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하랑은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말했다.“모르겠어요. 내일 봐요.”그러다 다시 꿈속에 빠져들었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아침 8시였다.병실을 지키고 있던 베이비시터는 온하랑이 깨어난 걸 보고 인사했다.“사모님, 어디 불편한 데 없으세요?”온하랑은 하품을 하고서 눈을 비비더니 베이비시터 황은숙을 바라보았다.“저 다리가 저려서 그러는데 똑바로 눕고 싶어요.”황은숙은 온하랑의 허리를 잡고 부드럽게 몸을 돌렸다.온하랑이 주변을 살피더니 물었다.“오빠는 갔어요?”“나가셨어요. 어디 간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더 주무실래요?”“아니요. 일어날래요.”황은숙은 천천히 침대 등받이를 올리고는 칫솔과 물컵을 가져왔다.온하랑이 이발을 다 닦았을 때, 세수할 수 있게 따뜻한 수건도 가져왔다.이때, 부승민이 돌아왔다.“하랑아, 깼어? 몸은 어때?”“괜찮아요. 출근 안 했어요?”“하랑이가 심심할까 봐. 며칠은 병원에서 함께 지낼 거야.”부승민은 온하랑과 함께하려고 취소할 수 있는 스케줄은 취소하고, 미룰 수 있는 스케줄도 모조리 미룬 상태였다.힘들게 아이를 낳아줬는데 혼자 병원에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온하랑이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았다.“아까는 뭐 하러 갔어요?”부승민이 피식 웃었다.“세수 다 하면 알려줄게.”온하랑은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뭐길래 이렇게 비밀스럽게 행동하는 거예요?”온하랑은 세수를 마치고 황은숙이 건넨 스킨로션을 바르면서 부승민을 쳐다보았다.“이제 됐죠? 말해봐요.”부승민은 핸드폰을 꺼내 온하랑한테 보여주었다.“이거 봐.”핸드폰 화면 속에는 얼굴이 발그레한 아이가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온하랑은 멈칫도 잠시 그윽하게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았다.“이건...”“맞아. 우리 딸. 간호사분한테 찍어달라고 했어.”온하랑은 유심히 보더니 억지 미소를 지었다.“음... 어제보다는 훨씬 예뻐졌네요.”황은숙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다가와 핸드폰을 쳐다보았다.“어머, 너무 예쁘네요.”온하랑이 힐끔 쳐다보자 황은숙은
부승민은 부끄러워하는 온하랑의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일단 물 마셔. 가스가 나오면 아주머니한테 말씀드리고.”온하랑이 황은숙이 준비해 두었던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부승민은 병원 사이트에 들어가서 인큐베이터 동영상을 찾아보았다.“하량아, 이거 봐봐.”화면 속 모습은 사진 속 모습처럼 손을 들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시간도 볼 수 있었고, 아이가 숨을 쉬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할 수 있었다.“좋네요.’온하랑은 화면 속 작은 몸집에 작은 손발, 포동포동한 팔다리를 하고 있는 녀석의 모습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이었다.“계속 보고있어도 돼. 몸을 뒤집거나 우유 마시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거야.”“아이패드 가져왔어요? 아이패드로 보게요.”부승민은 가방에서 아이패드를 꺼내 병원 사이트로 들어가서 다시 동영상을 켜놓았다.녀석이 아직 움직이지도 않는데 보고만 있어도 힐링 되는 느낌이었다.몇 분 뒤, 녀석이 입을 오므리더니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이거 봐봐요. 얼마나 귀여워요.”온하랑은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귀엽네.”온하랑은 고개돌려 부승민을 쳐다보았다.“어제 잘 못 잔 거 아니에요? 좀 자다 올래요?”“아니. 여기서 함께 있을 거야.”“그래도 좀 쉬어요. 저녁이면 아주머니랑 바통 터치해야죠.”부승민은 잠깐 고민하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장 비서. 베이비시터 좀 알아봐. 경험이 풍부하고 인성이 좋은 분으로. 월급은 상관없어. 최대한 빨리. 오후면 바로 오실 수 있게.”부승민은 전화를 끊자마자 온하랑을 쳐다보았다.“이러면 됐지?”온하랑은 할 말을 잃었다.“이거 무슨 냄새에요?”온하랑은 코를 킁킁거리면서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 물었다.“아주머니, 지금 뭘 끓이고 계세요?”“어죽이요...”아주머니는 뚜껑을 열어 휘젓고 있었다.“식사하실 수 있을 때 바로 드시게 미리 끓여놓는 거예요. 어죽이 몸에 좋아요.”“참 생각이 깊으시네요.”“그럼요.”황은숙이 뿌듯해
“잘 모르겠어요.”온하랑은 망설이고 있었다.“열 달을 채워서 출산할 줄 알고 모유 수유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아이가 일찍 태어날 줄 몰랐죠?”“네.”온하랑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아이 면역력이 좋아질 수 있도록 첫 달은 모유 수유하는 것을 추천해 드려요. 어차피 산후 조리하셔야 하잖아요. 일에도 지장이 없으니 한 달 후에 단유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려요.”온하랑은 잠깐 고민해 보더니 황은숙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어죽을 다 마시고 온하랑은 또 CCTV를 쳐다보았다.8시 반쯤, 의사 선생님이 간호사와 함께 회진을 돌면서 온하랑의 상처를 소독해 주고 거즈를 붙여주었다.의사 선생님과 간호사가 떠나고, 온하랑은 부승민과 황은숙을 쳐다보더니 말했다.“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온하랑은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아직 수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에서 내려갈 수 없는데 어떡하지? 성인 기저귀를 하고 그냥 침대에서 해결할까? 아니면 카테터를?’어떤 방법으로든 창피하기만 했다.똑같이 이런 상황은 처음인 부승민은 침묵 끝에 이렇게 말했다.“아니면... 내가 화장실까지 안아줄까?”“그럴 필요 없어요.”황은숙이 말했다.“자, 사모님. 제가 부축해 드릴 테니 천천히 걸어보세요.”“그래도 돼요?”“괜찮아요. 자.”황은숙은 한 손으로 온하랑의 어깨를 부축하고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저를 따라 천천히 돌아누우세요...”부승민도 옆에서 온하랑이 일서날 수 있게 등을 받쳐주었다.온하랑은 천천히 발을 바닥에 내려놓고 황은숙과 부승민의 부축하에 천천히 일어섰다.일어서니 훨씬 상쾌한 느낌이었다.온하랑은 천천히 걸어서 화장실로 향했다.부승민은 화장실 문 앞까지 함께했고, 온하랑은 황은숙과 함께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는 천천히 변기에 앉았다.창피할 것도 없이 후다닥 해결하고는 아줌마와 함께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그래도 큰 신호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쓸 힘도 없었을 것이다.황은숙과 부승민은 다시 온하
[뭘 이렇게 많이 줘.][요 며칠 바빠서 그러는데 시간 나면 우리 양딸 보러 갈게.][나는 안 보고?][못생긴 사람은 안 봐.]점심 식사 시간, 온하랑은 그릇에 담겨있는 죽을 보더니 입을 삐쭉 내밀었다.이때 부승민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두 날만 참아. 나중에 아주머니가 맛있는 걸 해주실 거야.”“오빠 밥은 맛있어 보이네요?”“켁...”사레에 들린 부승민은 황은숙을 힐끔 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생각해 봐. 이걸 먹으면 소화하고 나서...”온하랑은 바로 그의 입을 막았다.“그만 해요! 죽 먹으면 될 거 아니에요!”오후. 장 비서가 베이비시터 한 명을 보내왔다. 자기 와이프가 출산할 때 모셨던 베이비시터라면서 책임감도 넘치고 경험도 있으신 분이라고 했다. 마침 시간이 돼서 소개받고 온 것이다.부승민은 베이비시터 유정화와 어느정도 이야기를 해보고는 계약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황은숙과 유정화가 번걸아 가면서 온하랑을 돌보기로 했다.온하랑은 심심했는지 또 아이패드를 쳐다보았다.잠에서 깨어난 녀석은 기지개를 켜더니 배고픈지 울기 시작했다.온하랑은 마음이 찢기는 듯했다.“왜 우는 거예요? 배고파서 우는 거예요?”부승민은 그녀의 옆에서 함께 아이패드를 쳐다보고 있었다.“걱정하지 마. 간호사분이 잘 돌봐주실 거야.”말이 끝나자마자 화면 속에 간호사분이 나타났다.녀석이 배고파서 우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분유를 타왔다. 한 손으로는 녀석의 목을 받쳐주고 한 손으로는 젖병을 입에 물렸다.눈을 감고 있던 녀석은 분유 냄새를 맡고 본능적으로 울음을 멈추고 젖병을 빨기 시작했다. 두 손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온하랑은 또 한 번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유정화도 CCTV 속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아이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이 그래도 발육이 잘됐나 봐요.”온하랑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진지하게 말했다.“오빠.”“응?”“우리 애가 나중에 크면
“환자분은 천성적으로 자궁벽이 얇은 편이라 태아의 위치가 정상이 아닐 가능성이 커요. 평소에 식단 조절 잘하고 운동도 빼먹지 마시고 항상 조심하는 게 좋아요.”의사가 말하면서 처방전을 작성하고 건네주었다.“자, 약 가지고 가세요.”“네, 감사합니다. 선생님.”온하랑은 처방전을 건네받고 천천히 일어섰다.이때, 의사가 한 마디 더 보탰다.“진짜 조심해야 해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큰일 날지도 몰라요.”자궁벽이 얇으면 유산하기 쉬웠다. 게다가 한 번 유산하면 다시 임신하지 못하는 임산부들이 대다수였다.“선생님, 감사합니다. 꼭 유의할게요.”온하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결혼 3년 차, 그녀만큼 아이의 탄생을 고대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아이를 꼭 잘 지키겠다고 다짐했다.약을 받은 다음 온하랑은 병원에서 나와 차로 돌아갔다.기사가 시동을 걸고 백미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사모님, 도련님께서 오후 3시 비행기로 돌아오시는데 아직 20분 남았어요. 바로 공항으로 가실까요?”“네.”20분 뒤에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온하랑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고, 마음속은 기대로 가득 찼다.부승민이 한 달 가까이 출장 중이라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그녀는 공항으로 가는 내내 가방에서 임신 확인서를 꺼내 몇 번이고 들여다보고는 손으로 아랫배를 살짝 감쌌다.이곳에 그녀와 부승민의 아이가 있으며 8개월만 기다리면 곧 태어난다.지금은 당장 이 기쁜 소식을 부승민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뿐이다.공항에 도착하자 기사는 눈에 잘 띄는 곳에 차를 세웠다.“사모님, 도련님께 연락 한번 해보실래요?”온하랑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부승민이 이미 비행기에서 내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전화를 걸었지만, 휴대폰이 꺼져있다는 안내음만 흘러나왔다.“비행기가 연착된 것 같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봐요.”온하랑이 말했다.한참이 지나도 부승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온하랑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통하지 않았다.“더 기다려봅시다.”비행기 연착은 워낙 흔
“응.”“술 마셨어?”“친구랑 조금 마셨어.”욕실에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리자 온하랑은 찡그린 얼굴로 뒤척이며 편히 잠들지 못했다.이내 침대가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에 닿더니 우아한 곡선을 따라 점점 아래로 내려가며 만지작거렸다.“음... 오늘은 안 돼...”온하랑은 눈을 감고 비몽사몽인 채로 그를 밀어냈다.행여나 아이가 다칠까 봐 무의식적으로 걱정했다.큰 손이 우뚝 멈추더니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얼른 자.”졸음이 쏟아지는 탓에 그녀는 금세 잠이 들었다.아침에 일어난 온하랑의 곁에는 이미 온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단지 살짝 구겨진 침대 시트를 통해 어젯밤에 누군가 옆에 누워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그녀는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대체 어제 왜 바로 잠이 들었냐는 말이다.물론 오늘 말해도 상관없었다.온하랑은 재빨리 씻고 옷장으로 걸어가서 부승민이 입을 흰색 슈트를 골라주었다. 그리고 어쨌거나 임신은 경사스러운 일이라 밝은 톤의 스프라이트 넥타이를 골라 침대맡에 놓았다.아침 조깅을 마친 부승민은 홈웨어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 계단에서 내려오는 온하랑을 바라보며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고 말했다.“밥 먹자.”아침 식사를 마치고 온하랑은 심호흡하더니 행복과 기대가 엿보이는 얼굴로 먼저 입을 열었다.“오빠한테 할 말이 있어.”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부승민도 기뻐하겠지?“나도 할 말 있어.”부승민의 어조로 사뭇 가라앉았다.“그럼 오빠 먼저 해.”온하랑의 해맑은 미소에는 수줍음이 살짝 묻어났다.“온하랑, 우리... 이혼하자.”부승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고 건네주었다.“이건 이혼 합의서야. 우선 읽어보고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최선을 다해 만족시켜 줄 테니까.”온하랑의 심장이 털컥 내려앉았고,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부승민을 멍하니 바라봤다.이내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었다.한참이
3년 동안 두 사람의 사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여느 평범한 부부와 다를 바 없었다.매일 아침 온하랑은 그의 슈트와 넥타이를 고르고, 함께 집을 나서 사무실로 출근했다.저녁 약속이 있을 때면 미리 알려주고, 취침 전에 루틴대로 스트레칭하고 샤워도 같이했다. 그리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는 굿나잇 키스도 있었다.결혼기념일이나 밸런타인데이, 생일 선물도 놓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부승민은 전부 다 들어줬다.로맨틱함은 물론 이벤트까지 챙겨주지 않았는가?그는 완벽한 남편으로서 해야 할 일은 다 했다.심지어 앞으로 이렇게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하지만 추서윤이 돌아온 이상 모든 걸 끝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그렇다면 어제 휴대폰에서 들려왔던 여자 목소리의 주인이 추서윤이라는 뜻인가?둘이 이미 연락을 주고받은 건가?설마 출장 간 한 달 동안 줄곧 함께 붙어 있었던 건 아니겠지?어제 같이 귀국해서 밤에 추서윤과 있다가 늦게 돌아왔단 말인가?이런저런 생각에 온하랑은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부승민 때문에 심장을 후벼파는 고통이 느껴져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온하랑, 걱정하지 마. 설령 이혼한다고 해도 우린 한 가족이야. 내가 제일 아끼는 여동생인 건 변함없어.”여동생이라니?3년의 결혼 생활 동안 같은 침대에 누워 함께 잠을 청했는데, 결국에는 여동생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인 건가?그녀는 결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건 그때 가서 얘기해.”온하랑은 속으로 자조적인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숙이고 대충 얼버무렸다.부승민이 손을 뻗어 옷깃을 잡아당기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참, 아까 무슨 말 하고 싶었던 거야?”온하랑은 무심하게 손에 든 서류를 넘기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아무것도 아니야. 다음 시즌 뉴컬렉션이 출시할 계획인데 아직 결정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오빠랑 상의하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어떤 말
온하랑은 휴대폰을 손에 꼭 움켜쥐었다. 가슴이 아픈 나머지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부승민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추서윤을 데리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니.심지어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며 다들 두 사람을 축복해 주기 바빴지만, 오직 그녀만 감쪽같이 속았을 뿐이었다.지난 3년 동안 부승민이 결혼했다는 건 그의 가족밖에 몰랐다.여태껏 단 한 번도 친구들을 소개해 준 적이 없었던 건 물론이고, 가끔 마주치더라도 사람들은 지레 그녀가 부씨 일가의 양녀인 줄 알았다.“사모님?”차를 빼기 위해 차고를 찾은 기사는 온하랑의 차가 아직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온하랑은 재빨리 눈물을 닦으며 못 들은 척하더니 곧바로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사적인 감정 때문에 업무에 지장 주는 게 제일 싫은 그녀였다.당장은 일에 매진하면서 주의력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었다.부승민의 메일 주소를 클릭하고 첨부파일에 계획표를 업로드한 뒤 온하랑은 전송을 눌렀다.곧이어 부승민이 답장을 보냈는데 여느 때처럼 간결했다.「좋아. 앞으로 신경 좀 써 줘.」온하랑은 머뭇거리다가 ‘알겠어’라고 답장하고는 재빨리 업무를 배분했다.퇴근 시간이 되자 부승민이 문자를 보냈다.「저녁에 볼일이 있으니까 먼저 가.」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는 또다시 바늘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내 떨리는 손가락으로 ‘알겠어’라고 답장했다.어쨌거나 그녀도 BX그룹의 임원에 속하는지라 예전에는 저녁 약속이 생기면 부승민은 무슨 일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줬는데 요즘은 단지 볼 일 있다는 말로 대충 둘러댔다.볼 일이라는 게 아마도 추서윤을 만나러 가는 거겠지.이때, 부승민의 문자가 도작했다.「출장 끝나고 돌아오면서 선물을 챙겼는데 깜빡하고 못 줬어. 내 캐리어에 있으니까 직접 가져가.」온하랑이 대답했다.「알았어.」부승민은 휴대폰 화면 속 단답형 문자를 보다가 갑자기 짜증이 스멀스멀 치밀어 올랐다. 이내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손을 뻗어 미간을 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