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모, 저 놀이동산 가고 싶어요.”부시아는 다른 애들보다 일찍 철들었지만 그래도 아인지라 요즘 유치원만 다녀서 나가서 놀고 싶은 모양이었다.온하랑은 요 며칠 계속 비가 부슬부슬 내렸던 터라 날씨부터 확인했다.오늘 아침에도 비가 내려 햇빛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리기만 했다. 또다시 비가 올 가능성이 컸다.“숙모가 맛있는 거 사줄까? 오전에 놀이동산 가서 놀고 점심에 맛있는 거 먹는 거 어때?”“네!”“그래, 숙모랑 놀이동산에 놀러 가자. 그런데 비가 오면 바로 집으로 오는 거야. 알았지?”“네.”부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길 내내 녀석은 최근에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더니 결국 지치고 말았다.온하랑은 피식 웃더니 음악을 틀었다.놀이동산에 도착한 부시아는 마음껏 즐겼다.회전목마에서 내려오자마자 또 롤러코스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하지만 키 제한으로 탈 수가 없었다.부시아는 주위를 살피더니 미끄럼틀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미끄럼틀은 그네, 시소 등이 있는 무료 체험 구역에 있었다.그 옆은 바로 음식 코너라 달려가던 중 발걸음을 멈추고 온하랑을 쳐다보았다.“숙모, 저 소떡소떡 먹고 싶어요.”마침 온하랑도 먹고 싶었던 찰나였다.2인분 주문을 마치고 뒤돌아보았을 때, 부시아는 이미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었다.“조심해.”온하랑이 당부했다.“알겠어요.”부시아는 대답하자마자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소떡소떡은 바로 이 자리에서 만드는 거라 오래 기다려야 했다. 온하랑은 기다리는 동안 부시아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객님, 소떡소떡 완성되었습니다.”온하랑은 포장을 건네받으면서 계좌이체 하려고 했다.바로 이때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고 뒤돌아보았을 때 부시아는 바닥에 넘어져 힘겹게 일어서려고 했다.그래서 바로 달려가 부시아를 부축했다.“시아야, 괜찮아? 어디 다친 곳 없어? 안 아파?”부시아는 놀란 표정으로 껍질이 까여 피가 보이는 손바닥을 내밀었다.“다른 곳은?”부시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 부모님이세요? 마침 잘 오셨네요. 방금 이 아이가 우리 아이를 미끄럼틀 위에서 밀었거든요. 당장 사과하세요!”아줌마는 온하랑을 힐끔 보더니 피식 웃었다.“어떻게 제 아이가 밀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거죠? 미끄럼틀 위에 우리 아이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방금 아이가 직접 인정했어요.”아줌마는 남자아이를 쳐다보더니 말했다.“쳇, 어른이 무섭게 따지니까 두려운 마음에 인정한 거겠죠.”“그러면 CCTV 확인해 보시든가요!”“아유, 정말 깐깐하긴. 우리 아이가 밀었으면 뭐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그리고, 당신 따님 멀쩡한 것 같은데 설마 돈 뜯어내려는 수작은 아니죠?”아줌마가 말했다.남자아이의 옷차림이 비싸 보이긴 했지만 온하랑과 부시아도 꿀리지 않았다. 그래서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아무리 돈 많는 집안이라고 해도 사람을 밀쳤으면 사과해야 하는 법이다.말다툼 끝에 온하랑은 계속 말해봤자 말이 안 통하겠다는 느낌에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온하랑은 그러다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골에서 지냈던 시절이 떠올랐다.두 분 다 순수한 시골분이라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했다. 매번 온하랑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때도 늘 사고를 저지르지 말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그럴 때마다 온하랑은 자신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농촌에서 살다 보면 학문적 시야가 국한되기 마련이라 할머니 할아버지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부시아에게까지 억울하게 똑같은 경험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온하랑이 전화를 들자 아줌마가 비웃었다.“왜요. 사람을 부르게요?”전화 연결음이 울리고, 온하랑이 말했다.“여보세요, 경찰서죠?”아줌마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어머, 바로 신고하셨어요? 제가 무서워할 줄 알고?”온하랑은 자세한 상황설명 후 전화를 끊었다.“두렵지 않으면 경찰분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시든가요.”“그까짓 거 기다리면 되죠.”두 사람의 다툼 소리에 사람들이 몰
유은정에게 연락했을 때 분명 경찰서에 말해놓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했는데 말이다.나이 많은 형사가 온하랑을 힐끔 보더니 마른기침하면서 말했다.“그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CCTV가 떡하니 있는데 밀었으면 민 거죠. 얼른 사과하세요.”아줌마는 표정이 어두워졌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유은정 씨가 말해놓는다고 했는데?’남자아이는 충격이 컸는지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호흡이 가빠졌다.“저희가 사과하지 않으면요?”“그러면 같이 경찰서로 갈까요? 어차피 구치소에 빈자리도 많은데.”남자아이는 불안감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온하랑은 이 신분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아줌마가 방금 아는 사람을 통해 경찰서에 전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신고자가 온하랑이라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온하랑은 아무리 부승민과 멀어지려고 해도 멀어질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옆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만 이 둘을 엮어놓으려고 했기 때문이다.온하랑은 부승민의 전처이자 동생이었다.아무리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부승민 덕에 순조롭게 넘어갈 수 있었다.만약 그저 일반인이었다면, 오늘 이 일은 이대로 끝나지도 못했다.형사는 CCTV를 통해 부시아가 확실히 남자아이한테 치여 미끄럼틀에서 굴러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남자라면 당당해야 하는 거야.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동생이 다쳤다는데 사과 정도는 해야지. 그러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방금 형사들이 CCTV를 확인하는 동안, 아줌마는 또 누군가에게 전화했다.“저희는 사과할 수 없어요. 그냥 경찰서로 잡아가시든가요. 정직 처분당하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요.”“정말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보네요. 돈 있으면 싹수가 없어도 되나? 사람을 밀쳤으면 사과하는 것이 당연한 거지. 사과도 못 할망정 경찰을 협박해? 정말 겁도 없이.”온하랑이 차갑게 말했다.“누구보고 싹수없다고 하는 거야!”온하랑이 말했다.“바로 당신을 말했어. 어른이라는 것이 소질도 없고, 행패만 부리기만 하고. 어른이 이모양 이 꼴이니
“저한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시대요?”온하랑은 미간을 찌푸린 채 주스를 마셨다.“저 지금 시간 없어요.”이때, 혼란을 틈타 전화기 너머에서 한 여자의 분노한 말투가 들려왔다.“온하랑 씨 맞죠? 제 아이가 당신 때문에 천식이 발작해서 죽을 뻔했잖아요! 당장 병원으로 와서 사과하세요!”아까 그 말이 안 통하는 아줌마와는 목소리가 달라 보였다.‘하지만 싹수없는 걸 보니 딱 봐도 한집 식구네.’온하랑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당신 아들 천식 발작한 것이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제... 딸을... 밀치고도 사과 안했잖아요. 제가 병원까지 쫓아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상대방이 피식 웃었다.“그러면 제가 고마워해야 하나요? 그쪽 따님은 그저 살짝 껍질이 까인 거로 알고 있는데. 아이들끼리 장난친 거 가지고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 거 아니에요? 경찰을 이용해 우리 아들을 협박하기나 하고!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천식이 발작한 거죠! 이래도 할 말 있어요?”“그러면 제가 뭐 없는 말 했어요? 제 딸을 밀쳤으면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천식이 있으면 뭐, 잘못해도 책임 안 져도 되나?”진작에 사과했으면 경찰에 신고했을 일도 없었다.“다시 한번 물을게요. 사과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다시 잘 생각해 보고 말씀하세요. 나중에 제가 기회를 안 줬다고 하지 마시고.”온하랑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리고 핸드폰을 한쪽에 내팽개쳤다.건방진 말투를 보니 신분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온하랑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부시아는 온하랑의 말만 듣고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녀석은 입을 삐쭉 내밀더니 말했다.“숙모, 그 사람들 정말 너무해요. 삼촌한테 이를 거예요!”온하랑이 피식 웃었다.“시아야, 화내지 마. 이런 사람들 때문에 기분 상할 필요 없어.”“숙모도 화내지 말고 얼른 고기나 드세요.”부시아는 포크로 온하랑에게 스테이크 한 조각을 건넸다.“고마워, 시아야.”이제 막 숟가락을 들려던 참에 또 불쾌한 문자
“하랑 씨가 어떤 분을 건드렸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온하랑은 그제야 오전의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행동도 빠르네.’“그래요. 따라갈 테니까 먼저 차에 짐부터 내려놓읍시다.”“그러세요.”온하랑은 먼저 쇼핑백을 차에 넣어두고는 부시아의 손을 잡고 상대방의 봉고차에 올라탔다.“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온하랑이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부시아는 온하랑의 품에서 사나워 보이는 이 남자들을 쳐다보더니 속삭였다.“숙모. 저희 어디로 가요?”부시아는 스마트 워치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삼촌, 살려주세요. 저랑 숙모가 납치당했어요.]“음... 아마도 병원일 거야.”추측하던 온하랑은 고개 들어 조수석에 앉아있는 남자한테 호기심에 물었다.“말투를 들어보니 현지인이 아닌가 봐요?”그는 못 들은 척 전방만 주시할 뿐이다.따라서 다른 사람들도 침묵을 지켰고, 차 안은 고요하다 못해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온하랑이 또 물었다.“혹시 누가 보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오전에 누군가와 시비가 붙긴 했지만 아직 상대방 신분을 몰라서요.”온하랑은 어렴풋이 경찰한테서 들은 남자아이의 이름을 떠올렸다.“동림이라고 했나...”여전히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아이는 어떻게 되었어요? 괜찮아요? 저희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병원 맞아요?”차 안에는 온하량의 목소리만 들렸다.봉고차는 어느새 어느 병원의 병원동 앞에 세워졌다.이 남자들은 여전히 사나운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저희랑 가시죠.”온하랑은 먼저 차에서 내려 부시아를 안아서 내려주었다. 결국 이들의 뒤를 따라 입원동 4층에 있는 한 환자실에 도착하게 되었다.앞장서던 남자가 온하랑더러 밖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사모님, 오셨습니다.”“들어오라고 해.”병실 안에서 통화하면서 들었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부시아와 함께 병실로 들어가자 그 남자아이가 얼굴이 창백한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그 옆에는 정갈한 메이크업, 흰색 정장에 10cm짜리 하이힐까지 신고, 뒤로 머리를 묶은 4
“네가 진심으로 사과하면 쟤는 놓아줄게. 만약 그게 싫다면 저 여자애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고. 내 아들은 병원에 누워있는데 쟤가 저렇게 나대는 꼴을 내가 보고 싶겠어?”“부승민 대표님이 알게 돼도 아무렇지 않은가 봐요?”“복수할 거면 하라 그래!”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코웃음을 치는 여자는 부씨 일가가 강남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전혀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다.여자는 눈썹을 까딱이며 웃었다.“어때, 사과할 거야?”검은 눈동자를 여자에게 한참 동안 고정하고 있던 온하랑은 주먹을 꽉 쥐고 한 자 한 자 말을 내뱉었다.“미안해요, 사과할게요.”그리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를 보면서 시선을 내리깔고는 말을 이었다.“미안해요, 내가 너무 몰아붙였어요. 사과할게요 이렇게. 몸은... 빨리 회복되길 바라요.”그제야 여자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제라도 말귀를 알아들어서 다행이야. 사람이 가끔은 굽힐 줄도 알고 그래야 하는 거야. 안 그러면 너도 네 아빠 꼴 난다.”갑자기 제 아버지를 언급하는 여자에 온하랑은 따지고 싶었지만 여자 손에 잡혀있는 부시아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온하랑은 남자 곁에 다가가 부시아를 품에 넣고는 말했다.“이제 가도 되죠?”여자가 귀찮다는 듯 손을 젓자 온하랑은 부시아를 안고 병실을 빠져나왔다.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서야 온하랑은 그 작은 얼굴을 뜯어보며 조심스레 물었다.“시아야, 아까 무서웠지?”부시아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몸은 자꾸만 온하랑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괜찮아요, 이제 숙모 있으니까 안 무서워요.”부시아도 오늘의 일은 전적으로 제 잘못임을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온하랑은 부시아가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게 싫어 억지로 그 남자에게 사과를 시켰기에 이런 수모까지 당하게 된 것이다.“안 무서우면 됐어.”온하랑은 부시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이제 집에 가자.”“네.”온하랑이 부시아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서는데 맞은 편에서 부승민이 경호원 몇 명을 대동하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
“응.”온하랑을 먼저 차로 보낸 부승민은 부시아를 안고 경호원들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병실 앞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은 부승민의 등장에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병실 문 앞에서 십 미터쯤 떨어진 곳까지 왔을 때 부승민은 갑자기 멈춰서더니 손짓을 하며 부시아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시아야, 잠깐만 고개 돌릴까?”부시아가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돌리자 부승민 뒤에 섰던 여덟 명이나 되는 경호원들이 일제히 다가가 병실 앞을 지키던 경호원들을 때려눕혔다.병실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자 의아해 난 임가희의 목소리도 이어서 들려왔다.“최환, 무슨 일이야?”임가희가 부르는 최환이라는 보스처럼 보이는 사람은 부승민의 경호원에 의해 입이 막혀버려 웅얼거리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대답이 없자 이상함을 느낀 임가희가 마침내 병실 문을 열었다.그때 부승민이 부시아를 안아 들고 다가왔다.임가희는 잠시 멈칫하더니 눈썹을 까딱이며 말했다.“부 대표? 빨리 왔네.”“빨리 와야죠. 제 조카가 미끄럼틀에서 밀쳐졌다는데, 사과받아내려고 했더니 여사님이 우리 하랑이한테 사과를 시키셨더라고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저도 같아서요. 김 여사님도 제 마음을 좀 헤아려주셨으면 해요.”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하는 부승민에 임가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동림이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시아 딱 보니까 다친 데도 없네 뭐. 우리 동림이는 천식 때문에 지금 몸도 안 좋은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부승민은 임가희와 더 말을 섞지 않고 뒤에 있는 경호원들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경호원 둘이 병실 옆으로 뛰어갔다.그 모습을 본 임가희가 펄쩍 뛰며 부승민을 향해 소리 질렀다.“부 대표, 이게 뭐 하는 짓이야!”“저도 사과받아내려고 이러는 건데, 왜요?”두 명의 경호원들은 신속하게 한 명은 임가희를 막고 한 명은 최동림을 안아 들었다.“우리 최씨 집안과 정말 해보겠다는 거야?”“네.”최동철이 아무 이유 없이 부씨 일가를 건드릴 때부터 최씨 집안과는 이미
한편 차에 탄 온하랑은 시트에 기대어 두 눈을 감고 있었다.오늘 유독 기분이 나빴던 하루였다. 최동림과 그 엄마뿐 아니라 추서윤까지 온하랑의 신경을 건드렸다.추서윤이 심리적인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온하랑은 좀처럼 그녀를 동정할 수가 없었다.그냥 그 병들을 빌미로 법적인 책임을 피하려 한다는 사실이 짜증 나기만 했다.그런 짜증이 가슴을 틀어막고 있어 어딘가 계속 찝찝했다.“띠링-”때마침 울린 카톡 알람에 온하랑은 복잡한 생각을 조금 정리하고 핸드폰을 들어 주현이 보내온 문자를 확인했다.풍경 사진 공모전 결과가 오늘 나오는데 확인했냐는 문자였다.그 문자를 보고서야 잊고 있던 공모전이 떠올랐다.그런데 보통 입상하면 이메일로 연락이라도 줄 텐데 잠잠한 제 메일함을 보며 아마도 수상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어차피 온하랑은 아마추어였으니 많은 시간을 들여 사진을 배워왔던 프로들과는 차이가 있는 게 당연했기에 온하랑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참여했다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그래서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1등 수상자까지 확인했을 때, 온하랑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스크롤을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1등 작품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그리고 그 여러 번의 확인 끝에 온하랑은 마침내 자신의 작품이 1등에 당선되었음을 믿을 수 있었다.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수상자의 이름은 온하랑이 아니었다.누군가 온하랑의 작품만 카피하여 본인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다.이런 상황은 어떤 분야에서나 종종 있는 일이었고 학술계는 더 심했는데 온하랑은 자신이 사건 당사자가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 했었다.원래도 좋지 않던 기분인데 이 소식을 접하니 더 다운되고 짜증이 밀려왔다.그때 차 문이 열리더니 부승민이 부시아를 먼저 차에 태우고는 자신도 따라 탔다.“숙모, 나 왔어요.”온하랑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는 핸드폰을 치우고 그들을 바라봤다.“사과는 받았어?”부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존경 어린 눈길로 부승민을 쳐다봤다.“받았어요. 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