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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Author: 남희은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0-29 19:42:56
호텔 식당 안의 한 예약룸.

배현수가 떠나자 강이찬이 뒤따라갔다.

룸에는 유승태와 조유진 두 사람만 남았다.

조유진도 바보가 아니기에 예감이 좋지 않음을 바로 느꼈고 바이올린을 들고 빨리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승태 도련님, 저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조유진이 룸 입구까지 걸어 나오자 유승태가 고개를 한번 까닥이더니 입구에 있던 경호원 두 명이 조유진의 앞을 막았다.

유승태는 하찮은 표정으로 비웃듯이 말했다.

“유진 씨, 못 들으셨어요? 배현수가 당신을 나에게 줬다고요.”

조유진은 바이올린을 든 손을 꼭 쥐었고 애써 침착한 척하며 입을 뗐다.

“승태 도련님, 무슨 말씀이세요. 배 대표도 말했잖아요. 저는 배 대표의 전 여자친구예요. 현재 여자친구도 아닌데 배 대표가 무슨 자격으로 나를 다른 사람에게 준다 안 준다 함부로 얘기하는데요.”

“조유진,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좋게 말할 때 들어!”

유승태는 웃으면서 상냥한 척하며 말하고 있었지만, 전혀 농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조유진은 침을 한번 삼키더니 고개를 돌려 유승태를 바라보았다.

“승태 도련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예전에 나를 속여서 파혼까지 하게 했던 빚을 오늘 갚아야겠죠? 노래 부르는 것도 돈 벌기 위해서 아니에요? 이 술을 마시면 내가 보내드리죠.”

조유진은 의아했다.

“이것만 마시면 될까요?”

잔 속에 뭐가 들었든지 상관없이 조유진은 반드시 이 술을 마셔야 했다.

이 술을 마셔야 도망갈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조유진은 또 술을 마셔야 할까 봐 미리 숙취해소제와 알코올 알레르기약을 먹고 왔었다.

그래서 조유진은 일단 잔 속에 있던 술을 바로 마셨다.

조유진은 고개를 들어 단숨에 술잔을 비웠고 잔을 뒤집어 머리 위에 두 번 털기까지 했다. 술이 한 방울도 머리 위에 떨어지지 않았다.

“승태 도련님, 이렇게 하면 충분할까요?”

“짝! 짝!”

유승태는 박수를 쳤고 유쾌해 하는 모습이 보였다.

“유진 씨, 여린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일하는 게 생각보다 시원시원하네요.”

조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려 예의만 갖춘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러나 문 앞의 두 경호원은 여전히 비켜주지 않았다.

“승태 도련님, 왜 이러십니까?”

유승태는 웃었고 방탕한 눈빛으로 조유진을 바라보았다.

“어찌 됐든 배현수는 유진 씨를 버렸으니 이제부터는 나와 같이 있는 게 어때요? 6년 만에 다시 만나 보니 사람은 역시 욕망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네요. 남의 집 떡이 더 커 보인다고 따먹지 못한 열매가 어디에 열렸든 꼭 먹어보고 싶네요.”

특히 조유진이라는 이 열매는 유승태에게 최고급이었고, 그녀는 배현수를 이미 겪어본 사람이다. 어쩌면 이 부분이 유승태의 궁금증을 더 자극하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유진은 온몸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후끈 달아오른 것을 느꼈다.

조유진은 잔을 들고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술에 뭘 탔어요?”

“흥을 조금만 돋우는 물건이요. 이제부터 기분이 더 좋아질 거예요.”

유승태가 문 앞을 향해 손짓하자 경호원들이 룸에서 나갔다.

조유진은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유승태! 당시 너무 비겁해!"

“조유진, 당신이 다른 남자를 따라다녔던 중고품임을 알면서도 내가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을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요? 얼마나 많은 여자가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지 알아요? 지금 당신에게 기회가 왔을 때 빨리 잡는게 좋지 않겠어요?”

조유진은 속이 울렁거려 당장에라도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버려진 중고품이면 도련님은요? 설마 수많은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던 남자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죠? 저에게 도련님은 수차례 쓰다 버린 쓰레기만도 못해요!”

“유진 씨 온몸에 입만 살아 있군요!”

유승태는 조유진의 손목을 움켜쥐고 원형 테이블 위로 조유진을 눕혔다. 그리고 조유진이 입고 있는 원피스 상의를 찢으려고 했다.

이런 모욕감은 조유진으로 하여금 더없이 비참함을 느끼게 했다.

“배현수가 제일 증오하는 게 다른 사람 물건을 건드리는 거예요. 그게 설사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것이라도 말이죠. 유승태! 배현수가 두렵지...”

조유진은 유승태를 위협하여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유승태는 서주시에서도 대 악당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간이 배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이다.

유승태는 조유진의 말에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비웃더니 조유진 뺨을 두 번 툭툭 치며 말했다.

“설마 배현수가 와서 유진 씨를 구할 거라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죠? 조유진 씨, 정신 차리세요. 배현수 같은 남자는 소유욕보다 더 혐오하는 게 배신이에요!”

조유진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유승태의 말이 조유진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정곡을 찔렀다.

조유진의 모든 반항이 모두 쓸모없는 짓이 된 듯 약에 의해 몸이 통제되었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눈가가 촉촉해진 조유진은 이미 복종을 하는 듯 말했다.

“도련님, 조금만 부드럽게 해 주세요. 아픈게 싫어요.”

유승태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진작 이렇게 말을 잘 들었으면 얼마나 좋아요?”

조유진이 갑자기 한 손으로 유승태의 목을 끌어안자 유승태도 더 이상 경계하지 않았다. 그때 조유진은 다른 한 손으로 옆을 더듬어 유리 재떨이를 잡았다.

퍽!

조유진은 재떨이로 유승태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순간 유승태는 머리가 어지러웠고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피가 눈으로 흘러 유승태의 시선을 가렸다.

조유진은 식탁에 있는 식칼을 손에 들고 재빨리 문 쪽으로 달려갔다.

입구에 있던 두 경호원은 무슨 상황인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그저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머리를 쥐어 잡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만 들릴 뿐이었다.

“왜 가만히 있어! 저 여자 잡아! 저 빌어먹을 여자 힘은 왜 이렇게 센 거야!”

어둠 속에서 호텔 입구에 99가9999의 번호판이 달린 검은색 마이바흐가 서 있었다.

앞에 앉은 강이찬이 배현수를 설득하며 말했다.

“현수야, 유승태가 어떤 사람인지 너도 알잖아. 서주시 대 악당이야. 여자를 갖고 노는 게 취미인데 조유진이 그 손에...”

“그래서 마음이 아파?”

배현수는 쌀쌀맞은 얼굴로 강이찬의 말을 끊었다.

“조유진이 물론 너에게 미안할 짓은 했지만 그래도 한때 서로 좋아하던 사이잖아. 나는 네가 후회하는 것을 바라지 않아.”

배현수는 강이찬을 향해 말했다.

“운전해.”

강이찬은 어쩔 수 없이 시동을 걸었고, 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조유진이 옷깃을 여미며 호텔 로비에서 뛰쳐나왔다.

그 뒤에 유승태의 두 경호원도 달려 나왔다.

조유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마이바흐의 차 문을 열었다. 지금은 배현수만이 조유진을 구할 수 있다.

조유진은 차에 타자마자 배현수의 품에 안겼다.

자존심과 체면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조유진의 작은 입술이 저도 모르는 새에 배현수의 얇은 입술을 포갰고 어떻게든 배현수의 감정을 다시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조유진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했고 촉촉한 눈으로 애원했다.

“현수 씨, 나보고 내리라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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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배현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송인아라는 세글자가 떠 있었다. 배현수는 멀리 있지 않은 웃고 떠드는 남녀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배 대표님, 어젯밤에 대표님을 귀찮게 했던 그 여자는 제가 이미 대표님을 대신해서 떨어뜨려 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대표님을 귀찮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 스캔들은 제가 이미 연희 언니를 시켜 해결했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어? 어떻게 떨어뜨려 놨는데?”배현수가 귀를 기울이는 척하며 물었다. 송인아는 자신이 한 일에 배현수가 만족해하는 것으로 알고 우쭐대며 말했다. “그 여자는 그저 돈에 눈이 먼 여자예요. 2억을 주니까 다시는 대표님에게 매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배 대표님, 조유진같이 눈치 없는 여자는 상대할 필요가 없어요.”배현수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그는 이를 악물며 송인아에게 말했다. “잘했어.”송인아는 배현수의 칭찬을 듣고 더욱 기뻐하며 말했다. “배 대표님, 오늘 밤 우리...”송인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현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배현수의 눈빛에 험악함이 스쳐 지나갔다. 2억이면 조유진을 떠나게 할 수 있다는 말... 배현수는 자신이 조유진 마음속에서 이렇게 싸구려일 줄은 몰랐다. 6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배현수는 조유진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신 선생님, 제가 선유에게 감자 갈비 조림을 만드는 김에 맛 좀 보시라고 갖고 왔습니다. 요 며칠 동안 선유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신준우는 웃으며 보온병을 받았다. “어차피 진찰하는 김에 선유를 돌본 것뿐이에요. 하지만 이 갈비는 맛 보고 싶네요. 저는 이만 또 검진하러 가봐야 해서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주세요.”“감사합니다.”  신준우가 자리를 떠나자 조유진은 병실로 돌아가려고 복도 입구로 걸어왔다. 그 순간 갑자기 거센 팔 힘에 의해 복도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그녀의 등이 갑자기 벽에 부딪혔고 뼈가 부서지는 것처럼 아팠다.거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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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유가 한 걸음 한 걸음 조유진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복도 안은 어두컴컴했고 조유진이 고개를 들어 배현수와 눈이 마주치자 조유진은 갑자기 발등을 들어 남자의 얇은 입술에 키스했다.배현수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조유진은 두 손으로 배현수의 얼굴을 움켜쥐고, 더 어두운 곳으로 기울이며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선유는 문 쪽으로 머리를 들고 힘겹게 안을 몇 번 둘러보았고, 구석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가버렸다.그제야 조유진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조유진의 저돌적인 키스에 배현수도 멍해졌다.배현수는 조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또 어떤 수작을 부리려는지 지켜보고 있는 눈빛이었다.똑똑한 배현수가 혹시라도 알아챌까 봐 조유진은 이왕 한 김에 끝까지 연기하기로 했다.조유진은 빨간 입술로 다시 배현수의 귀에 입 맞춘 후 귓가에 입김을 불며 말했다. “배 대표님 왜 이렇게 그 남자 의사를 신경 쓰시는데요? 혹시 질투라도 하는 건가요? 6년이나 지났는데 설마 아직도 저를 못 잊었나요?”조유진은 일부러 더 경박한 말투로 얘기했다.배현수는 조유진의 입술을 쳐다보며 비웃는 듯이 말했다. “너무 자신만만하네!”예상대로 배현수는 조유진을 밀어냈다.배현수의 동작은 부드럽지 않았고 심지어 거칠기까지 했다.조유진의 등이 또다시 벽에 부딪혔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등이 아파왔다.배현수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조유진은 강한 척하던 모습도 순식간에 무너진 채 눈시울이 붉어졌다.조유진은 배현수가 과거에 빠져 진흙투성이가 되지 말고 진짜로 다시 시작하길 바랐다. 조유진이 혼자 과거라는 흙탕물에 빠져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조유진이 병실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은행 문자메시지에 송인아가 2억을 입금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메시지에 조유진은 머리가 아팠고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초윤아, 혹시 송인아 씨 연락처를 알고 있어?]메시지를 받은 남초윤이 흥분해서 물었다.[왜? 라이벌을 찾아가 한판 붙으려고? ]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23화

    잠시 후, 다시 문자가 왔다.[아저씨, 왜 저를 무시해요! 내가 아저씨 번호만 기억하면 아저씨에게 최고의 미인을 소개해 드려도 된다고 했잖아요?]“...”이렇게 끊임없이 문자 한 이유가 고작 이것 때문이라 배현수는 더더욱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 문자는 아이의 엄마가 시켜서 보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몇 년간 명예를 추구하는 곳에서 이런 여자들을 배현수는 너무 많이 봐왔기에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휴대전화를 다시 옆에 두고 배현수는 운전하고 있는 서정호에게 물었다. “내가 알아보라고 했던 것은 어떻게 됐어?”“아, 그 남자 의사요. 이름은 신준우, 호흡기과 의사예요. 무엇 때문에 그러세요? 배 대표님, 혹시… 대표님을 건드렸습니까?”서정호는 일부러 백미러로 배현수의 안색을 살폈다.여전히 냉랭한 모습, 얼굴에는 아무런 희로애락도 보이지 않았다.“그런 거 아니야. 좋아”단지, 배현수는 신준우가 조유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대제주시에 계속 있는 것도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다. 배현수의 대답에 서정호는 의아한 눈으로 배현수를 바라봤고 방금 좋다고 말한 게 신 의사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분명히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배 대표님, 송 아가씨가 아까부터 계속 전화가 왔었는데 반얀트리에 룸을 예약했으니 분위기 있게 저녁 드시라고 했습니다.”배현수는 무표정으로 셔츠 옷 소매에 달린 다이아몬드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한 쪽 입술을 삐쭉 위로 한번 올리더니 말했다. “본인이 진짜 사모님이라도 된 줄 아나 보네.”설사 연극을 하더라도 배 사모님 자리는... 예전에 조유진의 것이었다.그러나 지금은 조유진도 어울리지 않거니와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다....다음 날 아침 일찍, 조유진은 대제주시의 요양원에 갔다.안정희는 기색이 좋아 보였다. 조유진은 날씨가 화창한 것을 보고, 안정희를 휠체어에 앉혀 따뜻한 햇볕이 비치고 있는 정원으로 산책하러 나갔다.조유진이 허리를 굽혀 안정희의 다리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24화

    조유진은 황급히 병원으로 돌아왔다.남초윤은 조유진을 만나자마자 말했다. “선유가 요구르트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아래층 편의점에 데려가 요구르트를 사고 있었어. 내가 금방 돈을 내고 고개를 돌렸는데 선유가 안 보였어!”조유진은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우선 편의점에 가서 CCTV를 확인해보자”편의점 주인은 좋은 사람이었다.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얘기에 두말없이 CCTV를 보여줬다. 화면 속,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선유를 빼앗아갔다...“유진아, 이 사람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아니면 우리 경찰에 신고하자! 혹시 배현수 쪽 사람 아니야?”조유진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 사람... 조범의 조수야. 조범의 짓이 틀림없어!”조유진은 조범이 안정희를 찾아 자신을 위협할 거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유씨 가문과 관계를 맺기 위해 여섯 살짜리 아이까지 납치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조유진은 바로 조범에게 전화를 걸었고 실성한 듯 고함을 질렀다. “조범, 도대체 왜 선유를 납치해!” 전화기 너머의 조범은 침착했고 혀를 내두르며 대답했다. “유진아,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 나는 사람을 보내서 선유를 서주시로 데려와서 놀게 한 것뿐이야. 어쨌든 나도 선유의 외할아버지 아니니? 내 손녀가 보고 싶은데 보는 것도 안 돼?”“조범, 더 이상 가식 떨지 마! 당신이 이렇게 하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어린 선유는 조유진의 약점이다. 그래서 이 어린애를 잡고 있으면 조유진의 치명적인 약점을 잡은 것과 같다.조범은 이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유진아, 집에도 좀 와보고 그래. 6년 동안이나 집에 오지 않았어. 요 몇 년 동안 아빠는 여전히 네가 그리웠어.”조유진은 휴대전화를 잡은 손을 있는 힘껏 쥐었고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을 떨고 있었다.허위적인 부성애가 조유진을 너무 역겹게 했다....남초윤은 두 시간 동안 운전하여 조유진을 서주시에 있는 조가네 별장까지 데려다줬다.조가네 별장 입구에 서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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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7화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6화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5화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4화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3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2화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1화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0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59화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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