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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하지만 엄마는 잊어버렸다. 내가 결혼할 때 엄마가 내 손을 잡고 했던 말을.

“연주야, 만약 네가 힘든 일이 생기면 꼭 엄마한테 말해. 엄마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꼭 네 편 들어줄게.”

‘엄마, 엄마는 모를 거야.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지.’

‘배포 있게 행동하라니, 준기의 잘못을 용서하라니, 그건 정말로 너무 어려운 일이야.’

나는 스스로를 감싸 안고, 그 상태로 기진맥진하여 잠에 빠져들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 거실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어디에도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권다연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가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연주야, 너 지금 어디야?]

전화를 받자마자 친구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집에 있어.”

[송준기는 집에 없어?]

“응.”

그러자 다연의 목소리가 한껏 높아졌다.

[너 내가 방금 누구를 봤는지 알아?]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송준기를 봤어!]

[그런데 그 옆에 어떤 여자가 있었어. 엄청 젊어 보이더라. 게다가, 송준기가 그 여자에게 물건을 잔뜩 사줬어. 돈을 물 쓰듯 쓴 거야!]

[너 생각해 봐, 이거 완전히 바람난 거 아니야?]

돈을 물 쓰듯이 쓴다는 말을 듣자, 나는 문득 준기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사준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아주 조용하게 말했다.

“그래.”

그러자 다연은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 이 쓰레기 같은 놈,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바람을 피워? 내가 그 여자 당장 찾아가서 혼내줄 거야.]

나는 다연이 분노로 숨을 거칠게 내쉬는 소리를 들으며 작게 웃었다. 그래도, 세상에는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나는 다연을 말렸다.

“그러지 마, 그 사람 찾아가지 마. 나, 조만간 이혼할 거야.”

[연주야, 너 지금 많이 힘들지? 내가 옆에 있어 줄까?]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아니야, 벌써 늦은 시간인데, 너도 일찍 가서 쉬어.”

사실,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는 게 얼마나 간절히 필요한데. 하지만 다연도 이제 가정이 있고, 얼마 전 아이가 막 돌을 지났다. 다연이 자기 아이를 두고 나를 위해 밤을 새워주는 것은 무리한 부탁일 것이다.

다연인 계속해서 정보를 전했다.

[나 방금 남편한테 물어봤는데, 그 여자는 송준기 제자래!]

[진짜 이상한 놈 아니야? 자기 제자한테 손대다니.]

다연의 남편은 준기의 절친이었다. 그가 준기의 일을 아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제자와 바람이 났다는 건 충격적이었다.

준기는 대학 교수로 일하면서 깔끔한 외모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고백을 받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했고, 학생들과는 절대 애매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원칙을 깨버린 것이다.

[그 여자 임연희라는 애야. 반에서 꽤 유명하대.]

다연은 계속해서 그녀가 알아낸 정보를 말해주고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휴대폰에 은행 계좌에서 출금된 알림 메시지가 연달아 뜨기 시작했다. 금액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거의 우리 집 1년 생활비에 맞먹는 돈이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준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울린 지 한참이 지나도록 그는 받지 않았다. 거의 포기하려고 할 때쯤, 준기가 전화를 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들려왔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물었다.

“우리 돈으로 그 여자한테 물건 사줬어?”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준기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담아 말했다.

“어떻게 내 돈으로 다른 여자한테 물건을 사줄 수 있어? 송준기, 너 지금 누구 남편인지는 알고 있어?”

그러자 준기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가 네 돈이야? 너 일 그만둔 지 얼마나 됐다고? 나 아니었으면 네가 어떻게 먹고 살았겠어? 내가 벌어온 돈으로 누구한테 뭘 사주든 그건 내 마음이야.]

나의 목소리는 떨렸다.

“우리가 결혼한 사이잖아. 결혼한 부부의 공동 재산이라는 거 몰라?”

올해 초, 내가 다니던 회사는 실적이 좋지 않아졌다. 사장은 계속해서 직원들을 쥐어짰고, 우리는 한 사람이 세 사람 몫의 일을 해야 했다. 퇴근 후에도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해야 했지만, 급여는 전혀 오르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한 달을 버티다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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