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온하랑은 사진과 관련된 증거들을 정리하여 담당자에게 보내줬다.온하랑이 보낸 공모전 응모 메일, 원본 EXIF 파일, 그리고 RAW 원본까지 모두 온하랑의 작품임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이었다.증거가 이렇게 충분하니 일이 금방 처리될 거라고 생각한 온하랑은 노트북을 끄고 세수를 하러 들어갔다.그리고 침대에 누워 쉬려고 할 때 부승민이 갑자기 문자를 보내왔다.[나와.][집 앞이야.]온하랑은 졸음이 순식간에 사라져 서둘러 답장을 했다.[이 밤중에 뭐 하자는 거야?][바람 쐬자고. 옷 따뜻하게 입고 나와.][미쳤어? 이 밤에 무슨 바람?][10분 줄 테니까 빨리 나와. 10분 뒤에 노크할 거야. 김시연 씨 깨우기 싫으면 빨리 나와.]제 룸메이트로 협박을 해오는 부승민에 온하랑은 이를 악물며 서둘러 옷을 챙겨입고는 밖으로 나갔다.구급 통로 창문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던 부승민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담배를 끄고는 온하랑에게로 다가갔다.옷을 따뜻하게 입은 걸 확인한 부승민은 그제야 엘리베이터 하향버튼을 눌렀다.“가자.”온하랑은 부승민을 바라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왜 갑자기 바람 쐬러 가자 그래?”“그냥 갑자기 그러고 싶어서.”“난 가기 싫어.”“이미 다 나왔는데 좀만 걷다 들어가.”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부승민은 온하랑을 잡아끌어 태우고는 1층을 눌렀다.“지하 1층 아니야?”“가보면 알아.”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추고 밖으로 나온 부승민은 근처의 주차장으로 걸어갔다.무슨 수작이지 이건?온하랑은 궁금해서 따라가긴 하면서도 수상쩍은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한 오토바이 앞에 도착했다.크기도 꽤 크고 뭔가 화려해 보이는 것이 꽤 값이 나갈 것 같았다.온하랑은 그제야 부승민이 말한 바람 쐰다는 것의 의미를 알았다.부승민은 헬멧을 들고는 온하랑을 향해 손을 저었다.“빨리와.”온하랑은 가까이에서 오토바이를 더 찬찬히 훑어보며 물었다.“이거 오빠 거야?”부승민은 온하랑에게 헬멧까지 씌
“지금 기분은 어때?”부승민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아직도 안 좋아?”온하랑은 뒤늦게 부승민이 자신을 데리고 드라이브를 나온 이유가 자신이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순식간에 마음이 따뜻해진 온하랑이 고개를 돌려 부승민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 고마워.”같이 드라이브를 나왔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지만 오늘 오후 부시아를 위해, 또 온하랑을 위해 제때 등장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다.부승민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온하랑을 빤히 바라보았다.강 건너편은 밝은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부승민의 매력적인 안광이 어린 눈동자는 물속에 숨겨진 보석처럼 맑고 반짝거렸다.옆에서 비쳐오는 불빛이 그의 옆모습을 비추며 짙은 이목구비와 얼굴선을 더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주었다.온하랑은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넋을 잃은 듯했다.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승민이 낮게 속삭인 한 마디는 온하랑에게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진짜 그렇게 고마우면, 뽀뽀해줘.”“…”모든 아름다웠던 감정과 감동들이 순식간에 파사 삭 깨져버렸다.바로 정신을 차린 온하랑은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고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부승민을 흘겨보며 말했다.“꿈 깨.”온하랑은 고개를 홱 돌려 강변을 따라 산책을 시작했다.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부승민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큰 보폭으로 온하랑을 단숨에 따라잡더니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앞으로 걸었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쭉 걸었다.바람 소리와 물소리만이 두 사람의 산책길을 함께 해주고 있었고 가끔 먼 곳에서 자동차 경적이 들려왔다.온하랑의 마음도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두 사람과 조금 떨어진 텅 빈 길거리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발소리를 들리더니 그 인영이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 인영은 두 사람을 확인하는 순간 온몸에 굳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긴가민가한 듯
부승민은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가늘게 실눈을 뜨고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듯 맹수처럼 온하랑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큰 보폭으로 걸어갔다.온하랑은 볼이 점점 달아올라 저도 모르게 걸음을 재촉했다.등 뒤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온하랑은 걸음을 더 빨리 재촉하다 이제는 잔걸음으로 뛰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그녀는 바닥을 응시하며 남자의 그림자가 점점 가까워지다가 거의 자신의 그림자와 겹치려고 할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스릴을 느끼며 재빨리 뛰어 최대한 부승민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부승민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더니 이 기세를 몰아 두세 걸음 만에 온하랑을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그는 온하랑의 손목을 잡아채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당기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며 말했다.“왜 도망쳐?”“그럼 넌 왜 쫓아오는데?”온하랑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부승민의 어깨를 밀치며 반격을 시작했다.“왜 쫓아오냐고?”부승민이 눈썹을 들썩이며 웃는 듯 마는 듯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몰라.”온하랑은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했다.내뱉는 말과 속마음이 달랐다.“그럼 내가 알려줘야지.”부승민은 큰 손으로 온하랑의 뒤통수를 눌러 잡더니 몸을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두 사람의 입술이 맞물리고 호흡이 뒤섞였다.부승민의 뜨거운 입술이 맹렬하게 온하랑의 입술을 탐했다.온하랑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숨이 차오르고 두 다리는 점점 힘이 풀려 두 손으로 부승민의 옷깃을 잡지 않는 이상 스스로 몸을 지탱할 수 없었다.해가 떨어진 밤 기온은 낮았고 강가에서는 찬 바람이 불어왔다.그런데도 온하랑은 오히려 더위를 느꼈다.몸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그녀의 콧망울에 작은 땀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부승민은 완전히 온하랑에게 홀려버린 듯 계속해서 그녀의 입술을 탐해왔다. 입술이 맞물린 시간이 길어질수록 혀는 더 깊게 들어왔고 부승민의 한 손은 이미 온하랑의 골반을 감싼 채 그녀를 점점 더 가까이 끌어안았
다시 말해, 사인을 조작하고 사진을 도용한 부정행위에 대해 주최 측은 이미 알고도 묵인했으며 심지어 그 부정행위에 가담까지 했다는 것이다.사진 위에 새겨진 아이디 ‘연철’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던 온하랑이 알아본 결과, 그 아이디는 바로 전 시즌 촬영 대회에서 2등을 한 사람의 사인이었다는 것을 알아냈다.그 2등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그 사진도 도용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만약 대회에서 이런 비리가 발생했다는 게 알려지는 순간, 그 대회의 명성이 추락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온하랑은 최동철이 풍경 사진 공모전 심사위원이자 프로모터로서 주최 측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굳이 서로 체면 상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온하랑은 비리 사실을 바로 폭로하는 대신 조용히 자신이 수집한 증거들을 최동철에게 전송해 상황을 설명하는 쪽을 택했다.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최동철에게서 답장이 왔다.“하랑아, 진짜 미안해. 공식 사이트에 올라간 공지는 이미 수정 완료했어. 이 일에 대해서는 내가 꼭 책임질게.”“고마워요, 동철 오빠. 그럼 저도 말 안 돌리고 바로 얘기할게요. 제 생각엔 이 비리 사건, 주최 쪽 직원이랑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나도 알고 있어. 지금 우리 쪽에서 조사 중이야.”“맞다,”최동성에게서 또 한 번의 메시지가 날아왔다.“내가 듣기론 너 동림이랑 아주머니랑 트러블 있었다며?”“네, 그래도 저는 어느 정도 다 풀렸다고 생각하는데요.”온하랑이 대답했다.온하랑은 다 풀렸을지 몰라도 최동림 모자는 여전히 앙금이 쌓여있을지도 몰랐다.“동림이, 태어날 때부터 천식이 있었어. 그래서인지 아주머니한테는 아픈 손가락이라 너한테 조금 무례하게 군 것 같은데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알겠어요, 동철 오빠.” “네가 메일로 보냈던 그 그림들 말이야. 대회 참여작 중에 제일 맘에 들더라. 계속 응원하고 있을게. 파이팅.”“고마워요.”최동철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진지한 눈빛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임연지가 가까스로 용기를 내 물었다.“오빠… 그냥 이름만 다시 바꾸면 되는 거 아니에요? 왜 굳이 제가 사과까지 해야 해요?”“쓸데없이 욕심만 많고 본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제대로 책임지려고도 안 하네. 이모가 너 그렇게 가르쳤니?”순간적으로 몸을 흠칫 떤 임연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오빠, 잘못했어요. 제… 제가 기서 사과할게요. 사과하면 되는 거죠?”“친필 사과문은 안 쓸 거야?”“지금 당장 쓰러 갈게요.”최동철의 사무실을 벗어난 임연지의 표정이 순식간에 짜증 난다는 듯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눈빛이 암울하게 번했다.이게 뭐 그렇게 큰일이라고, 대놓고 사촌오빠한테까지 꼰질러서 좋아하던 오빠한테 혼나기까지 하지?누가 한 짓인지 밝혀지는 순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임연지는 인터넷에서 아무 사과문이나 검색해 대충 이름만 바꿨다.수정을 끝내고 임연지는 곧바로 주최 측 직원에게 문자를 보냈다.“내 사진 말이에요. 원래는 누구 작품이었어요? 이름이 뭐예요?”사과문에 이름까지 써넣은 게 신의 한 수였다.“온하랑이라고 하는 참가자입니다.”온하랑은 실명으로 인터넷 회원가입을 한 터라 그녀의 아이디가 곧 그녀의 본명이었다.다만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별 관심이 없던 주최 측 직원이 온하랑이라는 이름을 아예 몰랐을 뿐이다.임연지는 온하랑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음속으로 어딘가 모를 확신 어린 직감이 생겼다.이 온하랑은 자신이 아는 그 온하랑임이 분명했다.임연지는 곧바로 최동철의 어시인 이석을 찾아가 자세히 따져 물었다. 이석은 아무런 숨김 없이 모든 걸 알려주었다.임연지는 그제야 최동철과 온하랑이 함께 낭천으로 야외 스케치를 나갔던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어쩐지!이 일이 어떻게 사촌오빠의 귀에까지 들어갔나 했더니 전부 다 온하랑이 저지른 짓이었다.임연지는 주먹을 힘주어 꽉 쥐더니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온하랑! 대체 걔가 뭐가 그렇게 좋아서!부승민은 온하랑 때문에 목숨까지
“저도 이해해요, 동철 오빠가 왜 곤란해하는지. 산하 국제 촬영 대회 대표자가 바로 오빠잖아요. 이 대회의 명성이 다음 시즌까지 이어질 수도 있고 오빠 체면도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저는, 전에도 이런 일이 많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네요. 전에도 이런 식으로 수상 했던 사람이 있는데도 알 수 없는 세력에 의해 묻힌 건 아닌가 싶어서요….”“걱정하지 마, 내가 다시 심사하라고 얘기해뒀으니까. 만약 이런 일이 또 한 번 일어난다면, 그땐 가차 없이 트로피를 뺏을 생각이야.”“그럼 부탁할게요, 동철 오빠.”온하랑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게 다였다.“괜찮아.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뭘. 이 일로 수치스럽게 된 것도 다 사실이야. 그럼 이렇게 하자. 네가 시상식으로 경주에 왔을 때 내가 대표로서 크게 한턱 쏠게.”“고마워요, 동철 오빠. 그럼 저도 딱히 사양하지는 않을게요.”온하랑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수상 사실을 발표하자 이주혁에게서 카카오톡으로 축하 메시지가 날아왔다. 그 동시에 자신의 화보를 찍어 달라고 부탁하는 문자도 함께 왔다.온하랑은 이모티콘으로 이주혁에게 답장을 보냈다.“진심이야? 장난치는 거 아니지?”“내가 너한테 이런 장난을 왜 쳐? 난 네 실력 믿으니까 이러지.”“그래, 나 믿는다니까 실망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 언제 찍을 건데?”“하루 정도는 꼬박 걸릴 것 같은데. 너 언제 시간 돼?”온하랑이 한 주 동안의 스케줄표를 찍어 이주혁에게 전송했다.스케줄표에 의하면 온하랑은 월요일과 화요일에 촬영 일정이 잡혀있었다.이주혁은 바로 자신의 화보 촬영 날짜를 수요일로 잡았다.화요일, 온하랑은 와이어를 매단 채 공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무려 세 차례의 촬영 스케줄을 소화해내야만 했다.스케줄을 마치자 시간은 이미 저녁 8시가 다 되어있었다. 온하랑은 드라마 하나뿐인 데에다 촬영분도 많지 않아 굳이 매니저를 두지 않고 촬영 이외의 모든 일도 스스로 해결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촬영이 끝난 뒤,
“나 왔어. 좋은 아침.”촬영장에서는 온하랑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카메라에 찍혀 있던 사진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온하랑은 이주혁을 발견하고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온하랑을 마주친 이주혁의 걸음이 멈칫하더니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좋은 아침. 일찍 왔네?”“그럼. 오늘이 첫 촬영이잖아. 그러니까 열심히 해야지. 열정적으로.”온하랑은 웃으며 다시 카메라를 집어 들고 세트장 이곳저곳을 찍어보며 느낌을 잡아갔다. 한창 촬영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나머지 온하랑은 자신을 보는 이주혁의 눈빛을 미처 신경 쓰지 못 한듯했다.“메이크업부터 받고 올게.”“응, 갔다 와.”온하랑은 카메라의 사진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이주혁은 잠깐 입술을 깨물더니 깊은 눈동자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이주혁은 온하랑과 부승민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묻고 싶었다.부승민이 정말 그렇게도 좋을까?바람까지 피웠던 부승민을 이렇게 쉽게 용서해줄 만큼?“이주혁 씨?”이주혁이 아직도 메이크업을 받으러 이동하지 않은 것을 발견한 매니저가 그를 재촉했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주혁은 다시 한번 온하랑에게 시선을 주고 분장실로 걸음을 옮겼다.이틀 전, 이주혁의 촬영팀이 이미 온하랑에게 구체적인 콘셉트가 적힌 파일을 보내주었다. 이미 자세히 그 파일을 봤던 온하랑이었지만 정식적인 촬영은 그녀도 처음이었던지라 쉽지는 않았다.온하랑과 이주혁의 호흡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찍힌 사진들 속에 담겨있는 이주혁은 전혀 촬영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그러다 보니 촬영 속도도 느려지고 효율적인 촬영이 진행되지 못했다.온하랑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이주혁이 촬영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미처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라고만 여겼다. 온하랑은 어떻게든 한 장이라도 건져내기 위해 각도를 바꿔가며 계속해서 촬영을 이어나갔다.이주혁은 눈을 감고 이마를 매만지며 어떻게든 어젯밤에 봤던 그 모습을
쟤 지금 뭐 하는 거지?온하랑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주혁을 바라보았다.이주혁은 이영호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가리켰다.온하랑은 휴대폰 잠금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주혁은 할 얘기가 있으니 온하랑에게 아무 핑계나 대고 밖으로 나오라는 문자를 보냈다.온하랑은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해두고 이영호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답장을 보냈다.“폰으로 얘기하면 안 돼? 이러다가 또 파파라치한테 찍히기라도 하면…”이주혁이 다시 답장을 보냈다.“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게? 파파라치한테 찍힌다고 우리 다시 안 볼 거야?”이주혁에게서 다시 한번 답장이 날아왔다.“걱정하지 마. 내 일에는 피해 안 갈 테니까.”“알겠어.”휴대폰을 집어넣은 온하랑은 그 자리에 몇 분 정도 앉아있다가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룸을 벗어났다.화장실에서 나온 온하랑은 비상계단에서 이주혁을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주혁이 다시 걸어왔다.“오래 기다렸어?”“아니, 할 얘기라는 게 뭐야?”온하랑을 바라보는 이주혁의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깊은 눈빛에서 진한 감정이 느껴졌다.이주혁의 표정을 본 온하랑의 심장이 철렁했다.이주혁… 너 아직도 나 포기 못 했어?레스토랑에서 이주혁의 고백을 거절했을 때부터 둘의 연락은 이미 뜸해진 지 오래였다. 온하랑은 진심으로 이주혁을 친구로 두고 싶었다.온하랑은 입술을 몇 번 깨물더니 말했다.“말을 해.”이 좋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너… 부승민이랑 화해한 거야? 어제 네가 부승민 차 타는 거 봤어.”“…”온하랑이 잠시 머뭇거렸다.온하랑은 부승민과 다시 화해를 한 건 아니었다.하지만 온하랑이 부승민에게 한 스킨쉽을 딱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그것들도 다 부승민이 강제로 한 거지 절대 온하랑이 좋아서 한 건 아니다. 온하랑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온하랑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본 이주혁은 상처받은 듯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평온해 보이는 표정과는 반대로 마음속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