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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7화

Author: 고운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1-20 19:00:17
“응...”

부승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선월이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이 일을 추서윤에게 알려줬어.”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온하랑도 대충 짐작이 되었다. 추서윤은 분명히 이 일로 부승민을 협박해서 거래를 했을 것이고, 아마 그 조건으로 추서윤을 풀어줬을 가능성이 크다.

온하랑은 아직도 부승민, 부시아와 함께 온천 리조트에서 나온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들은 리조트에서 나온 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그러던 중 화장실을 가게 되었는데 마침 복도에서 추서윤을 마주쳤다. 추서윤의 조롱과 도발에 못 이겨 룸으로 돌아오자마자 부승민과 대판 싸웠다.

부시아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결코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었다.

당시 온하랑은 화가 나서 눈시울을 붉혔고 날카로우면서도 상처되는 말들로 부승민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렀다.

하지만 부승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일을 혼자 떠안은 채 입을 꾹 닫고 끝까지 진실을 숨겼다.

이제야 부승민의 고충을 알게 된 온하랑은 마음이 심란하고 착잡했다.

부승민이 이 일을 숨기고 비밀리에 조사했던 건 전부 온하랑을 위한 마음이었다. 감당하기 버거운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온하랑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 감히 상상도 못 했으니까.

다만 유일한 실수가 있다면 부선월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부선월은 온하랑에게 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악인을 자처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날 위한 마음은 너무 고마워.”

온하랑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그의 얼굴 라인을 타고 내려가 턱을 잡았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혼자 모든 걸 감당하지 말고 나한테 꼭 얘기해 줘.”

“응.”

“지금은 나한테 숨기는 게 있어?”

“없어.”

부승민의 그녀의 손가락을 잡고선 단호하게 대답했다.

“정말?”

온하랑이 질문에 부승민은 말없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진짜 없어.”

“저번에 프로젝트 때문에 필라시로 출장 간다고 했잖아. 비행기 안 탔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일이야?”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부승민은 이를 악물었다.

“부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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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부승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선월이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이 일을 추서윤에게 알려줬어.”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온하랑도 대충 짐작이 되었다. 추서윤은 분명히 이 일로 부승민을 협박해서 거래를 했을 것이고, 아마 그 조건으로 추서윤을 풀어줬을 가능성이 크다. 온하랑은 아직도 부승민, 부시아와 함께 온천 리조트에서 나온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들은 리조트에서 나온 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그러던 중 화장실을 가게 되었는데 마침 복도에서 추서윤을 마주쳤다. 추서윤의 조롱과 도발에 못 이겨 룸으로 돌아오자마자 부승민과 대판 싸웠다. 부시아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결코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었다. 당시 온하랑은 화가 나서 눈시울을 붉혔고 날카로우면서도 상처되는 말들로 부승민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렀다. 하지만 부승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일을 혼자 떠안은 채 입을 꾹 닫고 끝까지 진실을 숨겼다. 이제야 부승민의 고충을 알게 된 온하랑은 마음이 심란하고 착잡했다. 부승민이 이 일을 숨기고 비밀리에 조사했던 건 전부 온하랑을 위한 마음이었다. 감당하기 버거운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온하랑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 감히 상상도 못 했으니까. 다만 유일한 실수가 있다면 부선월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부선월은 온하랑에게 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악인을 자처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날 위한 마음은 너무 고마워.” 온하랑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그의 얼굴 라인을 타고 내려가 턱을 잡았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혼자 모든 걸 감당하지 말고 나한테 꼭 얘기해 줘.” “응.” “지금은 나한테 숨기는 게 있어?” “없어.” 부승민의 그녀의 손가락을 잡고선 단호하게 대답했다. “정말?” 온하랑이 질문에 부승민은 말없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진짜 없어.” “저번에 프로젝트 때문에 필라시로 출장 간다고 했잖아. 비행기 안 탔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일이야?”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부승민은 이를 악물었다. “부선월

  • 위태로운 제안   제1206화

    최동철은 그 말에 답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 내일 아이가 도착하면 다시 연락할게.” “알겠어요.” “하랑아, 아직 아이 이름까지는 모르지? 메이슨이래.” “메이슨? 좋은 이름은 아니네요.” “응. 나중에 경계심이 조금 풀리면 이름부터 바꿔야지. 일단은 메이슨이라고 부르자.” “알겠어요.” “하랑아, 잘 자.” 온하랑이 답을 하기 도전에 부승민은 싸늘한 얼굴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온하랑은 부승민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선 웃으며 물었다. “화가 나? 마음이 아파?” “넌 웃음이 나오냐?” 온하랑은 손을 뻗어 그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이렇게 하면 이제 안 아플 거야.” 깃털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손이 몸에 닿자 마치 고양이가 꾹꾹이를 하는 듯 간질거렸다. 온하랑의 얼굴은 유난히 차분하고 청순해 보였는데 살짝 찌푸린 인상마저 매혹적이었다. 부승민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것만으로는 안돼.” 온하랑은 재빨리 손을 빼내며 시선을 돌렸다. “그럼 안 할게.” 그러자 부승민은 더욱 세게 잡아당겼다. “이것만으로는 안된다고. 다른 위로도 필요해.” “뭐?” 온하랑을 마주 보던 그의 시선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부승민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린 온하랑은 괘씸함에 그의 허리를 꼬집었다. 그러자 부승민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5분만.” 뜨거운 숨결이 닿자 온하랑은 온몸이 간질거렸다. “3분.” “그럼 10분.” “내가 졌다. 5분이야.” “콜.” “잠깐만.” 온하랑은 핸드폰을 꺼내 타이머를 설정했다. “이제 됐어.” 그녀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소파에 기댄 채 두 손을 부승민의 어깨에 올렸다. “그냥 먹기만 해. 혀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응.” 온하랑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분... 2분... 3분...” “이제 마지막이야. 5, 4, 3, 2, 1... 됐어, 이제 일어나.” 부승민은 마지못해 고개를

  • 위태로운 제안   제1205화

    분노의 불길이 강렬하게 타오를수록 부승민은 가슴이 찢어질 듯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그때의 온하랑이 최동철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다면 고통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로 인해 생긴 우발적인 사고였다. 온하랑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부승민을 바라보고선 부드럽게 그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온하랑은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최동철이 ‘너’가 아닌 ‘하랑’이라고 얘기하니 마치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방관하는듯한 느낌이었다. 대학교 3학년때의 온하랑을 대입하지 않아서인지 화가 나기보다는 그저 이런 해프닝이 일어났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때의 온하랑이 결정을 내렸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부승민이 당사자가 된 듯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그는 온하랑의 어깨를 끌어안고 그녀의 목덜미에 머리를 파묻은 채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부승민의 질책에도 최동철은 여전히 차분했다. “그때는 나도 술을 마셨어.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참을 수가 있겠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건 나도 충분히 알아. 다음날 하랑이는 우리의 관계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그었어. 내가 소개해준 방도 빼고 한순간에 사라진 거지. 모든 게 내 업보라고 생각했어.” “임신한 얘기는 나한테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어. 나도 며칠 전에 알았거든. 하랑이가 내 아이를 낳았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누군가 사진을 보내왔어.” “누군데?” “몰라. 낯선 번호여서 다시 걸었는데 없는 번호라고 뜨더라고.” 최동철은 멈칫하다가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어.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람을 보내 조사했는데 사실이었던 거야. 하랑아, 왜 나한테 임신했다고 얘기하지 않았어?” “저도 몰라요.” 온하랑도 본인이 왜 아이를 낳았는지 몰랐다. 최동철의 말에 따르면 짝사랑 상대에게 상처를 받아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한다. ‘부승민이랑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나 보네.

  • 위태로운 제안   제1204화

    가식적이다. 온하랑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잘 지내고 있어요. 아참, 얘기 못한 게 있는데 얼마 전 아이를 낳았어요. 예쁜 딸이에요.” “정말? 축하해. 출산 예정일이 두 달 정도 남았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빨리 낳았네. 조카는 건강하지?” ‘조카?’ 듣도 보도 못한 호칭에 부승민은 어이가 없었다. ‘조카 같은 소리 하네.’ “조산이다 보니 다른 신생아에 비해서 많이 약해요. 두어 달은 인큐베이터에서 지내야 하거든요.” “아이는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게 자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 돌잔치 때 꼭 연락해 줘. 시간 내서 우리 조카 보러 가야지.” 부승민은 점점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 딸 보러 온다고? X랄하네.’ “알겠어요. 때가 되면 연락드릴게요.” “그래. 연락 기다릴게.” 겉치레 인사를 주고받은 후 온하랑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필라시에서 아이를 데려갔다면서요?” 최동철은 당황한 듯 흠칫하더니 무기력함과 허탈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알고 있었어?” “네.” “누구의 아이인지는 알아?” 온하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제가 알기론... 제 아이입니다.” “우리의 아이지.” 부승민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온하랑은 부승민을 힐끗 보고선 재빨리 그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진정시켰다. “동철 씨,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줘요.” “정말 알고 싶어?” “네.” 최동철은 몇 초간 침묵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부 대표도 옆에 있지?” 부승민은 온하랑의 손을 잡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냥 말해.” “솔직하게 말할게.” 최동철은 옛 추억을 회상하는 듯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하랑이가 필라시에 왔을 때 마침 내가 휴가였어. 그래서 시간도 많았고 마침 도움이 필요한 것 같길래 한몫 거들었지.” “중점만 얘기해.” 부승민은 그의 말을 잘랐다. 그러나 최동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 위태로운 제안   제1203화

    부승민은 문을 닫고 천천히 걸어가 온하랑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하랑아, 내가 그 아이를 찾으려고 필라시에 사람을 보냈거든? 찾은 것 같아.” 온하랑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정말?” “응.” “아이 데려오라고 하면 안 돼?” 부승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려고 했는데 한발 늦었어. 다른 사람이 먼저 데려갔대.” “누구?” 온하랑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최동철...” 충격받은 온하랑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양부모의 말에 따르면 최동철이 그 아이의 아빠래.” 곧이어 부승민은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바라봤다. 그의 눈을 마주한 온하랑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미간을 찌푸렸다. “난 정말... 아무 기억도 안 나. 벨라한테 물어봤는데 그 사람일 가능성이 제일 크대.” “가능성?” “응... 필라시에서 연애를 해본 적은 없지만 동철 씨랑 가깝게 지냈다고 벨라가 얘기해 줬어.” “동철 씨?” “최동철.” 부승민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뜨렸다. “기분 나빠?” 온하랑은 부승민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승민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고 소파 팔걸이에 놓은 손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아니... 그냥 그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해서...” 처음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최동철이 떠오르긴 했지만 부정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서 그런지 결코 믿지 않았다. “아니라고?” 온하랑은 그의 손을 잡고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장난을 쳤다. “뭔가 질투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 부승민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들고 진지하게 말을 돌렸다. “아이가 몇 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다는 건 최동철도 이 일에 대해 몰랐다는 얘기인데... 갑자기 어떻게 알게 된 거지?” “그러니까. 그 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나도 궁금해. 뭐 좀 알아낸 거 없어?” “연 비서가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네가 필라시에 처음 갔을 때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대. 그래서 직접 요리할 생각으로 방을 알아봤는데, 그 와중에 우연히 최동철

  • 위태로운 제안   제1202화

    왜 하필 최동철일까?비록 온하랑과 만나고 있고 둘 사람 사이에는 딸까지 생겼지만 부승민은 여전히 질투가 났다.그는 다른 사람과 나눈 게 아닌 온하랑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었다.하지만 부승민을 알고 있다.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는 것을.그 아이의 존재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어떤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부승민은 후회가 밀려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아이를 찾아내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만드는 건데...부승민은 현명한 선택을 내리지 못한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온하랑은 부씨 가문에 온 이후로 줄곧 부승민만을 바라봤다. 유학할 때도 변함없이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그런 사람이 필라시에서 최동철과 가까워진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중 하나를 차지하는 게 부승민과 닮은 최동철의 외모일지도 모른다.짝사랑하는 사람과 꼭 닮은 얼굴이라면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동철이 수작을 부렸다면...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에 부승민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이는 오랫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고 최동철은 이제서야 아이를 데려갔다. 그 말인즉 최동철은 온하랑의 임신 사실을 몰랐다는 뜻이기도 하다.만약 온하랑이 정말로 최동철과 만났던 사이라면 어떻게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조차 모를 수가 있냐는 말이다.남녀 사이에 아이가 생긴 순간 두 사람은 평생 엮여야 하는 운명이다. 게다가 양측 모두 아이를 향한 책임감이 있다면 감정이 다시 생기는 건 시간문제다.현재 상황에서는 최동철이 아이를 데려간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아이가 눈앞에 없으면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온하랑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하지만 온하랑이 그걸 원할까?과연 순순히 아이의 양육권을 최동철에게 넘길까?부승민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설친 부승민은 얼떨결에 악몽을 꾼듯한데 깨어나 보니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다음날, 부승민은 아침 일찍 회사로 향했다.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

  • 위태로운 제안   제1201화

    부승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아이랑 얘기는 해봤어? 성격은 어때?” “얘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경계심이 너무 심해서 아예 입을 열지 않습니다.” “양부모랑 협의해서 아이 데리고 와.” 온하랑과 약속한 게 있으니 절대 어길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핸드폰은 내려놓은 부승민은 착잡함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한참을 고민한 뒤 차에 시동을 걸었다. 19층, 부시아는 거실에서 그림 숙제를 하고 있었다. 부승민이 안으로 들어오자 부시아는 활짝 웃으며 달려갔다. “아빠, 갑자기 왜 왔어요?” “내일 출근해야 돼서 일찍 들어왔어.” “토요일에도 출근을 하다니, 너무 불쌍하네요. 그럼 시아가 내일 병원에 가서 숙모랑 놀게요.” “그래.” “아빠, 어때요? 그림 엄청 잘 그렸죠?” 부시아는 펜을 내려놓고 칭찬해 달라는 표정으로 부승민에게 도화지를 내밀었다. 부승민은 그 모습이 귀여운지 웃으며 부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박을 그린 거야? 시아 엄청 대단하네.” “아빠... 이건 사과예요.” 부시아는 서운한 듯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렇게 못생겼어요?” “아니야... 아빠가 피곤해서 잘 안 보였어.” 부승민은 목을 가다듬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시아야, 며칠 후에 남동생 한 명이 올 거야.” “여동생 아니에요?” “병원에는 있는 동생 말고, 시아랑 비슷한 나잇대의 남자아이가 올 거야.” 시아는 5월생이다. 온하랑의 기억에 따르면 그 아이는 6월 말에 태어났으니 부시아 보다 한 달 정도 어린 셈이다. 고작 한 달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사진 속의 모습을 봤을 땐 심각한 영양실조로 말라있어 적어도 한두 살은 어려 보였다. 부시아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누군데요?” “숙모의 아이인데 예전에 좀 힘들게 지내서 데려오기로 했어. 남동생이랑 잘 지낼 수 있지?” ‘숙모의 아이라면 아빠의 아이가 아니라는 뜻인가?’ ‘그럼 나랑 똑같네? 난

  • 위태로운 제안   제1200화

    병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유정화는 온하랑과 부승민을 번갈아보며 눈치를 살폈다. 한 명은 핸드폰, 다른 한 명은 노트북.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듯 그 어떤 대화도 주고받지 않았다. 유정화가 병실에 들어온 이후로 부승민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두 분... 싸웠나?’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지만 나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침묵을 택했다. 따지고 보면 온하랑의 산후조리를 돌봐주기 위해 이곳에 왔고, 산후조리가 끝나는 동시에 계약도 종료이니 굳이 이런 일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 유정화는 알지 못했다. 부승민의 노트북 화면은 온하랑과의 채팅창에 멈춰있다는 것을. [읽씹? 왜 갑자기 답장 안 해.] 답장할 생각이 없었던 온하랑은 실수로 메시지를 눌렀고 ‘1’이 사라지니 답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딱히 할 말이 없는데?] [맛볼 기회가 또 있을까?] [나중에 모유 짜내면 먹던가...] [그럼 그 맛이 안 날 텐데?] 콜록. 온하랑의 기침소리가 병실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부승민을 바라봤다. “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들어가서 쉬어.” “응?” 부승민은 고개를 들고선 희미롭다는 듯이 온하랑을 바라봤다. “이제 몸도 많이 좋아졌고 아주머니가 항상 곁에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회사도 며칠이나 비웠잖아. 푹 쉬고 출근해서 일 봐야지.” ‘지금 날 쫓아내는 건가?’ “하랑아, 내일 토요일이야. 난 며칠 더 같이 있고 싶은데? 일은 여기서 해도 돼.” “평소 토요일에도 출근했잖아? 얼른 일해서 우리 아이 분유값 벌어야지. 그리고 겸사겸사 인테리어 공사가 잘되는지도 확인해 줘.” 이때 유정화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여긴 저한테 맡기시고 들어가세요.” 사실 유정화는 부승민이 병실에 있는 게 많이 불편했다. “알겠어요.” 부승민은 마지못해 한발 물러섰다. “퇴근하고 보러 올게.” “응.” 부승민은 대충 물건을 챙긴 뒤 노트북 가방을 들고 일어나며 아쉬운 눈빛을 보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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