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팔 장로는 서인아의 결심과 그녀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너무 얕잡아보았다.“팔 장로님, 이 정도로 절 협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서인아는 이내 차가운 표정으로 팔 장로를 노려보며 말했다.“협박이라뇨 아가씨, 제가 어떻게 감히...”“협박이 아니면 이런 말들은 왜 하는 거죠?”팔 장로의 말을 끊어내는 서인아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저는 그냥 임유환 저놈은 아가씨와 어울리지도 않고 서씨 가문의 문턱을 넘을 자격도 없다 판단해서 말한 것뿐입니다.”“그 입 다물어!”“나한테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를 언제부터 당신 같은 사람이 판단했죠?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하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다른 장로들이 나서준다 해서 내가 당신 직위 하나 못 뺏을 것 같아요?”“아가씨, 저는...”임유환 하나 때문에 서인아가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 몰랐던 팔 장로가 수염까지 떨어가며 말했다.“됐어, 다들 그만해.”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에 갑자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서강인과 함께 상석에 앉은 노인이었다.그 노인이 입을 열자 다들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태 장로님.”“태 장로님.”서인아와 서강인 역시 태 장로를 공손히 바라보고 있었다.물론 신분은 가주인 서강인 제일 높겠지만 그래도 이미 백 이십 세는 넘어 보이는 노인이니 집안 어르신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인아야, 나는 팔 장로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모두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태 장로가 입을 열었다.“그러니 너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렴.”“태 장로님까지 왜 그러세요...”태 장로까지 이렇게 나오니 더 이상 밀어붙이기도 힘들어진 서인아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서강인 역시 태 장로까지 나설 줄 몰랐어서 안색이 좋진 않았다.그리고 팔 장로는 다시 우쭐거리며 서인아를 향해 말했다.“아가씨, 보세요. 태 장로님께서도 제 의견을 지지해주시잖아요.”“저도 아가씨가 저놈한테 사적인 감정이 있는 건 압니다, 제가 그걸 반대하는
“너 지금 뭐라고 했어!”임유환의 말에 발끈한 팔 장로가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여기가 어디라고 네가 감히 끼어들어!”그리고 다른 장로들도 같이 분노하며 임유환을 향해 호통쳤다.“하하, 그래요. 내가 끼어들 이유가 없긴 하죠. 오늘도 인아와 가주님의 요청이 아니었다면 이딴 곳에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당신들 같은 시시비비도 가리지 못하는 노인네들을 마주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임유환은 냉소를 흘리며 장로들의 체면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누가 시시비비도 못 가리는 노인네야!”“어디서 이딴 놈이 굴러들어왔어!”여러 장로들이 모두 화가 나 씩씩 대자 팔 장로는 이 기회를 빌려 태 장로에게 손을 내밀었다.“태 장로님, 저놈이 저렇게 예의가 없어요. 저런 놈을 어떻게 우리 서씨 집안에 들이겠습니까!”그 말을 듣던 태 장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얼굴에 분노가 피어올랐다.그 모습에 서강인의 낯빛도 변하고 서인아도 심장이 두근거렸다.서인아는 임유환이 저를 위해 하는 말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되면 서씨 집안 어른들에게 다 미움을 살 것 같아 얼른 임유환을 바라보며 그만하라고 눈치를 줬다.하지만 임유환은 나머지는 자신에게 다 맡기라는 듯 서인아를 보고 웃었다.그에 서인아가 어리둥절해 하던 것도 잠시 팔 장로의 분노어린 목소리가 다시금 로비에 울려 퍼졌다.“태 장로님, 얼른 명령을 내리셔서 저놈을 쫓아내셔야 합니다!”“하하, 팔 장로님 뭘 그리 급해 하세요? 얼른 대의를 더 읊으면서 다른 이들을 부추겨야죠!”저를 비웃으며 말을 끊어대는 임유환에 팔 장로가 발끈해서 화를 냈다.“누가 사람들을 부추겨!”“당연히 당신이죠.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노인네.”“너...”노인네라는 욕까지 들은 팔 장로는 화가 나 온몸을 벌벌 떨었다.하지만 임유환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만 했다.“말 한마디 할 때마다 집안, 명운, 입 놀리는 거 말고 당신이 진짜로 서씨 집안을 위해 한 일이 있기는 해요?”“서씨 집안 아가씨가 가문을 위해 혼자 얼마
차가운 목소리가 조용한 로비에 울려 퍼지자 다들 S 시에서 온 놈이 이 정도로 무모할 줄 몰랐는지 표정들이 가지각색이었다.“너 아주 무모한 놈이구나!”임유환이 처음으로 하는 도발도 아니었기에 팔 장로는 화가 나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최고 권세가 장로답게 으스대며 물었다.“너 따위가 감히 나랑 자격을 논해?”“그런 작은 도시에 온 놈이 흑제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상한 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정씨 집안과 싸우는 게 가당키나 했을 것 같아?”“그래놓고 지금 네가 진짜 그럴만한 능력이라도 있다고 착각하는 거야?”“다 늙어서 말은 왜 이렇게 많아, 그래서 싸우겠다는 거예요 말겠다는 거예요?”임유환은 전혀 화가 나지 않는 듯 담담히 팔 장로를 바라보았다.“입만 산 자식!”팔 장로는 코웃음을 치고는 대답했다.“유감이네, 다른 사람은 그렇게 속여 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안 되지. 난 알거든,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그럼 해보자니까요.”임유환이 담담히 대꾸하자 팔 장로가 팔을 걷어붙였다.“그래, 한번 해보자고!”강한 진기가 몸에서 뿜어져 나왔는데 순식간이었지만 그 기운은 무존 후기의 기운이었다.팔 장로가 보여준 실력에 곁에 있던 젊은이들은 다들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팔 장로님이 언제 무존 후기에 오른 거야?”“몰라, 보름 전만 해도 무존 중기였는데...”“우리 서씨 집안에 무존 강자가 하나 더 늘었어!”일취월장한 팔 장로의 실력에 다른 장로들도 웃음을 지었다.“하하, 정말 잘됐네. 팔 장로님의 실력이 또 오를 줄 몰랐는데.”“그러게 말이에요. 이렇게 서씨 집안에 무존 후기의 강자가 하나 더 늘었네요.”서강인과 태 장로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무존의 실력이었고 그중에서 팔 장로와 칠 장로의 실력이 제일 미약했는데 팔 장로가 또 이렇게 돌파를 하니 서씨 집안의 전체적인 전투력이 향상한 것이었다.다른 사람들의 감탄을 들은 팔 장로의 주름진 눈가에는 감출 수 없는 우쭐거림이 가득했다.전에 S 시에서 돌아온
“너 방금 뭐라고 했어!”이렇게 오래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 정도로 무시당하는 게 처음이었던 팔 장로는 열이 올라 빨개진 얼굴과 확 작아진 동공을 한 채 임유환을 향해 소리쳤다.“가주님이 널 지켜주신다고 내가 정말 너한테 손 못 댈 줄 알아?”임유환이 서인아와 서강인을 믿고 저를 도발한다고 생각한 팔 장로는 두 주먹을 꽉 쥔 채로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하하, 그럼 어디 해보시든지.”“마침 나도 나한테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했거든요.”“젠장!”담담히 말하며 웃는 임유환에 팔 장로는 분노가 가득 담긴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늙어버린 몸뚱이를 세차게 떨어댔다.그 순간 팔 장로 몸 안에 있던 진기가 뿜어져 나와 팔 장로를 에워싸고는 거세게 일렁거리며 보이지 않는 진기 파도를 만들어냈다.“그 당당함이 언제까지 가나 보자고 한번, 나중에 무릎 꿇고 빌지나 마!”분노가 극에 달한 팔 장로의 목소리는 바닥을 뚫고 들어갈 정도로 낮게 깔려있었다.“팔 장로, 유환이는 우리 집안의 손님이에요,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서강인의 호통에 팔 장로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분노가 가득 담긴 눈으로 말했다.“가주님, 이건 저놈이 먼저 요구한 겁니다. 제가 여기서 물러나면 서씨 집안의 체면이 구겨지는 일 아니겠습니까?”“팔 장로!”“아버지, 저렇게 망신을 당하고 싶다는데 그냥 하라고 하세요.”그때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을 한 서인아가 서강인을 말리며 말했다.그에 결심한 건지 팔 장로는 수염까지 흩날리며 분노 가득한 음침한 눈으로 임유환을 노려보더니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발을 굴렀다.그러자 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임유환 앞에 나타난 팔 장로는 진기를 모아 주먹을 쥔 채 임유환을 향해 휘둘렀다.주위의 공기마저 짓눌렸다 터지는 듯한 소리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너무 빨라!”“저렇게 무시무시한 주먹은 처음 봐!”무존 후기에 오른 강자의 대련을 본 적이 없는 젊은이들은 팔 장로의 빠른 속도에 감탄을 마지않으며 환호했다.“이제
담담한 목소리가 오래도록 로비에 울려 퍼졌다.단 한 번의 손짓으로 팔 장로를 날려버린 임유환에 다들 깜짝 놀란 탓에 임유환 말에 대꾸하려고 나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이 정도 실력이라면 무제 경지에 오른 사람임이 분명했다.태 장로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유환이라는 사람을 파악하려는 듯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팔 장로가... 한 방에 쓰러진 거야?”그들의 대결을 관전하고 있던 젊은이들도 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길을 보내왔다.주변이 조용한 탓에 사람들이 침을 넘기는 소리도 크게 들려왔다. 하지만 잔뜩 놀란 그들과는 달리 서인아는 결과가 이렇게 될 줄 미리 알고 있었다.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을 하고 담담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으로 제자리에 우뚝 서 있는 임유환을 보자 서강인도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켁켁...”그때 팔 장로가 기침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값비싼 옷에 먼지가 잔뜩 묻어있었고 왼쪽 얼굴에는 빨간 손자국까지 선명히 찍혀있어 지금 팔 장로의 처지가 한층 더 초라해 보였다.자리에 있던 젊은이들이 깊은숨을 들이마시자 팔 장로도 지금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제 꼴을 의식했는지 더할 나위 없이 초라한 얼굴을 일그러뜨려 분노를 표출해냈다.임유환은 여전히 팔 장로를 집어삼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팔 장로님, 지금은 제게 자격이 생겼냐고 물었습니다.”제 분노는 무시한 채 담담히 웃는 임유환에 팔 장로는 주먹을 꽉 쥐고 몸을 떨어댔다.“너 이 자식, 또 어디서 값진 보물을 먹고 실력을 올린 거지!”서씨 집안의 장로인 제가 이렇게 처참하게 임유환 같은 애송이한테 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팔 장로는 임유환을 노려보며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아직도 인정을 못하시나 봐요?”“너 같은 하층 인간들은 그딴 수법을 써야지만 이기는 거야!”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는 임유환에 참패 뒤에 몰려오는 모욕감을 느낀 팔 장로는 빨개진 눈을 하고 소리쳤다.“하층 인간이요?”“팔 장로, 이제 그 입
가벼운 웃음소리가 방울 소리마냥 갑자기 대문 쪽에서 들려오자 다들 행동을 멈춘 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쭉 빠진 몸매에 백옥같이 하얀 다리를 가진 여자가 검은색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카키색 미니스커트가 엉덩이에 딱 달라붙어 S라인의 몸매를 완벽히 드러낸 섹시한 여자가 예쁜 얼굴로 꽃 같은 눈웃음을 흘리며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여자의 등장은 자리하고 있던 많은 젊은이들을 홀렸는데 장로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놀란 듯했다.윤씨 집안의 딸이 어쩌다 서씨 집안에 온 건지 영문을 몰라서였다.“윤여진?”서인아 역시 그녀가 여기에 온 이유를 몰랐기에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윤여진은 그들의 시선은 다 무시한 채 반짝이는 눈망울에 임유환만 가득 감고 있었다.15년 만에 본 임유환은 그때보다 키도 더 크고 더 잘생겨진 것 같았다.그리고 윤여진은 오늘 임유환을 보러 온다고 특별히 어제 새로 산 미니스커트를 입고 온 것이다. 이렇게 오면 임유환이 좋아할 것 같아서.“오빠, 오랜만이에요!”먼저 인사를 건넨 윤여진 내뱉은 오빠라는 소리에 임유환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온몸의 뼈마저 녹이는 듯한 목소리에 임유환도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그건 그거고 이 자리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선 안 됐기에 임유환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제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여자가 오빠라 부르는 것이 적응되지 않아서 조금 더 빨리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아무튼 임유환은 정신을 차리고 나서 여자를 향해 떠보듯 물었다.“실례지만... 누구신지?”“나 좀 속상할라 그래요, 어떻게 오빠가 날 잊어요...”눈에 순식간에 실망이 가득 차고 입꼬리가 축 처진 그 모습은 주위에 있던 다른 젊은이들의 연민을 불러일으켜 그들은 이미 임유환을 희대의 쓰레기라고 수군거리고 있었다.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임유환은 이미 수백 번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서인아의 미간은 평소와 다르게 불쌍한 척을 해대는 윤여진에 더욱더 찌푸려졌다.주위의 장
“빙고! 기억해 냈네요!”윤여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진짜 여진이야?!”여자가 크면 모습이 많이 변한다고는 하나 지금의 윤여진과 임유환 기억 속에 남아있는 15년 전의 윤여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15년 전의 열 살 윤여진은 동글동글한 얼굴에 포동포동한 몸매를 가진 아이였는데 어느새 훌쩍 자라 여성스럽고 늘씬한 여자가 됐는지 임유환은 보면서도 놀라웠다.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가슴이 큰 건 여전했다.그때도 초등학교 3학년인 윤여진의 발육은 다른 또래들에 비해 월등히 빨랐었다.“오빠 아직도 나 기억하고 있었네요!”“당연하지, 내가 어떻게 널 잊겠어. 여자는 크면서 많이 변한다고 하던데 진짜 못 알아볼 뻔했네.”새초롬하게 말하는 윤여진을 임유환은 15년 전 그때처럼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고개를 젓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했다.하지만 오랜만에 본 건데 그건 좀 오버인 것 같아 임유환은 꺼냈던 손을 다시 뒤로했다.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윤여진은 아직도 저를 어릴 때의 그 껌딱지 취급을 하는 임유환에 새침하게 입을 삐죽였다.어릴 때는 윤씨 집안과 임씨 집안이 세교지간이었기에 윤여진과 임유환도 각별한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아주 어릴 때부터 붙어 다니며 같이 놀다가 학교 갈 나이가 돼서는 같이 등하교까지 하던 사이였다.하지만 어릴 때의 윤여진은 키도 작고 통통했는데 하필 발육도 남들보다 빨라서 다른 사람들의 이상한 눈길을 자주 받다 보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그래서 반 애들도 돼지라며 놀리고 비웃으며 일부러 윤여진을 멀리했는데 그때도 임유환만은 윤여진과 함께 있어 주며 혼자 있는 윤여진의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또 다른 친구들까지 데려와 윤여진과 함께 놀아주었었다.그때 임유환이 윤여진은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예쁜 동생이라고 말 한 뒤부터 윤여진은 완벽한 임유환의 껌딱지가 되어버린 것이다.그때부터 윤여진은 늘 임유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그의 뒤에 숨어있었다.그렇게 지내는 게 윤여진은 가장 행복하고 편안했었다.하지만
“유환 오빠, 나도 이젠 어른이에요.”나지막이 말하는 윤여진의 예쁜 얼굴에 매혹적인 웃음이 피어올랐다.“그러네.”임유환도 아주 예쁘게 자라나 그때와 달리 자신만만해 보이는 윤여진이 놀라웠다.임유환은 더는 제 보호가 필요 없어진 윤여진을 그때처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오빠, 지금의 저는 어때요? 오빠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에요?”윤여진은 눈을 반짝이며 임유환을 다정히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윤여진은 E컵이나 되는 가슴이 눌리울 정도로 임유환의 팔을 꼭 끌어안으며 그의 대답을 재촉했다.“어...”그 오랜 시간 동안 보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다정하게 스킨십을 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적잖이 당황했다.자꾸만 제 팔을 타고 전해지는 말랑한 촉감에 정신까지 아득해져 왔던 임유환은 윤여진을 보며 난감한 듯 말했다.“저, 여진아...”“왜요, 오빠?”윤여진은 남자라면 누구든 빠져들 것 같은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정말 모르겠다는 듯 임유환을 바라보았다.“그게... 거기가...”어렵사리 돌려 말하는 임유환에도 윤여진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그게 뭐요, 어차피 그때는 우리 둘이...”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던 윤여진도 그날 일을 떠올리자 눈빛이 흔들렸다.역시 윤여진은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던 거지 정말로 그런 일을 떠올려도 감정에 아무런 파동도 일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다.윤여진 입에서 나온 그날 일에 임유환은 멋쩍은 듯 마른기침을 해댔다.그때 아무것도 모르던 둘이 하마터면 서로에게 큰 실수를 할 뻔했었다.때는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발육이 다 끝난 윤여진이 하필 성교육이 원만히 진행될 수 없었던 시기에 또 친구들의 이상한 눈길과 조롱을 받고 있던 15년 전이었다.그렇게 매일 기죽어 있던 윤여진이 어느 날 하교를 하다가 임유환에게 또 가슴 때문에 놀림받았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던 것이다.그때의 윤여진은 임유환과 제일 친했으니 그에게 객관적인 평가를 해달라고 가슴을 보여주겠다고 했었고 임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