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어디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인가요?”“안 가도 돼요. 근데 큰 어르신이 죽으면 진운도 같이 매장당하게 된다는 사실은 알아둬요.”노유미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금 협박하는 겁니까?”임지환은 불쾌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우리 임 사부님 농담도 지나치네요. 저같이 나약한 여자가 무슨 수로 협박을 하겠어요?”“그저 알려드렸을 뿐이에요.”노유미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녀의 속내는 전혀 알 수 없었다.그녀의 이런 태도는 한가지 동물을 연상케 했는데 그건 바로- 꽃뱀.한 마디로 매혹적이지만 위험하기까지 한 사람이다.“내가 당신을 못 죽일 것 같나요?”임지환의 눈빛이 순간 차가워지더니 현장을 단번에 살얼음판으로 만들었다.“사모님, 조심하세요!”노유미가 눈치채기도 전에 전무쌍은 위험을 감지하고 그녀를 자신의 뒤로 감췄다.“꺼져!”임지환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주먹 한 방으로 단번에 그를 제쳤다.“쾅!”그래도 전무쌍이 나름 호위무사인데 방어할 기회조차 없이 단번에 임지환의 주먹을 맞고 날아갔다.“역시 예전에 봐줬던 거군.”심하게 나뒹굴어진 전무쌍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죽고 싶으면 지금 말해!”임지환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단번에 노유미의 목덜미를 잡고 말했다.그가 살짝만 힘을 줘도 여자의 목은 부러질 것이다.“저를 죽이면 진씨 가문의 어르신과 손자는 다 죽게 될 겁니다.”“못 믿겠으면 어디 한 번 죽여봐요!”생사의 갈림길에서 노유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웃고 있었다.순간 임지환의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서서히 손에 힘을 풀었다.“쿨럭... 당신도 두려운 게 있었군요.”이 긴급한 상황에서도 노유미는 느긋하게 목을 어루만지며 몇 번 기침했지만 표정은 밝아 보였다. “당신을 죽이지 않은 건 더 이상 당신에게 이용당하기 싫기 때문입니다.”“잠시 살려는 드릴게요. 제가 나중에 진씨 가문의 일을 다 처리하면 그때 다시 죽여도 늦지 않았으니까.”임지환은 차갑게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현재 진씨 집안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미래가 불투명했다.만약 진씨 집안에서 큰 도련님이 두목으로 올라간다면 미래의 판도를 좌우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이미 이씨 가문이 임지환이라는 거대한 군함에 완전히 기대게 된 이상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진씨 집안 쪽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 볼게요.”임지환은 잠시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지금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은 가능한 모든 자금을 동원하여 한씨 가문과 끝까지 경쟁하는 겁니다.”“자금 쪽의 문제는 시름 놓고 내게 맡겨두세요.”이성봉은 약간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씨 가문과 자산으로 싸우려면 우리 이씨 가문으로는 턱도 없을 겁니다.”지금 이 시점에서 억지로 허세를 부리다가는 나중에 모든 손해는 결국 자기가 보게 될 것이다.그래서 이성봉은 미리 우려하는 부분을 꺼내 상의하려 했다.“걱정 마세요. 내게 계획이 다 있으니까.” 임지환은 차분하게 이성봉을 달랬다.별장에 돌아온 후 임지환은 상자에서 그 오래된 휴대폰을 꺼냈다.그러고는 다시 주작의 번호를 눌렀다.“용주님, 무슨 일이든 말씀만 하세요.” 주작은 공손한 태도로 전화를 받았다.“네가 예전에 국내에서 내게 개설해 준 계좌에 사용 가능한 자금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 임지환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구체적인 숫자는 모르겠지만, 10조 이상은 확실히 있습니다.” 주작이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숫자를 말했다.“너 그 자금을 그럴싸한 이유로 3일 이내에 강한시 이씨 가문의 계좌로 이체해.” “용주님의 지시는 반드시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주작은 잠시 뜸 들이다가 말을 꺼냈다.“소인이 이번에는 용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너 이 자식, 성격은 여전히 변함없이 고집불통이구나. 이런 사소한 일은 네가 직접 오지 않아도 돼.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려.”임지환은 웃으며 말을 마쳤다.“알겠습니다!”주작은 실망이 가득 찬 말투로 대답했다.임지환은 전화를 끊고
보이지 않는 큰 손이 배후에서 이 모든 상황을 조용히 조종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청용산, 이씨 저택.이성봉을 제외한 모든 이씨 가문 사람들이 저택에 모여 있었고 분위기는 매우 억압적이었다.“할아버지, 아버지가 조사를 받는다는 명의로 세무서에서 데려갔고 회사는 주식 시장에서 큰 타격을 받고 있어요.”“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이청월은 이장호를 바라보며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홍 시장 쪽은 아무 말도 없어?” 이장호가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형부 쪽은 전화가 연결되지 않아요. 아니면 지금 형부 집에 가볼까요?” 이성강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럴 필요는 없어. 지금 이 시점에 홍 시장도 은신처를 찾느라 정신이 없을 거야.”이장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이씨 가문은 평소에 홍진과 유착 관계를 형성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강한시 시장인 홍진은 자연스럽게 간섭하지 않고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지금은 청룡타운 프로젝트를 쟁취해야 할 중요한 순간이에요. 내일은 토지 경매일인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프로젝트의 주도권을 잃을 거예요.” 이청월의 말투가 더욱 초조해졌다.“청월아, 이 판국에 아직도 그놈의 프로젝트를 신경 쓰고 싶어?” 이성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현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은 가장 중요한 걸 위해 모든 걸 포기하는 거야. 내 기억으론 형님이 예전에 경성 그룹에 2000억을 이체했던 것 같은데 이 자금을 꺼내서 주식 시장에 투자하면 혹시나 지금 상황을 역전할 수도 있어요.”“안 돼요. 그 2000억은 움직일 수 없어요!”이청월은 단호하게 머리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 자금은 임지환의 계좌에 있어요. 우리 아버지가 돌아온다 해도 임지환 본인만 사용할 수 있는 그 계좌를 마음대로 사용할 권한이 없어요.”“뭐라고? 너희들 미쳤어? 이건 2000억이야! 너희들이 그 임지환에게 이렇게 큰 자금을 고분고분 줬단 말이야?”이성강이 갑자기 테이블을 “탁” 치고 일어서서 이청월을 노
부르지도 않았는데 제멋대로 찾아온 세 명을 보며 이청월의 마음은 순간적으로 벼랑 끝까지 추락하는 것처럼 극도로 답답했다.“재석 씨, 임지환에게 무슨 짓을 했나요?” 이청월은 굳은 표정으로 한재석에게 물었다.“창월 씨, 밥은 함부로 먹을 수 있어도 말은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되죠. 우리는 모두 법을 준수하는 모범 시민이잖아요.”한재석은 여전히 우아한 재벌 집 도련님 모습으로 대답했다.“흥, 난 법을 준수하는 모범 시민이 무단으로 사적 주택에 무단 침입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이장호가 콧방귀를 끼며 차갑게 말했고 눈 속에는 서늘한 기운이 가득했다.“우리가 사적 주택에 무단 침입했다고요? 누가 그러던가요?”노유미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우리는 오늘 이성강씨의 초대를 받아서 정정당당하게 이씨 가문을 방문한 거거든요.”“뭐라고?”태연자약한 자태로 불청객들을 바라보던 이장호의 표정이 확 변했다.이장호는 머리를 돌려 이성강을 쳐다보며 추궁했다. “둘째야, 이게 무슨 말인지 얼른 설명해.”“아버지, 지금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머리를 숙여 도움을 청해야 할 땐 순순히 머리를 숙여야 해요. 우리 YS 그룹은 지금 내부와 외부적으로 다 문제가 터지긴 했지만 아버지가 내게 자리만 내준다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예요.”이성강은 고개를 번쩍 들고 당당하게 서서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었다.“형님은 지금 자기 자신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지금 우리 가문을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에요.”“외부의 도둑은 막기 쉬워도 내부의 도둑은 막기 어렵다더니 네가 네 형님과 궁합이 맞지 않는 건 나도 안다만 외부인과 손잡고 네 형님을 공격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이놈아!”이장호는 치밀어오르는 분노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이 갑작스러운 배반은 하마터면 노인네의 협심증을 일으킬 뻔했다.“아버님,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죠. 옛말에 시대의 흐름을 잘 알아보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성강 씨는 이씨 가문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한 사람입
“네가 감히 그럴 수 있어? 너희들은 진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야?”이런 긴급한 상황에서도 이장호는 여전히 침착한 자태로 차분하게 말했다.“아버지, 형은 아직 세무서에 있어서 자유롭지도 않고 딴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이성강은 피식 웃으며 비꼬았다.“설마 이미 시체가 된 임지환을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임지환이 죽은 게 사실인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이장호는 이성강의 도발에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정신을 차리고 흥분한 모습으로 반박했다.“이봐, 영감탱이, 무술 대가도 결국엔 사람이야. 피와 살로 뒤덮인 사람이라면 제아무리 날고뛰는 재간이 있다 해도 이렇게 높은 다리에서 떨어지면 즉사할 거야. 심지어 임지환은 차 안에 앉아 있었지. 영감탱이는 임지환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거야?”임지환의 제약이 없어지자 하얀 눈썹의 살인귀 전무쌍이 거만한 본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노유미는 손을 흔들며 차가운 표정으로 명령했다. “얼른 숨통을 끊어. 황천길로 보내 드려야지.”“그때 임지환을 시켜 널 죽여버려야 했어!” 이청월이 분노하며 고함쳤다.노유미의 입가에 조롱이 가득 섞인 냉소가 번졌다. “네가 날 그토록 죽이고 싶다면 내가 널 먼저 죽여주마.”말을 마치고 노유미는 입을 삐쭉거리며 신호를 보냈다.노유미의 지시가 떨어지자 전무쌍은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이청월 쪽으로 걸어갔다.이청월은 도망가려고 했지만 전무쌍의 강력한 기력에 갇혀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그저 전무쌍이 가까이 다가와 잔인하게 자기를 죽이기를 뜬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청월에게 손을 대기만 하면 내가 생지옥이 어떤 모습인지 네놈에게 똑똑이 보여주마.”이청월이 절망속에서 눈을 감아버린 순간, 문밖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지환? 네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을 줄 알았어!”이청월은 눈을 떴고 몸을 돌려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환호했다.대문 밖에서 훤칠한 체형의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임지환이 갑자기 나타나자 모
“웃기고 앉아 있네... 어디서 이런 발 연기를 하고 있어? 외부인인 나도 진 어르신이 아직도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사실을 알아. 이 도시에 과연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뭐 몽유병에 걸려서 너한테 전화했어?”이성강은 껄껄 웃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임지환이 우스웠다.처음에는 임지환의 등장에 깜짝 놀랐지만 지금의 임지환으로서는 이 판세를 뒤엎을 능력이 없다고 확신했다.한재석과 노유미 이외에도 진씨 가문의 도련님도 비밀리에 이성강과 협력하고 있었다.배후가 이 정도로 든든하지 않았다면 이성강은 불효라는 대죄를 껴안은 채 이 사람들과 협력하여 권력을 탈취하지 않았을 것이다.내외조화를 이룬 지금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네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려 하는지 모를 줄 알아? 기껏해야 내가 너한테 가게 유인해서 날 인질로 삼으려는 거겠지.”노유미는 팔을 껴안고 임지환의 잔머리를 꿰뚫어 봤다는 듯이 득의만만해하며 말을 이었다.“넌 날 아주 바보 취급하는구나. 진운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해도 널 죽이는 건 손가락만 까딱할 정도로 쉬운 일이야.”임지환이 말을 마치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쾅!”거대한 소리와 함께 홀 안의 대리석 바닥에 깊은 발자국이 생겼다.노유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임지환은 어느새 기척도 내지 않고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임지환, 너 뭐 하려고 해?”노유미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기겁한 표정으로 눈앞의 남자를 응시했다.“긴장 풀어. 지금은 널 죽이고 싶지 않아. 군말 말고 얼른 전화나 받아.” 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말했다.“그깟 전화 받으면 될 거 아니야? 네가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나도 확인해 봐야겠어.”노유미는 임지환에게서 전화를 받아 수신 버튼을 눌렀다.“임 선생님, 이번에 선생님이 소태진 명의를 불러주셔서 소인이 운이 좋게도 목숨을 건졌네요. 이제 제가 완치되고 퇴원하면 직접 강한시에 찾아가 감사의 뜻을 전할 겁니다.”전화기 속에서 지씨 가문의 어르신 진무한의 상쾌
임지환은 너무나 느긋한 자태를 보여서 누군가를 죽이려 한다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저녁 식사 메뉴를 묻는 것 같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하지만 이런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저택에 있는 모든 사람은 살벌한 살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임 대사가 대단하긴 대단해. 이번에는 내가 졌어. 그렇다고 너무 일찍 자만하지 마. 진용이 날 대신해 복수할 거야!”노유미는 머리를 들어 임지환을 바라보며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말을 마치고 노유미는 품에서 단검을 한 자루 꺼냈다.이 단검은 원래 진용이 노유미에게 호신용 무기로 선물한 것이었다.하지만 호신용 단검이 자기 생명을 끝내는 도구가 될 줄은 누가 예견했을까.“진용아, 우리 다음 생에 다시 부부로 살자!”말이 끝나자마자 노유미는 자기 심장을 향해 거침없이 찔렀다.“푹!” 진홍빛 피가 순식간에 아름다운 꽃처럼 피어났고 노유미는 서서히 바닥에 쓰러졌다.아름다운 눈동자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도 천천히 감겼다.“왜 갑자기 이 여자가 조금 불쌍해 보이지?” 이청월은 노유미의 시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내가 한 발만 늦게 왔다면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은 너였을 거야. 이래도 이 여자가 불쌍해 보여?”임지환이 정색하며 이청월에게 물었다.“방금 네가 진짜 죽은 줄 알았어.”이청월은 입을 살짝 내밀며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은 듯한 기쁨을 느꼈다.임지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능청스럽게 물었다. “저런 수준의 애들이 어떻게 날 죽일 수 있겠어?”“할아버지, 방금 그렇게 침착한 모습을 보인 건 임지환이 죽지 않았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인가요?” 이청월은 의혹이 가득 찬 표정으로 물었다.“어험... 임 대사, 이제 이 두 사람을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요?”이장호는 헛기침하며 슬그머니 주제를 바꿨다.임지환은 이성강을 힐끔 쳐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당신들 이씨 가문의 내부 문제니까 내가 개입할 입장이 아닌 것 같네요. 그리고 넌...”임지환은 시선을 전무쌍
전무쌍은 눈 속에 놀라움이 가득 찼고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그리고 이것은 전무쌍의 인생에서 마지막 문제였다.“대가 따윈 이미 뛰어넘은 지 오래됐어.” 임지환이 당당하게 대답했다.“쿵!”말이 끝나자 전무쌍은 거대한 충격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이 하얀 눈썹 살인귀는 죽기 직전에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대가 밑에 있는 사람은 전부 하찮은 개미란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여기 뒤처리는 너희들에게 맡길게. 난 해야 할 일이 있어 먼저 가 볼게.”전무쌍을 해결한 후 임지환은 이씨 저택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왜냐하면 해결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이씨 저택 밖에는 캠핑카가 한 대 주차되어 있었다.임지환이 캠핑카 안으로 들어선 순간, 코를 찌르는 짙은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임 대사, 일단 자넬 대신해 진운을 구해왔어. 하지만 손목과 발목 인대가 다 끊어져 오늘 밤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장도행이 한숨을 내쉬며 조금 부끄러워했다.캠핑카 침대 위에 누워있는 진운은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숨결은 극도로 약해 간들간들했다.“여기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어르신은 사람을 불러 즉시 용은 저택으로 차를 운전해요.” 임지환이 차근차근 지시했다.장도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운전사에게 차를 운전하라고 지시했다.“걱정 마세요. 오늘 내가 여기에 있는 이상 염라대왕이 와도 진운 씨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없을 겁니다.”임지환은 진운의 손을 꼭 잡았고 다음 순간 몸속의 영기는 거센 썰물처럼 진운의 몸 속으로 덮쳐 들어갔다.옆에서 지켜보던 장도행은 놀랍게도 진운의 몸이 서서히 얇은 안개로 덮이는 것을 발견했다.이 안개의 보호 속에서 진운의 간들간들하던 숨결이 서서히 안정되었다.“이게... 기운의 외부 방출인가? 임 대사는 진정한 수련을 거쳐 확실히 대가의 영역을 훨씬 능가한 것 같네.”장도행은 임지환이 사용한 게 영기인 줄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임지환의 실력을 다시 판단하는 데 큰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