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어 서우야, 그만 생각해. 너 진짜 유환 씨 좋아했었어.”“유환 씨 없으면 안 될 정도로 많이 좋아했었지.”조명주는 의아해하는 최서우를 보며 다정하게 말했다.남자 혐오증이 생긴 뒤로 모든 남자를 싫어했던 최서우였지만 유독 임유환에게만은 물러지곤 했었다.그게 바로 그 마음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명이었다.“알겠어...”조명주의 말에 최서우도 그러려니 하며 더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이어지는 이틀 동안 임유환과 조명주, 서인아는 다 같이 최서우 곁을 지켰다.이틀 동안에도 의사는 여러 번이나 뇌 검사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아무 이상이 없었기에 다들 안심할 수 있었다.임유환이 퇴원절차를 다 마치고 최서우와 함께 밖으로 나가자 진작부터 대기하고 있던 흑제가 그들을 데리고 자운별장으로 향했다.자운 별장은 연경에서 제일 화려한 별장으로서 자운산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공기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다.신화 속에 나오는 신선놀음을 하는 낙원이 있다면 바로 자운산 같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그리고 보안 역시 아주 철저했는데 별장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드나들려면 무조건 등기를 해야만 했다.별장은 모두 독립적인 주택으로 되어있었는데 등기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들어가려면 경보가 울리는 프라이버시 보안이 완벽한 곳이었다.이곳에서는 제일 싼 별장도 만 억이었고 산 중턱의 별장은 이만 억이었으며 산 정상의 별장은 40만 억이라는 소문도 돌았다.이곳은 그야말로 억대 자산가만이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경호원들의 공손한 시선을 받으며 흑제의 맥라렌이 자운별장으로 들어섰다.산장 내부는 아주 깔끔했는데 도로의 곳곳마다 나무들이 심겨 있었고 산 정상에서부터 시냇물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맥라렌은 산길을 따라 천천히 위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올라갈수록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이 선경을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다.“여기가... 자운 별장이에요?”창문 너머로 선경 같은 광경을 보고 있던 최서우는 넋이 나간 채로 물었다.말로만 듣던 그 호화로운 자운별장을 직접 보니
조명주가 정신을 판 사이에 차는 정원만 해도 70평은 넘어 보이며 가짜 산과 작은 강까지 구비되어 있는 1호 별장 앞에 멈춰 섰다.“명주야, 도착했어. 내려야지 얼른!”“어? 아, 내려야지.”그때 잔뜩 들뜬듯한 최서우의 목소리에 조명주는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차에서 내렸다.그렇게 그들은 함께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별장은 총 5층으로 되어있었는데 매 층마다 층고가 5미터쯤 돼 보였다.별장의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유럽풍으로 되어있었는데 모던하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아 집이 한층 더 넓어 보이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게 했다.있을 건 다 있는 별장을 전체적으로 소개해준 흑제는 이제 그만 갈 때가 된 것 같아 작별인사를 했다.“임 선생님, 저는 그만 방해하고 가보겠습니다. 뭐 필요한 거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네, 감사합니다 흑제님.”“아닙니다, 그럼 가볼게요.”웃으며 말하는 임유환에 흑제도 짤막하게 대꾸를 하며 다른 세 명에게도 인사를 하고 별장을 떠났다.흑제가 떠난 뒤 그들은 2층으로 올라가 방부터 나누기 시작했다.“서우 씨랑 조 중령님이 먼저 골라요.”임유환이 신사답게 말하자 최서우는 대뜸 복도와 제일 가까운 방을 고르고는 조명주를 보며 불쌍한 척했다.“그럼 전 이방이요.”“명주야, 나랑 같이 방 쓰면 안 돼? 나 혼자 자기 무서운데...”“그래.”대학 때처럼 혼자 자는 걸 무서워하는 최서우를 보며 조명주는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잘됐다! 사랑해, 명주야!”조명주를 끌어안으며 좋아하는 최서우에 조명주도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아름다운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임유환은 맞은 편에 있는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그럼 난 이쪽 방 쓸게요. 바로 맞은 편이니까 무슨 일 생기면 나 불러요.”“네.”“그럼 나랑 명주는 먼저 방에 가서 인터넷으로 갈아입을 옷 좀 고르고 있을게요.”“네.”고개를 끄덕이며 조명주와 최서우가 방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임유환은 서인아를 보며 물었다.“인아야, 너도
서인아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그녀의 은은한 체향이 임유환의 코끝으로 전해졌다.그에 가슴이 두근거린 임유환은 말랑한 서인아의 몸을 느끼며 같이 팔을 벌려 안아주려는데 그 순간 서인아가 임유환에게서 몸을 떼어냈다.그래서 임유환은 허공에 두 머무른 두 팔을 보며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기사 왔어, 나 갈게.”서인아는 그런 임유환을 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어...”서인아의 웃음을 보니 아까 그건 고의가 분명한 건 같았지만 그렇다고 뭐라 할 수도 없었기에 임유환은 씁쓸히 팔을 거두었다.그때 점점 가까워지는 검은색 세단이 임유환의 생각을 멈추었다.이제 정말 서인아와 떨어질 때가 된 듯싶었다.“유환아, 나 갈게 이제. 며칠 뒤에 봐.”서인아는 부드럽게 말하며 임유환을 향해 웃어 보였다.“응, 도착하면 꼭 문자 해.”“그래.”서인아도 아쉬운 듯 입술을 말아 물며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그렇게 차 문이 닫히고 세단은 별장을 떠나갔다.“후...”임유환은 멀어져가는 차의 방향등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임유환은 아직도 아까 있었던 포옹의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셔츠에 남아있는 서인아의 체향탓인지 좀처럼 미련이 가시지 않았다.“아!”그때 별장 2층에서 들리는 최서우의 외마디 비명에 깜짝 놀란 임유환은 한달음에 최서우와 조명주가 쓰는 방으로 달려갔다.“무슨 일이에요?”“내... 머리 왜 이래요?”잔뜩 긴장한 채 묻는 임유환에 최서우는 화장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물었다.정확히 말하면 거울에 비친 관자놀이 부근만 밀린 제 머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다행히 무슨 큰일이 난 건 아니었기에 임유환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하지만 저 때문에 최서우의 머리가 밀린 것 같아 임유환은 죄책감 가득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했다.“서우 씨, 그게... 수술할 때 의사 선생님이 밀어서 그렇게 된 거예요.”임유환의 말을 듣자 그제야 자신이 수술을 마친 사람이라는 사실이 생각난 듯 최서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최서우도
“그럼 일단 앉아서 쉬고 있어요. 흑제님한테 모발제 좀 가져다 달라고 할게요.”“아, 그리고 내 방 옷장에 카키색 모자가 있던데 괜찮으면 그거라도 먼저 가져다 써요. 흑제님한테 올 때 여자 모자도 몇 개 더 가져다 달라고 할게요.”“괜찮죠 당연히, 고마워요 유환 씨.”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입을 여는 임유환에 최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임유환의 자상한 모습을 보니 그에 대한 호감이 조금 더 깊어진 것 같았다.“나한테 그렇게까지 인사 꼬박꼬박 안 해도 돼요.”임유환은 최서우를 향해 웃어주고는 흑제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서우야, 너 잠깐만 여기 있어. 나 유환 씨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좀만 나갔다 올게.”조명주는 최서우에게 짧게 당부를 하고는 임유환의 방으로 향했다.마침 흑제와의 통화를 마친 임유환은 갑자기 제 방에 나타난 조명주를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명주 씨가 왜 여기 있어요?”“별로 반갑진 않나 봐요?”“그럴 리가요.”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는 조명주에 임유환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나한테 뭐 할 말 있어요?”조금 놀라던 임유환은 조명주가 따로 저와 할 얘기가 있어 이렇게 방까지 찾아왔다는 걸 금세 눈치채고는 물었다.“있죠, 그것도 아주 많이요.”“말해요.”단도직입적으로 나오는 조명주에 임유환도 웃으며 대꾸했다.그에 조명주는 눈을 치켜뜨며 임유환을 주시한 채 입을 열었다.“일단은, 유환 씨 진짜 신분부터 알려줘요. 이젠 얘기해줄 수 있잖아요.”“진짜 신분이라뇨?”“유환 씨랑 흑제님 사이 그리고 유환 씨 신분 말이에요.”“내가 처음으로 임유환 씨 신분에 대해 물었을 때 유환 씨가 본인은 세계 1위 재벌이면서 또 군정계의 최고 령수라고 했었죠. 그거 다 사실이에요?”“그걸 기억하고 있었어요?”조명주의 말을 듣던 임유환의 눈썹이 저도 모르게 흔들렸다.조명주가 그때 흘리듯 했던 말들을 여태껏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서였다.“당연하죠, 중령씩이나 되는데 기억력은 좋아야죠.”조명주는 자신만만
임유환은 의심 가득한 조명주의 눈을 보며 정말 억울하다는 듯 실소를 터뜨리고는 말했다.“진짜예요, 내가 명주 씨한테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때는 정말 아무렇게나 말한 거였어요.”“그때 제가 세계 1위 재벌이라고 했는데 세계 1위 재벌은 명주 씨도 봤다시피 흑제님이시잖아요.”“이건 사실이잖아요.”예전 같았으면 굳이 조명주에게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신분을 숨기진 않았을 텐데 지금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니 사실대로 말해줄 수가 없었다.최서우도 저를 지키다가 총까지 맞았는데 조명주까지 이런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다.제 신분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들이 위험해질까 봐 임유환은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하려 했다.서강인의 말처럼 정씨 집안 뒤에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누군가가 숨어있었다.그 옛날 8대 가문의 수장이었던 임씨 가문을 제거해버릴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8대 가문 전체가 두려워하는 존재.임유환은 그들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하지만 그들의 목표가 임씨 가문 하나 제거하는 것 정도로 단순하진 않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임씨 가문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그 고생을 해가며 어머니를 죽일 필요도 없을 테니까, 어머니를 죽였다는 건 어머니가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어서 입을 막으려고 죽였거나 아니면 그밖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임유환은 그들 조직은 필시 연경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깊은 곳에 숨어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여러 가문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었다.그러니 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임유환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그래서 조명주에게조차도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 없는 것이다.조명주가 알게 된다면 당연히 수사를 돕겠다고 나설 것이고 그렇게 오랫동안 연경에서 임유환과 함께하다 보면 그 비밀조직의 눈에 띄는 건 시간문제였다.한편 그런 임유환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조명주는 임유환의 해명을 듣고는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세
“그럼 진짜 무제의 실력이라는 거에요?”“네.”실력에 대해서까지 숨긴다면 너무 진정성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또 이건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기에 임유환은 깔끔하게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에 조명주는 순간 숨을 들이마시며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이미 눈으로 본 게 있으니까 예상을 하긴 했지만 무제의 실력이라는 말을 임유환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또 새삼 놀라웠다.스물일곱의 나이에 그런 실력을 갖췄다는 사실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은 조명주는 참지 못하고 그 비결을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수련한 거예요?”“별거 없어요, 그냥 운 좋게 대단한 스승님을 만나게 된 것뿐이에요.”저를 가르쳐주시던 스승님을 떠올린 임유환은 차오르는 감사함에 입가에 미소를 띈 채 말했다.스승님이 안 계셨다면 임유환은 진작에 그 눈밭에서 얼어 죽었을 것이다.“그럼 스승님은 어떤 분이세요?”모든 덕을 스승에게로 돌리는 임유환에 조명주는 호기심 가득한 채로 스승의 성함을 물었다.“미안해요, 스승님이 성함 함부로 밝히는 거 싫어하셔서...”임유환의 스승님이 그에게 재차 당부하신 일이 한가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제 이름과 신분을 노출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당연히 그걸 기억하고 있던 임유환은 정중하게 조명주에게 말했다.“알겠어요.”조명주는 조금 실망했지만 남들 앞에 나타나는 걸 싫어해 이름을 숨기시는 스승님들도 많이 보아왔던 탓에 계속해서 묻지는 않았다.그래도 제자가 이렇게 훌륭한 걸 보면 그 스승님이라는 분도 한 실력 하실 것 같았다.“유환 씨, 그럼 15년 전 유환 씨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려줄 수 있어요?”조명주는 15년 전 임유환이 무슨 이유로 임씨 집안에서 쫓겨났는지 또 그 뒤로 무슨 일들을 겪어왔는지 알고 싶었다.“사실 뭐 큰일도 아니에요, 그냥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거죠.”임유환은 15년 전 일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진 않았다.자신이 가족들 때문에 독까지 먹고 쫓겨나 차가운 눈 바닥에서 죽을뻔했다는 말을
딩동, 딩동!그때 1층에서 갑작스레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가 둘의 대화를 끊어냈다.“흑제님인가 봐요, 내가 내려가 볼게요.”좀 전까지만 해도 슬픔에 잠겨있던 임유환은 순식간에 감정을 추스르고는 자상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조명주는 계단을 내려가는 임유환의 서글픈 뒷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았다.이 찝찝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나중에 다시 제대로 물어보기로 했다.그때 별장 정원 입구까지 나온 임유환은 눈앞에 보이는 뜻밖의 인물에 두 눈을 의심했다.흑제가 온 건 줄 알았는데 문 앞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하얀 셔츠차림에 카네이션 꽃다발을 들고 있는 최서우의 전 남자친구, 조효동이었다.“네가 여길 왜 와.”조효동을 본 임유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하하, 서우가 전에 입원했었다는 얘기를 들어서 병문안이나 하려고 왔지.”임유환 때문에 여러 번 망신을 당하긴 했지만 이번에 정우빈한테서 최서우가 기억을 잃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다시 이 기회를 빌려 최서우를 제 여자로 만들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그리고 그런 조효동의 얕은수를 단번에 보아낸 임유환은 냉기 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서우 씨는 너 안 보고 싶어해. 그리고 지금 집주인 허락도 없이 자운별장에 무단침입한 너 때문에 내 프라이버시 보장이 잘 안 되고 있거든. 그러니까 경호원 부르기 전에 빨리 꺼져.”임유환은 금방 퇴원한 최서우가 조효동을 만나 안 좋은 자극을 받기라도 할까 봐 조효동을 서둘러 돌려보내려고 했다.“미안한데 나도 여기 별장 샀거든, 그러니까 나도 집주인이야.”물론 조효동이 산 건 산기슭의 별장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저의 재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래?”하지만 임유환은 그런 조효동이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자운 별장은 집주인들끼리도 함부로 프라이버시 침입하지 못하게 돼 있는 거 몰라?”“알지 당연히, 나 그래서 침입 안 했잖아. 초인종까지 누르고 찾아온 건데?”“여긴 너 안 반기니까 다시 가.”정말 주인이라도 된 양
“서우야, 잠깐만!”신나서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는 최서우에 불길한 예감이 든 조명주는 최서우를 말려보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최서우는 한달음에 정원 입구에까지 도착했다.마침 최서우가 보기 전에 조효동을 돌려보내려고 손을 대려 했던 임유환은 갑자기 나타난 최서우에 몸이 굳어진 채 깜짝 놀라며 물었다.“서우 씨가 왜 여기 있어요?”“효동 선배 만나려고 왔죠!”기뻐하는 얼굴로 내뱉는 다정한 호칭에 순간 벙쪄버렸던 임유환은 이내 최서우의 기억이 대학교 3학년에 머물러있음을 기억해내고는 아차 싶은 심정에 이마를 짚었다.그때는 최서우와 조효동이 연애를 시작하기 전이었으니 최서우도 당연히 조효동이 저 몰래 부자 아줌마를 만나고 다니는 걸 모르고 있었다.그러니 한창 저 좋다고 따라다니는 “신사 선배”인 조효동에게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서우야, 안녕!”임유환이 당황한 틈을 타 조효동은 재빨리 최서우를 향해 손을 저었다.기억을 잃은 최서우는 처음으로 저를 서우라고 부르는 조효동에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그리고 그 모습을 본 조효동은 최서우가 기억을 잃은 게 확실하고 또한 저에게 호감이 남아있는 상태임을 확신했다.“효동 선배”라는 호칭으로 자신을 부르는 걸 보니 최서우의 기억은 조효동의 바람을 발견하기 전에 머물러있는 것 같았다.하늘도 자신을 돕는 것만 같은 천운에 조효동은 속으로 환호를 질러대며 이 기회에 최서우를 제대로 꼬셔보려 했는데 그때 뒤늦게 따라 나온 조명주가 최서우를 제 쪽으로 데려가며 조효동을 향해 소리 질렀다.“조효동, 너 지금 뭐 하는 거야!”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조명주에 조효동의 인상은 자연스레 구겨졌다.조명주 때문에 일을 그르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조효동은 기회만 생긴다면 반드시 그녀를 제 아래 무릎 꿇게 만들리라 다짐하며 음흉한 눈으로 조명주의 하얀 다리를 훑어보았다.하지만 이런 속내를 드러낼 리 없는 능구렁이 같은 조효동은 다시 신사다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서우 퇴원했다는 얘기 듣고 병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