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200화

작가: 고운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16 19:00:00
병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유정화는 온하랑과 부승민을 번갈아보며 눈치를 살폈다.

한 명은 핸드폰, 다른 한 명은 노트북.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듯 그 어떤 대화도 주고받지 않았다.

유정화가 병실에 들어온 이후로 부승민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두 분... 싸웠나?’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지만 나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침묵을 택했다.

따지고 보면 온하랑의 산후조리를 돌봐주기 위해 이곳에 왔고, 산후조리가 끝나는 동시에 계약도 종료이니 굳이 이런 일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

유정화는 알지 못했다. 부승민의 노트북 화면은 온하랑과의 채팅창에 멈춰있다는 것을.

[읽씹? 왜 갑자기 답장 안 해.]

답장할 생각이 없었던 온하랑은 실수로 메시지를 눌렀고 ‘1’이 사라지니 답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딱히 할 말이 없는데?]

[맛볼 기회가 또 있을까?]

[나중에 모유 짜내면 먹던가...]

[그럼 그 맛이 안 날 텐데?]

콜록.

온하랑의 기침소리가 병실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부승민을 바라봤다.

“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들어가서 쉬어.”

“응?”

부승민은 고개를 들고선 희미롭다는 듯이 온하랑을 바라봤다.

“이제 몸도 많이 좋아졌고 아주머니가 항상 곁에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회사도 며칠이나 비웠잖아. 푹 쉬고 출근해서 일 봐야지.”

‘지금 날 쫓아내는 건가?’

“하랑아, 내일 토요일이야. 난 며칠 더 같이 있고 싶은데? 일은 여기서 해도 돼.”

“평소 토요일에도 출근했잖아? 얼른 일해서 우리 아이 분유값 벌어야지. 그리고 겸사겸사 인테리어 공사가 잘되는지도 확인해 줘.”

이때 유정화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여긴 저한테 맡기시고 들어가세요.”

사실 유정화는 부승민이 병실에 있는 게 많이 불편했다.

“알겠어요.”

부승민은 마지못해 한발 물러섰다.

“퇴근하고 보러 올게.”

“응.”

부승민은 대충 물건을 챙긴 뒤 노트북 가방을 들고 일어나며 아쉬운 눈빛을 보냈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위태로운 제안   제1201화

    부승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아이랑 얘기는 해봤어? 성격은 어때?” “얘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경계심이 너무 심해서 아예 입을 열지 않습니다.” “양부모랑 협의해서 아이 데리고 와.” 온하랑과 약속한 게 있으니 절대 어길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핸드폰은 내려놓은 부승민은 착잡함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한참을 고민한 뒤 차에 시동을 걸었다. 19층, 부시아는 거실에서 그림 숙제를 하고 있었다. 부승민이 안으로 들어오자 부시아는 활짝 웃으며 달려갔다. “아빠, 갑자기 왜 왔어요?” “내일 출근해야 돼서 일찍 들어왔어.” “토요일에도 출근을 하다니, 너무 불쌍하네요. 그럼 시아가 내일 병원에 가서 숙모랑 놀게요.” “그래.” “아빠, 어때요? 그림 엄청 잘 그렸죠?” 부시아는 펜을 내려놓고 칭찬해 달라는 표정으로 부승민에게 도화지를 내밀었다. 부승민은 그 모습이 귀여운지 웃으며 부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박을 그린 거야? 시아 엄청 대단하네.” “아빠... 이건 사과예요.” 부시아는 서운한 듯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렇게 못생겼어요?” “아니야... 아빠가 피곤해서 잘 안 보였어.” 부승민은 목을 가다듬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시아야, 며칠 후에 남동생 한 명이 올 거야.” “여동생 아니에요?” “병원에는 있는 동생 말고, 시아랑 비슷한 나잇대의 남자아이가 올 거야.” 시아는 5월생이다. 온하랑의 기억에 따르면 그 아이는 6월 말에 태어났으니 부시아 보다 한 달 정도 어린 셈이다. 고작 한 달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사진 속의 모습을 봤을 땐 심각한 영양실조로 말라있어 적어도 한두 살은 어려 보였다. 부시아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누군데요?” “숙모의 아이인데 예전에 좀 힘들게 지내서 데려오기로 했어. 남동생이랑 잘 지낼 수 있지?” ‘숙모의 아이라면 아빠의 아이가 아니라는 뜻인가?’ ‘그럼 나랑 똑같네? 난

    최신 업데이트 : 2024-11-17
  • 위태로운 제안   제1202화

    왜 하필 최동철일까?비록 온하랑과 만나고 있고 둘 사람 사이에는 딸까지 생겼지만 부승민은 여전히 질투가 났다.그는 다른 사람과 나눈 게 아닌 온하랑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었다.하지만 부승민을 알고 있다.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는 것을.그 아이의 존재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어떤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부승민은 후회가 밀려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아이를 찾아내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만드는 건데...부승민은 현명한 선택을 내리지 못한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온하랑은 부씨 가문에 온 이후로 줄곧 부승민만을 바라봤다. 유학할 때도 변함없이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그런 사람이 필라시에서 최동철과 가까워진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중 하나를 차지하는 게 부승민과 닮은 최동철의 외모일지도 모른다.짝사랑하는 사람과 꼭 닮은 얼굴이라면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동철이 수작을 부렸다면...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에 부승민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이는 오랫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고 최동철은 이제서야 아이를 데려갔다. 그 말인즉 최동철은 온하랑의 임신 사실을 몰랐다는 뜻이기도 하다.만약 온하랑이 정말로 최동철과 만났던 사이라면 어떻게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조차 모를 수가 있냐는 말이다.남녀 사이에 아이가 생긴 순간 두 사람은 평생 엮여야 하는 운명이다. 게다가 양측 모두 아이를 향한 책임감이 있다면 감정이 다시 생기는 건 시간문제다.현재 상황에서는 최동철이 아이를 데려간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아이가 눈앞에 없으면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온하랑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하지만 온하랑이 그걸 원할까?과연 순순히 아이의 양육권을 최동철에게 넘길까?부승민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설친 부승민은 얼떨결에 악몽을 꾼듯한데 깨어나 보니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다음날, 부승민은 아침 일찍 회사로 향했다.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

    최신 업데이트 : 2024-11-17
  • 위태로운 제안   제1203화

    부승민은 문을 닫고 천천히 걸어가 온하랑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하랑아, 내가 그 아이를 찾으려고 필라시에 사람을 보냈거든? 찾은 것 같아.” 온하랑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정말?” “응.” “아이 데려오라고 하면 안 돼?” 부승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려고 했는데 한발 늦었어. 다른 사람이 먼저 데려갔대.” “누구?” 온하랑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최동철...” 충격받은 온하랑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양부모의 말에 따르면 최동철이 그 아이의 아빠래.” 곧이어 부승민은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바라봤다. 그의 눈을 마주한 온하랑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미간을 찌푸렸다. “난 정말... 아무 기억도 안 나. 벨라한테 물어봤는데 그 사람일 가능성이 제일 크대.” “가능성?” “응... 필라시에서 연애를 해본 적은 없지만 동철 씨랑 가깝게 지냈다고 벨라가 얘기해 줬어.” “동철 씨?” “최동철.” 부승민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뜨렸다. “기분 나빠?” 온하랑은 부승민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승민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고 소파 팔걸이에 놓은 손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아니... 그냥 그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해서...” 처음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최동철이 떠오르긴 했지만 부정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서 그런지 결코 믿지 않았다. “아니라고?” 온하랑은 그의 손을 잡고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장난을 쳤다. “뭔가 질투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 부승민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들고 진지하게 말을 돌렸다. “아이가 몇 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다는 건 최동철도 이 일에 대해 몰랐다는 얘기인데... 갑자기 어떻게 알게 된 거지?” “그러니까. 그 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나도 궁금해. 뭐 좀 알아낸 거 없어?” “연 비서가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네가 필라시에 처음 갔을 때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대. 그래서 직접 요리할 생각으로 방을 알아봤는데, 그 와중에 우연히 최동철

    최신 업데이트 : 2024-11-18
  • 위태로운 제안   제1204화

    가식적이다. 온하랑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잘 지내고 있어요. 아참, 얘기 못한 게 있는데 얼마 전 아이를 낳았어요. 예쁜 딸이에요.” “정말? 축하해. 출산 예정일이 두 달 정도 남았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빨리 낳았네. 조카는 건강하지?” ‘조카?’ 듣도 보도 못한 호칭에 부승민은 어이가 없었다. ‘조카 같은 소리 하네.’ “조산이다 보니 다른 신생아에 비해서 많이 약해요. 두어 달은 인큐베이터에서 지내야 하거든요.” “아이는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게 자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 돌잔치 때 꼭 연락해 줘. 시간 내서 우리 조카 보러 가야지.” 부승민은 점점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 딸 보러 온다고? X랄하네.’ “알겠어요. 때가 되면 연락드릴게요.” “그래. 연락 기다릴게.” 겉치레 인사를 주고받은 후 온하랑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필라시에서 아이를 데려갔다면서요?” 최동철은 당황한 듯 흠칫하더니 무기력함과 허탈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알고 있었어?” “네.” “누구의 아이인지는 알아?” 온하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제가 알기론... 제 아이입니다.” “우리의 아이지.” 부승민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온하랑은 부승민을 힐끗 보고선 재빨리 그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진정시켰다. “동철 씨,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줘요.” “정말 알고 싶어?” “네.” 최동철은 몇 초간 침묵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부 대표도 옆에 있지?” 부승민은 온하랑의 손을 잡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냥 말해.” “솔직하게 말할게.” 최동철은 옛 추억을 회상하는 듯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하랑이가 필라시에 왔을 때 마침 내가 휴가였어. 그래서 시간도 많았고 마침 도움이 필요한 것 같길래 한몫 거들었지.” “중점만 얘기해.” 부승민은 그의 말을 잘랐다. 그러나 최동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최신 업데이트 : 2024-11-18
  • 위태로운 제안   제1205화

    분노의 불길이 강렬하게 타오를수록 부승민은 가슴이 찢어질 듯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그때의 온하랑이 최동철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다면 고통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로 인해 생긴 우발적인 사고였다. 온하랑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부승민을 바라보고선 부드럽게 그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온하랑은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최동철이 ‘너’가 아닌 ‘하랑’이라고 얘기하니 마치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방관하는듯한 느낌이었다. 대학교 3학년때의 온하랑을 대입하지 않아서인지 화가 나기보다는 그저 이런 해프닝이 일어났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때의 온하랑이 결정을 내렸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부승민이 당사자가 된 듯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그는 온하랑의 어깨를 끌어안고 그녀의 목덜미에 머리를 파묻은 채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부승민의 질책에도 최동철은 여전히 차분했다. “그때는 나도 술을 마셨어.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참을 수가 있겠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건 나도 충분히 알아. 다음날 하랑이는 우리의 관계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그었어. 내가 소개해준 방도 빼고 한순간에 사라진 거지. 모든 게 내 업보라고 생각했어.” “임신한 얘기는 나한테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어. 나도 며칠 전에 알았거든. 하랑이가 내 아이를 낳았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누군가 사진을 보내왔어.” “누군데?” “몰라. 낯선 번호여서 다시 걸었는데 없는 번호라고 뜨더라고.” 최동철은 멈칫하다가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어.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람을 보내 조사했는데 사실이었던 거야. 하랑아, 왜 나한테 임신했다고 얘기하지 않았어?” “저도 몰라요.” 온하랑도 본인이 왜 아이를 낳았는지 몰랐다. 최동철의 말에 따르면 짝사랑 상대에게 상처를 받아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한다. ‘부승민이랑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나 보네.

    최신 업데이트 : 2024-11-19
  • 위태로운 제안   제1206화

    최동철은 그 말에 답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 내일 아이가 도착하면 다시 연락할게.” “알겠어요.” “하랑아, 아직 아이 이름까지는 모르지? 메이슨이래.” “메이슨? 좋은 이름은 아니네요.” “응. 나중에 경계심이 조금 풀리면 이름부터 바꿔야지. 일단은 메이슨이라고 부르자.” “알겠어요.” “하랑아, 잘 자.” 온하랑이 답을 하기 도전에 부승민은 싸늘한 얼굴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온하랑은 부승민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선 웃으며 물었다. “화가 나? 마음이 아파?” “넌 웃음이 나오냐?” 온하랑은 손을 뻗어 그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이렇게 하면 이제 안 아플 거야.” 깃털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손이 몸에 닿자 마치 고양이가 꾹꾹이를 하는 듯 간질거렸다. 온하랑의 얼굴은 유난히 차분하고 청순해 보였는데 살짝 찌푸린 인상마저 매혹적이었다. 부승민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것만으로는 안돼.” 온하랑은 재빨리 손을 빼내며 시선을 돌렸다. “그럼 안 할게.” 그러자 부승민은 더욱 세게 잡아당겼다. “이것만으로는 안된다고. 다른 위로도 필요해.” “뭐?” 온하랑을 마주 보던 그의 시선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부승민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린 온하랑은 괘씸함에 그의 허리를 꼬집었다. 그러자 부승민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5분만.” 뜨거운 숨결이 닿자 온하랑은 온몸이 간질거렸다. “3분.” “그럼 10분.” “내가 졌다. 5분이야.” “콜.” “잠깐만.” 온하랑은 핸드폰을 꺼내 타이머를 설정했다. “이제 됐어.” 그녀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소파에 기댄 채 두 손을 부승민의 어깨에 올렸다. “그냥 먹기만 해. 혀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응.” 온하랑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분... 2분... 3분...” “이제 마지막이야. 5, 4, 3, 2, 1... 됐어, 이제 일어나.” 부승민은 마지못해 고개를

    최신 업데이트 : 2024-11-19
  • 위태로운 제안   제1207화

    “응...” 부승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선월이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이 일을 추서윤에게 알려줬어.”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온하랑도 대충 짐작이 되었다. 추서윤은 분명히 이 일로 부승민을 협박해서 거래를 했을 것이고, 아마 그 조건으로 추서윤을 풀어줬을 가능성이 크다. 온하랑은 아직도 부승민, 부시아와 함께 온천 리조트에서 나온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들은 리조트에서 나온 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그러던 중 화장실을 가게 되었는데 마침 복도에서 추서윤을 마주쳤다. 추서윤의 조롱과 도발에 못 이겨 룸으로 돌아오자마자 부승민과 대판 싸웠다. 부시아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결코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었다. 당시 온하랑은 화가 나서 눈시울을 붉혔고 날카로우면서도 상처되는 말들로 부승민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렀다. 하지만 부승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일을 혼자 떠안은 채 입을 꾹 닫고 끝까지 진실을 숨겼다. 이제야 부승민의 고충을 알게 된 온하랑은 마음이 심란하고 착잡했다. 부승민이 이 일을 숨기고 비밀리에 조사했던 건 전부 온하랑을 위한 마음이었다. 감당하기 버거운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온하랑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 감히 상상도 못 했으니까. 다만 유일한 실수가 있다면 부선월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부선월은 온하랑에게 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악인을 자처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날 위한 마음은 너무 고마워.” 온하랑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그의 얼굴 라인을 타고 내려가 턱을 잡았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혼자 모든 걸 감당하지 말고 나한테 꼭 얘기해 줘.” “응.” “지금은 나한테 숨기는 게 있어?” “없어.” 부승민의 그녀의 손가락을 잡고선 단호하게 대답했다. “정말?” 온하랑이 질문에 부승민은 말없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진짜 없어.” “저번에 프로젝트 때문에 필라시로 출장 간다고 했잖아. 비행기 안 탔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일이야?”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부승민은 이를 악물었다. “부선월

    최신 업데이트 : 2024-11-20
  • 위태로운 제안   제1208화

    낭천에 갔을 때 부승민은 부시아를 데려갔고 그때 최동철을 한번 만난 적이 있다. 대화를 주고받은 건 아니었지만 부시아는 부승민과 매우 닮아 있는 최동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부시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요. 아저씨가 찍은 사진들을 숙모가 보여줬거든요. 너무 예뻤어요.” “시아가 칭찬해 주니까 기분이 너무 좋네? 아저씨의 꼬마 모델이 되어볼 생각은 없어?” 그 말에 온하랑은 화면 속의 최동철을 힐끗 쳐다봤다. ‘시아는 예의상 한 말인데... 정말 초대하고 싶은 건가?’ “정말요? 그래도 돼요?” 부시아는 신이 난 듯 방방 뛰었다. “당연하지. 시아는 내가 봤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예쁘고 밝은 아이야.” 칭찬받아 기분이 좋아진 부시아는 고개를 들어 온하랑을 바라봤다. “숙모, 저 하고 싶어요. 그래도 돼요?” 온하랑은 웃으며 답했다. “아저씨는 지금 경주에 있어. 여기서 꽤 먼 곳인데 숙모는 시간이 없네? 아빠한테 한번 물어봐. 시아가 가고 싶다고 하면 허락해 주실지도 몰라.” 온하랑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아 부승민의 핑계를 대며 넘겼다. 다만 부승민이 이걸 동의할리가 없다는 건 백 프로 확신했다. 부승민과 최동철 사이의 원한을 알지 못했던 부시아는 해맑게 물었다. “그럼 아빠한테 여쭤볼게요.” “그래. 아저씨는 시아 연락 기다리고 있을게.” 온하랑은 경고하듯 최동철을 흘겨보면서 이제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걸 의식한 최동철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비행기가 도착했나 봐. 이제 슬슬 게이트로 가야겠다.” 그러더니 카메라를 후면으로 돌려 가슴 쪽에 고정했다. 화면은 순식간에 큼지막하고 널찍한 공항 로비로 바뀌며 점점 게이트에 가까워졌다. 옆에서는 사람들이 이따금씩 지나갔고 픽업 게이트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서 통화를 하거나 팻말을 들고 있었다. 게이트 문이 열리며 승객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온하랑은 인파 속에 묻힌 메이슨을 찾기 위해 화면을 확대했다. 혼자 비행기를

    최신 업데이트 : 2024-11-20

최신 챕터

  • 위태로운 제안   제1272화

    수화기 너머로 임가희는 잠시 멍해 있다가 임연지가 충동적으로 행동했을까 봐 걱정하며 바로 물었다.“오늘 센트럴 백화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아? 모르셨어요?”간하림은 간단하게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따귀를 맞은 일로 설윤은 굉장히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금 사모님께 복수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까요.”그 말을 듣자 임가희는 안심했다.뺨 한 대 맞고 참지 못해 도망가는, 겨우 스무 살짜리 감정적인 계집애 따위는 신경 쓸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심하게 말했다.“이틀 후에 너희 가게로 갈 거야. 그때까지 설윤을 잘 부추겨서 나한테 덤비게 만들어.”간하림은 곧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챘다.“알겠습니다. 사모님,”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드는 장면은 반드시 녹화되어 최국환에게 전달될 것이다.하지만 어떻게 하면 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들도록 만들 수 있을까?리우 그룹.최국환은 회의를 마치고 몇몇 오랜 친구들과 식사를 하러 갔다.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비서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찾았다.“오전에 사모님과 설윤 씨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설윤 씨는 가방을 사지 않겠다고 하시며 환불해 달라고 하셨습니다.”“갑자기 왜?”“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화에서 설윤 씨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울먹이는 것 같았습니다.”최국환은 한창 젊은 애인에게 푹 빠져 있던 터라 설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거의 끊어지려는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다. 설윤의 목소리는 살짝 쉰 듯했다.“국환 씨.”“김 비서 말로는 가방 환불해 달라고 했다던데.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더니 왜 갑자기?”설윤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싫어졌어요. 이유는 없어요.”“이유가 없어? 그럼 목소리는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누군지 말만 해. 감히 내 여자를 괴롭히다니!”“묻지 마세요. 저 때문에 국환 씨와 사모님 사이가 나빠지는 건 싫어요.”“오? 내 마누라와 관련된 일이야?”“말했잖아요, 묻지 마시라고요. 더 물으면 저 진짜 삐질 거예요.”“아이고, 또 어린애

  • 위태로운 제안   제1271화

    “정말... 어이가 없어...”설윤은 시선을 피하며 돌아서려 했다.“어딜 가요? 방금 구매 기록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이제 와서 못 보여주는 건데요?”임연지는 설윤의 길을 막아서며 그녀 손에 든 선물 상자를 잡고 비꼬듯 말했다.“젊은 아가씨가 왜 이렇게 뻔뻔해요? 유부남인 거 뻔히 알면서 끼어들다니. 내 고모부가 그쪽 아빠보다 나이도 많은데, 역겹지도 않아요? 몸 팔아서 얻은 가방을 들고 다니니까 좋아요?” 마침 가게에 들어오던 손님 몇 명이 임연지의 말을 듣고 문 앞에서 수군거렸다.설윤은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임연지를 밀치고 가게를 나서 황급히 도망쳤다.간하림은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뒤따라갔다.“저기요. 설윤 씨, 가방은...”점원은 임연지의 손에 들린 선물 상자를 보고 두 번 불렀다.그러나 설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그만 불러요. 안 올 거예요.”임연지는 웃으며 손에 든 선물 상자를 내려다봤다.“저 여자가 싫다고 두고 갔으니 이 가방 저 주세요.”“임연지 씨, 죄송하지만 설윤 씨는 그런 말씀이 없으셔서...”“걱정 마세요, 분명히 환불할 거예요. 환불하면 이 가방 저한테 남겨 두세요.”임연지는 선물 상자를 점원에게 건넸다.점원은 임연지의 배경을 생각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설윤 씨가 환불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네.”가방을 못 사서 한진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는데 상황이 반전되고 내연녀까지 혼내주고 나니 임연지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윤아, 괜찮아?”마침내 매장 근처를 벗어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자 설윤은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간하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넋이 나간 채 앞으로 걸어갔다.“윤아, 어디 가서 좀 앉을까?”설윤은 마침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근처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간하림이 그녀를 위로했다.“윤아, 너무 속상해하지

  • 위태로운 제안   제1270화

    한진은 큰 도움을 주고도 단지 가방 하나 사달라는 부탁만 했을 뿐인데 실망을 안겨주게 생겼으니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심지어 가방을 선물해주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는데 무슨 생각 할지 걱정되었다. 설마 공짜로 주기 싫어서 쪼잔하다고 오해하면 어떡하지?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임연지가 물었다.“다음번에 언제 입고되나요?”점원은 임연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회원 가입하시면 나중에 재고를 확보할 때 연락드리고 있어요.”“그래요. 할게요.”임연지는 마지못해 동의했다.“연락처가 어떻게 돼요?”점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물었다.임연지는 전화번호를 말하며 머릿속으로 한진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설윤 씨, 어서 오세요. 가방 찾으러 오셨죠? 잠깐 앉아 계시면 금방 가져다드릴게요.”다른 점원의 반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네, 고마워요.”소리의 출처를 따라 고개를 돌린 임연지는 젊은 여자 두 명을 발견하고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윤아, 여기 점원이랑 아는 사이야? 물건을 엄청 많이 샀나 보네? 부러워.”나지막이 속삭이는 여자 목소리가 임연지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이내 경멸이 담긴 표정으로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세상 물정 모르는 촌년들. 잠깐! 왼쪽에 있는 여자가 낯이 좀 익은데?’그리고 고개를 돌려 찬찬히 뜯어보았다.분명 어딘가 본 듯한 얼굴이다.기억을 되짚어보던 찰나 점원이 정교한 선물 상자를 들고나와 두 여자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뚜껑을 열고 안에 든 가방을 보여주었다.“설윤 씨가 구매한 가방이에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설윤은 가방을 꺼내 꼼꼼히 살펴보았다.“확인했어요. 고마워요. 먼저 가볼게요.”점원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 불쾌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대뜸 울려 퍼졌다.“재고가 없다면서요? 분명 제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한테 주는 거죠?”싸늘한 표정으로 따지는 임연지를 보자 점원이 서둘러 해명했다.“이 가방은 손님께서

  • 위태로운 제안   제1269화

    일과를 마친 설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돌아갔다가 간하림과 다시 마주쳤다.이내 먼저 입을 열었다.“하림아, 내일 쉬는 날인데 같이 쇼핑하러 가지 않을래?”임가희가 부탁한 일을 떠올리자 간하림은 흔쾌히 동의했다.다음 날, 두 사람은 약속 시간에 맞춰 센트럴 백화점 근처의 카페에 도착했다.일단 만나자마자 설윤은 밀크티 두 잔을 주문했고, 백화점으로 걸어가면서 쪽쪽 빨아 마셨다.간하림이 말했다.“여긴 명품밖에 없을 텐데? 지난번에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발견했다가 가격 보고 기겁했잖아. 그나저나 꽤 익숙한 곳인가 봐? 여기 자주 와?”“내가 무슨 재주로? 국환 씨 따라 몇 번 다녀갔을 뿐, 며칠 전에 가방 하나 주문했는데 오늘 픽업하러 가는 거야.”“헐! 회장님 너무 근사하잖아.”설윤을 바라보는 간하림의 눈빛에 부러움이 가득했다.“그러니까 얼른 행동 개시해야 한다고. 사모님과 이혼시키고 너랑 결혼할 방법을 찾아야 해.”비록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목적을 이루기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정이었다.사실 그녀는 속으로 뻔했다. 최국환과 임가희는 결혼 전에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설윤에게 준 돈은 부부의 공동 재산에 속하지 않는지라 다시 빼앗아 갈 자격이 없었다. 물론 최국환이 직접 개입하면 회수가 가능했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설령 나중에 임가희가 설윤에게 본때를 보여주거나 최국환의 마음이 식는다고 해도 그동안 받았던 값비싼 선물은 여전히 가져갈 것이며 현금화하면 그래도 두둑이 챙길 수 있다.결국 임가희가 손을 쓰는 이상 설윤은 곧 최국환에게 찬밥 신세 당하므로 얼추 비슷한 액수의 보수를 받을뿐더러 임가희라는 인맥까지 확보하기에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그제야 간하림은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설윤의 표정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어젯밤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네 말이 맞아. 국환 씨 아내와 적이 된 이상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봐주는 건 아니지. 고작 돈 몇 푼

  • 위태로운 제안   제1268화

    “자, 이제 그만하고 출근하자. 아니면 매니저한테 또 혼날라.”설윤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탈의실을 나가려고 했다.“먼저 가. 나 립스틱만 바르고.”“알았어.”설윤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간하림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사모님이 부탁한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니군.’...병원에 도착한 최동철은 올라가는 대신 온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온하랑은 부승민과 작별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유치원 확인하러 직접 다녀온다고 하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차에 타고 나서 메이슨을 데리러 갈 줄 알았던 그녀의 예상과 달리 최동철이 말했다.“별장에 계신 이모님이 연락이 와서 오늘 메이슨이 일어나자마자 발이 아프다고 했다네. 아마도 어제 강행군이었나 봐. 그래서 집에서 쉬겠다고 해서 우리 둘만 가면 돼.”온하랑은 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어제 많이 걸어 다니긴 했죠. 메이슨을 말렸어야 했는데...”“네 탓 아니야. 내가 너무 바빠서 녀석이랑 놀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무리한 거지.”이에 온하랑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동철 오빠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메이슨도 철이 들었고.”최동철이 피식 웃었다.“우리 사이에 남사스럽게 뭔.”이동하는 동안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면서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했다.동언 국제 유치원에 도착하자 젊은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소개와 함께 내부를 구경시켜주었다.“우리 유치원은 총 3개의 반으로 나뉘는데 최대 학생 수를 각각 20명 이내로 확보하여 교사들이 모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게끔 노력하죠. 교실에는 멀티미디어 교육 장비가 구비되어 있으며 전용 독서 공간, 놀이 공간, 수공예 공간, 실내외 감시 카메라, 그리고...”꼼꼼하게 알아본 결과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온하랑은 꽤 만족했다.이내 유치원을 나서고 최동철에게 의견을 물었다.최동철이 말했다.“몇 군데가 노후한 것만 빼고 기본적인 인프라는 괜찮네. 시설 개조 명목으로 2억을 기부할 생각이야. 게다가 메이슨도 특별한 케이스라

  • 위태로운 제안   제1267화

    설윤은 그녀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봤어? 다른 사람한테 절대 얘기하면 안 돼.”“당연하지.”간하림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나 몰라? 걱정 붙들어 매.”그리고 다정하게 설윤의 팔짱을 끼고 클럽 탈의실로 향했다.아직 아무도 없었고, 간하림은 옷을 갈아입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윤아, 최 회장님과 어떻게 알게 되었어?”딱히 언급하고 싶지 않은 설윤은 대충 둘러댔다.“우연한 기회에 마주쳤어. 전에 일하던 곳에 놀러 왔다가 마침 내가 접대를 담당했거든.”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간하림은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손을 뻗어 설윤의 잘록한 허리를 꼬집었고, 뽀얀 피부에 선명한 붉은 자국을 바라보았다.“최 회장님이 네가 진짜 마음에 드나 봐. 직접 출근하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정말 좋겠네.”설윤은 피식 웃으며 옷을 갈아입었다.“너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잖아.”“든든하긴 개뿔! 하늘과 땅 차이거든?”간하림이 툴툴거렸다.“가게에 오면 지명할 뿐이지 너처럼 최 회장님 전속 담당이 아니야.”심지어 손님마저 감히 설윤에게 집적거리지 못했고, 누가 봐도 사전에 단단히 경고한 게 분명했다. 반면, 그녀는 치근덕거리는 사람이 있어도 꾹 참아야만 했다.설윤은 웃으면서 아무 말 없이 거울을 보며 헤어스타일을 다듬었다.“윤아, 나중에 사모님이 되면 날 잊지 마.”“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녕 몰라?”이내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더니 간하림을 흘겨보았다.“국환 씨가 싫증이 나기 전에 돈이라도 두둑이 챙기면 땡큐고, 사모님은 감히 넘보지도 않아.”간하림은 납득할 수 없는 듯 바짝 다가갔다.“우리가 뭐 어때서? 최 회장님 와이프도 결국에는 사모님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잖아. 그리고 며칠 전 기사 못 봤어?”“무슨 기사?”곧이어 출입구를 힐끗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누군가 최 회장님 와이프의 얼굴을 칼로 난도질해서 끔찍한 상처를 입었대.”“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 위태로운 제안   제1266화

    임연지는 집에 도착하자 거실 소파에 앉아 굳은 얼굴로 손에 든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는 임가희를 발견했다.테이블에 놓인 등기 전용 서류 봉투 위에 여러 장의 사진이 널브러져 있었다.“고모, 왜 그래요?”말을 마치고 나서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고모부가...”이내 나머지 사진도 확인했는데 전부 어떤 젊은 여자와 다정한 스킨십을 하는 최국환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결코 가벼운 사이는 아닌 듯싶었다.“왜 이렇게 소란스러워?”임가희가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흘겨보았다.임연지는 목을 움츠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임가희를 올려다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고모, 이제 어떡해요?”“어떡하긴?”임가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모른 척해야지. 지금 네 고모부 덕분에 우리가 먹고 사는 거야. 괜히 추궁했다가 홧김에 쫓아내기라도 한다면 더 손해이지 않겠어?”그렇다고 마냥 당할 수는 없었다.지금껏 비슷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지만 하나같이 머리가 텅 빈 여자들이라 그녀의 도발에 넘어가서 부랴부랴 찾아와 따지기 급급했다. 나중에 울면서 최국환에게 하소연하면 정이 떨어진다며 다시는 만나주지 않았다.또한 최국환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신분과 집안, 그리고 사회적 지위 때문이었다.어쨌거나 그 나이 먹고 결혼을 3번이나 하면서 웃음거리로 전락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본처의 자리를 위협받지 않은 이상 고작 여자 문제로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뭐 있겠는가? 뒤에서 몰래 처리하면 그만이었다.“그냥 넘어가려고요?”비록 고모의 말도 맞지만 그래도 왠지 꺼림칙했다.“넌 신경 쓰지 마. 고모부 앞에서도 티 내지 말고.”임연지는 사진 속 여자를 힐끗 쳐다보며 속으로 ‘여우 년’이라고 욕하고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요.”임가희는 사진을 모두 치웠다.무언가를 떠올린 듯 임연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참, 고모, 만약 이 여자가 임신하면 어떡해요?”“네 고모부의 컨

  • 위태로운 제안   제1265화

    “침착해.”임연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호텔에서 제공한 가운을 느긋하게 껴입었다.“샤워했어? 나랑 같이 씻을래?”“꿈 깨.”이내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으면서 문을 열자 알몸으로 나타나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는 오재원을 발견했다.“연지야.”그녀는 남자의 손길을 슬쩍 피했다.“호텔에서 푹 쉬어. 먼저 가볼게.”“아직 이른데? 좀 더 있다 가.”“안돼.”임연지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오재원을 스쳐 지나가 침대 옆으로 걸어가서 바닥에 떨어진 옷을 집어 들었다.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쌀쌀맞은 얼굴을 보자 오재원은 꼬리를 내렸다.“알았어. 그럼 언제 다시 올 거야? 그리고 원하는 집이 있으면 알려줘. 부동산에 물어볼게.”“방 3개, 풀옵션. 나머지는 알아서 해.”“그래.”임연지는 옷매무새와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방을 나갔다.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뒤돌아보며 혀를 찼다.‘역겨운 놈.’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싣고 한진에게 답장을 보냈다.[호텔을 벗어나니 공기마저 상쾌한 기분이야.]한진이 대답했다.[하하하! 참,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우리 오빠가 인맥을 동원해서 각 언론사에 수시로 주시하라고 했잖아. 그중에서 제보받은 회사가 있는데 편집장이 이메일을 보자마자 오빠한테 연락했대.]그러고 나서 이메일의 스크린샷을 보내주었다.본문의 첫 마디가 온하랑이 필라시에서 유학할 때 최동철과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다.임연지는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대박인데? 고마워, 한진아. 오빠한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줘. 네가 아니었다면 진짜 아프리카로 쫓겨났을지도 몰라.]그동안 한진의 오빠가 사전에 뉴스를 차단하지 못하고 자칫 폭로라도 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이제 결과를 확인한 이상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하지만 대체 누가 제보했단 말이지?한진이 다시 문자를 보냈다.[물론 메일 주소를 역추적한 결과 여전히 너희 집으로 되어 있어. 아마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가상 주소를 사용한 것 같아.][미친놈.]임연지는 화가 나서 머리카락을

  • 위태로운 제안   제1264화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임연지는 그 틈을 타서 오재원의 손을 뿌리치고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다.오재원은 그녀를 따라 나가려고 했지만 잠시 뒤 자신이 들고 있던 캐리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끌며 엘리베이터를 나왔다.방에 들어가자 오재원은 서둘러 캐리어를 한쪽으로 밀어두고 임연지를 끌어안고는 침대 쪽으로 밀어붙였다. “연지야, 빨리 나 주라고. 더는 참을 수 없어.”“오재원! 이거 놔! 먼저 일어나!”“안 돼. 연지야,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냥 즐기기만 하면 돼.” 그녀는 그를 힘껏 밀쳤고 마음속에서 강한 반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억제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오재원의 힘이 너무 강해 벗어나기 힘들었다. “오재원, 내 말 들어봐. 우리 얘기 좀 해야 해.” 임연지는 차분하게 말하며 그가 자신의 말을 듣길 바랐다.하지만 오재원은 이미 욕망에 눈이 멀어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임연지에게 입을 맞추려 했고 손은 그녀의 몸을 함부로 만지기 시작했다.“얘기할 필요 없어. 네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걸 알아. 우리는 지금 중요한 일을 하는 거야.” 그는 말을 마친 후 임연지의 입술을 막았다. “연지야, 잘 생각해. 네가 만약 나를 밀어내면 난 바로 나갈 거야.” 임연지는 속에서 역겨움이 밀려왔지만 그녀의 밀치는 손길은 결국 멈춰 섰다.“그래 이거지.”오재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는 충분히 즐겼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오재원은 임연지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너 너무 향기로워. 연지야. 어쩌면 이제 우리 아이가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네.”임연지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더 이상 그를 피하지 않으면 정말로 오재원에게 뺨을 갈길 것만 같았다.화장실에 들어간 임연지는 핸드폰을 꺼내 한진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진아, 살려줘. 진짜 그 사람이 너무 싫어!][돌아오자마자 나랑 자려고 하고 역겨워 죽겠어!][내가 기다리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