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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4화

작가: 고운
하지만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가 파견한 사람은 여전히 부선월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심지어 서정훈 쪽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꽁꽁 숨은 부선월 때문에 부승민은 점점 불안해졌다. 그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온하랑의 곁을 지키고 싶었다.

입원했을 땐 부승민은 병원 주변에 수많은 사람을 배치시켜 부선월이 모습을 드러내기만 한다면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온하랑이 순조롭게 퇴원하고 산후조리를 위해 집으로 돌아왔지만 부승민은 그럼에도 쉽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부승민은 경주 경찰청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어쩐지 지금껏 부선월을 찾을 수 없더라니, 부선월은 애초부터 강남이 아닌 경주에 갔었던 것이다.

그녀는 경주에 오랫동안 숨어 지내며 임가희의 외출 루틴을 파악했다.

임가희는 몇몇 재벌집 사모님과 백화점을 쇼핑 중이었다. 칼을 들고 옆에서 뛰쳐나온 부선월이 임가희의 복부를 한 번 찌르고는 칼을 뽑아 또 미친 듯이 두 번 더 찔렀다.

임가희의 동행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고 행인들 역시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며 뿔뿔이 흩어져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모여들어 구경하기 바빴다. 누군가는 촬영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경비를 불렀고 또 누군가는 경찰에 신고했다. 물론 구급차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임가희를 몇 번이나 찌른 후, 부선월의 시선이 다시 임가희의 얼굴에로 옮겨졌다. 그와 동시에 부선월의 손에 들린 칼이 임가희의 얼굴을 세게 그었다...

다급하게 현장에 도착한 경비원이 부선월을 떼어내며 칼을 빼앗아 그녀를 제압했다.

부승민이 손을 들어 마우스를 클릭해 동영상을 일시 정지시켰다.

영상 속 부선월은 꼬질꼬질하고 몸에 맞지도 않은 패딩에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인지 일반적인 깔끔함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예쁘게 자라 50세가 넘는 나이였지만 여전히 우아함을 유지하고 있던 평소의 부선월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부승민이 눈을 감았다. 그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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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1215화

    부승민이 면회를 신청했다. 면회 허가가 떨어진 후 형사가 부승민을 심문실로 안내했다. 부선월은 취조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옷에도 얼굴에도 여전히 핏자국이 남아있어 처참한 모습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확인한 부선월이 다시 고개를 숙이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왔니?”마치 시들어버린 한 떨기의 꽃처럼 마르고 비틀어져 더 이상 싱그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부승민은 자신이 곧 부선월의 히스테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사람을 찌른 부선월은 오히려 평온하기만 했다. 너무도 평온해서 이상할 정도였다. “왜 그러셨어요?”부승민이 의자를 끌어와 부선월 맞은편에 앉았다. 부선월이 툭, 손바닥을 천장으로 내밀었다.“그거야 당연히 그럴 만한 짓을 했으니까.”“한 가지 소식을 알려드릴게요. 임가희 씨 안 죽었어요. 깨어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이미 나머지 생은 감옥에서 보낼 각오는 하신 거네요?”멈칫한 부선월의 얼굴에 순간 사나운 표정이 스쳐갔다. “안 죽었다고? 명도 길지. 아쉽게 됐네. 하지만 얼굴이 망가졌으니 그 얼굴을 최국환이 받아들일 리가 없어.”“또 다른 소식도 알려드릴게요. 최 회장님이 호수 별장에 다른 살림을 차리셨어요. 요 며칠 계속 거기서 지내셨고요. 임가희 씨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여자들이 있을 거예요. 하나하나 다 죽이실 만 하겠어요?”부선월 얼굴에 드리웠던 미소가 순간 굳어졌다. 그녀의 눈빛이 음산하게 변해갔다. “요즘 힘들게 지내신 것 같던데요. 심지어 남은 인생까지 내던지셨어요. 이런 남자를 위해 굳이 왜요?”“남은 인생?”부선월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녀의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눈가에는 곧 눈물이 새어나왔다. 마치 미치광이 같은 모습이었다. “내 남은 인생은 진작 망쳤어. 난 이제 돌아갈 곳이 없어. 끝까지 가는 수밖에.”부승민이 진지한 표정으로 부선월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직 돌아갈 수 있어요. 그러고 싶지 않으신 것뿐이

  • 위태로운 제안   제1216화

    잠시 생각하던 설윤이 고개를 돌려 최국환을 힐끔 쳐다보았다.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는 그를 보고는 곧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최국환 씨 휴대폰인가요? 여긴 경주세화병원입니다. 아내분께서 칼에 찔려 다치셨어요. 얼른 병원으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그 말을 들은 설윤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전 최국환 씨 비서예요. 말씀하신 건 지금 바로 전달해 드릴게요. 저기, 임가희 씨는 지금 어떠신가요?”“자상을 많이 입으셔서 출혈성 쇼크가 왔었어요. 다행히 빠르게 응급조치를 취한 덕에 생명에 지장은 없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얼굴이 칼에 베어 상처가 심한 편이라 성형외과 진료가 필요할 것 같아요.”“네.”전화를 끊은 설윤의 표정이 조금 멍해졌다. 그녀의 입 꼬리엔 저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임가희가 칼에 찔렸다고? 얼굴을 베였어?’‘대체 어떤 귀인께서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신 거야?’평소의 최국환은 오후 2시 30분쯤이면 잠에서 깨어났다. 설윤은 2시 15분 쯤 방으로 들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최국환을 깨웠다. “국환 씨. 국환 씨?”“응? 무슨 일이야?”최국환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잠에서 깨어났다. “방금 경주세화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임가희 씨가 다치셨다고요. 가보시겠어요?”말하며 입을 삐죽인 설윤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각하대?”설윤이 최국환을 부축해 일으켰다. “잘 모르겠어요.”“그럼 가 봐야지.”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최국환의 움직임은 느긋하기만 했다. “저녁 저랑 같이 드시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돌아오실 거예요?”설윤이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며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최국환이 미소 지으며 설윤의 손등을 토닥였다. “내가 안 갔으면 좋겠어?”“당연하죠.”설윤이 최국환의 팔을 끌어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임가희 씨가 병원에서 기다리고 계시잖아요.”“지난번에 마음에 드는 가방 있다고 했지?

  • 위태로운 제안   제1217화

    부승민이 취조실을 나간 후 부선월은 곧 기대에 가득 찼다.잠시 후 최국환이 오면 뭐라고 변명을 해야 그가 믿어줄까?부선월은 단지 최국환을 너무 사랑한 죄밖에 없었다. 한순간의 충동으로 저지른 일을 최국환은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자세를 바꾸며 고개를 숙인 부선월은 피가 잔뜩 튄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의 모습은 초라해 보일 것이 분명했다. 부선월은 허둥지둥 옷에 묻은 핏자국을 닦았다. 하지만 이미 옷에 스며든 핏자국은 아무리 애써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이러면 좀 깔끔해졌겠지?’이 모든 걸 마친 부선월이 인내심 있게 최국환이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부선월이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이 눈앞에 서 있자 부선월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서렸다. 젊은 시절 그랬듯이 다정한 눈빛으로 최국환을 쳐다보았다. “국환 씨, 왔어?”최국환은 어두운 얼굴로 흥, 콧방귀를 뀌었다. 그가 버럭 소리를 높였다. “부선월, 아직도 웃음이 나와?”호통에 움찔한 부선월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최국환을 쳐다보며 가여운 모습으로 입을 삐죽였다. “국환 씨, 무슨 일 있어?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화를 낼 수 있어?”“무슨 염치로 나한테 무슨 일 있냐고 묻는 거야?”CCTV 속 장면을 떠올린 최국환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가희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 지금도 병원에서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어. 이렇게 독하고 악랄한 인간인 줄은 몰랐는데.”최국환의 비난에 부선월이 순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뭐? 임가희가 왜? 내가 뭘 했다고 악랄하다고 하는 거야?”그 말에 최국환이 냉소 지었다. “부선월, 지금 이 상황에서까지 연기를 하는 거야? 정말 너무 실망스럽군.”“국환 씨, 난 정말 당신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그래? 그럼 고개 숙여서 네 손목에 차고 있는게 뭔지 봐봐. 주변도 자세히

  • 위태로운 제안   제1218화

    “그러니까 자네 말은...”“이미 본인의 신분을 알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부선월 씨 정신감정을 의뢰했다고 해요.”“어느 호텔에 있는지 알아보게.”...병실 안.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베이비시터의 휴대폰이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연지 씨, 고은이가 계속 울음도 그치지 않고 분유를 먹는 족족 토하고 있어요. 돌아오시는 게 어떠세요?”베이비시터는 임연지에게 고은은 처벌을 피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임연지는 아이의 아빠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아이를 원하지도 않았다고 말이다. 임연지는 고은이 태어난 후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는 물리기는커녕 눈길조차 주길 거부했다. ‘가여운 것.’차가운 임연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제가 있으면 데리고 병원에 가세요. 저한테 연락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에요?”그 아이만 보면 임연지는 자신이 온 경주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모욕을 겪은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베이비시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연지가 뚝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막 산후조리를 끝내고 아이의 수유 기간은 대략 6개월 정도였다. 이 6개월 사이에 다시 임신을 해야 형기가 만료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꼭 임신을 해야만 한다면 그녀는 꼭 마음에 드는 남자를 찾고 싶었다. “아...”임가희가 어렴풋이 의식을 회복했다. 쓰러지기 전 마주했던 잔인한 장면이 파라노마처럼 머리에 스쳤다. 임가희는 공포에 질린 채로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닿은 건 얼굴의 피부가 아니라 둘둘 감아진 거즈였다. “고모, 드디어 일어나셨어요?”인기척이 들리자 침대 맡으로 다가간 임연지가 눈시울을 붉혔다. “부상이 심각해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의사가 그랬어요.”“내 얼굴...”임가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로 인해 얼굴의 근육이 움직이자 통증이 신경을 타고 올라왔다. “의사가 최선을 다해 봉합했어요... 나중에 성형외과 시술도 받으실 수 있고요... 고모,

  • 위태로운 제안   제1219화

    계성진의 전화를 끊은 부승민은 소파에 앉아 물을 마셨다.계성진을 시켜 경찰에 신고를 하긴 했지만 부승민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부선월이 노린 게 아무리 임가희라 해도 그녀는 존재만으로도 시한폭탄이었기에 최씨 집안에서 반드시 나서서 처리하려 할 것이기에 부승민은 계성진에게도 최선만 다하면 된다고 일러두었다.그 결과가 어떻든 그건 부승민이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그때 갑자기 울리는 호텔 전화벨 소리에 생각을 멈춘 부승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여보세요?”“손님, 여기 최국환이라는 분이 손님 가족이라고 만나 뵙고 싶어하시는데 방 번호 알려드려도 될까요?”“올라오라고 하세요.”잠시 멈칫하던 부승민이 대답을 마치고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부선월이 최국환을 만나고 싶다 할 때도 연락을 하지 않았었는데 역시나 최국환은 제 아내인 임가희를 위해 이렇게 직접 부승민을 찾아온 것이다.몇 분 뒤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자 문을 열어준 부승민이 밖에 서 있는 최국환을 보며 말했다.“오랜만이네요, 최 회장님.”“그러게요.”“저 계속 이렇게 밖에 세워두실 겁니까?”복도를 두리번거리며 묻는 최국환에 부승민은 누가 봐도 거리를 두는 것처럼 문틀에 기대며 말했다.“그냥 여기서 말씀하시죠, 용건이 뭡니까?”최국환은 저와 닮은 부승민의 얼굴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부 회장님만 괜찮으시면 제가 식사 대접하고 싶은데 같이 내려갈까요?”“조금 있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요, 그냥 여기서 얘기하시죠.”하지만 여전히 단호한 부승민의 태도에 최국환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승민아, 너도 네 신분에 대해서 이미 다 안 거지?”“네, 알아요.”표정 변화 하나 없이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부승민에 최국환은 그가 진작 자신이 친아빠인 걸 알았으면서도 부모로 인정하기 싫어 그동안 아는 척을 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그래서 별다른 표정도, 대화도 나누지 않고 이렇게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하지만 부승민이 제 아들이라는 걸 안

  • 위태로운 제안   제1220화

    “심신이 불안정한 건 맞으니까 그냥 절차대로 진행한 것뿐이에요.”부선월이 그토록 죽고 못 사는 남자가 내뱉는 어이없는 말에 부승민은 냉소를 흘렸다.“감정 결과에는 아무런 관여하지 않을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최 회장님도 결과엔 손대지 마세요. 검찰과 사법부에 맡겨야죠 그런 건.”부승민이 검사 결과를 조작할 거라고 생각했던 최국환은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자신이 오해했나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마음이 놓이는구나, 할아버지가 잘 키웠나 보구나. 사실 나도 후회 많이 했어. 왜 그때...”“얘기 다 끝났으면 이만 돌아가 보세요.”제 말을 끊으며 방문을 닫아버리는 부승민에 최국환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부선월과 임가희 사이의 일은 빠르게 기사화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사람들은 피해자를 동정하고 가해자를 나무라고 있었다.얼마 못 가 사라질 사람들의 관심은 고작 그게 전부였다.가십거리를 즐기는 건 사람들의 본능이었다.그들이 특히 좋아하는 건 언제나 남녀 사이의 스캔들이었기에 이번에도 눈에 띄는 기사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경주 백화점 가해자와 피해자 부부의 관계”기사를 클릭해보면 안에는 어떻게 알아냈는지도 모를 비밀스러운 내용들이 적혀있었는데 칼부림 사건의 가해자는 BX 그룹 회장을 지냈었던 부선월이고 피해자는 경주 최씨 가문 최국환의 아내 임가희인데 최국환과 부선월 사이의 아들이 바로 부승민이라는 얘기였다.기사에는 BX그룹을 등에 업은 부선월이 평범한 집안 출신인 임가희를 여러 차례 도발해왔다고 서술되어있었다.온라인에서 내연녀는 누구나 다 욕하는 존재인데 이토록 기고만장하고 칼로 본처를 찌르기까지 하는 내연녀에게는 더욱더 자비가 없었다.내연녀가 권력까지 있으니 본처는 꼼짝없이 당했다는 내용과 재벌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 그리고 부승민이라는 존재까지 더해지니 기사는 순식간에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그 양이 어찌나 많은지 이 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오며 가며 기사

  • 위태로운 제안   제1221화

    소문은 퍼져나갈수록 과장되었고 핸드폰 화면을 방패 삼은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에 열광하는 대중들을 보며 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었다.부선월이 경찰에 구속된 게 아니라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경찰이 발 빠르게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라며 용의자는 구속수사 중이라고 밝힘과 동시에 부승민이 정신과 검사를 의뢰한 건 용의자의 입원과 상담기록에 근거해서 진행한 합법적인 수사라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사법부 정신과 검사 위원회는 공정하고 청렴한 수사를 바탕으로 용의자의 정신건강에 대한 보다 확실하고 근거 있는 진단을 진행할 거라고 발표했다.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은 전부 법에 따라 조사를 진행할 거라는 경찰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온라인에서 떠돌아다니던 피드들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다.뭐가 진짠지 구별할 수도 없게 다양하던 소문들은 많이 사라졌는데 정신과 검사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면서 또 다른 화제를 만들어냈다.그건 바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살인을 해도 무죄인가라는 내용의 주제였다.[정신과 질환이든 만 14세든 나는 다 폐지돼야 한다고 봐, 사람을 죽였으면 그게 누구든 벌을 받아야지!]이런 부류의 댓글이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여론을 점점 더 뜨겁게 달구었다.이름 없는 온라인 탐정들은 이때를 빌어 부선월의 과거를 들추어내다가 임가희는 최국환의 첫 아내가 아니라 재혼대상이었고 최국환의 첫 아내는 강윤희라는 것까지 알아냈다.한 네티즌이 올린 피드에는 강씨 집안과 최씨 집안은 둘의 정략결혼으로 인연을 맺었는데 강윤희가 워낙 아름다워서 최국환과 그녀 사이에 아들도 있었다고 적혀있었다.그 아들이 바로 지금 리우그룹 대표로 있는 유명사진작가 최동철이었다.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강윤희가 최동철을 낳은 지 얼마 안 됐을 때 부선월이 임신을 핑계로 그녀의 속을 뒤집어 놔서 강윤희는 산후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한다.피드 아래편에는 사진도 몇 장 기재되어 있었는데 첫 장은 최국환과 강윤희의 결혼기

  • 위태로운 제안   제1222화

    [역시 자본가들은 진짜 대단해, 딸의 안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네.][만약 법적인 책임을 물으면 부선월은 감옥에 가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강씨 집안은 최씨 집안 부씨 집안 모두와 척을 지게 되는 거지. 그래서 강씨 집안도 결국 부씨 집안 제안을 받아들였을 거야.][안 보냈으면 부선월이 바로 최국환이랑 결혼했겠지. 최동철한테는 다행 아니야? 부선월이 들어왔어 봐, 최동철 괴롭히기만 했지.]그때 한 네티즌이 댓글 창에 사진 한 장을 게시하며 말했다.[왜 이렇게 익숙한가 했는데 며칠 전에 대선 탈락한 사람이 최동철 외동숙 강시우야.][와, 이건 또 무슨 일이야.]그 사진은 빠르게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갔고 사람들은 최동철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내어 그에게 동정과 응원의 말을 보내주고 있었다.동시에 부승민의 인스타에는 험한 말들을 쏟아내었는데 그를 위해 나서주는 사람들한테는 “자본가의 개”라는 프레임을 씌워버리고 있었다.그런데 강시우의 일을 파던 사람 하나가 강씨 집안과 최씨 집안이 아직도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서 협업 관계를 유지 중이라는 걸 발견해내자 사람들은 강 씨, 부 씨, 최씨 상관없이 다들 미친 사람들이라며 댓글 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도시는 너무 위험해. 엄마, 나 시골로 돌아갈래요.][하루 만에 너무 많은 사실을 알게 됐어.]그런 여론들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자 온하랑의 핸드폰에도 알고리즘으로 뜨게 되었다.제목을 보고 클릭해본 온하랑은 지금을 기회 삼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분노를 터뜨리는 많은 사람들의 발언에 미간을 찌푸렸다.2분 뒤, 황은숙이 웃으며 걸어오더니 온하랑을 향해 말했다.“사모님, 오늘 핸드폰 너무 많이 보셨어요, 오래 보면 몸에 안 좋으니까 이제 저 주세요.”아직 시간이 안 된 것 같은데 핸드폰을 달라는 황은숙에 온하랑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입을 열었다.“승민 오빠한테 전화만 하고 줄게요.”“네.”부승민의 번호로 전화를 걸자 상대편에서도 빠르게 부승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하랑아.”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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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1273화

    임연지도 임가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임가희는 그녀가 너무 성급했다고 나무랐다.임연지는 입으로는 잘못을 인정했지만 속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그녀는 일부러 설윤의 정체를 드러내서 가방을 손에 넣으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오후가 되자, 임연지는 예상대로 점원에게서 설윤이 환불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녀는 곧바로 가방을 예약하고 직접 가게에 가서 찾아왔다.가방을 손에 넣은 임연지는 후련한 기분으로 예쁜 사진을 찍어 한진에게 보냈다.[나 가방 받았어.]시간을 보니 이때쯤 한진은 막 일어났을 것 같았다.잠시 후 한진이 답장을 보냈다.[진짜 예쁘네! 처음 나왔을 때부터 딱 꽂혔는데 네가 준다니까 사양 안 할게.][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내 쪽에 맡겨뒀다가 네가 귀국할 때 가져갈래, 아니면 누가 대신 가져다주게 할까?][며칠 뒤에 우리 오빠가 갈 거야. 나 대신 가져다줄 수 있어. 너 언제 시간 돼? 시간 맞춰서 오빠를 보낼게.][난 지금도 괜찮아. 나 센트럴 백화점 4층 커피숍에 있어.][좋아, 내가 오빠한테 전화해 볼게.]몇 분 뒤, 한진이 다시 연락했다.[오빠가 지금은 바쁘대. 그래서 오빠 비서가 대신 갈 거야. 거기서 좀 기다려 줘. 곧 도착할 거야.][알겠어.]임연지는 커피를 시켜 천천히 마시면서 한진과 채팅을 이어갔다.[진아, 근데 네 방법 진짜 효과 좋아. 내가 이틀 정도 오재*을 냉대했더니 바로 전처럼 나한테 잘하려고 해.][그 사람 몰래 귀국해서 부모나 친구들한테도 알리지 못하고 호텔에만 틀어박혀 있으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어. 결국 너밖에 연락할 데가 없잖아? 계속 차갑게만 대하면 안 돼. 가끔 잘해주기도 하면서 밀당해 봐. 그래야 헷갈릴 거야.][알겠어.]카페에서 20분쯤 기다리자,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깔끔한 청년이 들어와서 주위를 둘러보고는 곧장 임연지에게 다가왔다.임연지는 그 청년이 비서임을 확인한 뒤 가방을 건네주고 커피숍을 나왔다....간하림은 임가희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지만 속으로는 난감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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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기 너머로 임가희는 잠시 멍해 있다가 임연지가 충동적으로 행동했을까 봐 걱정하며 바로 물었다.“오늘 센트럴 백화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아? 모르셨어요?”간하림은 간단하게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따귀를 맞은 일로 설윤은 굉장히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금 사모님께 복수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까요.”그 말을 듣자 임가희는 안심했다.뺨 한 대 맞고 참지 못해 도망가는, 겨우 스무 살짜리 감정적인 계집애 따위는 신경 쓸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심하게 말했다.“이틀 후에 너희 가게로 갈 거야. 그때까지 설윤을 잘 부추겨서 나한테 덤비게 만들어.”간하림은 곧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챘다.“알겠습니다. 사모님,”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드는 장면은 반드시 녹화되어 최국환에게 전달될 것이다.하지만 어떻게 하면 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들도록 만들 수 있을까?리우 그룹.최국환은 회의를 마치고 몇몇 오랜 친구들과 식사를 하러 갔다.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비서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찾았다.“오전에 사모님과 설윤 씨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설윤 씨는 가방을 사지 않겠다고 하시며 환불해 달라고 하셨습니다.”“갑자기 왜?”“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화에서 설윤 씨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울먹이는 것 같았습니다.”최국환은 한창 젊은 애인에게 푹 빠져 있던 터라 설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거의 끊어지려는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다. 설윤의 목소리는 살짝 쉰 듯했다.“국환 씨.”“김 비서 말로는 가방 환불해 달라고 했다던데.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더니 왜 갑자기?”설윤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싫어졌어요. 이유는 없어요.”“이유가 없어? 그럼 목소리는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누군지 말만 해. 감히 내 여자를 괴롭히다니!”“묻지 마세요. 저 때문에 국환 씨와 사모님 사이가 나빠지는 건 싫어요.”“오? 내 마누라와 관련된 일이야?”“말했잖아요, 묻지 마시라고요. 더 물으면 저 진짜 삐질 거예요.”“아이고, 또 어린애

  • 위태로운 제안   제1271화

    “정말... 어이가 없어...”설윤은 시선을 피하며 돌아서려 했다.“어딜 가요? 방금 구매 기록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이제 와서 못 보여주는 건데요?”임연지는 설윤의 길을 막아서며 그녀 손에 든 선물 상자를 잡고 비꼬듯 말했다.“젊은 아가씨가 왜 이렇게 뻔뻔해요? 유부남인 거 뻔히 알면서 끼어들다니. 내 고모부가 그쪽 아빠보다 나이도 많은데, 역겹지도 않아요? 몸 팔아서 얻은 가방을 들고 다니니까 좋아요?” 마침 가게에 들어오던 손님 몇 명이 임연지의 말을 듣고 문 앞에서 수군거렸다.설윤은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임연지를 밀치고 가게를 나서 황급히 도망쳤다.간하림은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뒤따라갔다.“저기요. 설윤 씨, 가방은...”점원은 임연지의 손에 들린 선물 상자를 보고 두 번 불렀다.그러나 설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그만 불러요. 안 올 거예요.”임연지는 웃으며 손에 든 선물 상자를 내려다봤다.“저 여자가 싫다고 두고 갔으니 이 가방 저 주세요.”“임연지 씨, 죄송하지만 설윤 씨는 그런 말씀이 없으셔서...”“걱정 마세요, 분명히 환불할 거예요. 환불하면 이 가방 저한테 남겨 두세요.”임연지는 선물 상자를 점원에게 건넸다.점원은 임연지의 배경을 생각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설윤 씨가 환불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네.”가방을 못 사서 한진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는데 상황이 반전되고 내연녀까지 혼내주고 나니 임연지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윤아, 괜찮아?”마침내 매장 근처를 벗어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자 설윤은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간하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넋이 나간 채 앞으로 걸어갔다.“윤아, 어디 가서 좀 앉을까?”설윤은 마침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근처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간하림이 그녀를 위로했다.“윤아, 너무 속상해하지

  • 위태로운 제안   제1270화

    한진은 큰 도움을 주고도 단지 가방 하나 사달라는 부탁만 했을 뿐인데 실망을 안겨주게 생겼으니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심지어 가방을 선물해주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는데 무슨 생각 할지 걱정되었다. 설마 공짜로 주기 싫어서 쪼잔하다고 오해하면 어떡하지?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임연지가 물었다.“다음번에 언제 입고되나요?”점원은 임연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회원 가입하시면 나중에 재고를 확보할 때 연락드리고 있어요.”“그래요. 할게요.”임연지는 마지못해 동의했다.“연락처가 어떻게 돼요?”점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물었다.임연지는 전화번호를 말하며 머릿속으로 한진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설윤 씨, 어서 오세요. 가방 찾으러 오셨죠? 잠깐 앉아 계시면 금방 가져다드릴게요.”다른 점원의 반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네, 고마워요.”소리의 출처를 따라 고개를 돌린 임연지는 젊은 여자 두 명을 발견하고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윤아, 여기 점원이랑 아는 사이야? 물건을 엄청 많이 샀나 보네? 부러워.”나지막이 속삭이는 여자 목소리가 임연지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이내 경멸이 담긴 표정으로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세상 물정 모르는 촌년들. 잠깐! 왼쪽에 있는 여자가 낯이 좀 익은데?’그리고 고개를 돌려 찬찬히 뜯어보았다.분명 어딘가 본 듯한 얼굴이다.기억을 되짚어보던 찰나 점원이 정교한 선물 상자를 들고나와 두 여자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뚜껑을 열고 안에 든 가방을 보여주었다.“설윤 씨가 구매한 가방이에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설윤은 가방을 꺼내 꼼꼼히 살펴보았다.“확인했어요. 고마워요. 먼저 가볼게요.”점원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 불쾌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대뜸 울려 퍼졌다.“재고가 없다면서요? 분명 제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한테 주는 거죠?”싸늘한 표정으로 따지는 임연지를 보자 점원이 서둘러 해명했다.“이 가방은 손님께서

  • 위태로운 제안   제1269화

    일과를 마친 설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돌아갔다가 간하림과 다시 마주쳤다.이내 먼저 입을 열었다.“하림아, 내일 쉬는 날인데 같이 쇼핑하러 가지 않을래?”임가희가 부탁한 일을 떠올리자 간하림은 흔쾌히 동의했다.다음 날, 두 사람은 약속 시간에 맞춰 센트럴 백화점 근처의 카페에 도착했다.일단 만나자마자 설윤은 밀크티 두 잔을 주문했고, 백화점으로 걸어가면서 쪽쪽 빨아 마셨다.간하림이 말했다.“여긴 명품밖에 없을 텐데? 지난번에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발견했다가 가격 보고 기겁했잖아. 그나저나 꽤 익숙한 곳인가 봐? 여기 자주 와?”“내가 무슨 재주로? 국환 씨 따라 몇 번 다녀갔을 뿐, 며칠 전에 가방 하나 주문했는데 오늘 픽업하러 가는 거야.”“헐! 회장님 너무 근사하잖아.”설윤을 바라보는 간하림의 눈빛에 부러움이 가득했다.“그러니까 얼른 행동 개시해야 한다고. 사모님과 이혼시키고 너랑 결혼할 방법을 찾아야 해.”비록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목적을 이루기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정이었다.사실 그녀는 속으로 뻔했다. 최국환과 임가희는 결혼 전에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설윤에게 준 돈은 부부의 공동 재산에 속하지 않는지라 다시 빼앗아 갈 자격이 없었다. 물론 최국환이 직접 개입하면 회수가 가능했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설령 나중에 임가희가 설윤에게 본때를 보여주거나 최국환의 마음이 식는다고 해도 그동안 받았던 값비싼 선물은 여전히 가져갈 것이며 현금화하면 그래도 두둑이 챙길 수 있다.결국 임가희가 손을 쓰는 이상 설윤은 곧 최국환에게 찬밥 신세 당하므로 얼추 비슷한 액수의 보수를 받을뿐더러 임가희라는 인맥까지 확보하기에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그제야 간하림은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설윤의 표정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어젯밤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네 말이 맞아. 국환 씨 아내와 적이 된 이상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봐주는 건 아니지. 고작 돈 몇 푼

  • 위태로운 제안   제1268화

    “자, 이제 그만하고 출근하자. 아니면 매니저한테 또 혼날라.”설윤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탈의실을 나가려고 했다.“먼저 가. 나 립스틱만 바르고.”“알았어.”설윤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간하림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사모님이 부탁한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니군.’...병원에 도착한 최동철은 올라가는 대신 온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온하랑은 부승민과 작별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유치원 확인하러 직접 다녀온다고 하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차에 타고 나서 메이슨을 데리러 갈 줄 알았던 그녀의 예상과 달리 최동철이 말했다.“별장에 계신 이모님이 연락이 와서 오늘 메이슨이 일어나자마자 발이 아프다고 했다네. 아마도 어제 강행군이었나 봐. 그래서 집에서 쉬겠다고 해서 우리 둘만 가면 돼.”온하랑은 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어제 많이 걸어 다니긴 했죠. 메이슨을 말렸어야 했는데...”“네 탓 아니야. 내가 너무 바빠서 녀석이랑 놀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무리한 거지.”이에 온하랑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동철 오빠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메이슨도 철이 들었고.”최동철이 피식 웃었다.“우리 사이에 남사스럽게 뭔.”이동하는 동안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면서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했다.동언 국제 유치원에 도착하자 젊은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소개와 함께 내부를 구경시켜주었다.“우리 유치원은 총 3개의 반으로 나뉘는데 최대 학생 수를 각각 20명 이내로 확보하여 교사들이 모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게끔 노력하죠. 교실에는 멀티미디어 교육 장비가 구비되어 있으며 전용 독서 공간, 놀이 공간, 수공예 공간, 실내외 감시 카메라, 그리고...”꼼꼼하게 알아본 결과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온하랑은 꽤 만족했다.이내 유치원을 나서고 최동철에게 의견을 물었다.최동철이 말했다.“몇 군데가 노후한 것만 빼고 기본적인 인프라는 괜찮네. 시설 개조 명목으로 2억을 기부할 생각이야. 게다가 메이슨도 특별한 케이스라

  • 위태로운 제안   제1267화

    설윤은 그녀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봤어? 다른 사람한테 절대 얘기하면 안 돼.”“당연하지.”간하림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나 몰라? 걱정 붙들어 매.”그리고 다정하게 설윤의 팔짱을 끼고 클럽 탈의실로 향했다.아직 아무도 없었고, 간하림은 옷을 갈아입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윤아, 최 회장님과 어떻게 알게 되었어?”딱히 언급하고 싶지 않은 설윤은 대충 둘러댔다.“우연한 기회에 마주쳤어. 전에 일하던 곳에 놀러 왔다가 마침 내가 접대를 담당했거든.”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간하림은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손을 뻗어 설윤의 잘록한 허리를 꼬집었고, 뽀얀 피부에 선명한 붉은 자국을 바라보았다.“최 회장님이 네가 진짜 마음에 드나 봐. 직접 출근하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정말 좋겠네.”설윤은 피식 웃으며 옷을 갈아입었다.“너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잖아.”“든든하긴 개뿔! 하늘과 땅 차이거든?”간하림이 툴툴거렸다.“가게에 오면 지명할 뿐이지 너처럼 최 회장님 전속 담당이 아니야.”심지어 손님마저 감히 설윤에게 집적거리지 못했고, 누가 봐도 사전에 단단히 경고한 게 분명했다. 반면, 그녀는 치근덕거리는 사람이 있어도 꾹 참아야만 했다.설윤은 웃으면서 아무 말 없이 거울을 보며 헤어스타일을 다듬었다.“윤아, 나중에 사모님이 되면 날 잊지 마.”“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녕 몰라?”이내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더니 간하림을 흘겨보았다.“국환 씨가 싫증이 나기 전에 돈이라도 두둑이 챙기면 땡큐고, 사모님은 감히 넘보지도 않아.”간하림은 납득할 수 없는 듯 바짝 다가갔다.“우리가 뭐 어때서? 최 회장님 와이프도 결국에는 사모님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잖아. 그리고 며칠 전 기사 못 봤어?”“무슨 기사?”곧이어 출입구를 힐끗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누군가 최 회장님 와이프의 얼굴을 칼로 난도질해서 끔찍한 상처를 입었대.”“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 위태로운 제안   제1266화

    임연지는 집에 도착하자 거실 소파에 앉아 굳은 얼굴로 손에 든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는 임가희를 발견했다.테이블에 놓인 등기 전용 서류 봉투 위에 여러 장의 사진이 널브러져 있었다.“고모, 왜 그래요?”말을 마치고 나서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고모부가...”이내 나머지 사진도 확인했는데 전부 어떤 젊은 여자와 다정한 스킨십을 하는 최국환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결코 가벼운 사이는 아닌 듯싶었다.“왜 이렇게 소란스러워?”임가희가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흘겨보았다.임연지는 목을 움츠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임가희를 올려다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고모, 이제 어떡해요?”“어떡하긴?”임가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모른 척해야지. 지금 네 고모부 덕분에 우리가 먹고 사는 거야. 괜히 추궁했다가 홧김에 쫓아내기라도 한다면 더 손해이지 않겠어?”그렇다고 마냥 당할 수는 없었다.지금껏 비슷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지만 하나같이 머리가 텅 빈 여자들이라 그녀의 도발에 넘어가서 부랴부랴 찾아와 따지기 급급했다. 나중에 울면서 최국환에게 하소연하면 정이 떨어진다며 다시는 만나주지 않았다.또한 최국환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신분과 집안, 그리고 사회적 지위 때문이었다.어쨌거나 그 나이 먹고 결혼을 3번이나 하면서 웃음거리로 전락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본처의 자리를 위협받지 않은 이상 고작 여자 문제로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뭐 있겠는가? 뒤에서 몰래 처리하면 그만이었다.“그냥 넘어가려고요?”비록 고모의 말도 맞지만 그래도 왠지 꺼림칙했다.“넌 신경 쓰지 마. 고모부 앞에서도 티 내지 말고.”임연지는 사진 속 여자를 힐끗 쳐다보며 속으로 ‘여우 년’이라고 욕하고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요.”임가희는 사진을 모두 치웠다.무언가를 떠올린 듯 임연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참, 고모, 만약 이 여자가 임신하면 어떡해요?”“네 고모부의 컨

  • 위태로운 제안   제1265화

    “침착해.”임연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호텔에서 제공한 가운을 느긋하게 껴입었다.“샤워했어? 나랑 같이 씻을래?”“꿈 깨.”이내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으면서 문을 열자 알몸으로 나타나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는 오재원을 발견했다.“연지야.”그녀는 남자의 손길을 슬쩍 피했다.“호텔에서 푹 쉬어. 먼저 가볼게.”“아직 이른데? 좀 더 있다 가.”“안돼.”임연지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오재원을 스쳐 지나가 침대 옆으로 걸어가서 바닥에 떨어진 옷을 집어 들었다.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쌀쌀맞은 얼굴을 보자 오재원은 꼬리를 내렸다.“알았어. 그럼 언제 다시 올 거야? 그리고 원하는 집이 있으면 알려줘. 부동산에 물어볼게.”“방 3개, 풀옵션. 나머지는 알아서 해.”“그래.”임연지는 옷매무새와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방을 나갔다.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뒤돌아보며 혀를 찼다.‘역겨운 놈.’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싣고 한진에게 답장을 보냈다.[호텔을 벗어나니 공기마저 상쾌한 기분이야.]한진이 대답했다.[하하하! 참,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우리 오빠가 인맥을 동원해서 각 언론사에 수시로 주시하라고 했잖아. 그중에서 제보받은 회사가 있는데 편집장이 이메일을 보자마자 오빠한테 연락했대.]그러고 나서 이메일의 스크린샷을 보내주었다.본문의 첫 마디가 온하랑이 필라시에서 유학할 때 최동철과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다.임연지는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대박인데? 고마워, 한진아. 오빠한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줘. 네가 아니었다면 진짜 아프리카로 쫓겨났을지도 몰라.]그동안 한진의 오빠가 사전에 뉴스를 차단하지 못하고 자칫 폭로라도 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이제 결과를 확인한 이상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하지만 대체 누가 제보했단 말이지?한진이 다시 문자를 보냈다.[물론 메일 주소를 역추적한 결과 여전히 너희 집으로 되어 있어. 아마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가상 주소를 사용한 것 같아.][미친놈.]임연지는 화가 나서 머리카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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