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호텔 입구에 멈춰 섰다. 온하랑은 차 문을 열고 내리곤 고개를 돌려 말했다.“동철 오빠, 고마웠어요. 전 올라가 볼 테니까 조심히 가세요.”“응. 참, 내일 몇 시 비행기라고 했지? 내가 공항까지 데려다줄게.”“그러면 조금 실례가 되는 건 아닐까요?”“응, 아니야. 내가 데리러 올 거고 반드시 널 데려다줄 거야.”최동철은 웃음기 가득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온하랑은 솔직하게 말했다.“내일 오후 1시 비행기예요.”“그래, 그럼 내가 12시 전에 데리러 올게. 그때 내가 다시 문자 보낼게.”“네, 고마워요. 내일 봐요.”“응, 내일 봐.”온하랑은 손을 흔들며 최동철과 작별 인사를 하곤 호텔로 들어갔다.그러나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최동철은 온하랑의 실루엣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다시 출발하라고 기사에게 말했다.온하랑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면서 가방에서 카드키를 찾고 있었다.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그녀의 방 문 앞에 익숙한 형체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너무도 익숙하여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온하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부승민이 왜 경주에 있는 거야?!'부승민이라면 그녀가 어느 호텔에 있는지를 아주 손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온하랑은 침을 삼켰다.그와 통화한 지 거의 1시간 반 정도 지난 시각이었다.그리고 그때 그녀는 거의 다 먹었다며 곧 호텔로 돌아갈 거라고 말했었다.연꽃이 피는 못은 체인점이 아주 많았다. 호텔과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가게로 굳이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온하랑은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근처 마트로 가서 뭐라도 사와 마트 구경했던 것처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그녀는 부승민이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몰래 빠져나가려 했다.순간 부승민이 고개를 확 돌리고 그녀를 발견했다.슬금슬금 걸음을 옮기던 온하랑은 그대로 멈추었다. 이내 성큼성큼 걸어 방까지 걸어가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물었다.“네가 경주에는 웬일이야?”부승민은 시
온하랑은 침을 꿀꺽 삼키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어라, 정말이네. 그럼 대체 아까는 왜 꺼진 거지? 설마 망가진 건가?”그녀는 고개를 들고 부승민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난 배터리가 다 되어서 자동으로 꺼진 줄 알았어.”부승민은 담담하게 그녀를 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너무도 태연한 그녀의 모습을 보니 지금 당장 여우주연상을 받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온하랑은 가슴이 여전히 쿵쾅쿵쾅 뛰었다.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면서 말했다.“뭘 그렇게 자꾸만 빤히 봐?”부승민은 앞으로 다가가며 미소를 지었다.“하랑아, 네 연기가 이렇게 좋을 줄은 난 오늘 처음 알았어. 송 감독이 어쩐지 너를 강력하게 캐스팅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아.”온하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몇 초간 멍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입가가 바르르 떨려왔고 어떻게든 얼버무리며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어보기도 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아직도 모르겠어?”부승민은 다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입꼬리는 점점 더 올라갔다.“내가 너한테 전화했을 때, 분명 혼자 저녁을 먹고 있는 거라고 했지. 그런데 아니었어. 넌 최동철과 함께 있었어. 날 속이고 일부러 핸드폰 배터리가 없는 것처럼 전원을 끄고 말이야. 심지어 호텔도 최동철이 데려다준 거잖아. 내가 다 봤어.”차에서 내린 후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눈에는 많이 아쉬운 듯한 모습이었다.거짓말을 한 것이 전부 들켜버렸다. 온하랑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원래부터 피부가 하얗던 그녀는 실내조명 아래 더 뽀얗게 보였다.온하랑은 시선을 내리깔고 입술을 짓이겼다. 힐끔힐끔 부승민의 표정을 살피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어... 어떻게 안 거야?”“나도 헬튼에 거래처랑 접대 약속이 있었거든.”그는 간단히 설명했다.그러니까 그녀가 헬튼에 있을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고 처음부터 그녀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는 소리였다.다 알
‘감히 내 앞에서 최동철을 언급해?'부승민은 가지 않았다.반드시 온하랑과 같은 방을 쓸 생각이었다. 자기 전에도 그는 온하랑을 황홀하게 해주었다. 정말이지 그녀는 너무도 매혹적이었다.한결 나른해진 온하랑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부승민은 깊이 잠이 든 온하랑의 얼굴을 다정하게 보고 있었다.아침이 되자 온하랑은 최동철에게 문자를 보냈다.[동철 오빠, 오전에 일이 생겨서 해결하고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점심에 저 데리러 오실 필요 없을 것 같아요.]반 시간 후에야 최동철은 답장을 보냈다.[그래, 알았어. 조심히 가.][네, 고마워요.]핸드폰을 보던 최동철은 그대로 손에 힘을 주었다.부승민은 경주로 온 것도 모자라 온하랑과 같은 호텔을 예약했다.온하랑이 그의 호의를 거절했다는 것은 지금 부승민과 함께 있다는 소리였다.‘설마 재결합한 건가?'최동철의 눈빛이 어두워지고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오전에 온하랑은 부승민과 함께 경주를 구경하곤 점심에 공항으로 가 강남으로 돌아왔다.온하랑은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앉았다.순간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경찰서에서 온 연락이었다.전화를 받은 온하랑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그녀의 아버지 사건이 검찰에 넘겨졌다는 소식이었다.경찰은 부민재가 주범이라고, 부승민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여 사람을 사주하여 부승민의 여자친구였던 추서윤을 납치하고 온강호에게 들키자 살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이제 남은 것은 부민재의 판결 결과였다.온하랑은 일이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몰랐다. 형사 사건이라 반년은 걸릴 줄 알았다.비록 이미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증거까지 있으니 온하랑은 마음이 다소 괴로웠다.왜 괴로운 것일까?아마도 부민재 때문일 것이다. 예전부터 그녀에게 잘해주었던 부민재는 그녀의 마음속에 좋은 오빠로 남아 있었다. 그녀가 처음 부씨 일가에 왔을 때도 부민재는 친절하고도 다정하게 그녀를 대해 주었고 고등
온하랑이 심란해하고 있을 때 해외에서 걸려온 부선월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순간 그날 경찰서 청장실에서 우연히 엿듣게 된 대화가 떠올라 마음이 더 복잡해졌고 기분도 가라앉았다.“여보세요, 무슨...일이시죠?”온하랑이 담담하게 물었다.부선월은 가소롭게 웃더니 다소 거만한 어투로 말했다.“이젠 고모라고도 안 부르는 거니?”“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하세요.”온하랑은 여전히 담담했다.예전에는 부선월을 어른으로서 공경했지만, 지금은 그러지도 않았다. 김정숙의 딸만 아니었어도 온하랑은 그녀의 연락도 받을 생각 없었다.부선월은 코웃음을 쳤다.“그럼 바로 할게. 앞으로 우리 승민이한테서 멀리 떨어져! 네가 여전히 승민이한테 질척이고 있다는 거 내가 모를 거란 생각하지 마! 그 어미에 그 딸이라더니, 넌 여우 같은 네 엄마랑 아주 똑 닮았어! 남자를 홀리는 데 아주 선수야!”온하랑은 바로 이를 빠득 갈았다.“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거죠?”부선월은 아주 오래전부터 임가희를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가 임가희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싫어했다.“무슨 말이냐고? 임가희는 최동철의 계모인 건 알고 있지? 이혼 전적이 있는 주제에 아무런 집안 배경도 없으면서 감히 국환 씨를 넘봐? 그런 여자가 어떻게 국환 씨랑 결혼할 수 있었겠어. 당연히 그 몸뚱어리로 국환 씨를 유혹한 거잖아. 아니야?”온하랑은 점점 화가 치밀었다.임가희가 최동철의 계모로 된 건 확실히 의아한 일이었다.부선월이 임가희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녀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 임가희를 같은 취급 하자 온하랑은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비꼬면서 말했다.“제가 정말 사람을 홀리는 데 선수라고 해도 상대가 어느 정도 저한테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겠어요? 손바닥 하나로 손뼉을 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꼭 제 어머니한테 원망이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설마 여사님도 최국환 아저씨를 사랑했던 건 아니시죠? 혹시 좋아하면서도 마음을 숨겨 혼자 끙끙 앓다가 빼앗겼나요?
아이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추서윤을 보곤 흔들이 의자에서 일어났다.추서윤은 아이의 앞에 멈춰 섰다. 허리를 굽혀 모자를 살짝 들면서 말했다.“부윤민이니?”부윤민은 그녀를 훑어보곤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저 아세요?”추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네 아빠 곧 감방에 가겠네?”그 말을 들은 부윤민의 얼굴이 변했다.“이상한 말 하지 마세요.”“난 이상한 말 한 적 없단다. 그리고 나보다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네 아빠 살인범이라는 거.”아이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눈가도 붉어졌다. 입을 삐죽이면서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반박했다.“그런 거 아니에요...”“아빠 구하고 싶지 않니?”“어떻게 구하는데요?”“아주 간단해. 네가 이 사실을 네 증조할머니께 알리면 된단다. 증조할머니한테 온하랑 고모를 설득해달라고 해. 그러면 네 증조할머니는 온하랑 고모를 키워준 은혜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네 아빠를 용서해줄 거야. 네 아빠도 감방 갈 필요도 없어.”부윤민은 몇 초간 침묵하다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하지만 엄마가 증조할머니께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그건 네 엄마가 이 기회에 네 아빠랑 이혼하고 싶어서 그런 거란다. 그래서 감방 가게 내버려 두는 거야. 생각해 봐, 네 아빠가 평소에 너한테 얼마나 잘해주었는지. 설마 이대로 아빠를 평생 감방에 가둘 생각이니?”부윤민은 얼굴을 찡그렸다. 머릿속 저장 공간에 빨간불이 켜졌다.아이는 부모님이 이혼하길 원치 않았고 아빠가 감방에 가는 것을 더욱 원치 않았다.“사실 네 아빠는 바람을 피우지 않았어. 그냥 네 엄마가 오해하고 있는 거야. 아빠가 나오시면 직접 엄마한테 설명하라고 해. 그러면 네 엄마랑 아빠도 이혼하지 않을 거야.”부윤민의 두 눈이 초롱초롱해졌다.“정말이에요?”정말로 아이가 이 사실을 김정숙에게 알리면 부민재는 감방에 가지 않아도 되고 부모님은 이혼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당연히 정말이란다.”추서윤은 웃으면서 아이를 홀렸다.“다만 일단 네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야 해.
촬영장에 있었던 온하랑은 온 하루 집중하지 못했다.출근하기 전에 부승민이 검찰 인맥을 찾고 있고 사건이 법원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으니 어쩌면 증거 부족으로 다시 경찰들이 조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말이다. 동시에 부승민은 강남 최고의 엘리트 변호사 계성진을 부민재의 변호사로 고용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설령 형벌을 피할 수 없다고 해도 부승민은 그래도 부민재가 최대한 가벼운 형벌을 받게 할 생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만약 그저 변호사만 대신 찾아준 것이라면 그건 부민재가 응당 누려야 할 권리이니 온하랑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승민은 검찰까지 손을 뻗어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려고 했다.부승민은 부민재가 한 말을 믿고 있었다. 추서윤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를 죽인 주범이라고. 부민재에게 유리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듣게 된 온하랑은 머릿속에 바로 부선월의 말이 떠올랐다.“승민이는 민재를 따르니 분명 어떻게든 민재를 도와주려고 할 거다.”‘사건을 다시 수사하면 얻은 그 수사 결과가 진실인 걸까?'온하랑은 머릿속이 아주 복잡했다.그녀는 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몰랐다....촬영이 끝나자 스태프가 온하랑의 핸드폰을 가져다주었다.“배우님, 아까부터 누가 자꾸 배우님 핸드폰으로 연락하던데요.”“네, 알겠습니다. 가져다주어서 고마워요.”온하랑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전부 부승민에게서 온 연락이었다.그녀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부승민은 바로 전화를 받았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할머니가 아셨어.”온하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머리가 새하얘지고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뛰었다.“어떤 반응이셔?”“내가 알게 되었을 땐 이미 진정하신 상태였어.”“어떻게 아신 건데?”부승민은 한숨을 내쉬었다.“윤민이가 말했대.”온하랑은 침묵했다.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지금 시간 있어?”“나 옷만 갈아입고 바로 갈게.”“
하지만 아이는 정말로 아빠를 구하고 싶었다.시선이 마주치고 입술을 틀어 물던 온하랑이 먼저 입을 열었다.“형님.”소청하는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왔어요...?”“할머니는 위층에 계세요?”부승민이 들어오며 물었다.소청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온하랑과 부승민은 시선을 주고받으며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안방에는 김정숙이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다. 안색이 잿빛이 된 채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었다.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그녀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문 쪽으로 향했다.방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온하랑의 걸음도 점점 느려졌다.문 앞에 도착한 순간 그녀는 이대로 시간이 영원히 멈추길 바랐고 김정숙을 차마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온하랑은 짙은 한숨을 내쉬고 문고리를 잡았다.문이 천천히 열렸다.김정숙과 눈이 마주친 온하랑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할머니.”그녀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그대로 김정숙에서 돌진해 김정숙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할머니...”“그래, 하랑아.”김정숙은 자애로운 모습으로 손을 그녀의 손 위로 포갰다.“할머니는 너를 탓하지 않는단다.”온하랑의 사슴 같은 눈망울에 김정숙은 바로 그녀가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그녀의 손녀는 평소엔 아무렇지 않은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이 가장 여린 사람이었다.온하랑은 눈앞이 흐려졌다. 눈에서 진주알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할머니, 제가 오면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르실 거예요...”그간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마음이 안개가 걷히듯 사라져버렸다.김정숙은 온하랑의 세상에서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었다.그녀는 온하랑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괜찮단다.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단다.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버지를 위해 진범을 찾겠다는 네 마음은 나도 알고 있었단다. 이런 마음과 끈기는 흔치 않은 것이니 할머니는 너를 탓하지 않는단다.”다른 사람이었다면 어쩌면 10년이 지났다고 귀찮은 일을 피
“넌 영훈이의 혼외자식이 아니란다. 영훈이는 네 아버지가 아니고 삼촌이란다.”김정숙이 말했다.부승민은 순간 숨 쉬는 법을 잊게 되었다.이 소식은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아버지의 혼외자식이 아니라고?'‘아니 부영훈이 내 아버지가 아니라 삼촌이었다고?'‘그럼 내 어머니는...'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믿기지 않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그가 어릴 때 그렇게 원했던 어머니가 부선월이었으니 말이다.예전에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그제야 풀렸다.그제야 부선월이 왜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주었는지, 왜 부민재가 아닌 ‘혼외자식'이었던 자신을 더 아꼈는지, 왜 자꾸만 자기 일에 간섭하는지 알게 되었다. 사실은 그의 어머니 신분으로 그의 결혼 생활에 간섭하고 있었던 것이었다.김정숙은 넋이 나간 부승민을 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선월이는 네 아버지랑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였단다. 하지만 네 아버지는 집안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지. 선월이는 네 아버지를 사랑해서 너를 지우지 않았단다. 그때 나랑 네 할아버지가 너를 낳겠다는 걸 엄청 반대했었지. 하지만 선월이는 고집이 아주 센 아이라 나와 네 할아버지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었어.”“그러다 나중에 네 아버지랑 결혼한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되었었지. 그 여자가 선월이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높은 곳에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그 여자 가족들이 나랑 네 할아버지를 찾아와 욕을 퍼부었지. 그제야 선월이도 고집을 조금 내려놓게 된 거야. 너를 네 삼촌의 호적에 올리는 대신 이곳을 떠나기로 타협을 봤어.”이 일은 최국환에게도 잘못이 있었다.최씨 일가 사람들은 부승민을 데려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의 할아버지였던 부승호가 나서서 말렸고 최국환 아내의 집안사람들은 배다른 자식이 나타나 자신의 자식과 경쟁하는 것을 싫어했기에 결국 부승민을 부씨 일가에 남길 수 있었다.“사실 네 숙모는 네가 영호의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 선월이가 너를 가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