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빈의 호탕하고 조롱 섞인 웃음소리는 고요한 현장에 울려 퍼졌다. 그는 이번 싸움에서 자신이 전력을 다해 싸우기만 한다면 누구도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임유환은 정우빈을 그저 묵묵히 쳐다만 봤다. 정우빈의 의기양양한 모습과 마치 승리라도 한 냥 우쭐대는 것을 다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해주지 않고 있었다.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는데 평온하고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지금 소백우를 대신해 정우빈의 뺨을 대신 내리 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죽으려고 환장을 하는구나!” 임유환의 무시를 받고 있던 정우빈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살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정우빈은 옆에 있는 소백우마저 임유환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아 얼굴이 굳어지더니 그녀에게 물었다. “백우야, 설마 지금 저 놈을 걱정하고 있는 거야?” “내가 네 미래 남편 될 사람이라는 것 잊었어?” “쟤는 그저 나 정우빈 손아귀에 잡힌 개 한 마리 일 뿐이라고!” 소백우에게 마구 따지던 정우빈은 한 걸음 앞으로 더 다가섰다. 펑! 혼탁한 진기가 순간 그의 몸에서 쏟아져 나왔고 이내 정우빈의 몸은 앞으로 살짝 기울어 버렸다. 현장사람들로 하여금 놀라게 한 모습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정우빈의 그림자는 순간적으로 흐려지다 못해 잘 보이지가 않았다. 솨!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듯한 바람 소리가 사람들에게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고요한 현장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저 속도 좀 봐, 너무 빠른데?” 사람들은 빠른 속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중들이 놀라는 동안에 정우빈의 주먹은 바람을 가르며 바로 임유환의 얼굴로 향했다. 강한 정우빈의 힘은 임유환을 짓눌러 버렸다. 그러나 임유환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반응도 없어보였다. 빠르게 다가오는 정우빈의 주먹을 임유환은 그저 몸을 살짝 돌려 피했다. 솨! 주먹은 임유환의 몸 앞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무섭고 험악한 얼굴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미친 듯이 뛰게 만들
펑! 임유환이 말이 떨어지는 동시에 그의 체내에 있던 기운이 순식간에 폭발하고 있었다. 그의 기운은 마치 큰 파도와도 같이 한번 또 한 번 강하게 다가와 현장으로 퍼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임유환의 기운은 정우빈의 기운을 손쉽게 짓눌러 버리는 것 같아 보였다. “이... 이 기운은?” “또... 무존 강자가 또 한명이나 나타난 것인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임유환의 기세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8대 집안의 주인들도 마치 괴물이라도 본 냥 임유환을 경이로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 놈도 무존 중기실력인가? 정우빈보다 젊고 어려보이는 사람이 그보다 더 강한 기운을 뽐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임유환도...” 조명주는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고 눈빛이 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럴리가!” 정우빈은 임유환의 기운에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놈이 어떻게 무존 중기겠어?] “이게 놀랄 일인가요?” 정우빈의 시선에 임유환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사람들 속에서 정우빈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정우빈은 그의 눈빛에 갑자기 불안해졌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럴 리가 없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그는 고개를 격하게 저었고 눈빛에서 느껴지던 우쭐거림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정우빈은 자신보다 더 강한 재능과 실력을 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특히 그게 자신이 늘 개미 보 듯 본 임유환이라면 더더욱. 정우빈은 크게 화를 내며 손을 맞잡았고 그에게서는 화염과도 같은 투명한 진기들이 마구 퍼져 나왔다. 그리고는 임유환의 가슴에 한번 또 한 번 강한 힘으로 공격을 쏟아 부었다. 쿵! 빠른 정우빈의 속도와 그에 맞물리는 힘은 정우빈과 같은 실력을 가진 실력자라고 해도 중상을 피면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은 그 힘에 온 몸이 굳어졌고 많이 긴장한 채로 서있었다. 임유환은 악을 쓰며
결과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어 버렸다.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이런 결과에 다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러한 결과가 있기 전 사람들은 다 정우빈이 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에 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다시 일어설 힘도 없이 저렇게 비참하게 무너지다니! 김우현도 아까 전 임유환에게 단번에 패배를 하였으니 사람들을 그의 실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빈이가 졌어?” 정서진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패배한 정우빈을 보며 그는 한동안 정신을 다잡지 못했고 조명주 또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임유환이 이겼다고?” “그래! 이겼어.” 최서우는 한껏 격양된 표정으로 조명주에게 대답해줬다. 무대 위에 있던 소백우는 임유환을 쳐다보며 경악을 금치 못한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런! 임유환에게 지다니.” 놀라기는 서강인도 마찬가지였다. 5대 가문의 주인들도 거의 동시에 놀란 표정으로 그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좋아!” 임준호는 격동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다. 임유환의 승리에 놀랐는지 아니면 정우빈의 패배에 놀란 건지는 모르겠지만 임준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는 놀람과 당황함이 섞여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내 고요하던 현장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북적거렸다. “정우빈이 졌어?”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기에 정우빈을 이기는 거지? 연경의 8대 가문을 내놓고도 저런 인재가 존재한단 말이야?” “설마 그 은사 종문 사람이 건가?” “에이 설마, 옷차림을 보니까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은사 종문의 그 괴물들은 그들의 규칙이 있어. 절대로 마음대로 외출을 해 현세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지.” “그럼 저 놈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한방에 정우빈을 패배하게 만들다니... 쟤 실력은 거의 무존 후기잖아? 게다가 딱 보니까 정우빈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데.” “잘 몰라, 하지만 방금 정서진 씨가 그랬잖아. 저 사람은 임씨 가문에 버려진 아들이라고.” “버려진 아
“정우빈 저 개**.” 소백우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위험을 빠르게 감지해버린 그녀는 얼른 큰 소리로 임유환에게 말했다. “조심해, 손에든 저 약은 정기단이야.” “정기단?”소백우의 목소리에 임유환은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내 무슨 약인지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하지만 정우빈의 표정은 더더욱 싸늘하게 식어갔다. “소백우, 네가 저 놈의 생사에만 신경을 쓰고 나한테는 관심도 없어? 좋아, 그럼 저 놈의 시신을 처리할 준비나 하라고!” 입으로는 무서운 협박과도 같은 말들을 내뱉었고 시선은 소백우를 향해 있었다. 말을 마친 정우빈은 손에 들려있던 정기단을 바로 복용을 하려고 준비했다. “임유환! 당장 저 사람 막아.” 소백우는 정우빈의 모습에 급히 소리를 질렀다. 만약 정우빈의 입에 정기단이 들어간다면 모든 것은 다 늦어버릴 것이다. “이미 늦었어.” 정우빈은 피식 웃음을 짓더니 정기단을 바로 입안으로 넣어버렸다. “흐음.” 이내 그의 목젖이 크게 움직이더니 정기단은 정우빈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펑! 정기단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전에는 보지 못했던 강하디 강한 진기들이 정우빈의 몸 밖으로 폭발했다. 그 소리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다 놀라게 만들었다. “저런 비겁한 자식.” 임준호는 그의 모습에 분노하며 바로 손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여성이 그의 옷깃을 잡으며 그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가지 말라고 말렸다. 하지만 임준호의 몸은 여전히 분노로 의해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우빈 도련님께서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닌가?” 서강인은 현장에 펼쳐진 광경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런 행동은 가문의 도련님 치고는 너무 비겁하고 찌질한 행동이었기에 그는 고개를 저어버렸다. “흥, 이기기만 하면 돼! 어떤 비겁한 수단을 써서든지.” 정우빈은 피식 웃음을 짓더니 눈빛이 악랄하게 변해갔다. “우빈이 선택이 맞아!” “오늘 이긴다면 나중에 더 큰 보상을 받겠지.” 서강인은 그저 할 말을 잃어버린 듯 가만히 지켜만 보고
정우빈이 정말로 졌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임유환과 정우빈에게로 향했고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누가 정기단까지 복용을 한 정우빈이 패배할 줄을 예상이나 했겠는가? 임유환은 딱 한방, 강력한 한방으로 정우빈을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서우야, 임유환이 정우빈을 이겼어?” 조명주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패배한 정우빈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겼어 명주야.” 최서아는 한껏 격동된 억양으로 대답했다. 조명주는 임유환이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이겼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조명주의 머릿속에 문득 한달 전 임유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임유환은 세계에서 5위안에 드는 고수들도 자신에게는 상대가 안된다고 자신만만해하며 말했었다. 조명주는 당시 임유환으 뻥을 친다고만 생각했기에 웃어 넘겼다. 하지만 지금 보니 임유환은 거짓말이 아닌 진심을 알려준 것 같아보였다. “후.” 소백우는 무대 위에서 그의 모습을 보며 떨리던 가슴을 천천히 진정시켰다. 같은 시각, 임준호의 몸 또한 긴장하고 있다가 슬슬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눈앞에 펼쳐진 결과에 놀라운 기색이 역력한 듯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환이가 정기단까지 먹은 정우빈을 무너뜨리다니.]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지?] [어떻게 저 정도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거야?] 머릿속이 복잡한 임준호와 마찬가지로 놀란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기타 6대 가문의 주인들이었다. 27살이라는 나이에 무제 실력을 소유하고 있다니! 이런 재능은 은사 종문에 합류를 한 대도 일등을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천년에서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아니겠는가? 임유환과 비하면 지금의 정우빈은 혈색 하나 없이 초췌하고 비참해보였다. 현장엔 사람들의 감탄하는 소리와 함께 얼핏 환호성도 들려왔다. 하지만 정씨 가문 사람들의 분위기는 초상집 마냥 어둡고 고요했다. 정서진은 잔뜩 굳은 표정으
짝! 뺨을 내리치는 소리는 적막만이 가득 차있던 현장에 크게 울렸다. 모든 사람들은 그 소리에 약속이라도 한 듯 숨을 죽였고 정말 임유환이 정우빈의 뺨을 때릴 줄은 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임유환의 힘은 어찌나 센지 뺨을 맞은 정우빈은 멀리 날아가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초라한 자세로 쓰러지고 말았다.정우빈이 쓰러지는 소리를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고 소백우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는 이내 코끝이 찡해나며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저 바보! 정말 나 때문에 정씨 가문의 원수도 남기도 한 거야?] “저 인간이 정말 정우빈의 뺨을 쳤어.” 조명주의 눈빛 또한 흔들리고 있었다. [만약 내가 저런 일을 당했다면 저 사람은 지금이랑 똑같은 선택을 했을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이런 저런 잡생각이 들었다. 현장은 고요했고 임유환은 쓰러진 정우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정우빈 또한 아주 힘들게 몸을 서서히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빨개진 얼굴을 어루만지며 입에서 피 섞인 가래를 연신 뱉어댔다. “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임유환을 노려보더니 외쳤다. “이 개미 같은 놈, 감히 나를 때려?” 정우빈은 분노가 치솟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임유환은 아주 덤덤해 보였다. “때리면 또 어떻습니까?” “너...” 정우빈은 표정이 확 변하더니 눈빛마저 살벌해지며 임유환에게 또 다시 소리를 질러댔다. “그저 비열한 수법으로 실력을 향상하는 쓰레기 같은 놈! 네가 감히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이냐?” “이 몸은 절대로 진 적이 없다! 이것 하나만 알려주마.” “이 상황에서도 입은 참 잘 놀리시네요.” 정우빈은 동공이 흔들렸고 임유환은 말을 마친 뒤, 바로 그의 뺨을 또 내리쳤다. 이번엔 처음 때렸을 때보다 더 강력한 힘이었고 정우빈은 저항 할 새도 없이 멀리 떨어져 나갔다. 그의 허리는 강한 힘으로 인해 무대 쪽에 있던 계단에 세게 부
임유환의 대답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입을 더욱 꾹 닫게 만들었다. 마치 멈추기 버튼을 누른 것 마냥 사람들은 작은 움직임조차 편히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누군가의 숨소리가 고요한 현장에 울려 펴졌다. 모든 사람들은 들리는 소리를 따라 놀란 토끼 눈으로 정우빈을 쳐다보았다. 감히 정씨 가문의 주인 앞에서 저런 말을 당당히 내뱉다니! 정서진의 눈빛은 임유환이 한 무례한 말 때문에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좋아. 정말 대단하군!” “정말이지 미친놈이구나.” 정서진은 화가 너무 나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의 말은 고요한 현장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기에 사람들에게 거대한 압박감이 느껴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심장이 빠르게 뛰어댔고 조명주 또한 마음이 급해졌다. 전에 임유환이 놀랄 만큼 강한 실력을 보여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도마 위에 놓인 생선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필경 그가 마주할 사람은 전체 정씨 가문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연경에서 절대적인 통치력을 가지고 있는 가문이기에 임유환은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정서진이 정씨 가문의 장악력을 손에 쥐게 된 데에는 그의 실력이 뒷받침 해주고 있었고 무존 중기 급인 그의 실력은 정우빈과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었다. “허허, 정 씨 주인님? 그 기세와는 달리 방금 정우빈 씨는 반칙까지 해가면서 싸우시던데, 제가 좀 미친 짓을 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임유환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만 보여졌다. [감히 정서진을 화나게 하다니! 저런 대담한 사람을 보았나!] “하하, 정말 입만 살아서 움직이는 아이구나.” 정서진은 크게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여전히 살의가 느껴졌다. “지금까지 나 정서진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는데 네가 처음이구나.” “오늘 내가 만약 네 스스로 여기서 걸어 나가게 한다면 우리 정 씨 가문이 뭐가 되겠냐?” “자존심이요?” “제가 만약 정말 간다고 하면 정 씨 가문 고작 하나만 믿고
“저 분은 바로 흑제 어르신?” 대중들은 그의 등장에 다 놀란 듯 동공마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앞에 있는 존엄 있지만 익숙한 얼굴에 숨을 죽였고 작은 움직임도 보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임유환이 도움을 청한 사람이 바로 세계적인 부자인 흑제일 줄은 예상도 못했다. [저러니까 정서진을 무서워하지도 않았구나.] [이렇게 큰 패를 숨기고 있었다니!] “흑제?” 조명주 또한 흑제의 등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에는 흑제가 임유환을 도와주는 것이 소백우 때문이나 임유환이 s시의 대표 인물이라서 그런 줄 알았었다. 하지만 오늘 보니 흑제가 임유환을 도와주는 데에는 소백우랑 아무런 관계가 없어보였다. [이건 완전 임유환을 위해서 나서는 거잖아.]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일을 숨기고 있는 거지?] [대체 무슨 신분인 거야?] 원래 임유환이 말한 국가 특수요원 신분은 오늘 두 눈으로 본 바에 의하면 근본 비길 수가 없는 모양이지 않은가? 어느 특수요원이 무제의 실력을 소유할 수 있는지, 어떤 특수요원을 위해 세계적인 부자가 직접 나서는지 조명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놀라고 있을 때, 정서진의 동공도 급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임유환이 흑제의 도움을 요청할 줄은 몰랐다. [저래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거구만.] 하지만 여기는 연경이었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은 군권이 장악하고 있었고 정씨 가문의 손아귀에 놓아져 있었다. 그저 부자일 뿐인 흑제가 돈이 많다고 해서 연경에서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연경에 있는 권력과 군인, 그리고 정씨 가문을 절대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정서진은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임유환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게 바로 너의 마지막 패였던 것이냐?” “고작 세계적인 부자 한명 데리고 왔다고 우리 정 씨 가문에서 너를 못 건드릴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그럼 어디 한번 건드려 보십시오.” 임유환은 정서진의 말에 담담한 말투
임유환과 윤여진은 최서우의 병이 악화될까 염려하여 일부러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임씨 집안으로 향했다.임씨 집안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윤여진은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 듣게 되었다.영상 속의 그 여자는 임유환의 시중을 들던 나비라는 이름의 메이드이고 그 메이드를 남자들에게 건네준 이가 임준호라는 사실까지 다 듣고 난 윤여진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윤여진이 알고 있는 임준호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한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잔인한 행동에 15년 전 자신의 친아들을 직접 내쫓던 그때의 임준호가 떠올라 윤여진은 온몸이 오싹해났다.아마도 15년 전 그날부로 임준호가 완전히 변한 게 아닌가 싶었다.30분 뒤 그들은 임씨 집안에 도착했지만 워낙 깊은 밤이라 저택의 대문은 당연히 잠겨있었고 흑기군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대기하고 있던 흑제가 임유환을 보고 인사를 건네왔다.“임 선생님.”“오셨어요?”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계 제일 갑부의 느닷없는 등장이 윤여진은 놀랍기만 했다.임유환을 대하는 흑제의 태도가 지나치게 깍듯해 그 둘의 사이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 때라서 윤여진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윤여진이 다시 표정을 굳히자 아까부터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임유환이 앞으로 나서더니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임준호, 당장 나와!”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저택 사람들 몇 명이 눈을 떴고 하인 두 명이 달려 나왔다.밖에 나와 상황을 살피던 하인 두 명은 익숙한 임유환의 얼굴에 깜짝 놀랐지만 그런 놀라움도 얼마 오래가진 못했다.하인들은 이내 비아냥거리며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유환 도련님 아니세요?”입으로는 도련님이라 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 속에 진하게 녹아나 있는 조롱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을 정도였다.“무슨 도련님이야, 버려진 도련
임유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주인님, 그건 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 영상도 그 경찰에 대해 조사할 때 경찰 시스템을 뒤지다 발견한 겁니다.”“경찰 시스템?”“그럼 이것도 정씨 집안에서 한 짓이란 말이야?”“그것까진 아직 모르겠는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저 여자분은 주인님... 아버님께서 직접 저 남자들 손에 넘긴 거였습니다.”이 일이 임유환의 아버지와 관련되어있기도 했고 영상 속의 여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더 위험한 일에 휘말릴 것 같아 흑제는 대답을 망설였다.“아버지?”“네, 주인님.”흑제의 말에 당황하던 임유환은 재차 확인을 거친 후에 또다시 기운을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임준호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임유환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데려온 아이를 또 내다 버릴 수가 있는지 임준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당연히 제 한 목숨 부지하고자 행한 나약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저 사람들 손에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내어준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인지 의문이 갔다.영상 속 사람들이 말하는 비밀 열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임유환은 나비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임준호!”갑자기 소리 지르는 임유환 때문에 방 안에 있던 윤여진은 화들짝 놀랐다.“흑제.”“예, 주인님.”“지금 당장 흑기군 준비해서 나랑 임씨 집안으로 간다.”“예, 주인님.”지금 임유환은 약해빠진 임준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그래서 직접 집으로 쳐들어가서 대체 나비를 누구에게 넘겨준 것인지, 나비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살아있다면 직접 얼굴을 봐야 했고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봐야 진정될 것 같았다.임유환은 나비가 그 짐승 같은 놈들 손에 놀아나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살아있다면 당장 데려다가 직접 치료를 해줄 것이고 죽었어도 데리고 와서 묻어줄 생각으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임유환은 차오르는 분노와
“나비?”아까는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몰랐는데 영상 속의 여자는 바로 임유환만 보면 도련님이라 부르며 해맑게 웃던 나비였다.그렇게 밝고 예쁘게 웃던 아이가 피범벅이 된 채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걸 보고 임유환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머리가 울려왔으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도 15년이니 나비도 많이 커서 얼굴만 보면 못 알아봤겠지만 나비 문양의 반점 덕분에 한눈에 그녀의 알아볼 수 있었다.나비라는 아이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임씨 집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름도 없어서 나비도 임유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나비는 어릴 때 강도들의 손에 부모님을 잃고 그들에게 이끌려 여기저기 팔려 다니던 이이였는데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임준호가 큰돈을 들여 데리고 오는 바람에 임씨 집안에서 메이드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나비는 임유환을 보자마자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때릴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 보여서, 웅크린 몸을 떨고 있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임유환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 들어온 이상 더는 그 어떤 괴롭힘도 없을 거라고 다독여봐도 나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다른 메이드들을 시켜 깔끔히 씻기고 머리도 빗겨주고 깨끗한 옷까지 갈아입혀 주니 왼쪽 얼굴에 있는 나비 모양의 반점도 드러났다.임유환이 그 반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비는 신분이 낮은 제가 얼굴에 난 반점으로 임유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동굴 속에서 강도들에게 폭행당하던 것처럼 맞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반점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그에 임유환은 바로 나비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천천히 타일러주었다.그리고는 나비의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정원 산책까지 데리고 갔다.드넓은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것들이 함께 조화로운 향도 만들어내고 있었다.이런 아름다운 곳은 처음 보는 나비는 처음에는 몸이 굳어버리며 어색해했지만 이
“아!”남자의 행동과 함께 흘러나온 여자의 처절한 비명이 밀실을 가득 채웠다.화면을 뚫고도 전해지는 여자의 절망과 고통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임유환의 몸도 떨려왔고 마찬가지로 비명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윤여진도 임유환 쪽으로 다가오며 화면을 바라보았다.“어머!”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는 영상 속 인간들 때문에 윤여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쳤다.너무 집중해서 본 나머지 옆에 윤여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던 임유환이 다급하게 화면을 가리며 말했다.“여진아, 넌 보지 마.”“오빠, 이 사람들 누구예요?”“아직 모르겠어.”얼굴과 입술이 창백해진 윤여진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임유환은 한숨부터 쉬며 대답했다.“여진아, 네 방 화장실 좀 쓸게.”말을 마친 임유환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다시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화면 속의 여자는 여전히 은침에 찔린 손을 들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온몸을 비틀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는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미꾸라지 같기도 했다.하지만 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그런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차가운 눈을 하고 두 번째 은침을 꺼내 들어 여자의 다른 손가락에 찔러넣었다.“아!”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여자는 순간 고개를 확 젖혀버렸고 이미 흑과 말라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이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몰라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그냥 날 죽여줘요 제발...”“죽여주세요...”남자가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여자는 울며불멸 죽기를 애원하고 있었다.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죽는 걸 원하고 있을까 싶어 임유환은 비통하다 못해 화까지 나고 있었다.“말했잖아, 얘기하면 죽여준다고.”말을 마친 남자는 섬뜩하게 웃더니 나머지 손가락에도 하나하나 은침을 꽂아 넣었고 여자는 온몸에 경련이 일듯 몸을 떨어대다가 한계에 다다른 건지 다시 한번 기절했다.은침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열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들은 빠르게 작은 웅덩이
“마음의 준비요?”의미심장한 흑제의 말에 임유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영상인데 그래요?”“혼자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암호 걸어서 이메일 보내놨어요.”임유환이 영상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알기에 흑제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알겠어요.”임유환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빠르게 흑제가 보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이메일의 정체는 5분쯤 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장소는 어두운 밀실같이 보였다.밀실 안에는 똑같은 옷차림을 한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눈 하나만 내놓고 있었다.임유환은 그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핸드폰 화면으로만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무시무시한 그들의 기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남자들의 발밑에는 거의 죽어가는 젊은 여자 하나가 누워있었다.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몸에는 채찍에 맞느라 생긴 생채기들이 한가득이었다.생채기 주위의 살들은 진작에 터져나갔고 팔은 안에 있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그뿐만이 아니라 담배로 인해 생긴 작은 화상 자국들도 빼곡했다.옛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 난 상처들은 이미 옷과 붙어버려 여자의 처참한 상태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었다.영상을 보고 있던 임유환도 서서히 여자가 불쌍해졌다.다섯 남자들은 대체 누구길래 여자한테 이토록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여자는 또 누구인지 임유환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영상 하단에 떠 있는 시간을 보니 아직 5분 1밖에 진행되지 않은 영상에 임유환은 계속해서 화면을 들여다봤다.화면은 빠르게 전환됐고 여전히 같은 복장을 한 남자 다섯 명과 아까와 다를 게 없는 밀실이 나타났지만 아까 그 일로부터 며칠은 지난 듯 보였다.영상 속의 남자는 찬물을 들어 쓰러져있는 여자의 몸 위로 뿌렸고 여자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고통 속에서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검은 복면을 쓴 남자 하나가 입을 열자 나머지 네 명도 여자를 차갑게 바라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검사할 거예요 오빠?”그때 귀를 간질거리는 윤여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부끄러워하면서도 도발적인 말을 뱉어내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여진아, 나는...”오해를 풀어보려고 고개를 돌려 윤여진을 보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숙인 탓에 훤히 드러난 검은색 슬립 아래의 몸매에 다시 말을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임유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시각 동물인지라 완벽한 몸매와 유독 눈에 띄는 풍만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도 이내 임유환의 이성에 묻혀버렸다.“후...”임유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여진아, 진짜 이제 그만해. 진짜 실수한다니까.”“오빠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 때문에 점점 본능이 들끓고 있었던 임유환은 이대로 있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윤여진이 임유환의 손을 덥석 잡아 오자 우유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 느낌에 임유환은 일어서려던 다리마저 굳어버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유환 오빠, 나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요.”윤여진은 여전히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잡고 있던 임유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환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이 손을 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린 전화벨 소리에 둘 다 화들짝 놀랐고 임유환도 또 한 번 울리는 벨 소리에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윤여진도 겁먹은 고양이마냥 손을 빼내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나... 전화 좀 받을게.”임유환이 어색하게 말하자 윤여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네.”아까의 대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럼 타는 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임유환이 전화를 받았다.흑제에게서 온 전화라 조금 긴장한 채로 받았는데 역시나 전에 지시했던 일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애써 윤여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장난치지 말라니까.”윤여진이 여전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아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거 알려줄게.”“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오빠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요.”“어... 그 얘기 먼저 하자, 불 끄면 졸려서 못 할 것 같아.”임유환은 기대에 찬 윤여진의 얼굴이 보였지만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상황부터 끝내보고자 평소답지 않게 우겨댔다.그리고 사실 윤여진이 한 말이 장난인지 아닌지 제대로 분간도 가지 않아 아까부터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장난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장난이 아니라면 아주 어색해질 것 같았다.“오빠, 왜 아까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 같죠?”그때 임유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을 보며 윤여진이 부드럽게 물어왔다.“그... 그래?”“긴장한 거예요 설마?”임유환에게 질문을 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윤여진 때문에 둘의 거리는 3㎝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닿을 것같이 가까운 거리라서 임유환은 윤여진이 내뱉는 호흡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뜨거운 숨결과 함께 풍기는 향기에 임유환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여진아, 이제 진짜 그만해.”사람 둘은 족히 앉을 정도로 떨어져서야 임유환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장난 아니라니까요.”임유환이 저에게서 멀어지자 윤여진은 살짝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연애 수첩 제1항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그래서 윤여진은 긴장한 듯 굳어있는 임유환을 보며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유환 오빠, 누가 그러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긴장을 한대요.”“오빠 설마 나 좋아하는 거예요?”윤여진이 이 질문을 할 때 임유환은 이게 장난이든 진심이든 간에 서둘러 이 화제가 지속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해지는 방 안의
“어...”단도직입적인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은 뭐라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의 생각이 불순한 건 맞지만 그게 오로지 임유환의 잘못은 아니었다.이미 성인이 된 그들은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윤여진은 얼굴이며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여자로 성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임유환 역시 남자였으니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슬립까지 입고 제 눈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윤여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슬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한 윤곽이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지금 온 정신력을 다 쏟아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의 눈이 윤여진의 몸으로 향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임유환이기에 당연히 같이 자자는 그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인 그 몸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밤을 조용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오빠, 이상한 생각 한 거 맞죠?”한편 윤여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임유환을 보며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어...”임유환은 이젠 정말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정말 윤여진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윤여진이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몸만 보면 저절로 뜨거워지는 가슴이 대신해서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여진아, 사실... 나는...”다그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진심이 전달될지 몰라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임유환에게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꼬맹이였고 임유환 또한 그때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그는 윤여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또 윤여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여전히 그때처럼 윤여진이 힘들 때 그녀에게 힘이 돼주는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전하기에 말 한마디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어.”“그럼 오빠도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다급히 해명하는 임유환에 시무룩해 있던 윤여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물었다.“그럼.”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와 윤여진이 말한 같이 있는다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이었다.“그럼 오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임유환의 팔을 감싸 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말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몸이 먼저 반응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여기서 너랑 같이 밤을 보내자고?”“네!”윤여진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임유환이기에 제 팔에 닿아오는 말랑거리는 그 느낌도 까맣게 잊은 채 놀랐다.그런 임유환의 반응을 보던 윤여진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다급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라 좀 무서워요, 워낙 낯설기도 하고...”“어...”윤여진의 부탁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임유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오빠, 그냥 남아서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윤여진은 임유환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임유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인데 애교까지 부리니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섞여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다 윤여진한테 넘어갈 것 같았다.인내심과 자제력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아왔던 임유환도 윤여진의 애교 공세에 3초도 못 버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정말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를 향해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윤여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역시, 오빠는 내 말 들어줄 줄 알았어요!”결국 제 말을 들어준 임유환에 윤여진의 촉촉한 눈망울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너랑 같이 있어 줄 수는 있는데, 난 바닥에서 잘 거야.”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으니 임유환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했