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이 교류회에 참가한 목적은 바로, 이 친환경 기술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려는 것이다.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 우수한 기술이 그들 나라의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다.한바탕 설명이 끝난 후, 그녀는 반쯤 성공하게 되었다.무대 아래에 앉아 있던 각국 친환경 분야의 대표들은, 잇달아 그녀의 말에 감동되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이진은 이미 AMC의 대표이기에, 큰돈을 들여 그녀를 자신의 회사에 스카우트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차라리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 이 친환경 기술을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그들은 모두 이 기술을 탐내고 있었는데, 마침내 구석에서 누군가가 일어서서 물었다.“이 대표님, 저희 회사는 이번 교류회를 통해 AMC의 친환경 기술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혹시 이 기술을 저희에게 파실 생각은 없나요? 물론 저희는 이 기술에 알맞은 가장 좋은 생산 조건을 제공할 수 있어요!”누군가가 먼저 말을 꺼내자,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전 방금 말씀하신 분보다 10배 높은 가격을 드릴 수 있어요.”“전 100배를 드릴 수 있어요!”“전 돈을 드릴뿐만 아니라 이 대표님과 함께 합작할 수도 있습니다!”그 사람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들이었기에, 돈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가격이 얼마든지 제시할 생각이었다.이 기술을 따내기 위해 그들은 하나둘씩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목적은 오직 이진한테서 기술을 사 가려는 것이다.이진은 이런 상황에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설마 했는데 정말 이런 상황이 일어날 줄이야.’“이 대표님은 어떤 생각이신 가요?”시끄러운 상황 속에서 세계보건기구의 법인 대표가 이진에게 물었다.왁자지껄한 상황이 갑자기 중단되더니 모두 이진을 쳐다보았다.이진은 차분한 표정으로 가늘고 긴 속눈썹을 들어 올렸다.그리고 아름다운 눈동자로 무대 아래의 사람들을 스쳐보았다.“일단 저희 회사의 친환경 기술을 지지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AMC는 아직
하지만 루트를 제자로 받아들이는 진짜 목적은 이진에게 말할 수 없었다.그가 보기에 루트의 기술은 아직 형편이 없었지만, 언젠가 이진이 루트를 더 아끼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승연은 이런 생각에 루트를 더 아니꼽게 보았다.오전 내내 하위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연습을 했는데, 루트가 아직도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도대체 사부님은 왜 이런 꼬맹이를 맘에 들어 하는 거야?’“사부님, 화나신 거 아니죠?”승연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이진의 앞에서는 순한 모습을 보였다.이진은 눈썹을 살짝 찡긋거렸을 뿐, 이에 대해 따지지는 않았다.“이건 씨는?”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이건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설마 회사 일 때문에 먼저 귀국한 건가?’승연은 이진의 반응을 보더니,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는 말했다.“윤 대표님은 회의 중이세요.”이진은 이 말에 바로 침실로 걸어갔는데, 거실에 있던 루트와 승연은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말다툼을 하기만 했다.이건은 교류회가 금방 끝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이진이 벌써 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진이 방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는 진지하게 컴퓨터 스크린을 쳐다보고만 있었다.오히려 회의 중인 직원이 먼저 이진을 발견하여, 놀란 표정으로 그의 뒤쪽을 바라보았다.이건은 그제야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교류회는 끝난 거야?”이건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즉시 화상 회의를 중지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진을 향해 걸어갔다.“잘 해결하고 왔어? 내가 세계보건기구 대표들을 조사해 보았는데, 그들은 모두 약삭빠른 사람들이야. 혹시 해코지당한 건 아니지?”“그렇게 걱정되세요?”이진은 입을 오므리며 웃더니, 이건에게 교류회에서 발생한 일들을 모두 말해주었다.물론 그들 회사의 친환경 기술이 각국 대표들에게 입찰될 뻔한 일도 말해주었다.이렇게 된 이상, 그들의 기술이 널리 홍보되긴 했지만 앞으로 많은 위험들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이번 교류회에서 이진은
“꼬맹이 너 뭐 하려는 거야? 경고하는데 넌 가만있기만 하면 돼!”승연은 루트를 힐끗 쳐다보더니 또다시 화를 냈다.마치 루트의 행동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루트는 입을 오므리더니 드디어 인내심이 폭발하고 말았다.“당신 혼자서 언제까지 해독할 생각인 거예요? 해독을 마치기도 전에 대표님이 먼저 위험해지겠어요. 제 말대로 해요, 제가 A를 해독할 테니 당신은 B를 해독하시면 돼요!”루트는 짜증을 내듯이 말을 하고는 자신의 부분을 해독하였다.승연이 또다시 화를 내려는 순간, 그는 A 시스템이 이미 해독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순간 승연은 승부욕이 활활 타올라 B를 해독하기 시작했다.코드 장벽을 해독하는 것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하나씩 해독한다면 언젠가 성공할 것이다.두 사람은 비슷한 속도로 코드를 해독하였는데, 마치 시합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승연은 순간 루트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그렇다면 어제는.’“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제는 왜 작은 프로그램마저 해독하지 못한 거야? 너 일부러 나 화나게 만들려고 그런 거지?”승연은 루트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루트는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잠깐 멈추더니, 그를 향해 눈을 홉떴다.‘네가 날 제자로 삼지만 않았다면, 내가 그런 행동을 했겠어? 그런데 성격이 조금 급한 것 외에, 기술만 본다면 그래도 사부로 삼을 만해. 어쩐지 세계 랭킹에서 2위를 한다 했어.’루트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자신의 잠재력을 모두 일깨우려고 했다.두 사람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다.루트가 자신과 겨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승연은, 마찬가지로 키보드를 더욱 빠른 속도로 두드렸다.마지막 애플릿이 성공적으로 해독되었을 때, 두 사람의 속도는 거의 비슷했다.손을 떼고 마주 보던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흔상하는 눈빛으로 보았다.물론 급한 일부터 해결해야 했다.드디어 메시지를 발송할 수 있게 되자, 승연은
외국이 아니라 국내에 그녀가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 될 일이 있었던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만만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이진은 만만의 질문에 날카로운 표정을 보이더니, 손에 든 서류를 덮으며 말했다.“임 비서, 내가 무엇을 하러 가기 전에 굳이 너한테 보고를 해야 돼? 만약 이건 씨 쪽에서 묻는다면, 회사에 처리해야 될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어서 외출한 것이라고 말하면 돼.”‘윤 대표님마저 속이려 하시다니, 작은 일은 아닌가 보네.’만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녀는 이진의 사람으로서 이건을 속이는 것은 별 부담이 없었다.그러나 만만이 걱정하는 것은 이진이었다.“대표님, 제가 사람을 몇 명 안배할까요?”“그럴 필요 없어.”이진은 만만이 하려는 말을 예상하고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거절했다.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차에 오른 이진은 가장 빠른 속도로 그 메일에 답장을 보냈다.메일이 보내진 지 몇 초 만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전화 너머의 사람은 무척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진 씨, 드디어 답장을 주셨네요! 전 이진 씨가 이번 임무에 참여하지 않으실 까봐 걱정했어요.”“국가 이익과 관련된 것이라면 절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죠.”이진은 차갑게 한 마디 내뱉은 후,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는 시동을 걸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제가 보낸 메일에 적힌 대로, 그 밀항자들은 작은 나라에서 이동을 개시했어요. 국제경찰은 물론 저희 군도 그들의 소식을 알아냈어요. 하지만 저희 행동이 신중하지 못해, 그들을 잡아내기 전에 상대방이 이미 저희가 보낸 사람들의 정보를 파악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놈들을 잡아내려면 낯선 얼굴을 보내 그들을 막아야 돼요.”이진은 그들이 생각해 낸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다.그녀 혼자만의 힘으로 저격수 몇 명을 해치울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임무가 급박한 만큼 매우 위험한 임무이기도 했다.수령은 이진의 실력을 믿고 있었으나, 여전히 그녀의 안전이 걱정되
승연은 얼른 컴퓨터를 열어 밀항자들의 핸드폰을 감시하였다.그들 중 누군가가 보스에게 연락하면 바로 그의 컴퓨터에 메시지가 올 것이다.하지만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도록 기회를 잘 포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상대방에게 미끼를 던지려면 그는 반드시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그러기에 그의 조사는 어느 정도 시간이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이진은 이에 별 이의가 없이, 승연이 건넨 자료들을 가지고 주둔 군대의 대장을 찾아갔다.“지금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이 사람들은 분명 전부터 준비를 해두었을 거예요. 저희가 경솔히 행동하면, 그들의 배후에 숨어 있는 보스를 놀라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보스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시간을 소모하고, 마지막에 그들을 한꺼번에 잡아버리는 것이다.대장은 이진의 말을 알아들었지만, 그들도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그 밀항자들이 국경 주변의 주민들을 계속 괴롭히고 있기에, 제때에 그들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주민들이 큰 손해를 보게 될 거예요. 저희에게 더 이상 지체할 만한 시간 따위는 없어요.”대장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이진 씨, 저희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없어요. 혹시 동시에 두 가지 준비를 할 수는 없을까요?”이진은 눈동자를 굴리더니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배후의 보스를 제거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또다시 발생할 거예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들이 먼저 행동을 개시하고, 저와 승연이가 임무 수행 과정에 그 밀항자들을 감시하며 그들의 보스를 찾아내는 거예요.”승연 혼자로는 해결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이진이 함께 한다면 조사 시간을 최대한도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두 분께서 그들의 보스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협조해 드릴 게요.”이진의 제안은 지금 같은 긴급한 시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그녀와 승연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무모한 남자들이기에, 상대의 컴퓨터를 해독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이진 씨만 믿을 게요.”대장은 정중하게
만만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진의 개인 계정을 열어 메시지를 보냈다.그녀는 이건이 전날에 직접 GN그룹으로 찾아와, 그녀의 모든 통신 수단에 실시간 감시 프로그램을 설치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만만은 비서로서 이진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다.게다가 이건은 이진이 실종되기 전에 AMC에서 반 시간 동안 회의를 연 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만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건은 이진이 떠나기 전에 만만을 시켜 자신을 속일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만만을 시시각각 경계하고 있었다.그는 만만의 핸드폰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AMC로 달려갔다.“이진은 어디에 있는 거야?”이건은 훤칠한 몸매에 차가운 기운을 띠고 들어섰는데, 그 표정은 매우 매서웠다.만만은 순식간에 이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에 꼼짝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이진이 당부했던 것을 생각하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죄송하지만, 대표님께서는 직접 처리하셔야 될 프로젝트가 있어서 급하게 출장을 가시게 되었어요.”“출장이라고?”이건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이 비서는 정말 내가 바보인 줄 아나 봐?’“네가 이진의 비서라고 봐줄 것 같아? 지금 연락조차 안 되는 이진이 만약 위험에 빠지기라도 했다면,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이건은 이미 인내심이 바닥났기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만만을 노려보았다.그가 당장이라도 자신을 산산조각 낼 것 같은 모습을 보이자, 만만은 황급히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당장 말해!”이건이 계속해서 다가오자, 만만은 당장이라도 그의 손에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다.하지만 만만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윤 대표님, 전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이건이 무엇을 알아냈든지 간에 그녀는 이진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했다.만약 그녀가 이진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면, 메시지를 보내는 게 아니라 벌써 직접 이진을 찾으러 갔을 것이다.만만은 공손한 태도로 천천히 말했다.“윤 대표님, 걱정 마세요. 대표님은 합작 문제 때문
“난 혼자가 아니야.”이진은 차분히 승연을 설득하였다.“내가 이곳에 있는 한 군인들이 날 보호해 줄 거야. 넌 나 대신 이건 씨를 막아 주기만 하면 돼.”“군인들?”‘모두 차가운 표정을 하며 감정 없는 로봇 같은 놈들?’승연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조차 없었기에 자연히 그들을 믿지 않았다.“사부님.”“승연아, 너 지금 내 명령을 거역하려는 거야?”이진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이건 주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사람들이기에, 이대로 시간을 지체하면 분명 이건은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낼 것이다.그래서 이진은 반드시 시간을 다그쳐야 했다.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차가운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승연을 노려보았다.그는 결국 이진을 이기지 못해 타협하고 말았다.“제가 반드시 윤 대표님을 제지할게요.”승연은 아쉬운 마음에 이진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이진과 간단히 포옹을 하고는 재빨리 떠났다.이진에게 있어서 승연은 그저 속임수에 불과했다.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건에게 들킬 것이기에, 그녀는 가능한 한 빨리 이 밀항자들을 해결해야 했다.일이 이 지경이 되어버린 이상, 그들은 기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이진은 계획을 세우고는 가장 빠른 속도로 보스의 정보를 알아냈다.그리고 직접 대장을 찾아가 기습 계획에 대해 상의했다.“그 말은, 기습하자는 거예요?”대장은 손에 든 보스의 개인 정보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이 불과 이틀 전에 보스가 나타난 후 손을 쓰기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계획이 이렇게 갑자기 변할 줄이야.’대장은 오히려 책망할 뜻은 전혀 없어 보였다.그는 이진이 대답하기 전에 작전 계획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사실 저희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희는 여태까지 이 밀항자들을 잡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저희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계획을 실시하기 전에, 반드시 제대로 상의를 거친 후 행동을 개시해야 됩니
이때 갑자기 가슴을 파고드는 따끔함이 그녀의 발목에 전해졌다.이진은 이를 악물고 놀라움을 참으며 한쪽의 나무줄기를 잡았다.달빛을 빌어 천천히 몸을 웅크리고 나서야, 이진은 자신이 덫에 빠졌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온통 보스를 매복 공격하는데 집중하였기에, 이런 함정 따위를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다.그녀의 현재 상태로는 제때에 덫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적에게 발견되었을 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이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그녀는 적에게 발견되지 않게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덫은 교합력이 매우 강할 뿐만 아니라 무게도 상당했다.이진은 한 위치에서 잠시 멈췄지만, 덫을 열 만한 도구가 하나도 없었다.결국 그녀는 손으로 덫을 열 수밖에 없었다.이진은 온몸의 힘을 손에 집중하여 덫을 힘껏 쪼갰다.“아우.”이때 멀리서 늑대가 짖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짐승은 후각이 뛰어난 데다가 피비린내에 특히나 예민했다.이진은 밀항자들의 눈을 속일 수는 있어도, 짐승의 코를 속일 수는 없었다.이진은 차가운 표정으로 시계의 통신 신호를 눌러 군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한편 늑대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 군인들은 경각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이때 이진의 신호를 받게 된 군인들은 가장 빠른 속도로 이진에게 달려갔다.이를 전혀 모르는 밀항자들은 늑대의 울부짖는 소리에 흥분하기만 했다.짐승이 울부짖는 것은 사냥감이 그물에 걸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몇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진의 방향으로 걸어갔다.“탁”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덫이 끊어지게 되었다.이진은 한숨을 돌리고는 허리춤에 꽂힌 권총을 꺼냈다.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이진은 벌떡 일어나 무방비 상태인 밀항자 네 명을 단번에 죽였다.가장 뒤쪽에 서있던 보스는 바로 이상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들의 보스는 이진의 총이 그를 향하기도 전에 얼른 도망치고 말았다.이진은 이런 상황에 코웃음을 쳤지만, 바로 따라가진 않았다.‘일단 상처부터 처리해야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