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210화

작가: 고운
메이슨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첫마디를 건넸는데 약간의 억양이 섞여 있었다.

“대부분 영어는 할 줄 알아. 영어 전공 학생들은 너와 대화하는 데 문제없을 거야.”

메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커서 꼭 이 대학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최동철은 차창 밖의 풍경을 하나하나 메이슨에게 설명해 주었다.

메이슨은 최동철의 말에 따라 반응을 보였지만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후 온하랑은 잠시 보온 상자 영상을 들여다보았다.

날씨가 좋아 보였고 온하랑은 부시아와 함께 산책하러 나갔다.

약 두 시간이 지난 후 최동철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는데 이번엔 영상 통화가 아니었다.

최동철이 말했다.

“하랑, 우리 이제 집에 도착했어.”

“메이슨은 어때요? 동철 씨한테 말은 했어요?”

“오는 길에 한마디 하긴 했어. 내가 천천히 유도해 보려고 해.”

“아이에게 처음 온 이 시기가 신뢰를 얻기에 가장 좋은 시기예요. 동철 씨가 신경을 좀 많이 써야 할 거예요.”

“당연히 그래야지. 이미 메이슨을 위해 전문 선생님을 모셨어. 집에서 영어로 수업하면서 이곳 환경에 먼저 적응할 수 있게 하고 돌봐 주는 이모도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 메이슨이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면 그때부터 한국어를 가르칠 예정이야.”

“정말 세심하시네요. 동철 씨가 있어서 이제 마음이 놓여요.”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최동철은 전화를 끊고 발코니로 나왔다.

그때 휴대폰이 또 울렸다.

최동철은 화면을 내려다보며 입가에 냉소를 띠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버지, 무슨 일이 신가요?”

최국환이 차분히 물었다.

“필라시에서 아이를 데려왔다던데 그게 무슨 일이냐?”

최동철은 비웃듯 말했다.

“아버지, 소식이 참 빠르시네요. 공항에서 막 돌아왔는데 바로 전화가 오네요.”

비꼬는 말투에 최국환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똑바로 말해 봐. 그게 대체 무슨 일이냐?”

“아버지가 아는 대로예요. 저와 하랑 사이의 아이입니다.”

“이 녀석!”

최국환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 아이는 이미 다섯 살입니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위태로운 제안   제1211화

    “너...너...”최국환은 ‘너’라고 두 번이나 말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휴대폰 너머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소음과 한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회장님...!”아마도 휴대폰 마이크가 떨어져 손상된 탓인지 이후 소리는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다.“회장님, 괜찮으세요?...지금 약을 가져올게요.”최동철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가 화를 참지 못하고 기절한 것 같았다.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다니 정말 나약하다.최동철은 잠시 기다리며 휴대폰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여보세요, 이 박사님이신가요? 국환 씨가 갑자기 의식을 잃으셨어요. 호수별장 C동 8호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부탁드립니다.”‘호수별장 C동 8호?’최동철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곳은 아버지가 제삼자를 숨겨둔 곳 같았다.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는 최동철의 새어머니일지 궁금했다.최동철은 전화를 끊고 메이슨의 방으로 가서 한 번 들여다보았다.메이슨은 작은 책가방을 꼭 안고 침대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고 문가에서 나는 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최동철은 문을 조용히 닫았다.메이슨은 침묵했다.“...”몇 분 후 최동철은 쟁반을 들고 들어와 방에 내려놓았다. 그 위에는 우유 한 잔, 생과일주스 한 잔, 생수 한 잔, 샌드위치 한 개, 와플 한 조각, 토스트 두 조각과 삶은 달걀 한 개가 놓여 있었다.메이슨은 그릇 위의 음식을 보며 구운 빵의 향기를 맡고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최동철이 말했다.“난 잠시 외출해야 해. 음식을 여기 두고 갈 테니 배고프면 조금 먹고 졸리면 잠깐 자. 미아 아주머니가 네 맞은편 방에 있으니까 필요하면 아주머니에게 부탁해.”미아는 메이슨을 위해 최동철이 고용한 영어를 할 줄 아는 가사도우미였다.메이슨은 최동철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최동철은 그릇을 탁자에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낯선 환경에 온 메이슨은 겁이 많았고 신중하여 방을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방 안에는 독립된 화장실이 있고 음식과 물도

  • 위태로운 제안   제1212화

    설윤은 아주 하얀 피부에 작은 얼굴 살짝 올라간 눈꼬리로 한눈에 보아도 유혹적인 인상이었다.“위층이에요. 최 대표님, 저를 따라오세요.”설윤이 먼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최동철은 잠시 설윤의 뒷모습에 시선을 두었다.옷차림은 신경 써 고른 듯 세련되고 유행을 아는 감각으로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옷이었다.설윤 역시 임가희처럼 술집에서 일했던 여자라고 들었다.아버지의 취향은 여전하다고 생각했다.침대 옆 탁자에는 반쯤 비어 있는 물컵과 약 그리고 최국환의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최동철은 최국환을 잠시 바라보았다.“이 박사가 언제 깨어날 거라고 하셨나요?”“한 삼십 분 정도요. 제가 물 한 잔 가져다드릴까요...”“필요 없어요. 곧 갈 거예요.”“...알겠습니다.”설윤은 잠시 망설였다. 이 부자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자리를 비켜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최동철이 물었다.“여기 가사도우미 있어요?”“...시간제로 청소하는 분이 계세요.”“이곳은 요양하기에 적합하지 않군요. 곧 사람을 불러 아버지를 모셔 가도록 하겠습니다.”최동철은 이 젊은 여자가 아버지를 잘 돌볼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저...간병인을 부를 수 있어요.”설윤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최동철이 곧장 데려가겠다고 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물어보는 걸 보니 상황이 아직 변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최동철은 설윤을 힐끗 보며 비웃듯이 말했다.“편하신 대로 하세요. 찾으면 제게 알려 주세요. 그럼 먼저 갈게요.”최국환이 어렵사리 자리 잡은 곳이니 설윤은 당연히 더 머물기를 원할 것이다.임가희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다.설윤은 최동철이 보내는 시선을 못 본 척하며 대답했다.“네.”몇 걸음 옮기던 최동철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설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아버지가 어떻게 기절하셨는지 알아요?”“...”최동철의 눈을 마주치자 설윤은 잠시 입을 떼면서 말했다.“모르겠어요. 제가 도착했을 때 회장님은 이미 쓰러져 계셨어요.”“네.”최동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윤

  • 위태로운 제안   제1213화

    저녁이 되어 부승민이 퇴근하자 온하랑의 말대로 부시아는 그에게 최동철 광고 모델 건을 꺼냈지만, 부승민은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다행히 온하랑은 그 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금세 잊어버렸다.부승민은 속으로 이를 갈며 최동철의 교활함을 비난했다.병원에서 6일을 보낸 뒤 온하랑은 퇴원해 한 달간 산후조리에 들어갔다.두 가사도우미의 정성 어린 보살핌 덕분에 온하랑은 잘 먹고 잘 자며 신체적으로는 불편함이 없었지만, 마음 한편엔 여전히 걱정이 남아 있었다.하나는 인큐베이터 속 작은 아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었고 다른 하나는 경주에 있는 메이슨을 걱정하는 마음이었다.온하랑은 오랜 고민 끝에 아기에게 ‘온강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태명은 ‘희망’으로 정했다. 건강하고 희망찬 하루하루를 보내라는 의미가 있다.인큐베이터 속 작은 아기는 간호사의 보살핌 아래 무럭무럭 자라며 모니터 화면을 통해 모습을 비추었다. 태어났을 때보다 살이 오르고 피부는 더 희어졌으며 머리카락도 짙어지고 몸도 한층 단단해 보였다.메이슨에 대해서는 최동철이 매일 온하랑에게 사진을 보내며 상태를 상세히 전해주었다.시간은 하루하루 평범하게 흘러갔다.온하랑은 일도 많지 않아 여유로운 나날을 보냈고 가끔 모니터를 보거나 뉴스를 훑어보았다.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핫이슈가 떠올랐다.[흉기 난동! 경주의 한 쇼핑몰에서 발생한 강력 사건!]온하랑은 별다른 생각 없이 기사를 클릭했다.누군가가 작성한 게시글에 따르면 경주 도심의 한 쇼핑몰에서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흉기로 여러 차례 찔렀고 현장은 피투성이였다. 마침내 달려온 경비원에 의해 제압됐다고 한다.목격자에 따르면 피해자는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한 부유한 인상이었고 용의자는 평범하고 초라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 빈부 격차에 대한 원한에서 비롯된 범행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경찰 발표에 따르면 피해자 임 씨(여)는 병원으로 옮겨져 생명에 지장이 없으며 용의자 부 씨(여)는 형사 구류 중으로 사건은 추가 수사가 진행

  • 위태로운 제안   제1214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가 파견한 사람은 여전히 부선월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심지어 서정훈 쪽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꽁꽁 숨은 부선월 때문에 부승민은 점점 불안해졌다. 그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온하랑의 곁을 지키고 싶었다. 입원했을 땐 부승민은 병원 주변에 수많은 사람을 배치시켜 부선월이 모습을 드러내기만 한다면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온하랑이 순조롭게 퇴원하고 산후조리를 위해 집으로 돌아왔지만 부승민은 그럼에도 쉽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부승민은 경주 경찰청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어쩐지 지금껏 부선월을 찾을 수 없더라니, 부선월은 애초부터 강남이 아닌 경주에 갔었던 것이다. 그녀는 경주에 오랫동안 숨어 지내며 임가희의 외출 루틴을 파악했다. 임가희는 몇몇 재벌집 사모님과 백화점을 쇼핑 중이었다. 칼을 들고 옆에서 뛰쳐나온 부선월이 임가희의 복부를 한 번 찌르고는 칼을 뽑아 또 미친 듯이 두 번 더 찔렀다. 임가희의 동행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고 행인들 역시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며 뿔뿔이 흩어져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모여들어 구경하기 바빴다. 누군가는 촬영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경비를 불렀고 또 누군가는 경찰에 신고했다. 물론 구급차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임가희를 몇 번이나 찌른 후, 부선월의 시선이 다시 임가희의 얼굴에로 옮겨졌다. 그와 동시에 부선월의 손에 들린 칼이 임가희의 얼굴을 세게 그었다...다급하게 현장에 도착한 경비원이 부선월을 떼어내며 칼을 빼앗아 그녀를 제압했다. 부승민이 손을 들어 마우스를 클릭해 동영상을 일시 정지시켰다. 영상 속 부선월은 꼬질꼬질하고 몸에 맞지도 않은 패딩에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인지 일반적인 깔끔함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예쁘게 자라 50세가 넘는 나이였지만 여전히 우아함을 유지하고 있던 평소의 부선월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부승민이 눈을 감았다. 그의 마

  • 위태로운 제안   제1215화

    부승민이 면회를 신청했다. 면회 허가가 떨어진 후 형사가 부승민을 심문실로 안내했다. 부선월은 취조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옷에도 얼굴에도 여전히 핏자국이 남아있어 처참한 모습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확인한 부선월이 다시 고개를 숙이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왔니?”마치 시들어버린 한 떨기의 꽃처럼 마르고 비틀어져 더 이상 싱그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부승민은 자신이 곧 부선월의 히스테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사람을 찌른 부선월은 오히려 평온하기만 했다. 너무도 평온해서 이상할 정도였다. “왜 그러셨어요?”부승민이 의자를 끌어와 부선월 맞은편에 앉았다. 부선월이 툭, 손바닥을 천장으로 내밀었다.“그거야 당연히 그럴 만한 짓을 했으니까.”“한 가지 소식을 알려드릴게요. 임가희 씨 안 죽었어요. 깨어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이미 나머지 생은 감옥에서 보낼 각오는 하신 거네요?”멈칫한 부선월의 얼굴에 순간 사나운 표정이 스쳐갔다. “안 죽었다고? 명도 길지. 아쉽게 됐네. 하지만 얼굴이 망가졌으니 그 얼굴을 최국환이 받아들일 리가 없어.”“또 다른 소식도 알려드릴게요. 최 회장님이 호수 별장에 다른 살림을 차리셨어요. 요 며칠 계속 거기서 지내셨고요. 임가희 씨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여자들이 있을 거예요. 하나하나 다 죽이실 만 하겠어요?”부선월 얼굴에 드리웠던 미소가 순간 굳어졌다. 그녀의 눈빛이 음산하게 변해갔다. “요즘 힘들게 지내신 것 같던데요. 심지어 남은 인생까지 내던지셨어요. 이런 남자를 위해 굳이 왜요?”“남은 인생?”부선월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녀의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눈가에는 곧 눈물이 새어나왔다. 마치 미치광이 같은 모습이었다. “내 남은 인생은 진작 망쳤어. 난 이제 돌아갈 곳이 없어. 끝까지 가는 수밖에.”부승민이 진지한 표정으로 부선월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직 돌아갈 수 있어요. 그러고 싶지 않으신 것뿐이

  • 위태로운 제안   제1216화

    잠시 생각하던 설윤이 고개를 돌려 최국환을 힐끔 쳐다보았다.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는 그를 보고는 곧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최국환 씨 휴대폰인가요? 여긴 경주세화병원입니다. 아내분께서 칼에 찔려 다치셨어요. 얼른 병원으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그 말을 들은 설윤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전 최국환 씨 비서예요. 말씀하신 건 지금 바로 전달해 드릴게요. 저기, 임가희 씨는 지금 어떠신가요?”“자상을 많이 입으셔서 출혈성 쇼크가 왔었어요. 다행히 빠르게 응급조치를 취한 덕에 생명에 지장은 없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얼굴이 칼에 베어 상처가 심한 편이라 성형외과 진료가 필요할 것 같아요.”“네.”전화를 끊은 설윤의 표정이 조금 멍해졌다. 그녀의 입 꼬리엔 저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임가희가 칼에 찔렸다고? 얼굴을 베였어?’‘대체 어떤 귀인께서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신 거야?’평소의 최국환은 오후 2시 30분쯤이면 잠에서 깨어났다. 설윤은 2시 15분 쯤 방으로 들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최국환을 깨웠다. “국환 씨. 국환 씨?”“응? 무슨 일이야?”최국환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잠에서 깨어났다. “방금 경주세화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임가희 씨가 다치셨다고요. 가보시겠어요?”말하며 입을 삐죽인 설윤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각하대?”설윤이 최국환을 부축해 일으켰다. “잘 모르겠어요.”“그럼 가 봐야지.”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최국환의 움직임은 느긋하기만 했다. “저녁 저랑 같이 드시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돌아오실 거예요?”설윤이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며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최국환이 미소 지으며 설윤의 손등을 토닥였다. “내가 안 갔으면 좋겠어?”“당연하죠.”설윤이 최국환의 팔을 끌어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임가희 씨가 병원에서 기다리고 계시잖아요.”“지난번에 마음에 드는 가방 있다고 했지?

  • 위태로운 제안   제1217화

    부승민이 취조실을 나간 후 부선월은 곧 기대에 가득 찼다.잠시 후 최국환이 오면 뭐라고 변명을 해야 그가 믿어줄까?부선월은 단지 최국환을 너무 사랑한 죄밖에 없었다. 한순간의 충동으로 저지른 일을 최국환은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자세를 바꾸며 고개를 숙인 부선월은 피가 잔뜩 튄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의 모습은 초라해 보일 것이 분명했다. 부선월은 허둥지둥 옷에 묻은 핏자국을 닦았다. 하지만 이미 옷에 스며든 핏자국은 아무리 애써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이러면 좀 깔끔해졌겠지?’이 모든 걸 마친 부선월이 인내심 있게 최국환이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부선월이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이 눈앞에 서 있자 부선월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서렸다. 젊은 시절 그랬듯이 다정한 눈빛으로 최국환을 쳐다보았다. “국환 씨, 왔어?”최국환은 어두운 얼굴로 흥, 콧방귀를 뀌었다. 그가 버럭 소리를 높였다. “부선월, 아직도 웃음이 나와?”호통에 움찔한 부선월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최국환을 쳐다보며 가여운 모습으로 입을 삐죽였다. “국환 씨, 무슨 일 있어?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화를 낼 수 있어?”“무슨 염치로 나한테 무슨 일 있냐고 묻는 거야?”CCTV 속 장면을 떠올린 최국환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가희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 지금도 병원에서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어. 이렇게 독하고 악랄한 인간인 줄은 몰랐는데.”최국환의 비난에 부선월이 순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뭐? 임가희가 왜? 내가 뭘 했다고 악랄하다고 하는 거야?”그 말에 최국환이 냉소 지었다. “부선월, 지금 이 상황에서까지 연기를 하는 거야? 정말 너무 실망스럽군.”“국환 씨, 난 정말 당신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그래? 그럼 고개 숙여서 네 손목에 차고 있는게 뭔지 봐봐. 주변도 자세히

  • 위태로운 제안   제1218화

    “그러니까 자네 말은...”“이미 본인의 신분을 알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부선월 씨 정신감정을 의뢰했다고 해요.”“어느 호텔에 있는지 알아보게.”...병실 안.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베이비시터의 휴대폰이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연지 씨, 고은이가 계속 울음도 그치지 않고 분유를 먹는 족족 토하고 있어요. 돌아오시는 게 어떠세요?”베이비시터는 임연지에게 고은은 처벌을 피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임연지는 아이의 아빠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아이를 원하지도 않았다고 말이다. 임연지는 고은이 태어난 후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는 물리기는커녕 눈길조차 주길 거부했다. ‘가여운 것.’차가운 임연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제가 있으면 데리고 병원에 가세요. 저한테 연락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에요?”그 아이만 보면 임연지는 자신이 온 경주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모욕을 겪은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베이비시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연지가 뚝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막 산후조리를 끝내고 아이의 수유 기간은 대략 6개월 정도였다. 이 6개월 사이에 다시 임신을 해야 형기가 만료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꼭 임신을 해야만 한다면 그녀는 꼭 마음에 드는 남자를 찾고 싶었다. “아...”임가희가 어렴풋이 의식을 회복했다. 쓰러지기 전 마주했던 잔인한 장면이 파라노마처럼 머리에 스쳤다. 임가희는 공포에 질린 채로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닿은 건 얼굴의 피부가 아니라 둘둘 감아진 거즈였다. “고모, 드디어 일어나셨어요?”인기척이 들리자 침대 맡으로 다가간 임연지가 눈시울을 붉혔다. “부상이 심각해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의사가 그랬어요.”“내 얼굴...”임가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로 인해 얼굴의 근육이 움직이자 통증이 신경을 타고 올라왔다. “의사가 최선을 다해 봉합했어요... 나중에 성형외과 시술도 받으실 수 있고요... 고모,

최신 챕터

  • 위태로운 제안   제1307화

    방안은 어두웠고 쥐죽은 듯 조용했으며 가끔 바깥 거리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만 들렸다.설윤이 네 번째로 몸을 뒤척일 때 옆에서 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이 안 와요?”낮고 유혹적인 목소리가 깊은 밤의 정적을 뚫고 그녀의 고막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 동철 씨도 잠이 안 와요?”“네.”최동철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내는 다시 조용해졌고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집안의 난방이 너무 커서인지 설윤은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다치지 않은 발목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팔을 이불 밖으로 내밀었는데 조심하지 않고 최동철이 밖에 놓은 팔과 부딪혔다.피부가 닿는 순간 설윤은 재빨리 팔을 비켰으나 뜻밖에도 최동철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그의 손은 매우 컸다. 뜨거운 온도가 그녀의 몸에 닿는 순간 그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얼굴에 퍼지며 설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설윤은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에서 손목을 빼려고 힘을 썼지만 실패했다.“뭐 하는 거예요?”“보통 운동 후에 몸이 피곤해서 잠이 잘 오는데, 한 번 시도해 보겠어요?”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둠 속에서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설윤은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묻는 것 같았다.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벼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그녀의 대답은 마치 닫힌 문을 여는 열쇠처럼 들렸다. 최동철은 그녀의 팔을 풀어주었는데 그녀가 손을 거둘 때 신속히 이불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남자는 공격적인 기운을 풍기며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또 겁이 났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손끝을 그의 가슴에 떨어뜨린 채 천천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 어깨에 놓았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 그럼...”“조심할게요.”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서로의 눈 밑에는 빛을 볼 수

  • 위태로운 제안   제1306화

    설윤이 차례로 밖에 씌워져 있는 랩과 붕대를 제거하니 몇 바늘 꿰맨 상처가 드러났다.그녀는 알코올로 주변을 부드럽게 닦은 후 다시 연고를 꺼내 면봉으로 고르게 발랐다.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드러난 옆모습은 매끄러운 얼굴 라인을 자랑했다. 아마 스무 살 어린 나이어서인지 볼에는 젖살이 있어 통통했고 피부는 희고 섬세해서 모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거즈를 몇 바퀴 두른 후 설윤은 나비 모양으로 매듭을 지었다.“다 됐어요.”“고마워요.”“별말씀을요.”설윤은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난 샤워하러 가고 싶어요. 욕실에 걸상 하나 놔줄 수 있어요?”최동철은 몸을 일으켜 동그란 걸상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다시 나오면서 그는 다치지 않은 팔을 내밀려 말했다.“부축해 줄게요.”설윤은 느릿느릿 침대로 옮겨 한 손을 그의 팔에 얹고는 다치지 않은 발을 먼저 땅에 대고는 절뚝거리며 화장실로 갔다.그녀를 안쪽 욕실로 데려다준 후 최동철은 샴푸 등을 욕실 벽에 있는 선반 위에 놓아주고는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아 주었다.설윤은 느릿느릿 옷을 벗었다. 속옷은 팬티는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빨면 곧 마를 수 있겠지만 마르기 전에는 그저...이틀 전에는 혼자 살아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곁에 남자가 한 명 많아졌다.그러나 씻지 않으면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두 장 더 사는 건데...’고민 끝에 설윤은 속옷을 빨았다. 다 빤 후 드라이어로 말리면 10분 정도면 다 마를 수 있었다.이때 설윤은 문득 최동철이 나왔을 때 머리를 말리지 않은 것이 떠올랐는데 보아하니 드라이어로 팬티를 말린 것 같았다.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설윤은 팬티를 씻고 말린 후 간단히 머리도 말렸다. 그런후 속옷과 팬티를 입고 목욕 수건을 둘렀는데 다행히도 이 수건은 충분히 길어서 가슴부터 무릎까지 감쌀 수 있었다.이때 밖에서 문소리가 들렸다.“다 씻었어요?”“...네.”“그럼 제가 들어갈까요?”

  • 위태로운 제안   제1305화

    그녀의 최근 행동을 보면 물질, 환경, 품질 등에 큰 요구가 없는 것 같다."물론이죠."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도련님은 일반인에게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설윤은 회억에 잠겨 말했다.“제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이웃들이 그러는데 엄마 병은 고칠 수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일찍 퇴원했기 때문에 병세를 끌어서 돌아갔다고 했어요.”엄마가 돌아간 후 집주인은 장례를 치러주고는 그녀를 보육원에 보냈다.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최동철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미안해요.”그는 그녀의 신원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문서에는 간단히 ‘6살 때 생모 병으로 사망’으로만 적혀있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들으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괜찮아요. 다 지나갔어요.”설윤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혹시 동철 씨는 돈이 싫으세요?”최동철은 그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최국환과 임가희와 암투를 벌였을까?“돈은 나에게 있어 숫자일 뿐이죠. 어쩌면 우리가 다투는 것은 돈이 아니라 권력이에요.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력이죠.”최동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설윤은 아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서 최동철을 끌어들인 후 그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이렇게 허름한 곳에 왔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참았을 뿐이다.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겨울 날씨여서 그런지 금세 어두워졌다.저녁을 먹은 후 설윤은 또 얼음찜질하고 연고를 한 번 더 발랐다.발목 부기가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보아 최동철이 샤워를 하는 모양이다.며칠 동안 피해 살다가 드디어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에 이르자 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어깨에 부상이 났다고 설윤이 일깨워주었지만 최동철은 신경 쓰지 않고 랩으로 상처를 감싼 후 씻으러 갔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어젯밤에 본 화면이 떠올랐다.넓은 어깨와 가슴,

  • 위태로운 제안   제1304화

    최동철은 잠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그런데, 젊은이. 아내랑은 어떻게 알게 됐어? 정말 잘 어울리네.”둘 다 잘생기고 아름다웠으니까.“저희는... 대학 동기입니다.”“그래? 몰라보겠어. 아내는 참 어려 보이는데 벌써 스물여섯이라니.”최동철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동안이라 자주 오해를 받습니다.”스물여섯은 설윤의 가짜 나이였다.집주인은 작은 양념병을 들고 나와 최동철에게 건넸고 우유 두 병도 함께 내주었다.돌아온 후, 최동철은 집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설윤에게 전했다.설윤은 웃으며 말했다. “동철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서로 잘 맞춰주니 완벽하네요.”최동철은 가볍게 웃으며 가스레인지의 밸브를 열었다.점심은 밥에 감자 볶음과 돼지고기였다.최동철의 요리 실력은 훌륭했다. 삼겹살을 바삭하게 볶아내 느끼함 없이 밥과 잘 어울렸다.다행히도 다친 쪽은 왼팔이라 오른손으로는 무리 없이 할 수 있었으나 속도는 다소 느렸다.식사 후, 설윤은 다시 한 번 발목에 냉찜질을 했다.냉찜질을 끝낸 후 최동철이 약을 가져오자 설윤이 말했다. “제가 할게요.”“그래요.” 최동철은 순순히 응했다. 한 손으로는 불편했으니까.바쁜 대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외출할 수 없는 민박집 안, 두 사람은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설윤은 침대에 기대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최동철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잠시 멍하니 있었다.설윤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옆모습은 뚜렷한 이마선과 오똑한 콧대가 더해져 눈매가 깊어 보였고 날카로운 턱선이 또렷했다.정말 잘생겼다.그의 이목구비는 최국환과 약간 닮았다.하지만 나잇살이 들어 퉁퉁해진 최국환과는 달리 최동철은 참으로 젊었다. 눈빛 속에도 서른 살 남자의 단단함으로 가득했고 이는 세상 물정에 밝고 노련한 최국환과 완전 달랐다.잠시 머뭇거리던 설윤이 말했다. “동철 씨, 피곤하면 여기서 주무세요.”그의 키는 너무 커서 작은 소파에선 편히 쉴 수 없었다.설윤은 발목 부상

  • 위태로운 제안   제1303화

    최동철은 약품이 담긴 봉지를 찾아 안에서 멍과 부기를 가라앉히는 연고를 꺼냈다. 고개를 돌리니, 설윤이 느릿느릿 신발을 벗고 있었다.그는 연고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해줄게요.”신발과 양말을 벗자 뽀얗고 작은 발이 드러났다. 다섯 개의 발가락은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고 동글동글 귀여웠다. 발톱은 깔끔한 곡선을 이루며 정리되어 있었으며 발등의 뼈선은 유려하게 흐르며 섬세한 곡선을 그렸다.발목 근처에는 큼직한 멍과 부기가 올라와 있었다.최동철은 그녀의 발바닥을 받쳐 들고 부은 부위를 살짝 눌러보았다.“앗...” 설윤이 숨을 들이마시며 얼굴을 찡그렸다.“아파요, 누르지 마세요.”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상태가 꽤 심각해 보이는데 내가 침대까지 옮겨줄 테니까 당분간은 움직이지 마요.”그렇게 말하며 일어나 그녀를 안으려 했다.“안 돼요!” 설윤은 급히 손으로 그를 막았다. “동철 씨도 팔 다쳤잖아요.”최동철은 몸을 숙여 다친 왼팔은 내리고 오른팔로 그녀의 다리 밑을 감싸 안았다. “두 손으로 내 목을 잡아요. 이쪽 팔은 힘을 쓰지 않을 거니까 안심해요.”한 손으로 안으려고?설윤은 그의 목에 양팔을 감고 조심스럽게 몸을 맡겼다.그는 오른팔로 그녀의 허벅지를 받치고 두 걸음 만에 침대 곁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잠시만 기다려요. 집주인한테 얼음팩 좀 받아올게요.”“네.”최동철은 약 10분 뒤 얼음주머니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하나는 냉장고에 넣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발목에 살며시 대주었다.얼음의 차가운 감촉에 설윤은 본능적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손으로 얼음주머니를 누르며 말했다.“너무 차가워요.”“20분은 찜질해야 해요. 하루에 세 번에서 네 번 정도로요.”설윤은 그에게 붕대를 가져와 얼음주머니와 발목을 단단히 감도록 했다.그녀는 침대 머리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둘 다 밖에 나가지 말죠. 배달 앱으로 장을 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동철 씨,

  • 위태로운 제안   제1302화

    의사는 최동철을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 “젊은이, 앞으로는 아내 말 잘 들어요.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여보, 들었지? 의사 선생님도 그러시잖아!”최동철은 잠시 입을 말없이 있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어.”봉합이 끝난 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었다.병원을 나서며 설윤은 최동철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누가 데리러 와요?”최동철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짧게 대답했다.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설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요?”“그건 알 필요 없어요.”설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요.”그녀는 두 걸음 앞서 걸으며 말했다.“이 작은 도시는 꽤 조용하네요. 며칠 더 머물 생각인데, 동철 씨도 안 간다니까 같이 지낼까요? 서로 보호도 되고.”최동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호텔은 눈에 띄니까 단기 임대 민박을 찾는 게 더 안전하고 편리할 거예요.”“좋아요.”“근데 검색해 보니까 민박은 대부분 더블침대 방이더라고요. 괜찮으세요?”“설윤 씨가 괜찮다면 전 상관없어요.”“그럼 예약할게요.”최동철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온라인으로 예약할 거예요?”대부분의 예약 앱은 신분증 정보를 입력해야 해서, 한 번 사용하면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설윤은 그의 걱정을 알아채고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이 폰은 제 이름으로 등록된 게 아니에요. 추적 못 할 거예요.”최동철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준비가 철저하네요. 그런데 어떻게 임가희한테 이렇게 몰렸어요?”“임가희가 이렇게 빨리 제 존재를 눈치챌 줄 몰랐거든요. 그랬다면 좀 더 철저히 준비했을 텐데요.”최동철은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먼 곳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이 그녀의 정보를 넘긴 장본인이 아니라는 듯이.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두 사람은 예약한 민박으로 향했다.민박은 단일 방 구조로, 면적은 47㎡. 방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오픈형 주방이 있고 가스레인지

  • 위태로운 제안   제1301화

    이튿날 아침, 최동철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패딩 점퍼에 청바지, 스니커즈, 그리고 새로 정리한 헤어스타일까지 더해지니 몇 년은 젊어 보였다. 게다가 넉넉한 핏의 패딩은 그의 체형을 자연스럽게 감춰주었다.“자, 마스크도 잊지 말고 쓰세요.”“네.” 최동철은 대답하며 책상 위의 마스크를 집어 썼다.지금 이 모습이라면 자세히 보지 않는 한 그를 알아보긴 어려울 터였다.최동철은 설윤이 입고 있는 패딩 점퍼를 힐끗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설윤은 웃으며 설명했다. “작은 가게라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어요. 그리고 커플룩이 신분을 숨기기에 더 좋아요.”“그렇군요.”“제가 먼저 내려가서 체크아웃하고 주변 상황을 살펴볼게요. 연락드리면 그때 내려오세요. 미리 택시도 불러놓을게요.”“알겠습니다.”“그럼 다녀오겠습니다.”“네.”설윤은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나갔는데 가방 안에는 두 사람이 입었던 옷이 담겨 있었다. 이곳에 그냥 두면 흔적이 남을 수 있어 길 가다 버릴 생각이었다.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설윤은 무사히 로비에 도착해 체크아웃을 마쳤다. 거리로 나서며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면서도 그녀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살폈다.길 건너편 왼쪽, 작은 만두 가게에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가게 앞에는 접이식 테이블 두 개가 놓여 있었고 그중 한 테이블에는 건장한 남자가 앉아 가끔씩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그 자리는 아침을 먹으며 호텔을 감시하기에 딱 좋은 위치였다.설윤은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는데 감시자는 그 남자 한 사람뿐인 듯했다.아마도 어젯밤 이들이 호텔 방마다 수색했지만 최동철의 흔적을 찾지 못해 속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한 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주변을 수색하러 간 모양이었다.2분쯤 지나 설윤이 부른 택시가 호텔 앞에 도착했다.설윤은 최동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차 문을 열며 짐을 싣다가 말했다. “기사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 남편이 금방 내려올 거예요.”“네, 알겠습니다.”설윤은 다시 로비로 들어갔다.1분쯤

  • 위태로운 제안   제1300화

    최동철이 말했다.“그럼 내일 병원에 다녀와야겠어요.”“제가 도와드릴게요.”약을 다 바른 뒤, 설윤은 그에게 거즈를 감아주며 말했다. “됐어요, 이제 좀 쉬세요. 전 잠깐 나갔다 올게요.”“어디 가려고요?” 최동철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임가희 쪽 사람들이랑 마주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요.”“필요한 물건을 좀 사야 하거든요. 걱정 마세요.” 설윤은 가볍게 비웃으며 말했다. “그 인간들 손아귀에서 도망쳐 나온 제가 다시 잡힐 것 같아요?”최동철은 그녀가 방금 주머니에 넣은 휴대폰을 힐끗 보며 물었다. “왜 아버지한테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 거예요?”“이미 기회를 놓쳤어요. 제가 뭐라 해도 믿지 않을걸요?”“그럼 이렇게 지내는 것도 괜찮아요?”“당연히 괜찮지 않죠. 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어요. 기회만 생기면 반드시 다시 돌아갈 거예요.”“성공하길 바라요.” 최동철이 씩 웃으며 말했다. “돈은 있어요? 부족하면 제 카드를 써요.”설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럼 조금만 써도 돼요?”돈이야 많을 수록 좋은 법이니까.최동철은 벽에 걸린 외투를 가리켰다. “지갑은 저기 외투 주머니에 있으니까 직접 꺼내요. 현금은 많지 않지만 블랙카드는 비밀번호가 필요 없어요. 사람이 적은 ATM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을 거예요.”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니 고급 가죽의 촉감이 손에 닿았다.“얼마든지 뽑아도 괜찮아요?” 그녀가 돌아보며 물었다.“물론이죠.”“최 대표님, 참 후하시네요.”“제 목숨은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까요.”설윤은 밖으로 나갔다.최동철은 항생제를 먹고 씻은 뒤 침대에 누워 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곤했던지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깨어났다.시계를 보니 벌써 열한 시였다.설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최동철이 일어나 그녀를 찾으러 갈까 고민하던 찰나, 설윤이 돌아왔다. 그녀는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늦었네요. 위험한 일은 없었어요?”“없었어요.” 설윤은 고개를 저으며

  • 위태로운 제안   제1299화

    최동철은 그 말을 듣고 샤워기를 틀었다.설윤은 간식이 담긴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그 위에 놓인 칼을 가렸고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걸어가 문을 여니 예상대로 복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는 방 안을 힐끗거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키우는 햄스터가 실수로 도망쳤는데, 혹시 보셨나요?”설윤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방금 밖에 나갔다 와서요. 잘 모르겠네요. 남편한테 물어봐 드릴게요.”그녀는 욕실 쪽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혹시 햄스터가 들어오는 거 봤어?”샤워기에서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설윤은 욕실 문을 살짝 열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여보, 작은 햄스터가 들어온 거 못 봤어?”몇 초간 침묵이 흐른 후, 그녀는 머리를 빼고 남자에게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못 봤대요. 다른 곳도 한번 찾아보세요.”“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남자는 의심 없이 돌아섰다.최동철처럼 몸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숨겨줄 이는 남자일 수밖에 없었다.설윤은 차분히 문을 닫고 귀를 문에 붙여 조심스럽게 소리를 들었다. 남자가 정말로 떠났음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욕실 문을 열며 말했다. “갔으니 나와요.”그리고 테이블로 가서 비닐봉지 안에서 약들을 꺼냈다. “자요, 여기 이 약들이 충분한지 확인해봐요.”최동철은 뒤에서 걸어나와 약의 종류와 양을 살펴봤다. “고마워요.”“별말씀을요.” 설윤은 생수를 주전자에 붓고 버튼을 눌렀다. “제가 약 발라줄까요?”“그럼 부탁할게요. 고마워요.”최동철은 잠시 망설였으나 곧 수락하고 천천히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그가 왼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자 설윤이 다가가 도와주었다. 그녀는 그의 겉옷을 벗기고 벽걸이에 걸었다.안에는 짙은 회색 니트가 있었고 상처 부위는 터져 피로 얼룩져 있었다. 니트를 벗으려면 팔을 들어야 했기에 설윤은 그의 어깨 상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잘라낼까요? 이 옷은 이미 알아본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