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이 안방에 들어섰을 때 강우연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한지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서서히 다가가 창백한 얼굴로 눈을 꼭 감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강우연을 쳐다보았다.“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야? 왜 거기에 나타난 거야?”한지훈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침대 끝에 주저앉아 얼음장 마냥 차가운 강우연의 손을 꼭 잡았으며 그제야 그녀의 허약한 맥박이 느껴졌다.바보 같은 이 여자가 한지훈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는데 한지훈이 어찌 이 여자를 지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지훈 씨, 얼른 도망가요! 얼른 가요! 고운아… 우리 딸… 악! 안 돼! 안 돼… 지훈 씨, 언제 돌아오시는 건가요… 저 너무 힘들어요…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거 같아요…”눈을 꼭 감은 강우연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총알을 두 발이나 맞은 그녀가 걱정하고 신경 쓰는 건 여전히 한지훈과 한고운이었다! 이 순간, 한지훈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얼굴을 강우연의 손에 묻은 채, 가볍게 손에 입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강우연, 이제부터 아무도 너를 건드리지 못하게 할 거야! 네가 원하는 건 내가 다 이뤄줄게. 네가 이 세상을 원한다고 하면 내가 이 세상을 네 앞에 가져다줄게.”한지훈은 그렇게 강우연의 곁을 밤새 지켰다. 5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눈앞의 이 여자를 자세히 본 적이 없었으며 처음 그녀를 마주쳤던 건, 한지훈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그 결혼식 때였다.길 씨 가문의 공주인 길시아는 한지훈이 열여덟 살 때 가장 사랑하는 여자였으며 그녀를 위해서라면 한지훈은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었다!그때 당시 길시아와 한지훈은 S 도시 전체가 인정하는 선남선녀였으며 두 사람은 한 몸처럼 모든 장소에 함께 나타나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한지훈이 그토록 사랑하고 평생 함께 하고 싶었던 그 여자는 두 사람만의 세기 결혼식에서 4대 가문과 손을 잡고 한 씨 가문을 벼랑 끝에 몰아세웠고 그로 인해 한지훈의 부모님은 한을 품고
이튿날, 한지훈은 강우연과 하루 종일 함께 했으며 늦은 오후까지 한고운과 놀아준 뒤, 산장을 나섰고 용일은 미리 차를 준비해둔 채,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며 그의 손에는 검은 비단이 덮인 선물 상자를 들고 있었다.“보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한지훈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으며 눈빛에는 서글픔과 싸늘함이 묻어 있었다.“출발하자!”이와 동시에, S 도시에서 제일가는 화려함을 자랑하는 수정궁에는 이미 밝은 불빛과 함께 하객들이 끝없이 모여들었으며 수정궁은 마치 하늘이 수놓은 보석 마냥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수정궁은 S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로 이곳에서 연회를 열려면 최소 10억은 들어야 했다.이 순간, 수정궁 앞에는 고급 외제차가 줄을 지어 레드 카펫에 멈춰 섰으며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전부 S 도시의 상업계와 정치계에서 알아주는 거물급 인물이었다.그중에는 S 도시의 시장인 소지성과 갑부 이한승도 있었고 수정궁 로비에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찼으며 길 씨 가문의 가주인 길현민은 딸의 약혼식에 참석한 유명 인사들을 접대하기 바빴다.바로 이때, 입구에서 손님들을 안내하던 직원이 목청을 높였다.“S 도시 소지성 시장님께서 입장하시면서 자사 도자기 세트를 선물하셨습니다!”그 말에 길현민은 재빨리 겸손하고 공손한 표정으로 입구로 달려가 소지성에게 손을 내밀었다.“소 시장님, 오셨네요. 얼른 들어오세요!”“하하, 현민 형님, 오랜만이네요! 표정을 보니 기분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자사 도자기 세트인데 작은 성의 표시로 받아주세요! 이번에 진 씨 가문과 사돈을 맺으면서 길 씨 가문의 지위가 또 한 레벨 올라가겠네요!”소지성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자 길현민이 얼른 말을 이어받았다.“하하하, 아닙니다, 시장님. 다 애들 장난이죠 뭐. 시장님 덕분에 저희 길 씨 가문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겁니다. 얼른 안으로 모실게요. 제가 맨 앞자리 명당을 준비해 뒀습니다.”길현민은 허리까지 굽혀가며 직접 소지성을 모시고 메
연회장 내에는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다.“저기, 다들 들었어요? 김 씨 가문이 어제 하룻밤 사이에 전멸했대요.”“그 소식 듣고 아침 댓바람부터 김 씨 가문 저택에 가봤는데 현장에 경찰이 쫙 깔려 있어서 아무것도 못 봤어요.”“근데 어떤 대단한 사람이길래 하룻밤 사이에 김 씨 가문의 뿌리까지 뽑아버린 걸까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네요!”메인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S 도시에서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인물들이었으며 그들은 고개를 돌려 소지성을 쳐다보며 물었다.“시장님, 소식 들으셨어요? 대체 김 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겼기에 하룻밤 사이에 뿌리까지 뽑힌 거죠? 상대방은 전투 구역에서 내려온 사람으로 실력이 어마어마하고 수단도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소문이 진짜인가요?”“그러니까요, 시장님. 저희한테도 얘기 좀 해주세요. 소문이 하도 흉흉해서 다들 전전긍긍하고 있잖아요.”사람들의 질문에 소지성은 덤덤한 표정으로 차를 한 입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그 일에 대해서는 제 부하들이 책임지고 처리하고 있기에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자세한 상황은 보고서가 나오면 그때 풀리겠죠. 하지만 다들 걱정하지 마세요. 김 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켜서 생긴 일이지 여러분들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습니다. 다들 평소처럼 하시던 일 하시면 됩니다.”소지성의 말에 사람들도 더 캐묻지 않았지만 곁에 있던 이한승이 소지성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시장님, 제가 접한 소식으로는 Y 도시의 우 씨 가문에서 김 씨 가문의 사고를 벌써 알았다고 하던데, 그 배후에 연결된 세력과 이익 때문에 시장님도 살짝 버거우시죠?”“이한승 씨, 그런 일들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우 씨 가문에서 감히 S 도시에 손을 뻗는다면 그분께서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소지성이 웃으면서 대답하자 이한승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억지웃음을 보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바로 이때, 하객들의 환호 속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길시아가 훤칠한 외모를 자랑하는 한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지훈이 화려한 수정궁 입구를 통해 안으로 걸어왔고 그 모습에 현장에 있던 하객들은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가 이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한 씨 가문의 한지훈? 그게 무슨 가문이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잊었어요? 옛날 그 한 씨 가문 있잖아요! 길시아와 혼약을 했던 한 씨 가문의 외동아들, 한지훈이잖아요!”“뭐라고요? 그 한 씨 가문의 남은 악질? 그놈이 여기에 어떻게 왔죠? 죽은 거 아니었어요?”모든 사람의 시선은 훤칠하고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한지훈에게 향했고 그들은 어떻게든 눈앞의 이 남자와 예전의 한지훈을 동일 인물로 보려고 애를 썼지만 지금의 한지훈은 너무도 많이 변해 있었다. 특히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과 살기가 가득한 눈빛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한 씨 가문이 전멸을 당할 때 남아있던 잔당 악질이 이렇게 돌아온 것도 모자라 감히 길시아와 진 씨 가문 도련님의 약혼식에 떡하니 나타나다니!순식간에 모든 하객들의 눈빛은 좋은 구경이라도 하려는 듯, 반짝거리기 시작했다.한지훈이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나타난 걸로 보면 오늘 밤, 한지훈과 길 씨 가문, 그리고 길시아는 절대 말로 풀릴 상황이 아닌 듯했다.이 자리에 있는 많은 하객들은 그때 당시 한 씨 가문의 처참한 결과를 목격했기에 한지훈의 부모님이 길시아의 압박에 목숨을 잃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한지훈을 확인한 순간, 길시아의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차가워졌지만 어찌 됐든 이 자리는 그녀의 약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기에 그녀에게 무척 중요했다. 이번이 길시아가 H 시에 이름을 날리고 길 씨 가문이 S 도시에서 일인자가 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이기에 길시아는 절대 그 어떤 돌발 상황도 용납할 수가 없었으며 그 속엔 한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녀와 함께 선남선녀로 불리던 저 남자, 그녀를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저 남자라고 해도 그녀의 약혼식을 훼방하는 순간, 그녀는 반드시 싹을 잘라버릴 것이다!“한지훈, 오랜만이네. 네가
심성이 착하지 못한 진우철은 이런저런 생각에 이유 모를 화가 점점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오늘 밤은 나와 길시아의 약혼식이야. 네가 만약 축복하러 온 거라면 언제든 환영이고 조용히 앉아있다가 가! 하지만 만약 난동을 피우러 온 거라면 미안하지만 넌 그때 살아남은 걸 후회하게 될 거야!”한지훈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진우철은 한걸음 다가가 손을 뻗어 한지훈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고 이와 동시에, 진우철 뒤에 서있던 진 씨 가문의 보디가드 두 명이 앞으로 나서서 한지훈을 살벌하게 쳐다보며 그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제압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다음 순간, 철컥 소리와 함께 한지훈이 손을 뻗어 그를 가리키고 있는 진우철의 손가락을 순식간에 부러트렸고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진 씨 가문은 애초부터 신경 쓰지도 않았어요. 오늘 밤은 저와 길 씨 가문의 원한을 끝내러 온 겁니다! 괜히 목숨을 잃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옆에 찌그러져 있어요!”한지훈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진우철은 바닥에 쓰러진 채, 극심한 고통에 처절한 비명소리를 질렀으며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조금 전, 진우철은 한지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살기에 소름이 쫙 돋았으며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리더니 자신도 모르게 털썩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진우철은 부러진 손가락을 움켜쥐고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네가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나 H 시 진 씨 가문의 도련님이야! 내 아버지가 진전성이라고! 넌 이제 죽었어! 내가 널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 버릴 거야!”“시끄럽네!”진우철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눈살을 확 찌푸리던 한지훈은 진우철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고 진우철은 그대로 뒤로 날아가다가 테이블에 부딪쳐 바닥에 널부러지고 말았고 테이블은 강한 충격에 산산조각이 났다.하객들은 얼굴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진우철을 보며 너도나도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으며 두려움에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위패에 쓰인 내용을 본 사람들은 전부 숨죽인 채,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길시아의 약혼식에서, 그것도 이렇게 많은 S 도시의 유명 인사들 앞에서, 더군다나 진 씨 가문의 도련님 앞에서 당당히 부모님의 위패를 꺼낸다는 건 한지훈이 길 씨 가문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가 너무도 명확해 보였다.“아니… 오늘 밤 길시아의 약혼식이 순조롭지는 못하겠네.”“한지훈이 뭘 믿고 저렇게 건방을 떠는 거죠? 한 씨 가문은 진작에 멸망했고 현재 S 도시의 일인자는 길 씨 가문인데! 저렇게 덤비다가 된통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죠!”“5년 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난 집 잃은 길 강아지가 설마 S 도시에서 파장이라도 일으키려고 발악이라도 하는 건가?”사람들은 너도나도 수군거리면서 경멸과 아니꼬운 눈길로 한지훈을 쳐다보았지만 메인테이블에 앉은 소지성은 덤덤한 표정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여유로운 모습으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그는 며칠 전부터 한지훈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었으며 30만 파이터들을 거느리는 파이터 킹이 5년 전 한 씨 가문의 도련님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소지성도 노병에게서 한지훈의 신분을 들은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한참 동안이나 멍한 얼굴이었다.그때 당시 발생한 한 씨 가문 사건에 대해 소지성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S 도시 세가들 사이의 문제였기에 소지성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5년 전에 집 잃은 강아지 마냥 황급히 S 도시를 떠났던 한지훈이 오늘날 어마어마하게 강해진 실력으로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어 돌아온 것이고 이런 사람이 원한을 품고 S 도시로 돌아와 길시아의 약혼식에 참석했다는 건, 어마어마한 큰일이 터진 셈이다!이때, 곁에 앉아있던 이한승이 반짝이는 두 눈으로 한지훈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소지성을 힐끔거렸으며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소지성을 발견하자 의아한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시장님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시네요? 설마 시장님께서 한지훈 저 사람을 알고 있는 건가요?”“5년 전의
한지훈의 행동은 길시아에 대한 모욕이고 도발이었기에 그녀는 당장이라도 한지훈을 죽이고 싶었다. “한지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오늘 밤은 나와 진우철 씨의 약혼식인데 지금 죽은 사람의 위패를 꺼내는 건 뭐 하려는 거야? 우리 길 씨 가문과 H 시 진 씨 가문에 도전장이라도 내밀겠다는 거야? 집 잃은 개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나? 옛정을 생각해서 목숨은 살려줄 테니까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우철 씨에게 사과해! 그리고 저 위패를 들고 당장 이곳에서 꺼져!”길시아는 얼음장 마냥 차가워진 얼굴로 한지훈을 죽일 듯이 째려보며 목청을 높였고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한지훈의 반응을 살폈다.“길시아, 넌 예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무정하고 단호하네! 너와 내 옛정은 5년 전에 네가 결혼식에서 손수 찢어버렸어! 내 부모님이 길 씨 가문과 4대 가문 앞에 무릎 꿇고 애절하게 빌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해! 근데 그때의 넌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봐줬어? 내 부모님은 너와 4대 가문의 압박에 목숨을 잃은 거야!”한지훈은 덤덤한 모습으로 싸늘하게 말하다가 감정이 점점 격앙되기 시작했고 주먹을 꽉 쥔 채, 붉어진 눈시울로 살기 넘치게 말을 이어갔다.“길 씨 가문과 4대 가문은 오래전부터 내 데스노트에 올랐어! 난 반드시 그때의 복수를 제대로 할 거야! 그리고 오늘, 너희 길 씨 가문부터 손 봐줄 생각이야!”한지훈은 길시아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고 깜짝 놀란 길시아는 다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5년 전에 반항조차 못하던 멍청이가 오늘날 이렇게까지 강해져서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했으며 지금 한지훈의 모습은 마치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과 같았다.“한지훈! 너 이 건방진 놈! 오늘은 내 딸의 약혼식이야! 넌 지금 우리 길 씨 가문과 원수를 맺는 거나 마찬가지야! 소속도 없는 망나니 주제에 갑자기 S 도시로 돌아와서 우리 길 씨 가문에 덤비려고 해?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했네!”길현민의 호통에 한지훈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며 싸늘하게 경고했다.“길현민, 5년 전
갑자기 달려온 길 씨 가문의 보디가드들을 보자 용일은 재빨리 한지훈 앞을 막아서서 무자비하게 공격했고 주먹이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보디가드들은 테이블과 의자 위에 쓰러졌으며 연회장에는 이내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로 가득했다.이를 보고 있던 하객들은 너도나도 충격에 빠져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고 한참 지나서야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정적을 깨며 말했다.“저놈 대체 누구야? 5년 전의 그 한 씨 가문의 멍청한 놈 맞아?”혹시라도 한지훈의 귀에 들릴까 봐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그 사람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용일이 손에 들고 있던 칼을 쓱 날리더니 칼날은 그대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사람의 목을 정확히 그어버렸다.“감히 보스를 능멸하는 놈들은 죽음을 맛볼 것입니다!”용일은 언성을 높이며 경고의 눈빛으로 사람들을 살벌하게 쳐다보았고 조금 전까지 찻잔을 들고 중얼거리던 그 남자는 목에서 피를 뿜은 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아악!”깜짝 놀란 하객들은 너도나도 연회장을 빠져나가려고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연회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길시아는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뚝 서있는 한지훈을 쳐다보며 한순간, 5년 전에 자신이 저지른 짓을 살짝 후회했지만 아무리 그녀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길시아는 치맛자락을 꽉 잡은 채,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이는 한지훈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한지훈이 그녀의 약혼식을 망친 짓에 대한 분노였다.“한지훈! 너 그만해! 오늘은 내 약혼식이야! 나에게 엄청 중요한 일이라고! 그 어떤 사람도 절대 이 약혼식을 망칠 수는 없어! 한지훈 너도 포함이야! 넌 이곳에 나타나면 안 되는 거야! 네 존재 자체가 나한테는 모욕이고 실패야!”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길시아는 이미지 관리도 잊은 채, 한지훈을 보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고 테이블에 놓인 과도를 집어 들더니 그대로 한지훈의 심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광경에 놀란 하객들은 더욱 우왕좌왕하며 이
“사실 우리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모두들 알다시피 우린 그저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뿐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용심을 얻고 용족 유적지에 들어가야만 한 단계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거지!”이천성은 매혹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한지훈을 쳐다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확실히 매우 솔깃하긴 했다. 누구라도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상대는 한지훈이다. “나에 대해서 꽤나 잘 아는 것 같은데, 그럼 내가 어떤 걸 가장 싫어하는지도 알려줄게. 난 남한테 비겁한 협박을 받는걸 가장 싫어해! 그리고 난 너랑 같은 편이 아니야!”“난 너와는 달리 더 강해지기 위해서 남은 일생을 사는 게 아니야. 내 인생은 오직 용국을 위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는 거야!”한지훈은 단 두 마디로 이천성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말에 이천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지훈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네 얘기를 들어보니 우린 더 이상 깊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것 같네. 이렇게 된 이상 난 이만 돌아갈게!”“부디 앞으로, 네가 방금 내린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를 바래!”이천성은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이천성이 떠나는 모습에 도청 천진의 표정은 굳어졌다. “한 선생님, 헌팅 리스트는 매우 위험한 겁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천도맹약의 타깃에서 벗어나게 된 사람은 없습니다!”“제가 보기에는 일단은 잠시라도 제안을 받아들이고, 나중에 다시 천천히 협상해 보는 것도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자 한지훈은 고개를 들어 도청 전인을 바라보았다. “그래? 저 놈이 말한 헌팅 리스트란게 정말 그렇게 대단해?”도청 전인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제 스승님께서 살아계실 때 일찍이 저한테 얘기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지만 예비는 확실히 헌팅 리스트에 올라 죽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원승환도 그 리스트에 올라 죽은 겁니다.” “하지만 오기의 죽음은 아직 확실치 않습니
그 말에 한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천도 맹약이 사람까지 파견하여 자신에게 전하려는 한마디는 뭐였을까? 침묵하는 한지훈의 모습에, 이천성은 한지훈이 천도 맹약 네 글자에 깜짝 놀란 거라 생각했다. 필경 천도맹약은 역외에서 세력이 매우 커, 역외 양극 중의 일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천도맹약에 의해 선택된 자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 밖에 없었다. 복종하거나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천도맹약은 네가 이번 대결에 참가했으면 하는 바람이야. 그리고 천도맹약의 대표로서 참가하는 거야. 이는 너한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기회이지!”이천성은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그럼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이천성의 오만한 표정에도, 한지훈은 사양하며 덤덤하게 대답하였다. 뭐? 이천성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고개를 돌려 한지훈을 한참 동안 쳐다보고서야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넌 아직 잘 모르나 본데 당시 오기가 왜 운명했는지 알아?”“그리고 예비는 대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기나 해?”이천성은 고개를 돌려 한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1성 준 천신의 실력으로 2성 현급 천신계 강자들을 연달아 몰살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어. 넌 그만큼 매우 우수해!”“하지만 예비와 오기에 비하면 넌 아직 한참 모자라. 두 사람은 살해당할 당시 이미 인왕계의 정점을 찍고 있었거든!” “일단 천도맹약을 감히 거절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 반드시 헌팅 리스트에 기록될 거야. 그리하여 예로부터 지금까지 천도맹약의 눈을 피할 수 있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그 말에 도청 전인의 얼굴빛은 저절로 어두워졌다. 헌팅 리스트는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일단 리스트에 오르기만 하면 거의 피할 수 없었다. 도청 전인의 스승 역시 당시 실력이 줄곧 그렇게 저조했던 이유가 바로, 이 차트에 오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스승은 역외에서 세속으로 도망쳐온 강자였기에, 괜히 강한 실력을 보여줬다가는 천도맹약이 주목할 수도 있었기 때
양령아와 허천을 양 씨 집안까지 보내고서야, 한지훈은 작별을 고하고 자리를 떠났다. 바로 그날 밤, 놀라운 소식이 미육 해군 본부에 전해졌다. “뭐? 로스터랑 칸트가 전부 죽었다고?”작전실에서 소식을 접한 백발의 노인은, 저도 모르게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록 그가 미육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매우 높긴 하지만, 로스터 또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가 미래의 로스피엘 가문의 후계 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로스터의 지위는 미육지에서 매우 높았다. 설령 유럽의 10대 가문이라 할지라도 그의 체면을 세워줘야 했다. 그런데 그런 로스터가 용국에서 죽게 됐으니, 이는 양국의 전쟁을 선포한 것과 다름없었다. “원수님, 바로 용국 북양 왕인 한지훈이 직접 두 사람을 죽였다고 합니다!” 한 부관이 조용히 말했다. “흥!”화가 난 노인은 냅다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고는 노호하며 말했다. “여봐라!”그의 한 마디와 함께, 어깨에 수많은 별을 단 백인 남자 10여 명이 빠른 걸음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항모 함대를 손에 쥔 거물들이었다. 일단 그들이 명령만 내리면 십여 개의 항모 함대가 동시에 용국의 해안으로 돌진하게 된다. “원수님, 한지훈은 천신계 강자이지 되도록이면 역외 강자가 돌아오기 전까지는...”그러자 노인은 손을 살짝 흔들더니 이내 마음속의 분노를 꾹 눌렀다. “천신계라! 흥, 좋아. 그럼 내가 한번 지켜봐야겠어. 핵무기가 그놈한테 효과를 보일 수 있는지!”그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일단 핵무기를 동원한다면, 미육과 용국의 전쟁은 피도 눈물도 없는 대전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원수님, 천신계 강자가 핵무기를 두려워하겠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핵무기를 동원한다면 용국은 전면적으로 보복에 나설 것 같습니다. 때가 되면...”“전면적 보복? 설마 너희들 그 놈들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겠지? 당장 가서 핵무기나 준비해! 뭐가 됐든 로스터 선생을 위해서라도 도리를 따져야지!”“그리고 이 결과가 어
“팍!”우렁찬 소리와 함께 칸트는 그 자리에서 7~8미터 떨어진 밖까지 굴러 나갔다. “난 오히려 궁금하네. 과연 누가 감히 내 눈앞에서 뻔뻔하게 이 자리를 떠나려 하는지!”한지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로스터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사람을 죽일 듯한 기세였다. 제대로 얻어맞은 칸트는 찌그러진 얼굴을 가리고는 한지훈을 삿대질하며 노호하였다. “한지훈! 네가 감히 나를 때려? 나 당장 함선에게 명령을 내려...”“쾅!”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지훈은 다시 손을 들어, 번개 같은 흰색 피련을 칸트 머리 위로 펼쳤다. “철컥!” 굉음과 함께 칸트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항산의 노인과 로스터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로스터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한지훈을 향해 중얼거렸다. “한지훈, 너... 네가 감히 날 건드리려 한다면 용국은 반드시...”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한지훈은 손을 흔들었고 그러자 오릉군 가시가 순식간에 날아가 로스터의 미간을 꿰뚫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항산 노인은 얼굴이 창백해져, 로스터의 시체를 오랫동안 쳐다보고 나서야 연신 고개를 저으며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고는 중얼거렸다. “망했어! 이젠 다 망했어!”한지훈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냅다 자신의 망토를 풀어 허천의 몸에 걸쳤다. 이내 용운은 번쩍이는 몸을 나려, 눈 깜짝할 사이에 별장 안 수십 명의 검은 옷 경호원들을 모두 죽였다. 양령아는 한지훈을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한 선생님, 이번 일 혹시...”“걱정 마, 그 누구든지 용국의 땅에서 용국 백성을 괴롭힐 수는 없어. 이건 규칙이야!”이내 한지훈은 양령아와 허천을 문어귀에 주차된 상무차 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용월은 양령아와 허천을 위해 차문을 열어주었다. “두 사람 일단 얼른 차에 타. 남은 일은 더 이상 너희들과는 무관하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두 여자가 차에 탄 후에야 한지훈은 조수석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레 들이닥친 무리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유일한 백인 남자인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이들은 모두 용인이었다. 이내 그중 한 용국 노인이 앞으로 나아가 한지훈을 향해 말했다. “북양 왕, 우린 항산 사람이야!”한지훈이 직접 찾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후 주 씨 어르신은 곧바로 5대 명산에 연락을 보냈다. 혹시나 일이 크게 번져 서천술의 동맹 대계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5대 명산은 상의를 거친 후 비로소 몇 사람들을 파견하여 한지훈을 말리기로 한 것이다. “항산 사람?”한지훈은 노인을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북양 왕, 이번 일은 크게 벌려서는 안 돼. 내가 보기에는 그래도 모든 일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노인은 뒷짐을 진 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필경 그들의 임무는 오직 로스터를 무사히 데려가는 것이었고, 다른 것들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뭐라고? 평화롭게 해결하자고?”한지훈은 고개를 돌려 그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온몸에 멍이 든 두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체 어떻게 평화롭게 해결할 수가 있는 건데!”그러자 노인은 말문이 막혔다. 한참이 지나서야 노인은 입을 열었다. “북양 왕,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대전이 곧 다가오고 있고 게다가 대전 장소는 로스트 선생의 장원이야!”“네가 지금 이렇게 구는 건 엄연히 다른 사람의 영토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다름없으니, 더 이상 일을 크게 벌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뭐? 다른 사람의 영토? 이곳의 땅은 모두 용국의 땅이야! 대체 언제부터 타인의 영토가 되었다는 거야!”“그리고 우리 용국 땅에서 우리 용인들을 마구잡이로 납치하는 건 또 무슨 행위인데? 그것 자체가 도발이잖아!”“이...”노인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난 한 선생이 대세를 위해 신중하게 고려하기를 바랐는데...”“대세?”“흥! 용국 백성도 지켜내지 못하면서 무슨 대세가 있다는 거야?”“그리고 오늘 일은 그 누
용운도 엄연히 4성 천급 천왕이긴 하지만, 상대는 무려 4명의 천신계 고수들이었다. 4명의 천왕계 고수들이 힘을 합쳐 포위하는데 용운 한 사람이 어떻게 상대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상대 네 명은 모두 백전백승의 베테랑들이었다. 용운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용월이 도와 나선다 하더라도 절대 이 네 사람의 적수는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로스터의 신분 역시 매우 특별했기에, 용운이 정말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를 상대할 엄두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용국의 무종 역시 로스트 배후의 가문에게 항상 고개를 숙여야 했기 때문이다. 필경 대전이 코 앞까지 다가온 시점에 용국 무종은 미육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 로스터 가문의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미육 제1가문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일단 용국 무종이 사실을 알게 되면 한지훈 일행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주위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오자, 용운은 갑자기 펄쩍 뛰어올랐고 이내 준 천왕계 고수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단 한 수만으로 준 천왕계 고수는 피투성이가 되어 그 자리에서 숨을 멈췄다. 남은 천왕계 고수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용운의 주먹은 다시 한번 허공을 찔렀다. “팡팡팡!”연이어 들려오는 큰 소리에, 로스터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 그는 한지훈이 단지 겁을 주는 거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정말 손을 쓸 줄은 몰랐고 게다가 바로 즉사할 줄은 몰랐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로스터를 보호하던 천왕경 고수들이 모조리 살해되었다. 소식을 듣고 문 앞까지 달려온 경호원들은 멍하니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그들 역시, 이 세상에는 열무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해! 너희 용국, 설마 우리 가문에게 선전포고하려는 거야? 혹은 미육을 상대로 선전포고하는 거야?”로스터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이 순간, 겁먹은 건 티를 내서는 안되었기에 그
이내 검은 옷의 경호원은 두 사람을 데리고 함께 문 밖으로 걸어갔다. 로스터는 칼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다시 손을 뻗어 양령아의 얼굴을 만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세게 차고 들어왔다. 펑하는 큰 소리와 함께 방문은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방금 밖으로 나선 세 사람은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 로스터의 발밑으로 굴러들어 왔다. “감히 저 여자들을 건드리기만 해 봐, 죽을 줄 알아!”그 순간, 홀 안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로스터는 죽어가는 칼을 깜짝 놀란 얼굴로 바라보며 입구에 선 한지훈을 흘깃 보았다. 뿐만 아니라 2층에서 뛰어내린 검은 옷의 몇몇 사내들도 한지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로스터는 그저 한번 흘겨보기만 할 뿐, 피투성이가 된 칼을 보고도 얼굴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사납게 웃었다. 그는 미육 제1가문의 자손이자 무도 세가 출신으로서, 어릴 때부터 여태까지 피비린내 나는 장면은 수없이도 봐왔다. 그렇기에 이런 장면은 그에게 있어 딱히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장원에는 칼이라는 한 명의 천왕계 고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칼보다도 더 강한 네 명의 존재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가문에서 오랫동안 배양한 고수들이며, 하나같이 모두 천왕계 중에서도 상위권 강자들이었다. “용국에도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놈이 있나 보네!”소파에 앉은 로스터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시가에 불을 붙인 채 크게 들이마셨다. 한지훈이 문을 부수고 들어서고 나서야, 용월과 용운도 성큼성큼 따라 들어왔다. 용월은 먼저 자신의 외투를 벗어내 양령아의 몸에 걸쳤다. 그러고 나서는 작은 소리로 위로했다. “일단 옷 입어. 걱정 마, 이젠 괜찮아!” 이내 용월은 양령아와 허천을 데리고 한지훈의 뒤쪽으로 물러섰다. “한 선생님!”양령아는 감격에 찬 얼굴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을 구하러 달려온 사람이 뜻밖에도 북양 왕일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젊고 예쁜 용국 여자 두 명이 거실로 끌려 나왔다. 두 여자애의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고 옷도 단정하지 못했으며, 얼굴에는 또 몇 개의 선홍색 손바닥 자국 또한 있었다. 그야말로 매우 피폐해 보였다. 이 두 여자애는 바로 양령아와 허천이었다. 그들이 바로 엊그제 로스터에 의해 납치되어 온 용국 여자들이었다. 양령아는 자신이 용경에서 외국인에게 납치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록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양 씨 집안에 소식을 보내긴 했지만 전혀 쓸모가 없었다. 로스터는 양령아와 허천을 힐끗 쳐다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수모를 겪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말을 들어!”이내 그는 야한 속옷 두 벌을 양령아와 허천의 앞에 던졌다. “우리... 우리는 죽어도 너의 노리개가 되지는 않을 거야!”양령아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옆에 있는 허천도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 덜 고생을 한 것 같은데, 내가 이것을 너희들한테 던진 건 너희들에게 엄연히 경고를 날리는 거야. 내 인내심도 한계가 있거든!”로스터는 손을 뻗어 양령아의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그러나 그의 손이 양령아의 옷자락에 닿기도 전에 양령아는 그의 따귀를 때렸다. 탁한 우렁찬 소리가 들려오자, 옆에 있던 경호원 몇 명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그중 한 경호원은 바로 손을 들어 양령아의 얼굴을 때렸다. 비록 경호원의 옷을 입고 있긴 했지만, 그의 전력은 오히려 양령아보다도 높았다. 준 천왕계 고수를 상대로, 양령아와 허천은 어디 반격할 힘이 있겠는가? 순간 양령아의 몸은 휘청거렸고 바로 옆 탁자에 부딪쳐 넘어지기까지 하자, 주위의 경호원들도 하하 웃기 시작했다. 양령아는 이를 악문 채 차갑게 고개를 들어 그 검은 옷의 경호원을 쳐다보았다. “너희들 대체 언제까지 순진한 척할 수 있는지 지켜보마!”로스터는 얼굴을 부여잡고는, 결국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양령아의 머리채를 잡고는 소리쳤다. “네 뒤에 아무리 강한 세력이 있더라도, 오늘은 아무도 너를 구하러
설령 5대 명산이라 할지라도 매국이라는 큰 죄를 져서는 안 됐다. “대장로,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5대 명산이 언제 매국할 짓을 했다고!”“백여 년 전에 용국이 왜 열강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는지 너희들도 잘 알잖아. 바로 대전에서 졌기 때문이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그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거야?”“양령아 한 명이 죽더라도 용국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아. 그리고 만약 서 선배가 미육 역외 강자들과의 동맹을 맺는 데 성공한다면, 용국은 이번 대결에서도 필승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야!”주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한지훈은 손을 높이 들어 그의 얼굴을 강하게 때렸다. 탁! 비할 데 없이 우렁찬 소리와 함께 주 씨 어르신의 몸은 휘청거려 그 뒤의 지프차에 머리까지 부딪쳐 바람막이 유리를 산산조각 냈다. “한지훈, 네가 감히 나를 때리다니...”“팍!”한지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다시 또 따귀를 후려쳤다. “당신이 나이를 지긋이 먹지만 않았더라도, 방금 난 당장이라도 당신을 죽이고 싶었어!” 한지훈은 차갑게 주 씨 어르신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역외 강자들과는 무관 한 거고 오직 나 한지훈 한 사람이 일으킨 소행이야. 그러니 그들이 앞으로 보복하고 싶어도 나를 찾아오라고 해! 용국과는 무관하니까!”말을 마친 한지훈은 발걸음을 내디디고는 장원으로 향했다. 주 씨 어르신은 부어오른 얼굴을 가리고는 대장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지훈 말이 맞아. 우리 용인들은 죽어도 꼿꼿이 서서 죽으려고 해! 절대 구차하게 굴지는 않는 사람들이야!”대장로는 주 씨 어르신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때 장원에 있던 한 금발의 남자가 옆에 선 경호원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나 경호원은 옆에 있는 작은 문 앞으로 다가가 방문을 열고 안에 있던 두 명의 사내를 향해 말했다. “윌, 로스터 선생님께서 물으시는데 그 두 사람 동의했어?”윌이라는 남자는 고개를 돌려 검은 옷의 경호원을 흘깃 보고는 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