가자, 영지 사야지.”장경화는 단소홍의 손을 잡고 앞장서서 장약각으로 들어갔다.“누나 왜 엄마를 안 말려?”이현은 조금 불안했다.“말릴 수 있어야 말리지. 한두 번도 아니고.”이청아는 포기했다는 표정을 했다. 엄마가 이모네 가족한테는 늘 이런 식이였다. 친척이라고 옹호하는 게 심지어 비굴할 정도였다.“사장님!”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단소홍은 곧바로 오만한 태도로 외쳤다.“어머! 귀한 손님이 오셨네요. 뭘 도와 드릴 가요?”뚱뚱한 중년 남자가 마중 나왔다.“백 년 영지를 들여왔다면서요. 맞나요?”단소홍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소식이 빠르시네요. 맞아요. 어제 도착했어요.”뚱뚱한 사장은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그렇군요. 그 영지 얼마예요?”“이번에 들어온 영지는 구하기 힘든 거예요. 저희 영지를 경매에 내놓을 계획이에요.”뚱뚱한 사장이 솔직히 말했다.“경매 나가면 너무 번거롭잖아요. 그냥 저한테 직접 팔아요. 수수료도 절약할 수 있고 좋잖아요.”“그건 ...”뚱뚱한 사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왜요. 제가 살 능력이 안 될 가봐 그래요?
“네가 왜 여기에 있어?”유진우를 본 이청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데 옆에 서 있는 아리따운 조아영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리면서 얼굴을 찌푸렸다.‘조선미 씨 하나로도 부족해서 밖에서 또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거야? 역시 남자는 싫증을 잘 내고 한결같지 않아.”“유진우 씨, 두 사람 아는 사이예요?”조아영이 의아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알죠. 이분이 바로 청성 그룹의 대표 이청아예요.”유진우는 부정하지 않았다.“아, 이 대표님이시군요!”조아영의 두 눈에 적대감이 스쳐 지나갔다.눈앞의 이 여자가 바로 언니의 연적이기에 잘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재결합하는 일 따위는 절대 없어야 했다.“흥! 왜 어딜 가나 네가 있는 거야? 재수 없게!”장경화가 눈살을 찌푸렸다.“유진우, 너 아주 대단하구나! 그새 또 다른 여자를 만나? 역시 기생오라비는 다르다니까!”이현이 하찮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지만 사실 속으로는 무척이나 질투했다.‘젠장! 나처럼 괜찮은 남자는 여자친구도 없는데 쟤는 뭐가 잘났길래 자꾸 여자를 바꾸는 거야?’처음에는 상업 퀸인 조선미였다가 이번에는 청순하고 예쁘장한 여자였다.하늘도 참 무심하시지!“어이! 아까 소리친 게 너희 둘이야?”단소홍이 짜증 섞인 얼굴로 아래위로 훑어보았다.“그래, 나야.”조아영이 두 걸음 앞으로 나서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장님, 이 백 년 영지는 제가 가질게요. 얼마예요?”“흥! 네가 가지겠다고? 네가 뭔데?”단소홍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솔직하게 얘기할게. 이 영지 아까 내가 10억에 샀어!”“이봐, 우리가 영지를 급하게 쓸데가 있어서 그러는데 양보해주면 안 될까?”조아영이 최대한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네까짓 게 뭔데 내가 양보해줘야 해? 썩 꺼져!”단소홍이 가차 없이 거절했다.“뭐?”조아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싸늘하게 말했다.“사장님, 이 여자가 방금 10억에 샀다고 했죠? 그럼 난 16억에 살게요!”“16억?”그녀의
의기양양한 얼굴로 시건방을 떠는 단소홍을 보며 조아영은 이를 꽉 깨물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겨우 참았다.“이봐, 나 정말 영지가 필요해서 그래. 나한테 다시 팔면 안 될까? 내가 40억 줄게!”그녀는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돈이 있으면 다야? 내 영지를 가지려고? 꿈 깨!”단소홍이 나무 상자를 꽉 안고 우쭐거렸다.“너...”조아영은 너무도 화가 나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결국 그녀는 하는 수 없이 포기했다.“유진우 씨, 나도 더는 모르겠어요. 당신이 알아서 해요!”유진우도 체면 가리지 않고 단소홍에게 물었다.“소홍아, 너 이 백 년 영지를 어디에 쓰려고 그래?”“어디에 쓰든 네가 알 게 뭐야!”단소홍이 두 눈을 부릅떴다.“오늘 당신들이 입이 닳도록 말해도 절대 안 팔아!”“이렇게나 큰 영지를 약으로 쓴다면 다 쓰지도 못해...”유진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소홍이 가차 없이 잘라버렸다.“닥쳐! 다 못 쓰면 또 어때? 내가 낭비하고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들한테는 죽어도 못 팔아.”그녀의 말에 유진우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이토록 막무가내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사장님, 카드로 할게요!”단소홍이 장경화가 들고 있던 카드를 확 낚아채고는 뚱보 사장에게 건넸다.부처는 향불을 받아야 하고 사람은 기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돈보다 체면을 더 중요시하는 그녀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영지를 손에 넣어야만 했다.“소홍아, 30억은... 너무 비싼 거 아니야?”장경화는 두 다리마저 후들거렸다. 이 돈은 그녀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다.“이모, 고작 30억 갖고 왜 그래요? 나중에 제가 돈 벌면 배로 갚아줄게요.”단소홍은 기개만큼은 하늘을 찔렀다.그녀의 말에 장경화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네가 돈 벌기를 기다렸다간 내가 다 늙어 죽겠다.’거래를 마친 후 기분이 좋아진 단소홍이 일부러 은은하게 비꼬듯 말했다.“두 사람 아직 이런 귀한
“이보세요, 두 분. 이 바닥에서는 거래가 끝나면 완전히 끝이에요. 게다가 물건도 당신이 사겠다고 했지, 내가 억지로 판 것도 아니잖아요.”뚱보 사장이 싸늘하게 말했다.“헛소리 집어치워! 영지를 돌려줄 테니까 당장 환불해!”단소홍이 뚱보 사장의 멱살을 잡으며 매섭게 밀어붙였다.“왜? 여기서 난동이라도 부리려고?”뚱보 사장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그러자 우람한 체격의 남자들이 방에서 우르르 몰려나왔다.하나같이 흉악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단소홍 일행은 겁에 질린 나머지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너희들 죽으려고 환장했어? 감히 주 사장님 가게에서 난동을 부려?”“딱 봐도 이곳의 룰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네.”“그러니까 말이야! 물건을 사면서 물건을 확인도 하지 않고 값만 부르다니. 정말 바보 멍청이야.”구경꾼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왜? 사람이 많으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알고?”장경화가 두 눈을 부릅뜨고 강한 척 밀어붙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뚱보 X끼야, 내가 경고하는데 지금 당장 환불해주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사기죄로 고소할 거야!”“고소해, 그럼. 마음대로 고소해.”뚱보 사장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내가 판 게 백 년 영지가 확실해. 어딜 가서 물어보든 다 같은 결과야. 그리고 가격은 네가 스스로 부른 거지,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러니까 소송을 해도 소용없을 거야.”“너...”장경화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상대 쪽에 사람이 많아 감히 덤비지도 못했다.“빌어먹을 자식! 영지가 문제 있다고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어?”단소홍이 큰 소리로 말했다.“네가 돈을 내기 전에 영지는 이미 네 손에 있었어. 네가 확인하지 않은 게 내 탓이야?”뚱보 사장이 당당하게 말했다.그 말에 단소홍은 분노가 치밀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비록 그녀의 돈은 아니지만 사기당한 기분이 너무도 억울하고 답답했다.“하하하... 30억
“제가 살게요. 10억!”그때 유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뭇사람들은 저마다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바보가 아닌 이상 이 백 년 영지는 쓰레기나 마찬가지라는 걸 알 것이다. 그런데도 이걸 사겠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유진우 씨, 미쳤어요? 10억에 이런 쓰레기를 사게?”조아영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고 유진우의 행동이 참으로 무모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했다.“진... 진짜 살 거야?”장경화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왜요? 안 팔 거예요?”유진우가 되물었다.“팔아, 팔아. 당연히 팔지.”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장경화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비록 10억에 팔면 많이 밑지긴 하지만 그래도 일전 한 푼도 못 건지는 것보단 나았다.“진우 씨, 아무 쓸모 없는 영지를 정말 살 생각이야?”이청아가 무뚝뚝한 말투로 물었다.“이 녀석아,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 영지가 얼마나 귀한 건데.”장경화가 화들짝 놀랐다. 겨우 사겠다는 사람이 생겼는데 이렇게 초를 쳐서야 원.만약 안 사겠다고 하면 어쩌려고?“당연히 사야지.”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적어도 난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거든.”“그래그래! 이건 보기 드문 백 년 영지야. 10억이면 손해 볼 건 없지.”장경화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열심히 맞장구쳤다. 마치 귀한 손님이라도 대하는 것처럼 태도가 친절하고 열정적이었다.“유진우! 10억이면 적지 않은 돈인데 너한테 그만한 돈이 있어?”이현이 의심에 찬 눈초리로 쳐다보았다.“난 없지만 아영 씨한테는 있어.”유진우가 옆에 있는 조아영을 가리켰다.“나요?”조아영이 멈칫하더니 그를 째려보았다.“난 호구가 될 생각이 없어요.”“내가 빌린 거로 하면 안 돼요? 이 물건이 나한테 엄청 중요해서 그래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알았어요! 내가 못 살아 정말. 10억으로 교훈이나 산다고 생각하죠, 뭐.”조아영은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10억은 그녀에게 있어서 별로 큰돈도 아니었다.결국 양측은 순조롭게 거래를
“정말 구제 불능이야.”이현이 바보를 쳐다보듯 유진우를 쳐다보았다.“쟤 도대체 지금 뭐 하는 거야?”이청아도 눈살을 찌푸렸다. 유진우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유진우는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구부린 채 영지 가루 속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곧이어 손바닥만 한 붉은 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작고 앙증맞은 영지는 핏빛 선홍색을 띠었고 이상한 냄새까지 풍기고 있었는데 딱 봐도 평범한 물건 같지는 않았다.“이상하네. 저 큰 영지 속에 왜 저런 작은 영지가 있지?”조아영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영지도 새끼치기하나?그때 뚱보 사장이 뭔가 알아챈 듯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설... 설마... 저게 바로 전설 속의 혈영지란 말이야?”그의 말에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뭐라고요? 혈영지? 사장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죠?”“맞아요, 맞아요. 제가 책에서 봤는데 저게 바로 혈영지예요.”“세상에나. 여기서 혈영지를 다 보다니! 정말 대박이에요!”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들의 얼굴에 놀라움과, 부러움, 그리고 질투가 섞여 있었다.“잠깐만요! 혈영지가 뭐예요?”이리저리 살피던 조아영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혈영지도 영지의 일종이긴 한데 일반 영지보다 훨씬 희귀하고 영지 중의 최상급이라고 불리는 진정한 보물이죠.”뚱보 사장이 침을 꿀꺽 삼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진정한 보물요? 그럼 값이 얼마죠?”조아영이 계속 캐물었다.“혈영지는 가격이 엄청 비싸요. 경매에 내놓으면 적어도 2천억은 넘을걸요.”뚱보 사장이 엄청난 금액을 말했다.“네? 2천억이요?”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평생 힘들게 벌어도 그만한 돈을 벌기 어려웠다.“말... 말도 안 돼. 저렇게나 작은 물건이 2천억이나 한다고?”장경화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이 상황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2천억도 적게 부른 거예요. 만약 경매에
“저 자식은 정말 운도 좋아! 혈영지를 다 얻다니!”“그러니까 말이야. 저것만 있으면 평생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저 영지를 사는 건데!”혈영지가 나타나서부터 구경꾼들은 한시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떠들어댔다.유진우를 쳐다보는 눈빛에 부러움과 질투가 가득 섞여 있었다.“젠장! 저 자식은 대체 무슨 행운이래?”이현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질투 어린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았다.“이상하네. 저 안에 저런 보물이 들어있는 줄 어떻게 알았지?”이청아는 놀라움과 동시에 의혹도 생겨났다. 약재 사장을 포함한 현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 알아채지 못했는데 하필 유진우만 보아냈다.운이 좋은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진우 씨, 우리 이번에 대박 났어요! 그런데 이 안에 혈영지가 숨어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조아영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을 던졌다.“사실 나도 확신이 없었어요. 그냥 추측일 뿐이었어요.”유진우가 겸손하게 말했다.“추측요?”조아영이 순간 멈칫했다.“그 말은 이 안에 혈영지가 있는 것도 몰랐으면서 10억을 걸었단 뜻이에요?”“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죠.”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유진우 씨를 바보라고 해야 할지,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조아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도박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제대로 걸었잖아요.”유진우가 덤덤하게 웃었다.“멀쩡한 백 년 영지가 아무런 이유 없이 말라죽은 걸 보고 꼭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전에 고서에서 비슷한 기록을 본 적이 있어요.”“정말 대단해요! 오늘 제대로 좋은 구경을 했어요!”조아영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오늘부로 그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 더 깊어졌다.“잠깐! 이 혈영지는 내 것이야!”그때 상황 파악을 마친 장경화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어 혈영지를 빼앗으려 하자 조아영이 막아섰다.“어이! 지금 뭐 하는 거야?!”“안 팔아, 안 팔아! 10억
밤사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이튿날 새벽, 천향원.조선미는 커피를 마시며 여러 자료를 훑어보았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그녀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조금 드리웠다.“조선미!”그때 조준서가 흰 눈썹 영감과 함께 기세등등하게 걸어 들어왔다.“무슨 일인데?”조선미는 고개도 들지 않고 계속 자료를 훑었다.“쾅!”조준서가 다짜고짜 한 나무 상자를 책상 위에 내려놓더니 뚜껑을 열었다. 흰 알약 하나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조선미, 이게 뭔지 봐봐.”조준서가 알약을 가리켰다.“이게 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알려줘야지.”조선미는 여유롭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흥! 우리 가문의 백령환도 몰라?”조준서가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이게 바로 백령환이구나... 그런데 왜?”조선미가 덤덤하게 물었다.“왜? 왜냐고?”조준서의 말투가 싸늘해졌다.“내가 이 백령환을 어디서 사 왔는지 알아? 강씨 가문에서 사 왔어! 강씨 가문에서 연구에 성공했다고!”“그래? 그런데 뭐? 진작 예상한 일 아니었어?”조선미의 표정이 평온하기 그지없었다.“너 지금 무슨 태도야? 아직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겠어?”조준서가 한스러워하며 말했다.“강씨 가문에서 제조한 백령환의 약효가 아주 뛰어나서 많은 재벌들이 벌써 예약하기 시작한대. 지금 백령환 한 알 값이 1억까지 뛰었어!”“그래서?”조선미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물건은 흔치 않을수록 귀한 법이라고 시중에 아직 백령환만큼 좋은 약이 없어. 계속 이대로 나갔다가 강씨 가문에서 시장이라도 개척한다면 우린 정말 끝이야!”조준서가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대체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조선미가 되물었다.“너한테 두 가지 선택을 줄게. 하루빨리 백령환을 만들어내거나 강천호랑 손을 잡거나 둘 중 하나 선택해!”조준서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누군가 백령환의 연구 성과를 도둑질해간 바람에 인제 와서 다시 시작한다는 건 너무 늦었어. 강천호랑 손을 잡는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
도미숙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우더니 양강인 일행에게 눈짓을 보냈다.“지금이에요, 움직이세요!”“죽여라!”신호를 받은 양강인은 짧게 외치고는 양손에 쥔 금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온몸이 허공을 가르며 솟구쳤고 곧장 유진우의 머리 위를 향해 벼락처럼 검을 내리찍었다.양강인이 먼저 움직이자 도미숙도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렸다. 좌우 양손에 들린 원앙도가 동시에 번뜩이며 유진우의 목덜미를 향해 겨눴다.두 명의 고수가 선공에 나서자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의 실력을 펼쳐 일제히 유진우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그 순간, 유진우는 마치 과녁이 된 듯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 속에 갇히게 되었다.하지만 그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온몸에 강한 진기를 일으키며 몸을 강하게 떨었다.“쾅!”굉음과 함께 눈부신 진기가 그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진기는 순식간에 투명한 보호막으로 변해 유진우의 몸을 감싸는 방패가 되었다.보호막은 바람을 타고 점점 커졌다. 눈 깜짝할 사이 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반구형의 보호막이 형성되었고 마치 거대한 달걀껍데기처럼 그를 단단히 감쌌다.“타다닥!”수많은 공격이 그 보호막에 부딪치며 귀를 째는 폭음이 터져 나왔다. 눈부신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양강인의 금도, 도미숙의 원앙도, 그리고 다른 이들의 맹렬한 공격 모두 유진우의 보호막에 한 점의 상처조차 내지 못한 채 멈춰 서고 말았다.“뭐라고?”양강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얼굴엔 놀라움이 스쳤다.방금 자신이 휘두른 공격은 보호막을 미세하게 흔들었을 뿐, 그 어떤 실질적인 타격도 주지 못했다.무기를 쓰지 않고 내공만으로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다니, 그 실력은 실로 경이롭고도 무시무시했다.“강인 씨! 저를 엄호해 주세요. 저놈의 진기를 뚫을 방법이 있습니다!”첫 공격이 통하지 않자 도미숙은 곧장 낮은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양강인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다시 검을 뽑아 들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맹렬한 공격을
“뭐라고?!”두 명의 반보 마스터들이 유진우의 손바닥 하나에 날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본 순간 모두가 숨을 삼키며 경악했다.방금 쓰러진 두 사람은 비록 마스터 급에는 못 미쳤지만 깊은 내공과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 보통의 무도 마스터와 충분히 겨뤄볼 만한 인물들이었다.그러나 방금 단 한 방에 두 사람을 생사의 경계까지 던져놓은 것을 보니 유진우의 실력은 그야말로 괴물이라 할 만했다.그러니 그가 비설파의 오너 공진혁을 꺾었다는 이야기도 허튼 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다 같이 덤비자!”도미숙과 양강인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동시에 몸을 날려 좌우에서 유진우를 공격했다.도미숙은 원앙단도를 사용했다. 그 움직임은 날렵하고 교묘했으며 칼끝은 매번 치명적인 급소를 정확히 겨냥해 들어왔다.그 검술은 마치 꽃 사이를 누비는 나비처럼 우아하면서도 숨겨진 날카로움으로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반면 양강인은 금빛의 보검을 들고 있었다. 그 금도는 쇠를 자를 수 있을 듯 무겁고 날카로웠으며 털끝을 스치면 모든 걸 두 동강 낼 정도였다.이 검은 금도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보검으로 세 대에 걸쳐 내려왔으며 오너의 손에서 단련과 수련을 거쳐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특히 금도문만의 비전 검법과 함께 사용할 경우 그 위력은 두 배가 되어 모든 공격마다 하늘과 땅을 가를 듯한 기세를 뿜어내게 된다.그 위압감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고수라도 정면으로 맞서기 힘들 정도였다.도미숙과 양강인이 움직이자 다른 반보 마스터 고수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각자 몸을 날려 사방에서 유진우에게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그러나 그런 협공 앞에서 유진우는 불현듯 발을 굴렀다. 순간 그의 몸이 솟구쳐 오르더니 마치 포탄처럼 지붕을 뚫고 허공으로 튀어 올라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도망치는 거냐!”공격이 먹히지 않자 도미숙과 양강인은 즉시 지붕 위로 몸을 솟구쳐 추격에 나섰고 다른 이들도 잇따라 그 뒤를 따랐다.그러나 여관을 벗어난 순간 그들은 곧바로 알 수 있었
새벽녘,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이 포위하듯 천천히 여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그들의 움직임은 놀랄 만큼 조용했다. 어떠한 기척도 일으키지 않고 사냥감을 노리는 늑대 떼처럼 신중하고 치밀했다. 그 속에는 짙은 살기도 서려 있었다.이때 여관 정문 앞에는 두 명의 경호팀 팀원이 경계하며 서 있었다.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 했던가 그들은 주변의 이상 징후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후!”그 순간 산들바람이 불어와 옅은 연기와 함께 묘한 향기를 실어 날랐다.그러자 두 사람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현기증을 느꼈다. 상황을 알아차릴 틈도 없이 눈앞이 깜깜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보초를 서던 두 사람을 처리하자 야행복을 입은 금도문과 원앙문의 고수들이 재빨리 여관을 포위했다.그러나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들은 바로 공격을 감행하지 않고 약을 써서 길을 트기로 했다.그들은 창문과 문틈 사이로 모든 방에 일제히 약을 뿌리기 시작했다.그 약은 원앙문에서 비밀리에 제조한 약으로서 극소량으로도 강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 약을 흡입하면 선천무사조차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강인 씨, 어때요? 다 처리됐습니까?”약을 뿌리고 난 후 두 세력은 복도 끝에서 마주쳐 서로 상황을 주고받았다.“잡졸들은 전부 쓰러졌습니다. 이제 남은 건 유씨 성을 가진 마스터 한 명뿐입니다.”양강인은 목소리를 낮추며 답했다.“그자의 방은 2층 동쪽 끝이에요. 제가 먼저 십향연골산을 뿌릴 테니 틈을 봐서 단숨에 중상을 입히세요. 그러면 이 일은 끝입니다.”도미숙이 낮게 속삭였다.“알겠습니다.”양강인은 고개를 끄덕였다.도미숙은 손짓으로 신호를 보낸 후 몇몇 고수들과 함께 살금살금 계단을 올랐다.양강인 일행도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대부분의 무사들을 1층에 남겨 돌발 상황에 대비하게 했다.함께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무사는 모두 반보 마스터 급인 강자들뿐이었다.양강인과 도미숙은 손꼽히는 무도 마스터였고 그 외에도 여섯 명의 반보 마스터가 함께했기에 이 전력은
십향연골산이 없었다면 양강인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그의 손에는 이 귀한 약이 있고 거기에 금도문과 원앙문의 고수들까지 있었으니 유진우 일행을 단숨에 제압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일이 끝나고 얻는 전리품은 우리 두 파벌이 절반씩 나누는 게 어떤가요?”도미숙이 웃으며 물었다.“좋습니다!”양강인은 주저 없이 응했다.최소한의 위험으로 최대의 이익을 노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잠깐만요!”그때, 뒤편에 서 있던 서지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사부님, 유진우 씨와 이청성 씨는 한때 저희와 함께 협력했던 동료들입니다. 게다가 은혜도 입었는데 지금 우리가 이렇게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건 너무 비겁하지 않습니까?”서지석은 항상 은혜와 원한을 분명히 하는 사람이었다. 이번 죽음의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유진우와 이청성 덕분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쯤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수많은 보물까지 손에 넣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이제 금방 돌아온 마당에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건 너무나도 비열한 짓이었다.“비겁할 게 뭐가 있느냐? 그들과 피가 섞인 것도 아니니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양강인은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말했다.“게다가 이곳은 본디 약육강식의 세계다. 그들이 그렇게 많은 보물을 독차지하고 있다 해도 지킬 능력은 부족해. 우리가 나서지 않더라도 분명 다른 세력들이 탐을 낼 것이고 어쩌면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 그런데 우리는 단지 보물을 바랄 뿐 그들의 목숨은 원하지 않아. 오히려 그들에게는 자비로운 셈이지.”“하지만 사부님,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가르치신 게 뭡니까? 사람은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야 하며 하늘과 땅, 그리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하는 짓을 보면 그 비열한 졸개들과 뭐가 다릅니까?”서지석은 굽히지 않고 맞섰다.“버릇없이 지금 어딜 감히!”양강인은 당황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서지
십향연골산은 무색무취의 미약으로 무림에서는 그 명성이 자자했다. 특히는 무도 마스터들을 제압하는 데 특화된 약물이었다.한 번 십향연골산에 중독되면 아무리 강한 마스터라 해도 팔다리에 힘이 풀리고 꼼짝도 못 하게 된다. 결국 손 하나 써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사부님께서 이미 준비해 두셨다니 정말 다행이에요!”장은경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이 십향연골산만 있다면 우린 틀림없이 계획을 완벽히 성공시킬 수 있을 거예요!”이청성의 일행 가운데 가장 큰 위협은 유진우였다. 유진우만 처리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오너님, 금도문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그때, 원앙문의 한 제자가 안으로 들어와 보고했다.“어서 모셔오거라.”도미숙은 눈을 반짝이며 손짓으로 제자에게 사람을 안내하라 지시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원앙문 제자의 인도로 열댓 명 남짓한 사람들이 위풍당당하게 안으로 들어섰다.선두에 선 이는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자였다.그의 손에는 금빛 대도가 들려 있었고 거친 인상에 압도적인 기세를 풍기며 발걸음마다 강한 위압감을 드러냈다. 그가 들어서자 원앙문 제자들은 하나둘씩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이 인물은 바로 금도문의 오너, 양강인이었다.그 뒤로는 금도문 소속의 고수들이 줄줄이 따랐으며 수제자 서지석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강인 씨, 오랜만입니다. 별일 없으셨지요?”도미숙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제자들과 함께 예를 표했다.양강인은 실력이나 명망 모두 자신보다 한 수 위인 인물이었다. 예의를 갖추는 것이 당연했다.“미숙 씨, 우린 오랜 친구 사이 아닙니까? 파벌 제자들도 늘 혼인으로 인연을 맺고 있으니 그런 형식적인 말은 필요 없어요.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말씀만 하세요. 금도문은 절대 거절하지 않겠습니다!”양강인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해마다 원앙문에서는 절세 미녀 여제자 둘을 금도문에 보냈고 함께 쌍수수련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이제 원앙문에서 도움이 필요하다니 그 역
문을 닫은 유진우는 이제 막 침상에 올라 명상하려던 참이었다. 유진우는 자신의 방 안에 낯선 여인이 들어와 있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베일 달린 모자를 쓴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는 맑고 생기가 넘쳤다.몸 전체에 풍기는 고귀하고도 우아한 기운은 그 자체로도 사람의 시선을 빼앗을 만큼 압도적이었다.그 여인은 다름 아닌 이청성이었다.“어? 언제 들어온 거예요?”유진우는 잠시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전까지 장은경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정신이 없던 그는 이청성의 존재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진우 씨, 저 밤에 혼자 있으려니 외롭고 무서워서 그런데 조금만 같이 있어 줄 수 있을까요?”이청성은 방금 전 장은경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하던 말을 흉내 내며 장난을 쳤다.“청성 씨, 그래도 한 나라의 공주인데 좀 정상적으로 굴 수는 없어요?”유진우는 눈을 흘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하하하... 진우 씨,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네요. 미인이 먼저 안기려 들다니 말이에요.”이청성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더니 말했다.“저였으면 그냥 그 흐름대로 받아줬을 거예요. 저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오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 있나? 괜히 이상한 취향이 있다고 오해받는 것보단 낫잖아요.”“하하... 제가 그렇게 쉬운 남잔 줄 알아요?”유진우는 마지못해 웃으며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그러면서 차를 두 잔 따르더니 첫 잔을 이청성에게 건넸다.“그래서요, 밤늦게 무슨 일로 찾아온 거예요?”“별건 아니고요, 그냥 조심하라고 알려주러 왔어요. 우리, 누군가에게 찍힌 것 같아요.”이청성은 따뜻한 찻잔을 들고 조심스럽게 불어 식히며 말했다.“왕 아저씨가 순찰 돌다가 우리가 묵는 여관 근처에서 수상한 자들이 어슬렁거리는 걸 봤대요. 누가 봐도 이상한 수작 부릴 게 분명해 보였대요.”“그래요?”유진우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 한 귀퉁이를 살짝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과연 몇몇 그림자가 여관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감시
장은경은 말을 하며 천천히 다가오더니 가냘픈 손으로 자연스럽게 유진우의 단단한 가슴팍을 어루만졌다.그녀의 촉촉한 눈동자는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매혹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그 시선은 마치 사람의 영혼까지 삼켜버릴 듯이 치명적이었다.평범한 무사라면 그녀와 눈을 마주친 순간 금세 정신을 빼앗기고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이것이 바로 원앙문의 간판 매혹술, 홍안취였다.원앙문이 서남 지역에서 오래 세력을 유지하며 점점 더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 홍안취라는 매혹술의 공이 컸다.얼굴이 아름다울수록 이 매혹술을 깊이 수련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남자에게 끼치는 유혹의 힘도 강해졌다.장은경은 어릴 적부터 홍안취를 익혀온 터라 벌써 십수 년의 세월 동안 그 기술을 연마해 완성의 경지에 이르렀다.게다가 그녀는 외모와 몸매 모두 뛰어나 그녀의 유혹을 버텨낼 수 있는 남자는 드물었다.금도문의 서지석도 이 매혹술에 빠져 그녀에게 완전히 정신을 빼앗긴 적이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자신만만했다. 유진우가 조금이라도 흔들리고 욕망의 틈을 보이기만 하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마음의 방어선을 무너뜨려 그를 손에 넣겠다고 결심했다.“저기요, 적당히 하세요. 할 만큼 했으면 얼른 돌아가 쉬세요. 저도 자야 하니까요.”장은경이 요염하게 몸을 흔들며 농염한 눈빛으로 다가갔지만 유진우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차갑게 응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히려 불쾌함이 어렸다.“뭐라고요?”장은경의 미소가 한 순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잠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멍하니 서 있었다.자신의 매혹술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내라도 그녀가 유혹하면 반드시 흔들리는 법이었다.하지만 유진우는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고 욕망의 기색은커녕 오히려 불쾌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이런 경우는 그녀에게 처음이었다.“진우 씨, 저 오늘 밤 혼자라서 너무 외롭고 무서워요. 진우 씨가 저 좀 위로해 주면 안 돼요?”장은경은 연약하고 애처로운 모습으로 태도를 바꿨다.방금
어둠은 빠르게 내려앉았다.여관에서 이청성의 경호팀 팀원들은 저녁을 먹은 뒤 일찌감치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단 두 조의 인원만 남겨 교대로 순찰과 경계를 서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죽음의 사막에서 지내는 동안 그들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이제야 비로소 그곳을 벗어났으니 오늘 밤만큼은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한편, 2층의 한 객실 안에서는 유진우가 따뜻한 물로 기분 좋은 샤워를 마친 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 앉아 두 눈을 감고 고생한 몸을 풀기 시작했다.이번 임무는 그야말로 완벽했다.보물이라 불리는 것들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그는 그저 영액 한 병만 가지고 돌아왔다.이런 걸 마시는 건 처음이라 그저 간단하게 맛이나 보자는 생각이었다.유진우 정도의 실력이면 사실 영액으로 얻을 수 있는 상승효과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게다가 그의 손에는 무림의 최고 보물이라 불리는 천영 구슬이 있었다. 그 덕에 수련 속도는 비약적일 것이다.그러니 영액 같은 건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그리고 사실상 영액을 과하게 마시면 몸에 상당한 부담이 쌓이게 되고 한편으로는 체력과 잠재력을 미리 소모하는 셈이었다.물론 영액은 단기간 내에 실력을 끌어올리고 경계를 돌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그러나 그렇게 급하게 돌파한 경지는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아 매우 불안정하고 한편으론 쉽게 흐트러져 정신이 붕괴되는 위험이 따르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힘으로 노력해 경지를 돌파한 무사보다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단점은 무시해도 될 정도로 영액의 효능은 엄청났다.단지 수련의 경지를 올리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열광했다.대부분의 무사들에게 한 단계 높은 경지는 평생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과도 같다는 건 잔인한 현실이었다.그런 그들에게 영액으로 경지를 돌파하고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건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똑똑...유진우가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을 때 문득 문을
“뭐라고? 영액이라고?”그 말을 들은 원앙문의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영액은 무사에게 있어 수련의 보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충분한 양의 영액만 있다면 평범한 무사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꿈으로만 바라던 마스터의 경지를 돌파할 수 있게 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영액은 너무나도 희귀하고 귀한 보물이었다. 대개 자연의 천연적인 약재 속에 소량 존재하며 이를 추출하고 정제해 얻는 데는 큰 정성과 시간이 소요된다.한 방울의 영액은 천금의 가치를 지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병 하나의 영액만으로도 피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만약 장은경이 가져온 물주머니가 죄다 영액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네, 맞습니다. 이 물주머니 안에 든 건 영액이에요. 게다가 이 한 주머니가 끝이 아닙니다. 무려 여덟 자루나 가져왔어요.”장은경의 말은 다시 한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여... 여덟 자루의 영액이라고?”도미숙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손마저 덜덜 떨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얼이 빠진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그 순간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만약 정말 그 물주머니가 전부 영액으로 가득 찼다면 원앙문에는 지금껏 없었던 하늘이 내린 기회가 찾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이렇게 많은 영액이 있다면 원앙문은 단번에 일류 파벌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좋다! 정말 잘 됐다!”“이 영액만 있다면 우리 원앙문도 일떠설 수 있어!”“은경아! 넌 정말 우리 원앙문의 복덩어리야!”“지금 당장 선언하마. 오늘부터 넌 원앙문의 차기 오너로 임명된다. 장로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야!”도미숙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벅찬 감정으로 직접 장은경을 차기 오너의 자리에 앉혔다.이에 대해 장로들이나 호법들 모두 의견이 없었다.장은경은 원앙문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제자였고 언젠가는 오너 자리를 물려받을 인물이었다. 이번 공로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