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수는 한 번도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놀랍도록 잘생긴 그 얼굴은 잔잔하면서도 차가운 호수 같았다. 마치 어떤 일에도 파도를 일으키지 않을 것 같았다.배현수를 따라 손님을 만나러 온 강이찬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말을 꺼냈다.“그런 즐겁지 않은 옛일은 꺼내지 맙시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유진아, 노래 두 곡 불러 봐.”유승태는 손가락을 튕겼다.“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조유진 씨가 대제주시 방송과 여신이었다면서요?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듣기 좋다고 하던데. 노래로 여기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겠어요. 만약 오늘 유진 씨 노래에 배 대표님이 기뻐서 계약서에 동의한다면 우리 둘 사이의 일은 깨끗하게 끝난 걸로 하죠.”유승태도 시원시원한 사람이었다.조유진이 당당하게 물었다.“그럼 여러분 어떤 노래 듣고 싶으세요?”유승태가 말했다.“오늘 배 대표님이 갑이니까, 배 대표님, 먼저 말씀하시죠.”“전 아무거나요.”배현수는 관심이 없어 그들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강이찬이 곧바로 설명했다.“제 기억에 유진이가 대학교 축제 때 영어 노래 ‘You-and-I’를 불렀었는데 엄청 잘 불렀던 기억이 있어요. 그럼 이 곡으로 하죠?”You-and-I...조유진은 심장이 쿵쾅 뛰었다.유승태는 벌써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했다.“유진 씨, 얼른 불러요!”조유진은 한편에 있는 작은 무대에 서서 바이올린을 어깨에 놓고 줄을 당겼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전주가 울려 퍼졌고 마치 달빛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무대에는 부드러운 불빛이 그녀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조유진은 흰색의 퍼프 소매가 달린 짧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마치 예전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로 돌아간 듯 자태가 단아하고 우아했다.배현수는 조유진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녀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그러나 그때 그녀는 조씨 가문의 별장 마당에 앉아 있었고, 조범은 그녀를 이름난 아가씨로 키우기 위해 가장 실력 좋은 성악 선생님을 데리고 왔다
호텔 식당 안의 한 예약룸.배현수가 떠나자 강이찬이 뒤따라갔다.룸에는 유승태와 조유진 두 사람만 남았다.조유진도 바보가 아니기에 예감이 좋지 않음을 바로 느꼈고 바이올린을 들고 빨리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승태 도련님, 저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조유진이 룸 입구까지 걸어 나오자 유승태가 고개를 한번 까닥이더니 입구에 있던 경호원 두 명이 조유진의 앞을 막았다.유승태는 하찮은 표정으로 비웃듯이 말했다. “유진 씨, 못 들으셨어요? 배현수가 당신을 나에게 줬다고요.”조유진은 바이올린을 든 손을 꼭 쥐었고 애써 침착한 척하며 입을 뗐다. “승태 도련님, 무슨 말씀이세요. 배 대표도 말했잖아요. 저는 배 대표의 전 여자친구예요. 현재 여자친구도 아닌데 배 대표가 무슨 자격으로 나를 다른 사람에게 준다 안 준다 함부로 얘기하는데요.”“조유진,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좋게 말할 때 들어!”유승태는 웃으면서 상냥한 척하며 말하고 있었지만, 전혀 농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조유진은 침을 한번 삼키더니 고개를 돌려 유승태를 바라보았다. “승태 도련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예전에 나를 속여서 파혼까지 하게 했던 빚을 오늘 갚아야겠죠? 노래 부르는 것도 돈 벌기 위해서 아니에요? 이 술을 마시면 내가 보내드리죠.”조유진은 의아했다. “이것만 마시면 될까요?”잔 속에 뭐가 들었든지 상관없이 조유진은 반드시 이 술을 마셔야 했다. 이 술을 마셔야 도망갈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이곳에 오기 전에 조유진은 또 술을 마셔야 할까 봐 미리 숙취해소제와 알코올 알레르기약을 먹고 왔었다.그래서 조유진은 일단 잔 속에 있던 술을 바로 마셨다.조유진은 고개를 들어 단숨에 술잔을 비웠고 잔을 뒤집어 머리 위에 두 번 털기까지 했다. 술이 한 방울도 머리 위에 떨어지지 않았다. “승태 도련님, 이렇게 하면 충분할까요?”“짝! 짝!”유승태는 박수를 쳤고 유쾌해 하는 모습이 보였다. “유진 씨, 여린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일하는 게 생각보다 시원시
조유진은 배현수가 다시 자기를 유승태에게 돌려보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재떨이로 유승태의 머리를 박살 냈는데 이 상황에서 다시 유승태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유승태는 원한이 있으면 반드시 갚는 사람으로 서주시에서 아주 유명하다.조유진이 입고 있던 원피스는 이미 유승태에게 갈기갈기 찢어졌고 새하얀 어깨와 쇄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조유진은 배현수의 다리 위에 앉아 두 손으로 배현수의 목을 끌어안고 뜨겁게 키스했다.배현수가 조유진의 팔을 잡아 조유진을 밀어내려 했다.“나 두고 가지 말아요...”조유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눈물이 배현수의 입술을 타고 내려 짠맛이 났다.배현수는 조유진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보며 당연히 쾌감을 느껴야 하는데 오히려 씁쓸한 감정이 몰려와 가슴이 저도 모르게 아팠다.“똑똑!”누군가 차창을 두드렸다.창문을 내린 강이찬은 눈썹을 찡그리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누가 감히 배 대표님 차를 두드려?”“강 대표님, 죄송합니다! 방금 조유진 씨가 이 차에 타는 것을 봤습니다. 조유진 씨가 방금 승태 도련님의 머리를 물건으로 내리치는 바람에 도련님이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습니다. 저희 보고 조유진 씨를 꼭 데려오라고 해서요.”강이찬은 차 밖을 보며 말했다. “아, 그래. 나는 방금 조유진 씨가 저 앞으로 뛰어가는 것을 봤는데 빨리 쫓아가 봐.”강이찬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자 경호원은 그 자리에 선 채 멍해졌다. “강 사장님, 제가 분명히 봤는데…”“배 대표가 지금 바빠서 이만 가야 할 것 같아. 자리를 좀 비켜줄래?”강이찬이 창문을 닫았다.뒷좌석에 앉아있는 조유진은 찢어진 원피스를 여민 채 손을 꼭 움켜쥐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손은 떨고 있었다. 조유진의 피부가 배현수의 검은 셔츠와 대비되어 더 하얘 보였다. 조유진이 배현수 무릎에 앉아 있었다. 조유진이 위에 있고 배현수가 조유진 몸 아래에 있었다.좁고 폐쇄된 공간에 두 사람의 숨결만 느껴졌고 조유진
유진아.배현수가 조유진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따뜻한 말투로 귀에 가장 거슬리는 말을 했다.조유진은 얼굴을 붉혔고 그저 웃음이 났다. 배현수는 시선을 내려 고개를 위로 젖히고 있는 조유진을 보았다. 조유진은 배현수의 조롱 섞인 눈빛이 그대로 느껴졌다. “만약 오늘 밤, 내가 스스로 도망치지 못했다면, 당신 마음이 조금은 약해졌을까요?”조유진은 배현수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호텔 룸으로 다시 갔을지가 궁금해졌다.구할 생각이라도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배현수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깊고 차가운 까만 눈동자는 조유진을 노려보며 오랫동안 침묵을 이어갔다.조유진은 왠지 답을 찾은 것 같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눈물이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조유진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현수 씨, 답을 듣고 싶어요.”구하러 갔는지 아니면 아예 생각이 없었는지 정확히 알고 싶었다. 그래야 조유진도 배현수라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단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배현수가 갑자기 말했다.“조유진, 그거 알아? 나는 이미 한번 죽었던 사람이야. 정확히 얘기하자면 두 번 죽었지. 어떻게 두 번 죽었는지 알아?”6년 전, 조유진이 법정에서 배현수를 배신했을 때가 첫 번째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또 한 번은 조유진도 잘 모르는 듯한 얼굴이었다. 배현수는 조유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에는 네가 법정에서 나를 배신했을 때이고, 두 번째는 감옥 안에서 심장을 찔릴 뻔했을 때야.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어.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은 날들을 살고 싶지는 않아.”더 황당한 것은, 당시 배현수를 칼로 찌르라고 한 것은 조범이 시킨 것이었다. 그때 육지율은 육씨 가문의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배현수를 수술할 병원에 알아봤고, 구사일생으로 겨우 살았을 때도 배현수는 잠꼬대로 조유진 이름만 불렀다고 했다. 6년 전, 조유진은 배현수의 심장을 감싼 넝쿨과 같았다.그때 배현수는 감옥에 있으면서 심장을 감싸고 있는 넝쿨을 한 가닥, 한 가닥
조유진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이불이 젖혀졌다.사늘한 기운이 느껴졌고 고막을 찌르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 대표님을 꼬시러 온 거야? 꼴은 그럴 것 같지만 당신 같은 사람들은 그저 한 번 쓰고 버리는 냅킨 같아. 당신 같은 여자들 많이 봤지.”조유진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베개로 몸을 가리며 물었다. “누구세요?”여자는 옆에 있는 가죽 소파에 앉아 금방 한 것 같은 네일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조유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 “나는 배현수 대표님의 약혼녀 송인아.”어젯밤, 배현수가 한 여자와 같이 호텔에 들어간 것이 파파라치에게 찍혔다.그래서 오늘 아침 그 스캔들이 온 세상에 퍼졌다.송인아는 배현수 명의상의 약혼녀로서 오늘 갑자기 터진 스캔들에 체면이 구겨졌다. 그래서 호텔을 찾아와 모든 분노를 조유진에게 쏟고 있었다. 송인아는 너무 의아했다. 배현수는 낯선 사람을 절대 가까이하지 못하게 한다. 평소에도 송인아가 배현수의 팔을 조금이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배현수는 무자비하게 뿌리쳤다. 그러나 왜 하필 조유진은 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이힐을 신은 송인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침대 옆에 걸어와 기세등등한 태도로 조유진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말했다.“얼마면 돼? 얼마면 잠자코 있을 거야?”조유진은 옷을 입고 나서 설명했다. “어제 현수 씨와 아무 일도 없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질척대지 않아요.”“하!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송인아가 조유진 옷깃을 잡아 벗기려 하자 조유진은 뒤로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왜 이러세요!”“내가 바보로 보여? 네 목에 키스 마크들 보고도 그저 손만 잡고 잤다고 할 거야? 침대에서 손 잡고 얘기만 했다고?”송인아는 조금 짜증이 났다. 조유진이 조신한 척을 하는 것은 더 큰 야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충분히 설명드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못 믿으시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송인아는 조유진과 배현수가 이미 6년 전부터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그게 무슨 이유든 유씨 집안 도련님의 머리를 때린 것 자체가 잘못이야! 다행히 도련님이 대인배셔서 안 따지고 그냥 넘어가는 거야. 조유진, 너 당장 서주시로 돌아와서 도련님께 사과해!”사과? 조유진은 왜 본인이 사과를 해야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밤새도록 억눌렀던 감정이 조범의 무분별한 질책 앞에서 터지고 말았다. “서주시로 돌아가요? 아버지, 잊으셨어요? 애초에 서주시에서 저를 쫓아낸 게 아버지예요. 그리고 지금은 나보고 서주시로 돌아가 유승태에게 사과하라고요? 유승태가 진짜 나를 강간이라도 했다면 그것도 내가 사과해야 하겠네요?”조범은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말했다. “유진아. 네가 오해하는 게 있는데 유 도련님은 너를 좋아해서 한순간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것뿐이야. 유 도련님이 오늘 아침에도 우리 집으로 와서 혼담 얘기를 꺼냈어. 그리고 꼭 너와 결혼하겠다고 했어. 다른 사람은 안 된대. 유 도련님이 너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네 복이야. 그러니까 빨리 집으로 와. 참, 그리고 그 양아치는 절대 데리고 오지마. 혹시라도 유 도련님이 보면 이 혼사가 또 깨질까 봐 두려우니까.”조유진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런 복은 다른 사람이나 주라고 해요. 나는 누리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자꾸 그 사람에게 양아치라고 하지 마세요. 저는 절대 유승태와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유씨 집안과 관계를 맺고 싶으면 아버지가 결혼하세요.”말이 끝나자마자 조유진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6년 전, 조유진이 직접 유승태와의 혼인을 망쳤다. 그때 조범은 홧김에 조유진을 집에서 쫓아냈다.지난 6년 동안 친아버지인 조범은 조유진에게 한 번도 관심을 주지 않았고, 6년 만에 처음으로 걸려온 전화는 조유진을 괴롭힌 악마에게 사과하라는 것이었다.조유진을 호랑이 굴로 보내겠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가끔 조범이 진짜 친아버지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그게 아니면 조유진을 이렇게까지 모질게 대하는 게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배현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송인아라는 세글자가 떠 있었다. 배현수는 멀리 있지 않은 웃고 떠드는 남녀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배 대표님, 어젯밤에 대표님을 귀찮게 했던 그 여자는 제가 이미 대표님을 대신해서 떨어뜨려 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대표님을 귀찮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 스캔들은 제가 이미 연희 언니를 시켜 해결했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어? 어떻게 떨어뜨려 놨는데?”배현수가 귀를 기울이는 척하며 물었다. 송인아는 자신이 한 일에 배현수가 만족해하는 것으로 알고 우쭐대며 말했다. “그 여자는 그저 돈에 눈이 먼 여자예요. 2억을 주니까 다시는 대표님에게 매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배 대표님, 조유진같이 눈치 없는 여자는 상대할 필요가 없어요.”배현수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그는 이를 악물며 송인아에게 말했다. “잘했어.”송인아는 배현수의 칭찬을 듣고 더욱 기뻐하며 말했다. “배 대표님, 오늘 밤 우리...”송인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현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배현수의 눈빛에 험악함이 스쳐 지나갔다. 2억이면 조유진을 떠나게 할 수 있다는 말... 배현수는 자신이 조유진 마음속에서 이렇게 싸구려일 줄은 몰랐다. 6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배현수는 조유진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신 선생님, 제가 선유에게 감자 갈비 조림을 만드는 김에 맛 좀 보시라고 갖고 왔습니다. 요 며칠 동안 선유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신준우는 웃으며 보온병을 받았다. “어차피 진찰하는 김에 선유를 돌본 것뿐이에요. 하지만 이 갈비는 맛 보고 싶네요. 저는 이만 또 검진하러 가봐야 해서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주세요.”“감사합니다.” 신준우가 자리를 떠나자 조유진은 병실로 돌아가려고 복도 입구로 걸어왔다. 그 순간 갑자기 거센 팔 힘에 의해 복도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그녀의 등이 갑자기 벽에 부딪혔고 뼈가 부서지는 것처럼 아팠다.거센
선유가 한 걸음 한 걸음 조유진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복도 안은 어두컴컴했고 조유진이 고개를 들어 배현수와 눈이 마주치자 조유진은 갑자기 발등을 들어 남자의 얇은 입술에 키스했다.배현수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조유진은 두 손으로 배현수의 얼굴을 움켜쥐고, 더 어두운 곳으로 기울이며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선유는 문 쪽으로 머리를 들고 힘겹게 안을 몇 번 둘러보았고, 구석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가버렸다.그제야 조유진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조유진의 저돌적인 키스에 배현수도 멍해졌다.배현수는 조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또 어떤 수작을 부리려는지 지켜보고 있는 눈빛이었다.똑똑한 배현수가 혹시라도 알아챌까 봐 조유진은 이왕 한 김에 끝까지 연기하기로 했다.조유진은 빨간 입술로 다시 배현수의 귀에 입 맞춘 후 귓가에 입김을 불며 말했다. “배 대표님 왜 이렇게 그 남자 의사를 신경 쓰시는데요? 혹시 질투라도 하는 건가요? 6년이나 지났는데 설마 아직도 저를 못 잊었나요?”조유진은 일부러 더 경박한 말투로 얘기했다.배현수는 조유진의 입술을 쳐다보며 비웃는 듯이 말했다. “너무 자신만만하네!”예상대로 배현수는 조유진을 밀어냈다.배현수의 동작은 부드럽지 않았고 심지어 거칠기까지 했다.조유진의 등이 또다시 벽에 부딪혔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등이 아파왔다.배현수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조유진은 강한 척하던 모습도 순식간에 무너진 채 눈시울이 붉어졌다.조유진은 배현수가 과거에 빠져 진흙투성이가 되지 말고 진짜로 다시 시작하길 바랐다. 조유진이 혼자 과거라는 흙탕물에 빠져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조유진이 병실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은행 문자메시지에 송인아가 2억을 입금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메시지에 조유진은 머리가 아팠고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초윤아, 혹시 송인아 씨 연락처를 알고 있어?]메시지를 받은 남초윤이 흥분해서 물었다.[왜? 라이벌을 찾아가 한판 붙으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