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심으로 사과하면 쟤는 놓아줄게. 만약 그게 싫다면 저 여자애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고. 내 아들은 병원에 누워있는데 쟤가 저렇게 나대는 꼴을 내가 보고 싶겠어?”“부승민 대표님이 알게 돼도 아무렇지 않은가 봐요?”“복수할 거면 하라 그래!”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코웃음을 치는 여자는 부씨 일가가 강남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전혀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다.여자는 눈썹을 까딱이며 웃었다.“어때, 사과할 거야?”검은 눈동자를 여자에게 한참 동안 고정하고 있던 온하랑은 주먹을 꽉 쥐고 한 자 한 자 말을 내뱉었다.“미안해요, 사과할게요.”그리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를 보면서 시선을 내리깔고는 말을 이었다.“미안해요, 내가 너무 몰아붙였어요. 사과할게요 이렇게. 몸은... 빨리 회복되길 바라요.”그제야 여자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제라도 말귀를 알아들어서 다행이야. 사람이 가끔은 굽힐 줄도 알고 그래야 하는 거야. 안 그러면 너도 네 아빠 꼴 난다.”갑자기 제 아버지를 언급하는 여자에 온하랑은 따지고 싶었지만 여자 손에 잡혀있는 부시아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온하랑은 남자 곁에 다가가 부시아를 품에 넣고는 말했다.“이제 가도 되죠?”여자가 귀찮다는 듯 손을 젓자 온하랑은 부시아를 안고 병실을 빠져나왔다.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서야 온하랑은 그 작은 얼굴을 뜯어보며 조심스레 물었다.“시아야, 아까 무서웠지?”부시아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몸은 자꾸만 온하랑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괜찮아요, 이제 숙모 있으니까 안 무서워요.”부시아도 오늘의 일은 전적으로 제 잘못임을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온하랑은 부시아가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게 싫어 억지로 그 남자에게 사과를 시켰기에 이런 수모까지 당하게 된 것이다.“안 무서우면 됐어.”온하랑은 부시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이제 집에 가자.”“네.”온하랑이 부시아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서는데 맞은 편에서 부승민이 경호원 몇 명을 대동하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
“응.”온하랑을 먼저 차로 보낸 부승민은 부시아를 안고 경호원들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병실 앞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은 부승민의 등장에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병실 문 앞에서 십 미터쯤 떨어진 곳까지 왔을 때 부승민은 갑자기 멈춰서더니 손짓을 하며 부시아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시아야, 잠깐만 고개 돌릴까?”부시아가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돌리자 부승민 뒤에 섰던 여덟 명이나 되는 경호원들이 일제히 다가가 병실 앞을 지키던 경호원들을 때려눕혔다.병실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자 의아해 난 임가희의 목소리도 이어서 들려왔다.“최환, 무슨 일이야?”임가희가 부르는 최환이라는 보스처럼 보이는 사람은 부승민의 경호원에 의해 입이 막혀버려 웅얼거리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대답이 없자 이상함을 느낀 임가희가 마침내 병실 문을 열었다.그때 부승민이 부시아를 안아 들고 다가왔다.임가희는 잠시 멈칫하더니 눈썹을 까딱이며 말했다.“부 대표? 빨리 왔네.”“빨리 와야죠. 제 조카가 미끄럼틀에서 밀쳐졌다는데, 사과받아내려고 했더니 여사님이 우리 하랑이한테 사과를 시키셨더라고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저도 같아서요. 김 여사님도 제 마음을 좀 헤아려주셨으면 해요.”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하는 부승민에 임가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동림이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시아 딱 보니까 다친 데도 없네 뭐. 우리 동림이는 천식 때문에 지금 몸도 안 좋은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부승민은 임가희와 더 말을 섞지 않고 뒤에 있는 경호원들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경호원 둘이 병실 옆으로 뛰어갔다.그 모습을 본 임가희가 펄쩍 뛰며 부승민을 향해 소리 질렀다.“부 대표, 이게 뭐 하는 짓이야!”“저도 사과받아내려고 이러는 건데, 왜요?”두 명의 경호원들은 신속하게 한 명은 임가희를 막고 한 명은 최동림을 안아 들었다.“우리 최씨 집안과 정말 해보겠다는 거야?”“네.”최동철이 아무 이유 없이 부씨 일가를 건드릴 때부터 최씨 집안과는 이미
한편 차에 탄 온하랑은 시트에 기대어 두 눈을 감고 있었다.오늘 유독 기분이 나빴던 하루였다. 최동림과 그 엄마뿐 아니라 추서윤까지 온하랑의 신경을 건드렸다.추서윤이 심리적인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온하랑은 좀처럼 그녀를 동정할 수가 없었다.그냥 그 병들을 빌미로 법적인 책임을 피하려 한다는 사실이 짜증 나기만 했다.그런 짜증이 가슴을 틀어막고 있어 어딘가 계속 찝찝했다.“띠링-”때마침 울린 카톡 알람에 온하랑은 복잡한 생각을 조금 정리하고 핸드폰을 들어 주현이 보내온 문자를 확인했다.풍경 사진 공모전 결과가 오늘 나오는데 확인했냐는 문자였다.그 문자를 보고서야 잊고 있던 공모전이 떠올랐다.그런데 보통 입상하면 이메일로 연락이라도 줄 텐데 잠잠한 제 메일함을 보며 아마도 수상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어차피 온하랑은 아마추어였으니 많은 시간을 들여 사진을 배워왔던 프로들과는 차이가 있는 게 당연했기에 온하랑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참여했다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그래서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1등 수상자까지 확인했을 때, 온하랑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스크롤을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1등 작품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그리고 그 여러 번의 확인 끝에 온하랑은 마침내 자신의 작품이 1등에 당선되었음을 믿을 수 있었다.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수상자의 이름은 온하랑이 아니었다.누군가 온하랑의 작품만 카피하여 본인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다.이런 상황은 어떤 분야에서나 종종 있는 일이었고 학술계는 더 심했는데 온하랑은 자신이 사건 당사자가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 했었다.원래도 좋지 않던 기분인데 이 소식을 접하니 더 다운되고 짜증이 밀려왔다.그때 차 문이 열리더니 부승민이 부시아를 먼저 차에 태우고는 자신도 따라 탔다.“숙모, 나 왔어요.”온하랑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는 핸드폰을 치우고 그들을 바라봤다.“사과는 받았어?”부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존경 어린 눈길로 부승민을 쳐다봤다.“받았어요. 삼촌
온하랑이 이런 눈빛을 지을 때마다 부승민은 늘 꼼짝을 못 했다.부승민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마.”이 일이 아니어도 최씨 집안은 부씨 집안을 가만 둘리 없었기에 부승민도 그에 맞는 대접을 해주려 했다.“그럼 됐어.”레스토랑에 도착해서 밥을 절반쯤 먹은 부시아는 졸린 지 어느새 부승민의 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그에 반해 몇 술 뜨지도 않은 온하랑을 보며 부승민이 나지막하게 물었다.“왜 그것밖에 안 먹어?”“입맛이 없어서...”“기분 안 좋아?”온하랑은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추서윤 일이라면 내가 이미 알아봤는데 진단서 조작된 거래.”온하랑은 추서윤을 납치 피해자로 알고 있었기에 부민재가 범인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부승민은 부민재를 믿으며 추서윤이 납치도 진단서도 다 꾸몄을 거라고 주장했었다.그 말이 사실로 드러났음을 온하랑에게 알려주고 난 부승민은 잠시 말을 멈추고 온하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전에 진단서만 믿고 추서윤을 싸고돌며 온하랑에게 줬던 상처가 떠올라서였다.온하랑은 진단서가 조작됐다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조작됐다고? 어떻게?”“내가 말했잖아. 납치도 심리적 이상도 다 가짜라고.”“아...”온하랑의 잠시 빛났던 눈은 다시 어두워졌다.그런데 납치가 가짜일 수 있나?온하랑은 그날 경찰서에서 들었던 부선월의 말을 떠올리며 생각했다.사실 온하랑은 아직도 부승민이 부민재를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얘기를 했다가 부승민이 또 미친 듯 비나 맞고 있을까 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부승민은 말하지 않아도 의심이 남아있는 듯한 온하랑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걱정 마, 네가 직접 가서 진단서 감정 의뢰해도 돼.”부승민이 이렇게까지 이 일에 집착하는 건 온하랑 더러 부민재를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저에게서만은 멀어지지 말아 달라고 이러고 있는 것이었다.돌아가신 게 온하랑의 아버지인 만큼 온하랑보다 더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뭐가 사실이고 뭐가 거짓인지는 때가 되
집으로 돌아온 온하랑은 사진과 관련된 증거들을 정리하여 담당자에게 보내줬다.온하랑이 보낸 공모전 응모 메일, 원본 EXIF 파일, 그리고 RAW 원본까지 모두 온하랑의 작품임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이었다.증거가 이렇게 충분하니 일이 금방 처리될 거라고 생각한 온하랑은 노트북을 끄고 세수를 하러 들어갔다.그리고 침대에 누워 쉬려고 할 때 부승민이 갑자기 문자를 보내왔다.[나와.][집 앞이야.]온하랑은 졸음이 순식간에 사라져 서둘러 답장을 했다.[이 밤중에 뭐 하자는 거야?][바람 쐬자고. 옷 따뜻하게 입고 나와.][미쳤어? 이 밤에 무슨 바람?][10분 줄 테니까 빨리 나와. 10분 뒤에 노크할 거야. 김시연 씨 깨우기 싫으면 빨리 나와.]제 룸메이트로 협박을 해오는 부승민에 온하랑은 이를 악물며 서둘러 옷을 챙겨입고는 밖으로 나갔다.구급 통로 창문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던 부승민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담배를 끄고는 온하랑에게로 다가갔다.옷을 따뜻하게 입은 걸 확인한 부승민은 그제야 엘리베이터 하향버튼을 눌렀다.“가자.”온하랑은 부승민을 바라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왜 갑자기 바람 쐬러 가자 그래?”“그냥 갑자기 그러고 싶어서.”“난 가기 싫어.”“이미 다 나왔는데 좀만 걷다 들어가.”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부승민은 온하랑을 잡아끌어 태우고는 1층을 눌렀다.“지하 1층 아니야?”“가보면 알아.”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추고 밖으로 나온 부승민은 근처의 주차장으로 걸어갔다.무슨 수작이지 이건?온하랑은 궁금해서 따라가긴 하면서도 수상쩍은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한 오토바이 앞에 도착했다.크기도 꽤 크고 뭔가 화려해 보이는 것이 꽤 값이 나갈 것 같았다.온하랑은 그제야 부승민이 말한 바람 쐰다는 것의 의미를 알았다.부승민은 헬멧을 들고는 온하랑을 향해 손을 저었다.“빨리와.”온하랑은 가까이에서 오토바이를 더 찬찬히 훑어보며 물었다.“이거 오빠 거야?”부승민은 온하랑에게 헬멧까지 씌
“지금 기분은 어때?”부승민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아직도 안 좋아?”온하랑은 뒤늦게 부승민이 자신을 데리고 드라이브를 나온 이유가 자신이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순식간에 마음이 따뜻해진 온하랑이 고개를 돌려 부승민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 고마워.”같이 드라이브를 나왔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지만 오늘 오후 부시아를 위해, 또 온하랑을 위해 제때 등장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다.부승민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온하랑을 빤히 바라보았다.강 건너편은 밝은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부승민의 매력적인 안광이 어린 눈동자는 물속에 숨겨진 보석처럼 맑고 반짝거렸다.옆에서 비쳐오는 불빛이 그의 옆모습을 비추며 짙은 이목구비와 얼굴선을 더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주었다.온하랑은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넋을 잃은 듯했다.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승민이 낮게 속삭인 한 마디는 온하랑에게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진짜 그렇게 고마우면, 뽀뽀해줘.”“…”모든 아름다웠던 감정과 감동들이 순식간에 파사 삭 깨져버렸다.바로 정신을 차린 온하랑은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고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부승민을 흘겨보며 말했다.“꿈 깨.”온하랑은 고개를 홱 돌려 강변을 따라 산책을 시작했다.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부승민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큰 보폭으로 온하랑을 단숨에 따라잡더니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앞으로 걸었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쭉 걸었다.바람 소리와 물소리만이 두 사람의 산책길을 함께 해주고 있었고 가끔 먼 곳에서 자동차 경적이 들려왔다.온하랑의 마음도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두 사람과 조금 떨어진 텅 빈 길거리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발소리를 들리더니 그 인영이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 인영은 두 사람을 확인하는 순간 온몸에 굳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긴가민가한 듯
부승민은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가늘게 실눈을 뜨고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듯 맹수처럼 온하랑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큰 보폭으로 걸어갔다.온하랑은 볼이 점점 달아올라 저도 모르게 걸음을 재촉했다.등 뒤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온하랑은 걸음을 더 빨리 재촉하다 이제는 잔걸음으로 뛰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그녀는 바닥을 응시하며 남자의 그림자가 점점 가까워지다가 거의 자신의 그림자와 겹치려고 할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스릴을 느끼며 재빨리 뛰어 최대한 부승민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부승민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더니 이 기세를 몰아 두세 걸음 만에 온하랑을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그는 온하랑의 손목을 잡아채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당기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며 말했다.“왜 도망쳐?”“그럼 넌 왜 쫓아오는데?”온하랑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부승민의 어깨를 밀치며 반격을 시작했다.“왜 쫓아오냐고?”부승민이 눈썹을 들썩이며 웃는 듯 마는 듯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몰라.”온하랑은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했다.내뱉는 말과 속마음이 달랐다.“그럼 내가 알려줘야지.”부승민은 큰 손으로 온하랑의 뒤통수를 눌러 잡더니 몸을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두 사람의 입술이 맞물리고 호흡이 뒤섞였다.부승민의 뜨거운 입술이 맹렬하게 온하랑의 입술을 탐했다.온하랑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숨이 차오르고 두 다리는 점점 힘이 풀려 두 손으로 부승민의 옷깃을 잡지 않는 이상 스스로 몸을 지탱할 수 없었다.해가 떨어진 밤 기온은 낮았고 강가에서는 찬 바람이 불어왔다.그런데도 온하랑은 오히려 더위를 느꼈다.몸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그녀의 콧망울에 작은 땀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부승민은 완전히 온하랑에게 홀려버린 듯 계속해서 그녀의 입술을 탐해왔다. 입술이 맞물린 시간이 길어질수록 혀는 더 깊게 들어왔고 부승민의 한 손은 이미 온하랑의 골반을 감싼 채 그녀를 점점 더 가까이 끌어안았
다시 말해, 사인을 조작하고 사진을 도용한 부정행위에 대해 주최 측은 이미 알고도 묵인했으며 심지어 그 부정행위에 가담까지 했다는 것이다.사진 위에 새겨진 아이디 ‘연철’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던 온하랑이 알아본 결과, 그 아이디는 바로 전 시즌 촬영 대회에서 2등을 한 사람의 사인이었다는 것을 알아냈다.그 2등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그 사진도 도용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만약 대회에서 이런 비리가 발생했다는 게 알려지는 순간, 그 대회의 명성이 추락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온하랑은 최동철이 풍경 사진 공모전 심사위원이자 프로모터로서 주최 측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굳이 서로 체면 상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온하랑은 비리 사실을 바로 폭로하는 대신 조용히 자신이 수집한 증거들을 최동철에게 전송해 상황을 설명하는 쪽을 택했다.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최동철에게서 답장이 왔다.“하랑아, 진짜 미안해. 공식 사이트에 올라간 공지는 이미 수정 완료했어. 이 일에 대해서는 내가 꼭 책임질게.”“고마워요, 동철 오빠. 그럼 저도 말 안 돌리고 바로 얘기할게요. 제 생각엔 이 비리 사건, 주최 쪽 직원이랑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나도 알고 있어. 지금 우리 쪽에서 조사 중이야.”“맞다,”최동성에게서 또 한 번의 메시지가 날아왔다.“내가 듣기론 너 동림이랑 아주머니랑 트러블 있었다며?”“네, 그래도 저는 어느 정도 다 풀렸다고 생각하는데요.”온하랑이 대답했다.온하랑은 다 풀렸을지 몰라도 최동림 모자는 여전히 앙금이 쌓여있을지도 몰랐다.“동림이, 태어날 때부터 천식이 있었어. 그래서인지 아주머니한테는 아픈 손가락이라 너한테 조금 무례하게 군 것 같은데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알겠어요, 동철 오빠.” “네가 메일로 보냈던 그 그림들 말이야. 대회 참여작 중에 제일 맘에 들더라. 계속 응원하고 있을게. 파이팅.”“고마워요.”최동철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진지한 눈빛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