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은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오늘 직접 나타나 그를 도우려고 했던 거다.루트는 흔치 않은 인재였는데 어리석은 이영이 루트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거다.이진의 최종 목적은 루트를 자신의 회사로 들이는 것인데 그전에 루트의 할머니를 도와주는 게 먼저였다.루트가 가려는 것을 보자 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루트를 불렀다.“절 믿어 주신 다면 제가 신의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죠!”루트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다시 돌아서서 이진을 향해 걸어왔다.루트는 다시 희망을 찾기라도 한 듯이 눈을 반짝였다.레스토랑 안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루트는 이진의 앞으로 달려가 물었다.“방금 한 말씀 사실이에요? 정말 신의를 찾으실 수 있어요?”루트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또다시 의기소침해졌다.“진짜 신의를 찾으셨다고 해도 신의께서 절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이진은 정중하게 약속을 했다.“제가 장담하는데 전 신의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루트 씨의 할머니를 무료로 진찰하도록 설득할 수 있어요.”루트는 이 말을 듣자 미친 듯이 기뻐하였다. 정말 이진의 말대로 할머니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이진은 루트의 은인이나 다름없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이진의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이진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루트는 얼마 전에 이영한테도 이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그때의 루트는 순진하게 이영이 정말 할머니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사기극에 불과했던 거다.그래서 이번에 루트는 누구도 쉽게 믿지 않으려고 했다.이런 생각에 루트는 다시 입을 열었다.“전 더 이상 아무도 안 믿을 거예요. 보나 마나 두 분 모두 절 이용하려는 거겠죠.”루트는 아직 병상에 누워 있는 할머니를 떠올리더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루트는 고개를 힘껏 저으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전 당신들이 이복자매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이씨 가문은 모두 사기꾼들인가 봐요!”결국 루트는 믿을
다음날 아침 이진은 일찍 깨어났다.그녀는 어제 Root와 오늘 아침에 ‘신의’를 데리고 그의 할머니 병세를 보러 갈 거라고 약속했다.곁에서 아직 잠들어 있는 남자를 보고 이진은 조심스럽게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하였다.잠자는 윤이건은 옆이 비어 있는 것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아직 잠에 덜 깨어난 모습으로 긴 팔을 뻗어 이진을 다시 끌어당겼다.남자의 의도를 알아차린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웃었다.그녀는 흐트러졌지만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얼굴에 가볍게 키스했고, 윤이건은 그제서야 만족한 듯 손을 놓았다.한 시간쯤 후에 윤이건도 일어났다.그는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지만 익숙한 그녀의 모습은 찾지 못했고 식탁에서 쪽지 한 장을 발견했다.이것은 이진이 떠나기 전에 남긴 것이다.“이건 씨, 아침은 제가 해 놓았고요, 부엌 밥솥에 넣어놓고 보온하고 있으니 일어나 아침 먹고 회사 출근해요.”윤이건은 마음속으로 크게 감동하였다.‘역시 내 부인.’한편 이진은 빈민가에 도착했고 지난번Root미행했던 기억으로 여러 개의 허름한 골목길을 헤집고 마침내 Root의 집을 찾았다.Root가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이진을 봤을 때 그의 눈동자는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이진 손에 든 약상자를 보고 두 사람의 약속을 떠올리고는 정신을 차렸다.그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진을 자신의 작은 방으로 초대했다.“신의가 오신다고 해서 제가 어제 특별히 방 청소했어요. 봐 보세요 깨끗한지, 그 신의 친구분이 마음에 들어 할가요?”Root는 분명 그의 눈앞에 있는 이진이가 그들이 오랫동안 언급해 온 '신의'라는 것을 아직 몰랐다.이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예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아요.” Root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녀에게 질문했다.“근데 신의는 언제 오시나요?”신의가 오면 할머니 병을 고칠 수 있고 오랜 기다림이 드디어 끝을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Root도 많이 기뻤다.이
이진은 도구를 치우면서 Root에게 말했다.“마침 저도 가볼 일이 있어서 같이 갑시다. 비행기 티켓은 비서한테 예약해 놓으라고 할게요. 어떤 가요?” 새로 개발한 창산고원 지역은 현재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머지않아 이 땅은 분명 매우 경쟁력 있는 좋은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분석되었다. 그래서 이진도 항상 땅을 노려보고 있었다.이번 기회를 빌어서 이진도 현지에 가서 땅의 시장가치를 잘 확인하려고 하였다.이진의 제안을 들은 Root는 망설임 없이 흔쾌히 동의했다. 어차피 백 년 된 성학연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이진이 데리고 가겠다고 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그리고 이것이 그가 이진의 진영에 합류한 것을 의미하는지는 이젠 중요하지 않다.“알았어요, 출발 시간이 정해지면 알려줄게요.”이진은 회사에 다른 볼일이 있어 Root의 집에 많이 머물지 않았고,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곧장 떠났다.한편 윤이건은 이미 아침 회의를 마치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그의 앞에는 컴퓨터가 켜져 있었고, 번쩍이는 스크린에는 그가 결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회의록이 자세히 보였다.윤이건의 두 눈은 이렇게 멍하니 위의 검은 글씨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은 다른 곳에 팔고 있었다.점심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아침 이진이 남긴 아침식사를 되새겼다.‘샌드위치 정말 맛있었는데…….’따뜻한 우유도 그가 평소 마시던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한 것 같았다.그리고 어젯밤, 이진의 작은 입고 향긋하고 달콤했다.윤이건의 생각은 점점 멀어져갔고, 낮 12시가 되어 컴퓨터 안의 알람이 울리고 나서야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그리고 바로 일어서서 의자 등받이에 있는 양복 외투를 집어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이진을 찾아가 같이 점심을 먹으려는 것이다.윤이건은 차를 몰고 질주하여 곧 회사에 도착했지만 강해란을 통해 이진이 아직 회의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이진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는 강해란이 소식을 전하러 들어가는 것을 막고, 대신 이진을 놀라게
윤이건은 성큼성큼 다가와 이진을 품에 안았다.이진은 윤이건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냥 코웃음 하였다.“환절기라 흩날리는 꽃들이 참 많네요!”‘질투했네, 근데 아니라고, 여자들이란!’근데 이런 이진도 윤이건에게 치명적인 유혹이다.윤이건은 몸을 숙이고 자신의 잘생긴 얼굴을 여자의 부드러운 어깨너머에 묻은 다음 입가를 헤벌리고 혼자 슬그머니 웃었다.이때 이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창산고원 그 프로젝트 며칠 동안 현장 조사를 갈 거예요. 마침 Root 할머니를 치료할 벽년성학연도 거기에 있으니 그것도 찾아와야 되고요.”“제가 집에 없는 동안 몸조리 잘하고 밥 잘 챙겨 먹어요.”그 말에 윤이건은 미소가 굳어지고 문득 고개를 들었다.오전만 헤어졌는데도 이진에 대한 그리움으로 일도 제대로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데 며칠이면 아예 그리워 죽을 수도 있다.‘나 짝사랑 안 해, 며칠이라도 안 돼!’이진이 어쩔 수 없이 답했다.“나 현장 조사 가는 거예요. 할머니 치료 약도 찾아야 하고, 놀러간 거 아니거든요.”“알아. 나도 그냥 가는 게 아니야. 나 경험 있어. 프로젝트 분석도 도와줄 수 있으니 분명 도움이 될 거야.”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너 혼자 보내기에는 그 산이 너무 위험해, 난 널 지키고 싶어.”“나 거기 가본적이 있으니까 너희들 가이드도 될 수 있어.”이렇게까지 말하니 이진도 더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사실 이진도 마음속으로 윤이건이 함께 가기를 바랬지만 그에게 폐를 끼칠까 봐 두려웠다.여기까지 생각한 이진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하였다.그러나 그 눈에는 감출 수 없는 행복과 달콤함으로 가득 차 있다.이때 마침 이진의 핸드폰이 울렸다. Root의 전화이다.전화를 받자마자 Root의 당황한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왔다.“방금 이영의 전화가 왔어요. 회사자료를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가요?”이진은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이건 Root가 나랑 같은 전선에 서겠다는 뜻인가?’‘좋아!’Root와 손을
이 말을 들은 이진과 윤이건은 모두 어리둥절해하며 얼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윤이건이 뭘 더 물어보려고 했지만 다른 한 승무원이 한 사람 부축하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주 익숙한 얼굴이였다. 그 사람은 그렇게 천천히 걸어와 이진 옆자리에 앉았다.손님이 자리를 잡자 두 승무원의 얼굴에는 적절한 예의의 미소가 번졌다.“즐거운 여행 되십시오!”이 말을 마치자 그녀들은 자리를 떠나 다른 승객들을 도와주었다.승무원이 떠나자 넋을 잃고 있던 한시혁의 눈빛도 다시 청명을 찾고 깊어졌다. 마치 아까 눈먼 척을 하며 동정을 받던 사람이 그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그의 얼굴은 변함없이 온화하고 유려했지만 이진과 윤이건 눈에는 오히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보였다.윤이건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고 그의 먹빛 눈동자에는 찬 빛이 번쩍였다. 이번에도 역시 한시혁이 몰래 비행기 좌석에 손을 댄 것이 분명하다.장애인인 척하면 좌석을 우선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다.미리 좌석을 정했더라도 그가 입을 열면 항공사 직원들은 먼저 조율해서 자리를 넘겨줄 것이다.장애인들 앞에서 윤이건의 신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였고 항공사 직원들도 자연히 윤이건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다.자리를 바꾸면서 윤이건의 좌석은 일등석 맨 뒷줄로 바뀌었고, 이진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에 있었다.이진도 그 경위를 깨닫고 이를 갈며 말했다.“넌 정말 비열하기 짝이 없어. 장애인을 ‘방패’ 로 삼다니, 짐승만도 못해!”이진의 속마음을 알면서도 한시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기만 했다. 그는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참 묘한 인연이야. 나 마침 창산에 촬영하러 가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가는 길에 여러모로 많이 부탁해.”윤이건은 주먹을 불끈 쥐고, 한참 만에야 이 염치없는 얼굴에 잔혹한 흔적을 남기고 싶은 충동을 억제했다.파렴치한 이 사람과 교감할 생각이 없는 윤이건은 돌아서서 승무원을 찾아갔다.“난 자리 바꾸지 않을 겁니다. 이 사람 장애인 아니예요.
“여러분, 이번 C타운행 비행기는 이륙했습니다…….”비행기는 곧 활주 궤도에 올라 고공으로 날아갔다.한시혁은 멀지 않은 곳의 윤이건을 돌아보며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윤이건의 눈에 비친 경고를 무시하고 한시혁은 자꾸 이진을 건드렸다.“진아, 오늘 날씨도 좋은데 내리고 나랑 밥 먹자.”“진아, 창산고원의 그 프로젝트를 조사하기 위해 C타운에 가는 거야?”“진아…….”이진은 옆에서 자꾸 자기를 ‘진’이라고 부르며 혼잣말을 하는 남자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그리하여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이진은 한시혁에서 멀리 떨어진 방향으로 약간 몸을 돌려 눈을 감고 잠자는 척하였다.하지만 한시혁은 모처럼의 이 윤이건을 쓰러뜨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한시혁은 이진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틈을 타 그는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귓가에 가벼운 숨소리를 내더니 다음 순간 그는 이진의 귓불을 한 입에 물고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자아냈다.두 사람의 자세는 갑자기 애매해졌고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윤이건은 이걸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만약 지금 비행 중이 아니라면 그는 분명 한시혁을 평생 동안 침대에서 보내게 죽도록 팼을 것이다.이진은 몸을 움찔하더니 문득 눈을 떴다. 그녀의 예쁜 눈에는 살의가 겹겹이 번졌다.그리고 한시혁을 향해 바로 한 주먹을 날렸다. 차갑고 매서운 바람과 함께 주먹이 한시혁의 아랫배에 무겁게 내려앉았다.“장애인이 되고 싶으면 내가 만들어 줄게!”“한번만 날 더 건드리면 정말 무릎 꿇고 비행기에서 내리게 할 테니까. 한번 해보시던가!”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윤이건도 당연히 이 상황을 보았다. 한시혁의 자신의 여자에게 심하게 당한 것을 보고 그는 속으로 기뻐하였다.남은 시간 한시현은 과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진도 조용히 잠을 잘 수 있었다.두 시간 후 비행기는 무사히 창산공항에 착륙했다.그들은 VIP 통로를 빠져나왔고 한시혁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승무원의 부축을 받으며
이때 갑자기 방의 초인종이 울렸고, 이진은 윤이건이 돌아온 줄 알고 별 생각 없이 가운을 입고 문을 열었다.문을 열며 이진은 습관처럼 말했다.“돌아왔어요!”그러나 사람을 알아보고 이진 얼굴의 표정은 굳어졌다.“또 너야!”이때 한시혁은 이미 양복을 갈아입고 아름다운 장미 붓다발을 들고 문 밖에 서 있었다.앞에 가운만 입은 이 여자를 보고 한시혁은 가슴이 타오를 것만 같았다.이진의 보일 듯 말 듯한 몸매에 한시혁의 그윽한 먹빛 눈동자는 이진을 향해 한참 동안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그의 눈빛을 알아차리고 이진은 갑자기 자신이 목욕 가운 한 벌만 입었던 것이 생각나서 화내며 문을 힘껏 닫으려고 하였다.한시혁은 다리를 쭉 뻗고 문 닫기 전에 가로 막았다.이진이 반응하기도 전에 한시혁은 이미 문밖에서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고 뒤쪽 문을 밀어 닫았다.지금 이 방에는 이진과 한시혁 두 사람만 있다. ‘윤이건이 빨리 돌아오지는 않을 거고, 이진과 단둘이 방에 있다니…….’이렇게 생각하고 한시혁의 숨결은 뜨거워졌다.이진은 그의 행동을 보고 또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꽃을 힐끗 쳐다보았다. 차가운 눈동자에서 경계하는 빛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지금 뭘 하려는 거야?”마음을 가다듬고 한시혁은 얼굴에 온화하고 유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늘 공항에서 미안했어. 팬들이 너무 열광해서…….”이진은 그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하고, 손을 내저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난 신경 쓰지도 않았으니 사과할 필요 없어, 별일 없으면 빨리 가, 널 보고 싶지 않아.”그러자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안 돼.”“팬들이 널 미는 거 봤어. 그때 내가 멀리 있지 않았더라면 널 지켜줬을 거야.”그러면서 장미꽃을 들어올렸다.한시혁은 고개를 숙이고 장미꽃에 가볍게 키스를 한 후 꽃다발을 이진의 앞에 내밀었다.그녀의 예쁜 눈동자에 혐오가 스쳐 지나갔다. 마침 한시혁을 밀어내려고 하는데 방 문틈에서 '드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방 열쇠가 긁히
한시혁은 이를 악물고 불쾌감을 참으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장미꽃을 주워들고 방을 나갔다.방 안에는 이진과 윤이건 두 사람만 남았고 굳어진 분위기도 한순간에 다시 뜨거워졌다.윤이건은 싸늘한 기운을 거두고 고개를 숙여 가운을 입은 여자의 섹시한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았다.“왜요…….”이진은 그의 먹빛 눈동자에 약간 부끄러워하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윤이건의 눈을 가렸다.“나쁜 놈!”윤이건은 이진의 허리를 집고 그대로 그녀를 문에 기대게 하였다. 여자의 가늘고 부드러운 허리를 만지던 그는 즐기며 손을 떼고 싶어 하지 않았다.그는 이진의 어깨너머에 턱을 얹었다. 코끝에는 샤워젤과 샴푸향이 감돌았다. 윤이건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다소 억울한 듯 말했다.“나 방금 한시혁이 너를 안는 걸 봤어.”말에는 질투가 가득했다. 이진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여 손을 들어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일부러 당신을 화나게 한 거예요. 나 아까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짧은 설명이다. 그러나 이진은 윤이건이 자기를 믿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알아.”남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시무룩했다.“난 그냥 그 자식이 널 가까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터치하는 거는 더욱 싫어. 정말 싫어 죽겠어…….”윤이건의 갑작스러운 애교에 여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인식하고 웃으며 윤이건을 놀렸다.“방금 사람을 때리던 그 기세 어디 갔죠?”“뭐 남자 답기는 해요!”“나 원래 상남자거든…….”이진이 그를 비웃는 것을 느끼자 윤이건은 다시 냉담하게 흥얼거렸다.“나 지금 괴로워 죽겠는데, 넌 이렇게 빈정대도 되는 거야!”그리고 윤이건은 손을 내밀어 옆에서 빈정대고 있는 어느 한 여자의 허리를 가볍게 꼬집었다.이진은 끙끙거렸고 이어 아리송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그녀의 향기로운 입술과 하얀 이빨 사이로 넘쳐흘렀다.그 소리에 윤이건의 그윽한 눈동자가 번뜩이자 갑자기 자신의 몸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끼며 더욱 꿈틀거렸다.“너 정말 나쁜 여자야!”남자는 이를 악물고 몸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