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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문앞을 막은 직원들이 바로 허리를 숙인 채 뒤로 물러서고 그 사이로 지팡이를 든 노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발이 무성하고 거동도 편치 않은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죽지 않은 날카로운 시선이 남자가 한때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었는지 그대로 말해 주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바로 고개를 숙였을 그 눈빛도 전장에서 진정한 죽음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 피부로 느꼈던 한지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기에 태연하게 그를 맞이했다.

한편, 혐오 가득한 시선으로 강우연을 훑어보던 강준상이야말로 한지훈을 마주한 순간 움찔하고만다.

‘저 청년... 어떻게 저런 눈을 가지고 있지? 마지 사신 같아. 아니, 맹수 같은가... 어찌 보면 세상 풍파 다 겪은 노인 같은 눈이기도 하군.’

강준상, 50년째 강운그룹 회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존재, 강운그룹을 삼류 중소기업에서 지금의 대기업으로 키운 장본인이기도 했다.

“할아버지, 제 말이 맞죠. 강우연이 글쎄 남자랑 같이 집에 돌아왔다니까요. 게다가 어쩜 그렇게 뻔뻔하게... 할아버지더러 직접 마중까지 나오라고 하는 건지...”

강준상을 부축해 함께 나온 강희연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강희연, 강우연의 사촌언니인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동생을 싫어하게 된 걸까?

이 모든 감정의 시작은 바로 질투였다.

딸이라곤 강우연, 강희연 둘 밖에 없는 집안이었지만 강희연이 아무리 노력해도 할아버지 강준상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손녀는 바로 강우연이었다. 먹고 입는 것에서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건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도 강준상은 항상 강우연을 대동했으니까.

5년 전, 결혼도 하지 않은 강우연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집안에서 쫓겨난 뒤에야 강희연은 그 자리를 대신해 강준상의 곁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강희연은 강우연이 증오스러웠고 다시 나타난 그녀의 존재가 너무나 불안했다.

이제 겨우 익숙해진 이 모든 것들을 전부 빼앗아가는 건 아닐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한편, 강준상은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눈으로 한때 가장 아꼈고 그랬기에 더 크게 실망했던 손녀 강우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5년 전, 넌 이미 우리 가문에서 쫓겨났어. 그런 주제에 무슨 낯으로 다시 기어들어와. 우리 강씨 집안에 너처럼 천박한 여자는 필요없다. 별다른 일 없으면 어서 썩 꺼져!”

“할아버지!”

강준상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이미 오열하기 시작했던 강우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강준상을 불렀다.

지난 5년 동안 힘들 때마다 할아버지가 그리웠고 부모님이 그리웠고 이 집이 너무나 그리웠다.

‘할아버지가 날 얼마나 아끼셨는데... 내 잘못 때문에... 내가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해서 나한테 실망하신 거야...’

5년이 지나고 다시 마주했음에도 강우연의 몸은 여전히 죄책감으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지훈이 강우연의 손을 꼭 잡았다.

‘우연아, 네 잘못 아니야. 내 잘못이었고 우리 가문을 위기에 빠트린 그 나쁜 자식들 잘못이잖아. 넌... 어디까지나 피해자고 아무 잘못도 안 했잖아.’

유난히 웃길 좋아하던 여자가 5년 사이에 이렇게 주눅 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모욕과 질타의 말들이 강우연의 가슴을 후벼팠을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털썩!”

다음 순간 한지훈을 밀어낸 강우연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할아버지,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제발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이런 것에 쉽게 흔들릴 강준상이 아니었다.

“하, 네가 그런다고 내가 눈 하나 깜박할 것 같아? 어서 비켜. 나 외출해야 하니까.”

“야, 할아버지 말씀 안 들려? 어서 비키라잖아. 지금 할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계신지 알기나 해? 괜히 늦으셔서 비즈니스에 문제라도 생기면 네가 책임질 거냐고!”

강희연이 멀뚱멀뚱 서 있는 경호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뭐해. 얼른 끌어내지 않고!”

“다들 좋은 말로 할 때 꼼짝 말고 있어.”

하지만 한지훈이 한발 앞으로 다가서며 경고하자 결국 다시 움츠러 들 수밖에 없었다.

“하, 그래 당신. 저번에도 이딴 식으로 집안을 어지럽게 만들더니. 뭔데 남의 집에서 이렇게 행패냐고!”

근본도 없는 남자에게 두 번이나 농락을 당했다는 생각에 강희연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한지훈의 얼굴을 한참 살피던 강준상이 슬쩍 물었다.

“너... 설마 그 한씨 가문 장남이냐?”

‘날... 알아보는 건가?’

조금 놀랍긴 했지만 한지훈은 곧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제가 한지훈입니다.”

쿠궁!

한지훈의 대답에 강준상도, 강미연도 충격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황을 인지한 강준상의 눈동자에는 더 강렬한 경멸이 스쳤다.

강희연 역시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짓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오열하고 있는 강우연을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저 자식은 왜 데리고 온 거야? 네가 그 동안 우리 집안에 했던 짓을 생각해. 가문의 명예에 온갖 먹칠은 다해놓고 그걸로는 부족하다 이거야? 아니면 우리도 저 자식 집안처럼 풍비박산나야 속이 시원하겠어?”

“아니야...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한없이 눈물만 흘리며 고개를 젓던 강우연이 한지훈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고개를 저었다.

“지훈 씨, 제발...”

그리고 그녀의 말 한 마디에 한지훈은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물론 표정은 여전히 굳은 상태였지만 말이다.

강우연을 일으켜세우기 위해 팔을 잡아당겨 보았지만 그녀도 한고집 하는 인물인지라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편,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던 강준상은 코웃음을 치더니 더는 볼 가치도 없다는 듯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강우연이 강준상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제발요. 제발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우리 고운이... 그리고 우리 지훈 씨 좀 살려주세요. 흑흑흑...”

“어디에 감히 손을 대!”

강희연이 득달같이 나서 강우연을 밀어냈다.

“야, 이게 어디서 집안 하나를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나. 너희 두 사람이 저지른 짓은 대충 들었어. 금조그룹 김정필 회장을 건드렸다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다가 아쉬워지니까 가족들 생각이 났나 보지? 앞으로 너희들이 무슨 짓을 겪든 그건 너희가 자초한 일이야.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돌아가.”

“안 돼... 할아버지, 제발요... 저희를 도와줄 수 있는 분은 할아버지뿐이세요. 제발...”

다시 강준상의 앞까지 기어간 강우연이 애원을 이어갔지만 강준상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연민의 빛 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강우연, 넌 이제 우리 가문 사람이 아니다.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 때문에 우리가 금조그룹과 척을 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지금 네 처지는 전부 네가 자초한 일이니 누구 원망할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깔끔하게 포기해.”

말을 마친 강준상은 차가운 바람을 온전히 맞아내며 오열하는 강우연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던 기대감마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 누구보다도 친절하고 그녀를 아껴주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산산조각나며 깊은 절망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할아버지... 흑흑... 할아버지, 제발요... 제가 다 잘못했으니까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강우연이 이미 차에 탄 강준상을 향해 하염없이 울부짖었지만 강준상은 더 이상 그녀에게 눈길 조차 주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그리고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지훈은 강준상을 비롯한 강씨 일가 사람들까지 마음 속 블랙리스트에 적어넣었다.

‘언젠가... 복수할 거야. 두고 봐.’

하지만 지금 급선무는 일단 강우연을 위로하는 것.

천천히 강우연 앞에 앉은 한지훈이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어떡해요. 나 이제 정말 할아버지한테 버림받은 건가봐요. 난 앞으로 가족 같은 거 없는 건가 봐요. 가슴이... 너무 아파요... 흑흑흑...”

한지훈의 품에 숨은 강우연의 눈에서 눈물이 한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네가 왜 가족이 없어. 나도 있고 고운이도 있잖아. 그리고 넌 언젠가 이곳에 당당하게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아니, 제발 돌아와달라고 너한테 애원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날 믿어. 분명 그렇게 될 거야.”

여전히 어딘가 미심쩍은 강우연의 표정에 한지훈은 믿으라는 말만 되뇌었다.

“흑흑흑...”

하지만 강우연은 여전히 흐느낌을 멈추지 않았다.

“정말? 정말 내가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 엄마, 아빠, 할아버지랑 다시 함께 살 수 있을까?”

“그럼, 분명 그렇게 될 거야.”

강우연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한지훈이 그녀를 번쩍 안아들어 차로 향했다.

한편, 저 멀리 용국의 수도, 용경.

삼엄한 경계의 용각 지휘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용각 원로 중 한 명인 강만용이 책상을 퍽 하고 내리쳤다.

“금조그룹...! 감히 한지훈의 뒷조사를 시작해? 동원구 전군에 전해. 그 누구도 한지훈에 대한 정보를 전하지 말라고. 어서!”

“네, 원로님!”

같은 시각, 동원 감남분구 총지휘실, 갑작스러운 전화벨 소리가 지휘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휘실 의자에 앉은 김정호가 전화를 받은 교진산을 힐끗 바라보았다.

“통신보안.”

“아, 용경 용각 작전 지휘실입니다.”

뭐? 용각?

정신이 번쩍 든 교진산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 네. 무슨 명령이십니까?”

살면서 용각의 전화를 받게 될 줄이야. 감격스러우면서도 기쁨이 앞섰다.

“용각 원로님들의 명령입니다. S시에서 일어나는 그 사건... 군은 그 어떤 권력도 행사해선 안 됩니다. 그리고 금조그룹... 경계하는 게 좋을 거라는 말씀도 남기셨습니다.”

달칵

이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기고 멍하니 서 있던 교진산이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가슴을 진정시켜보려 해도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용각에서 직접 경고를 보내? 이건... 뭔가 잘못되고 있어.’

“사령관님, 무슨 일이십니까?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으신지...”

김정호의 질문에 교진산이 벌떡 일어섰다.

“김정호, 너 도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이번 일에 우리 강남분구는 빠진다. 괜히 불똥 튀게 하지 말고 썩 꺼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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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ver kim
중국소설은 늘 설명을 질질 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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