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패에 쓰인 내용을 본 사람들은 전부 숨죽인 채,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길시아의 약혼식에서, 그것도 이렇게 많은 S 도시의 유명 인사들 앞에서, 더군다나 진 씨 가문의 도련님 앞에서 당당히 부모님의 위패를 꺼낸다는 건 한지훈이 길 씨 가문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가 너무도 명확해 보였다.“아니… 오늘 밤 길시아의 약혼식이 순조롭지는 못하겠네.”“한지훈이 뭘 믿고 저렇게 건방을 떠는 거죠? 한 씨 가문은 진작에 멸망했고 현재 S 도시의 일인자는 길 씨 가문인데! 저렇게 덤비다가 된통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죠!”“5년 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난 집 잃은 길 강아지가 설마 S 도시에서 파장이라도 일으키려고 발악이라도 하는 건가?”사람들은 너도나도 수군거리면서 경멸과 아니꼬운 눈길로 한지훈을 쳐다보았지만 메인테이블에 앉은 소지성은 덤덤한 표정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여유로운 모습으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그는 며칠 전부터 한지훈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었으며 30만 파이터들을 거느리는 파이터 킹이 5년 전 한 씨 가문의 도련님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소지성도 노병에게서 한지훈의 신분을 들은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한참 동안이나 멍한 얼굴이었다.그때 당시 발생한 한 씨 가문 사건에 대해 소지성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S 도시 세가들 사이의 문제였기에 소지성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5년 전에 집 잃은 강아지 마냥 황급히 S 도시를 떠났던 한지훈이 오늘날 어마어마하게 강해진 실력으로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어 돌아온 것이고 이런 사람이 원한을 품고 S 도시로 돌아와 길시아의 약혼식에 참석했다는 건, 어마어마한 큰일이 터진 셈이다!이때, 곁에 앉아있던 이한승이 반짝이는 두 눈으로 한지훈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소지성을 힐끔거렸으며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소지성을 발견하자 의아한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시장님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시네요? 설마 시장님께서 한지훈 저 사람을 알고 있는 건가요?”“5년 전의
한지훈의 행동은 길시아에 대한 모욕이고 도발이었기에 그녀는 당장이라도 한지훈을 죽이고 싶었다. “한지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오늘 밤은 나와 진우철 씨의 약혼식인데 지금 죽은 사람의 위패를 꺼내는 건 뭐 하려는 거야? 우리 길 씨 가문과 H 시 진 씨 가문에 도전장이라도 내밀겠다는 거야? 집 잃은 개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나? 옛정을 생각해서 목숨은 살려줄 테니까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우철 씨에게 사과해! 그리고 저 위패를 들고 당장 이곳에서 꺼져!”길시아는 얼음장 마냥 차가워진 얼굴로 한지훈을 죽일 듯이 째려보며 목청을 높였고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한지훈의 반응을 살폈다.“길시아, 넌 예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무정하고 단호하네! 너와 내 옛정은 5년 전에 네가 결혼식에서 손수 찢어버렸어! 내 부모님이 길 씨 가문과 4대 가문 앞에 무릎 꿇고 애절하게 빌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해! 근데 그때의 넌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봐줬어? 내 부모님은 너와 4대 가문의 압박에 목숨을 잃은 거야!”한지훈은 덤덤한 모습으로 싸늘하게 말하다가 감정이 점점 격앙되기 시작했고 주먹을 꽉 쥔 채, 붉어진 눈시울로 살기 넘치게 말을 이어갔다.“길 씨 가문과 4대 가문은 오래전부터 내 데스노트에 올랐어! 난 반드시 그때의 복수를 제대로 할 거야! 그리고 오늘, 너희 길 씨 가문부터 손 봐줄 생각이야!”한지훈은 길시아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고 깜짝 놀란 길시아는 다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5년 전에 반항조차 못하던 멍청이가 오늘날 이렇게까지 강해져서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했으며 지금 한지훈의 모습은 마치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과 같았다.“한지훈! 너 이 건방진 놈! 오늘은 내 딸의 약혼식이야! 넌 지금 우리 길 씨 가문과 원수를 맺는 거나 마찬가지야! 소속도 없는 망나니 주제에 갑자기 S 도시로 돌아와서 우리 길 씨 가문에 덤비려고 해?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했네!”길현민의 호통에 한지훈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며 싸늘하게 경고했다.“길현민, 5년 전
갑자기 달려온 길 씨 가문의 보디가드들을 보자 용일은 재빨리 한지훈 앞을 막아서서 무자비하게 공격했고 주먹이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보디가드들은 테이블과 의자 위에 쓰러졌으며 연회장에는 이내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로 가득했다.이를 보고 있던 하객들은 너도나도 충격에 빠져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고 한참 지나서야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정적을 깨며 말했다.“저놈 대체 누구야? 5년 전의 그 한 씨 가문의 멍청한 놈 맞아?”혹시라도 한지훈의 귀에 들릴까 봐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그 사람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용일이 손에 들고 있던 칼을 쓱 날리더니 칼날은 그대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사람의 목을 정확히 그어버렸다.“감히 보스를 능멸하는 놈들은 죽음을 맛볼 것입니다!”용일은 언성을 높이며 경고의 눈빛으로 사람들을 살벌하게 쳐다보았고 조금 전까지 찻잔을 들고 중얼거리던 그 남자는 목에서 피를 뿜은 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아악!”깜짝 놀란 하객들은 너도나도 연회장을 빠져나가려고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연회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길시아는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뚝 서있는 한지훈을 쳐다보며 한순간, 5년 전에 자신이 저지른 짓을 살짝 후회했지만 아무리 그녀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길시아는 치맛자락을 꽉 잡은 채,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이는 한지훈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한지훈이 그녀의 약혼식을 망친 짓에 대한 분노였다.“한지훈! 너 그만해! 오늘은 내 약혼식이야! 나에게 엄청 중요한 일이라고! 그 어떤 사람도 절대 이 약혼식을 망칠 수는 없어! 한지훈 너도 포함이야! 넌 이곳에 나타나면 안 되는 거야! 네 존재 자체가 나한테는 모욕이고 실패야!”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길시아는 이미지 관리도 잊은 채, 한지훈을 보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고 테이블에 놓인 과도를 집어 들더니 그대로 한지훈의 심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광경에 놀란 하객들은 더욱 우왕좌왕하며 이
한지훈이 마지막에 남긴 한 마디는 충분히 위협적이고 강렬했다.한참 지난 뒤, 길시아는 뭔가 떠오른 듯 재빨리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진우철에게 다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우철 씨, 괜찮아요? 미안해요. 다 제 탓이에요…”팍!진우철은 길시아의 뺨을 힘껏 내리치더니 악독한 얼굴로 욕설을 퍼부었다.“나쁜 년! 우리 진 씨 가문에서 절대 오늘 이 일을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말을 끝낸 진우철은 자신의 손목을 움켜쥔 채, 사람들을 거느리고 떠났고 길시아는 바닥에 주저앉아 고통스럽게 바닥을 내리치며 오열하기 시작했다.“아악! 한지훈! 한지훈! 죽여버릴 거야!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내 모든 걸 망쳤어! 죽여버릴 거야!”밤 사이에 한 씨 가문의 망나니 한지훈이 길시아의 약혼식을 망쳤다는 소식이 S 도시의 상류층에 쫙 퍼졌고 사람들은 한지훈의 신분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그러다가 결국, 누가 퍼트린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한지훈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실력으로 열정만 가지고 돌아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고 S 도시의 상류층 가문들은 한지훈을 더욱 얕잡아 보게 되었다.또한 사람들은 5년 전에 사라진 망나니 하나조차 처리하지 못한 길 씨 가문에 대해서도 실망하고 S 도시의 체면에 흠집을 냈다고 언짢아 했다. 마침 그날 밤, H 시 진 씨 가문에서 길 씨 가문과의 혼약을 취소한다고 정식으로 발표했다.이 일은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으며 길 씨 가문과 비즈니스 합작을 이어가고 있던 기업들마저 급하게 계약을 해지했다.하지만 정작 이번 일의 주인공인 한지훈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낭월 산장에서 깨어난 강우연의 곁을 지켰으며 곽 명의가 만든 보신탕을 들고 와서 조심스럽게 강우연에게 먹여주었다.강우연은 행복에 가득 찬 얼굴로 한지훈을 보며 눈앞의 이 남자가 주는 든든함에 푹 빠져 있었다.“아 맞다. 지훈 씨, 고운이 눈 진짜 고칠 수 있어요?”강우연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고 어느새 붉어진 눈시울에는 기대와 긴장으로 가득했으며 고운이가
강우연이 한지훈의 팔을 잡아당겼다.“얼른 말해 줘요. 초대장은 어디서 받은 거예요? 누가 준 건데요? 설마 할아버지예요?”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에 한지훈이 피식 웃었다.“강희연이 직원 편에 보냈던데?”“언니가요? 언니가 왜...”강우연은 실망스러우면서도 의아했다.강희연이라면 누구보다 그녀를 증오하는 사람인데 왜 굳이 초대장까지 보낸 걸가?“강희연 그 여자는 널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널 아예 내치지 못하시는 게 아닐까? 괜한 걱정하지 마. 초대장도 받았겠다 내일 같이 가자. 너희 가족들한테 할 얘기도 있고.”“같이 가주겠다고요? 정말... 괜찮을까요? 할아버지는 지훈 씨 싫어하시잖아요. 내일 좋은 날인데 할아버지가 화라도 내시면...”강우연의 목소리가 모기 소리가 되어 사라졌다.이에 한지훈이 다정하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괜찮아. 너 아직 다친 데도 다 안 나았고 내가 같이 가고 싶어서 그래.”잠깐 고민하던 강우연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래.”하지만 그럼에도 강우연의 두려움은 딱히 가시지 않았다.지금까지 가족들에게 남자친구 한 번 소개해 준 적 없는 그녀이다.게다가 상대는 한지훈. 5년 전, 한지훈 때문에 강우연과 그 가족들이 당한 수모가 있으니 분명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그리고 한지훈 때문에 지난 5년간 미혼모로 살면서 당했던 모욕과 조롱들까지.솔직히 5년내내 강우연은 한지훈을 원망해 왔었다.하지만 한지훈이 나타난 그 순간, 원망과 증오는 놀랍게도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으니 참 사람 감정이라는 게 덧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한동안 강우연과 시간을 가진 한지훈은 딸 방으로 향했다.창가에 서서 턱을 괸 채 햇살을 쬐고 있는 한고운의 모습은 동화속 백설공주가 현실세계로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아빠 왔다.”“아빠!”그의 목소리에 쪼르르 달려온 한고운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딸을 번쩍 안아든 한지훈이 작은 코를 살짝 잡아당겼다.“내일 할아버지 생신이셔. 엄마랑 파티에
“아빠, 그만 좀 해! 얼굴 닳겠어!”얼굴을 찡그리는 한고운의 투정도 귀여워 한지훈의 입꼬리는 어느새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한고운의 방을 나서는 그를 발견한 용일 역시 흐뭇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왜 실실거려?”“아, 죄송합니다.”저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는 걸 인지한 용일이 바로 항상 보던 포커페이스로 표정을 가다듬었다.“형님께서 이렇게 웃으시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서요.”이에 한지훈은 다시 씨익 웃어 보였다.“그래?”‘하긴 전에는 웃을 일도, 웃을 생각도 없었지.’“참, 내일 우연이 할아버지 생신이래. 우리도 파티에 초대받았으니까 선물 좀 준비해 줘. 사람들이 우리 우연이 절대 무시 못하게 최고의 선물로.”한지훈의 말에 용일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느 정도 선물이면 될까요?”“네가 알아서 해. 그냥...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 우리 우연이가 주인공이 될 정도의 선물이면 될 것 같아. 그 사람들이 우리 우연이를 내쫓은 거 후회하게 만들 거야. 제발 다시 돌아와달라고 애원하게 만들 거야.”집에서 쫓겨나고 힘들게 살았을 그녀를 생각하니 어느새 한지훈의 입가에 걸렸던 미소가 사라졌다.‘두고 봐...’로열 호텔.오늘 강준상의 생일 잔치는 로열 호텔에서도 가장 럭셔리한 파티홀을 장소로 잡았고 S시의 유명 인사들이 온갖 진귀한 선물들을 들고 참석했다.하지만 강우연과 한지훈이 파티홀에 모습을 드러내자 손님들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그들을 향해 수군대며 조롱의 눈길을 보내왔다.강유리는 남자 때문에 내쫓긴 데다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강씨 집안의 죄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게다가 남자 때문에 그 망신을 당해 놓고 또 남자와 함께 오다니.“쟤 우연이 아니니? 저 옆에 있는 남자는 또 누구래?”“어르신께서 마음을 돌리신 건가? 쟤한테 초대장을 다 보내시고...”“그래봤자 이미 쫓겨난 애야. 어르신도 나이가 드시니 마음이 약해지신 거지.”“그런데... 저 남자 왠지 낯이 익은데. 한지훈... 아니야? 그 한씨
그리고 한지훈의 품에 안긴 한고운과 한지훈을 번갈아 바라보던 강신이 불만스레 물었다.“이 남자는 또 누구야? 왜? 여자 혼자 애 키우려니 좀 벅찼나 보지? 시커먼 때깔 보니까 대충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누나도 저 애도 이제 우리 집안 사람 아니야. 그러니까 당장 꺼져.”악담만 잔뜩 내뱉은 채 돌아서려던 강신이 다시 홱 고개를 돌렸다.“허, 누나 설마 돈 떨어진 거야? 설마 구걸하려고 온 건 아니지? 미안한데... 누나한테 줄 돈은 한 푼도 없어. 몰래라도 누나 돕는 사람 역시 내쫓아버릴 거라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거든.”이복동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가시돋친 반응에 강유리는 실망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나... 초대장 받아서 온 거야. 할아버지가 초대해 주셔서 온 거라고...”이와 동시에 강우연이 가방에서 초대장을 꺼내 강신에게 건네주었다.하지만 초대장을 홱 빼앗은 강신은 바로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됐고! 초대장을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나는 여기 올 자격없어. 그러니까 말로 할 때 누나 발로 나가. 경비 부르기 전에 당장 꺼지라고!”“이걸... 이걸 찢으면 어떡해. 이거 할아버지께서 주신 거란 말이야...”바닥에 주저앉은 강우연이 다급하게 초대장 조각을 줍기 시작했다.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평범한 종이쪼가리일 테지만 강우연에겐 의미가 남달랐다.5년만에 처음 가족 행사에 초대받는 자리, 이제 드디어 그녀를 용서해 주는 건가 싶어서 기뻤고 이 초대장이 강우연에게는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의 끈이나 마찬가지였다.그런데 그 희망이 산산조각 나버리다니...한편, 어두운 표정의 한지훈이 바닥에 엎어진 채 종이 조각을 주워모으는 강우연을 일으켜세웠다.하지만 강우연은 그의 손길을 힘껏 뿌리쳤다.“이거 놔요.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주신 초대장이란 말이에요...”“나도 알아.”그리고 고개를 돌린 한지훈이 여전히 건방진 표정의 강신을 향해 말했
‘하, 왜 이렇게 착한 거야...’착하다 못해 무르기까지 한 강우연을 힐끗 바라보던 한지훈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결국 손에 힘을 풀어주었다.그러자 덜렁거리는 손목을 움켜잡은 강신이 바로 펄쩍 뛰더니 강우연과 한지훈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강우연! 하, 어디서 남자를 만나도 저런 깡패 같은 자식을... 그래. 안 가겠다 이거지? 여기서 딱 기다려.”말을 마친 강신이 부랴부랴 자리를 뜨고 소란에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저 남자는 누구야? 세상에... 지금 신이 때린 거 맞지?”“하, 신이가 얼마나 독한 애인데... 유리 쟤는 어쩜 남자를 만나도 저딴 애를 만나니?”“그런데 아까 저 남자... 여자애가 자기 딸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설마... 저 자식이 바로 5년 전 그...”누군가의 목소리에 하객들의 술렁거림은 더 커져만 갔다.5년 전, 길시아의 집안에서 거금을 들여 소문이 퍼져나가는 걸 막은 뒤로 한지훈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어찌나 울었는지 어느새 눈시울이 빨개진 강우연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지훈 씨, 괜찮겠죠? 신이는 워낙 자존심이 강한 애라... 아까 사람들 앞에서 그 망신을 당했으니 분명 복수하려고 들 거예요. 우리... 지금이라도 돌아갈까요?”하지만 싱긋 미소를 지은 한지훈은 역시나 똑같은 말로 강우연을 안심시켰다.“괜찮아. 내가 있잖아.”한바탕 소란끝에 세 식구가 드디어 좀 앉아보려던 그때 기세등등한 얼굴의 강신이 중년 남녀와 함께 다시 다가왔다.“엄마, 아빠. 이 자식이야! 이 자식이 내 팔을... 분명 강우연 쟤가 시킨 거라니까? 어떻게 좀 해봐!”강신과 함께 등장한 중년 남자는 근엄한 표정이 인상적인 사람이었고 이목구비가 언뜻 강우연과 많이 닮아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서 있는 여자는 피부며 몸매며 장성한 아들을 두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 있는데다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딱 봐도 부잣집 사모님 같아 보였다.“강우연! 네가 감히 여기가 어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한지훈은 급히 일어섰다. 후! 이때, 제단 주위에서는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더니 곤륜산 전체를 포함한 주위의 모든 것이 한지훈의 감지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그가 바로 이 대지의 주재자라도 된 것처럼, 그는 손 하나 발 하나로도 얼마든지 이 대지와 긴밀하게 융합할 수 있었다. 천신! 순간 한지훈의 마음속에서는 이 두 글자가 스쳐 지나갔다. 이내 그가 주먹을 쥐자, 비할 데 없이 강력한 힘이 체내에서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그 기세는 마치 이 세상에 더 이상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 같았다.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났다. 백룡심을 융합시키고 나니, 또 다른 높은 경지에 다다르게 된 건가? 한지훈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기만 해도, 오로지 육안만으로도 수십 미터 높이의 돌로 쌓은 대전을 관통할 수 있었고 하늘의 노을빛까지 보아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천신의 경지에 다다른 징조이다. 게다가 천생서문에 따르면, 일단 천신계로 돌파하기만 하면 하늘에 노을빛이 나타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마침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바로 그 화려한 노을빛이었다. “엄마, 저거 봐, 불광이야!”한편 그 시각, 천부성에 있던 한 소녀가 하늘의 노을빛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어린 소녀의 손가락 방향을 따라 많은 사람들은 그 눈부신 빛을 바라보았다. “어머, 진짜 불광이네. 영험한 보살이 나타났나 보구나!”“다들 얼른 무릎 꿇고 절하세요!”대낮에 어떻게 불광이 나타날 수 있는 거지? 어떤 사람은 단추까지 채운 채 공손하게 무릎 꿇었고, 어떤 사람은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뭐가 됐든 이 노을빛은 수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한편 저 멀리 유럽에서는, 대전에 있는 한 백발의 노인은, 세계 각지에서 전송된 동영상 자료를 보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 비춘 노을빛을 보고는,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용국에 또 천신 강자가 탄생한 거야? 마찬가지로 오르크스산에서는, 백발이
마치 금속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처럼 무섭게 들렸다. “칵!”바로 그때,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은제 상자는 떨어지게 됐다. 뒤이어 칠흑같이 어두웠던 제단은 갑자기 대낮처럼 밝게 비쳤다. 한지훈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방금 은제 상자가 놓여있던 곳에서는 눈부신 백광이 나타났다. 한지훈은 아무리 눈에 힘을 주고 주시한다 하더라도 그 백광 뒤에 가려진 사물을 전혀 볼 수는 없었다. “설마 이게 바로 백룡심인 건가?”한지훈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눈살을 찌푸린 채, 천생서문에 있는 백룡심에 대한 기록을 다시 회상했다. 백룡심을 융합시키는 건 다른 용심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 이유는 백룡심은 사실 생사상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년불멸의 용심은 영원히 살아있기에, 백룡심을 융합하려는 자가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렇게 생사가 맞아떨어져야 백룡심이 비로소 하나가 된다. 다만 문제는 그 조건이 매우 가혹하다는 것이다. 백광이 제단 전체를 밝게 비추는 가운데, 음양어 문양도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지훈은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쿵쿵쿵!” 심지어 한지훈은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땅 위의 제단을 다시 한번 올려다본 한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른바 생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결코 이대로 허무하게 자결한다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땅에 그을린 몇 갈래 금은 모두 음양어로 몰리게 됐는데, 어느새 음양어의 한쪽은 이미 흰색으로 변해있었다. 그럼 남은 반대쪽은 빨간색으로 물들여야 한다. 그 빨간색은 바로 피였다. 이내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뽑아 들어 직접 자신의 손목을 찔렀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지훈은 순간 멍해졌다. “땡!” 오릉군을 내려치면서 뜻밖에도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 것이다.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힘껏 오릉군을 내리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목에 는 흰 점 하나만 보였다. 피는커녕 피부에 닿지도 못했다. 한지훈은
그렇게 한지훈은 예충기 부부의 시체를 향해 여러 차례 무릎 꿇고 참배까지 마친 후에야, 계속하여 곤륜허의 더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뇌해 구역을 지나 5리도 안되어, 한지훈은 갑자기 알 수 없이 넘쳐흐르는 생기를 느꼈다. 이내 주위에 깔려있던 회백색의 모래와 자갈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고, 전방에는 넓은 숲이 나타나더니 자연의 짐승들이 나무 사이를 누비는 걸 보게 됐다.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공기가 탁 트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나 예충기가 말한 바와 같이, 제준의 능묘로 들어설수록 생기가 오히려 짙어지고 있었다. 백룡심을 얻기 위해서는 생사를 건너야 한다더니. 방금 뇌해를 건너면서 한지훈은 이미 한 번의 죽음을 겪었기에, 지금 그의 눈앞의 펼쳐진 것은 바로 또 다른 삶이었다. 계속하여 이러한 생사의 왕복이 펼쳐질 예정이다. 동시에 한지훈은 내심 걸어온 길을 되새기며 생기와 사기를 번갈아 생각해 보았다. 이는 어떻게 보면 한지훈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지훈은 생사의 오의를 깨닫지는 못하여 단지 모호한 개념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상한 사실 하나는, 곤륜허에는 낮과 밤의 구분도 없는 것 같았다. 시간으로 계산하게 되면, 지금 시점은 노을이 지는 시점일 텐데 곤륜허는 여전히 대낮과도 같았다. 햇빛은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주위에는 바람 한 점 없었다. 이런 극한의 환경은 곤륜허를 더욱 기괴하게 만들었다. 또 몇 시간 계속하여 걸으면서 산등성이를 넘은 한지훈은, 갑자기 비할 데 없이 웅장한 궁전을 마주하게 됐다. 그 궁전은 길이가 수 미터에 달하는 돌로 쌓여 있었다. 비록 세월의 풍파를 거치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대전과 벽에 보이는 금에서 당시 이 궁전이 얼마나 휘황찬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한지훈은 곧장 대전으로 걸어갔다. 대전에 들어서자마자 알 수 없는 한기가 한지훈에게로 밀려왔다. 이는 진정한 죽음의 기운이었다. 바로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 극한의 한기였다. 대
국왕의 발언에, 종묘 장로들은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젊어 보이지만 그 내면은 매우 단단했다. 이는 이번 기회를 빌어 아주 자연스럽게 4대 가문과 조정에 숨겨진 배후를 함께 물리칠 계획이었다. 재빨리 이 사실을 눈치챈 종묘 대장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어귀에 있는 금위군을 향해 말했다. “여봐라, 당장 모두 밀어내!”“네!” 이내 한 무리의 금위군이 우르르 몰려들어 땅에 무릎을 꿇고 있던 그 노신들을 밀어내려 하자 국왕이 차갑게 말했다. “그래도 엄연히 다들 우리 용국의 영웅들인데, 어떻게 밀어낼 수가 있겠어?” “네?”그 말에 한 무리의 금위군들은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모두 끌어내! 3일 안에 용경을 떠나지 않는 자들은 가산까진 전부 몰수할 거야!”국왕의 노여움에 금위군들이 다시 우르르 몰려들어 멱살을 잡거나 팔을 잡아당긴 채 20여 명을 모두 용각 밖으로 끌어냈다. 그제야 조정은 비로소 평온을 되찾았다. 신한국은 끌려가는 노신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폐하, 이러면 이젠 4대 가문과 얼굴을 붉히게 될 것입니다!”강만용 역시 근심이 가득했다. “용국이 영원히 4대 가문의 용국은 아니야. 더욱이는 어느 명문 가문의 용국도 아니야. 자고로 용국은 백성들에게 속하고 만민에게 속하는 거야!”“나라를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은 마땅히 봉상을 받아야 하고, 그 유상 역시 마땅히 조상의 영예를 받아야 돼. 이것은 절대 당연한 천리야! 이 천리를 어기려 하는 자들은 반드시 처벌을 받게 될 거야!”국왕이 이렇게까지 화가 난 이유는, 그동안 4대 가문이 손을 뻗은 범위가 너무나도 넓었고 관리 범위도 광범위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왕은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닌 용국 전체의 의지를 대표하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그 시각, 멀리 곤륜허에서는 사람 모양을 한 검은 숯덩이가 살짝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족히 10분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람 모양의 검은 숯덩이는 겨우 몸을 버티고 땅에서 일어선 뒤 옆에 있는 유리석에 앉아
“폐하! 이... 이건... 부당합니다!” 방금까지 책봉에 반대하던 노신들은 물론, 만조의 문무들 역시 잇달아 무릎을 꿇고는 울며 하소연했다. 그들이 한평생 전투에 참가하여 거액의 부를 축적한 이유는 바로 집안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국왕의 이 조령이 일단 확정되게 되면, 그동안 몇 세대들이 노력해온 건 전부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렇게 되면 후손들의 풍족한 생활은 더 이상 어떠한 보장도 받지 못하게 된다. “부당해?” 국왕은 차갑게 웃었다. “북양 왕은 일편단심 나라만을 생각하고 있어. 자신이 죽을걸 알면서도 저 멀리 곤륜까지 갔는데, 당신들은 여전히 그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규칙대로 따르는 게 원칙이긴 하지만, 한지훈의 이번 희생은 오로지 나라만을 위한 거야!”“생명이 끝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나라만을 생각했어.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당신네들은 나라에 대한 마음이 그렇게 깊기나 한 사람이 있어?”“어쩜 이렇게 한 무리의 가증스러운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굴면서 공신 한 명을 헐뜯으려 하는 거야! 자기 집안만 사리사욕을 다 채우게 하면 그만이긴 하지만...”“어떻게 공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고아와 과모가 될 유가족까지 궁지로 몰아넣으려 하는 거야. 정말 가증스럽네!”“너희들 모두 마땅히 처벌받아야 돼!”“여봐라!” “네!” 우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문 밖에 있던 수백 명의 금위가 순식간에 천자각으로 뛰어들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불길한 마음에 몇 명의 장로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말렸다. 그러나 국왕은 장로들을 향해 살짝 손을 흔들어 안심하라 하였고, 이내 옆에 있는 궁인에게 말했다. “방금 이 노신들이 뱉은 말들을 그대로 모든 매체에 공개해!”“용국의 모든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그러고 나서 각 지역의 있는 백성들이 앞으로 이들의 생사를 결정하게 만들 거야. 만약 백성들이 모두 이 노신들이 한 말이 합리하다고 생각한다면 나 또한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어
국왕은 기가 찬 이 광경에, 연신 고개를 저었다. 4대 가문을 대표하든, 한지훈과 적대하고 있는 세력이든 아무쪼록 용국은 통일된 하나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게다가 한지훈 유상에 관한 처리는 매우 중대한 일이기에 절대 허투루 할 수도 없다. 바로 이때 천자각 대전의 궁문이 열리더니 두 노인이 잇달아 대전으로 들어섰다. 바로 강만용과 신한국이었다. 두 사람이 나타나자 대전 안은 순간 고요해졌다. “폐하를 뵈옵소서!”“폐하를 뵈옵소서!” 두 각로는 연이어 국왕을 향해 경배하였다. “각로님들? 여기는 어쩐 일로...”강만용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폐하, 예 씨 어르신네 부부 두 분께서는 이미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북양 왕이 떠나기 전에 유언을 남기고 갔다고 합니다!”“뭐라고요? 한지훈이 어떤 말을 했는데요?”국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떠나기 전에 북양 왕이 폐하께 전하고픈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만약 이번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면 폐하께 미리 사죄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용국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 때문에 죄송하다고요. 그리고 폐하께서는 앞으로 몸 조심하시라고 당부까지 했습니다!”강만용은 말을 이어가던 도중, 결국 눈물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국왕 역시 눈물을 흘렸다. 이내 그는 대전 안의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 다들 말끝마다 한지훈 유상은 봉인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들 하는데!”“노서용 어르신, 제가 묻고 싶습니다. 그럼 어르신은 대체 어떻게 민부 주관으로 승진하게 된 겁니까?”국왕이 지목한 사람은 바로, 방금 소란을 일으킨 한 노신이었다. “저야 당연히 가부의 관작을 이어받아 평생 나라를 위해 힘쓴 거죠!”노인은 여전히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사실 노 씨 집안은 줄곧 산에서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힘들게 민부를 경영해 오면서, 여러 세대의 노력을 거쳐 민부의 주요 관직을 확고히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래요! 제 생각에는 다른 분들도 다들 이렇
슬픔에 잠긴 강우연과는 달리, 4대 가문은 한지훈의 조난 소식을 듣고서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특히나 동방 소는 킥킥하는 소리를 내며 뉴스를 보면서 비웃기도 했다. “한지훈 이 놈, 결국 곤륜 뇌해에서 죽게 됐네. 하하!”“할아버님, 이 말은 즉 저희도 이젠 한 씨 집안을 향해...”그러자 동방 소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절대 한 씨 집안을 건드려서는 안 돼. 지금 이 순간, 한지훈은 금방 죽었지만 그의 명망은 아직 남아 있어. 이 시점에 누가 먼저 나서려 한다면, 기어코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야!”“국왕에게 미움을 살뿐만 아니라 수억 명의 용국 백성들로부터도 미움을 살 수 있어. 비록 우리 동방 가문이 세력이 방대하긴 하지만, 물은 그저 배를 띄울 수만 있을 뿐 절대 전복시킬 수는 없는 게 불변의 법칙이야!”“하지만 천자각에서 의사를 진행하게 될 때, 강우연과 한지훈의 유상을 봉관 하여 왕작에 넣으려 하는 건 절대 반대하라고 우리 가문 사람들한테 당부해!” 동쪽 소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지훈의 유상이 일단 왕작으로 봉인되게 되면, 적어도 신임 국왕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한 씨 집안의 기둥을 흔들 수 없게 된다. 하물며 신임 국왕은 정직하고 나이도 어려, 앞으로 몇십 년을 더 살기에도 끄떡없어 보였다. 수십 년 후 한 씨 집안의 어린 세대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 있겠는데, 그때가 되어 한지훈의 자녀가 과연 4대 가문의 우환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동쪽 소뿐만 아니라 다른 3대 가문도 동시에 자신의 부하들에게 같은 명령을 내렸다. 한편 그 시각 천자각에서는, “또 이의 있으신 분 계십니까?”궁인이 성지를 낭독하고 나서야, 국왕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문무백관들은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이건 분명히 국왕이 한 씨 집안 유상을 보호하려는 계획이었다. 왕작의 책봉이 있으면 누구도 감히 한지훈의 자녀들을 건드릴 수
몇몇 종묘 장로들은 깜짝 놀란 나머지 얼굴이 창백해졌다. 한지훈이 없다고 해서 용국이 망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절대 이 시점에 한지훈이 죽어서는 안 됐다. 열국은 이제 막 작전을 거두었고, 용국은 한창 좋은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 한지훈이 세상을 떠난 게 되면, 용국이 더 이상 전력이 없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셈이 된다. 즉 한지훈의 죽음은 북양이 다시 용국을 공격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 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열국의 부대들이 다시 한번 무장하고 대기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시란치 가문도 재차 수많은 고수들을 파견하여 용국으로 돌격해 용국무종을 와해시키려 할 것이다. 동시에 용국 내부에 혼란을 줄 수도 있다. 그야말로 국본에 치명적인 위협을 입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제 생각에는 먼저 한지훈을 위해 장례를 치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국장으로 제릉에 묘를 안장하고, 용경 백성들을 제외한 용국의 각지 백성들은 모두 조문하게끔 허용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파룡군은 현재 신임 장군으로 유청을 북부 전구 총지휘자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이젠 파룡군뿐만 아니라 서효양도 통제하게 되면서 북방 방어 전구를 형성하게 됐습니다!”“다들 저의 의견에 동의하시는지요?”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국왕은 천천히 어슬렁거리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자리에 있던 장로들은 똑같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됐다. 그렇게 족히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무종 대장로가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말했다. “저는 이의가 없긴 하지만, 이번 일은 조회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무종 대장로의 뜻은 매우 명확했다. 한지훈이 전사한 후, 4대 가문은 필연적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게다가 무종 중에는 한지훈과 원한을 맺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이젠 한 마음으로 4대 가문과 손을 잡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4대 가문의 세력은 오히려 전보다 더욱 강해지게 된다. 그러므로 조회 결의를 통해, 4대 가문의 태도
“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일단 국상을 치르게 되면 다른 열국이 모두 알게 됩니다.”진우는 급히 앞으로 나아가 막아 나섰다. 그러나 국왕은 고개를 젓고는 휴대폰을 가리키며 진우를 향해 말했다. “일이 지금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우리가 과연 놈들을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땅이 이렇게나 크게 흔들렸는데, 진작에 다른 열국들은 위성을 통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곤륜산을 확인했을 거야. 그리고 그 뇌해 속에 있는 사람이 바로 한지훈이라는 것도 알았겠지.” “만약 우리가 비밀리에 진행하여 숨기려 했다가 나중에 용국 백성들이 해외 매체를 통해 이 소식을 알게 된다면, 백성들은 우리의 행위에 대해 한심하게 생각할 거야!”“한지훈은 단지 북양 왕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 마음속의 신 같은 존재야. 더우기는 용국의 군혼과도 같은 존재지. 이런 사람이 지금 곤륜 뇌해에 묻히게 됐는데 우리가 비밀리로 진행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 이건 내가 나라의 수령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야.” “그리고 일단 무종 장로, 종묘 장로 그리고 용각의 두 각로더러 날 찾으러 오라고 해!”국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지훈의 조난 소식이 국왕에게 안겨준 타격은, 강우연에게 안겨준 타격 못지않았다. 그동안 국왕과 한지훈 사이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갈등이 많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서로 잘 통한 사이였다. 열국을 상대하든 용국의 각 세력을 상대하든,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한지훈이 갑자기 운명하게 됐다는 것은, 곧 국왕이 자신의 팔다리를 잃어버린 셈과 다름없었다. 이미 계획한 많은 전략들은 다 무너지게 됐고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할 상황이었다. 게다가 한지훈이 죽게 된 후, 열국이 용국에 가하게 될 압박까지 직면해야 했다. 이제 곧 국경에서 전보가 전해질 거라 예상도 들었다. 이러한 국면에, 국왕은 반드시 먼저 백성들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모든 사람들에게 한지훈처럼 그동안 용국을 위해 공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