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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최대한 빨리 실력 좋은 심장외과 전문의를 찾아서 우리 아버지 혈관우회로술을 시켜드려야겠어. 응, 그래.”

배현수는 창문 앞에 서서 비서장과 통화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꼬마 한 명이 그의 옆으로 달려와서 입을 앙다물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곧 뒤에서 경호원이 나타나 그 낯선 꼬마 아이를 끌고 가려고 했다.

아이는 배현수의 수트 바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저씨,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저 사람에게 저를 잡지 말라고 해 주세요!”

배현수는 그 말에 놀랐다. 상대는 어린 꼬마이기도 하고 악의가 없어 경호원에게 물러나라고 손짓했다.

“무슨 일 있니?”

선유는 작고 흰 얼굴을 들며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아저씨, 정말 잘생기셨어요! 아저씨랑 이야기해도 돼요?”

아이는 핵인싸 같았다.

배현수가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어도 아이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배현수는 어린아이와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넌 내가 무섭지 않니?”

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순진무구한 얼굴로 말했다.

“아저씨가 이렇게 잘생겼는데 왜 무서워해요?”

“내가 나쁜 사람일까 봐 겁나지 않니?”

“나쁜 사람 같지 않아요.”

선유는 단호하게 말했다.

배현수는 순간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

꼬마들은 외모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리나?

두 사람은 병원 안에 있는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선유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배현수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왜 병원에 왔어요? 어디 아파요?”

“난 아프지 않아. 우리 아버지가 편찮으셔.”

배현수의 양아버지 배희봉은 관상 동맥 질환으로 인해 병원으로 실려 왔다. 배현수는 배희봉을 보러 병원에 온 것이다.

배현수는 자신이 왜 꼬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몰랐다.

평소 같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꼬마는 이상하게 볼 때부터 호감과 익숙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똑똑하고 귀엽게 생겨서 다른 아이들처럼 싫지 않은가 보다.

꼬마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하고 소리 냈다. 그리고는 또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나도 아파요,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의 아버지도 꼭 나을 거예요.”

배현수의 얼굴에 평소에도 보기 힘든 미소가 지어졌다.

배현수가 어린 꼬마한테 위로를 받다니.

“아저씨, 웃는 모습이 참 예쁘네요!”

그 작은 입은 꿀을 발라놓은 것처럼 듣기 좋은 말만 내뱉었다. 배현수는 선유의 말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옆에 서 있는 경호원도 그 말을 듣고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배현수의 옆에서 3년간 경호하면서 한 번도 배현수가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이 꼬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참 겁이 없는 아이이다.

이 아이는 배현수와 인연이 있는 듯해 보였다. 배현수가 물었다.

“너 왜 혼자 나왔어? 엄마 아빠는?”

“엄마는 일하러 갔어요. 돈 벌어서 선유의 치료비를 대야 하거든요. 난 아빠를 본 적이 없어요. 엄마가 아빠는 아파서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싱글맘이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구나.

배현수도 안 좋은 형편에서 태어나서 이 아이의 사연을 듣자 측은지심이 생겼다.

“네 이름이 선유니?”

선유는 머리를 끄덕였다.

“네! 우리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에요! 아저씨, 제 이름 이쁘죠!”

꼬마의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에 차가웠던 배현수의 눈빛은 어느새 부드러워졌다.

“그래, 이쁘네.”

“아저씨, 우리 엄마가 왜 제 이름을 선유라고 지었는지 맞혀봐요.”

“아마도 시에 구절 때문이 아닌가? 네 엄마가 그 시를 좋아하셨니?”

꼬마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절반 맞췄어요! 엄마가 저를 혼자 낳으셨는데 아빠가 너무 그리워서 선유라고 이름을 지었대요.”

“네 아빠 돌아가신 지 오래됐니?”

아이는 대여섯 살쯤 돼 보였다.

“네! 전 태어나서 아빠를 본 적이 없어요. 저는 여섯 살이에요.”

배현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네 엄마는 감정에 진지한 사람이겠구나.”

6년의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게다가 혼자 아이를 돌본다니. 이 꼬마의 엄마는 아마 많은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우리 엄마 엄청 예뻐요, 미인이에요! 우리 엄마를 좋아하는 아저씨가 있는데, 우리 엄마는 아빠만 좋아해요.”

아이는 망설임 없이 말을 내뱉었다. 아이는 배현수의 눈가의 실망과 어두운 감정을 보아내지 못했다.

배현수는 갑자기 아이의 아버지가 너무 부러웠다. 이미 떠났지만 여전히 이 세상에서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다. 영원히 배신당하지 않는 감정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너희 엄마 아빠가 서로 너무 사랑하셨나 보다.”

선유는 어른처럼 그를 위로했다.

“아저씨도 멋있으니까 꼭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날 거예요.”

그를 사랑해 주는 사람?

예전에는 있었을 것이다. 아니, 있다고 착각했었다.

배현수의 검은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난 감정에서 운이 좀 나빠. 네 아빠처럼 그런 행운이 없어.”

“아저씨, 여자 친구 있어요?”

“없어.”

선유는 열정적으로 말했다.

“아저씨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솔로인 아저씨가 불쌍해 보이니까 제가 나중에 한 분 소개해 드릴게요! 저 예쁜 이모들 많이 알아요!”

불쌍하다고?

옆에 있는 경호원은 표정에 의문이 가득했다.

배 대표님 몸값은 몇십조가 되고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여자도 수두룩하다. 이 꼬마는 도대체 뭘 보고 배 대표가 불쌍하다고 생각한 걸까?

그러나 배 대표는 절대 낯선 사람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배현수는 당연히 알려줄 생각이 없지만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대충 둘러댔다.

“너 지금 종이와 펜도 없으니까 내가 알려줘도 넌 기억 못 할 거야.”

그런데 아이는 눈을 깜박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얼른 알려줘요! 한 번만 말해도 전 다 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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