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과 곤봉을 든 수백 명의 장정들이 그들을 향해 뛰어왔다. 그들의 기세에 강우연은 그 자리에서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런데도 강우연은 어깨가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내며 연약한 몸으로 한지훈의 앞을 막아서 그를 보호하려 했다. 그녀는 손에 중절모를 들고 파이프를 피는 중년 남자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제 잘못이에요. 이 사람은 풀어주세요! 제가 다 책임질게요... 제발요..."다리 힘이 풀려 스르륵 쓰러지는 그녀의 어깨를 따뜻한 손이 감싸주었다.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화가 난 얼굴을 한 한지훈을 보면서 말했다."뭐 하는 짓이에요! 김씨 가문의 김정학 어르신이에요. 어르신의 수하만 몇천 명이에요, s 시의 탑4 재력가중의 한 명이세요. 당신이 상대할 사람은 아니니 먼저 고은이를 데리고 이 자리를 떠나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한지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다정한 눈빛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정리해 주면서 말했다. "자기는 내 사람이야, 내 여자가 누구 앞에 무릎 꿇고 비는 걸 볼 수 없어.""아! 삼촌... 삼촌... 살려줘요! 제발요..."피투성이가 된 김태우가 김정학을 향해 울부짖었다. 김정학은 그런 김태우를 쓸쓸한 눈빛으로 보았다. 너무나 비참한 모습을 한 조카를 보고 있자니 분노가 몸에 치솟았다."감히! 내 조카를 건드려? 죽는 게 두렵지 않나 보군?"한지훈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강우연을 자기 쪽으로 끌어안으면서 말했다."당신이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이놈!"김정학의 분노한 소리에 뒤에 있던 수백 명의 수하들이 도검과 곤봉을 꽉 쥐어 올렸다. 김정학의 한마디면 한지훈과 강우연을 흔적도 없이 썰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내 앞에서 두 눈 똑바로 이런 말을 하는 녀석은 처음이군. 너에게 두가지 선택지를 주겠다. 하나는 무릎 꿇고 빌게 된다면 사지를 못 쓰게 만드는 거로 끝내겠어. 다른 하나는 너와 이 여자 둘 다 죽는 거야."김정학의 말을 들은
김정학 옆에 있던 부하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어르신, 따라가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그냥 보내실 셈입니까?”부하의 말에 김정학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귀싸대기를 갈겼다. 어찌나 세게 후려쳤는지 부하가 땅에서 뒹굴 정도였다. “이런 쓸모없는 머저리 같은 것들! 썩 꺼져버려!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이야!”김정학은 분노로 끓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텅 빈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땅에 널브러져 있는 부하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S시에서 감히 김씨 가문을 대적할 상대가 있다니……김정학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빨리! 형님한테 가야겠어. 앞장서!”김정학은 이 일을 한시라도 빨리 김씨 가문의 주인인 김정필한테 알려 그가 나서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김태우는 감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인데…… 한지훈이 그리도 막강한 실력을 갖춘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다니 마음이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낭월 산장.강우연은 지프차에서 뛰어내리다시피 했고 온통 피투성이인 몸을 하고 비틀거리며 침실로 돌진했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 편히 잠든 고운이를 보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고운이가 울음소리를 들을세라 입을 가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침대 앞으로 걸어가 조심스레 쪼그리고 앉아 고운이의 조그마한 얼굴을 쓰다듬으며 울먹였다.“고운아, 엄마 왔어. 고운아, 엄마야……”옆에 있던 세 명의 의사는 갑자기 들이닥친 피투성이 강우연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분이 사령관님 부인이신가? 이렇게 다친 몸으로 지금까지 견디다니, 이게 바로 엄마의 힘인가?’강우연은 급기야 침대 앞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그녀는 정신이 혼미해진 뒤에도 여전히 고운이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정신 차리세요! 얼른 방으로 모셔!”세 명의 의사는 강우연을 옆 방에 눕히고 동시에 그녀의 상처를 치료했다. 강우연의 총상을 발견하고 세 명의 의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
“당신 뭐야! 이거 안 놔! 아프잖아!”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치던 강희연이지만 고개를 돌려 한지훈과 눈을 마주친 순간, 벼락에라도 맞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뭐야, 이 남자... 이 눈빛... 정말 사람이 맞긴 해?’한지훈의 온몸에서 풍기는 무거운 살기가 그녀를 삼켜버릴 듯해 숨이 턱 막혔다.겁에 질린 강희연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킨 순간, 한지훈은 거칠게 그녀의 손을 놓아버렸고 그 충격에 강희연은 비틀거리다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강우연 역시 그대로 한지훈의 품에 쓰러지고 말았다.강우연을 꼭 끌어안은 한지훈이 다급하게 물었다.“우연아, 정신 좀 차려봐. 우연아!”한지훈의 품에 안긴 강우연은 쇼크가 온 건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상처에서 흐른 피로 붉게 물든 이마와 어깨, 그리고 벌써 감염이 시작된 건지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이마...한지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젠장...”마음속 걱정과 다급함은 곧바로 방금 전 강우연에게 물을 끼얹고 모욕의 말을 던지던 강희연에게로 향했다. 한지훈이 바로 일어서 그녀를 응징하려던 그때, 강우연의 희고 가는 손가락이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그리고 숨소리처럼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안 돼요. 그만... 이제 그만해요. 나 이만 돌아가고 싶어요. 우리 고운이 얼굴도 얼른 보고 싶고요. 그러니까 우리 이제 집에 가요, 네?”강우연의 진심어린 말에 한지훈도 분노를 억눌렀다.“그래, 우리 집에 가자.”동시에 강우연을 번쩍 안아든 한지훈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고...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희연이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거기서!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네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그런 곳인 줄 알아! 당장 잡아! 잡으라고!”강희연의 외침에 집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하지만 한지훈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순간 거구의 장정들 역시 그 자리에 얼어붙는 수밖에 없었다.지금 그의 앞을 막아선 남자가 끔찍
이와 동시에 신룡전 소속 삼천 호용 고수들은 각자 전세기를 타고 용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S시!그리고 그의 움직임은 바로 용국 항공관리국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예정에도 없는 전세기가 갑자기 몇 천대가 늘어났으니 비상 상황은 아닐지 의심할만도 했다.관리국 국장은 바로 공군 작전보고실에 이 상황을 보고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막지 말고 전부 통과시켜라 였다. 아니, 민용 항공편을 취소해서라도 전세기들의 길을 막지 말라는 내용뿐이었다.신룡전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는 건 결코 항공 관리국만이 아니었다. 수 년간, 각자 움직이며 작전을 이어가던 그들이 이렇게 한 곳에 모인다는 건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징조, 용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비밀 조직들이 전부 은밀하게 신룡전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리고 그들의 첩보원들이 전한 소식은 전부 동일했다.신룡전 호용 고수들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S시!용국의 작은 도시에 불과한 S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 다들 의아할 따름이었다.다시 낭월 산장.지하실을 나선 한지훈이 거실로 돌아오고 용일이 빠르게 다가와 상황을 보고했다.“신룡전 삼천 호용 고수들 전부 용국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차례대로 S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그래.”짧게 대답한 한지훈이 창문 앞에 서 묘한 표정으로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4대 용존님도 S시에 도착하셨습니다. 지금 사령관님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고요.”4대 용존, 한지훈을 제외하고 용일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이기도 했기에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흥분이 느껴졌다.삼천 호용고수에 4대 용존까지 모였으니 금조그룹이 아니라 S시, 아니. 동원구의 모든 재벌가 그룹들이 함께 힘을 쓴다 해도 결코 막을 수 없는 초강력 팀이 결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알겠어. 호용 고수들은 S시 외각에서 주둔하라고 해. 평범한 시민들한테 피해주지 않도록 조심하고. 행적이 드러나지 않게 은밀하게 움직이라고 전하고.
곧 큰 사건을 앞드고 있어서일까? S시 전체에 기이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그리고 잠시 후, 송호문의 사무실.그의 앞에는 김정학의 세 숙부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다.묘한 분위기의 정적 끝에 세 사람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송 청장, 며칠 뒤에 우리 가문에서 아주 성대한 행사를 열 예정이네. 장소는 여기 지도에 그려진 범위, 참여 인원은 약 2000명쯤 될 것 같아. 송 청장 애들이 괜히 이 근처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행여나 우리 가문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들린다 해도 행사가 끝나고 나서 다시 얘기했으면 좋겠네. 괜히 안 좋은 일에 휘말릴까 봐 걱정돼서 그래. 우리 송 청장,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지 않겠나?”너무나 무례하고 건방진 요구에 송호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김해준 이사장님! 이곳은 S시 경찰청입니다. 이사장님 집 안방이 아니라고요. 이사장님 말씀이 정말 통하실 것 같습니까? 경찰청 청장을 이렇게 협박하고도 정말 무사할 거라 생각해요? 그쪽 집안과 관련된 그 추잡한 일들 제가 정말 탈탈 털어볼까요?”송호문의 가슴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재벌가 사람들에겐 대통령마저도 청와대를 잠깐 스쳐가는 손님일 뿐이라지만 공권력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이렇게 대놓고 협박할 수가 있나 싶어 화가 나고 기가 막혔다.하지만 그의 분노에도 세 사람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하하, 송 청장, 그래. 자네가 우리 가문이 하는 일에 대해 불만이 많다는 거 우리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 조카가 동원구 군단장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그리고 자네가 주장하는 우리 가문의 범죄들, 아직 혐의에 불과하지. 제대로 된 증거 하나 잡은 거 없을 텐데... 우리도 어디까지나 좋은 마음에서 자네를 만나러 온 거란 걸 알아줬음 좋겠네. 우리 송 청장 다칠까 봐 진심으로 걱정되는 마음에서 말이야.”말을 마친 김해준 일행은 바로 사무실을 나섰다.혼자 남겨진 송호문은 한참을 씩씩대다 결국 찻잔을 바닥에 내팽개쳤다.“미쳤어!
문앞을 막은 직원들이 바로 허리를 숙인 채 뒤로 물러서고 그 사이로 지팡이를 든 노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백발이 무성하고 거동도 편치 않은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죽지 않은 날카로운 시선이 남자가 한때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었는지 그대로 말해 주고 있는 듯했다.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바로 고개를 숙였을 그 눈빛도 전장에서 진정한 죽음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 피부로 느꼈던 한지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기에 태연하게 그를 맞이했다.한편, 혐오 가득한 시선으로 강우연을 훑어보던 강준상이야말로 한지훈을 마주한 순간 움찔하고만다.‘저 청년... 어떻게 저런 눈을 가지고 있지? 마지 사신 같아. 아니, 맹수 같은가... 어찌 보면 세상 풍파 다 겪은 노인 같은 눈이기도 하군.’강준상, 50년째 강운그룹 회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존재, 강운그룹을 삼류 중소기업에서 지금의 대기업으로 키운 장본인이기도 했다.“할아버지, 제 말이 맞죠. 강우연이 글쎄 남자랑 같이 집에 돌아왔다니까요. 게다가 어쩜 그렇게 뻔뻔하게... 할아버지더러 직접 마중까지 나오라고 하는 건지...”강준상을 부축해 함께 나온 강희연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강희연, 강우연의 사촌언니인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동생을 싫어하게 된 걸까?이 모든 감정의 시작은 바로 질투였다.딸이라곤 강우연, 강희연 둘 밖에 없는 집안이었지만 강희연이 아무리 노력해도 할아버지 강준상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손녀는 바로 강우연이었다. 먹고 입는 것에서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건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도 강준상은 항상 강우연을 대동했으니까.5년 전, 결혼도 하지 않은 강우연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집안에서 쫓겨난 뒤에야 강희연은 그 자리를 대신해 강준상의 곁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그래서 강희연은 강우연이 증오스러웠고 다시 나타난 그녀의 존재가 너무나 불안했다.이제 겨우 익숙해진 이 모든 것들을 전부 빼앗아가는 건 아닐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한편, 강준상은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김정호는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교진산의 부하들에 의해 쫓겨났다.전화 한 통에 교진산이 이토록 이상해지다니…… 김정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이마에 식은땀이 나기까지 했다.그는 그 전화 한 통이 한지훈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김정호는 인맥이 꽤 있는 편이라 이미 한지훈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구체적인 정보는 아예 찾을 수가 없었다.이것이 바로 김정호가 이곳에 온 이유다.“가자! 빨리 데려다줘!”심상치 않은 기운에 김정호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느꼈고 빨리 자신의 형에게 이 일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김씨 가문이 상대하기에도 한지훈은 절대 만만치 않았다.그런데, 김정호가 도로에 진입했을 때 주위에 4대 녹색 지프차가 나타나 거칠게 그들을 막아섰다.끼익!급정거로 인한 괴성이 온 거리에 울려 퍼졌고 김정호의 자동차는 지면에 긴 검은색 타이어 자국을 남겼으며 타이어에서는 흰 연기나 뿜어져 나왔다.“무슨 일이야?”뒷좌석에 앉아있던 김정호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는지 소리쳤다.앞좌석 부하가 내려서 상황을 살피려는 찰나, 차 문은 밖에서 벌컥 열렸다.검은색 중산복을 입은 특수요원들이 직접 차량 통제에 나섰다.몇몇은 총을 김정호의 머리통에 겨누더니 차갑게 말했다.“김정호! 당신은 지금부터 외부와 아무런 연락도 할 수 없어! 압류되었다고!”김정호는 너무 화가 나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아주 제멋대로네? 죽고 싶어 환장했어? 내가 누군지 알고 까부는 거야? 나 김정호야! S시 김씨 가문이라고, 내가! 누가 시켰는지 당장 말해! 어디 낯짝이나 보자!”“나야!”갑자기 사람들 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이목을 집중시켰다.한민학이 뒷짐을 지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자기 군복과 모자를 고쳐 쓰더니 말했다.“김정호, 오랜만이야! 별일 없지?”“뭐 하자는 겁니까? 나한테 감히 뭐 하는 짓이냔 말입니다!”김정호의 얼굴빛은 잿빛이 되어버렸다. 한민학이 S시 총사령관이고 본인보다 상급자인 건 엄연한 사실이
“도착했습니다!”여느 때처럼 용좌에 앉은 김정필의 주먹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털썩!용오가 온몸이 피투성이인 김태우를 바닥에 털썩 내려놓았다.그 충격에 튀어오른 빗물이 김태우의 온몸 가득 뒤덮인 상처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으아아악, 아버지. 저...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자식들... 좀 죽여주세요! 저... 이제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어느새 피로 물든 빗물 위에 누운 김태우가 저 멀리 거실 쪽에서 보이는 그림자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퍽!”하지만 한지훈은 그 아우성마저 듣기 싫다는 듯 김태우의 등을 거세게 걷어찼다.“야! 한지훈! 너 진짜 죽고 싶어? 여긴 이제 우리 집이야. 우리 구역이라고!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네가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아버지가 그 유명한 김정필이야. 네 사지를 산 채로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 아, 아니지. 강우연 그 계집애, 네 마지막 숨을 붙여두고 네 앞에서 강우연 그 계집애를 더럽혀주겠어. 그리고 그 더러운 핏줄도... 내가 진작 죽어버렸어야 했는데!”이제 정말 집으로 왔다는 안도감에서인지 그 동안 정말 금방이라도 죽을 듯 축 늘어져있던 사람이 미친 듯이 날뛰며 온갖 악담을 퍼붓기 시작했다.하지만 그의 등을 밟은 한지훈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콰직.등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으아아악! 아파! 아버지! 저 좀 살려주세요!”이대론 정말 가슴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김태우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그리고 한지훈 역시 용좌에 앉은 김정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한지훈이라고 했나? 그래. 그 패기 하나는 인정해 주지. 감히 8명만 데리고 우리 집에를 쳐들어와? 꼭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하루살이 같은 꼴이구나. 정확히 3분 주마. 내 아들 풀어줘. 그리고 바짝 엎드려서 우리에게 용서를 빌어라. 그렇게만 한다면 네 가족들만은 용서해 주마.”김정식의 분노 어린 목소리가 저택에서 메아리가 되어 울리고 또 울렸다.하지만 한지훈의 입가에는 도발적인
단해룡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십 명의 천왕계 고수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단해룡을 중심으로 한 무리는 더 이상 강우연과 말다툼을 벌이지 않았고, 행동으로 강우연에게 한씨 가문이 반드시 멸할 것이라고 알렸다! “너희들…… 정말 내 스승님이 돌아오시는 게 두렵지 않다는 말이냐?!”천검종의 한 제자가 급히 앞으로 나서서 강우연을 가로막으며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도청전인은 이제 단해룡과 무리를 견제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단해룡 일당에게 있어 초천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도청전인은 대화조차 나눌 자격이 없는 존재였다.“네가 말하는 게 도청전인이냐?! 그가 내 앞에 선다 해도, 감히 나를 반하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단해룡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말과 함께, 단해룡의 몸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순식간에 강우연을 향해 돌진했다.“멈춰라!”단해룡이 강우연으로부터 다섯 걸음도 채 떨어지지 않았을 때, 무리 뒤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도포를 두른 한 노인이 있었다.백발이 바람에 휘날리며, 선인과 같은 풍모를 자아내며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다.“도청전인?!”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쳤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청전인이 강우연을 위해 직접 나설 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하지만 문제는, 과연 단 한 명의 도청전인이 단해룡을 포함한 수십 명의 고수들을 상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모두 오성 용급 천왕계 강자였고, 도청전인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혼자서 이 모든 적을 상대할 수는 없을 터였다.“도청전인, 나는 불필요한 살생을 원치 않는다. 천검종과 한씨 가문은 본래 아무런 연관도 없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강우연과 초천서의 자식들을 위해 이 많은 무림인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냐?”단해룡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도청전인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빠르게 강우연에게 다가갔다.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예를 갖춘 채 말했다.“노비가 늦게
그때가 되면 누가 국왕의 자리에 오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단해룡은 이렇게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단해룡! 감히 국왕 폐하를 무시하다니, 네 놈은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이순풍이 분노를 터뜨리며 손을 들어 단해룡의 가슴을 향해 공격했고, 사성 천왕계의 강대한 힘으로 주변 공기가 요동치며 거대한 소용돌이가 형성되었다. 그 기세는 단해룡을 단숨에 제압할 듯했지만, 이순풍의 손바닥이 단해룡에게 닿기 불과 세 치 거리에서 단해룡이 주먹을 내질렀다! 그 주먹에는 강력한 진법의 위력이 담겨 있었다.이순풍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그가 채 손을 떼기도 전에, 단해룡의 주먹이 이미 그의 가슴에 명중했다!“푸욱!”이순풍은 즉시 피를 토하며 공중으로 튕겨 나갔고, 그의 몸은 무려 7~8미터가 날아가 거대한 고목을 들이받고서야 땅에 나뒹굴었다.“이 장로님!”대장로는 재빨리 앞으로 달려가 쓰러진 이순풍을 부축했다.“이 장로님, 괜찮으십니까? 상처가 깊습니까?”이순풍은 이미 숨이 가빠져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는 힘겹게 손가락을 들어 단해룡을 가리켰지만 단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흥! 난 이미 경고했다. 당신 따위는 감히 나와 싸울 자격조차 없다고!”그는 거만하게 고개를 젖히고 큰소리로 웃었다.“단해룡! 감히 종묘의 장로를 해치다니, 그 대가가 얼마나 클지 알고나 있느냐!”대장로는 이를 악물며 쏘아붙였다. 그러나 단해룡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흥, 아직도 이해를 못 한 것 같군. 그 계약이 폐기되는 순간, 세상은 완전히 뒤바뀔 것이다!”“그때가 되면 무력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가 올 텐데, 너희 같은 종묘나 무종 장로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리고 한 가지 확실히 말해주지, 그날은 멀지 않았다!”이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정신이 번쩍 들었다.무종과 명산들은 그동안 산속에 틀어박혀 세속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었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이 말은 마치 구원의 빛과도 같았다.
용국을 배반한다니?!이순풍의 흰 눈썹이 살짝 꿈틀거리더니, 차가운 시선으로 단해룡을 바라보았다.“용국을 배반한다고? 단 맹주, 자네 간이 참으로 크구려!”말이 끝나자마자, 이순풍은 사성 천왕계 강자의 기운을 뿜어내며 단해룡을 응시했다.무종의 대장로 또한 손에 든 지팡이를 힘껏 쥐며, 차디찬 눈빛으로 단해룡을 주시했다.'배반'이라는 단어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대역죄다.단해룡이 어떤 신분이든, 이 말을 내뱉는 순간 곧바로 역적이 되는 것이며, 역적이라면 누구든 죽여 마땅했다!“흥! 겨우 사성 천왕계 따위가 감히 내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거요?!”단해룡은 이순풍을 전혀 눈에 두지 않았다.종묘 장로가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어도, 그들의 권위는 단해룡 같은 무종 강자 앞에서는 무의미했다.무종에서 통하는 것은 오직 주먹뿐이며, 힘이 곧 정의였다! “쾅!”단해룡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센 돌풍이 평지를 휩쓸었다.이때 하늘엔 먹구름이 몰려들며 대낮의 태양마저 어둠 속에 가려졌다.곧이어 하늘에서 천둥이 울려 퍼지더니, 맑았던 하늘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비록 아직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승부는 갈린 것이나 다름없었다.두 사람은 비록 서로 손을 대지 않았지만, 이미 우열을 가리기에는 충분했다. 단해룡이 아무렇지도 않게 진법을 펼쳐, 기후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이순풍과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드러나는 것이었다!“이 씨 어르신, 어찌 생각하오?”단해룡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얼굴이 굳어진 이순풍을 보고 비웃듯 말했다.“자네는 아직도 내가 예전과 같은 경지일 거라 생각한 거요?”“지난 수십 년간, 나는 단 하루도 단련을 멈춘 적이 없소. 비록 옛날에 내가 자네에게 한 수 밀렸던 적이 있긴 했지. 하지만 지금 자네는 나와 싸울 자격조차 없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오!”쿠궁!단해룡의 이 말은 그야말로 극도로 거만했다!종묘 장로조차 자신과 싸울 자격이 없다는 듯이 내뱉다니!이순풍의 호흡이 한층 거칠어졌다.강우
한지훈의 아이들도 반드시 죽어야 한다!이곳에 모인 자들은 애초부터 강우연과 말로 해결할 생각이 없었고, 그들의 신분만으로도 강우연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 검은색 SUV 한 대가 달려와 한지훈의 저택 정문 앞에서 멈춰 섰다.문이 열리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 나왔다.그는 바로 무종의 대장로였다! “이 많은 인원이 모여서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려 하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더구나 한지훈의 시신이 아직도 식지도 않았거늘, 국왕 폐하의 조명이 내려진 상태에서 국부인인 강우연을 감히 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대장로는 지팡이를 짚고 서서 묵직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동시에, 반대편 차 문이 열리며 종묘의 한 장로도 차에서 나와 단해룡 무리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무종이든 무맹이든, 국가의 법도를 따를 줄 알아야 할 것이다!”“혹시, 자네들은 천성종의 사례를 잊은 것이냐? 설마 국왕 폐하께서 다시 한번 천성종의 비극을 자네들에게도 반복하게 만들지 않을 거라 믿는 게야?!”종묘 장로가 뒷짐을 진 채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천선종은 30년 전에 국가의 대군에 의해 멸망한 무종의 종문이었다. 그 당시 천성종의 한 제자가 사소한 자존심 싸움 끝에 한 도위소병을 살해했고, 무종 제자의 신분인 그는 조정이 이 일을 그냥 넘길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뜻밖에도 국왕은 즉시 명을 내려 두 개의 야전 군단을 출동시켜 천성종을 포위했고, 살인자를 넘기지 않으면, 천성종을 평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당시 천성종의 문주는 무종의 고위층 및 무맹 맹주와 친분이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조정의 행동이 그저 경고일 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다음날, 두 전투 군단은 만 개 이상의 포를 동시에 쏘아 올리며 심지어 공군까지 동원했다. 무종의 제자들이 강하다고 한들, 이런 급이 다른 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당시 국왕은 작전부에 포탄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부인, 큰일 났습니다! 문밖에 수십 명의 고수가 몰려왔습니다. 게다가 천검종 제자들 중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고, 상대측에서 십 분 안에 나오지 않으면 강제로 쳐들어오겠다고 선언했습니다!”한 천검종 제자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강우연 앞으로 달려와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뭐라고?!강우연은 최근 며칠 동안 벌어진 일들이 분명 배후에서 조종하는 자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무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한지훈이 사라지고 도청전인마저 행방이 묘연한 상황에서, 강우연의 현재 실력으로는 이 많은 고수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하지만,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강우연은 설령 싸워서 이길 수 없더라도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물러나 있어라. 내가 직접 나가 보겠다!”강우연은 단호히 말한 뒤, 간단히 몸을 정리하고 검복으로 갈아입은 뒤 저택을 나섰다. “여러분, 제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토록 몰려와 죄를 묻는 것이죠?”단해룡 등 무리를 마주해도 그녀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네 따위가 감히 우리를 건드릴 자격이 있단 말이냐? 사실대로 말해 주지. 오늘 우리가 온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한지훈이 남긴 빚을 갚으러 온 것이다!”단해룡이 뒷짐을 진 채 험상궂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원상호도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한지훈이 우리 원씨 가문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어쨌든 우리에게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해명?!강우연은 이를 악물고 싸늘하게 말했다. “어떤 해명을 말하는 거지?”“흥! 한지훈이 저지른 죄악을 말하자면 끝이 없지. 하지만 우리 원씨 가문은 원래 도리를 중시하는 집안이다. 한지훈이 우리 원씨 가문의 두 어르신을 죽였으니, 그 대가는 당연히 치러야겠지!”“목숨은 목숨으로 되갚는 것이야말로 가장 공정한 처사다! 그렇지 않습니까?”원상호가 말하며 뒤쪽에 서 있는 무리들을 돌아보았다.“옳소! 살인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그래! 한 목
한지훈은 담담하게 말했다.“도청전인?”국왕은 지금까지 도청전인을 만나본 적이 없었고,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다.하지만 한지훈이 추천한 인물이라면 믿을 만했다.“그럼 짐이 그에게 관직을 하사하여, 나라를 위해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겠는가?”국왕이 신중하게 묻자, 한지훈은 손을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용국이 위기에 처하면 그가 스스로 나설 것입니다. 그는 무종 사람으로 자유로운 삶에 익숙합니다. 오히려 관직을 주면 그에게 부담이 될 것입니다.”“제가 그를 국왕께 추천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공개적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오륙으로 떠나기 전까지, 적어도 제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국왕은 이 말을 듣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한지훈, 그대는 진정 나라의 기둥이로구나! 가장 먼저 찾은 것이 아내와 자식이 아니라 짐이라니! 짐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겠구나!”위기가 해소되자 국왕의 표정도 한층 부드러워졌고, 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오직 국왕 폐하의 근심을 덜기 위해 이곳에 온 겁니다. 이제 할 말을 다 했으니, 저는 물러나겠습니다.”한지훈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국왕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물었다.“한지훈, 이번 곤륜에서의 경험이 상당했을 텐데... 지금의 그대는 어느 경지인가?”잠시 침묵이 흘렀다.“천신입니다!”짧고 날카로운 대답이 밤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졌고, 순식간에 한지훈의 모습이 사라졌다.“천신...?!”국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지훈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그의 마음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국왕 폐하, 방금 누군가 다녀갔습니까?”진우가 문을 밀고 꼭대기 층 테라스로 들어오며 말했고,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주변을 살폈다.“그래, 한지훈이었다!”국왕이 담담히 대답했다.“한지훈이라고 하셨습니까?!”진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귀신이나 환영 같은 걸 믿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한지훈은 이미…“쓸데없이 놀라
이 시각, 강중에서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도는 것과 달리, 용경은 한층 더 고요했다.용각에서 국왕은 홀로 천자각 꼭대기에서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지금 한지훈이 부재한 상황에서, 용국은 반드시 그를 대신할 인물을 찾아야만 했다!그러나 유청은 그 기준에 명백히 미치지 못했다.적어도, 실력이나 경지에 있어서 유청은 열국을 위압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바로 그때, 한 사람의 그림자가 불쑥 내려앉았다!“누구냐!”국왕은 즉시 돌아서며 크게 외쳤고, 동시에 허리에 손을 뻗어 검을 뽑으려 했다.“국왕 폐하, 저입니다.”스윽—!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국왕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한... 한지훈?!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국왕은 등줄기를 타고 한기가 훑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너... 너는 사람이냐, 귀신이냐?”국왕은 말을 하며 몇 걸음이나 물러섰고, 정신을 가다듬어 자세히 보니 과연 한지훈이었다!다만, 지금의 한지훈은 이전과는 어딘가 달라 보였고, 그의 분위기 역시 확연히 변화한 듯했다.예전의 한지훈에게서는 절대적인 위엄이 느껴졌다면, 지금의 한지훈은 더욱 깊고 심오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국왕 폐하,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하산한 뒤에서야 국상을 알았지만, 다행히 운 좋게도 죽지 않았습니다!”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죽지 않았다니?!”국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눈가에는 감격의 눈물이 맺혔다.“한지훈! 네 녀석... 나를 기절초풍하게 만들 뻔했구나! 네가 정말 죽었다면, 용국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겠느냐!”국왕은 말하며 성큼 다가와 한지훈의 옷깃을 움켜쥐고는 세차게 흔들었다.“하지만, 예 씨 부부는 저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가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두 부부 덕분입니다! 그 부부가 목숨을 걸고 저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수정층 아래에 누워 있는 것은 바로 저였을 것입니다!”한지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래… 예 씨 어르신
황약사가 말을 마치자, 옷자락을 휘날리며 앞마당을 나섰다.일반인들은 황약사가 의술이 뛰어나고 그 실력이 아무도 따라올 수 없다고만 알고 있었다.하지만 극히 일부만이, 황약사가 진정한 천왕계 강자이며 무적천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실력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설령 단해룡이 직접 나선다고 해도, 황약사의 손에서 쉽게 이득을 보지 못할 터였다.황약사의 예상대로, 한지훈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장씨 가문이든 단해룡이든 가슴 한편에 약간의 설렘이 부풀어 올랐다. 한지훈이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아내와 자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장씨 가문의 사람들이 괜히 희생된 것도 아니고, 단해룡이 공개적으로 모욕당한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예충기가 살아 있다면 감히 나서지 못했겠지만, 그마저도 곤륜산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젠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노 씨 어르신 무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각 문파와 접촉했고, 화산과 항산 역시 이에 호응하며 손을 잡았다. 이제 강우연이 강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바로 그녀를 찾아가 책임을 묻겠다는 움직임이 퍼졌다!겉보기엔 용국이 평온해 보였지만, 물밑에서는 거센 격류가 휘몰아치고 있었다.사대 가문 중에서도 특히 동방 가문과 원씨 가문이 한지훈과 가장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기에, 이제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가주님, 듣기로는 노 씨 어르신과 무맹이 이미 열 개가 넘는 문파를 규합하여 한씨 가문을 찾아가 응징할 준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저희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원상용은 차분한 시선으로 보고한 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 원씨 가문의 원한이 그냥 묻힐 수는 없지!”“한지훈, 네가 살아 있을 때 우리 원씨 가문 사람들의 목숨을 수없이 앗아갔다. 이제 네가 죽었으니, 우리가 잔인하다고 탓하지는 말아라!”원상용은 말을 마친 뒤 보고를 한 사람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꺼냈다. “원상호, 네가 원씨 가문을 대표하여 강중으로 가 강우연에게 책임을 물
이때, 약왕파에서 생방송을 지켜보던 장로들이 하나같이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비록 약왕파와 한지훈 사이에는 오래된 원한이 있었으나, 한지훈의 삶은 의롭고 당당하여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하아! 북양왕의 생애가 너무나도 짧았구나. 만약 그에게 10년만 더 주어졌다면, 이처럼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군.”“수만 도에 달하는 고온 속에서라면, 누구라도 수증기로 변해 사라졌을 것이야. 하지만 제릉산에 의관총이라도 마련된 것이 그나마 영광이라 해야겠지.”장로들은 저마다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오직 오 장로만은 깊은 눈빛으로 화면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말했다.“내 생각엔 며칠 안 가서 무종의 사람들이 우리 문파를 찾아올 거요. 우리 약왕파는 이미 한지훈과 엮여 있었으니, 지금이라도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소?”그의 말에 주변 장로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오 장로, 자네가 한지훈에게 당한 게 있다 해도, 그의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소!”대장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비록 무종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해도, 최소한의 체면은 지켜야 했다.한지훈이 막 숨을 거둔 상황에서 즉각 손절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문파의 명예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터였다.“제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약왕파 전체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단해룡이나 원씨 가문, 동방 가문 같은 세력은 논외로 치더라도, 장씨 가문, 천산, 화산, 항산의 인물들이 한지훈을 가만히 두겠습니까?”“그들 중 어느 누구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한지훈을 건드리지 못했던 것은 오직 그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며, 더군다나 예충기까지 함께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제가 들은 바에 따르면, 예충기 부부마저도 이번 사태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그리고, 헬기를 통해 촬영된 그들의 시신 사진도 이미 공개되었습니다!”뭐라고?!앉아 있던 장로들은 일제히 경악을 금치 못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